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7 10:02:27

공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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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eal_of_chungnam_little.png 충청남도 기초자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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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과 공주 시가지(작가: 차상훈)
을 기준으로 아래쪽이 구시가지, 위쪽이 신시가지다
파일:attachment/공주시/gongju_city_logo.jpg
공주시
公州市 / Gongju City
국가 대한민국
면적 864.20㎢
광역시도 충청남도
하위 행정구역 1 9 6
시간대 UTC+9
인구 106,781명
(2019년 9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 124.24명/㎢
시장 김정섭 (더불어민주당)
초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시의회 더불어민주당 6석
자유한국당 5석
무소속 1석
도의원 파일:minjoo.png ① 김동일
파일:minjoo.png ② 최훈
국회의원 공주시·부여군·청양군:
정진석 (자유한국당)
4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파일:external/ph.kyongbuk.co.kr/929128_219315_5401.jpg
공산성(산성동, 금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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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청
본관, 구)제1별관 및 구)봉황동별관 :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로 1(舊 봉황동 319번지)

구)교동별관 :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로 125(舊 교동 120번지)

구)중동별관 : 충청남도 공주시 국고개길 20(舊 중동 279번지)
파일:attachment/공주시/gongju_city_old_logo.jpg 파일:external/www.expressnews.co.kr/69149_41274_1040.gif 파일:external/newdle.noonnoppi.com/32824_s.jpg
공주시 구형 로고 공주시 구형 브랜드[1] 공주시 구형 마스코트[2]
파일:attachment/공주시/gongju_city_logo.jpg 파일:attachment/공주시/gongju_city_brand.jpg 파일:attachment/공주시/gongju_city_mascot.jpg
공주시 로고 공주시 브랜드 공주시 마스코트[3]

1. 개요2. 지명 유래3. 역사4. 하위 행정구역5. 쇠락
5.1. 경부선 미경유 관련
5.1.1. 나주시와의 비교
5.2. 좁은 평야5.3.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이후5.4. 유입원의 부족5.5. 기타
6. 교통7. 산업
7.1. 대학 관련
8. 관광9. 상권
9.1. 전통시장9.2. 대형마트
10. 생활문화
10.1. 교육10.2. 치안
11. 정치12. 기타13. 출신 인물14. 관련 문서

1. 개요

충청남도 중동부에 위치한 . 동으로는 세종특별자치시, 동남으로는 대전광역시계룡시, 서로는 청양군, 남으로는 논산시부여군, 북으로는 천안시아산시, 예산군에 접한다.

면적은 864.20㎢이다.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할 때 공주시 장기면을 편입[4]하여 면적이 다소 줄어들었다.

2. 지명 유래

곰나루에 얽힌 전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암컷 곰이 인간 남자를 좋아해서 그를 쮸쀼쮸쀼납치해서 다리를 부러뜨리고는 감금한다. 흠좀무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으나 몇 년 후 남자를 가두어두었던 동굴 입구를 막고 있던 바위를 다시 굴려 동굴 입구를 폐쇄하는 것을 잊어버렸다.[5]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남자가 도망을 가는 바람에 곰이 쫓아 나와 아이들을 강물에 하나하나 빠뜨리는 식으로 돌아오라 호소하나 남자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니 매우 슬퍼하여 나루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이 '곰나루'로 불리었고 나중에는 한자로 '웅진'(熊津)이 되었다고 한다.[6][7]

통일신라의 통일과 행정지역 개편으로 인해 웅천주(熊川州)로 개칭되었다가[8] 조선시대 이후로는 쭉 공주라 불렸다. 공주의 '公'은 '곰'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공주시의 마스코트도 을 쓰고 있다.

3. 역사

백제 문주왕 때 처음 백제의 수도가 되어 성왕에 의해 천도할 때까지 63년(475~538)간 백제의 중심지였다. 의자왕이 660년 백제멸망전에서 사비를 떠나 웅진에서 마지막으로 항거했고 이후 당나라는 사비 대신 웅진을 백제 지역의 중심지로 파악해 이곳을 중심으로 웅진도독부를 설치했다. 신라 문무왕나당전쟁에서 당군을 축출한 이후 신문왕 때 웅천주(熊川州)를 설치, 신라 경덕왕 때 웅주(熊州)로 개칭했다. 9주 5소경웅주의 치소(현재의 도청(행정))가 있었고 13개 군 29개 현, 5소경 중 서원경(청주시)을 관할하였다. 또한 청음현(淸音縣, 신풍면), 이산현(尼山縣, 논산시 노성면) 2개현을 직속 영현으로 두었다.

고려시대에는 동남쪽의 별개의 군현이었던 비풍(比豊)[9]군이 공주로 편입되었다. 유성-둔산-은행동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대전 중심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충청도 전체를 관할하는 충청감영관찰사가 주재하던 곳으로 명실상부한 충청도의 중심도시였다. 이름이 자주 바뀐 충청도이다 보니 청주, 홍주, 충주와 이름을 같이 쓴 '공충도', '공홍도', '공청도' / '충공도', '청공도' 등으로 쓰인 적도 있다('홍공도'는 쓰인 적이 없다). 다 잠깐씩만 썼지만 '공홍도', '공청도', '공충도'는 한 30년씩 썼다.

1906년 대대적으로 월경지, 땅거스러미를 정리할 때 구 비풍군 일대는 회덕군으로 넘어갔으나 유성 지역은 계속 공주에 잔류했다. 남은 유성 지역은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옆의 진잠군, 회덕군이 통합되어 생긴 대전군에 편입되어 현재의 대전광역시 시역을 형성하게 된다(대전광역시/역사 참고). 같은 해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지역이 연기군에 흡수되었다.

1931년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이 결정된 직후 공주면이 공주읍으로 승격되었다. 병주고 약주네 1986년 공주읍이 공주시로 승격되었다.

1995년 1월 행정구역 개편 때 공주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시가 되었다. 2012년 7월 1일 장기면 일부, 의당면 일부, 반포면 일부 지역이 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되었다.

4.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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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쇠락

인구는 2019년 1월 기준 약 11만 명으로 1970년대 중반 이후 인구가 계속 줄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군 딱지 붙이고 있는 부여군이나 청양군보다도 더 떨어지는 거 아니냔 우스갯소리 푸념도 나온다. 근래에 충남도청을 등에 업고 성장한 홍성군과 6000명 정도의 인구 차이로(2019년 6월) 곧 따라잡힐 위험이 있다.

대동강을 낀 평양직할시, 한강을 낀 서울특별시 등은 모두 굴지의 대도시들로 성장했지만, 정작 이 공주시의 경우에는 충청도 최대의 금강을 끼고도 오히려 주저앉아 버렸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시골촌구석이였던 한밭에게 밀려 주저앉아 버렸다.

비슷한 특징을 가진 도시로는 전라남도 나주시, 경상북도 상주시가 있다. 역시 전통적인 도내 주요 도시였지만(전라도의 '라'가 바로 나주, 경상도의 '상'이 바로 상주), 바로 옆에 일제강점기 동안 새로운 도청소재지(광주광역시) 또는 신흥 교통요지·산업도시(김천시·구미시)가 성장하여 쇠퇴한 케이스.

5.1. 경부선 미경유 관련

구한말 일본경부선을 건설할 때 공주를 경유하도록 돌아가려고 했으나, 양반 및 유생들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호남선마저 피해갔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일본이 유생들의 반대를 그리 신경쓰지는 않았다. 다른 곳에서도 유생의 반대는 있었으나 일본은 밀어붙였다. 심지어 다른 철도 건설지역에서는 대놓고 철도 건설을 사보타주하는 활빈당 사건까지 있었다. 점잖은 유생들 반대 정도는 일본에게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3년 후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지가 된 대구 같은 도시에서도 철도는 잘만 놓았다. 사실 철도를 유생이 반대해서 못 지었다는 루머는 전국에 수십 곳 이상 퍼져있어서 유생 반대라는 게 진짜로 있었는지도 확실치는 않다. 진짜 문제는 러일전쟁을 눈앞에 둔 일본 군부의 요구. 애초에 1987년 6월 민주 항쟁으로 민주화를 쟁취하기 이전까지 한국에서 지역민들이 철도와 같은 국가시설 건설에 대해 반대를 표한다는 것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일이었으며, 만약 시도한다고 해도 무자비한 탄압만이 뒤따를 뿐이었다.

경부축에는 경부선 철도가 빗겨 나갔음에도 대도시로 성장한 성남시, 용인시, 청주시, 포항시, 울산광역시도 있고 경부선 철도가 경유했음에도 철도에서 멀리 떨어진 옆 지역보다 발전하지 못한 조치원, 밀양시 등도 있다. 철도가 경유하든 경유하지 않았든 공주시가 근대화 과정에서 중심지의 지위를 잃고 쇠락한 건 근현대 도시의 입지로 적절하지 못했다는 근본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5.1.1. 나주시와의 비교

호남선의 사례를 들어보자. 전근대 전남지역의 중심지로 기능했던 나주에는 호남선이 경유한다. 그에 반해 광주광역시는 호남선이 10km 이상 떨어진 송정리로 빗겨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주는 호남 중심지의 지위를 광주에 뺏기고 쇠락하고 말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경부선이 공주를 경유했다면 공주가 지금보다 발전할 수 있었으리라 가정하고 현재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에 피해의식을 가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공주시가 나주시보다 사정이 나았다. 공주시는 시가지(동 지역) 인구가 시 승격 기준인 5만 명 이상은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2013년 기준 65,091명), 나주시는 시가지 인구가 5만 명, 아니 4만 명 이하[10]로까지 떨어졌다(2013년 기준 36,229명)! 심지어 나주는 호남선 철도가 지나감에도 공주보다 더 심하게 쇠퇴하였다.

하지만 나주는 2014년부터 시작된 빛가람혁신도시 사업으로 인구가 다시 증가세에 들어섰다. 기사. 공주시는 세종특별자치시의 영향으로 인구가 꾸준히 감소 중(...). 기사. 거기다가 나주는 LG화학 같은 괜찮은 산업기반도 있는데 공주는 그런 것도 없다.

5.2. 좁은 평야

애당초 공주시는 평지가 부족해 대도시가 성장하기 힘든 조건이다. 총인구가 10만명에 불과한 소도시인데도 시내도로에 공주터널이라는 터널이 있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평지가 부족하고 지형이 열악한지 알 수 있다. 어차피 경부선을 공주 경유로 부설했더라도 지형적으로 대전광역시 - 옥천군 - 영동군을 거쳐 백두대간의 가장 낮은 고개인 추풍령으로 넘어가는 것이 최적의 경로였음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철도가 대전을 경유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기에 평지가 넓은 대전에 중심 대도시가 형성되고 공주는 빨대효과로 쇠락하기만 했을 것임은 예견된 사실이었다.

사실 공주는 역사적으로 중심지라는 인상이 강해서 그렇지, 당장 백제가 공주에 도읍을 둔 것부터가 일종의 임시수도 성격이 컸다. 백제가 위례성을 떠나 공주로 들어온 것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남침으로 개로왕이 피살되는 위기상황 속에서 방어하기 좋은 공주에 자리잡은 것이다. 전근대에 무려 배수임산으로 도시를 건설하지 않나, 수도 존속 기간이 고작 63년밖에 안 되지를 않나... 충청남도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고는 하지만 사방이 산줄기로 막혀서 교통로 개설도 상대적으로 어렵다. 보령선의 전신인 조치원-보령 철도는 공주 서쪽이 워낙 첩첩산중이라 일제가 진행하다가 때려쳤을 정도다. 소백산맥이나 태백산맥도 아니지만 결코 만만하게 볼 지역이 아니다. 정 안 되면 주거지야 어떻게 언덕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해도 산업시설 등의 일자리는 그게 안 된다. 당장 부산이나 대구 등의 대도시들이 점점 생산기능을 인근도시에 빼앗기고 소비도시로 변해가는 이유도 심각한 부지난 탓도 일정 부분은 있다.

5.3.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이후

세종특별자치시 문제 때문에 연기군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사실 이 문제는 공주시 주민으로서는 충청남도청을 다른 곳으로 뺏겨버린 탓에 다른 행정수도로서의 기능이 온다는 소식으로 일개 도시에서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였었다. 그런 이유로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완벽하게 발라버리게 된다.

현재는 세종특별자치시로 편입되어 장군면이 된 옛 장기면은 1970년대 후반 유신체제 시절 행정수도 후보지로 선정했던 곳이기도 하다. 개발계획 최종안까지 완성했으나, 1970년대 말 경제위기10.26 사태로 결국 백지화되었다. 지금의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보다 좀 더 공주시내에 인접한 곳인데다가 행정수도 시가지의 서쪽 지역(현 신관동 일대)이 공주시내와 연담되는 위치였기에, 행정수도 이전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공주시의 모습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당시 말단 실무자로 참여했던 김진애 의원의 포스팅. 박정희의 수도이전 계획과 현 행정도시의 입지 비교

세종특별자치시는 공주시민들로서는 마냥 웃을 수 있는 이득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출범이 수도권 인구 분산의 효과가 아닌 세종특별자치시가 망하느냐 아니면 인근 대전광역시, 청주시가 망하느냐를 결정하는 제로섬 게임으로 변질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대전광역시는 세종특별자치시로의 인구유출로 인하여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관계로 150만대 인구는 유지가 불가능해 보였고 실제로 2018년 들어서 149만으로 감소하였는데 인접 도시 중 인구가 제일 적은 공주시의 경우는 더욱 타격이 커서 상생 위기라는 기사도 나왔고, 통합 떡밥도 나왔으며, 도지사까지 개입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바로 옆 세종시에는 새 아파트, 새 시설이 즐비하고 도시의 평균연령이 전국에서 가장 낮기 때문에 기존에 공주에 사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유입인구가 적은 관계로 인구 감소는 불가피해보인다.

5.4. 유입원의 부족

공주시에 인구 증가를 위해서는 젊은 층의 유입이 필요한데, 공주대학교에 다니기 위해서 아닌 이상 공주시에 들어올만한 메리트가 전혀 없다. 우선 젊은 층이 먹고 살만한 마땅한 직장도없는 관계로 당장 공주대학교를 졸업해도 공주시에서 교사나 공무원이 되는게 아닌 이상 공주에 남아서 직장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직장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젊은 층이 쇼핑할 만한 곳이 없고, 대형마트도 없기 때문에 시장보다는 대형마트를 주로 선호하는 젋은층에 입장에서는 굳이 공주에 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한 서울이나 기타 수도권에 대한 교통도 버스뿐(물론 KTX도 있지만....)이기 때문에 자가용이 없는 사람은 불편하다.

5.5. 기타

공주는 다른 충청남도의 시군에 비해 유독 개발이 덜 된 모습이 눈에 띄는데 이게 다 개발만 하려 하면 향로가 나오고 무덤이 나오고 금관이 나온 터라 그렇다는 말이 있다. 인근의 세종시를 배경으로 한 식샤를 합시다 2에서도 이러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6. 교통

7. 산업

농업과 양잠‧낙농‧양돈 등의 농업이 성하다. 이 특산물이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정안면의 정안 밤이 등록되어 있다. 다만 많은 유적지가 있음에도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해 관광쪽으로는 큰 수익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11] 1년에 단 9일 정도밖에 열리지 않는 백제문화제에서만 간신히 체면치레를 할 정도.

게다가 장기면이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으로 편입되면서 지역에 얼마 안 되는 큰 공장 중 하나였던 남양유업 공주공장까지 함께 세종시로 편입되어버려서 안 그래도 안 좋은 공주시의 재정상황에 엎친 데 덮친 격인 상황이다.

단 아예 제조업이 전무한 것은 아닌데 유구읍에 웅진식품, 코웨이, 도레이 코리아(구 웅진캐미컬), 계룡면에는 CJ제일제당 등 대규모 공장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코웨이는 아예 공주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이들 상당수가 웅진그룹 자회사이거나 자회사였던 기업들로 이는 유구읍이 고향이였던 웅진그룹 창립자인 윤석금 회장의 영향이 컸다. 남양유업이 떠난 지금 사실상 공주대학교와 함깨 공주를 먹여살리는 원동력이다. 사실 단지 공주가 아니라 예산과 가까운 유구읍에 위치하고 있어서 공주시내에 그닥 파급이 크지 않을뿐... 그나마 공주시내에 가까운 곳이 월미동에 위치한 월미농공단지인데 GS리테일 물류센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소기업들이다.

2000년대 들어서 무려 5방향 고속도로망이 건설된 지금도 현실은 안습. 서산시백제 멸망 이래 가장 활기가 도는데... 하다못해 연기산업단지가 공주에 있는 어느 산업단지보다도 큰 실정이다.

7.1. 대학 관련

공주시의 주된 부가가치 창출은 단연 '원룸업'에서 이루어진다. 강북의 공주대학교를 중심으로는 수많은 원룸과 여러 상권이 발달해 있으며, 강남의 공주교육대학교를 중심으로도 수많은 원룸이 자리하고 있다. 원룸과 별개로 이들 두 대학교는 공주의 경제를 지지해주는 엄청난 기반으로, 2011년 두 대학교가 통폐합되어 세종시로 이전하려 하자 인근 상인들이 대학교 본부에 난입해서 총장과 면담을 하는 등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 특히, 공주교육대학교에 있는 강남 지역의 경우 총장을 면담한 상인들이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시청에도 난입하여 시장 면담을 요구하였고, 시장 면담이 불발되자 바로 옆에 있는 시의회 의장실에 들이닥쳐 시의회 의장과 면담을 하기도 하였다.

두 대학교의 재학생이 공주대는 1만여 명이고 공주교대는 2천여 명으로[12] 1인당 하루에 쓰는 금액을 최소 1만 원씩만 잡아도 일일 최소 1억 원의 돈이 공주시에 풀리는 것이다. 방학을 고려한다면 1년 동안 이 두 대학교로 하여금 공주에 풀리는 돈은 최소한 120억 원 정도인 것이다. 또 이러한 수입의 대부분은 시민들의 실질적인 소득으로 돌아가므로, 웬만한 기업체나 공장이 들어와 있는 것보다도 도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만큼 공주시의 경제적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는 반증이 된다. 공주대 정도 규모의 대학이라면 어느 도시가 되었건 간에 지역 상권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지만, 일부 타격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도시 경제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면 문제가 좀 심각하다. 하다못해 안성시도 이 정도로 대학 상권에 목숨 걸 정도는 아니다. 이러면 해당 주민들의 수입은 어느 정도 보장될지 모르지만 세금 걷어서 써야 하는 시청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 된다. 애초에 생산성이 제조업에 비해 낮은 업종이 서비스업인데, 그나마도 기업은 고사하고 해봐야 원룸업이나 식당 같은 저차원 영세 서비스업으로만 도배되니 충분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재정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대체로 비도시권 지역의 낙후된 인프라와 창업 또는 사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어떻게든 한푼이라도 남겨보고자 무리한 치킨게임을 하는 안일한 마인드를 가진 지역상인들의 시너지로 일어나는 가장 흔한 지역침체 현상이다. 가게를 꾸리고 장사를 하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가계와 지역 모두에 아무런 긍정적 소득도 주지 못하는 것.[13] 게다가 똑같은 1만 명이라고 해도 공장이나 기업 등 일자리로 인해 유입된 1만 명과 대학생 1만 명은 구매력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8. 관광

명승고적으로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14]백제의 여러 유적지가 있고, 대표적인 시설로는 국립공주박물관, 휴양지로는 계룡산국립공원 등이 있다.

불행히도 상술했듯이 관리소홀과 지자체의 무관심에 관광 산업으로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의 말에 의하면, '괜찮은 유적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적발굴과 관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문화적 관광도시로 발전하지 못한 도시' 라고 했다. 발로 한 발굴로 유명한 무령왕릉과 현재도 발굴이 진행 중인 공산성[15], 시가지에서 참 멀리도 떨어져있는 변두리의 국립공주박물관[16] 등, 유적지 관리 실태를 보면 맞는 말이지만 공주시에 거주하는 사람이 듣기에는 참 씁쓸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발굴과 관리의 문제인지, 공주시가 갖고 있는 문화자원의 한계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따져봐야한다. 흔히들 신라의 고도인 경주시와, 백제의 고도인 공주/부여를 비교하면서 공주를 깎아내린다. 그렇지만 경주하고 비교하기에 공주는 일단 역사적인 중심지였던 기간부터 시작해서 정부 및 학계 차원에서의 지원, 세간의 관심까지 워낙 차이가 많이 나는지라... 경주는 천년왕국 신라와 그 역사를 같이 한 도시였지만 공주는 위례성 함락 후 피난온 일종의 임시수도였으며 그 기간도 60년 남짓이었다.

게다가 대한민국 수립 시까지 남아있거나 일제에 의해 조사라도 된 유적의 절대량부터가 넘사벽이다. 유적지 발굴이나 관리가 잘 되었다고 다 관광도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애당초 일제가 경주에 집중적으로 발굴 및 조사를 한 이유도 경주에 남아있는 문화재와 유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공주와 부여는 상술했듯 수도였던 기간도 짧았고 무엇보다 백제 멸망 과정에서 나당연합군에 의한 약탈과 방화 피해를 심각하게 입었다. 반면, 경주는 신라 역사상 침략자에게 무너진 것이 후백제 견훤의 침공 1회 뿐이었고 그나마 그 시기도 짧았다. 신라가 고려에게 얌전히 항복한 바람에 경주는 정복군의 약탈을 면했고 이후로도 동경으로서 그 지위를 인정받았다. 경주가 파괴당한 것은 몽골 제국의 침공때까지는 가야하는데, 어차피 이 시기에는 한반도 전체가 몽골군에게 짓밟히고 있었고.(...)

한 마디로 애초부터 공주에 관광도시로 발전할 만큼의 괜찮은 유적지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라는 것이다. 부여처럼 국보급 석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익산처럼 넓직한 절터와 왕궁터, 멋진 석탑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 공산성도 연지 정도를 제외하면 성곽과 문루가 대부분 조선시대의 것이고, 송산리 고분군은 발굴 유물의 가치야 높지만 '적석총'도 아니고 고분 자체에 구경거리는 없기 때문.[17] 경주는 종합관광개발 이전부터 수많은 불상과 석탑이 남아있던 곳이었지만, 공주에는 그런게 전무하다. 공주에 석굴암이나 불국사같은 세계유산급 문화유산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백제시대 불상은커녕 석탑조차 없는 것이 공주의 현실이다. 경주나 부여에는 안압지나 궁남지 같은 크고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데, 공주에는 기껏해야 공산성 연지 같은 작은 연못밖에 없다. 그래도 백제에서 눈을 돌리면, 석장리 고분군이나 마곡사, 갑사, 동학사 등의 사찰, 충청감영 등의 관아시설이 있긴하다. 우금치와 고마나루도 있고... 그러나 딱히 역사도시의 위엄에 맞는 타이틀 유적은 아니다.

애초에 유홍준 교수가 공주시의 문화재 관리에 대해 비판했던 요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해결이 되었다. 예컨데 국립공주박물관의 경우, 위의 문단에서는 과거위치보다 접근성이 떨여졌다고 비판을 하는데, 오히려 송산리고분군과 충청감영공원, 공주한옥마을 등 문화재 밀집공간에 위치한 것으로 매우 탁월한 장소에 지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유홍준 교수가 가장 많이 비난했던 것이 '무령왕릉이 중요한 이유는 이 곳에서 발굴된 유적들 때문인데, 정작 이 유물들은 엉뚱한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국립공주박물관의 위치를 비판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무령왕릉 옆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유홍준의 주장을 긍정한다면 국립공주박물관의 지금의 위치는 매우 적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유적발굴도 점진적으로 이뤄지면서, 공산성에서 '백제시대 목곽고'가 발견되기도 했고, 백제시대 관청건물지와 백제 사다리가 발굴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딱히 관광도시로 발전하는데 힘을 얻을 법한 발굴성과는 아니다. 그렇지만 최근에 대통사터가 발굴된 것은 고무적인 성과라 볼 수 있겠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공주시가 세계적인 역사도시로 도약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관리의 문제가 아닌, 그냥 공주시가 갖고 있는 문화자원의 한계일 수도 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공주에 볼 게 없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관광도시로 발전한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백제에서 눈을 돌리면, 석장리 고분군이나 마곡사, 갑사, 동학사 등의 사찰, 충청감영 등의 관아시설이 있다. 역사적 의미와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우금치와 고마나루도 있고... 특히 충청감영공원의 경우는, 인근의 송산리고분군, 한옥마을과의 연계관광이 가능하다. 마곡사나 갑사, 동학사는 보물급 문화재를 다수 보유한 사찰이기도 하다. 지당자연사박물관이나 충청남도 역사박물관도 관람하기에 좋은 박물관이다.

9. 상권

공주시 상권은 전적으로 공주대학교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공주대학교 대학로는 타 지역의 다른 대학 대학로에 비하여 높은 물가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저렴한 대학로를 생각하고 가면 큰코 다칠 수 있다.

금강을 기준으로 남서(아래)쪽의 구 시내는 롯데리아가 패스트푸드 상권을 독점하고 있다. 또한, 이 롯데리아는 패스트푸드를 넘어 시민들의 전형적인 외식 장소로도 자리잡았다. 이러한 롯데리아의 위상은 중구난방으로 나 있는 강남의 교통망에서 접근성이 매우 좋은 입지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롯데리아가 있는 장소는 공주 시내 전 지역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이다. 반면, 강북의 신관 쪽은 계획 도시로서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고 도로망도 잘 갖추어져 있어 이러한 입지 조건이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해 딱히 한 업체나 한 업종이 독점하는 형태를 보이지 않고 있다.

참고로, 2001년 말 중동에 맥도날드가 입점하였으나 롯데리아 햄버거에 익숙한 사람들의 외면으로 인해서인지 1년여 만에 롯데리아와의 경쟁에서 패퇴하여 다시 롯데리아가 독점 중이다. 공주 맥도날드 햄버거에서 이물질이 발견되어 망했다는 소문이 있다 카더라 2010년 하반기, 신관동에서 롯데리아를 유일하게 견제하던 패스트푸드점, 파파이스문을 닫았다. 대신, 롯데리아 근처에 맘스터치가 있다.

2010년에는 시내에 던킨도너츠가 입점, 대학교 근방에 까페가 성업하면서 엔제리너스, 까페베네, 탐앤탐스 등이 입점했다. 하지만 배산임수의 지형의 이점을 많이 본다.

공주 요식업 중 가장 성업하는 것은 카페로, 투썸플레이스의 대단한 성업에 이어 마침내 스타벅스가 입점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로써 공주의 카페 산업은 정점을 맞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신관초등학교 주변 4차로 이상의 도로와 연결도로 등을 다니다보면 다 보인다. 물론 대학로 방면이 해당되는 거지, 아파트 단지나 법원 일대는 없다.

고등학생들을 타겟으로 한 상권은 강남 중동 부근, 공주고등학교에서 시작해서 웅진로를 따라 쭉 뻗어있는 거리에 대부분 형성되어 있다. 이곳은 공주사대부고, 공주고, 영명고 등 공주 내 주요 인문계 고등학교가 사이좋게 거의 정삼각형의 구도로 마주보고 있는 곳이고, 도로가 중구난방으로 뻗어있는 강남 중에서그 그나마 직선형으로 뻗어있는 큰 도로이기 때문에 큰 가게들이 들어서기 쉽기 때문이다. 이 도로를 중심으로 값싸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점이 여럿 있고, 학생들이 자주 찾는 서점, PC방, 노래방, 약국 등의 가게도 밀집해 있는 편.

농담 삼아서 공주에서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세 군데가 있는데 그게 바로 사진관, 미용실, 병원이라고 한다.

우선 사진관의 경우 강북 기준으로 단 2군데이며, 학교 후문 근처가 아닌 다른 사진관의 경우 임용고시를 치는 사범대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임용고시 응시용으로 원서 사진을 찍고, 임용고시 원서를 넣고 보니 원서 사진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연락이 올 정도로 일처리가 미숙하다.[18] 그래서 사범대생들은 보통 학교 후문 근처의 사진관만 이용하거나, 대전 혹은 출신 지역에서 찍어온다.

미용실도 상권인 대학교 밀집지역 외에는 매우 적다. 터미널 인근의 미용실도 대학 근처의 다숲아파트 후문 쪽에 위치한 미용실 하나뿐이다.

또한 병원이 극심하게 적은데, 강북에는 유일하게 응급실을 운영하는 공주현대병원이 있는데, 이 건물은 과거 예식장과 뷔폐로 활용되던 곳이다. 그래서 의외로 건물 자체는 오래된 곳이며, 강남 역시 유일하게 응급실을 운영하는 공주의료원이 있다. 하지만 24시간 응급실은 공주의료원만 유일한데, 현대병원은 22시에 닫는다. 야간에 긴급히 응급실을 찾아야 하는 경우 공주의료원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공주의료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질환은 응급처치 정도만 끝내고 인근 대도시의 대학병원으로 이송한다. 공주에는 종합병원이나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은 별로 없고 외과나 치과, 피부과 같은 전문병원이 많다.

9.1. 전통시장

산성동에 공주산성시장과 유구읍에 유구전통시장이 있다. 공주산성시장은 그닥 특색이라고 할 것 없는 일반적인 전통시장인 것 처럼 보이지만 시장 곳곳에 유명한 맛집들이 숨어 있다.(예: 잔치국수로 유명한 청양분식) 그리고 매년 야시장이 여기서 열리고 있으니 가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9.2. 대형마트

그런 거 없다. 대형 마트가 들어서는 것을 제한하는 규례가 있었기 때문이 크다. 인구 규모 문제라는 의견도 있으나 공주시보다 인구 규모가 작은 태백시삼척시, 심지어 조치원읍에도 대형 마트가 있으니 별 설득력은 없다. 애초에 전국 시 중에서 대형마트가 없는 시는 공주시 뿐이다.

다만 이 기사에 따르면 이러한 상황에도 변화가 생길 듯 하다. 바로 월송동에 들어서는 복합쇼핑센터 계획에 대형마트가 들어가 있으며 시에서 이 계획을 승인한 것. 예전 같았으면 어차피 주변에 대도시가 없어서 조치원, 대전이나 천안까지 가지 않는 한 답이 없으니 어느 정도 정책이 들어먹혔기 때문에 분명 시에서 반려를 했을 것이다. 여태 삽을 못뜨고 있는건 엄청난 함정이다. 하지만 이제는 신관동에서 차 타고 20분 거리에 이마트와 홈플러스[19], 그리고 심지어 코스트코까지 생겼으니 끝까지 대형마트를 건설하지 않아서 얻을 수 있는 결과는 가뜩이나 심각한 세종으로의 인구 및 시부(市富) 유출일 것이다.

대형마트는 아니지만, 2018년 10월 25일부로 노브랜드 전문점이 신관파출소 옆 부분에 생기게 되었다. GS슈퍼마켓처럼 노리고 입점했을 수도 있겠지만, 신세계 계열사가 입점한 것은 분명하다.

10. 생활문화

10.1. 교육

대학교는 초등교사를 배출하는 공주교육대학교, 사범대학으로 유명한 공주대학교가 있다.

고등학교는 특수목적 고등학교인 충남과학고등학교자율형 사립고[20]한일고등학교가 있다. 한 학년이 160명 정도인 비교적 작은 학교이며,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교복이 없이 전교생이 사복 생활을 한다. 2000년대 초반에 거창고 등과 함께 농어촌 자율학교로 선정되었으며 농어촌특별전형의 혜택을 받아오던 학교였다. 엄밀히 따지면 이명박정부 때 대두되었던 자율형사립고와는 다른 학교분류에 속하며, 기존에 존재하던 상산고, 해운대고, 민사고 등이 자립형사립고에서 자율형사립고로 전환된 것과도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종종 언론에 나오는 학교 분석자료 등에는 자사고가 아닌 일반고로 분류되고 있다.농어촌특별전형의 브로커 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공주사대부고) 거기에 공주고등학교가 소재.

헌데 문제는 정작 공주시 자체에서 위의 학교들에 들어가는 진학률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 충남과학고 같은 경우 몇 되지도 않는 중학교에서 1년에 2~3명 가기 일쑤이다. 한술 더 떠 한일고등학교는 역대 공주 지역에서 진학한 학생 수가 손으로 꼽힐 정도이다. 그나마 공주 학생들이 좀 가던 공주사대부고도 모집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공주시 중학생의 진학자 수가 현격히 떨어졌다. 아무래도 전국단위로 뽑는 학교들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다. 오히려 공주시 학생들을 편중해서 뽑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 공주시 출신 학생들이 주로 진학하는 학교는 인문계의 경우 공주고등학교, 공주영명고등학교, 공주여자고등학교, 공주금성여자고등학교가 있고 전문계 고등학교의 경우 공주생명과학고등학교(구 농고), 공주정보고등학교(구 상고)가 있다. 그리고 특성화고인 공주마이스터고등학교(구 공주공업고)가 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남학교, 여학교가 깔끔하게 2대2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또한 공주고는 천안북일고나 대전고만큼은 아니지만 충청팜의 야구 명문으로 손꼽히며 텍사스 레전드 박찬호, 시카고 레전드 안승민, 조동찬, 조동화, 오재필, 김광림, 신경식, 김경문 등의 프로야구 선수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금강을 기준으로 구시가지인 강남에 봉황중학교, 생명과학고등학교, 정보고등학교를 제외한 중/고등학교가 몰려있는 반면 신관동을 비롯한 강북쪽엔 아파트 단지만 조성되고 중,고등학교는 설립되지 않은 탓에 매일 아침 출근 및 등교가 매우 빡세다. 금강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다리 중 가장 넓은 다리인 백제큰다리는 약간 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대개 공주대교와 금강교 두 곳을 이용하게 되는데, 두 다리를 합해도 3차선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자가용과 버스가 다리를 꽉꽉 메운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엔 자식들 걱정에 자가용을 끌고 등교시켜주는 부모님들이 늘어나 어지간한 도심 못지않게 자동차들이 정체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0.2. 치안

수십 년 전에는 연쇄살인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지금은 특기할 만한 사건이나 사고가 별로 없는 편.

11. 정치

19대 대선 공주시 개표 결과
정당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격차 투표율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25,036
(37.58%)
18,449
(27.69%)
15,814
(23.73%)
2,948
(4.42%)
3,852
(5.78%)
+ 6,587
(△9.89)
7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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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격차 투표율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1위/2위) (선거인/표수)
구 공주시
득표율 40.82% 25.09% 22.63% 4.70% 6.15% △15.73 70.78%
중학동[21] 36.24%28.54%26.11%4.49%4.13%△7.7067.24
웅진동[22] 35.01%30.20%25.04%4.01%5.11%△4.8169.76
금학동[23] 41.19%24.43%22.23%4.65%6.73%△16.76 71.42
옥룡동[24] 36.54%29.12%24.50%3.89%5.14%△7.4266.87
신관동[25] 44.38%22.06%20.37%5.52%7.17%△22.32 72.12
월송동[26] 45.87%20.74%21.22%4.65%6.95%△24.65 75.26
구 공주군
득표율 30.45% 34.52% 26.22% 3.33% 4.46% ▼4.07 67.15%
유구읍 27.01%38.49%26.22%2.87%4.54%▼11.4866.39
이인면 31.27%34.22%26.07%3.85%3.65%▼2.9565.50
탄천면 29.41%33.31%27.88%2.66%5.43%▼3.9065.13
계룡면 29.75%35.13%26.76%4.07%3.50%▼5.3867.20
반포면 33.12%32.54%23.74%4.69%4.26%△0.5869.19
의당면 35.80%26.85%27.46%3.68%5.47%△8.3467.95
정안면 27.62%37.91%26.48%2.95%4.01%▼10.2967.07
우성면 32.55%33.95%24.92%2.87%4.82%▼1.4067.60
사곡면 31.12%35.51%25.20%2.65%4.45%▼4.3967.91
신풍면 27.84%35.27%28.12%2.77%4.77%▼7.4367.37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격차
거소·선상투표 35.75%24.02%29.05%6.70%1.68%△6.70
관외사전투표 48.06%15.70%19.90%6.99%8.70%△28.16
재외투표 57.91%9.43%16.84%5.05%10.44%△41.07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격차 투표율
공주·부여·청양[27] 34.35%30.20%24.56%4.34%5.61%△4.1571.56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격차 투표율
동 지역[28] 40.82%25.09%22.63%4.70%6.15%△15.73 70.78
읍·면 지역[29] 30.45%34.52%26.22%3.33%4.46%▼4.076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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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지선 공주시 개표 결과
충청남도지사 선거
정당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격차 투표율
후보 양승조 이인제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32,526
(59.02%)
21,453
(38.92%)
+ 11,073
(△20.09)
61.07%
구 공주시
득표율 62.66% 35.77% △26.90 58.01%
중학동[30] 56.01% 42.36% △13.64 56.29
웅진동[31] 58.25% 40.20% △18.05 58.61
금학동[32] 63.12% 34.99% △28.13 57.74
옥룡동[33] 57.89% 40.61% △17.27 56.03
신관동[34] 66.12% 32.36% △33.76 57.42
월송동[35] 67.61% 30.85% △36.76 61.52
구 공주군
득표율 50.37% 46.88% △3.49 57.45%
유구읍 45.40% 52.36% ▼6.96 56.41
이인면 49.54% 47.43% △2.11 55.95
탄천면 47.62% 48.50% ▼0.88 56.77
계룡면 48.50% 48.88% ▼0.38 59.99
반포면 53.01% 44.46% △8.55 53.20
의당면 60.81% 36.83% △23.99 56.39
정안면 49.82% 47.12% △2.70 56.09
우성면 52.93% 43.95% △8.98 62.19
사곡면 51.14% 46.01% △5.14 60.84
신풍면 45.43% 52.03% ▼6.60 56.21
후보 양승조 이인제 격차
거소·선상투표 55.76% 42.30% △13.46
관외사전투표 72.96% 25.40% △47.56
후보 양승조 이인제 (1위/2위) (선거인/표수)
공주·부여·청양[36] 54.10% 43.43% △10.67 62.14
후보 양승조 이인제 (1위/2위) (선거인/표수)
동 지역[37] 62.66% 35.77% △26.90 58.01
읍·면 지역[38] 50.37% 46.88% △3.49 57.45
공주시장 선거
정당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격차 투표율
후보 김정섭 오시덕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31,387
(56.68%)
23,984
(43.31%)
+ 7,403
(△13.37)
61.07%

공주시-공주군 공주시 공주시-연기군 공주시 공주시-
부여군-청양군
13대 14대 15대 16대 17대 18대 19대 20대
윤재기/초선
신민주공화당
이상재/재선
무소속
정석모/6선
자유민주연합
정진석/초선
자유민주연합
오시덕/초선[39]
열린우리당
심대평/재선
자유선진당
박수현/초선
민주통합당
정진석/4선
새누리당
정진석/재선[40]
무소속


공주시는 기본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정세에 따라 다양한 정당에 지지를 몰아주는 스윙보터의 성향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제3당이 있을 때에는 제3당인 신민주공화당 - 자유민주연합 - 자유선진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했고, DJP연합 및 수도이전 공약으로 충청권을 공략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는 민주당계 정당을 지지하는 성격이 강했다. 또한 공주를 기반으로 한 거물 의원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인구에 비해 정치적 영향력이 강했던 특징이 있다. 쉬운 예로 과거에 정석모가 6선을 한 지역이었으며, 은퇴 후 아들에게 지역구를 물려주었는데 그 인물이 현 국회의원인 정진석이다. 또한 18대에는 충청권의 맹주를 꿈꾸던 심대평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심대평은 19대 선거에서 세종시에 출마하였고 이해찬에게 발린다.(...) 그리고 무주공산이 된 공주시는 박수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다시 민주당 계열 당선자가 나오게 되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공주시, 청양군, 부여군 3개 시군이 인구 부족에 의해 하나의 선거구로 합병되었다. 그리고 새누리당으로 출마한 정진석 후보가 현임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후보를 48.1%:45%, 3.1%차로 간신히 누르고 지역구를 탈환하게 된다. 공주에선 박수현 후보가 3천여표 앞섰으나, 부여와 청양에서 각각 3~4천여 표 부족해서 정진석 당선자가 역전한 것. 참고로 정진석 의원은 18대 당시 한나라당 소속으로 비례대표 의원을 역임하였기에 20대에 당선되면서 총 4선 의원이 되었다.[41]

대선에서는 민주화가 이루어진 13대 대선 이후로 꾸준히 당선인을 뽑아주는 스윙보터의 성향을 보였다. 그러나 단 두 번의 예외가 있었는데, 민주화 직후 처음으로 치뤄진 13대 대선 때 충청도를 기반으로 했던 김종필 전 총재에게 58%의 득표율을 몰아주었고, 17대 대선 때에는 양당 모두에게 강한 실망감을 보이며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이회창에게 39.5%의 표를 몰아주었다. 나머지 대선인 14대 김영삼 (40%), 15대 김대중 (48%), 16대 노무현 (55%), 18대 박근혜 (57%), 19대 문재인 (38%) 후보들이 각각 1위를 차지했고, 공교롭게도 거제도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만 전국 평균보다 낮은 득표율을 얻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치뤄진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37.6%의 득표율로 2위 홍준표를 약 10% 차이로 따돌렸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공주 기반인 박수현 전 의원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될 만큼 지역에서 지지 기반이 탄탄했으나, 정작 대선에서는 40% 이하로 예상치를 밑도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러한 이유로는 대선 경선 당시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대한 막강한 지지세를 보내줬던 것에 있다. 두 예비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치열하게 맞붙으며 두 후보 지지자들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졌으며, 이 때문에 문재인이 최종 후보로 선출되었음에도 컨벤션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하고 기존에 안희정을 지지하던 유권자 상당수가 홍준표, 안철수 등 다른 후보로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주시의 경우 충청권 안에서도 지역주의가 강한 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충남 주변지역보다 이런 경향이 강했으리라 짐작된다.

세부적으로는 도농간의 격차가 매우 심했다. 공주시내에서는 6개동 전역과, 신시가지와 가까워 아파트단지가 조성된 의당면에서 문재인 후보가 승리를 거둔 반면, 대전 유성과 공주시내, 세종시내의 가운데에 있는 반포면은 간신히 문재인이 1% 격차로 이겼으며, 그 외의 시골 지역[42]은 홍준표가 이겼다. 특히 공주대학교를 낀 신시가지 지역인 신관동, 월송동, 공주교육대학교를 낀 금학동에서 문재인 후보는 40%를 훌쩍 넘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들 대학교의 재학생 대부분이 20대 젊은층 외지인이므로, 대학생 유권자들이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을 크게 끌어올렸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작 공주시의 원주민들이 문재인 후보에 대해 큰 지지를 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홍준표에게 막강한 지지를 보내줬냐 하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홍준표가 승리한 시골 지역 중 그 어느 곳에서도 40%를 넘은 곳이 없었다. 최고 득표율을 기록한 유구읍도 38.5%에 그쳤고, 다른 충남의 시골 지역보다 세 후보간에 적은 표차를 보였다[43]. 반면에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가 40%를 넘은 신관동, 월송동, 금학동에서만 평균치에 미달했고 나머지 모든 곳에서 20%대 중반~후반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를 보면 기존의 양당 체제에 대한 반감으로 대안세력인 제3당에 표를 주는 충청권 특유의 민심을 어느 정도 간직한 것으로 보인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후보가 앞선 지역은 다음과 같다.


공주시 : 문재인 25,036(37.58%) > 홍준표 18,449(27.69%) > 안철수 15,814(23.73%)

1위 - 문재인 : 월송동(45.9%), 신관동(44.4%), 금학동(41.2%), 옥룡동(36.5%), 중학동(36.2%), 의당면(35.8%), 웅진동(35.0%), 반포면(33.1%), 거소/선상투표(35.8%), 관외사전투표(48.1%), 재외투표(57.9%) (6개동 + 2개면 + 관외투표)
1위 - 홍준표 : 유구읍 (38.5%), 정안면(37.9%), 사곡면(35.5%), 신풍면(35.3%), 계룡면(35.1%), 이인면(34.2%), 우성면(34.0%), 탄천면 (33.3%) (1개읍 + 7개면)
1위 - 안철수 : 없음

2위 - 문재인 : 유구읍, 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정안면, 우성면, 사곡면 (1개읍 + 6개면)
2위 - 홍준표 : 중학동, 웅진동, 금학동, 옥룡동, 신관동, 반포면 (5개동 + 1개면)
2위 - 안철수 : 월송동, 의당면, 신풍면, 관외사전투표, 재외투표 (1개동 + 2개면 + 관외투표)

12. 기타

충청남도 지역의 향토방위를 담당하는 육군 제32보병사단이 위치한 곳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지역 일대가 세종특별자치시로 합쳐졌다.

분지지형과 금강의 영향인지 확실친 않으나 가끔씩 미스트(영화)에 버금가는 짙은 안개가 낀다.

13. 출신 인물

14. 관련 문서



[1] 2000년대 초에 유행하던 영어를 이용한 브랜드를 제작하여 사용했으나 최근 로고를 변경하면서 함께 변경[2] 효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효도르 아니다[3] 이름은 고마와 공주(...). 곰 캐릭터가 고마, 조그만 여자애 캐릭터가 공주.[4] 편입과 함께 장군면으로 개칭. 편입 후 잔여지역은 송선동으로 개편[5]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암컷 곰이 '이제 자식들까지 있으니 좀 자유롭게 둬도 도망가지 않겠지' 라고 생각해서 입구를 막지 않았다고도 한다.[6] 대한민국의 재벌그룹인 웅진그룹이 여기서 따와서 이름을 지었다.[7] 어린이에게는 차마 저걸 그대로 표현하기 뭐했는지 여우처럼 둔갑해서 같이 살다가 본 모습이 들켜서 남자가 도망갔고 그 남자를 쫓다가 강에 빠져 죽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시간이 지난 요새는 아동용에도 곰나루 원전 내용 그대로 기술하는 경향이 많아졌다.[8] 이 시기 최대의 난이었던 김헌창의 난이 바로 웅주를 중심으로 일어났다.[9] 삼국시대에는 우술(雨述)이라고도 하였다. '비수리' 정도로 발음되었을 동일한 지명을 한자로 다르게 적은 것으로 추측된다.[10] 심지어 두 읍을 합쳐 시로 승격시켰는데도 말이다! 나주읍성이 있던 나주읍(2만 5천여명), 항구가 있었던 영산포읍(1만 2천여 명)을 합하여 금성시(이후 나주시로 개칭)로 승격시켰는데, 그만큼 쇠퇴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는 증거이다. 1995년 도농통합 당시만 해도 5만 명 정도였으나, 수도권 및 광주, 목포, 등 큰 도시들로의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면서 이미 2000년대 중반에 4만 명대가 무너졌다. 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추가로 인구가 유출될 것인지, 아니면 혁신도시의 인프라를 등에 업고 반전이 일어날 지는 지켜볼 일이다.[11] 특히 이웃한 부여와 비교하면 공주는 수도로서의 역사는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성이나 무령왕릉 등 쓸만한 유적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관광지로서의 기능은 그게 그거라....[12] 실제로도 공주교대의 학생수는 학부생 1,500명에 대학원생 400명 수준이니까 동일하다.[13] 이와 같은 비슷한 현상은 특히 군부대가 밀집한 경기 강원 북부에서 가장 심각하게 드러난다.[14] 정확히는 송산리고분군 중 하나이다.[15] 공산성 발굴은 1980년부터 시작됐으며, 현재도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진행 중. 최근 화제가 된 백제의 옻칠된 갑옷이 이 과정에서 발견되었다.[16] 거기다 박물관과 공주시내를 오가는 시내버스(108번)는 평일60분/주말120분(!!!) 간격이다. 본래는 강남의 비교적 시내에 있었으나, 이전시 멀리 가버렸다. 그나마 배차간격이 짧은 101번이나 125번을 타고 와도 되는데... 고개를 넘어야한다. 거리는 약 600m. 예전에 국립공주박물관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충남역사박물관이 들어서 있다.[17] 그나마 예전에는 무령왕릉을 개방했지만 관광객 개방으로 윈한 손상 및 고분 붕괴 위험으로 1997년부터 폐쇄했다.[18] 어차피 여권 규격의 사진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냥 여권 사진 찍으러 왔다고 하는게 훨씬 낫다.[19] 심지어 여기는 시내 지역 한정으로 공주시까지 배달을 해준다.[20] 자립형 사립고가 생겨나기 이전에 이미 자율학교라는 분류로 인가를 받았고 2010년에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 언뜻 그게 그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다르다. 기사 참조.[21] 중학동 · 봉황동 · 반죽동 · 중동을 관할하며, 공주시청 및 공주교육대학교가 있는 공주의 중심지[22] 교동 · 산성동 · 금성동 · 웅진동을 관할하며, 공산성, 무령왕릉 및 산성시장, 공주시내버스터미널이 있는 공주의 중심지[23] 금학동 · 주미동 · 오곡동 · 태봉동 · 봉정동 · 검상동을 관할하는 동네[24] 옥룡동 · 소학동 · 신기동 · 상왕동을 관할하는 동네[25] 공주대학교공주터미널이 있는 공주의 신도심[26] 신관동을 제외한 공주시 강북 지역. 충남 연구원/연수원이 있는 동네[27] 지역구 국회의원 : 정진석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4선)[28] 중학동, 웅진동, 금학동, 옥룡동, 신관동, 월송동 (구 공주시)[29] 유구읍, 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반포면, 의당면, 정안면,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구 공주군)[30] 중학동 · 봉황동 · 반죽동 · 중동을 관할하며, 공주시청 및 공주교육대학교가 있는 공주의 중심지[31] 교동 · 산성동 · 금성동 · 웅진동을 관할하며, 공산성, 무령왕릉 및 산성시장, 공주시내버스터미널이 있는 공주의 중심지[32] 금학동 · 주미동 · 오곡동 · 태봉동 · 봉정동 · 검상동을 관할하는 동네[33] 옥룡동 · 소학동 · 신기동 · 상왕동을 관할하는 동네[34] 공주대학교공주터미널이 있는 공주의 신도심[35] 신관동을 제외한 공주시 강북 지역. 충남 연구원/연수원이 있는 동네[36] 지역구 국회의원 : 정진석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4선)[37] 중학동, 웅진동, 금학동, 옥룡동, 신관동, 월송동 (구 공주시)[38] 유구읍, 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반포면, 의당면, 정안면,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구 공주군)[39] 05.1.27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40] 05.4.30 재보궐선거[41] 2012년 19대 총선 땐 서울 중구 선거구로 나가 잠시 수도권 진출을 꿈꾸기도 했으나 장렬히 낙선했고(...), 2014년엔 충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토론회에서의 뻘짓(...) 끝에 안희정 도지사에게 패하며 연이은 낙선으로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그러다 4선이 된 2016년엔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당선되며 인지도를 넓히게 된다.[42] 유구읍, 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정안면,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43] 이것은 충남 서해안권 시골 단위와 비교하면 격차가 더 두드러진다. 충남 서해안권의 면 단위에서는 기본적으로 40% 이상의 유권자가 홍준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즉 공주 주민들의 자유한국당 홍준표 지지세는 근처의 다른 지역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것을 뜻한다.[44] 정확한 출신지는 인천광역시로, 초&중학교는 대구옥산초등학교와 부산 동성중 등 대구광역시부산광역시에서 다녔다가 고교부터 이곳 공주의 공주고를 다녔다. 분류:인천광역시 출신 인물 문서에도 김경문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45] 정확한 출생지는 대전으로 초중학교는 유성초, 갈마중 등 대전에서 다녔다가 고교부터 이 곳 공주의 금성여고를 다녔다. 대전광역시 문서에도 박세리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46] 모두의 유채꽃 10화 소개에서 밝혀졌다.[47] 기업명을 공주의 옛 지명인 웅진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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