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디 펨버튼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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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디 펨버튼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번호 18번 | ||||||||||||||||||||||||||||||||||||||||||||||||||||||||||||||||||||||
데이브 하스 (1993) | → | 루디 펨버튼 (1995) | → | 키메라 바티 (1999) | |||||||||||||||||||||||||||||||||||||||||||||||||||||||||||||||||||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57번 | |||||||||||||||||||||||||||||||||||||||||||||||||||||||||||||||||||||||
브라이언 바크 (1995) | → | 루디 펨버튼 (1995) | → | 켄 그런트 (1996) | |||||||||||||||||||||||||||||||||||||||||||||||||||||||||||||||||||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44번 | |||||||||||||||||||||||||||||||||||||||||||||||||||||||||||||||||||||||
대니 다윈 (1991~1994) | → | 루디 펨버튼 (1997) | → | 마이클 콜맨 (1997~1999) | |||||||||||||||||||||||||||||||||||||||||||||||||||||||||||||||||||
KIA 타이거즈 등번호 50번 | |||||||||||||||||||||||||||||||||||||||||||||||||||||||||||||||||||||||
최철민 (1996) | → | 펨버튼 (2002) | → | 최건호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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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디 펨버튼 Rudy Pemberton | |
본명 | 루디 엑토르 펨버튼 Rudy Hector Pemberton |
출생 | 1969년 12월 17일 ([age(1969-12-17)]세) |
산 페드로 데 마코리스 | |
국적 | [[도미니카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산 페드로 데 마코리스 고등학교 |
신체 | 185cm, 83kg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87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DET) |
소속팀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95) 보스턴 레드삭스 (1996~1997) 세이부 라이온즈 (1997~1998) KIA 타이거즈 (2002) 청타이 코브라스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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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디 펨버튼은 MLB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보스턴 레드삭스,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를 거쳐 2002년 KIA 타이거즈에서 뛰던 외국인 선수이다. 주 포지션은 좌익수와 지명타자였다.2. 선수 경력
도미나카 출신인 펨버튼은 1995년 디트로이트 소속으로 빅리그에서 12경기를 뛰며 9안타 3타점 타율 .300을 기록했다.이듬해 보스턴으로 이적해 13경기 41타수 21안타 1홈런 10타점에 타율 .512, 출루율 0.556, 장타율 0.780, OPS 1.336을 기록하며 13경기만에 WAR 1.0을 기록하는 등 빼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이듬해 1997년에도 보스턴에서 뛰면서 27경기 출장하였지만 63타수 15안타 2홈런 10타점에 타율 0.238, 출루율 0.314, 장타율 0.365, OPS 0.679를 기록하고는 그 해에 방출 당하였다.
그 후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2년간 뛴 후 마이너리그 및 멕시칸리그를 전전하다 2002년 기아 타이거즈에 워렌 뉴선의 대체 선수로 입단했다.
원래 기아는 LG 출신인 브렌트 쿡슨을 영입 하려고 했다. 하지만 쿡슨은 빅리그 승격 가능성을 점치며 협상을 미루는 사이에 기아행이 무산됐다. 대신 기아가 선택한 선수가 바로 185cm, 83kg의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는 루디 펨버튼이었다.
펨버튼은 2002년 6월 8일 현대 유니콘스전에 4번타자로 출전하여 KBO 무대에 데뷔하였다. 13타석 만에 첫안타를 홈런으로 신고할 만큼 초반에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6월 15일 현대전에서 KBO 통산 5번째로 1이닝에 두 개의 홈런을 때려내는 활약을 보이는 등 파워 면에서 인정받는 활약을 보였다. 펨버튼은 변화구 공략에 성공하며 초반 부진에서 벗어나 2002 시즌 장타력이 약했던 기아의 4번 타자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갑작스레 한국 리그에 들어오며 적응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고, 근성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으나,[1] 기아에서 유일하게 장타력이 있던 그에게 투수들이 집중 견제를 하기 시작하였고 몸에 맞는 볼이 급증하였다.[2][3] 그래도 5월 말에 퇴출되었던 워렌 뉴선과 비교했을 때는 그나마 괜찮은 스탯을 기록한 편이며 sWAR면에서도 뉴선은 0에 수렴하는 반면 펨버튼은 2.00에 wRC+도 112.9로 리그 적응만 완벽히 하면 더욱더 큰 활약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했으나,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하며 KBO 무대를 떠나게 되었다.
그 후 한국을 떠난 팸버튼은 멕시칸리그에서 3년간 더 출장하다가, 2006년 대만리그를 마지막으로 은퇴하게 된다.
3. 여담
펨버튼은 야구를 하기 전 킥복서로 활약할 정도로 싸움을 잘했다고 한다. 2002년 8월 20일 대구 삼성전에서 삼성 임창용과의 벤치클리어링 때 싸움을 말리던 서정환 코치를 밴치프레스 할 때의 역기마냥 냅다 꽂아버리는 힘을 자랑했다.4. 연도별 성적
역대 성적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
1995 | DET | 12 | 30 | .300 | 9 | 3 | 1 | 0 | 3 | 3 | 0 | 2 | .467 | .345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
1996 | BOS | 13 | 41 | .512 | 21 | 8 | 0 | 1 | 3 | 3 | 0 | 2 | .467 | .344 | ||
1997 | 27 | 63 | .238 | 15 | 2 | 0 | 2 | 10 | 8 | 0 | 7 | .365 | .314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
1997 | 세이부 | 25 | 63 | .175 | 11 | 5 | 0 | 1 | 5 | 3 | 2 | 7 | .302 | .257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
2002 | KIA | 75 | 271 | .255 | 69 | 13 | 1 | 11 | 48 | 28 | 23 | 45 | .351 | .432 | ||
<colbgcolor=#FFFF99> MLB 통산 (3시즌) | 52 | 104 | .346 | 36 | 10 | 1 | 3 | 20 | 19 | 3 | 11 | .515 | .395 | |||
NPB 통산 (1시즌) | 25 | 63 | .175 | 11 | 5 | 0 | 1 | 5 | 3 | 2 | 7 | .302 | .257 | |||
KBO 통산 (1시즌) | 75 | 271 | .255 | 69 | 13 | 1 | 11 | 48 | 28 | 23 | 45 | .351 | .432 |
5. 관련 문서
[1] 입국 초기 몸상태가 좋지 않아 경기 중에 자주 구토를 하였으나 휴식을 권하는 코칭스태프를 말리고 출장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였다.[2] 72경기만 출장했는데 19개의 몸에 맞는 볼을 기록하였다. 이는 144경기 체제로 환산하면 거의 38개는 나오는 페이스로, 사구를 많이 기록하기로 유명한 최정도 2009시즌 99경기 출장하여 22개를, 2019시즌에는 141경기 출장하여 26개를 기록한 것을 보면 심상치 않은 페이스였긴 했다.[3] 심지어 임창용에게 사구를 맞았을 때는 임창용에게 바로 달려드는 바람에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