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13 13:45:29

지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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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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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이호준 · 70 이동욱 [[감독#s-1.1|
]] · 71 이대환 · 72 전준호 · 73 송재익
· 74 한규식 · 75 진종길 · 76 지연규 · 77 용덕한 · 79 김상엽
· 81 손민한 · 82 한문연 · 83 정진식 · 85 이현곤 · 87 김민호
· 88 채종범 · 89 박석진 · 93 이종욱 · 97 유영준 · 98 김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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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규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빙그레 이글스 등번호 26번
손경호(1989~1990) 지연규(1992) 고기성(1993~1994)
빙그레 이글스 등번호 27번
이동석(1987~1991) 지연규(1993) 길배진(1994)
한화 이글스 등번호 11번
김락기(1989~1993) 지연규(1994) 홍우태(1999~2001)
한화 이글스 등번호 51번
박정진 지연규 윤근영(2007)
한화 이글스 등번호 74번
김인철 지연규(2006) 성준(2010)
NC 다이노스 등번호 76번
팀 창단 지연규(2012~)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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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No.76
지연규(池連奎 / Ji Yeun-Gyu)
생년월일 1969년 8월 15일 ([age(1969-08-15)]세)
출신지 충청남도 태안군
학력 시목초 - 천안북중 - 북일고 - 동아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2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 (빙그레)
소속팀 빙그레/한화 (1992~1998, 2001~2006)
지도자 대전고등학교 투수코치 (1999~2000)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1] (2005)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07~2008)
북일고등학교 투수코치 (2008~2011)
NC 다이노스 투수코치 (2011~2012)
고양 다이노스 투수코치 (2013~2016)
NC 다이노스 1군 불펜코치 (2017~2018)
NC 다이노스 1군 투수코치 (2018)
NC 다이노스 잔류군 투수코치 (2019~ )
프런트 NC 다이노스 스카우트 (2011)

1. 소개2. 선수 시절3. 지도자 시절4. 여담5.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한화 이글스 투수, 플레잉코치, 천안북일고 코치. 現 NC 다이노스 1군 투수코치. 등번호는 26번 - 27번- 11번 - 51번

2. 선수 시절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10323135450858G.jpg
(출처 : 포토로)
빙그레 이글스 현역 선수 시절

천안북일고-동아대를 거쳐 1992년에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 당시 구대성, 정민태와 함께 국가대표 투수 3인방으로 꼽힐 정도의 대어라 매번 해태 타이거즈에 밟히던 빙그레 팬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으나, 데뷔 첫 해 찾아온 어깨부상은 그의 프로 인생의 결정적인 암초가 되었다. 이후 1998년까지 7시즌 동안 고작 3승만을 올리는 극도의 부진을 보이다 은퇴한다.

이후 2년간 대전고 코치를 맡으며 아이들을 지도하다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2000년 다시 한화에 연습생 자격으로 입단하여 현역으로 복귀한다.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10407182038234G.jpg
(출처 : 포토로)
은퇴한 지 2년만에 다시 친정 팀으로 컴백한 한화 이글스 현역 선수 시절

복귀 후에도 부상으로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2002년 5월 1일에 복귀 첫 승과 동시에 통산 4승을 기록한다.

플레잉코치로 뛰던 2005년 김인식 감독에 의해 마무리 투수로 낙점, 1패 20세이브 ERA 2.84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다.[2] 김인식 감독의 추천으로 이 시즌에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이대호에게 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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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한화 이글스 현역 선수시절

2006년에는 은퇴를 선언하고 2군에서 코치로 선수를 조련하고 있었으나 주전 셋업맨인 최영필의 부상으로 불펜에 구멍이 나자 급히 몸을 다시 만들어 정규시즌 막판에 복귀했으며,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되었다. 어깨는 1993년 부상으로 인해 철심을 박았고,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였으며 2006년 시즌 초반 당시 그의 직구 구속은 겨우 130km에 미치는 정도였다.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그의 어깨를 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그에게 큰 기대를 건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10월 28일 한국시리즈 5차전은 그의 생애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되었다.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벼랑 끝에 몰려 있던 한화는 이미 앞의 4경기동안 투수가 바닥날 대로 바닥나서 1선발[3] 문동환을 중간계투로 돌리는 악수까지 둔 상황이라 정말로 낼 투수가 없었다. 정민철과 브라운의 선발 대결로 시작된 경기에서 정민철이 5이닝 1실점 후 강판되자 지연규가 등판했고 생애 최고의 역투를 선보이며 4이닝동안 탈삼진 5개 단 1피안타로 삼성 타선을 틀어막았다. 아무도 생각 못했던 그의 호투 덕에 1:1 동점으로 연장 승부로 끌고 갈 수 있었고[4] 15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1:1 무승부로 5시간 15분의 혈투를 마치게 된다. 통산 10승만을 기록했던 비운의 투수가 마지막 중 마지막에 가서야 최고로 빛나는 이 모습은 한화 팬들뿐만이 아니라 당시 한국시리즈를 관전했던 야구팬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3. 지도자 시절

2006 시즌 종료후 3번째로 은퇴하여 천안북일고 코치를 맡았다. 2009 시즌 고교야구에서는 이정훈 감독의 라이센스 문제로 대신 벤치에서 선수들을 지휘하는 모습[5]이 보이기도 했다.

이후 2011년 NC 다이노스가 창단 준비를 하면서 스카우트로 선임되었는데 고교야구 코치 경험을 살려 재목을 선발하는데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던걸로 보인다. 이후 스카우트의 연장선상에서 NC 다이노스의 코치로 선임되었다.

3.1. NC 다이노스

2017 시즌부터는 1군 불펜코치를 맡았으며 2018 시즌 때는 김경문 감독 사임 이후 코치진이 대거 교체되면서 6월 초부터 1군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투수 코치를 맡게 된 이후에는 나름대로 무난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나 최일언에 비해 그다지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투수들에게 더 많은 이닝을 소화시키기 위해서 인지 최일언 때보다 조금 더 투수 교체를 늦게 가져가고 있는데, 교체 시점은 결과론이라고 치더라도 선수 운용을 지독하게 못하고 있다. 강윤구최성영 같은 자원을 굴리는 경향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못 믿겠다고 생각하는 투수들은 무의미 하게 1군에 두는 상황이 가장 문제. 신인급인 이우석은 20일 가까이 1군에 데리고 있는 동안 등판 기록은 단 0.1이닝에 불과하고 이형범은 시즌 중간마다 2주씩 실종이 되고 있다. 7월 말부터 갑자기 안보이던 유원상은 이형범과 함께 2주 만에 얼굴을 비추더니 9월 들어서는 엔트리에 이름만 올리고 한 달 가까이가 되도록 등판이 없다. 본인이 못 믿는 선수는 철저하게 배제하다보니 박진우경찰 야구단에서 전역하자마자 굴려지고 있다.

9월 21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원종현, 이민호 놔두고 1점차 리드 상황에서 정수민을 등판시키더니 기어코 박진우강윤구에게 3연투를 시켰다. 결국 나란히 안타를 맞으며 동점 허용.

9월 22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완전히 흔들리고 있는 구창모를 계속해서 밀고 가다가 결국 만루 홈런을 맞았고, 이후 두 점차 리드에서 정수민을 올리는 미친 짓을 하더니 결국 역전 홈런을 허용했다. 9월부터는 막무가내로 구르고 있는 최성영은 42구나 던지게 하더니 10일 만에 등판한 이민호는 9회 동점 상황에서 안타 4개를 맞고 3실점을 했다. 결국 팀은 13:10으로 패배. 9월 들어서는 아예 1군에서 던질 상태가 안되는 이민호를 꿋꿋이 밀더니 결국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9월 들어서는 나름 괜찮은 이형범이나 아니면 9월 들어서는 단 한 번도 등판을 안한 유원상이라는 선택지도 있었으나 이민호를 선택했고, 그 결과는 참혹한 역전패가 되었다. 어차피 순위 싸움은 끝났으니 순리대로만 운영하면 지더라도 욕은 안 먹을 상황인데, 이런 부담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운영 미스로 팬들의 스트레스를 양산하고 있다.

시즌 종료 후 2018년 11월 23일에는 코치진 개편을 통해 잔류군 투수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4. 여담

1992년과 2006년에 2번의 준우승을 경험한 콩라인멤버 중의 한 명이다.[6]

외모가 송진우와 약간 닮아 리틀 송진우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1992 빙그레 이글스 9 28⅔ 2 0 0 0 1.000 5.97 39 4 12 12 20 19
1993 6 24 0 2 0 0 0.000 3.38 24 1 8 8 10 9
1994 한화 이글스 4 4 0 0 0 0 0.000 11.25 3 1 6 2 5 5
1995 9 28 1 2 0 0 0.333 5.14 33 1 23 8 21 16
1996 9 10⅔ 0 0 0 0 0.000 3.38 10 0 3 5 4 4
1997 1군 기록 없음
199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2001 한화 이글스 3 3 0 0 0 0 0.000 9.00 7 0 2 1 3 3
2002 20 77⅓ 4 9 0 0 0.308 5.35 92 6 33 48 49 46
2003 12 45 2 3 0 0 0.400 5.20 51 6 18 8 32 26
2004 20 32⅓ 0 4 3 3 0.000 5.57 36 4 19 17 23 20
2005 33 38 0 1 20 0 0.000 2.84 30 3 20 32 13 12
2006 7 8 1 1 0 1 0.500 2.25 6 1 3 3 2 2
KBO 통산
(13시즌)
132 299 10 22 23 4 0.313 4.88 331 27 147 144 182 162


[1] 선수 겸임[2] 다만 이닝수가 38이닝으로 매우 적었고, 마무리 투수 치고는 위력적인 구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보다 앞서 던지던 정병희, 윤규진의 혹사 비중이 커졌다. 이 때의 결과로 정병희는 SK에 김민재의 보상 선수로 건너간 후 다시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방출당했으며, 윤규진도 기나긴 재활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3] 당시 한화 최고의 투수는 누가 뭐래도 류현진이었지만, 아무래도 신인인 탓에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문동환을 내보내며 문동환-류현진-송진우로 준플레이오프를 넘겼고, 플레이오프에서도 문동환을 1선발로 기용했었다. 이후 문동환이 선발로 만족스럽지 못하자 문동환을 플옵 1차전에서 조기강판시킨뒤 3차전부터 구원으로 투입하고 그 빈 선발 자리를 최영필, 안영명 등으로 땜빵했다.[4] 같은 경기에서 삼성은 무려 9명의 투수를 동원하는 물량공세를 펼쳤다. 한화는 정민철-지연규-구대성-김해님 단 4명..지연규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승리를 노릴 경기가 아니었다.[5] 같이 북일고 코치를 맡은 임수민이 관중석에 있는 이정훈 감독으로부터 작전 지시를 전달받기 위해 무전기와 이어폰을 이용하기도 했다.[6] 1999년 한화가 우승하였을 때는 상술하였지만, 은퇴 후 대전고 코치를 하고 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