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08 21:35:50

황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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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황재규(黃裁規)
생년월일 1986년 4월 16일 ([age(1986-04-16)]세)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수유초-청원중-청원고-성균관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9년 신인드래프트 2차지명 5라운드
소속팀 한화 이글스(2009~2016)
한화 이글스 등번호 58번
장재훈(2012) 황재규(2013~2014) 노수광(2015~ )
한화 이글스 등번호 18번
최영환(2014) 황재규(2015) 허도환(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80번
이양기(2015) 황재규(2016) -

1. 소개2. 선수 경력
2.1. 2009 시즌2.2. 2010 시즌2.3. 2013 시즌2.4. 2014 시즌2.5. 2015 시즌2.6. 2016 시즌
3. 연도별 성적4. 트리비아

1. 소개

한화 이글스 소속의 투수.

175cm라는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145km/h를 넘나드는 속구를 구사하여 동기인 허유강과 함게 성균관대의 에이스로 주목받았고, 제 4회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 국가 대표로도 참가한 전적이 있다. 하지만 대학시절 부상을 당하여 구속이 감소되었으며, 눈물나는 재활을 통해 재기를 했으나 옛 구속을 회복하진 못했다.

키우라는 투수는 키우지 않고 있던 투수 다 써먹은 뒤 즉전감 투수가 필요했던 김인식 감독의 어명에 의해 구본범, 허유강, 박성호와 함께 한화에 지명되었으며[1][2] 이 당시엔 위의 동기들에 비해 체구도 작고 해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절친 허유강이 두산전에서 3연속 몸에 맞는 볼을 내주며 무너져 2군을 갔고 이 때 황재규가 올라오게 되었다.

2. 선수 경력

2.1. 2009 시즌

2009년 4월 17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중간계투로 첫 등판하였고, 5월 8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하여 3⅔이닝 6피안타 4실점하여 유원상김혁민만 보면서 좌절해있던 팬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었으나, 불펜에서 노예로 뛰던 양훈이 한 달 동안의 집중적이고 살인적인 혹사를 이기지 못하고 한 달만에 스터프를 잃어버리고, 다시 예전의 똥볼 투수가 되자 그 대신에 불펜 노예로 등판하기 시작, 새로운 노예가 되어 철저하게 굴려졌다. 그리고 양훈과 마찬가지로 노예로 굴려지다 퍼지고 말았고, 황재규 이후의 노예는 성균관대 동기였던 허유강이 이어 받았다.

2009년 최종적인 성적은 49경기 72이닝 3패 2홀드 ERA 4.63 WHIP 1.53이었다.

2.2. 2010 시즌

교육리그와 시범경기 때 부진하여 혹시 2009년의 혹사로 부진한 게 아니냐 라고 우려했는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2010년 시즌 초반 투수가 워낙에 없어서 잠시 1군에 올라와서 409 대첩 당시에도 불펜으로 올라오기도 하는 등 잠시 자리를 잡았었지만 결국 곧 2군으로 내려갔다. 이 409 대첩에서 던지라는 공은 안 던지고 15개의 공을 던질동안 견제구만 11개를 던지는 미칠 듯한 견제구 퍼레이드를 벌이면서 '견제규'라는 별명을 얻었다.

2군에서 올스타전에 출장하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활약했지만 결국 두 번다시 1군에 콜업되지 못한채 시즌을 종료했고, 2010년 최종적인 성적은 9경기 9이닝 ERA 10.00 WHIP 2.67이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자 공익으로 입대하게 된다.

유원상, 김혁민과는 달리 배짱도 있고 제구도 안정되어서 준수한 투수로 활약할 수 있었으나 감독 잘못 만나는 바람에 망했어요.

2.3. 2013 시즌

공익근무 소집해제 후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는데, 5월 4일자로 1군에 콜업되어 패전처리용 계투로 등판하기 시작했다. 5월 7일 NC 다이노스전에서 8회말 등판해 공 5개로 이닝을 마무리지었는데, 9회 한화가 기적의 5득점에 성공하는 덕분에 프로 데뷔 첫승을 거두었다!

살을 상당히 찌워서 돌아왔는데, 그에 비해 스터프의 변화는 미미한 수준이다. 여전히 140km 안팎의 속구를 던지지만, 제구도 준수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영안실이 된 한화 2군에서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어딘데

1군에서의 성적도 나쁘지 않고 2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상하게 1군으로 콜업이 되지않아 팬들이 의아하게 여겼으나, 7월에 1군 엔트리에 등록. 그러나 분명 엔트리에 이름은 있는데 이상하게(...) 마운드에 자주 안 올라온다. 패전처리 상황에서도 이따금이나 올라올 정도. 팀이 하도 맨날 져서 그렇다

9월 8일 KIA를 상대로 4년만에 선발기회를 가졌으나 2이닝 4실점으로 조기강판. 팀이 9회에 역전승을 거둬서 패전은 기록하지 않았다.

2.4. 2014 시즌

5월 13일 삼성전에 처음 1군에 모습을 드러냈다. 1이닝을 던져 1실점을 하고 내려갔다. 다음날에도 삼성전에 1⅔이닝을 던져 1실점.

잠시 쉬었다가 17일 SK전에 양팀이 4:4로 팽팽히 맞선 연장 11회 등판해 11회를 삼자범퇴로 무난히 막고, 12회도 투아웃까지는 잘 잡아서 한화팬들을 설레이게 만들었으나, 이후 갑자기 무너지면서 안타와 볼넷을 연이어 내주고 조동화의 기습번트를 막으려다 몸개그까지 보여주었다(...). 마운드를 넘겨받은 정재원의 분식까지 합쳐 4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5월 21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5차전에서 이틀 연속 클러치 오심으로 김응룡감독이 선수단 철수를 지시하고 퇴장당한 후 정범모의 시즌 1호 솔로포와 김태균의 만루홈런으로 9:4로 크게 앞선 9회 무사에서, 윤규진이 투수 강습타구에 맞고 부상당한 후 마운드에 급히 올랐다. 문장이 길어보이지만 대첩급 경기를 더 짧게 요약할 수가 없다 이후 130근처의 엄청난 속구와 신촌홈런왕 1번 레인 배팅볼 기계 수준의 구위를 선보이며 신나게 난타당했다. 아무리 준비를 못하고 올라왔다고 해도 1군에서 통할 구위가 맞을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드는 상황.

다음 날 넥센전에서 팀이 16:2로 크게 앞선 탓에 전날 사회인 야구 급 구위를 자랑했음에도 불구하고 9회 등판했다. 전혀 부담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맘 편히 던진 끝에 1실점으로 경기를 끝냈다.

이후 24일에 말소되었다. 3일 연투를 한 상태라 휴식차 말소시기고 복귀시킬 계획이라 한다.

2.5. 2015 시즌

시범경기 이후 임의탈퇴 공시된 게 양훈이성열, 허도환 트레이드를 통해 알려졌다. 원래 정규 시즌 시작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화는 등록선수 65명 정원이 모두 찬 상태라서 2:1 트레이드로 인해 등록선수 인원을 초과하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트레이드에 앞서 황재규가 임의탈퇴 공시되면서 실제로는 등록선수가 64명이었기에 트레이드에 문제가 없었다. 무슨 사고라도 쳤는지, 아니면 부상 등으로 인한 편법 보류선수 늘리기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 구단 관계자는 개인 사정이라고 언급하긴 하나...

2.6. 2016 시즌

시즌 중 임의탈퇴가 풀렸다. 7월 23일 자로 2군에 등판하며 복귀함을 알렸다. 기사에 따르면 그 동안 재활했다고 한다.

첫 경기를 제외하고 12⅓이닝 1실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고, 8월 6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정식 선수로 승격되었으며 황선일웨이버 공시되었다.

하지만 2⅔이닝 동안 1피홈런을 포함하여 5안타 4실점으로 썩 좋지 못했다. ERA는 13.50.

1군에 올라온 후 패전조로 등판하다가 10일 삼성전에서 9:4로 크게 뒤진 경기에 9회말 정재원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첫 타자 최선호를 4구만에 삼진으로 잡아내며 무난히 끝나나 싶었으나 이후 7명의 타자를 상대하며 36구를 더 던질 때 실책성 플레이들이 겹치는 불운 끝에 1이닝 2볼넷 1삼진 7실점(6자책점)이라는 최악의 피칭을 하며 서산행 버스를 예고하였다. 참고로 10일 선발 심수창이 2이닝 30구를 던진 데 반해 송창식, 정대훈, 정재원이 각각 1⅓이닝 38구, 3이닝 39구, 1⅔이닝 33구를 던졌으니 마지막 투수의 투구 수가 가장 많다. 아무리 봐도 벌투가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이며, 평균자책점이 24.55로 치솟았다.

8월 11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대체 선수는 올해부터 등판한 신인 투수 김재영.

결국 시즌이 끝나고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3. 연도별 성적

  • 투수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9 한화 이글스 49 72 0 3 0 2 .000 4.63 70 7 40 7 49 38 37 1.528
2010 9 9 0 0 0 0 .000 10.00 15 0 9 0 6 10 10 2.667
2011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12
2013 한화 이글스 21 34⅔ 1 0 0 0 1.000 4.15 37 2 6 2 25 19 16 1.240
2014 8 8⅓ 0 1 0 0 .000 17.28 17 1 5 1 3 16 16 2.640
2015 1군 기록 없음
2016 2 3⅔ 0 0 0 0 .000 24.55 10 1 2 1 2 11 10 3.27
KBO 통산(6시즌) 89 127⅔ 1 4 0 2 0.200 6.27 149 11 62 11 85 94 89 1.65

4. 트리비아

황재균과 이름이 비슷하여 황재규 VS 황재균매치가 성사되면 좋겠다고 한 팬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일어났는데, 2009 시즌 7월 7일 3회초때 황재규가 등판하면서 황재규 vs. 황재균매치가 드디어 성사가 됐다. 2사 2, 3루 상황이었는데 황재균이 내야안타를 치면서 투수 황재규를 이겼다.


[1] 차례대로 1, 2, 4, 5지명으로 전원 대졸 투수이며 3지명 장민제까지 투수다. 김인식 감독 부임 이후로 투수에 치중하는 드래프트 지명이 극에 달했던 해였다.[2] 이 2005년~2007년까지 오선진을 제외한 단 한 명의 야수도 발굴해 내지 못한 한화의 야수 자원은 그대로 소멸했으며, 덤으로 투수들도 대졸에 치중한 탓에 신인 선수들 전원이 군 입대의 압박을 크게 받았다. 한편 원래는 김성근 감독이 유독 SK스카우팅팀에 황재규를 뽑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유는 청원고 인스트럭터시절 오재영과 함께 옆에 끼우시다시피 하며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화 2군이 육성 능력이 있었는가는 또 다른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