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80300><colcolor=#fff> 국제 國際 | KUKJE |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창립일 | 1947년 |
해체일 | 1985년 2월 21일 (그룹 해체 절차 돌입) |
규모 | 대기업 |
유형 | 복합 기업, 기업 집단 |
규모 | 대기업 |
총수 | 양정모 |
소재지 |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2가 191[1] (국제센터빌딩, 現 LS 용산타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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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서울 용산의 옛 국제센터 빌딩 (現 LS 용산타워) |
2. 역사
1947년 정미소를 경영하던 양태진 사장과 아들 양정모 상무가 부산에 설립한 국제고무라는 회사에서 왕자표 고무신 제조 사업을 모태로 성장시킨 기업집단이다.[2] 지주회사격의 기업은 국제상사(현 LS네트웍스)였다. 1974년에는 진양화학이 독립한 후 이듬해 종합조정실을 발족해 그룹 총괄체제를 구축했고, 1977년에는 국내 최초로 냉연강판을 생산해낸 연합철강을 인수했고[3], 1979년에는 이상순(2011년 작고)[4]으로부터 원풍산업을 인수했고, 1983년 경기도 용인군에 그룹종합연수원을 세웠다.[5]
국제그룹은 1980년대 초반에는 재계순위 7위에 등극하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재벌이었음은 물론이거니와[6] 부울경 제1의 향토기업이었다. 위의 사진은 1982년 서울국제무역박람회[7]에 설치된 국제그룹 전시관의 전경으로, 전시관 규모가 이웃한 롯데그룹의 것과 비교해도 더 큰 규모였을 정도고[8][9][10], 현대그룹 전시관의 규모와 비슷했을 정도로 재계에서의 위상이 대단했다. 1984년에는 서울특별시 도심의 노른자땅인 용산구 한강로2가에 20층이 넘는 규모로 독특한 외양으로 잘 알려진 용산의 국제센터빌딩(현 LS용산타워)을 완공하였으며, 이 건물을 본사로서 단독 사용하였다.[11] 화학, 섬유, 건설, 종합상사 등 알짜배기 분야에 진출해 있었고, 프로스펙스 등의 유명 브랜드까지 보유했다. 계열사 조광무역은 리바이스 청바지를 국내에 도입해 라이센스 생산,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창 승승장구하던 그룹도 운명의 장난으로 급속도로 사세가 기울기 시작하였다.
3. 해체 사건
자세한 내용은 국제그룹 해체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철권통치를 하던 제5공화국 군부정권을 거스른 죄로 재계서열 10위권 내의 대재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해체당하는 운명을 맞았다.
4. 로고
모기업 국제상사가 1979년에 낸 사사 <국제상사 삼십년사>에 따르면, 그룹 로고는 모기업인 국제상사의 영문 명칭 'International Chemical Company'의 약자인 ICC를 미려하게 형상화한 것이다. 타원형의 둘레는 두 개의 C자가 유연히 결합되도록 한 것이며 한가운데 I는 International의 머릿글자인 것이다. 여기서 타원형은 지구를, 알파벳 I는 문자 그대로 '나'를 뜻하는 'I'를 의미하며 두뇌가 있는 나, 즉 ICC맨이 긍지를 가지고 서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국제그룹의 모든 종업원이 하나의 원을 이루며 구심적인 연대를 형성하며 국제가족의 일원임을 말해 주기도 한다.[12]5. 기업 정신
- 경영이념(1982년 제정): 성취동기 개발, 공존공영의 실천, 합리정신의 구현
- 사가 <국제가족의 노래>: 작사는 김경한, 작곡은 이상근이 맡았다.
(1절)고난과 시련을 딛고 넘어서 인화와 신념으로 커가는 국제 쉴새없이 울리는 생산의 메아리에 내일을 다짐하는 민족의 기업 터전은 닦였네 끈질긴 의욕의 국제그룹 (2절)땀 흘려 보람 찾는 우리의 기치 성실과 신의로써 얻은 이 번영 세계를 주름잡는 영광을 이룩한 힘 그칠 줄이 있으랴 내일의 왕자 터전은 굳었네 인화와 단결의 국제그룹 (3절)조국의 번영은 곧 나의 영예 사명은 무겁도다 겨레의 기업 우애로 굳게 뭉쳐 뻗어가는 우리 힘 기필코 누리리라 복된 내일을 기리자 그 이름 영광의 내 일터 국제그룹 |
6. 역대 그룹 임원
- 회장
- 양정모 (1976~1985)
- 부회장
- 김덕영 (1983~1985)
- 종합기획실장
- 김덕영 (1984~1985)
- 종합조정실장
- 김병구 (1975~1977)
- 함태암 (1977)
- 이웅근 (1977~1980)
- 한윤구 (1980~1981)
- 이만우 (1981~1983)
- 이상운 (1984~1985)
- 이춘무 (1985)
7. 계열사 목록
- 국제상사(現 LS네트웍스): 1986년 한일그룹이 인수했으나 1998년 부도 후 법정 관리를 거쳐 2007년 LS그룹으로 매각됐다.
- 무역/신발부문: 프로스펙스 및 아티스가 주력이며 2008년에는 아티스 브랜드를 분사시켰다.
- 건설부문: 舊 국제종합건설. 1984년 합병됐다가 이듬해 그룹 해체 후 1986년 극동그룹에 매각되어 과천개발과 합쳐져 '국제종합건설'로 변경됐으나, 1998년 부도 후 이듬해부터 법정관리를 거쳐 2002년 학산건설에 인수됐다. 이듬해 국제건설, 2004년 학산건설을 거치다가 'HS홀딩스'로 출범하자 분사해 'IC코퍼레이션'으로 바꾸고 2006부터 2년 간 디시인사이드가 일부 지분을 갖기도 했다. 이후 회사가 어려워져 2009년에 '국제개발'로 출범하자 또다시 '국제건설'로 분할됐으나 2012년 회생절차를 밟았으나, 이듬해 국제개발과 같이 파산 수순을 밟았다.
- 국제방직: 1985년 해체 후 동방그룹에 매각되어 1993년 '동방방직', 1997년 '동방T&C', 2000년 '동방생활산업'으로 각각 변경했다가 2019년 (주)동방에 합병됨.
- 조광무역: 리바이스 OEM 생산/판매업체로, 1986년 서우산업에 인수되어 '한주통산'이 되었으나 1997년에 부도남.
- 국제제지(現 아세아제지): 舊 삼양지업. 1985년 해체 후 아세아시멘트에 매각됨.
- 신동제지: 1984년 국제제지에 합병됨.
- 풍국화학: 그룹 해체 후 개인에게 매각됨.
- 성창섬유(現 화승T&C): 그룹 해체 후 1986년 화승그룹으로 매각됨.
- 국제종합기계(現 국제기계): 舊 유신기계공업. 1985년 그룹 해체 후 동국제강에 넘어갔다가 2016년 동양물산에 매각됨.
- 연합철강공업: 1964년에 권철현이 부산에서 일본 차관을 들여 창업했다가 1977년에 창업주가 외화 밀반출 및 탈세 혐의로 구속되면서 경영권을 인수함. 1985년 해체 이후 동국제강에 인수되어 전전 사주인 권철현 2대 주주와 경영권 분쟁에 시달리다 2003년 권철현 사망으로 동국 측이 그의 주식까지 인수했고, 2004년부터 유니온스틸로 바뀌었다가 2014년에 동국제강으로 합병됨.
- 연합물산: 옛 연합철강 계열사로, 그룹 해체 후 1986년 한일그룹에 매각됐다가 1997년 성창F&D로 인수되어 '밀리오레'가 됐으나, 2006년 그 회사와 합병됨.
- 국제제철
- 원풍산업(現 넥센타이어): 그룹 해체 이후 이듬해 우성그룹에 인수됐고, 모방사업부는 1993년에 국제기술개발로 넘겼다.
- 국제기술개발(現 킹텍스): 舊 국제종합엔지니어링. 그룹 해체 이후 이듬해 우성그룹에 인수했으나 1993년에 우성산업으로부터 모방부문까지 양수했다.
- 국제개발: 1981년 국제종합건설에 합병됨.
- 국제토건: 1985년 그룹 해체 후 청산됨.
- 성신토건: 이하 동일함.
- 신남개발: 부산 해운대 하얏트호텔 운영업체로, 1986년에 한일그룹에 매각됐다가 1998년 그룹 부도 후 1999년에 호텔이 '진산애셋H&M'으로 넘어갔고, 법인은 2001년 폐업됨.
- 원효개발(現 동일리조트): 통도컨트리클럽(現 통도파인이스트CC) 운영사로, 1986년 한일그룹에 매각된 후 1993년 '한일리조트'가 됐으나 1998년 그룹 부도 후 법정관리를 거쳐 2004년 동일건설에 매각됨.
- 남주개발: 제주 하얏트호텔 운영업체로, 1986년 한일그룹에 매각됐다가 1998년 그룹 부도 후 2000년에 호텔을 아주그룹으로 넘기고 법인이 청산됨.
- 보고산업: '빅사운드' 카세트 레코더로 유명한 전자업체로, 1982년 국제상사에 합병됨.
- 국제상선: 그룹 해체 후 1986년 서주해운으로 넘어갔으나, 1992년에 폐업됨.
- 국제통운: 舊 연합통운. 그룹 해체 후 1986년 동국제강으로 넘어갔다가 2010년 동국통운에 합병됨.
- 동우산업: '거북표 씽크대'로 유명한 주방용구 제조업체. 1986년 대양금속에 매각됨.
- 국진기업: 양식기 제조업체로, 1979년 농기계사업부가 원풍산업에 합병됨.
- 동서증권: 그룹 해체 이후 극동건설에 인수됐으나, 1997년 부도맞고 이듬해 '동서호라이즌증권'이란 청산법인으로 전환하고 2017년 폐업됨.
8. 산하 기관
9. 유사 사례
- 동명그룹: 국제그룹과 동향이며, 1980년 국보위 때 비슷한 이유로 먼저 사라진 재벌이다.
- 명성그룹: 전두환 정부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먼저 사라진 재벌이다.
- 삼호그룹: 삼호아파트로 유명한 재벌. 5공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1984년에 해체되어 주축인 (주)삼호는 대림그룹으로 넘어갔다.[13] 가수 조덕배의 작은아버지 조봉구(1919~2009) 씨가 이 그룹의 총수였다.
- 대한선주: 서주우유로 유명한 윤석민 회장이 1973년에 대한해운공사를 전 사주 김연준(한양대학교 설립자인 그 사람이다)으로부터 인수한 국내 굴지의 해운 기업이었으나, 1980년대에 불어닥친 해운업의 불황으로 인해 경영난이 겹치자 이에 전두환 정부가 1987년에 제정한 '해운산업 합리화조치'에 따라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한진그룹에 인수되어 한진해운과 합병했다. 그러나 전두환 퇴임 이후 5공 비리 폭로에 편승한 윤석민 전 회장이 1989년 대한선주가 5공에 정치자금을 안 바쳐서 망했다고 '해운산업 합리화조치'가 위헌이라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89헌마35)을 냈으나, 1994년에 헌법재판소는 '문제 없다'고 일단락했다. 참고.
10. 외부 링크
11. 관련 문서
[1] 現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 92[2] 후술할 MBC 드라마 제5공화국을 보면 국제그룹이 해체되자 양정모 회장(배우 한인수)이 낡은 고무신을 꺼내 신고 통곡하는 장면이 나오는 건 이 때문.[3] 그러나 인수 과정에서 원 소유주인 권철현(1925~2003) 회장과 관련된 논란이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권철현 회장이 박정희에게 반대의사를 보이자 찍혀서 빼앗겼고 어부지리로 국제그룹이 인수했다고 한다. 한편 권철현의 사촌동생이 하나회 멤버이자 전두환과 육사11기 동기인 권익현이다.[4] 그는 원풍 매각 직후 부산주정공장(구 대선발효)를 기반으로 일산실업을 세우게 되었다.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그의 사위이다.[5] 사진 왼쪽을 잘 보면 롯데가 보인다. 과거의 동그라미에 L 3개 들어간 로고도(이 로고는 2011년까지 사용되었다.) 보인다. 얼핏 봐도 국제가 더 큼을 짐작할 수 있다.[6] 최근의 재계순위로 환산해 본다면 한화를 생각하면 된다.[7] 지금의 코엑스 자리에서 열렸다.[8] 1982년 서울국제무역박람회에 설치된 재벌그룹 독립전시관은 딱 10개만 허용했다. 그 안에 들었다는 것.[9] 오늘날 롯데그룹은 과거 국제그룹의 위상도 능가하는 재벌이 되었지만, 국제그룹이 잘나가던 1980년대 초 당시만 해도 롯데그룹은 재계 1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중견 재벌에 지나지 않았다. 1983~84년 기준 국제그룹의 매출액이 7위/9위로 한진그룹보다 컸던 것과 달리 롯데그룹의 매출액은 13위에 그쳤다. #[10] 다만 일본에도 야구단을 소유중이었고 회장 신격호의 재산은 일본 거품경제의 부동산 가치 급상승 버프로 세계 4위 부자였다. 1980년대 후반 포춘지의 세계 재산 순위에 Over 1 Billion - Japan - Takeo Shigemitsu가 있다.(일본인으로 나옴) 조금 더 내려보면 Korea에 Chung Ju-Young/heavy industry, Lee Byong-chull/trading, retailing, consumer electronics가 있다. 여담으로 신격호는 업종이 무엇으로 되어있냐면 candy making(...), retailing 그리고 롯데는 일본 롯데가 또 있기에 그때도 그리 작은 회사는 아니었다. 당시엔 일본 롯데가 한국 롯데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신격호도 일본롯데를 신동주에게, 한국롯데를 신동빈에게 맡겼다고 한다.[11] 1980년대만 해도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강변에서 바라볼때 이 건물이 가장 높은 건물일 정도로 한눈에 잘 보였지만 1990년대 들어서 한강변의 아파트가 재건축되고 , 2000년대 들어서 주상복합아파트 등이 건설되는 등 높은 건물이 들어서 여의도 강변에서는 볼 수 없다. 참고로 이 건물은 국제 해체 후 한일합섬에 넘어갔다. 사유는 전두환에게 아부를 잘했기 때문(...). 그러나 여기도 외환위기 때 해체되었고, 이후 LS그룹이 국제상사를 인수하면서 건물도 같이 LS그룹의 수중에 들어왔다.[12] 저시절만 해도 국제상사는 영문표기를 위 영문표기, 혹은 약어인 ICC를 사용했지 Kukje라는 표현은 거의 사용 안했는데, 소비재를 제조하더라도 소비재의 브랜드를 각인(왕자표 신발, 프로스펙스 등)시켰지 회사의 사명을 앞에 내세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Kukje라는 표현을 대거 사용한 것은 앞의 서울무역박람회 시절부터. 그때까지만 해도 국제그룹이 재계 수위권 기업이라는 것을 일반 소비자들은 거의 몰랐다. 사명이나 그룹보다는 브랜드명을 앞세웠기 때문. 그시절 관행. OB맥주는 알아도 동양맥주는 몰랐고, 거기까지 알았어도 두산그룹인것은 몰랐던 시절이다.[13] 2000년대에 지어진 삼호아파트에 'e편한세상' 브랜드가 붙은 것도 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