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21:35:08

김영중(야구선수)

김영중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NC 다이노스 등번호 89번
박명환
(2016)
<colbgcolor=#af917b><colcolor=#00275a> 김영중
(2017~2018)
박석진
(2019~2024)
NC 다이노스 등번호 90번
송재익
(2018)
김영중
(2019)
노학준
(2020)
NC 다이노스 등번호 57번
김태현
(2019.8.14.~2019)
김영중
(2020~2021.7.6.)
이우석
(2021.7.7.~2021)
}}} ||
파일:김영중2021프로필.jpg
김영중
金英中 | Kim Young-Jung
출생 1998년 7월 2일 ([age(1998-07-02)]세)
전라북도 군산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군산남초 - 군산중 - 군산상고
신체 182cm, 86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17년 2차 4라운드 (전체 38번, NC)
소속팀 NC 다이노스 (2017~2021)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NC 다이노스
2.2.1. 2019 시즌2.2.2. 2020 시즌2.2.3. 2021 시즌
3. 연도별 성적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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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C 다이노스 소속 우완 투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군산상고 시절에는 투수와 타격 모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특히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는 빼어난 호투를 보여주며 팀을 결승전까지 이끌기도 했다. 이후 휘문고와의 결승에서도 6이닝 5피안타 9K 1실점으로 맹활약했으나 팀은 연장 13회 끝내기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비록 팀은 준우승에 그쳤으나 본인은 대회 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3학년 투수 기록은 총 18경기에 나와 84이닝 9승 1패 78K 20볼넷 ERA 1.82. 130km 중반대에 형성되는 패스트볼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으나 안정적인 경기 운영 능력과 제구력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서는 2차 4라운드 38순위로 NC 다이노스의 지명을 받으며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계약금 7,000만원에 입단 도장을 찍었다.


2.2. NC 다이노스

팀에 입단을 하자마자 팔 상태가 좋지 않아 팔꿈치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이후 재활이 계속되면서 2년간 1군은커녕 2군에서도 기록한 것이 없었으나 2018 시즌 종료 후 마무리 캠프에 나서며 구위 점검을 시작했다.

2.2.1. 2019 시즌

4월 13일 퓨처스리그 삼성전에 데뷔 처음으로 프로무대에 등판해 1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데뷔 첫 홀드를 기록했다.

이후 5월 31일까지 7경기에 구원으로 등판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등판하지 않다가 8월 4일 kt전에 구원등판해 0.1이닝 1피안타를 기록하고 다시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리고 이 경기가 시즌 마지막 등판이 되었다. ERA는 9.00

2.2.2. 2020 시즌

5월 28일 퓨처스리그 두산전에 등판, 1이닝 2피안타 1자책점을 기록했다.

6월 9일 삼성전에서 ⅔이닝 3피안타 1볼넷 1K 3실점 피칭을 했다.

9월 23일 KIA전에서 3개월 반만에 등판, 1이닝 2피안타(1피홈런) 1K 1자책점을 기록했다.

9월 30일 롯데전에서 1이닝을 삼자범퇴로 막아냈고, 이것이 2020 시즌 퓨처스리그 마지막 등판이 되었다.

2.2.3. 2021 시즌

퓨처스리그 등판 기록이 전혀 없으며, 7월 30일에 이호중, 권법수와 함께 공식 홈페이지의 명단에서 삭제되면서 방출된 것이 확인되었다.

3.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7 NC 1군 기록 없음
2018
2019
2020
2021
KBO 통산 1군 기록 없음

4. 여담

  • 쌍둥이 동생 김길중도 군산상고 시절 함께 야구를 했으나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서는 아쉽게도 프로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포지션은 유격수. 그러나 졸업반인 2020년에도 지명 대상으론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었고 실제로도 지명을 못 받았다.

5.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