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0 16:49:32

소소경

소소경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61번}}}
김대성
(1996~1997)
소소경
(1998~2000)
김주철
(2001~2005)
해태/KIA 타이거즈 등번호 35번
권오성
(1996~1999)
소소경
(2001~2002)
진필중
(2003)
KIA 타이거즈 등번호 38번
손혁
(2002)
소소경
(2003~2004)
홍현우
(2005)
LG 트윈스 등번호 20번
양현석
(2004)
소소경
(2005~2006.6.29.)
베로커
(2006.7.27.~2006)
}}} ||
파일:external/people.mygo.co.kr/uni_12984_0.jpg
소소경
蘇紹卿 | So-gyeong So
출생 1979년 7월 19일 ([age(1979-07-19)]세)
대구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구옥산초 - 성광중 - 대구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8년 2차 1라운드 (전체 8번, 해태)
소속팀 해태-KIA 타이거즈 (1998~2004)
LG 트윈스 (2005~2006)
지도자 대전유천초등학교 야구부 코치
대전유천초등학교 야구부 감독 (2014~2020)
1. 개요2. 선수 경력3. 연도별 성적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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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2. 선수 경력

대구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1997년 제19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조용준-강철민의 순천효천고에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동기생 투수 김진웅이 최우수선수로 선정됐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1차지명을 받고 계약금 2억4천만원, 연봉 2천만원에 입단계약을 마쳤다. 하지만 연고지 팀인 삼성 라이온즈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해태 타이거즈의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계약금 9천만원, 연봉 2천만원에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보기 드문 화교 선수로 알려져 있다.[1][2]

지명 당시 187cm, 85kg의 훌륭한 신체 조건을 갖추고 최고 구속 145km/h의 공을 던지는 우완 정통파 유망주로 유명했으나, 프로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99 시즌 들어 이대진, 이강철, 권명철의 부상[3], 임창용의 삼성 이적, 김상진의 위암 투병으로 인해 고졸 2년차의 몸으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고[4], 김상진이 세상을 떠난 1999년 6월 10일 수원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 7이닝 4피안타 2실점을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되었지만 통산 58경기 5승 9패 1홀드 ERA 6.01의 초라한 기록을 남겼으며, 2002년과 2003년에는 1군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 2004 시즌 후 LG 트윈스트레이드됐다. 하지만 LG에서도 2경기에 등판해 8점 대의 ERA를 찍고 2006년에 방출당하며 은퇴했다.

3.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1998 해태 12 15⅔ 0 0 0 0 6.32 16 0 12 0 10 1.79
1999 15 69⅔ 4 6 0 0 5.04 69 8 35 4 35 1.49
2000 18 53 1 2 0 1 6.28 62 8 31 5 35 1.76
2001 해태 / KIA 2 5⅓ 0 0 0 0 1.69 5 1 2 2 4 1.31
2002 KIA 1군 기록 없음
2003
2004 9 13⅔ 0 1 0 0 10.54 20 1 8 2 11 2.0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5 LG 2 4⅓ 0 0 0 0 8.31 4 0 4 1 4 1.85
2006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6시즌)
58 161⅔ 5 9 0 1 6.01 176 18 92 14 99 1.66

4. 여담

5. 관련 문서


[1] 또 한 명은 마찬가지로 중화민국 국적의 화교 출신 야구선수 유혜정. 이쪽은 포항 출신이다.[2] KBO에서는 일본프로야구의 규정과 동일하게(참고로 이 규정이 만들어진 건 장훈 때문이다.) 외국인이라도 중학교 이상 학교에 다니면서 대한야구협회의 등록선수로 활동하였다면 국내선수에 준하여 신분을 인정받는다. 그리하여 최초의 대만 국적 외국인 KBO 리그 선수는 2018년 NC 다이노스에서 영입한 좌완투수 왕웨이중이 되었다.(대만 리그에서 뛰는 선수를 직접 영입하기 위해서는 해당 선수 연봉의 2.5배를 원 소속 구단에 이적료로 지불해야 하고 선수에게는 연봉의 1.5배 이상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CPBL의 규정 때문에 그 동안에는 대만 리그 출신 선수의 직접적인 영입이 없었다. 다만 대만 리그가 아닌 미국에서 뛰다가 온 왕웨이중도 이적료가 좀 오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3] 이대진과 이강철은 하와이 스프링캠프에서 각각 어깨와 무릎 부상을 당했고, 1998년 말 최훈재와 트레이드되어 두산 베어스에서 이적해온 권명철은 시범경기에서 발목 부상을 당했다.[4] 1999 시즌 당시 해태 마운드는 1996년 박재홍의 지명권과 트레이드된 최상덕을 비롯해 양준혁과 함께 삼성에서 이적해온 곽채진, 고졸 5년차 박진철, 대졸 3년차 오철민, 대졸 2년차 곽현희, 대졸 신인 유동훈, 그리고 소소경 등 신진급 선수들이 힘겹게 지키고 있었다.[5] 사실 LG 트윈스에서 이원식과 소소경을 받는 조건으로 트레이드한 목적은 희대의 FA 먹튀였던 홍현우를 처분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홍현우 본인도 LG에 친정팀인 KIA에서 은퇴하고 싶은 의사를 밝힌 바 있었고. 하지만 홍현우는 친정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 2005 시즌 후 KIA에서 방출당했으며, 엉뚱하게도 홍현우와 함께 트레이드된 이용규가 대박을 터뜨렸다.[6] 이 선수는 이후 천안북일고 2학년 때 새로 창단된 소래고로 전학하여 졸업 후 동아대를 거쳤지만 프로 진출은 실패했고 현 대원중학교 코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