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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 구단주 구광모 | 대표이사 김인석 | 단장 차명석 | 감독 염경엽 | 주장 박해민 | ||
경기장 | 1군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2군 LG 챔피언스 파크 이전 동대문야구장 · 구리 LG 챔피언스 파크 | ||
우승 | 1990 | 1994 | 2023 | ||
역사 정보 | 구단 역사 | 트레이드 | 1983년 한국시리즈 | 1990년 한국시리즈★ | 1994년 한국시리즈★ | 1997년 한국시리즈 | 1998년 한국시리즈 | 2002년 한국시리즈 | 2023년 한국시리즈★ | 역대 감독 | 사건·사고 | 암흑기(453566, 6668587667) | ||
주요 정보 | 팀 특징 | 선수단 | 등번호 | 유니폼 | 상대 전적 | 팀 응원가 (서울의 찬가 · 서울의 모정) | 응원단장 | 엘튜브 | 치어리더 | 제휴카드 | ||
지역 연고 | 경기고등학교 | 경동고등학교 | 덕수고등학교 | 배명고등학교 | 배재고등학교 | 서울고등학교 | 서울디자인고등학교 | 선린인터넷고등학교 | 성남고등학교 | 신일고등학교 | 장충고등학교 | 중앙고등학교 | 청원고등학교 | 충암고등학교 | 휘문고등학교 | 제주고등학교 | ||
역대 시즌 | 역대 시즌 | ||
현재 시즌 | LG 트윈스/2025년 | ||
영구 결번 | 9 이병규 33 박용택 41 김용수 | ||
팬덤 정보 | LG 트윈스 갤러리 | I love Twins | 유광잠바 | ||
라이벌전 | 잠실 시리즈 | 엘 꼴라시코 | 통신사 시리즈 | 엘키라시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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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 LG! 끝까지 TWINS! |
1. 개요
유래는 말그대로 사랑해요 LG.1994년 LG 트윈스의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LG그룹 출범 광고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서 사랑해요 LG는 가장 성공적인 이미지 광고의 사례로 지금도 인정받고 있으나, 1994년 우승 이후 부진을 거듭하는 LG 트윈스가 삽질을 할 때 마다 타 팀 팬들이 LG를 조롱하기 위해 써 먹는 말로 변질되고 말았다.
대체로 FA 선수들을 거액으로 사 왔지만, 정작 팀에서는 포텐이 안 터지는데 다른 팀에만 가면 활약하는 선수들이 나오는 현상이 일어났을 때마다 타팀 팬들이 쓴다. 자세한 것은 LG의 먹튀 잔혹사, 먹튀 참조. 더 나아가 경기중에 LG 투수들이 형편없이 털리거나 어이없는 실책으로 상대에게 승리를 갖다바쳤을 때 쓰기도 한다.
2012년부터는 목동에 있던 어느 구단의 두 분의 입장에서 쓰일 듯[1]. 그러나 2000년~2010년까지는 LG와 트레이드에서 가장 크게 이득을 본 팀은 KIA 타이거즈이며,[2][3] "사랑해요 LG"도 KIA 팬들이 가장 먼저 써먹었다.
그렇지만 상대전적까지 포함한다면 KIA보다는 넥센이 LG를 조롱하기 더 쉽다는 것도 있어 요즘은 되려 넥센팬들이 LG팬들을 조롱하는데 많이 활용. 게다가 아래의 사례 중 박병호, 심수창-김모 씨, 송신영 2대2 트레이드가 대단히 유명한 영향도 있다.
신생팀인 NC 다이노스 팬들도 외친다고 한다. 사실 NC의 각종 첫 기록에는 LG를 상대로 한 것이 은근히 많다. 창단 첫 승, 창단 첫 스윕 승, 외국인 선수 최초 노히트 노런, 창단 첫 포스트시즌 경기 승리, 창단 첫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심지어 기사까지 있다.[4]
그리고 2013년 시즌 종료 후 KIA가 LG로부터 트레이드를 통해 받아온 이용규가 FA 자격을 얻은 후 팀을 떠나 한화로 건너간 뒤 대안으로 영입한 FA 선수가 이대형이며, 4년 24억 원이나 줬다는 것이 밝혀지자 LG 팬들이 KIA 팬들을 역으로 조롱하였다. LG로서는 계륵을 넘어 민폐인 선수를 처분했을 뿐 아니라 KIA로부터 보상선수를 받아올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대형은 생애 최고타율을 기록하며 KIA 팬들은 또다시 사랑해요 LG를 외치게 되었다. 신승현이 별로 활악을 하지 못한 점까지 감안하면이었지만 이대형은 1년 만에 KIA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과 관련되었다고 추정되는 갈등을 이유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팀을 떠나게 되었고 신승현은 2016년 LG의 셋업맨으로 활약하면서 재평가되고 있다. 이대형은 kt에 가서도 돈 값을 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KIA 소속이 아니다.
2018년, 김현수를 데려왔음에도 두산전 17연패를 기록했다.(...) 그나마 시즌 0승 15패를 기록하던 중 마지막 경기에 승리해서 1승 15패가 되었다.[5]
2. LG의 아낌없이 주는 트레이드
해태-KIA의 프랜차이즈 스타 홍현우가 LG로 FA이적을 한 뒤 먹튀가 되었다. 이원식, 소소경은 잘 해봤자 5선발급 투수였다. 이용규는 당시 외야수 유망주였지만, 당시 LG에는 키도 더 크고 발도 좀더 빠른 이대형이 있었다. 때문에, 아무래도 야수보다는 투수를 높이 쳐주는 트레이드 논리상, LG는 균형을 맞춰주기 위해 이용규를 끼워 넣어줬다. 결과적으로 나머지 세 명은 다 트레이드 후 망했는데, 이용규는 KIA에서 포텐이 터져 특급 테이블세터가 되었고, 이 트레이드를 주도한 당시 LG 감독이었던 이순철은 두고두고 욕을 먹는다.
김상현은 원래 2000년에 KIA에 입단했으나, 2002년 당시 LG의 좌완 투수 방동민과 트레이드 되었고 2004년 시즌 후 상무에 입대하였다. 방동민은 KIA에서 소리없이 은퇴했고, 김상현은 상무에서 2군 홈런왕이 되었으나 1군에서는 제대로 활약을 못했다. 2009년 LG는 몇년 후를 보고 재활 중이었던 강철민을 데려오려고 김상현과 박기남을 주었다. 두 선수는 팀계획에서 주전은커녕 1군 엔트리에 못들어갈 처지였다. 강철민은 한양대 에이스였으며, 제2의 정민태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던 선수. LG는 트레이드 균형을 맞춰준답시고 박기남을 여기에 끼워줬다. KIA는 괜찮다고 했는데에도 불구하고 LG는 박기남도 데려가라고 했단다. 역시 사랑해요 LG 김상현과 박기남은 이적하자마자 KIA 1군으로 기용되었다. 조범현 감독이 김상현을 3루 주전으로 세우자 곧바로 맹활약을 했는데 이적후 때린 시즌 1~3호 홈런이 모두 만루홈런이었다. 주전을 보장하는 분위기 속에 자신감까지 더해지면서 시즌 내내 해결사 역할을 하더니 홈런 타점 장타율에서 1위 & MVP를 획득했다. 당연히 2009년 KIA 우승의 1등 공신으로 평가 받는다.[6] 박기남도 이적하자마자 1군 멤버로서 꾸준히 경기에 나왔다. 특정 포지션을 밀어줄 정도의 타격과 수비는 아니지만 만능 내야수로서 은퇴할 때까지 KIA에서 궂은 일을 다 해냈다. 그러나 강철민은 재활에만 4년을 끈 끝에 2011년 결국 LG에서 1승도 못하고 웨이버 공시되고 말았다.
미리 결론부터 서술하자면 왜 LG 트윈스가 10년간 안 되는 팀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준 트레이드. 여담으로 위의 두 트레이드와 달리 이 트레이드는 타팀팬들도 잘 알만큼 너무 유명하며 히어로즈의 운명을 바꾼 트레이드다.
심수창에게 2011시즌은 엄청나게 후려쳐진 연봉과 17연패라는 신기록을 달성하면서 야갤 등에서 '슈퍼스타 심수창(감사용)'으로 불리우는 등 특히 다사다난이 많았던 시즌이었고, 박병호는 LG의 꽤나 두꺼운 선수층에 묻혀 잠재력에 비해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데다가 소극적인 공격으로 LG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게 부지기수여서 당연히 욕을 많이 먹었다. 송신영은 트레이드 이전에 넥센의 훌륭한 셋업맨이었다. 게다가 2011시즌은 대부분의 팀이 구원 투수 부족에 허덕인지라 믿을맨의 가치가 상한가를 쳤었다. 그리고
그러나 막상 뚜겅을 열어본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심수창은 18연패를 깬거 말고는 큰 활약을 못했지만 박병호는 트레이드 직후 포텐이 조금씩 터지더니 12년부터 그야말로 대활약 11년부터 21년까지 히어로즈에서 쌓은 WAR은 무려 44.68이며 히어로즈에서 써낸 기록만 봐도 홈런왕 5회 및 2년 연속 50홈런 타점왕 4회 및 KBO 단일시즌 최다 타점, 득점왕 1회, 장타왕 2회, 1루수 골든글러브 4회, 리그 MVP 2회로 후덜덜한 수상내역을 쌓았으며 MLB까지 갔다. 거기다 박병호의 트레이드 이후 히어로즈는 박병호를 필두로 11년, 12년, 17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하는 우승만 없을 뿐 명실상부 강팀이 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한 팬층 유입은 덤
송신영은 LG에 와서 그렇게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지만 박종훈 감독의 혹사와 본인이 팀 , 박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어서 전과는 조금 부진했고 결정적으로 시즌 후에 FA자격으로 한화로 이적해버렸다.
트레이드 이후, 양석환은 준수한 활약으로 주전을 잡았고, 함덕주는 부상을 숨겼던 사실이 드러나 금지어급으로 까이다가 2023년부터 철벽 불펜으로 자리 잡았고 29년만의 통합 우승에 일조하였다. 남호와 채지선은 거의 팀에서 보이지 않는 수준(...)
- (LG) 정찬헌 ↔ 서건창 (2021)
결론부터 서술하자면, 과거의 영광을 보고 트레이드하지 말라는 팬들의 만류를 무시한 LG의 처참한 실패. 2011년 만큼은 결코 아니지만, 고질적 허리 통증으로 일주일에 한 번 도는 90년생 토종 투수 ↔ MVP 수상 경력이 있으나, 2년 내내 부침이 있는 2루수를 영입한 트레이드이나, 결론적으로 LG가 매몰비용만 열심히 부담한 망한 트레이드. 정확히는 박병호를 시즌 중에 보낸 이후, 10년 만에 히어로즈와 시즌 중에 트레이드를 또 한 것이다.
사실 이 트레이드는 한현희, 안우진이 방역 수칙 위반 사건을 저질러서(이 짓을 주도한 인간은 한현희였다.) 당시 토종 선발로 로테이션을 정상적으로 돌았어야 할 1선발과 5선발이 두 명이나 비어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키움은 급하게 다른 팀의 잉여 선발 자원을 찾게 되었고, 마침 정찬헌이 토종 선발 로테이션을 시즌으로 소화하기엔 허리통증으로 1주일에 한 번 등판할 수 있는데다 부침까지 겪는지라 이민호, 임찬규에게 밀리고, 부진하고 있어서 자리가 없었던 상황이다.[8]
일단 2021년부터 보자면, 정찬헌은 키움 트레이드 이후에도 부진하다가 삼성전을 통해서 부활하며, 올해의 재기상을 수상했으나, 서건창은 커리어로우를 찍으며, FA 신청을 포기했다.
2022년 이 시기에는 정찬헌, 서건창 모두 부진한 해이다. 서건창은 2021년 보다도 성적이 하락하며, 방출을 걱정해야할 정도로 커리어로우만 갱신했고, 정찬헌은 시즌 막판에 끔찍하게 부진했고,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승선하지 못 했다. 시즌이 끝나고 둘 다 WAR은 처참했고, 서건창은 이번 해도 FA 신청 포기. 정찬헌은 리그에서 귀한 좌완투수도 아니라서 FA 신청을 했으나, 원소속팀 키움은 물론이고, 어느 팀도 정찬헌을 원하는 이가 없어 어느 팀과도 계약하지 못 하고 있었다.
2023년, 서건창은 절치부심해 시범경기에서 4할이 넘는 맹타를 자랑하며 당당히 2루수 주전자리를 꿰찼으나, 정찬헌은 시범경기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팀을 찾지 못 하고 있었다. 결국 사인앤트레이드까지 결정했으나 우완인데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되고 나니, 서건창은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일 뿐이라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해줄 정도로 2022년 만큼이나 부진에 빠졌고, 아예 타선의 혈을 꽉 막는 적폐로 낙인 찍혀, 선발 로스터는 물론이고, 아예 2할 초반을 기록하며 자기 선배 마냥 멘도사라인을 찍다가 1군에서 말소 후 2군으로 떨어지며, 진짜로 방출까지 걱정해야할 시즌이 되었다. 자기한테는 선배이자, 은사나 다름 없는 염경엽까지 포기한 상황이라[10] 여차하면 은퇴를 생각해야할 정도로 최악의 부진에 빠져있다.
롯데에서 서준원이 성착취물 제작 사건으로 나가리 된 뒤, 정찬헌은 계약썰이 돌았으나 결국 스프링캠프가 끝난 뒤인 3월 27일에 원소속팀인 키움과 계약했다.[11] 처음에는 2년 계약금 1.5억, 연봉 1억 옵션 1억 등 총액 4.5억을 후려쳐서 제안했는데, 키움이 2년 계약금 2억, 연봉 2억, 옵션 최대 2.6억 등 총액 8.6억으로 계약금을 더 올려서 계약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각성했는지, 첫 등판한 어린이날 시리즈에서 SSG전 6이닝 1실점 퀄스, 5월 11일 엘지전 6이닝 1실점 퀄스, 5월 17일 두산전 4이닝 6실점, 5월 23일 KT전 6이닝 3피안타 1사사구 무실점 퀄리티스타트 시즌 첫 승 등으로 퀄스를 5번이나 기록하고, 21일 삼성전에서 7이닝 6피안타(2루타 1) 무실점을 기록하고 퀄스플, 6월 27일 기아전에서는 6월 15일 4이닝 6실점 하며 부진하던 걸 극복하고, 다시 6이닝 1실점 퀄스를 찍으며 2승을 수확하고, 개인 통산 50승을 기록했다.
키움이 올 시즌 윈나우를 외치며, 야심차게 영입한 외부 FA 선수들은 영 시원찮은 모습만 보이고 있고, 자유 계약 선수들은 임창민을 제외하고 죄 다 망해버린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내부 FA 중에서 사실상 키움 투수 계약 중에서 FA 최고의 계약 선수라고 평가하고 있다. 지난 시즌 막판부터 부진하여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제외되고 올 시즌 초까지 FA 미아 위기까지 겪었던 설움을 생각한다면 인생사 새옹지마. 여기에 WAR도 1.48로 커리어하이를 찍을 전망이다.
전반기만 보더라도, 정찬헌은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순항하고 있으나 서건창은 FA는 고사하고, 5월 14일을 마지막으로 아예 1군에서 조차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FA까지 계약하고 커리어하이를 찍고 있는 정찬헌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며 또 키움의 승리로 끝났다.
10년 전에 비해, 당시 트레이드를 주도한 이장석은 횡령으로 영구제명 되어 대주주 역할만 하고 있는데, 키움은 선발투수 2명이 동시에 사라지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도 차명석의 제안으로 MVP 출신 2루수까지 보냈으나, 결론적으로 부진했던 한현희의 빈자리를 정찬헌이 어떻게든 매꾸어주면서 팀이 와일드카드전에 진출하는데 한 몫을 했고, 엘지는 신민재라는 걸출한 2루수 자원을 얻으면서 서건창의 빈자리를 확실하게 지워버렸다.
3. 그외
2022년 패넌트레이스는 9월부터 5위 KIA가 연패를 거듭함에 따라 8월까진 소강상태였던 5강 경쟁이 매우 치열해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LG 잔여경기 일정이 5위 KIA 3경기, 6위 NC 4경기 등 5강 주요경쟁팀 위주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 5위를 노리는 KIA, NC, 롯데, 삼성 입장에선 자기들 경기가 없을 때, LG가 경쟁팀을 잡아줄때마다 사랑해요 LG를 외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당장 2022년 9월 30일 KIA 타이거즈의 경우 경기가 없었으나, LG가 NC를 잡아줌으로써 사랑해요 LG를 외칠 수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LG 호구 트레이드의 주요 수혜자가 KIA 였던 것을 생각하면 재밌는 결과이긴 하다.[1] 특히 이장석은 다른 분야에서도 LG와 악연이 있다. 반도체 빅딜 건으로 LG전자와 관계가 있는데 이는 이장석 항목 참조.[2] 그렇지만 의외로 LG와의 트레이드에서 손해를 많이 본 팀도 KIA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용규 이전까지는 손해를 봐왔지만, 2000년대에 이용규-김상현-박기남으로 3연속으로 이득을 본 덕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3] 여담으로, 1993년 스토브리그에 해태 - LG 시절 트레이드 중 한대화와 김상훈이 포함된 빅딜에서 LG가 해태를 이긴 적이 있는데, 이는 LG로서도 그 해의 운명을 바꿨던 트레이드라 지금도 자주 회자가 되는 트레이드다. 이 때까지만 해도 LG는 야구판 트레이드 시장에서 스마트하게 움직인다는 평이 많았다.[4] 2014년 MBC SPORTS+에서 4월 11일 경기가 껴있는 3연전 때 보여줬다.[5] 2016 롯데는 NC를 상대로 16경기 중 1번(2번째 경기)만 이겨서 역시나 1승 15패. 마산구장에서는 롯데팬이 결국 "느그가 프로가?"라고 조롱플래카드를 걸어 버렸다.[6] 그 이후에 활약은 좀 빛이 바래긴 하지만, 그래도 LG시절보다는 낫다.[7] 사실 넥센의 선수층이 너무 얇아서 ###이 선발로 뛰어야 했던 감이 있기도 하다.[8] 당시 엘지는 선발투수를 돌만한 선수가 있긴 있었다. 문제는 당시 엘지는 선발이 우완투수 뿐이였고, 좌완투수들은 신인이 많아서 경험치를 먹였어야 할 때라서 그나마 로테를 돌 수 있는 5선발을 추리다 보니 가장 부진에 빠져 있던 정찬헌이 있었던 것.[9] SSG 시절 2년 58경기 WAR 0.19(...)[10] 물론 염건창 아니랄까봐, 서건창한테 계속래서 기회를 주긴 주는데 그 기회를 열심히 차버리는 중이다.[11] 키움 쪽에서 먼저 연락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