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4 00:36:42

아시아자동차

파일:ASIA MOTORS.jpg
정식명칭 아시아자동차공업주식회사
영문명칭 Asia Motors Industries Co., Ltd.
한문명칭 亞細亞自動車工業株式會社
기업규모 대기업
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설립일 1965년 7월 2일
해산일 1999년 6월 30일
업종명 승용차 및 기타 여객용 자동차 제조업
상장여부 상장폐지
상장시장 유가증권시장 (1988년 ~ 1999년)
본사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5
공장 주소 광주광역시 서구 내방동 700
1. 개요2. 역사
2.1. 이란-이라크 전쟁 특수2.2. 위기2.3. 합병 이후
3. 역대 로고4. 역대 임원5. 노동조합6. 생산차량7. 기타

1. 개요

기아그룹 계열 상용차/대형차량 생산업체이다. 1980년대까지 언론이나 대중들 사이에선 '아세아자동차'라 부르기도 했다.

2. 역사


콤비가 나온 아시아자동차 기업광고. 국내에서는 보기드문 상용차 CF이다. 콤비뿐만아니라 후반에 AM919, AM트럭 등 당시 아시아자동차에서 생산한 차량이 나온다.

1962년 5월 3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 재건 방안의 일환으로 국내 자동차 공업을 육성한다는 취지로 제정, 공포한 자동차 공업 보호 육성법에 기인해 1964년 12월 21일에 이탈리아 피아트, 프랑스 생카(SIMCA) 그리고 SIAVE 은행과 차관 협정을 체결하고 1965년 7월 2일에 호남 연고 기업인인 이문환(李文煥)[1]에 의해 설립 자본금 8억 2천 8백만원으로 설립되었다. 1969년에 동국제강을 거쳐 1976년 기아산업에 인수되었다.

첫 모델인 세단 피아트 124를 선보인 것은 현대자동차포드 20M 모델을 선보인 것보다 1년 뒤인 1970년 3월이지만 설립 연도로 보면 아시아자동차가 설립된 것은 1965년 7월이므로, 국내 자동차 공업을 이끈 선두 그룹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아의 첫 모델인 피아트 124는 그 내구성이나 경제성, 그리고 당시 중상류층이 선호하던 보수적인 외형으로 단번에 신진의 코로나, 현대 코티나와 더불어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의 강력한 3각 경쟁 구도를 이루었지만 피아트와의 계약 문제로 인하여 불과 3년 만에 단종됐다. 다만 기아산업에 인수된 이후 피아트의 상위 모델인 피아트 132를 들여와서 1981년까지 생산했다.

2.1. 이란-이라크 전쟁 특수

이란 - 이라크 전쟁 국면을 타고 아세아자동차는 사세를 키우게 된다.

당시 효성물산이 이란으로부터 수주를 받았는데, 효성측에서 "가격은 걱정말라"며, 1,000만원 하는 군용 지프를 수출용으로 개조한 물건을 1,200만원씩 받고 넘기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이란으로 수출된 아세아 군용 지프는 현지에서 "꼬레아 NO.1"이라 찬사를 받으며 큰 인기를 끌게 된다.

현지에 차량을 수출한 브랜드 중에는 영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 메이커도 있었는데, 유독 아세아 차량이 인기를 끈 요인은 다음의 2가지였다고 한다.
  • 구조의 단순함 - 당시 대부분의 국산 차량은 본네트를 열어보면 엔진부와 에어컨 부분 외에 눈에 띄는 부품없이 텅 비어있을만큼 구조가 단순해[2], 정비 및 운용하는 데 용이하였다. 엔진오일 등 주입하는 부분도 한국인 관계자가 "빨간 눈금 부분까지만 넣으시라"고 당부한 내용만 따르면 무리없이 쓸 수 있었다는 후문.[3]
  • 우직함 - 전쟁 중에 본네트에 환자를 싣고 달려도 영국, 프랑스 브랜드와 달리 중량 초과로 차가 안움직이는 일 없이, 어떻게든 차가 굴러가는 튼튼함과 우직함이 있었다고 한다.

1980년 2차 오일 쇼크 이후 1981년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로 승용차 생산은 현대자동차와 새한자동차(현 한국GM)가, 중 · 소형 트럭 생산은 기아자동차가 독점하게 되었으며, 이는 1986년까지 지속되었다. 1986년에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 해제 이후에 기아자동차도 승용차를 개발하지만 이는 기아자동차의 브랜드로 판매되었고, 아시아자동차는 군용 차량과 대형 버스, 트럭을 계속 생산해 자체 브랜드로 판매했으며 라이노 등 일부 기아 차종도 위탁생산했다. 1988년에는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할만큼 사세가 확장된다.


1995년 아시아자동차 브라질 바히아 공장 건설 체결 당시 모습.

2.2. 위기

하지만 1990년에 여태까지 SUV 시장을 독점하던 쌍용자동차 이외의 회사에서 처음 내놓은 SUV인 록스타를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아시아자동차는 다시 승용차 시장에 재진입을 시도하며 모기업인 기아차와 되도록 중복되지 않는 틈새시장을 노리고자 했는데, 1995년에는 '네오마티나'라는 스포티지의 플랫폼을 활용한 퓨전 RV 컨셉카를 공개한 이래 여러가지 세그먼트 버스터나 RV 타입의 승용차의 개발을 시작하면서 1990년대 후반에 시판하려고 했고[4][5] 실제로 이중에 몇몇 모델은 양산 직전 단계까지 개발이 진척되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프랑스의 푸조 806을 들여와 미니밴을 개발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다.

게다가 내수시장이 적은 한국 상용차 시장의 약점을 타개하기 위해 1992년부터 브라질 교포 사업가 전종진(스토니 전)과 함께 브라질 합작법인(AMB)을 세워 타우너와 토픽을 수입하기 시작했으나 1995년에 브라질 정부 측이 수입차 관세를 70%로 올리면서 대신 1997년부터 브라질 바히아 주에 생산공장을 세우려 했지만, 결국 그 해에 기아그룹의 부도로 인해 모조리 흑역사가 되면서 단 하나도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고 브라질 시장 개척 역시 뜻을 이루지 못했다.[6]

1997년 초에 아시아자동차도 기아차와 동일한 로고를 달고 아시아자동차판매(주)를 세워 독자 판매망을 구축하려 했으나, 기아그룹의 자금난으로 부도유예 협약 대상업체로 선정되어 법정관리로 들어가면서 그해 12월부터 타우너, 토픽, 레토나의 판매권을 기아자동차의 자회사인 기아자동차판매로 넘긴 뒤[7] 대형차량 판매/생산과 군용차량 납품에 주력했고, 1998년 국제 입찰에서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를 분리 매각하거나 통합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결국 두 회사 모두 현대자동차에 인수되었다. 이후 1999년 6월 30일부로 아시아자동차판매, 기아자동차판매, 기아대전판매와 함께 기아자동차와 통합되어 사라졌고, 공장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으로 개편되었다.

2.3. 합병 이후

합병 이후 아시아자동차에서 생산하던 모델들은 기아자동차의 브랜드로 변경되어 명맥을 이어 오다가 현대자동차 주도의 라인업 재정비로 인해 단종되었다. 아시아자동차에서 생산했던 차량 중 현재까지 생산되어 출시되고 있는 모델은 1994년에 출시한 대형버스인 그랜버드가 유일하다.

한편 브라질 합작법인 AMB 전 대표 전종진도 1998년에 사기 혐의로 검찰에 체포되어 2000년에 석방되어 국외로 잠적하다가 2006년에 브라질 연방경찰에 체포되어 현지에 수감되었고, 2008년에 국내로 송환되어 처벌을 받게 되었다.[8]

1988년부터 1998년[9]까지 스카니아 대형트럭을 위탁 생산/판매했던 적이 있었다.

3. 역대 로고

파일:아세아자동차공업주식회사_로고.png
초창기 로고

파일:/storage/upload/2008/09/15/5681501_1221546370.gif
1986년부터 1993년까지 사용한 로고.[10]

파일:external/www.brandsoftheworld.com/asia_motors_logo.png
1994년부터 1997년 2월 14일까지 사용한 로고.[11]

파일:ASIA MOTORS.jpg
1997년 2월 15일 ~1999년 합병 전까지 사용한 로고. [12]

4. 역대 임원

  • 대표이사 회장
    • 천도원 (1987~1988)
    • 김한선 (1990~1992)
  • 부회장
    • 조래승 (1995~1997)
    • 정두채 (1998)
  • 대표이사 사장
    • 이문환 (1965~1970)
    • 장상태 (1970~1975)
    • 한신 (1975~1976)
    • 김명기 (1976~1977/1978)
    • 성형철 (1977)
    • 오규환 (1977~1978)
    • 민경중 (1978~1982)
    • 김성웅 (1982)
    • 나동원 (1982~1987)
    • 박시윤 (1987~1988)
    • 김한선 (1988~1990)
    • 조래승 (1990~1995)
    • 김영석 (1995~1997)
    • 정문창 (1997~1998)
    • 김광순 (1998)
    • 김수중 (1998~1999[13])
  • 관리인
    • 박제혁, 진념 (1997~1998)
    • 유종렬 (1998~1999)

5. 노동조합

  • 아시아자동차 노동조합: 1970년 결성 이후 한동안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이었으나, 1994년 탈퇴 이후 1995년부터 1999년 합병 전까지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련 소속이었다.

6. 생산차량

파일:KIA Motors_white.png
기아자동차 차량 목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구분 승용, SUV, RV, 승합, 경상용차 버스 트럭 군용차
1960년대 K-360, T-600, T-1500, T-2000
1970년대 브리사, 132, 604 B버스, AB버스, AM버스 타이탄, 복사, KB트럭, B-1000 K-111, K-511, K-711
1980년대 프라이드, 캐피탈, 콩코드, 봉고(승합모델),
베스타, AC버스, 토픽
콤비, 코스모스 봉고(트럭모델), 세레스,
트레이드, 라이노,
AM트럭
K-311, K-811
1990년대 비스토, 아벨라, 리오, 세피아, 슈마,
크레도스, 포텐샤, 엔터프라이즈, 엘란,
스포티지, 록스타, 레토나, 카렌스, 카스타,
카니발, 프레지오, 타우너(승합모델)
그랜버드 그랜토, 타우너(트럭모델) K-131
2000년대 모닝, 스펙트라, 쎄라토, 씨드, 포르테,
옵티마, 로체, 앙투라지(카니발), K7, 오피러스,
쏘울, 쏘렌토, 모하비, 벤가, 트라벨로
파맥스 K-911
2010년대 레이, K2, K3, K4, K5, K9,
KX3, KX7, 니로, 스팅어, 스토닉, KX 크로스,
페가스/솔루토, 즈파오, 이파오, 텔루라이드, 셀토스, 엑씨드
K-151, 중형표준차량
2020년대 소네트
갈색 글씨 - 단종차량 }}}

자세한 내용은 기아자동차 문서의 생산차량 문단을 참조. 위의 생산차량 틀에는 아시아자동차 시절의 차량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아시아자동차 차량 중 개발/생산 중인 차량은 고속/시외버스용 차량인 기아 그랜버드가 유일하다.[14] 엄밀히 따지면 아시아자동차가 기아자동차에 흡수된 후 모델 체인지를 했기 때문에 현재의 그랜버드는 아시아 시절의 그랜버드와는 다른 차종이다. 물론 풀모델 체인지긴 하지만 아시아 시절 그랜버드 플랫폼을 개량한거라 아시아자동차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하지만...[15]

7. 기타

  • 대한민국 소방청 (당시 내무부 소방국, 행정자치부 소방국)에도 기아 AM트럭, 그랜토 기반의 소방 펌프차, 사다리차, 구조공작차, 물탱크차로 공급되었다. [16]
  • 현재 대만에서 양명산을 오르는 버스로 아직도 AM버스가 사용 중이다.
  • 1997 서울모터쇼 때 프라이드 복고풍 버젼인 제노비아, 소형 해치백인 ARV, 타우너 콘셉트, 프레지오의 콘셉트인 스태퍼가 전시되기도 했다. 링크
  • 모 운전학원에서는 시험차량으로 녹이 다 슨 AM버스가 굴러다니고 있다. 교육기관 버스로 쓰였는지 색이 노란색이고 전라남도교육청 로고를 붙였던 자국이 남아있다(...).
  • 현대커머셜의 여의도사옥은 원래 아시아자동차의 사옥이었다. 이 사옥은 1986년에 기아자동차의 사옥으로 완공되었으나, 1992년 12월에 기아자동차가 옆 건물을 지어 이전하면서 아시아자동차와 기아자동차판매가 공유하였고 1999년 기아자동차+아시아자동차+기아자동차판매+기아대전판매 4사가 기아자동차로 통폐합이 이뤄지면서 기아자동차의 일부 부서가 사용하게 되었다.[17] 그러다가 2000년 말에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그룹에서 분리되고 계열사의 사옥 재배치가 이뤄지면서 2001년부터 현대모비스가 이 건물에 입주하게 되었고 다시 모비스가 빠지고 금융계열사를 여의도로 모으게 되면서 현대커머셜의 본사가 된 것이다.


[1] 나주에 산소 공장을 설립하고 비료 회사에도 손을 댈만큼, 기업인으로써 안목이 뛰어났다고 한다.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소유한 광주 광천터미널 및 인근 부지 역시, 원래는 이문환 씨가 설립한 산소공장이었으며, 근처의 기아자동차 공장은 아세아자동차 공장이었다고.[2] 당시 고급차종이었던 쏘나타 초기 모델마저도 내부는 포니와 다를 바 없이 단순했다고 한다. 반면 벤츠는 보닛(본네트)을 열면 복잡하게 부품이 꽉 차있어 무엇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였다고[3] 단, 적십자 표시는 이슬람권인 현지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부산 세관에서 이슬람 적십자 마크로 도색을 다시 하는 해프닝이 있었다고 한다.[4] 당시 아시아자동차에서 한참 개발 중이던 카렌스의 형제차 미니밴도 개발이 상당부분 진척되었고, 1997년 서울모터쇼에 공개된 ARV라는 박스카형 소형차는 컨셉카가 공개되었을 당시 상당히 독특한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기아그룹 부도 사태로 모조리 나가리가 되었다. ARV는 컨셉카가 처음 공개된 시점이 1997년이었는데, 만약에 성공적으로 양산이 되었으면 1990년대 말 닛산 큐브토요타 bB와 맥을 같이하는 박스카형 소형차, 혹은 2000년대 초 르노 모뒤스피아트 이데아같은 소형차급 MPV의 선구자격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5] 하지만 양산이 나가리된 ARV는 완전히 사장되지 않고, 아시아자동차가 기아자동차에 흡수합병된지 10여년이 지난 후에 그 독특했던 기본 컨셉이 다시 부활될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쏘울이다. 공교롭게도 쏘울이 생산되는 공장은 광주공장으로, 구 아시아자동차 공장이다.[6] 스토니 전은 아시아자동차를 상대로 4천억원대의 사기 행각을 벌이고 국내에서 재판을 받던 중 브라질로 도피했다가 2006년에 체포됐다.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으며 2020년 현재는 만기 출소한 것으로 보인다.#[7] 레토나가 기아 브랜드로 판매된 것도 그 이유이다.[8] 2003년에 대법원에서 이미 징역 10년이 확정되었다.[9] 그 해에 스카니아코리아(1994년에 스카니아 한국지사였다가 1995년 한국법인으로 전환)가 직접 판권을 가졌다.[10] 굴뚝 로고를 기아자동차랑 같이 쓰나, Kia가 Asia로 바뀌었다.[11] 타원형 로고를 같이 쓰나, KIA가 ASIA로 바뀌었다.[12] 기아그룹의 통일성을 위해 바꿨다.[13] 기아자동차 사장도 겸임.[14] 심지어 이 차량은 현재 기아자동차에서 생산중인 유일한 버스이기도 하다.[15] 물론 아~주 기초적인 것만 그런 잔재가 남아있지, 나머지는 전부 아시아자동차 흔적 자체가 희석되었다.[16] 금양특장, 삼일특장차에서 개조.[17] 참고로 1998년말에 기아자동차의 상법상 본사는 현대그룹 계동사옥으로 옮겨졌다. 당시에는 현대자동차도 계동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