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0 08:28:46

신재웅(1972)

이름 신재웅(申宰雄 / Jae-woong Shin)
생년월일 1972년 10월 10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충청남도 공주시
출신학교 공주고 - 경성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5년 한화 이글스 1차 지명
소속팀 한화 이글스 (1995~2003)
지도자 경력 공주중학교 감독
광저우 광둥 레오파즈 투수코치(2017)
설악고등학교 투수코치(2018~)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트리비아5.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한화 이글스 소속의 투수.

2. 선수 경력

아마추어 시절에는 150km/h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던지며 주목받았던 선수로, 1993년에 열린 니카라과 대륙간컵에서는 미국을 상대로 무려 16개의 탈삼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한화 이글스에 1차 지명받아[1] 당시 구단 역대 최고액인 2억 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지만,[2] 부상 때문에 프로에서는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며 평범한 투수로 뛰다가 2003년 시즌 중 웨이버 공시를 통해 은퇴했다.

통산 성적은 133경기 474⅔이닝 3완투 3완봉 24승 37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5.44. 하지만 24승 중 3승이 완봉승이라는 건 나름대로 인상적인 부분이다.

3. 지도자 경력

2013시즌이 끝나고, 공주중 감독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여기에는 논란이 있는데, 평소 극성인 학부모 둘 과의 알력다툼이 있었고 소송까지 갔는데, 신재웅 감독이 소송에서 자격정지 1년을 먹게되어 물러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후임 감독으로 온게 강귀태인데, 정작 이 사람은 폭행으로 시즌 초에 경질됐다... 망했어요.

그 후 2017년 3월 광저우 광둥 레오파즈의 투수코치를 맡았다가 연말에 귀국해 설악고 코치로 부임했다.

4. 트리비아

  • 박찬호의 1년 선배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은 야구부에서 뛰었으며 이 때문에 서로 친분이 두텁다. 1박 2일에 출연한 박찬호가 공주중에 가서 카메라맨인 척 위장하고 후배들에게 공을 던지는 모습이 나왔는데, 그 당시 공주중 감독[3]을 맡고 있었다. 카메라맨이 첫 공을 뿌렸을 때 모습을 보고 박찬호인지 바로 알았다고 한다. 박찬호가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존경하는 선수로 신재웅의 이름을 대면서 "나보다 훨씬 잘 던졌다"고 말한 일 때문에 국내에서 신재웅이 대체 누구냐며 갑자기 유명세를 탔던 일화도 있다. 신재웅은 고3이었던 1990년에 공주고의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우승[4]에 크게 기여한 투수다. 전국대회 결승에 오른것이 1977년 김경문이 이끌던 공주고의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5] 이후 13년만에 이룬 성과.
  • 사회인야구에도 출전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여전한 투구폼으로 140km/h에 이르는 강속구를 뿌려대며 경기를 지배했다는 소문이 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5 한화 이글스 11 53 3 5 0 - 0.375 5.09 52 5 29 39 32 30 1.528
1996 25 83 5 3 2 - 0.625 5.10 75 8 45 77 51 47 1.410
1997 30 135 6 7 0 - 0.462 3.67 112 20 68 93 63 55 1.304
1998 30 111⅓ 5 11 0 - 0.313 5.90 127 17 48 97 78 73 1.554
1999 9 14⅓ 0 2 0 - 0.000 10.05 23 3 19 9 17 16 2.930
2000 18 60 3 7 0 0 0.300 7.20 65 14 26 33 49 48 1.500
2001 9 17⅔ 2 2 0 0 0.500 9.17 24 5 9 9 18 18 1.868
2002 1 0 0 0 0 0.000 0.00 2 0 1 1 0 0 9.000
2003 1군 기록 없음
KBO 리그 통산
(8시즌)
133 474⅔ 24 37 2 0 0.393 5.44 480 72 245 358 308 287 1.506


[1] 사실 그의 고교 동기생들 중 1차지명이 가장 유력했던 선수는 대전고 출신의 초고교급 투수 안희봉이었다. 그러나 안희봉은 고교 졸업 당시 한화(당시는 빙그레)가 입단시키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연세대 진학 후로는 고교 때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투수로서의 가치가 거의 사라지고 사실상 타자로 정착하게 되어 결국 한화는 그에 대해 미련을 버렸다.[2] 현재 한화 구단 역사상 신인 계약금 최고액은 2011년 어느 주작범의 7억.[3] 공주고 동기인 강준기 감독(1990년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후임 감독을 맡았다.[4] 2년 뒤에는 노장진의 활약으로 청룡기를 품에 안았다.[5] 36년 후인 2013년에 공주고는 지역 라이벌 천안북일고를 꺾고 대통령배를 공주시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