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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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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대 그룹임원3. 사가4. 매각5. 주요 계열사
5.1. 식품 사업5.2. 비식품 사업
5.2.1. 해태전자5.2.2. 해태중공업5.2.3. 해태 타이거즈
6. 기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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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부터 2001년까지 사용한 해태 로고.

1945년에 박병규 등 4명이 세운 해태제과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업집단. 롯데제과와 더불어 대형 제과업체였던 해태제과로 시장 인지도를 높였고 1980~1990년대 KBO 리그의 절대강자였던 해태 타이거즈 등으로 명성을 떨쳤다. 제과업이 본업이었지만 전자제품과 건설업 등 식료품 이외의 사업에도 손을 대면서 사세가 성장했고 1996년 말 기준 재계 24위로 국내 30대 기업 안에 들 정도로 규모가 상당한 곳이었다. 그러나 본업과는 전혀 무관한 비식료품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는 문어발식 경영이 화를 불렀고[1] 결국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찾아온 유동성 자금난의 여파로 주력 계열사 해태제과 등이 부도를 맞으면서 문을 닫고 말았다. 공식적으로 그룹이 해체된 것은 2007년인데 마지막 해태의 계열사였던 훼미리식품이 크라운해태그룹에 매각되면서 완전히 해체되었다.

본사가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있었음에도[2] 금호그룹, 교보생명그룹, 삼양사, 대상그룹, 쌍방울 등과 더불어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3] 이 때문에 호남 출신 방송인 김병조는 해태그룹이 무너질 때 "일부러라도 부라보콘만 먹고 초코파이 대신 오예스를 꼭 사먹게 하곤 했는데" 라며 당시 비통한 마음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사훈은 창의, 진실, 협조, 경영이념은 보람을 심는 기업 ‧ 사랑이 있는 기업 ‧ 새로움을 찾는 기업이다.

2. 역대 그룹임원

  • 명예회장
    • 민후식 (1983~1985)
  • 회장
    • 민후식 (1970~1983)
    • 박건배 (1983~2000)
  • 부회장
    • 신덕발 (1970~1977/1978~1979)
    • 강남형 (1989~1991)

3. 사가

작사는 박목월, 작곡은 나운영이었다.
(1절)신선한 새맛을 창조해주는 조국의 산업계의 빛나는 성좌
해태여 해태여 정직과 성실로 다져진 신용있고 정다운 우리의 해태

(2절)넉넉한 즐거움 마련해주며 세계의 시장마다 감동을 심는
해태여 해태여 창의와 봉사로 다져진 보람차고 정다운 우리의 상징

(후렴)찬란한 내일로 해태가족과 번영을 누리며 손을 맞잡고
줄기차게 뻗어가는 해태그룹 해태그룹 만만세

4. 매각

1997년 외환 위기 여파로 인하여 그룹이 해체되면서 각 계열사들은 청산 및 매각되었다.
  • 해태제과: 해태그룹의 주축이었다. 2001년 9월 해태제과식품이 (구)해태제과의 브랜드, 우량자산, 부채를 인수한 후 벨기에 자본에 팔렸다가, 2005년 크라운해태그룹[4]에 인수되었다. 과거에도 홈런볼, 맛동산 등 주력상품 몇개로 버티는 이미지였고, 그 타개책이었던 해태-가루비 주식회사도 해태제과에 흡수 합병되었다.
  • 해태앤컴퍼니(구 해태산업)[5]: 국순당에 인수되었다. 국순당L&B로 사명이 변경되었다가 2010년 8월 국순당과 합병했다.
  • 해태관광: 핫바의 원조로 유명한 큰길의 전신. 자세히는 1985년 큰길식품(주)을 설립하였고, 1992년 임진각 영업소를 매각, 1993년 사명을 (주)큰길로 변경하였다.
  • 해태전자
  • 해태제과 완구사업부 : 1980년대 말에 사업했던 완구사업부이며, '우리들'이란 브랜드를 썼다. '동물나라 친구들'이나 '토순이네 집'[7] 같은 완구들을 발매.
  • 해태유업: 1989년에 지분을 매각하여 그룹에서 분리된 상태였으나 해태관광과 달리 사명을 변경하지 않아 해태 계열사로 인식된 게 아킬레스 건이 되어 부도 처리되었다. 동원그룹에 인수되어 덴마크 밀크(DM푸드)와 합쳐져 현재 '동원데어리푸드'로 사명이 변경되었다가 '동원F&B'로 통합되었다. 참고로 칼슘우유 광고를 하면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갖고 고인드립을 친 것으로도 악명 높다.
  • 코래드: 제일기획, 대홍기획, 동방기획, 오리콤 등과 더불어 이름 높은 광고기획사. 1999년부터 GMH가 일부 지분을 인수한 후 2000년부터 그룹에서 독립되었다. 2002년부터 대우자동차판매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부터 프랑스 광고 기획사 하바스에 매각됨.

이 외에도 사업 다각화를 위해 해태 보일러와 해태 라이터라는 사업체도 두었고, 해태제과 산하에 건설사업본부[8]를 두고 건설업까지 진출했었으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 주요 계열사

5.1. 식품 사업

5.1.1. 해태제과

기존 법인은 건설부문(건설사업본부)만 남긴 채 하이콘테크로 변경해 청산해 버리고, 2001년 7월 설립한 해태제과식품이 구 해태제과의 해태 브랜드, 우량자산, 부채만 인수했다. 한동안 벨기에 자본 소유였다가 2005년 크라운해태그룹에 인수됐다.

자세한 내용은 해태제과식품 문서 참조.

5.1.2. 해태음료

2000년 히카리인쇄 컨소시엄이 세운 신규법인에 P&A로 인수되어 구 법인은 해우로 변경했고, 신 법인은 LG생활건강에게 인수되었다. 해태htb 문서 참조.

5.2. 비식품 사업

5.2.1. 해태전자

제과회사와는 어울리지 않게 '해태전자'라는 전자회사가 있었는데[9] 전자업체로 진출하려는 무리한 시도가 결국 그룹 해체의 주원인이 되었다.

해태전자는 1970~80년대 당시 오디오 턴테이블[10]을 생산, 각 전자회사에 납품하는 것을 주로 하는 B2B 업체였고 이 분야에서 국내 1위의 업체였다.[11]. 즉 '제과업체'라는 아이덴티티에 만족하지 않고 첨단기술기업(?)으로 변모하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해태전자를 발판삼아 전자,전기분야로 진출하게 되는데 자체기술로 CDP를 개발한 뒤, 한때 인켈 브랜드로 유명했던 오디오 메이커 동원전자를 인수했었고[12] , 또한 바텔(Vatel)이란 상표로 TV광고를 하던 전화기 전문 제조업체 나우정밀[13]을 인수하기도 했었다.[14]

이 때 제과계 라이벌인 롯데는 더 일찍 오디오 업계에 뛰어들어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롯데 오디오는 일본 파이오니아와 기술제휴한 뒤 1990년 초반까지만 해도 롯데 파이오니아라는 상표를 쓰다가 다시 롯데매니아(...정말로 이 상표로 TV광고도 했었다)라는 상표로 바꿔 동원전자 인켈, 아남전자 테크닉스, 태광 에로이카와 더불어 4대 메이커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디오가 사양산업으로 접어 들자 빠르게 정리해 버렸지만.

여담이지만 사실 약간 늦게 현대전자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 즉 자체기술로 개발한 CDP 하나 가지고 오디오 업계에 뛰어든 것이다. 해태처럼 다른 오디오 회사를 인수한 것은 아니지만, 플레이어 이외의 다른 콤포넌트를 아남으로부터 OEM 공급을 받았다. 현대전자는 그후 반도체컴퓨터를 사업의 핵심으로 삼았지만 현대자동차에 장착하는 카오디오를 생산하면서 음향업계에도 계속 발을 걸쳐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무리한 기업 인수가 1990년대 중반에 집중되었고, 그로 인해 1997년 외환 위기때 그룹 해체의 주 원인이 되었다.[15]

파일:external/cfs3.tistory.com/download.blog?fhandle=YmxvZzk2MzU4QGZzMy50aXN0b3J5LmNvbTovYXR0YWNoLzEvMTQ1LkpQRw%3D%3D.jpg 파일:슈퍼콤 16비트 바이스타.png
한때 해태에서 해태전자라는 사명으로 '슈퍼콤'이라는 이름의 패미컴 호환기종 게임기를 발매했고(당연히 닌텐도 정식 라이센스 제품은 아니었고 대만산 클론 기종이었다.), 이후에는 NEC와 기술제휴를 하면서 '슈퍼콤 바이스타'라는 이름으로 PC 엔진을 발매했다(그런데 PC엔진은 8비트 게임기인데도 불구하고 슈퍼콤 바이스타는 겉포장에 16비트라고 적혀 있었다... 어?[16]).

1997년에는 Tube 105 라는 미니 노트북을 해태전자에서 발매하기도 했는데, 일본 RIOS[17]의 Chandra 라는 기종을 OEM으로 수입한 제품으로 펜티엄 120MHz, 8MB램(최대 72MB까지 확장가능), 815MB 하드디스크의 스펙을 가지고도 1.24kg에 불과한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물건이었다. #
이 제품 조상인듯하다.

파일:해태 Tube 105.jpg
이 제품은 해태전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난 이후에도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의 미니노트북 인데도 불구하고 확장성이 올인원 노트북과 다름없는데가, 일반적인 캠코더 배터리를 쓸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배터리 걱정도 없다보니 중고로 제법 거래되던 물건이었다.

5.2.2. 해태중공업

철도 객차를 만드는 계열사도 있었다. 해태중공업에서 만든 무궁화호 해태중공업 특실 객차가 바로 그것. 해태그룹 부도 이후 디자인리미트에 철도차량부문을 매각하였다. SLS중공업은 무궁화호 리미트객차, 누리로를 만드는 등 철도차량을 계속 생산하였으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파산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5.2.3. 해태 타이거즈

아마도 해태제과 다음으로 '해태'라는 이름을 가장 많이 알린 계열사를 꼽으라면 단연 해태 타이거즈였다. 해태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참여했다. 지역 연고제로 출범했던 한국프로야구는 1981년 말 출범을 준비하던 당시 호남 연고 기업을 찾는데 난항을 겪고 있었다. 당초 후보 기업으로 꼽혔던 금호그룹이나 교보생명, 삼양사 등이 프로야구 참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광주 출신 박병규 창업주가 회사를 세웠고 광주와 전주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던 해태가 준비 과정 막판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호남 연고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

한편 해태가 참여하게 되자 다른 기업들의 반발이 거셌는데 해태가 프로야구에 참여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작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프로야구에서 발을 빼겠다고 반발한 기업도 있었다.[18] 한편 프로야구 출범 당시 참여 기업들 간에 동종업계의 기업은 배제한다는 약속이 있었는데, 막판에 해태가 참여하게 되자 동종업계였던 롯데(음료, 제과, 전자, 주류, 유통 등..)가 반발했다. 그러나 롯데 신격호 회장이 신준호 사장에게 프로야구 불참 의사를 듣고 반대했다고 한다. 이때 롯데는 "해태의 참여를 허용하되 해태를 리그에 받아주는 명분으로 롯데에 서울 연고를 달라"고 제안했다.그러자 한국프로야구 출범 추진위원회는 "최악의 경우 롯데를 빼고 리그를 출범시키자"는 이야기나 "롯데가 아니어도 부산 연고팀을 만들 기업(예를 들면 럭키금성)은 있다"는 식의 강경한 이야기를 꺼내자 롯데는 부산에 눌러 앉게 되었다.[19]

6. 기타

미국, 캐나다 쪽 한인마트에 가면 '해태' 상표를 아직도 볼 수 있다. 현지 한국식품 업체가 쓰고 있는 듯. 예컨대 해태쌀이라든지...

여담이지만 경기도 화성시 소재 사립중학교인 안용중학교가 이 그룹 재단이었다. 안용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했었는데, 해태그룹 해체 후 그냥 평범한 사립중학교가 되었다. 하지만 해태그룹 전성기 시절에도 그다지 지원은 해주지 않았다고 하는 듯(...)# 금융업으로는 대아상호신용금고를 1983년 인수해 운영했었으나 1994년 한솔그룹으로 넘어간 이래 한솔상호신용금고, 한솔저축은행, HK저축은행 등으로 바뀌다가 2017년 애큐온저축은행으로 변경되었다.[20]

1992~2000년까지 한국스카우트연맹 회장사였다.


[1] 후술하겠지만 제과업과 전혀 상관이 없는 전자 사업이나 건설 사업 등에 손을 댄 것이 경영난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2] 해태그룹이 종말을 맞던 1990년대 후반에는 서울 마포구 마포동에 그룹 사옥이 있었다. 마포대교 북단 쪽에 있는 대형 건물이 해태그룹 마포 사옥이었다. 용산구 남영동의 해태제과 본사는 지금도 있다. 다만 크라운제과가 해태제과를 인수한 이후 크라운해태제과의 본사 건물로 간판을 바꿨다.[3] 해태를 호남 연고 대기업으로 분류하는 배경에는 야구팀 때문도 있지만 고 박병규 창업주가 광주광역시 출신이라는 점 때문도 있다.[4] 살짝 덧붙이면, 크라운제과도 IMF 구제금융 시절에 화의를 신청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가 간신히 살아난 상태였다.[5] 버킹검 런던 드라이진(술), 나폴레온 등 생산[6] 규모가 큰 일부 매장은 이마트 메트로로 운영되고 있다.[7] 실바니안 패밀리의 카피제품.[8] 이 부서가 전술한 하이콘테크로 변경된다.(2001년 부)[9] IMF 직전에는 대기업들이 원래 주력분야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로까지 문어발 확장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해태전자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10] CD가 없었던 LP 전성시대에는 오디오에 꼭 필요한 물품.[11] 1980년대에는, 해태음료 전용 자판기도 생산했었다.[12] 이 때 인켈이 해태를 인수한 것이라고 착각한 사람들이 많았을 정도로 의외였다. 1990년대 중후반 무등경기장 전광판에 인켈 광고가 상시 붙어있던 걸 당시 자료화면을 통해 볼 수 있는데 이런 사정 때문인 듯.[13] 무선전화기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이미 타 업체를 인수했던 업체였는데 그로 인해 자금난에 빠져 해태전자에 인수되었다.[14] 사실 비슷한 시기에 역시 오디오로 유명한 태광에서도 전화기를 생산하고 있었다.[15] 이후 인켈은 그룹해체뒤에 이트로닉스라는 이름으로 법정관리상태에 있다가 2007년에 인켈로 회사이름을 바꿨다[16] 그래픽 칩셋은 16비트였으니 이걸 의미했을지도.[17] 일본 IBM과 리코의 공동출자로 만든 업체.[18] 그러나 럭키금성, 현대 등 상당수의 대기업들이 프로야구 참여를 고사하자 막판에는 해태보다도 훨씬 규모가 작은 삼미까지 끌어들여야 했다.[19] 출처 야구 기자 홍순일[20] 재미있는 것은 애큐온저축은행은 해태 타이거즈의 후신인 KIA 타이거즈가 아니라 OB 베어스의 후신인 두산 베어스를 후원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