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5 07:33:55

김무관

김무관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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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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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 현재
1대
김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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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박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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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조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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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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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김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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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권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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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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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계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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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이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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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계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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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이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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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김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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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박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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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세이케 마사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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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김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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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김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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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이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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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 등번호 7번
팀 창단 김무관(1982) 이광길(1983)
삼미 슈퍼스타즈 등번호 1번
송경섭(1982) 김무관(1983~1985) 팀 해체
청보 핀토스 등번호 1번
팀 창단 김무관(1985) 정성만(1986)
청보 핀토스 등번호 75번
결번 김무관(1986) 결번
청보 핀토스 등번호 2번
김호근(1985) 김무관(1987) 팀 해체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2번
팀 창단 김무관(1988) 정영기(1989~1990)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2번
성기영(1987) 김무관(2001~2003) 결번
결번 김무관(2005~2011) 안상준(2013~2015)
LG 트윈스 등번호 80번
허문회(2008~2011) 김무관(2012~2014) 김동수(2015~2017)
SK 와이번스 등번호 72번
박경완(2014) 김무관(2015~2019) 이진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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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무관 2019.jpg
김무관(金武寬 / Mu-Kwan Kim)
생년월일 1953년 11월 29일[1] ([age(1953-11-29)]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인천광역시
신체 173cm, 82kg
학력 인천숭의초 - 상인천중 - 인천고 - 건국대
포지션 외야수, 내야수
프로입단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 멤버
소속팀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 (1982~1985)
지도자 경력 청보 핀토스 주루코치 (1986~1987)
태평양 돌핀스 타격코치 (1988~1994)
현대 유니콘스 2군 감독 (1996~1997)
현대 유니콘스 1군 타격코치 (1998~2000)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
(2001~2003, 2006~2011)[2]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12~2013)
LG 트윈스 2군 감독 (2014)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14)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 (2015)
SK 와이번스 2군 타격코치 (2015~2016)
SK 와이번스 2군 감독 (2017~2018)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 (2019)
SK 와이번스 루키군 야수총괄코치 (2019.4~2019)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롯데 자이언츠 코치 시절3.2. LG 트윈스 코치 시절3.3. SK 와이번스 코치 시절
3.3.1. 2019년
4. 연도별 주요 성적5. 관련 문서

1. 개요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 소속의 내야수. 前 SK 와이번스의 육성총괄 코치.

현역 시절은 쉬어 가는 타순이었으나, 타격코치로서는 현대 유니콘스,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에서 수많은 강타자들을 배출한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타격코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러나 고향팀 SK 와이번스에서는 물타선의 주범이자 금지어로 전락했다.

2. 선수 경력

인천 연고 팀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원년 멤버다. 포지션은 외야수였지만, 팀의 사정상 내야수도 맡는 등 멀티플레이어로 뛰었다. 주로 삼미의 1번 타자를 맡았고 양승관, 이선웅, 정구선, 금광옥, 김진우 등과 더불어 1983년 삼미의 돌풍에 일조했다. 그러나 1983년 이후 활약은 희미해졌고, 이후 선수층이 얕은 삼미에서조차 백업 선수로 활용되었다. 결과적으로 선수 시절은 그다지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고, 이름없이 사라져 간 수많은 선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프로 입문 당시 만 29세로 은퇴가 코앞이었던 선수[3]라 돋보이는 활약을 보이기는 애초에 힘들었다.

그의 현역 4년간의 통산 타율은 0.199(35안타/326타수). 2할도 안 되는 타율로서 이것만 보면 타격코치를 하기에는 자질이 부족해 보인다. 실제로 선수 시절에 무명이었다는 이유로 야구 관계자들로부터 "야구도 못 했는데 코치를 한다고 선수들이 따르겠냐"며 멸시를 당했고, 이에 충격을 받아 해외로 매번 전지훈련을 갈 때마다 반드시 미국일본에서 야구 관련 원서를 잔뜩 사들인 후 번역까지 맡겨 가며 독학에 몰두했다.

3. 지도자 경력

1986년에 은퇴한 후 청보 핀토스의 주루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청태현 시절만 해도 존재감 없는 코치였으나...

3.1. 롯데 자이언츠 코치 시절

파일:/image/109/2010/08/13/201008131210773451_1.jpg
롯데 자이언츠 코치 시절.

코치로서의 이름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롯데 자이언츠의 타격코치로 이대호, 강민호, 전준우 등 수준급 타자들을 많이 키워내면서부터다. 2000년대 암흑기를 거치고 황폐화된 막장 팀의 코치를 맡아, 수 년 만에 롯데 자이언츠의 막강한 타선을 구축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에 롯데 자이언츠 팬들 사이에서 거의 유일하게 안 까이는 코치다. 그도 그럴게 롯데 타격의 암흑기는 김무관 코치가 1군을 떠나있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포 해체 이후 똑딱이 일색이었던 롯데 타선을 가 조화를 이룬 최강 타선으로 재구축한 건 분명 김무관 코치의 업적이다. 당시 수훈 선수 인터뷰를 하는 타자들은 너도나도 김무관 코치의 지도덕분이라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김무관 코치가 떠나고 후임으로 타격코치를 맡게 된 박정태 코치 시절에는 주구장장 밀어치기만을 강조한 결과 타선의 장타력이 크게 줄면서 타격이 폭망했다[4]. 때문에 박정태 코치는 레전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주님태라며 무섭게 까였다. 있을 때 잘해 김무관 코치는 2000년대 이후 흥식매직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는 타격코치이다. SK팬: 걍 돌아가

김무관 코치 1군 재임시절 롯데자이언츠 팀타격 성적은 다음과 같다. 06 -> 10 년으로 가는 동안 팀득점 상승 추이에 주목

2001년 : 팀타율 0.280 팀홈런 121, 718득점(133경기). 팀타율 1위
2006년[5] : 팀타율 0.250 팀홈런 88. 488득점(126경기).[6]
2007년 : 팀타율 0.270 팀홈런 76. 533득점(126경기).
2008년 : 팀타율 0.282 팀홈런 93. 624득점(126경기).
2009년 : 팀타율 0.277 팀홈런 121. 637득점(133경기).
2010년 : 팀타율 0.288 팀홈런 185. 773득점(133경기).
2011년 : 팀타율 0.288 팀홈런 115[7]. 729득점(133경기).
그리고 김무관 코치가 떠난 2012년부터 롯데는 거짓말같이 추락했다. 코치 때문만은 아니고 주축 선수들이 떠난 탓이 크지만.

2008년부터 가을야구에 진출한 롯데의 성적은 대부분 로이스터의 노피어야구 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06년부터 시작된 팀타격의 상승 곡선과, 그 시기 강민호 등 주축 타자들의 성장 추세를 보면 김무관 코치의 공을 절대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08시즌 롯데가 가장 돌풍을 일으켰던 것은 시즌 개막 직후봄데 였고, 로이스터 감독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 참여한 뒤 시즌 개막 직전에야 한국에 들어왔다.[8] 개막 직후 노피어 정신의 임팩트가 강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2년간 공들여놓은 코치를 놔두고 부임한지 한 달 지난 감독이 모든 공을 가져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9] 10년묵은 체증을 내려가게 한 외국인 감독이라는 캐릭터가 기사거리로 좋을 뿐.

이 시기에 전성기를 보낸 주요 타자들은 다음과 같다. 물론 이들의 성적 중 어디까지가 타격코치의 몫인지는 명확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롯데에는 김무관만 있었던 게 아니다. 야수 육성과 리빌딩 능력은 역대급이었던 강병철도 있었다.
  • 강민호: 05년 0.243 2홈런 → 06년 0.251 9홈런 → 07년 0.271 14홈런 → 08년 0.292 19홈런 → 09년 부상 → 10년 0.305 23홈런
  • 이대호: 06년 트리플크라운.[10] 10년 트리플크라운+7관왕
  • 전준우: 09년 0.220 2홈런 → 10년 0.289 19홈런 → 11년 0.301 11홈런
  • 홍성흔: 09년 롯데 이적 후 4년간 선수생활 최고의 시즌을 보내었다. 3년연속 타격2위 콩라인
  • 가르시아: 용병이므로 코치 덕이라고 하기는 좀 애매하긴하다.
  • 손아섭: 08년에 첫 3할을 치며 두각을 드러내었다. 사실 김무관 코치 떠난 이후가 진짜 전성기.

사람 좋아 보이는 모습과 달리 성격이 있다. 2009년 롯데와 SK가 한때 빈볼시비 등으로 인해 양 구단 간 감정이 한창 좋지 않았던 시절, 조성환이 SK 채병용의 공에 광대뼈를 맞고 실려가자 순간 분노해 문학구장 덕아웃을 뒤엎은 적이 있다. 나는 갈매기 문서와 해당 영상 참조.[11]

3.2. LG 트윈스 코치 시절

파일:external/sportsworldi.segye.com/20111116002422_0.jpg
앞에 있는 선수는 2012년 신인 서상우.

2011년 시즌 후 김기태가 감독으로 취임하자 LG 트윈스1군 타격코치로 입단했다. 터지지 않는 LG의 많은 우타자들의 포텐을 터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LG와 별다른 인연이 없었기에 의외라는 평이었으나 사실은 인천고 직계 후배이자 같은 삼미 원년 멤버였던 김진철 스카우트팀장 인맥으로 들어온 것이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이대호도 나간 마당에 또 한명의 타선 버프를 책임쳤던 김무관 타격코치마저 나가자 절망 상태에 빠졌는데, 다수의 팬들은 예견된 일이었다며 꼴런트를 신나게 깠다. 떠난 건 김무관이 먼저인데다 매년 눈에 띄는 성과를 냈지만 연봉은 1억 원을 넘지 않았다는 것. 코치의 연봉이 1억 원을 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롯데가 김무관 코치에 대한 처우가 나빴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김무관 코치의 독보적인 업적을 낸 만큼 롯데 프런트도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했어야 했다. 과거 김무관을 데려올 때 구단에서 먼저 러브 콜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연봉을 깎아서 데려왔다고 한다. 아무튼 김무관 코치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 LG는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했고, LG로 옮긴 이후 억대 연봉을 받았다. 또 서울 생활의 메리트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호의 연습경기에서 활약을 보고 일본프로야구 코치들이 "어디서 그런 좋은 스윙을 배웠냐? 그 스윙을 익히려면 1~2년은 힘써야 되는데..."라고 평가를 내렸다.

시범경기가 중계되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타격코치가 고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던 이대형의 저주받은 하체가 확연히 고정된 모습을 보여 줘 수많은 LG 팬들이 쥐레발을 떨게 만들었다. 그 놈의 엉덩이부터 1루로 달려가는 타격이 어느 정도나마 고쳐진 모습이라 벌써부터 무관매직 소리가 나오기 시작.

하지만 시즌에 들어가자 팬들을 희망에 부풀게 만들었던 이대형은 어느샌가 그놈의 깝깝한 타격 자세로 복귀해 겨우 2할에 머무는 모습을 보여 줬던지라, “역시 안 될 놈은 안되는구나” 라는 말이 나오는 실정이었다. 대신 이병규의 초반 부상 이후 LG의 4번 타자가 된 정성훈이 4경기 연속 홈런을 비롯한 귀신같은 활약으로 팀 상승세를 이끌어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더욱이 정성훈이 인터뷰를 통해 특별히 김무관 타격코치의 지도에 감사를 표하자 무관매직의 실존이라며 감격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물론 FA로이드가 더 크기는 하겠으나 정성훈 이외에도 오지환, 이병규 등이 전보다 명백히 밀어치는데 능숙한 모습을 보여줘 김무관이 가진 지도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수비형 수비밖에 못 하는 포수 김태군도 서서히 밀어치는 타격으로 타율이 올라갔고, 엘지의 하위 타선들은 철저한 밀어치기를 통해 어떻게든 바깥쪽 공에 대한 대처능력을 올렸다. 그리고 2013 시즌에는 오지환이 리드오프로 자리매김했고, 타격에 재능이 없다던 손주인이 LG 이적 후 각성하는 등 무관 매직은 여전히 실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대신 김무관도 못 고치는 이대형의 타격은 다들 포기하는 상황. 이대형까지 고치면 그건 매직이 아니라 미라클 무관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2014 시즌에는 LG의 2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노장들을 대체할 2군 내 타자 유망주들의 기량을 2군에서 끌어올리기 위한 선택으로 보여진다.[12] 2014년 4월 김기태 감독의 자진 사퇴 후 양상문 감독 체제로 전환되면서 조계현 前 수석코치가 새로운 2군 감독으로 임명되자, 1군 타격코치로 복귀했다.

3.3. SK 와이번스 코치 시절

파일:/image/144/2014/12/26/l_2014122602001225200307811_99_20141226102602.jpg

2014년 플레이오프가 끝난 후 고향 팀 SK 와이번스의 1군 타격코치로 이적하였다. 김용희 신임 감독의 요청이라고.

하지만 개막 후 2개월이 지난 지금, 타격 부분에서 모두 최하위를 달리고 있어서 현재에는 SK 팬들의 역적 상태이다. 작년 그렇게 좋던 이명기를 망치고... 박계현 등등 분위기 반전이 필요할 때다. 아직 정규 시즌의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판단을 하는 것은 많이 무리수이다. 다만 스프링캠프에서 타자들의 스윙에 지나치게 손을 많이 댔다는 기사가 나와서 팬들이 우려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 김용달은 타어강의 해 이맘때 타선이 불을 뿜고 있었다

5월 25일 기준으로 SK 와이번스의 팀 순위는 4위이지만 타격지표들은 이런 순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타율, 출루율은 6위 장타율은 8위이며 2루타는 59개로 10위다.[13] 팬들은 현재의 타격 지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SK 와이번스 2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문제는 새 메인 타격코치가 물타선의 주범인 슼무원 정경배라는 것. 타격보조 코치로는 강혁이 올라왔다.

2017년에는 SK 와이번스 2군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2군에서 소통을 통해 팀 성적과 관계없이 육성 플랜을 어느정도 성공시켰다. 2018년 북부리그에서는 4위. 물론 2군 감독을 맡는 동안 1군으로 올라온 선수가 없다는 점에서 비판 받기도 한다. 그 와중에 정경배가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스탯캐스트 학습 및 발사각 이론을 통해 팀에 홈런포라는 팀 컬러를 성공적으로 입히고 이를 바탕으로 두산을 한국시리즈에서 업셋시키고 우승하자 이와 반대로 김무관의 능력에 대한 평이 다시 추락했다. 그리고 코시 사푼이를 개조중이다

3.3.1. 2019년

정경배를 대신해 염경엽호의 1군 메인 타격코치를 맡는다. 정경배두산 베어스의 1군 메인 타격코치로 이적했다.

하지만 홈런 개수나 타율은 물론 출루율을 포함한 타격과 관련된 모든 지표들이 지난해보다 많이 떨어져서, 또 한 번 SK 팬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W팬톡에는 김무관을 비난하는 글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아직 시즌 초반이라 평가하기 이르다는 팬들도 있기 때문에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한다.[14] 2주차까지 안타, 볼넷, 출루율 꼴찌에 WAR 꼴찌를 달리고 있다. 다만 간간히 나오는 장타와 깔끔한 주루 플레이, 팽팽한 순간에 나오는 타점들로 다른 지표들은 크게 나쁘지 않다. 투수들이 버텨주고 있는 와중에 낼 점수는 내서 이기긴 하는데 크게 이기는 경기가 없는 것이 추후 불펜 과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러운 점이다.[15]

거의 모든 타격 지표가 꼴찌거나 최하위에 랭크될 정도로, 딱 4년 전과 동일하다. 심지어 김강민, 정의윤 빼고 타선이 전부 죽어 있는 것까지(...).

그리고 장시환[16], 박시영, 홍건희 등 직전 시즌 크게 부진했거나 심각한 제구력 때문에 선발로는 도저히 써먹을 수 없는 투수들이 갑자기 선발승 요건을 갖추고 내려가거나 아예 선발승을 해버리는 일이 생기고, 5선발 문승원이 ERA 1.80을 찍고도 0승 1패를 찍는 사태가 일어나자 SK 팬들은 '무관매직은 무관중으로 답해주자'며 분노하고 있다.[17] 1위를 질주 중이긴 하나 17시즌 LG나 18시즌 한화처럼 타격지표가 지속적으로 나쁘면 아무리 투수력이 좋은들, 호성적을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18] 그리고 4월 16일부터 21일까지 3위 두산, 1위 NC와의 경기가 이어져 있어서 2위 수성도 타선이 터져주지 않으면 어려울 전망. 그리고 정경배 모창민과 다시 만나야 한다 SK팬:걍 나가줘...

이후 두산과의 3연전에서 2연패로 일찌감치 루징 시리즈를 확정짓는 등[19] 여전히 개노답인 타격을 보여주자 팬들의 분노 또한 극에 달했다. 그럼에도 김무관은 그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어서[20][21]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만 하는 중.

결국 4월 19일 코칭스태프 변동으로 박경완 1군 수석코치가 타격코치를 겸임하게 되었으며 루키군 야수총괄 코치로 이동하게 되었다. 김용희가 감독할 때에 타격코치였으나 물러난 뒤 이번에 역시 퇴장. SK랑 맞지 않나 보다 그리고 타격보조 코치로 박재상 코치가 선임되었다. SK 팬들은 이 날을 무복절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4.19 혁명에 빗대기도 했다.[22]

이어 구단은 교체된 이유에 대해 "오늘 오전 김무관 코치가 염경엽 감독을 만나 팀의 타격 침체에 따른 부담감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다"라며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염 감독이 프런트와 협의해 김무관 코치의 뜻을 받아들여 코칭스태프 보직 변경을 단행했다"라고 설명했다. 염경엽 감독은 "김무관 코치님께서 너무 힘들어하시더라. 육성 잘하고 계신 분을 불러서 이렇게 한 것 같아 진짜 죄송했다"라며 "결과가 안 좋았을 뿐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만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33년간 코치를 하시면서 SK에 오기 전까지 성공 가도만 달리다가 (SK 이적 직후) 처음 실패를 하셨다. 이를 회복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셨는데 버티기 힘드셨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또 그는 "결과적으로 코치를 구성한 사람이 잘못이다. 힘들게 해서 죄송하다"라며 "그동안 코치 경력도 풍부하시기 때문에 다른 코치들에게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하셨다"라고 돌아봤다.

그리고 김무관이 내려간 후 기적같이 타자들의 타격이 살아나면서 사실상 김무관이 처음부터 SK의 팀 컬러와 상극이었던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 김무관을 내려보내고 정경배 체제로 전환하면서 장타력이 되살아났던 현상이 박경완 & 박재상 체제에서 재현되고 있기 때문. 물론 아직 NC전 두 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장타력이 급격하게 좋아지면서 2019년 4월 19일 11점, 2019년 4월 20일 10점[23]으로 이틀만에 21점을 뽑아냈다. 참고로 2019년 김무관이 타격코치로 있을 땐 한 번도 두 자릿수 득점을 하지 못했다. 즉, 2019년 4월 19일 11점은 시즌 첫 두 자릿수 득점, 2019년 4월 20일 10점은 시즌 두 번째 두 자릿수 득점이다. 심지어 그동안 부진하던 제이미 로맥마저 홈런을 때려내면서, 김무관의 강등이 SK 와이번스 반등의 시발점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타격코치가 바뀐 당일날 바로 팀 타격이 갑자기 좋아지는 건 우연에 가깝다 볼 수 있지만, 두 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은 의미가 없다고 볼 수만은 없다.
4월 18일까지 SK 타격 기록
경기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PA BABIP
22 80
(10위)
170
(10위)
[24]
27
(9위)
2
(7위)
17
(4위)[25]
76
(10위)
75
(7위)
172
(4위)
.230
(10위)
.312
(10위)
.341
(10위)
.653
(10위)
-0.10
(7위)[26]
.276
(10위)[27]
4월 19일부터 SK 타격 기록
3 25
(2위)
35
(3위)
6
(5위)
2
(2위)
7
(1위)
25
(2위)
10
(6위)
24
(2위)
.318
(3위)
.382
(4위)
.600
(1위)
.982
(2위)
0.39
(6위)[28]
.350
(4위)

아직 타격코치 교체 이후 몇 경기 지나지 않았으나 유의미한 변화가 관찰되고 있고, 선수 개개인별로도 침묵하던 홈런포가 터지는 등[29] 겉으로도 교체 효과가 뚜렷하기에 SK 팬들의 김무관에 대한 여론은 더더욱 싸늘해졌다.

혹자는 김무관의 타격 이론이 최대한 공을 많이 보고 2스트라이크 잡은 이후에는 존을 좁게 잡아 치라는 식이기에 현대 타격과 맞지 않는다고 분석했는데, 실제로 데이터로 확인이 된다.
4월 18일까지 SK 타격 기록
P/PA[30] 루킹/S 헛스윙/S 파울/S 타격/S 컨택%
3.90
(2위)
26.7%
(8위)
15.8%
(5위)
29.5%
(2위)
27.9%
(10위)
78.4%
(5위)
4월 19일부터 SK 타격 기록
3.68
(9위)
22.1%
(9위)
18.2%
(2위)
31.0%
(3위)
28.7%
(8위)
76.7%
(8위)

별 의미가 없는 수치도 있지만, 김무관 강등 이후부터 확실히 공을 많이 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스윙에 임하고 있다. 낮은 루킹 스크라이크 비율과 높은 헛스윙 비율이 2018 시즌의 모습과 흡사하게 따라가고 있다.

다만 이후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도 타격 사이클이 오락가락 하면서 타팀 팬들 위주로 그냥 타자들이 못하는 걸 무조건 김무관 코치 탓으로 돌린다는 의견도 나오는 중. 하지만 SK팬들은 현실부정 중.

시즌 종료 후 조용히 팀에서 나갔다. SK에서의 5년간 성과는 최악인데다가 금지어로까지 전략해버린 상태라 당분간은 현장에 돌아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삼미 슈퍼스타즈 69 254 .217 55 11 0 1 14 33 5 31 .272 .301
1983 23 45 .156 7 1 0 0 4 1 0 3 .178 .208
1984 4 7 .000 0 0 0 0 0 0 0 0 .000 .0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5 삼미 / 청보 25 20 .150 3 0 0 0 2 1 1 0 .150 .150
KBO 통산
(4시즌)
121 326 .199 65 12 0 1 20 35 6 34 .245 .274

5. 관련 문서


[1] KBO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에는 1955년 3월 2일생으로 되어 있다.[2] 참조.[3] 2010년대 중반이야 갓 30대로 접어든 시점에서는 전성기지만 프로 출범 당시에는 30세까지 선수 생활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프로 출범 당시 최고령(만 33세)이었던 윤동균만 해도 당시 플레잉코치라는 명목 아래 은퇴 준비 중이었다.[4] 밀어치기의 강조는 사실 박정태 본인의 의중이라기보다 양승호 감독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박정태양승호 감독이나 모두 밀어치기를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5] 시즌 중반 1군 승격[6] 역대 최악의 투고타저 시즌. 그나마 김무관 코치 승격 후 상당히 오른 타율이 이 정도이다.[7] 가르시아가 떠났다[8] 미리 살펴보라고 구단에서 겨울에 팀 경기 DVD를 보내줬지만 기술적 문제로 못봤다고 한다[9] 김무관과 로이스터가 아니더라도, 사실 당시 롯데 주축 선수들이 굉장히 젊었기 때문에 상승세는 어느정도 예상된 면도 있었다. 또한 08년에는 군복무를 마친 조성환과 정상급 용병인 가르시아가 합류하여, 07년과는 선수 구성 자체가 많이 다르기도 했다.[10] 김무관코치 부임 첫해에 포텐이 폭발한 것은 사실이나, 김무관코치가 시즌중반 승격되기 전 시즌 초부터 이미 폭발중이었다.[11]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몇 년이 지난 2015년 김무관은 빈볼 사건 당시 상대팀이었던 SK 와이번스의 타격코치로 오게 된다.그리고 팀 타선을 홀라당 말아먹었다 과거 빈볼사건에 대한 복수?[12] 공식적으로 김기태 1군 감독의 말에 따르면, 코치로서 지도자 생활을 한다는 것은 종국에는 감독을 할 수도 있는 것인데, 1군 감독을 맡기 위해서 2군 감독 경력은 필수나 마찬가지고 김무관 코치의 경력과 나이를 봤을 때 2군 감독을 할 시기였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김기태 본인도 어느 정도 타격 쪽에는 조예가 있다 보니 2군에서 타자 유망주 육성에 전념하도록 한 것으로 판단된다.[13] 9위 KIA 70개, 8위 삼성, kt 72개[14] 이에 2019년 시즌 시작과 함께 SK 팬들은 두산 팬들에게 김무관을 영업하고 있다. 당연히 두산 팬들의 반응은 차라리 병살 많아도 정경배 쓰지 김무관 안 사요(...).[15] 당장 끝내기가 많은 것조차 김무관 탓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16] 특히 장시환은 2019년 두 차례의 대량실점 경기로 롯데 팬들의 혈압을 올려놓은 상태였다.[17] 보이콧 글이 올라왔으나 삭제되었다.[18] 참고로 17시즌 LG는 팀방어율 1위를 찍고 가을야구를 못 갔지만 18시즌의 한화는 외국인 원투펀치와 베테랑 불펜 투수들의 힘으로 허약한 타선을 가지고도 준플레이오프 직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런 한화도 결국 약한 타선 탓에 4위를 한 넥센의 타선에 압도당하면서 4경기만에 가을야구를 마쳐야 했다. 사실 18시즌의 한화는 피타고리안 승률과 타율이 리그 최하위였음에도 정규 시즌 3위를 거두는 등 소위 '우주의 기운'이 온 시즌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19] 4월 17일 경기에서는 타자들이 홍상삼을 상대로 겨우 3점밖에 못 뽑았고(이마저도 홍상삼의 폭투쇼 아니었으면 1~2점으로 끝났을지도 몰랐다.) 두산의 타선은 앙헬 산체스에게 1이닝부터 5점을 뽑는 등 대폭발했다. 게다가 두산은 마무리투수가 심지어 이현호.[20] 썰에 따르면 구단 측에서 김무관의 인터뷰를 막고 있다는 말도 있다.[21] 김무관이 염경엽 감독보다도 나이가 한참 연상이라 감독임에도 제대로 쓴소리를 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다는 썰도 나오는데 염경엽이 실적 확실한 정경배를 내치고 김무관을 승격시킨 장본인이라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다.[22] 실제로 김무관은 이승만 시절 태어난 사람이다(...).[23] 심지어 2019년 4월 20일에는 문승원의 시즌 첫 승까지 챙겼다.[24] 9위 삼성 182개와는 12개 차이, 1위 한화 211개와는 41개 차이.[25] 1위 NC 27개와는 10개 차이. 몇 년간 홈런 군단으로 군림하던 모습과는 상당히 멀다.[26] 모든 타석 영향력 지표를 평균으로 가정한 WPA/LI는 10위. 그리고 중요 상황에서 얼마나 더 잘했는지 보는 Clutch 지표는 1위. 즉, 중요할 때는 꽤 잘 쳐서 그나마 성적이 유지된 것이다.[27] 운이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타자는 BABIP을 통제할 능력이 어느정도 있기에, 치기만 하면 범타가 되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28] 모든 타석 영향력 지표를 평균으로 가정한 WPA/LI는 1위. 그리고 중요 상황에서 얼마나 더 잘했는지 보는 Clutch 지표는 9위. 위와는 반대로 클러치 상황에서는 못 쳤지만 그냥 애초에 잘 쳐서 점수를 많이 얻어냈다는 뜻이다.[29] 최정, 로맥, 한동민 뿐만 아니라 나주환도 홈런을 쳤다.[30] 타석 당 투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