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0 00:03:01

트레이시 샌더스

파일:attachment/haitai-3.jpg
이름 트레이시 샌더스 (Tracy Sanders)
생년월일 1969년 7월 26일
국적 미국
출신지 노스캐롤라이나 개스토니아
포지션 1루수
투타 우투좌타
소속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90~1993)
샌디에이고 파드리스(1993)
뉴욕 메츠(1994~1995)
피츠버그 파이어리츠(1997~1998)
해태 타이거즈(1999)
피츠버그 파이어리츠(2000)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43번
김형성(1997~1998) 트레이시 샌더스(1999) 제이슨 배스(2000)


1. 소개2. 선수 생활3. KBO리그의 아담 던

1. 소개

역대 타이거즈 한시즌 최다 홈런 타자
2할 중반의 타율에도 불구하고 출루율 4할 OPS 9할의 묘기에 가까운 장타력과 눈야구를 보여준 선구자

해태 타이거즈에서 활동한 외국인 선수. 타이거즈 역사상 단일시즌 최다 홈런 기록자(40홈런).[1] 거기다가 현재 KBO에서 단 5명뿐인 한시즌 40홈런 좌타자이다. 다른 네 명은 이승엽과 2015년 40-40을 기록한 에릭 테임즈, 그리고 2018년 40홈런 고지를 정복한 김재환한동민. 여기에 최초로 40홈런을 넘긴 외국인 좌타자이기도 하다. 30홈런으로 줄여도 김기태-이승엽-양준혁에 이어 KBO 리그 4번째로 좌타자 30홈런을 달성하였다.

2. 선수 생활

1999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된다. 시범 경기에서부터 2개의 홈런포를 가동하며 한껏 화력을 과시했고, 시즌 초반 이승엽이 두각을 드러내기 전까지 이병규[2]와 홈런왕 경쟁을 했다. 그러나 이승엽이 5월부터 미치기 시작하면서 홈런을 몰아치기 시작하며 추월을 허용하고, 결국 40홈런으로 그 해 홈런 3위를 기록하였다. 이 해 해태는 팀 홈런 210개[3]를 쳤는데, 이는 양준혁(32홈런), 홍현우(34홈런), 장성호(24홈런), 스토니 브릭스(23홈런)[4]과 함께 그의 도움이 매우 컸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고도 팀 순위가 7위…[5]

그러나 이듬해 해태는 재계약을 하지 않았는데, 그가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요구했다는 설이 있다. 해태는 2000년 이대진, 최상덕, 성영재가 꽤 준수하게 활약한 마운드에 비해, 장성호헤수스 타바레스 이외에는 믿을만한 타자가 없을 정도로 타선이 폭망하여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외국인 타자 교체만 6번 한 것을 생각하면[6] 그와 재계약하지 못한 것을 김응용감독은 아쉬워했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한 해 뛰어난 성적 올리고 사라진 외국인 선수 같아 보이지만….

3. KBO리그의 아담 던

1999년 그의 성적은 101안타 40홈런 105볼넷 133피삼진 94타점 타율 0.247, 장타율 0.575, 출루율 0.408, OPS .983로, 그는 그 당시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철저한 OPS 히터이자 극도의 눈야구를 했던 장타력 있는 타자였다. 비록 133피삼진은 당시 피삼진 1위이였지만,[7] 105볼넷은 당시 볼넷 2위다. 거기에 0.247라는 낮은 타율임에도 불구하고 출루율은 4할이 넘어간다. 홈런도 40홈런. 그 해 샌더스를 지칭하는 말은 스탯을 홈런/볼넷/삼진으로 3등분한 선수. OPS도 0.983으로 이 해 타율 0.328에 30-30, OPS 0.940을 기록한 제이 데이비스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보였다. 여러가지로 한국의 아담 던이라는 말이 잘 와 닿는 선수라 할 만했다.

또한 구장을 가리지도 않았다. 잠실에서만 9홈런을 쳤으며 이 해 해태는 잠실 19경기에서 23홈런을 쳤다. 보이는 타율만이 다가 아니었던 선수. 그놈의 타율만 4~5푼 정도만 높았어도[8][9][10]

그렇지만 세이버매트릭스라곤 전혀 모르던 국내 야구인들인 샌더스를 단지 타율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그저그런 공갈포 타자로 평가절하했다.[11] 사실 당시는 메이저리그조차도 세이버매트릭스를 무시하던 시대였던지라, 볼넷과 출루율의 가치가 무시당할 때였다.[12] 이런 유형의 타자를 본 적이 없던 한국 야구는 이 선수에게 끝까지 의구심을 드러냈고, 이는 표면적으로는 금액 차이로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하지만 재협상의 결렬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 선수와 굉장히 비슷한 유형의 타자가 2017년 KBO리그에 등장했다.[13]


[1] 10년 후인 2009년 김상현이 도전했지만 깨지 못했다.(36홈런)[2] 물론 1999 시즌이 타고투저이기도 했고, 이병규는 이 해 30-30을 달성하는 등 장타력이 있었다.[3] 그 당시 팀 홈런 역대 1위, 2017년 현재 역대 3위.[4] 이 당시, 이 타자는 정말 심각하게 스탯이 변태였다. 383타석에서, 16사사구에 85삼진을 기록하면서 타율은 .283 홈런은 23개...[5] 이 당시 해태의 투수진이 그야말로 안습의 결정체였다. 곽현희(146⅓이닝 11승 11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6.15), 곽채진(109⅓이닝 8승 7패 8세이브, 평균자책점 4.77), 최상덕(121⅔이닝 7승 5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5.33), 유동훈(155⅓이닝 7승 9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4.75), 오봉옥(116⅓ 이닝 6승 9패 8세이브, 평균자책점 3.40)수준이였다. 당시 FA제도의 시작으로 이강철, 조계현 등이 삼성으로 팔려나가고 그나마 있던 이대진은 혹사로인한 침체기, 임창용은 트래이드되어 양준혁이 해태로 왔었고, 김상진은 위암으로 인해 병원에 있다가 시즌 중에 결국 세상을 떠났다. 즉 투수준이 폭망수준이었던 것.[6] 에디 피어슨, 호세 말레브, 아르키메데스 포조, 제이슨 배스, 케이스 미첼, 헤수스 타바레스. 그나마 타바레스가 타율 0.334에 도루 2위(31개)를 기록했다. 경기당 도루 수는 그해 도루왕이었던 정수근보다도 많았다.[7] 그 당시 역대 단일시즌 최다삼진 기록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에 톰 퀸란이 173삼진(...)을 당하며 기록을 경신했다.[8] 아닌게 아니라 저 정도 성적에 타율이 0.280~0.290만 되었어도 절대 놓칠 수 없는 타자이다. 그 유명한 타이론 우즈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 스탯이기 때문이다.[9] 사실 저정도 타자가 타율을 0.280까지 끌어올린다면 40홈런 그 이상을 쳤을것이다. 순수 장타율만 3할이 넘는 타자에 안타의 약 40%가 홈런이니...[10] 샌더스의 1999년 스탯에서 타수를 그대로 두고 타율을 0.280으로 끌어올리면 안타는 총 114개로 13개를 더 치게 되는데, 안타 대비 홈런 비율이 그대로면 약 5.1홈런이 추가된다. 이해 한화를 우승으로 이끈 로마이어의 클래식 스탯은 0.292-45홈런-109타점[11] 당장 세이버매트릭스라고 부르기도 뭐한, 가장 간단한 버젼인 ops가 kbo 홈페이지에 올라온게 2010년이다. 그리고 2007년 홈런왕 심정수는 war 5.15에 wrc+ 153.8라는 세이버 매트릭스 기준 훌륭한 성적을 내고도 타율이 0.258이라는거 하나로 엄청난 저평가를 당했다.[12] 빌리 빈이 이끌던 오클랜드가 유일하게 세이버매트릭스를 활용하던 팀이었다.[13] 그러나 이후 로맥은 모든 부분에서 뛰어난 타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