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1 00:13:07

금호아시아나그룹

대한민국 재벌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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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기업집단명 동일인 지주회사 주요 상장법인
(볼드체 코스닥 상장법인)
1 삼성 이재용 삼성물산(사업)
삼성생명(금융)
MC SDI 삼바 SDS 삼엔 전기 전자 삼중 S-1 제일기획 호텔신라
증권 카드 화재
2 현대자동차 정몽구 현대글로비스 기아차 이노션 건설 로템 모비스 B&G스틸 오토에버 위아 제철 현대차 증권
3 SK 최태원 SK(주) SKC 솔믹스 SKM 바이오 SKI SKT SKH 나노엔텍 부산가스 드림어스 SM코어
SKD SKG 케미칼 SKD&D SKN 렌터카
SKC코오롱PI(7) 증권(6)
4 LG 구광모 (주) LG LGD LG상사 LG생건 LGU+ LGI LGE LGH LGC 로보스타 실리콘웍스 지투알 CJ헬로(1)
5 롯데 신동빈 롯데지주 손보(2) 쇼핑 화학 통신 제과 칠성 케미칼 푸드 하이마트
6 한화 김승연 (주) 한화 갤러리아 생명 손보 케미칼 에어로스페이스 증권
7 GS 허창수 (주) GS GS건설 GS글로벌 GS리테일 GS홈쇼핑 삼양통상 자이 S&D(3)
8 현대중공업 정몽준 현대중공업지주 건설기계 미포조선 에너지솔루션(3) 일렉트릭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4)
9 신세계 이명희 이마트(마트)
신세계(백화점)
광주신세계 신세계 I&C 신세계건설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푸드
10 한진 조원태 한진칼 대한항공 한국공항 한진 진에어
11 CJ 이재현 CJ(주) CGV 대한통운 씨푸드 ENM 제일제당 프레시웨이 CJ헬로(2) 스튜디오드래곤
12 두산 박정원 (주) 두산 건설 밥캣 인프라코어 중공업 오리콤 솔루스(5) 퓨얼셀(5)
13 부영 이중근 (주) 부영 없음
14 LS 구자홍 (주) LS E1 LS네트웍스 LS산전 LS전선아시아 가온전선 예스코홀딩스
15 대림 이준용 대림산업 고려개발 대림씨엔에스 삼호
16 미래에셋 박현주 미래에셋캐피탈 미래에셋대우 미래에셋벤처투자 미래에셋생명
17 현대백화점 정지선 현대백화점 에버다임 한섬 현대그린푸드 현대리바트 현대HCN 현대홈쇼핑
18 효성 조석래 (주) 효성 갤럭시아SM 갤럭시아컴즈 신화인터텍 진흥기업 ITX 중공업 첨단소재 티앤씨 화학
19 한국투자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없음
20 영풍 장형진 (주) 영풍 고려아연 시그네틱스 영풍정밀 인터플렉스 코리아써키트
21 하림 김흥국 하림지주 선진 엔에스쇼핑 팜스코 팬오션 하림
22 교보 신창재 교보생명 교보증권
23 금호 박삼구 금호고속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2) 아시아나IDT(2) 에어부산(2)
24 코오롱 이웅열 (주) 코오롱 글로벌 머티리얼 생명과학 인더스트리 티슈진 플라스틱 SKC코오롱PI(7)
25 OCI 이우현 OCI 삼광글라스 유니드 유니온 유니온머티리얼 이테크건설
26 카카오 김범수 (주) 카카오 없음
27 HDC 정몽규 HDC(주) HDC아이콘트롤스 HDC현대EP HDC현대산업개발
28 KCC 정몽진 (주) KCC KCC건설 코리아오토글라스 KCG(5)
29 SM 우오현 (주) 삼라 남선알미늄 대한해운 티케이케미칼
30 중흥 정창선 중흥건설 없음
31 한국타이어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한국아트라스BX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32 세아 이순형 세아제강지주 세아베스틸 세아제강 세아특수강 세아홀딩스
33 태광 이호진 태광산업 대한화섬 흥국화재
34 이랜드 박성수 이랜드월드 이리츠코크렙 이월드
35 셀트리온 서정진 셀트리온홀딩스 셀트리온 셀트리온제약 셀트리온헬스케어
36 DB 김준기 (주) DB DB금융투자 DB손해보험 DB하이텍
37 호반 김상열 호반건설 없음
38 네이버 이해진 네이버(주) 라인(8)
39 태영 윤세영 태영건설 SBS SBS미디어홀딩스 SBS콘텐츠허브
40 넥슨 김정주 엔엑스씨 넥슨지티 넷게임즈 넥슨재팬(8)
41 동원 김재철 동원엔터프라이즈 동원F&B 동원산업 동원시스템즈
42 한라 정몽원 한라홀딩스 만도 한라
43 아모레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아모레퍼시픽
44 삼천리 이만득 삼천리 없음
45 동국제강 장세주 동국제강 인터지스
46 유진 유경선 유진기업 동양 유진투자증권 한국특수형강
47 금호석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없음
48 하이트진로 박문덕 하이트진로홀딩스 하이트진로
49 넷마블 방준혁 넷마블 없음
50 애경 장영신 AK홀딩스 애경산업 애경유화 제주항공
51 다우키움 김익래 다우데이타 다우기술 미래테크놀로지 사람인 키다리스튜디오 키움증권 한국정보인증
(1) 인수 진행중, (2) 매각 진행중, (3)상장 심사중, (4)기업결합 심사중(분할합병), (5) 인적 분할 재상장 예정, (6) 지배력 상실, (7) 조인트 벤처 (8) 해외증시 상장법인 }}}}}}

파일:금호아시아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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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
KUMHO ASIANA
파일:금호아시아나.jpg
정식 명칭 금호아시아나
영어 명칭 KUMHO ASIANA
국가 대한민국
설립일 1946년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업주 박인천
규모 대기업
링크 그룹 홈페이지
1. 개요2. 경영 비전3. 사가4. 역사
4.1. 형제공동경영 체제의 종말4.2. 금호석유화학 계열 분리4.3. 짧은 전성기와 이별
5. 역대 그룹임원6. 계열사 목록
6.1. 현존6.2. 분가한 기업6.3. 해산/매각
7. 오너 일가8. 여담
8.1. 호남 기업?


파일:external/invent.patyellow.com/ci1_con0.gif
1988년부터 2006년 전반까지 붉은 사각형 안에 음각으로 K의 사선 획이 그려진 로고를 썼으며, 금호고속, 금호속리산고속 버스 옆면 도색의 회색 부분이 바로 구 로고의 흔적이다. 오래 된 금호아파트 외벽에도 구 로고가 그려져 있다.

파일:external/www.taxtimes.co.kr/119372_1.jpg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에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예전 본사. (사진출처) 미디어파사드로 외벽을 장식하였다.[1]
현재는 자금난에 빠진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자금 조성을 위해 이 건물을 매각하면서 2019년부터 종로구 공평동의 센트로폴리스빌딩[2]을 새 사옥으로 쓰고 있다.[3][4]

파일:external/pds.joinsmsn.com/NISI20110927_0005205185_web.jpg
벤츠 타고 서울에서 대구 가던 시절. 광주여객주식회사 시절의 옛 벤츠 고속버스 사진이다.

1. 개요

대한민국기업집단. 2018년 상반기 기준 재계서열 24위다.

금호고속을 모태로 한 기업이다. 금호(錦湖)는 창업주 박인천의 호이다. 본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2가에 있었다가 2019년 기존 사옥 건물을 매각하면서 종로구 공평동으로 옮겼다.

한진그룹처럼 여객/물류 운수업으로 시작한 기업집단이지만, 운송업이 그룹의 시작 및 기반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금호타이어 때문에 단순히 타이어를 만드는 제조 회사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김광두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1998년부터 금호아시아나그룹금호석유화학그룹에서 감사위원 겸 이사로 재직하다가 2011년에 두 그룹에서 모두 자진해서 사직했다.

2. 경영 비전

21세기 세계 초일류 기업

세계 일류의 가치창출 기업
종업원과 함께 가꾸는 기업
이웃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

슬로건은 "아름다운 기업". 아시아나항공은 이것을 약간 변형한 '아름다운 사람들'을 슬로건으로 쓰면서 '세계로 나가는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슬로건도 같이 쓰고 있다.

3. 사가

보라 눈부신 태양은 매일 떠오르고
우리 젊음은 여기에 새로움을 만든다
고객을 들어라 저높은 곳으로 미지의 세계로
무한한 지혜와 끝없는 용기로 우리 꿈 만들자
나가자 금호 우리의 꿈 우리미래
나가자 금호 온 세상에 펼쳐가자

4. 역사

창업주는 박인천이다. 박인천은 일제시대 때 순사시험에 합격하여 순사로 일하다가 일제가 패망하자 퇴직금으로 택시 2대를 구입하여 1946년 광주에서 택시 운수업을 시작했다. 이어 1948년 광주여객자동차(이후 광주고속을 거쳐 현재 금호고속)을 설립하여 버스 운송업을 시작했다. 광주를 기반으로 하여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제법 큰 버스회사로 성장했지만, 1960년대까지는 지역의 수많은 버스 회사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기업이 급성장하게 된 것은 1971년 호남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코리아그레이하운드[5]가 미국 본사로부터 튼튼한 중고 대형 버스들을 들여와 호남 지역의 버스 노선을 장악해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광주고속은
  1. "고객의 안전을 위해 서행"한다는 주장을 널리 홍보하는 방식으로 맞불을 놓았고
  2. 호남 지역의 노선은 광주-광양[6]이 4시간 걸렸을 만큼 도로가 불량했던 데다, 아직 만(MAN) 엔진[7][8]이 나오기 전이라, 어느 회사건 간에 버스를 한 번 운행하고 나면 반드시 정비를 거쳐야 했는데, 광주고속에서는 이 버스 정비에 사활을 건 수준으로 밤샘인력을 투입해 어떻게든 버스 운행 횟수를 채우거나 늘려나갔으며[9][10]
  3. 콩나물 시루같은 촘촘한 좌석 + 일부 노선은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고속을 타는 충성심 강한 지역사회 고객들의 성원이 더해져 난적 중앙고속과의 경쟁에서 승리, 호남의 고속버스 노선에서 대세를 점하게 된다.

이렇게 호남을 경유하는 고속버스 노선 시장의 1위2위가 두각을 드러내며 정착함에 따라, 다른 고속버스 회사들은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 철수하고 만다. 또한 당시 호남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상경하고 연휴 때 귀경하는 호재가 있었던 덕분에, 열악한 도로 실정에도 불구하고, 호남선 고속버스 노선은 경부선에 크게 뒤지지 않는 운송량을 자랑했으며, 이 호남선을 과점한(시장 2위인 중앙고속이 2010년대에도 건재) 광주고속은 다른 고속버스 회사들을 압도하는 규모로 성장하였다.[11]

그는 1954년 귀속재산 전남도시제사를 불하받아 섬유사업에 진출했고, 1960년 삼양타이어를 세워 타이어 사업을 주력사업으로 키웠다. 그 후 1967년 금호건설의 전신인 제일토목건축을 설립하여 건설업에도 뛰어들었지만 이 부문은 운수업만큼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장남 박성용대에 이르러 비로소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84년 박인천이 타계한 후, 자녀 중 한 명을 후계자로 찍지 않고 2세대가 지분을 골고루 나눠 가져 돌아가면서 경영권을 행사하는 독특한 후계 방식을 취했다.[12] 2세대 중 장남 박성용(2대 회장, 1984~1996), 차남 박정구(3대 회장, 1996~2002) 시절에는 형제상속이 잘 실천됐다.

서울대를 나온 장남 박성용은 수완과 처신에 능해, 승계 후 사세를 키우는 데에 성공한다. 우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실적이 부진한 금호건설을 광주고속이 인수해 금호건설의 적자를 광주고속의 흑자로 메웠다.

한편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제2민항사 설립을 추진한 정부 시책에 호응, 전국 최대 규모의 고속버스 운송회사로 성세를 구가하던 금호그룹이 제2민항사로 선정되는데 성공, 본격 대기업으로 도약하는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1988년 아시아나항공이 설립되어 취항이 이루어졌다.

1990년대에는 건설 호황이 이어지면서 마침내 금호건설이 흑자로 전환되었고, 이어 금호건설의 규모가 커지자 광주고속이 금호건설을 관리하던 상황이 역전되어 1993년 금호건설에 금호고속이 포함되는 형태로 그룹을 재편하였다. 이와 동시에 광주고속은 상호를 금호고속으로 바꾸어 금호계열사들을 일원화 하게 된다.

1996년에는 2남 박정구가 그룹을 이어받았아 2002년까지 그룹을 이끌었다. 1999년 금호건설을 기반으로 지주회사인 금호산업을 설립하여 그룹의 지배구조를 개편했다.

박인천 창업주의 3녀 박현주는 조미료인 "미원"으로 유명한 대상그룹임창욱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임창욱 명예회장이 수사와 건강악화로 경영일선에 나서기 힘들자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 부회장직에 올라 경영일선에 나서며 재계 여걸로 불린다. 두 사람의 장녀인 임세령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과 1998년에 결혼하지만, 2009년에 이혼했다.[13]

4.1. 형제공동경영 체제의 종말

창업 2세 4형제 중 둘째인 2002년 박정구 3대 회장이 먼저 세상을 뜨면서 3남 박삼구가 2002년 4대 회장에 취임하며 사명을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변경하였다. 이 때 첫째 박성용 2대 회장이 동생들과 함께 ‘형제공동경영합의서’를 작성한다. 초기 합의서에는 그룹 회장직은 65세까지이며 최장 10년을 넘기지 않을 것, 회장직은 4가계 합의로 추대할 것, 4형제가 그룹 지분을 동일하게 보유할 것 등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5년 장남 박성용 명예회장이 뒤이어 작고하자, 박삼구 4대 그룹회장이 합의서를 수정하기 시작한다. 우선 ‘65세, 최장 10년’ 조항이 삭제됐고, 그룹 회장에 대한 4가계 의견이 엇갈릴 시 다수결원칙과 연장자 의견에 따른다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2006년 수정안에서는 그룹 존속 위해 그룹 분할, 해체를 금지한다는 조항을, 2008년 수정안에서는 합의서 위반 시 소유 주식에 해당하는 금액 50%를 다른 가계에 보상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합의서가 수정될수록 형제간 골은 깊어가고, 심지어 2008년 수정안에는 박찬구 회장이 서명 날인을 하지 않았다.[14] 이 갈등은 어디서부터 이해해야 할까?

박삼구 4대 회장이 그룹을 이끌던 2006년, 창립 60주년을 맞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건설업을 주력 사업으로 성장시킨다는 크고 아름다운 기치 아래 당시 종합시공능력 평가 1위의 초 우량 건설회사였던 대우건설의 주식 72.1%를 무려 6조 4255억 원에 인수한다.[15] 천문학적인 인수금액을 감당하기 위해 금호산업금호타이어가 2조 9천억 원의 대부분을 금융사에서 차입하고, 나머지 3조5천억 원은 연기금과 사모 펀드 등 재무적투자자(FI)를 통해 조달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FI들로부터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위임 받는 대신 3년 뒤인 2009년 FI 보유 주식을 주당 3만 4천 원에 되사는 풋백옵션을 체결하였다.

바로 이 과정에서 3남 박삼구 회장과 4남 박찬구 당시 화학부문 회장이 갈등을 빚게 된다. 박찬구 회장은 유동성 위기를 우려해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묵살당했고, 2009년 우려가 현실화되자 금호산업 주식을 매각하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매입했다. 이로 인해 ‘형제공동경영합의서’ 상 동일지분 보유 항목이 위반되긴 했으나, 4가계 합의 룰을 깨고 독단적인 경영으로 합의서를 무색하게 한 건 박삼구 회장이었으며 주식 매입은 금호석유화학까지 유동성 위기가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는 게 박찬구 회장 입장이다. (박찬구 회장 입장문 전문, 현재 재무건전성을 보면 금호석유화학 분리는 박찬구 회장의 신의 한 수)

다시 금호의 대우건설 인수 상황로 돌아가 보자.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로 세계 경제에 공황이 찾아와 증시가 추락한다. 세계적인 불경기 속에 풋백옵션 행사 시기가 다가오는데, 건설업 불경기로 대우건설의 주가는 3년 전인 2005년 11월 인수계약 체결 당시의 약 1만3천원에서 오히려 1만원 전후로 하락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채무부담을 가중시켰다. (주당 3만4천원에 도달하지 못할 시 금호그룹이 그 가격에 투자자들의 주식을 모두 매입해야 함, 망했어요) 채무불이행에 의한 부도를 맞을 위기에서 2009년 12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도 자율협약에 돌입하게 된다.

결국 대우건설을 인수해서 10대 재벌에 들겠다는 박삼구의 야망은 새우가 고래를 먹는 정도의 무리수가 아니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완전히 폭망해서, 채권단에게 박삼구의 지분까지 뺏기는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4.2. 금호석유화학 계열 분리

채권단 자율협약에 돌입할 당시만 해도 금호석유화학은 차입금이 2조 2,307억원, 부채비율은 498%에 달했다. 그러나 금호석유화학은 업계 호황 하드캐리로 2010년과 2011년 역대 최고의 실적을 내고, 역대 최고 신용등급인 A-를 달성했으며, 2012년 11월 기준 부채비율을 189%까지 끌어내리는 등 경영정상화를 준수하게 달성하며 2012년 말 자율협약을 졸업했다. 2011년에는 독자적인 비전인 ‘VISION 2020’을 선포하고 실질적인 분리 경영을 이어갔으나 공정거래위원회 기준으로는 계속 금호아시아나그룹 소속이었다. 2015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금호석유화학 계열분리 소송에서 승소하며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법적으로도 완전히 분리되었다.[16]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공정위를 상대로 '승소'한 것이 소송과는 아무 관련 없는 금호석유화학에게는 호재로, 승소한 금호아시아나에게는 부채가 늘어난 영 좋지 않은 방향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어찌됐건 박찬구 측에서는, 무리한 대우건설 인수 같은 일을 벌여 회사를 이 지경으로 만든 형과 거리를 두는 데 성공해 한숨 돌리는 데 의의를 두는 듯.[17]

금호석유화학그룹은 경영이 분리된 후에도 여전히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금호석유화학그룹 페이지 참고.

4.3. 짧은 전성기와 이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하여 2007 ~ 2010년 동안에는 한진그룹을 제치고[18] 재계 서열 9위를 차지하는 짧은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박삼구 회장에게 승부사, 마이더스의 손 이라는 별명을 안겨줬던 이 M&A들이 결국 그룹을 어렵게 했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대우건설 인수 건은 형제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었던 무리한 M&A로, 결국 유동성 위기와 구조조정, 그리고 형제의 난을 불러오는 최대 요인이 되었다. 이미 금호에게는 금호건설이 있었다.금호건설 키울 생각이나 하지 왜 그딴 뻘짓거리를 했을까...

대우건설은 재무적 투자자들이 시가의 배 이상의 가격으로 옵션을 행사하자 인수자금을 마련할 수없어 회사 자체를 매각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한국산업은행에서 재인수하였다. 그러고도 자금이 모자라서 현금이 잘 들어오던 대한통운 역시 매각하여 CJ그룹에 팔렸다.

여담이지만, 무리하게 대우건설을 인수하지 않고 대한통운만 인수해서 안정화시켰다면 한진그룹과 본격 물류기업 라이벌 구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아시아나항공을 내놓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금호산업 건설사업부는 자산이 대우의 1/2~1/3정도였지만 그래도 도급순위 9위에 주택,토목,soc등 여러분야에 진출한 수준급 건설사였다. 그리고 원래 단순 택배회사따위가 아닌,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물류회사로서 기업물류부문에서 엄청난 강점을 지닌 대한통운은 현자 인수자인 CJ그룹 내 두번째 규모의 핵심계열사가 되었다.

문제는 이 무리한 인수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보유현금이 많았던 대한통운의 현금을 빼내오기 위해서 배당·유상감자·보증·대여 뿐만 아니라 몇몇 계열사의 지분을 대한통운에 비싼 값에 매각하였는데 이것이 나중에 뒷탈이 난다.

제일 먼저 렌터카시장 부동의 1위였던 금호렌터카가 있었다. 기존 금호렌터카 법인에서 사업부를 빼내 대한통운 렌터카부문과 합쳐 비용을 절감하고 시장지배력을 공고히 하고자 했으나, #. 이후 다른 대한통운 계열사와 다르게 KT에 매각되어 KT렌탈로 인력이 양도되어 KT금호렌터카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다시 매각되어 롯데그룹에 피인수되면서 브랜드명이 롯데렌터카 로 바뀌었다.

다음으로 금호산업 터미널부문을 떼내 금호터미널이라는 신설법인을 일부러 만들어서 대한통운에 팔았는데, 다시 대한통운이 팔리고나면 그 자회사인 금호터미널도 덩달아 팔리게 되고, 그러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시조인 금호고속까지 흔들리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대한통운을 매각하기 전 금호터미널을 재인수 하였다. 심지어 롯데그룹은 대한통운 매각전에서 금호터미널이 빠지자 아예 발을 빼버렸다.

(주)아시아나에어포트, 아시아나공항개발 역시 물류 산업을 통합하여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명분 하에, 실상은 대한통운의 현금을 빼오기 위해 팔았다. 그런데 이 회사들은 아시아나항공의 지상조업사들로 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므로, 금호터미널처럼 대한통운을 매각하면서 되사왔다.

문제는 대한통운을 인수했을 때 아시아나항공과 대우건설이 반반씩 지분을 인수하였는데, 대한통운 매각시 이미 대우건설을 매각한 이후였기 때문에 볼꼴 못볼꼴 다 보고 결별한 대우건설이 대한통운의 1대 주주자격으로, 이 3개회사 주식에 대해서, 샀던 가격 이하로는 못판다고 나와서 결국 더 비싸게 주고 사와야 했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에서 이 계열사들을 재인수함으로써 논란은 종료되었으나, 이번에는 금호고속[19]을 저당 잡히고 돈을 빌려서 그룹을 살리겠다고 하고 있다(...).[20] 사실 살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박삼구 회장과 그 장남 박세창 전무가 차근차근 은행관리로 넘어간 회사들을 하나씩 인수해서, 그걸 담보로 돈 빌려서, 다시 다른 계열사를 인수하고, 다시 담보 잡혀서 돈 빌려서,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방식의 반복이다. 이렇게 될 경우, 회사는 되찾겠지만 은행권 이자라던가, 되사는 비용 등으로 인해서 받는 손해도 막대하다.

또한 금호생명은 한국산업은행에서 인수하여 KDB생명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산업은행 민영화정책으로 산은 계열사가 되어 안전히 운영하나 싶었는데, 박근혜 정부의 민영화 취소로인해 2016년 현재 재매각 대기상태이다.

금호종합금융은 우리금융지주에서 인수하여 우리종합금융이 되었는데, 우리은행 민영화 작업으로 인해 앞날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이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의 최대 주주였다. 경기가 좋을 때만 해도 계열 건설사에서 복합 터미널로 재개발 한다고 떠들었었는데, 보유 지분을 전부 사모 펀드에 매각하였다. 결국 당시 알짜 매장이었던 인천점이 위치하였던 인천종합터미널 부지를 롯데에 빼앗긴 신세계그룹에서 강남점마저 뺏길까봐 우려해 인수하였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오너 3세들이 대우건설 인수로 본 손해를 벌충하기 위하여 자본잠식 상태의 부실 기업 지분을 계열사에 떠넘기고 그 매각 대금으로 우량 계열사 지분을 사들이는 엽기적인 행태가 드러나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금호가 오너 3세들, 부실 계열사에 손실 떠넘겼다.

결국 무리한 인수와 매각 등의 경영 악화로 2019년 4월 15일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했다. 아시아나항공이 매각될 경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곧장 중견기업으로 강등되게 된다. 2008년 재계서열 7위였던 기업이 이젠 자산이 5조가 안되는 중견기업으로 몰락하는 것이다. 참고로 대우건설 인수실패 후 계열사를 분리시켜 독립한 동생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그룹은 시장의 호평에 힘입어 준대기업으로 자리잡아, 항공사 매각 후에는 두 그룹의 입장이 바뀌게 된다. 이제 사실상 금호에게 남는 것은 금호고속금호산업 뿐인 셈이다. 게다가 금호속리산고속마저 아시아나 계열사로 있는 만큼 같이 매각될 가능성이 높다.

5. 역대 그룹임원

  • 명예회장
    • 위창남 (1995~1996)
    • 박성용 (1996~2003)
    • 박삼구 (2009~2010)
  • 회장
    • 박인천 (1973~1984)
    • 박성용 (1984~1996)
    • 박정구 (1996~2002)
    • 박삼구 (2002~2009/2010~2019)
    • 박찬법 (2009~2010)
  • 부회장
    • 박성용 (1979~1984)
    • 박정구 (1990~1996)
    • 박삼구 (2001~2002)
    • 박찬법, 신훈 (2006~2009)
    • 김성산, 이원태 (2015~ )

6. 계열사 목록

6.1. 현존

파일:금호아시아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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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금호산업 | 금호고속 ( 금호속리산고속 · 금호고속관광 )
항공 아시아나항공 ( 에어부산 · 에어서울 · 아시아나에어포트 ) | 아시아나IDT | 아시아나세이버
특수목적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 금호티앤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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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호고속: 그룹의 모체가 된 회사이며, 현재 금호그룹의 지주회사다. 1984년 금호건설을 합병했다가 1993년 금호건설로 재편되어 고속버스 사업부가 되었다. 1999년 금호산업으로 합병된 뒤 2006년 금호터미널과 금호기업의 합병으로 탄생한, 금호홀딩스와 합병하였다. 이후 금호홀딩스는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금호고속 자체는 2012년 매각되어 그룹에서 분리되었다가, 2017년 채권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시 금호홀딩스가 인수했다. 2018년에는 금호홀딩스가 금호고속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오너 일가가 71.2%를 가지고 있다.
    • 금호산업: 금호고속과 함께 그룹의 양대 계열사였다. 한때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73년 금호실업이란 무역업체를 시초로 1981년 금호산업, 1984년 삼양타이어를 각각 합병했고, 1996년 금호타이어로 사명을 변경했다가 1999년 금호건설을 합병 후 건설, 고속버스, 무역, 타이어, 렌터카 등을 총괄했다. 그러나 2001~2002년 두 차례 렌터카와 건설부문을 금호개발에 각각 넘기고 2003년 금호타이어, 2006년 금호터미널 및 금호리조트, 2011년 금호고속을 각각 분사해 사실상 건설 부문(금호건설)만 남게 되었다. 2009년 워크아웃으로 채권단에 넘어갔으나, 2016년 다시 금호그룹에서 인수했다. 금호고속이 45.17%를 가지고 있다.
      • 아시아나항공: 그룹의 핵심회사로, 그룹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금호산업이 지분의 33.5%를 가지고 있다. 2019년 4월 15일 금호산업 이사회에서 매각이 결정되었다.
        • 에어부산: 아시아나항공이 44.2%를 보유하고 있다. 이외의 지분은 부산광역시와 부산 향토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다.
        • 에어서울: 아시아나의 100% 자회사다.
        • 아시아나개발
        • 아시아나IDT: 항공 관련 IT서비스 회사로, 아시아나항공이 76.2%를 보유하고 있다.
          • 금호티앤아이: 2017년 금호고속을 재인수하기 위해 만든 투자회사. 케이에이인베스트로 설립되었으며 2017년 12월 금호티앤아이로 사명을 변경했다. 현재 아시아나항공 손자회사이면서 동시에 금호고속관광, 금호속리산고속, 금호리조트 등을 지배하고 있다. 매각 예정인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이면서, 그룹에 남게 될 금호고속 계열의 회사들을 자회사로 두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나항공 매각 과정에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계열사다.
            • 금호속리산고속: 금호티앤아이가 100% 가지고 있다.
            • 금호고속관광: 금호티앤아이가 100% 가지고 있다.
            • 금호리조트: 금호티앤아이가 48.8%를 가지고 있다.
        • 아시아나에어포트
        • 아시아나세이버
        • 게이트고메코리아: 아시아나항공이 40%를 보유한 기내식 공급업체.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공급부족 사태와 연관이 있다.
      • 충주보라매
      •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산하에 2010년부터 생겨난 이른바 "케이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지상업무 맡는 하청업체들이지만 정확한 규모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 금호아트홀: 광화문 대우건설 사옥에 위치한 금호아트홀은 오랜 기간동안 많은 연주자들의 공연이 펼쳐졌으나 2019년 4월을 끝으로 폐관이 결정되어 클래식 연주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 2015년에 오픈한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명맥을 잇게 되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줄어든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 금호미술관
    • 케이에이: KA, 지상여객 서비스
      • 에이큐: AQ, 항공운송지원 서비스
      • 에이에이치: AH, 외항사 여객서비스
    • 케이오: KO, 수하물 및 기내청소
      • 에이오: AO
    • 케이알: KR, 정비관련 서비스
    • 케이에프: KF, 청소 및 방제
  • 죽호학원

6.2. 분가한 기업

  • 금호석유화학·금호피앤비화학·금호개발상사·금호미쓰이화학·금호티앤엘·금호폴리켐 (현 금호석유화학그룹): 박찬구 회장 몫으로, 2015년 계열 분리되었다.
  • 금호전기·모빌코리아윤활유공업: 조명기기 전문 회사 및 윤활유 업체. 1978년에 금호그룹에 편입된 후 박인천 초대 회장의 동생 박동복이 경영하던 회사로, 1981년 분리 후 그의 아들 박명구가 경영 중이다.

6.3. 해산/매각

  • 경일토건: 구 경일건설. 1996년 금호산업개발에 합병됨.
  • 광우교통: 1975년 광주고속에 합병됨.
  • 광주자동차공업: 1974년 광주고속에 합병됨.
  • (구)금호고속: 2011년 금호산업에서 물적분할된 업체. 2017년 금호홀딩스(현 금호고속)에 합병됨.
  • 금호고속관광(초대): 구 세광관광-광주고속관광. 1992년 동성관광에 합병됨.
  • 금호고속관광(2대): 구 동성관광. 1998년 매각됨.
  • 금호기업: 2016년 금호터미널에 합병됨.
  • 금호렌터카: 금호산업-(구)금호렌터카-대한통운 산하를 거쳐 2009년 물적분할된 법인. 2010년 KT에 인수된 후 렌터카사업부문을 인적분할해 KT렌탈에 넘기고 '금호렌터카글로벌'로 변경했다가 2013년 청산됨.
  • 금호몬산토: 구 KM화학-금호쉘화학. 2002년 금호석유화학에 합병됨.
  • 금호부동산중개: 1996년 청산됨.
  • 금호사옥: 광화문 본관빌딩 소유주로, 2018년 도이치자산운용에 건물을 매각하고 청산함.
  • 금호산업개발: 구 동호기업-북일건설. 1999년 금호개발에 합병됨.
  • 금호생명 (현 KDB생명): 1996년에 인수했다가 2010년에 다시 내놨다.
  • 금호섬유: 구 명천기업. 1985년 청산됨.
  • 금호알에이시: 구 금호개발-금호렌터카. 2008년 렌터카사업부문을 대한통운에 양수한 후 2011년 청산됨.
  • 금호엔지니어링: 2002년 계열분리 후 2005년에 '동호'로 사명을 변경했으나, 2014년에 파산됨.
  • 금호운수: 1980년 매각됨.
  • 금호인베스트: 박삼구 회장이 금호타이어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설립한 회사. 2017년 3월 박삼구 회장의 개인회사로 설립되었다가 4월 그룹에 편입되었으나, 박삼구 회장이 금호타이어 인수 포기를 선언하면서 2017년 12월 청산되었다.
  • 금호전자: 구 동남전기 안양공장으로 '제스퍼 텔레비전'을 생산했으나, 1980년 (구)금호산업에 합병됨.
  • 금호캐피탈: 구 금호주택할부금융. 2001년 금호종합금융에 합병됨.
  • (주)금호 스폰지사업부: 1993년 대종스폰지(현 금호화성)에 매각됨.
  • (주)금호 철강부문 (현 YK스틸): 구 극동철강공업-금호산업. 1984년 한보그룹에 매각되어 한보종합건설에 합병됐다가, 1996년 (주)한보로 이관된 후 이듬해 한보사태로 부도나 2002년 일본 야마토산업으로 분할매각됨.
  • 금호케미칼: 구 미원유화. 2001년 금호석유화학에 합병됨.
  • 금호텔레콤: 1999년 독립 후 '에버텔'로 변경했으나, 2010년 폐업됨.
  • 금호특송: 구 서울고속화물. 1994년 동서배송운수에 매각되어 '일송택배'로 변경했다가 1998년 이후 회사가 사라짐.
  • 금호페이퍼텍: 구 조일제지. 2006년 아세아그룹에 매각된 후 '아세아페이퍼텍'으로 변경됐다가, 2012년 아세아제지에 합병됨.
  • 금호화순리조트: 구 대한리조트. 1998년 금호개발에 합병됨.
  • 금호EQS컨설팅: 1999년 금호개발에 합병됨.
  • 남일건설: 구 원일기업. 1996년 금호산업개발에 합병됨.
  • 대우건설: 2006년에 인수했다가 2009년에 다시 내놨다.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하면서 사태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
  • 대의산업: 신양파크호텔 및 무등파크호텔 운영사로, 1995년 계열분리 후 2002년에 파산됨.
  • 대한통운 (현 CJ대한통운): 2008년에 인수했다가 2011년에 다시 내놓았다.[21] "대한통운" 만 매각하는 것으로 그 산하의 다른 계열사는 제외였다. 금호그룹이 대한통운을 보유하고 있었을때 대한통운의 현금을 빼오기 위하여 금호터미널, 한국복합물류, 아시아나에어포트, 금호렌터카 등의 회사를 비싼 값에 매각하였었는데, 대한통운의 재매각시 금호렌터카는 KT에 매각하였고, 다른 자회사는 분리하여 아시아나항공으로 재인수되었다. 그래서 대한통운이 가진 금호터미널 부지를 눈독들이고 인수전에 참여하였던 롯데는 나중에 빠졌다[22].#
  • 삼진고속버스: 1973년 광주고속에 합병됨.
  • 삼화교통: 1973년 계열 분리됨.
  • 신인천관광: 1993년 매각됨.
  • 유승무역: 1998년 분리 후 이듬해 '서울화인테크'로 변경됨.
  • 의료법인 송광의원: 구 (의)광주의원. 1988년 청산됨.
  • 인천공항외항사터미널: 2002년 지분매각 후 2016년 폐업됨.
  • 전남제사: 1973년 삼양타이어공업에 합병되어 제사사업부가 됐으나, 1976년 매각함.
  • 제일특송: 1991년 금호특송에 합병됨.
  • 진양개발: 골프장 진주CC 운영업체로, 1998년 금호개발에 합병됐다가 2001년에 동성여객컨소시엄으로 분할매각되어 '진주개발'이 됨.
  • 충일건설: 1990년 아시아나항공에 합병됨.
  • 한국복합물류: 2011년 CJ그룹에 매각됨.
  • 한국복합화물터미널: 1999년 금호개발에 합병됨.
  • 한국합성고무공업: 1985년 금호화학에 합병됨.
  • 한남고속버스: 1974년 광주고속에 합병됨.
  • 호남고속버스: 1972년 광주여객자동차에 합병됨.
  • 호남복합물류: 2007년 한국복합물류에 합병됨.
  • 화인소재공업: 1997년 유승무역에 합병됨.

7. 오너 일가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인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여담

8.1. 호남 기업?

금호그룹의 인식과는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호남기업으로 인식되는데, 금호그룹이 호남을 기반으로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 금호그룹의 모체인 광주여객은 60년대까지 지방의 흔한 버스 회사였지만, 1971년 호남고속도로가 개통된 후 호남 지역 고속버스 노선을 1위로 과점하는데 성공하면서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여기에는 호남 지역민들의 성원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던 것. 때문에 금호그룹이 호남 지역사회를 지원하는 모습이 뜨뜻미지근하거나,지역 출신 인재 채용 부문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듯한 모습을 보이면, 호남 주민들이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렇게 그룹의 모태가 호남 지방에서 시작되어 성장한 연유로 호남 기업으로 분류되지만, 금호그룹 측에서는 호남 기업만으로 인식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의 규모 자체가 대단히 커져서 향토기업이란 타이틀에 큰 의미를 두기 보다는 고르게 시선을 분배해야 할 필요성도 있기 때문.
  1. 이제는 단순히 광주택시로 시작했다는 이유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호남 기업으로 보기에는, 현재 그룹의 매출과 채용 규모가 지역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
  2. 무엇보다 지역사회에서 기여할만한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호남 지역에서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하는 기업들은 광주의 기아자동차, 군산의 한국GM 공장 내지 여수 석유화학 단지 내에 있는 GS칼텍스, 여천NCC, 대림산업 등이다. 금호타이어는 상술한 기업들에 비해 규모가 작으며,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공장이 울산에 있다. 또한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제5공화국 시절 서울항공으로 시작하여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성장했기 때문에 호남 지방과 연관이 적다.
  3. 그리고 운수회사 시절, 사세를 확장할 때 9 ~ 12개월씩 임금을 체불하고 다시 그 돈과 융자금을 합해 신규계열사(예, 삼양타이어)[23]를 설립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인심을 많이 잃었다.[24]

이 때문에 호남 지역에서는 투자를 바라는 경우가 많지만, 금호그룹은 호남 지역의 스포츠 구단에 투자하는 것이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투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우그룹이 야구장(무등경기장) 건설에 가장 많은 기금을 쾌척해 지역사회에서 화제가.되기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80년대에는 소비재에 대한 광고 효과를 노리고 창단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금호에는 당시 그런 게 없었다. 우선 고속버스여객기의 경우 시간대와 노선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아파트의 경우 입지 조건을 고려하기 때문에 소비재에 비해 고객의 충성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소비재라 할 수 있는 타이어의 경우 80년대에 자가용 보유량이 낮았음을 생각하면 썩 효과적이지 못하다. 한 때 성세를 구가한 금호전자가 있었지만, 이 즈음에는 임금 체불과 성과 부진 문제가 겹쳐 1 + 1, 1 + 2 끼워팔기까지 나타나는 상황이었다.[25] 이렇게 그룹 시스템이 아직 탄탄하지 못한 여건으로 인해 박인천 - 박성용 부자는 야구단 창단에 반대했다.

결국 삼양사, 교보생명에도 거절당한 호남권 프로야구단은 해태제과에 인수되면서 해태 타이거즈가 된 것이다. 이후 해태 타이거즈를 매각할 당시에도 금호그룹에선 전혀 나서지 않았고 대신 광주광역시에 제조공장이 있는 기아자동차(현대자동차그룹)에서 인수해서 기아 타이거즈가 되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3년에 서울 연고의 프로축구단을 창단하려했으나 광주-전남권의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창업주의 5남인 박종구가 지역색이 다른 이명박 정부 하에서 舊 교육과학기술부(現 대한민국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을 지내고, 자회사인 아시아나항공에어부산을 만드는 등 그룹 차원에서는 적극적인 듯. 이 때문에 호남 연고의 프로 스포츠 관련해 그룹측의 지원은 지역민들의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다.

다만 스포츠 문제의 경우엔 다른 이유도 있긴 하다. 본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창업주인 박인천 회장부터 현재까지 주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예술 분야에 대한 투자 및 인재 육성에 노력을 기울인 대신 상대적으로 프로 스포츠 분야에는 관심이 적은 편이었다. 한때 금호생명에서 WKBL 팀을 운영했던 게 거의 전부였고 이마저도 한국산업은행에 인수되어 현재는 구리 KDB생명 위너스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학교법인인 죽호학원에 소속된 광주 금호고등학교(운암동 소재)는 광주 FC의 U-18 유소년클럽이다.

문화 예술 분야 중에서도 특히 클래식 분야에 대한 후원은 상당한 수준이며 체계적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故 박성용 회장이 상당한 수준의 음덕 클래식 애호가였던 것이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는 영재 육성에 관심이 많았기에, 최근에 두각을 나타내는 재능 있는 한국인 신예 음악가 치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후원을 받지 않은 이가 거의 없을 정도다. 서울의 舊 본사 건물[26][27]과 광주 서구 광천동 유스퀘어 안, 그리고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28] 금호아트홀이라는 실내악 홀을 만들어서 싼 값에 좋은 연주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특히 매년 영재들을 심사해서 이곳에서 연주 기회를 제공하고, 그 외에 각종 지원을 한다. 광화문 금호아트홀에는 심지어 박성용 회장이 생전에 매번 앉던 좌석이 따로 있다. 치우쳐 있는 곳이라 이른바 VIP석도 아니고 오히려 싸게 팔 가능성이 높은 자리지만 연주자는 잘 볼 수 있어서 매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자리이다. 그러나 광화문 금호아트홀은 2019년 4월 30일부로 폐관예정으로, 클래식 뮤지션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다만 연세대 금호아트홀 건립 때는 그룹이 부실로 휘청거리고 있는데, 개인의 명예를 위해 모교에 수십억을 투자하는 것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도 많았다.

또한 워낙 몸값이 비싸서 수지타산이 안맞아 대한민국에는 못 데려오고 있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을 성사시켜 정기적으로 오게 만든 것도 금호아시아나그룹이었다. 티켓 값이 최고 45만원이어서 올 때마다 욕도 많이 먹고 있지만 워낙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이니 그래도 표는 다 나간다. 문제는 개런티가 워낙 세서, 그래도 약간 적자가 난다 카더라. 오죽했으면 박성용 회장 장례식에 재계보다 음악인들이 조문을 더 많이 왔을 정도였다.[29]




[1] 사진에 보이는 쪽이 아니라 뒤쪽이 미디어파사드이다. 그래서 해가 진 후 서울광장에서 광화문 방향을 바라보면 미디어파사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한때 금호그룹의 손에 있었던 서울스퀘어(구 대우빌딩)에도 미디어파사드가 있다.[2] 종로타워 바로 뒷편 건물이다.[3] 저 건물은 금호산업이 건설한 것으로 매각 당시 콜옵션을 행사해서 다시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4] 사옥 바로 옆에 흥국생명 본사가 있는데, 여기엔 그 유명한 조너선 브롭스키의 조각상 "망치질 하는 사람(Hammering Man)"이 있다. 옆에 있는 금호아시아나는 이것 때문에 풍수적 문제를 지적받았다.(...) #[5] 코리아나관광진흥이 미국 그레이하운드와 50:50 합작으로 세운 고속버스업체.[6] 90년대 들어 고속도로 정비 후 1시간 거리로 간주되고 있다.[7] 대우중공업에서 독일 MAN 社로부터 라이선스를 얻어 생산한 엔진. 힘도 좋고 잔고장이 적어서, 이 엔진을 단 새한-대우 버스가 출시된 후부터 정비비용과 시간을 절감한 운수회사들이 비로소 제대로 이익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8] 특히 5공화국 출범 후에는, 정부 방침으로 버스 엔진이 MAN엔진으로 통일되기에 이른다.[9] 이 무렵의 중앙고속은 제휴를 맺은 미국 그레이하운드사의 영향으로 회사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나름 준수하고자 노력하는 회사였다고 한다. 노동자 인권은 개나 먹는 거인 줄 알았던 시절에 보기 힘든 훈훈한 풍경이었지만, 이를 본 금호고속의 어느 임원은 "니들은 우리에게 안 되겠구나."라 말하며 일종의 공략지점 및 활로를 찾았다는 후문.[10] 이러한 분위기가 지금도 계속되는 것인지, 중앙고속은 여전히 괜찮은 복지와 직원처우를 자랑하는데 비해 금호는 썩 좋지 않다.[11] 동부고속, 한진그룹과 더불어 운수업체가 대기업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사례라는 후문.[12] 버스 차장이 자녀에게 표를 안 받고 승차시켰단 소식이 들어가면 자식을 호되게 야단쳤다는 일화가 있다.[13] 즉 임세령은 박인천의 외손녀, 박삼구의 조카가 된다.[14] 류현정, 공동경영합의서와 금호家 '형제의 난', 조선비즈, 110623[15] 당시 국내 일반기업 M&A사상 최대 규모. 심지어 당시 대우건설 인수 적정가를 3조 원 정도로 예측하고 있었는데 박삼구가 엄청나게 지른 것 때문에 뒤에 일어나는 사단이 발생한다.[16] 류형열, 대법원,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은 다른 기업 집단”[17] 여담이지만 광주 지역사회에서는 박삼구보다, 학창시절에 좀처럼 돈을 쓰지 않고 모아둔 종잣돈(?)으로 지인이나 부친의 회사에 빌려줘 돈놀이를 시도했다가 혼쭐난했을 만큼 나름 가능성을 보였던 박찬구 쪽의 경영능력을 더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18] 한진그룹과 물류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였으나, 물류업 한우물만 파며 진력한 한진에 밀리는 형국이었다고.[19] 금호산업주식회사 고속사업부.[20] 다른 계열사도 아니고 하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시초이자 상징과도 같은 금호고속을 희생시키겠다는 뜻이라서 회사 내외에서 말이 좀 많이 있는 편이다.[21] 인수전 막바지에는 친족간인 CJ그룹삼성그룹마저 참여하면서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급의 치열한 인수전을 보여주었다. 당시 CJ에서는 삼성증권에 인수 관련 자문을 맡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삼성SDS에서 포스코와 협력하여 인수전에 뛰어들더니 삼성증권에서 인수자문을 철회해버렸다. 삼성증권에서 갖고 있던 CJ의 정보는 어디로 갔을까? 덕분에 CJ측에서는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었고, 시장에서는 포스코+삼성의 승리를 기정사실화 했었는데, CJ측이 분노파워로 가격을 무려 5000억원씩이나 높게 써내는바람에 인수에 성공하였다,[22] 당시 롯데측은 롯데로지스틱스를 가졌으나 열세였다.[23] 금호타이어 전신.[24] 동종업자였던 한진그룹 조씨 일가 역시 자사 직원들을 그다지 후대하지 않았지만, 이쪽은 주로 미군들을 상대하며 성장했고 결정적으로 사세를 확장한 것도 월남전 때 현지 미군 및 파월한국군 사령부의 지원 하에 일을 맡았던 데에 힘입은 것이었다. 또한 전쟁 통에 중간중간 미군 물자를 전용하는 것도 가능했던만큼, 굳이 직원들 월급에 손을 대지 않아도 되었던 것. 당시는 군에서 귀국 box나 손망실 처리 등으로 미군이 지원해준 양질의 물자들을 국내에 비공식적으로 반입하는 상황이었기에, 이런 부분까지는 파월사령부에서 큰 제재를 가하지 않았던 덕분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였다.[25] 다만 전자의 경우는 야구단을 창단했으면, 사업을 접는 상황까지는 안 갔을 걸로 보는 시각도 있다.[26] 위에서 설명한 인수합병시 하필 이 건물을 대우건설에 배정했고 그 결과 현재는 이미 남남이 되어버린 대우건설의 본사가 되었다. 음향에 신경써서 워낙 실내악 전용 공연장으로 제대로 만들어 놨기 때문에 대우건설 쪽에서도 방빼를 시전하기 어려웠고, 덕분에 대우건설 본사인데 3층만 금호아시아나가 쓰는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고 있다.[27] 참고로 대우건설은 원래 서울역 앞 대우빌딩을 가지고 있었고, 금호그룹에 인수된 이후에도 가지고 있었으나, 금호그룹이 회사 사정이 나빠지면서 대우빌딩도 모건스텐리에 팔아치웠고, 대신 금호그룹 사옥을 대우건설에서 받아왔다. 산업은행에 팔릴 때에도 사옥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여튼 舊 대우그룹의 자존심 같았던 대우빌딩을 모건스텐리에 빼앗긴 것 때문에 대우건설 직원들이 금호라는 이름만 들어도 이를 바득바득 간다고 한다.[28] 이쪽은 현재 그룹 회장인 박삼구가 연세대학교 동문회장이라 기부금을 출연해서 만들었다. 광화문에 있던 원래 금호아트홀과 구별을 위해 이쪽은 금호아트홀 연세라고 부른다.[29] 스포츠 캐스터로 유명한 임용수가 바로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연이 있다. 성악과를 졸업한 후 1993년 금호그룹에 입사했다. 당시 맡은 직책은 금호그룹의 사회공헌 사업 중 하나인 클래식 음악 후원 재단의 직원으로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