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6 00:54:58

최우석(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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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최우석(崔佑碩 / Choi Woo-seok)
생년월일 1993년 2월 6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중대초-이수중-장충고
포지션 투수
투타 양투좌타[1]
프로입단 2012년 한화 이글스 3라운드(전체 24순위) 지명
소속팀 한화 이글스(2012, 2015[2])
한화 이글스 등번호 41번
신해수(2010~2011) 최우석(2012) 엄태용(2013~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56번
고동진(2011~2014) 최우석(2015) 김용주(2016~2017)

1. 소개2. 프로경력
2.1. 2012 시즌2.2. 방황, 그리고 복귀2.3. 2015 시즌2.4. 근황
3. 기타4.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한화 이글스의 투수. 2012 신인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1순위로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계약금은 1억 원.

장충고시절에는 빠른 공을 던지는 좌완투수였으나 어깨 통증으로 인해 우투로 전향했고, 데뷔 역시 우투수로 데뷔했다. 부상으로 위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좌투도 여전히 가능한 터라, 많은 팬들이 스위치 투수로서의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본인도 스위치 투수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2. 프로경력

2.1. 2012 시즌

2012년 4월 2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해 데뷔전을 치뤘다. 1⅔이닝동안 1실점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자책점으로 기록되지는 않았고, 탈삼진 2개를 기록하는 등 신인치고는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투구를 선보였다.

4월 26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내려왔다.

4월 27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선발 투수 안승민이 2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조기강판되며 패색이 짙던 상황에서 7회에 등판, 남은 3이닝을 던지며 1실점을 허용했다.

5월 2일 LG 트윈스전에서는 선발 투수 류현진이 1회에만 5점을 내주며 난타당했고, 6회에 마운드를 이어받아 등판했으나 대타 이병규에게 2루타를 허용하고 그대로 강판되었다.

5월 5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좌타석에 대타로 나와 오승환에게 3루수 앞 땅볼로 아웃되었다.

어린이날 경기 이후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2군에서 입에 단내나도록 조련을 받고 있겠거니 싶었는데...

10월 4일 보도자료를 통해 8월 31일 자로 임의탈퇴 공시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군에 내려간 후 적응과정에서 문제를 보였고, 계속해서 불성실한 태도를 보인 것이 임의탈퇴까지 가게 된 원인이라고 밝혔다. 임의탈퇴 공시일로부터 1년 동안 야구와 관련된 건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구단에서는 그 동안 병역을 해결한 뒤 좋은 모습을 보이면 임의탈퇴를 해제하고 복귀시킬 수 있다는 입장.

2012 시즌 최종 성적은 1군 4경기에 등판하여 5⅔이닝 3실점(2자책) 2탈삼진 평균자책점 3.18을 기록했다.

2.2. 방황, 그리고 복귀

데뷔 때 코미디빅리그에 출연한 변서은과의 연애 소식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었다. 그러나 5개월만에 결별 소식이 전해졌다. 집으로 경찰이 출동할 정도로 다툼이 잦아져 2012년 8월에 결국 결별했다고.[3]

멘탈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한화 이글스가 대패하는 날 트위터 계정으로 팬들 다수와 싸우기도 하고[4] 페이스북으로 한화팬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메시지를 보낸 적도 있는데 비슷한 사건을 저지른 선수들에 비해 훨씬 심각한 수위였음에도 이상하리만큼 조용히 묻혔다. 한화에 계속 남아 있었어도 좋은 모습을 보이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분명 잠재력은 있는 선수였지만 최우석의 이탈을 아쉬워하는 한화 팬들은 매우 드물다. 비슷한 문제를 지닌 전 야구선수 길민세와도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한화 이글스 팬들의 목격담에 의하면, 임의탈퇴 공시된 이후로는 그냥 일반인으로 잘 살았다는 듯. 임의탈퇴 공시 때 군 복무를 구단에서 언급했지만, 군대는 안 갔다. 집안도 잘 사는 편이라 야구계에서 미련없이 떠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페이스북으로 다시 야구를 같이 하자고 글을 남기는 등[5] 야구에 대한 미련은 남은 것 같았으나, 한화 구단은 군 문제 해결 전까지는 절대 받지 않겠다고 말한 만큼 빠른 시일 내의 복귀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여담으로 한 칰갤러가 성적도 안 좋은데 페북에 온갖 허세글만 남겨대자 딱 댓글 두개를 남겼는데 그걸 보고 "응원이나 하세요. 팬답게"라는 명언을 남겼다. 아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최대표라는 별명이 생겼다 졸지에 밑바닥 인생이 되어버린 칰팬들

2013년 8월, 복귀를 암시하는 트위터가 올라왔다. 이미 2013년 초부터 한화 이글스 3군에 합류해서 훈련을 진행했던걸 봐서는 임의탈퇴가 풀리는 9월이나 그 이후에 복귀할 예정. 포텐은 확실한지라 팬들은 제대로 마음을 다잡고 운동에 전념하길 바랐다. 웬만하면 군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오지

그리고 2014년 1월 8일, 임의탈퇴 공시 후 1년 4개월 만에 한화 이글스복귀했다. 그 동안 최익성이 운영하는 훈련장인 "저니맨야구사관학교"에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하며, 정민철 코치도 최익성의 훈련장에서 최우석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다만 아직 임의탈퇴가 해제된 상태는 아니다. 그럼에도 2014년 내내 말썽 없이 훈련을 잘 소화했는지 10월 미야자키 교육리그와 11월 마무리 훈련 명단에 모두 포함되어 2015년 고진감래가 기대된다. 소리소문없이 임의탈퇴가 해제된 후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등번호는 56번으로 변경했다. 원래 등번호인 41번은 그가 팀을 떠난 후 2013년부터 채고의 포수의 뒤를 잇는 엄태용이 쓰고 있어서 고동진이 쓰던 56번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고동진은 원래 등번호인 24번을 6년만에 되찾았다.

김성근 감독이 관심을 가지는 투수 중 하나로, 스위치 피처[6]로도 활용할 가능성을 비쳤다.

2.3.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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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연습경기에서 정말로 스위치피처던졌다! 이어서 3월 2일에는 KBO판 밴디트 룰인 '최우석 룰'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시범경기 전까지 규칙위원회를 열어서 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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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대한민국에는 양손 글러브를 안 팔고 있어서, 양손용 글러브를 일본에서 사 왔다고 한다.

2015년 3월 7일 대전에서 열린 LG와의 시범경기 1차전에서는 오른손으로만 던졌다.

하지만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퓨처스리그에 주로 출장하고 있으며 구원으로 3경기, 선발로 4경기에 출장하여 7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다. 1군 구원자원들이 쟁쟁한 편이라 올해 1군 진입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근데 1군 벤치에 앉아서 선수들이랑 하이파이브를 나누는게 잡히기도 했다.

시즌후 허리 부상을 이유로 보류선수 명단에서 빠졌다. 56번은 김용주가 갖고 갔다고 한다. 결국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을 우선 해결할 것으로 보인다. 구단에서는 병역문제 해결이 아니라 선수가 또 탈단을 요구했다고 한다. 계속 배팅볼만 던진 것에 대한 회의감에다가[7] 또 여자문제가 겹쳐서... 사실상 프로로 보기 어려울 수순인 듯 하다.(이미 페이스북에서는 유명했다.)

2.4. 근황

나이를 감안했을 때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거나 소집 해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정확한 근황 아시는 분 추가바람

3. 기타

2012시즌 초 나름대로 좋은 투구 내용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구 엔하 위키에는 해당 문서가 굉장히 늦게 만들어졌다. 본 문서가 작성된 날은 2012년 10월 4일로, 뒤늦게 임의탈퇴 공시 소식이 알려진 날이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2 한화 4 5⅔ 0 0 0 0 0.000 3.18 4 0 3 1 2 3 2 1.235
2013 임의탈퇴
2014
2015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시즌)
4 5⅔ 0 0 0 0 0.000 3.18 4 0 3 1 2 3 2 1.235


[1] 아래에서도 언급되겠지만 고교 시절에는 좌투좌타였다. 신인시절 오승환을 상대로 타석에 선 적이 있으며 좌타석에 섰었다.[2] 선수단 재합류는 2014년에 했으나 정식선수 복귀는 2015년.[3] 최우석 페이스북에 따르면 변서은이 자신의 친구와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잘못된 만남?[4] 하필 그 날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였던 여자 속옷을 입었던 안승민이 심하게 털리고 있었다.[5] 하주석 등 입단 동기들과는 아직도 절친이라고 한다.[6] 오른손과 왼손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투수. 아직 국내에는 없으며, 만약 최우석이 스위치 피처가 되면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첫 스위치 투수가 되는 것이다.(장호연의 아들 장영빈이 한때 스위치 투수로 관심을 모은 적이 있었으나 실제 투수로 등판한 일은 없었다.)[7] 김성근 문서에서도 볼 수 있듯이 2군 투수를 1군 엔트리에 등록하지 않고 1군 훈련때 배팅볼만 던지게 한 건 김성근의 잘못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