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8 17:10:45

곽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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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71 이숭용 [[감독#s-1.1|
]] · 72 강병식 · 74 조원우 · 76 이대수
· 77 임재현 · 79 김종훈 · 83 스즈키 · 84 조동화
· 88 송신영 · 91 이승호 · 98 배영수'''
2군
'''70 손시헌 [[감독#s-1.1|
]] · 73 오준혁 · 75 김이슬 · 80 와타나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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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이윤재 · 81 양지훈 · 87 정진식
컨디셔닝 파트
1군 고윤형 · 곽현희 · 길강남 · 김상용 · 송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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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군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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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현희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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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KIA 타이거즈 등번호 17번
조계현
(1990~1997)
곽현희
(1998~2004)
이동현
(2005~2008)
KIA 타이거즈 등번호 84번
백인호
(2001~2002)
<colcolor=#fff> 곽현희
(2006~2016)
배요한
(2017~2022)
LG 트윈스 등번호 83번
김인호
(2009~2014)
곽현희
(2018~2020)
임훈
(2021~)
SSG 랜더스 등번호 121번
유영하
(2014)
곽현희
(2022~)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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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곽현희 2024 프로필.png
<colbgcolor=#ce0e2d><colcolor=#fff> SSG 랜더스 No.121
곽현희
郭鉉熙 | Kwak Hyeonhee
출생 1973년 8월 6일 ([age(1973-08-06)]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성동초 - 배재중 - 배재고 - 영남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6년 2차 4라운드 (전체 30번, 해태)[1]
소속팀 해태-KIA 타이거즈 (1998~2004)
지도자 주니치 드래곤즈 연수코치 (2005)
KIA 타이거즈 2군 트레이닝 코치 (2006~2007)
KIA 타이거즈 1군 트레이닝 코치 (2008)
KIA 타이거즈 2군 트레이닝 코치 (2009~2010)
KIA 타이거즈 1군 트레이닝 코치 (2011~2013)
KIA 타이거즈 3군 재활코치 (2014)
KIA 타이거즈 2군 트레이닝 코치 (2015~2016)
LG 트윈스 1군 트레이닝 코치 (2018~2019)
LG 트윈스 2군 트레이닝 코치 (2020)
SSG 랜더스 1군 트레이닝 코치 (2022~)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1996~1997)
파일:SSG 랜더스 홈페이지 로고.svg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연도별 성적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 소속 투수. SSG 랜더스 1군 컨디셔닝 코치.

2. 선수 경력

73년생 92학번 황금세대 출신. 145km/h 빠른 공을 자랑하던 투수로 배재고와 영남대를 졸업했다. 영남대 시절 동기 전병호 다음가는 활약상을 보이며 95년 추계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덕분에 프로구단에 어느 정도 어필을 하는 데 성공하여 졸업을 앞둔 1995년 말 해태 타이거즈에 신인지명을 받게 된다. 그러나 당시 조계현, 이강철, 이대진, 김정수 등의 뛰어난 투수들이 많았던 해태인지라 상무에 입단하여 군 복무를 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상무는 순수 아마야구단이었기에, 프로 입단 전에 미리 병역을 해결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듯하다.

상무로 가서도 실업야구 감투상을 수상하는 등 활약을 펼쳐 기대치를 한껏 올려놓은 곽현희는, 전역 후 1998년 계약금 1억 원에 입단했다. 1억이라는 계약금도 계약금이지만[2], 직전 시즌 삼성으로 현금 트레이드됐던 프랜차이즈 스타 조계현의 등번호인 17번을 구단에서 곽현희에게 줬으니, 해태가 그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2년 전과 달리 곽현희가 입단하던 시점 해태의 투수진은 슬슬 맛이 가고 있던 즈음이었다. 조계현이 이적했고 김정수는 노쇠화가 오고 있었으며, 이 시점 내세울 전력이라곤 선발 이강철, 이대진, 김상진에 중무리 임창용 뿐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후, 이 전력이 모두 사라지며[3] 전년도까지 아직 신인으로 계투로나 기용되던 곽현희는 졸지에 해태의 프론트라인 선발이 되었다.[4]

1999년, 해태 타이거즈는 1번 정성훈으로 시작하여 장성호-홍현우-트레이시 샌더스-스토니 브릭스-양준혁-7번 이호준으로 이어지는 엄청난 화력을 자랑했다. 거기에 곽현희는 11승을 거뒀다. 그런 해태의 팀 성적은 팀 홈런 전체 1위, 그리고 정규시즌 전체 7위였으며, 10승 투수 곽현희의 평균자책점은 6.15였다. 이 해 곽현희는 최초의 6점대 10승 투수 기록을 세웠으며, KBO 역대 단일시즌 최다 피홈런 기록을 경신했다.[5]

이 해 해태의 투수진은 곽현희 말고도 유동훈, 오봉옥, 최상덕 정도가 있었으나 유동훈은 쌩신인이었고 최상덕은 부상에서 막 복귀한 직후였으며 오봉옥은 제일 잘 던졌다지만 전년도까지 임창용이 보여주던 그것에는 한참 밀렸다. 더불어 곽현희 포함 곽채진, 오철민, 박진철, 소소경 등 울며 겨자먹기로 기용한 1.5군급 신진 투수들... 덕분에 99년 해태는 막강한 타격을 앞세웠음에도 7위에 그쳤으며, 6점대 10승 투수 곽현희는 99해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선수가 되고 말았다.

이후에도 팀에 투수가 없던 사정상 선발로 자주 나왔지만, 부상 및 공이 약한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등판 빈도가 줄어들며 크게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3. 지도자 경력

결국 2004 시즌 종료 후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한다. 은퇴 후 KIA 타이거즈에서 계속 코치를 했다. 2013 시즌 중 1군 트레이닝 코치였으나, 3군 재활코치인 홍세완과 보직을 바꿔 2014년에는 3군 재활코치를 맡았다.

2018 시즌을 앞두고 LG 트윈스의 트레이닝 코치로 영입되었다. 2020 시즌 후 팀을 떠났다.

2022 시즌을 앞두고 SSG 랜더스 1군 트레이닝 코치로 영입되었다. 2023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팀을 떠난 줄 알았지만 2024 시즌을 앞두고 스프링캠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1996 해태-KIA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1997
1998 26 58⅓ 2 0 0 - 5.09 59 9 22 8 41 1.39
1999 36 146⅓ 11 11 4 - 6.15 171 31
(1위)
45 12 104 1.48
2000 22 105 7 8 1 1 4.89 101 18 39 10 84 1.33
2001 3 5⅓ 0 0 0 0 5.06 7 0 6 1 5 2.44
2002 25 32⅔ 2 0 0 1 4.13 31 6 14 3 27 1.38
2003 1 0 0 0 0 0.00 1 0 1 0 0 6.00
2004 4 6 0 0 0 0 16.50 12 2 5 1 4 2.83
KBO 통산
(7시즌)
117 354 22 19 5 2 5.57 382 66 132 35 265 1.45

5. 여담

  • 해태 타이거즈로 원치 않는 트레이드를 당하게 된 양준혁이 이삿짐 트럭에 탑승해 광주광역시 동림동의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양준혁의 영남대 후배들인 곽현희와 오철민이 청소도구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으며 이삿짐 운반과 정리, 청소 등을 이들이 했다고 한다. 양준혁은 이 모습이 기억에 남았는지 전설의 타이거즈 포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일화를 종종 이야기하며 최상덕은 오철민, 곽현희 뿐만 아니라 최상덕 본인 포함 선수들이 몇 명 더 이사현장에 있었다고 했다.
  • 아들 곽민승도 야구선수다. 아버지와 같은 우완 투수로, 2022년 기준 광주일고 3학년이라 2023년 신인드래프트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지명받지 못하고 동국대로 진학했다. 곽민승은 2023년 8경기에 등판하여 1승 무패, 24.1이닝 36탈삼진 16피안타 3피홈런 8볼넷 3몸에맞는볼 평균자책 3.75를 기록했다.
  • 공이 빠른 게 강점이었는데, 구위가 약해서 잘 얻어맞았다고. 대략 먹튀시절 송은범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6. 관련 문서



[1] 졸업 직후 상무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한 관계로 실제 입단은 전역한 1998년에 했다. 당시 상무는 프로선수의 입단이 불가능했다.[2] 당시 경제위기로 물가가 막 상승하고 있었다지만, 해태 구단 사상 계약금 1억을 받은 건 불과 2년 전 장성호가 최초였을 정도다. 해태가 부도 상황이었던 걸 생각하면 정말 있는 돈 없는 돈 다 짜내서 특급대우를 해줬다고 봐도 무방했다.[3] 이강철, 이대진은 그간 굴러온 탓에 부상으로 일찌감치 시즌아웃되었으며 임창용은 삼성으로 이적, 김상진은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하고 말았다.[4] 시즌 초에는 마무리로 낙점되었지만, 이후 곽채진과 바꿔 선발로 기용되었다.[5] 이후 단일시즌 최다 피홈런 기록은 안영명이 경신했으며, 6점대 10승 투수 기록은 유희관이 나오며 유이한 기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