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6 13:25:39

앤서니 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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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코치앤서니.jpg
KIA 타이거즈 No.89
앤서니 앨런 르루 (Anthony Allen Lerew)
생년월일 1982년 10월 28일 ([age(1982-10-28)]세)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png
신체 193cm, 102kg
출신지 펜실베이니아 주 칼리슬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01년 아마추어 드래프트 11라운드 전체 345번
소속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5~2009)
캔자스시티 로열스 (2009~2010)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1)
KIA 타이거즈 (2012~2013)
요크 레볼루션 (2014)
솔트레이크 비스 (2014)
요크 레볼루션 (2015)
티부로네스 데 라 과이라 (2018)
지도자 KIA 타이거즈 육성군 투수코치·외국인 선수 어드바이저 (2019)
KIA 타이거즈 1군 불펜코치 (2019.5.17~ )
1. 개요2. 선수 시절
2.1. KBO 입성 이전2.2. KIA 타이거즈 시절
2.2.1. 2012 시즌2.2.2. 2013 시즌
2.3. 한국을 떠난 뒤
3. 지도자 시절
3.1. 2019 시즌
4. 플레이 스타일5. 여담6. 연도별 성적

1. 개요

미국 출신의 우완투수로, 2012 시즌부터 2013 시즌 전반기까지 활약했던 KIA 타이거즈의 외국인 투수였고 현재는 1군 불펜 투수코치를 맡고 있다.

2. 선수 시절

2.1. KBO 입성 이전

펜실베니아 딜스버그에서 자란 앤서니 르루는 고교 시절에는 투수 뿐만 아니라 내야수, 외야수를 전전했으며 주 포지션은 외야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애틀랜타에 드래프트될 당시에는 스카우트가 르루의 투수로써의 잠재력을 보고 투수로 영입하였다고 한다. 당시 93마일(약 150km)의 구속을 가졌었다고. 마이너리그에서는 주로 선발로 뛰다 2005년에 처음으로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었을 때는 불펜으로 뛰었다. 2년간의 수술 공백과 팀 이적 등을 겪었다.

캔자스시티 소속이었던 2010년에 데뷔 6년차에 들어서 비로소 메이져리그 첫 승을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올렸다. 그것이 앤서니의 처음이자 마지막 메이저리그 승리였다고. 베네수엘라 윈터리그에서는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적이 있었으며, 그 활약을 계기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계약을 하였다. 그러나 다른 데니스 홀튼의 활약에 가려져 중용이 크게 되지 않으면서 일본에서는 좋은 활약을 하지 못하였다. 이 시기에 아주 짧게 같은 팀에 있었던 이범호를 만났다고.

2.2. KIA 타이거즈 시절

파일:KIA 타이거즈 앤서니 르루.jpg

2012 시즌 새로 부임한 선동열 감독이 2009년부터 KIA 선발 투수진의 한 축을 세웠던 용병 아킬리노 로페즈를 버리면서까지 좌완 용병투수를 간절히 찾았었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영입한 선수들 중 한명이 우완 투수였던 앤서니 르루였다.[1] 사실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물색했던 용병 중 한명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 등록명은 '앤서니'. 국내에서의 별명은 등록명에서 따온 '앤순규' 혹은 그의 성(姓)을 가지고 언어유희로 따온 '비데'[2] 수염을 특이하게 길러서[3] '귀밑털' 로도 불린다.


어느 용병선수는 안 그렇겠냐만, 한국 생활 적응에 매우 열정적이라고 한다. 좋지 않은 투수진을 보고서는 어느 포지션이든 열심히 하려는 의지는 매우 대단한 것으로 평가받고, 기존 선수들과의 분위기에 잘 녹아드는 성격이라고 한다. 또 다른 극단적인 예로, 6월 21일 삼성 라이온즈 전 주중 원정경기에서 무승을 기록하면서 모든 선수들이 삭발을 하였는데, 용병이라 굳이 삭발을 안 해도 되었던 앤서니는 왜 자신에게 말을 하지 않았냐면서 다른 선수들보다도 더 짧게 반삭으로 머리를 밀었을 정도로 팀 분위기에 융합하려는 모습이 뛰어나다. 이 와중에 김선빈과 덕아웃에서의 모습이 발굴되기도 했다. # 이뿐만 아니라 한국 음식 적응력도 강해 보신탕도 이미 접수 완료했단다. 오죽했으면 선동열 감독이 다음에는 외국인들이 먹는데 힘들어한다는 홍어를 대접하겠다고 말할 정도.#

보통 외국인 선수를 간략히 소개할 때는 성(姓)만 기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선수는 특이하게도 르루라는 성 대신 앤서니라는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한다. 이는 2011 시즌 트레비스 블랙클리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등록명을 성이 아닌 이름으로 씀으로서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기아 프런트의 배려로 보인다.

2.2.1. 2012 시즌

앤서니 르루/2012년 항목으로.

2.2.2. 2013 시즌

앤서니 르루/2013년 항목으로.

2.3. 한국을 떠난 뒤

2014년 초 미국독립리그 요크 레볼루션이라는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근황 곧이어 5월 21일 LA 에인절스와 계약을 맺었다. KIA 출신 앤서니, LA 에인절스와 계약

하지만 메이저리그인 LA 에인절스 40인 로스터에 승격되지는 못했고 LA 에인절스 산하 트리플 A팀인 솔트레이크 비스에서만 시즌내내 뛰었다. 성적은 22경기 4승 6패 6.75라는 성적을 남겼다. 앤서니 르루 성적 이후 2014년 이후 방출이 되었다.

2015년에 다시 독립리그 요크 레볼루션으로 돌아가서 선수 생활을 이었으나 사고로 인해 다리가 크게 골절되어 재활을 몇 년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2018년 윈터리그 때 베네수엘라 프로야구 리그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복귀하였으나 결국 이 시기를 끝으로 은퇴했다.

3. 지도자 시절

3.1. 2019 시즌

2019 시즌부터 KIA 타이거즈의 육성군 투수코치로 선임되었다. 약 5년만에 KBO 리그로 복귀하는 셈이다. 사실 은퇴를 한 뒤에도 꾸준히 KIA 프런트와 연락하며 외국인 선수 추천을 해줬다고 한다.

본인은 선수로 뛰고 싶었지만 나이와 구위가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현역 시절 보여준 파이팅 넘치는 모습과 친화력에 반한 프런트의 코치직 제의를 받고 지도자로 나서기로 결정했다. 육성군 투수코치를 맡게 되며 기존 신인급 투수 중 긁어볼만 한 투수로 강이준, 송후섭이나 2019 시즌 신인 김기훈을 지도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야구코치로 임명되면서 가족 전원이 모두 광주로 내려와서 살게 되었다.

오키나와 캠프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역할은 1군 캠프에 참가한 김기훈, 장지수, 홍원빈의 지도 및 새로 들어온 제이콥 터너, 조 윌랜드, 제레미 해즐베이커의 도우미 이 두가지를 겸한다. 오키나와에 온 김에 새로 들어온 외국인들이 적응하는 역할을 한다고. ##

한동안은 1군에 합류한 신인선수 및 외인 선수의 적응을 위해 1군 선수단과 동행했다가 5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함평으로 돌아가서 육성군 코치 업무에 들어갔다가 헤즐베이커의 방출로 인해 새로 영입된 프레스턴 터커를 위해 다시 1군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김기태 감독의 사퇴 및 박흥식 대행 부임에 따른 코치진 보직 이동으로 1군 불펜코치로 보직이동을 하였다. 이렇게 되면서 KIA 1군에는 메이저리그 출신 코치를 2명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감독 사퇴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터너가 르루의 조언을 듣고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

4. 플레이 스타일

비교적 젊은 나이에 체격이 월등하여(193cm, 102kg) 투수로서의 최적의 체력적 조건을 갖추었고, 1년간의 일본 생활을 통해서 퀵 모션이 안정적이고 투구 밸런스가 안정되었다고 평가된다. 특히 투구 시 준비 동작이 짧아서 타자 중에서 준비 동작이 긴 편인 타자들의 타격 타이밍을 빼앗기 능력을 좋게 평가받는다. 문제는 이닝이터로써의 능력과 밋밋한 볼 끝. 특히 종으로 떨어지는 구종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난조에 시달리기 쉬운 제구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투구 동작에서 퀵 모션이 매우 짧은데 이것이 득점권 주자 상황에서 더욱 짧게 하려는 과정에서 밸런스가 무너지는 일이 발생하는 것.

한국에 와서는 오랜 기간 이닝을 버텨주는 이닝이터로써의 능력은 떨어지지만 우월한 체격과 체력이 뒷받침해주면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외국인 노예로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코칭 스태프의 지시에 군말없이 따르는 성격에다 팀 친화력이 좋아 자원등판하려는 모습도 보이는 것도 있기 때문. 두산의 2009년 용병이었던 후안 세데뇨만큼은 아니지만, 의외로 육성형 용병으로써의 모습도 보이고 있는 상황. 실제로 리그 초기에는 밋밋한 제구 때문에 피안타율이 높아지면서 퇴출 위기에 놓이기도 했으나 횟수를 거듭할수록 강력한 속구를 무기로 평균자책점이 줄어들었고 조밀한 등판간격에도 군말없이 나오면서 점차 용병으로써의 제 역할을 다해주고 있는 셈이다.

슬로우 스타터의 기질이 있다. 한국무대에서도 초반에는 퇴출 0순위로 꼽혔지만 시기를 거듭할수록 좋은 투구내용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 실제로 미국 프로무대 시절에도 거의 9월에 빅 리그로 콜업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민훈기 기자 칼럼에서.

5. 여담

특이하게도 왼손잡이면서 우투좌타이다. 피칭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왼손으로 한다고 한다. 내야수 출신이라서 우투가 된 듯.[4] 실제로 투수로서 수비 능력도 뛰어난 편이다. 투수 앞 강한 땅볼 타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내는것을 보면 순발력이 뛰어난것을 알 수 있다. 유사시 3루수 세워도 되지 않을까 할 정도다. 좌투였다면 지금보다 공도 더 잘 던지면서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고 한다.

6.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4사구 탈삼진
2012 KIA 타이거즈 32 171⅓ 11 13 1 0 3.83 174 67 94
2013 30 36 0 3 20 0 4.50 42 15 25
KBO 통산
(3시즌)
62 207⅓ 11 16 21 0 189 82 119

[1] 또 다른 투수였던 좌완 불펜투수 알렉스 그라만(Alex Graman) 선수는 계약 직전 메디컬 테스트에서 떨어지면서 결국 계약을 취소하고 말았다. 그 대신 영입한 투수는 호라시오 라미레즈. 셰인 유먼도 영입 리스트에 있었으나, 유먼은 롯데 자이언츠로 갔고 류먼진이 되었다.[2] 선수들 사이에서도 비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듯 하다. 본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3] 1950년대 서부영화 계열의 유명한 스타였던 래시 르루의 영향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애틀랜타 시절에는 투수코치가 그를 '래시'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고.[4] 대부분의 내야수나 포수들은 오른손잡이일 때 자세 측면에서 송구가 더 편하다. 자세한 사항은 우투좌타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