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明星그룹. 1968~1983년까지 존재하던 대한민국의 재벌이다. 김철호가 1968년에 설립했으나 전 교통부 장관 윤자중의 뇌물 논란과 1983년 이른바 '명성그룹 사건'으로 공중 분해됐다. 신군부 집권 후 대표적인 기업 길들이기의 희생양이며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절 3대 대형 금융 부정 사건 중 하나다.2. 연혁
1968년에 호남비료 출신 김철호가 택시 운수업체 '금강운수'를 차리면서 사업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가 운영한 금강운수는 130여대의 코로나 택시를 거느린 대형 운수업체로 발전하였다. 1976년에 '명성관광'을 세우며 당시 불모지였던 레저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당시 생소한 '콘도미니엄'의 개념을 정립하고 숙박업, 골프장 등의 사업을 영위하며 사업을 확장해나간다.콘도 사업 시작 3년 만에 23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형 재벌로 성장한 명성그룹은 콘도, 호텔, 골프장, 수영장 등 온갖 종류의 레저 시설을 갖춘 대형 레저 타운을 강원도 일대에 조성하기로 한다. 이것이 설악권 레저타운이다. 심지어 식품 사업에 진출해 엘더베리 주스를 만들었고, 1983년에 노르웨이 CHM 사와 합작하여 국내 최초의 스포츠음료 엑셀원(XL-1)을 시판했다.
하지만 탄탄대로일 것 같은 명성그룹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으니...
3. 명성그룹 사건
명성그룹은 신군부 집권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세무조사를 받게 되었다. 아무래도 명성이 이토록 급성장한 배경이 워낙 불투명했고 신비에 가까운 부분도 있었는지라 일반 시민들도 명성그룹의 실체를 상당히 궁금해 했고, 그러다 보니 통일교의 배후 지원으로 성장할수 있었다는 등 여러 가지 소문도 많았다.이러한 정권의 압박과 대중 인식의 전환을 위해 김 회장은 1983년 7월 31일과 8월 1일자 4대 일간지 1면에 강호제현에게 고함이라는[1] 성명서를 게재하였다. 겉으로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끼쳐 국민들에게 사과한다는 것으로 보였지만 실상 당시 정권과 국세청을 돌려까는 내용이었고, 이는 명성그룹의 명줄 단축을 자초하는 큰 원인이 되고 말았다.[2]
김 회장의 돌발행동으로 더욱 강화된 세무조사 끝에 국세청 조사반은 상업은행 혜화동 지점 김동겸 대리가 발행한 수기통장을 손에 넣었고, 이를 바탕으로 명성그룹이 김동겸이 불법 조성한 거액의 사채를 끌어다 썼다는 혐의를 포착할 수 있었다. 결국 1983년 8월 17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명성그룹 회장 김철호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탈세·조세범처벌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김철호에게 약 1천여억 원의 사채자금을 변칙 조달해준 상업은행 대리 김동겸 또한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하였다. 검찰은 김철호가 1979년 4월부터 김동겸을 통하여 은행 예금을 빼내어 기업 확장을 시작하고 원리금 상환도 하지 않은 채 총 1,066억 원에 이르는 거액을 횡령, 21개의 기업군을 거느리는 재벌기업의 회장으로 행세하면서 사기극을 벌였으며 탈세액만 해도 약 46억 원에 이른다고 발표하였다. 이어 검찰은 동년 8월 29일 명성 설악컨트리클럽 골프장 사업계획 승인과 관련하여 김철호로부터 약 8,500만원의 뇌물을 받은 윤자중 전 교통부장관과 박창권 대한주택공사 부사장 등 전현직 고위 공무원 10명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상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하였다.
이 사건으로 명성그룹은 완전히 공중분해 되었고, 총수 김철호는 징역 15년에 벌금 79억 3,000만원, 윤자중은 징역 7년에 추징금 8,186만 9,400원, 김동겸은 징역 12년을 각각 선고받았으며 이후 김철호는 1993년, 윤자중은 1990년, 김동겸은 1995년에 각각 만기 출소하였다. 이것이 바로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영동개발진흥 사건과 함께 제5공화국을 뒤흔든 3대 금융비리 사건 중 하나인 명성그룹 사건이다.
명성그룹 사건은 법학도들에게도 친숙한데, 86다카1004 판례 때문이다. 표현대리와 대리권 남용에 관한 수업 내용에서 꼭 한 번은 다루고 가는 판례이며, 법학전문대학원생 혹은 법학과 학생들에게 "당좌예금 직원이 정기예금 업무를 하여 월권"과 "수기식 통장"이라고 이야기하면 바로 이 사건을 떠올린다.
잘 나가던 대기업이 하루 아침에 금융 비리로 무너진 것에 대해 온갖 소문이 돌았며, 당시 대통령 전두환의 장인인 이규동과 김철호 회장의 친분이 두터웠는데 이규동이 본인 소유 부동산을 고가 매입해 달라는 요청을 김철호가 거절하였고[3], 당시 정권에서 명성 김 회장에게 정치자금을 요구했지만 이에 대해 소극적 태도를 보인 것[4]이 명성그룹을 무너뜨린 가장 유력한 요인으로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몇 년 후 국제그룹이 산산조각나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그 소문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건설 중이던 리조트 개발 사업에 영향을 주었고, 강원도 속초시 노학동에 지어 놓은 킹덤호텔은 거의 다 지어진 상태에서[5] 공사가 중단되어 방치되다 1993년 한화에 의해서 폭파해체되었다.폭파해체 영상
4. 해체
명성그룹 사건 이후 그룹은 몇 개로 쪼개졌으나, 주력 부문이던 레저 사업은 1984년 '정아'로 사명이 바뀌어 법정관리를 받다가 1986년에 당시 정치권에 열심히 줄을 대고 있던[6] 한국화약그룹에 넘어갔다. 1989년에 정아레저타운이 4개 자회사를 합병하면서 현재의 한화호텔앤드리조트로 이어졌다.5. 계열사 목록
- (주)명성: 해체 후 1984년 정아그룹 산하로 편입됐다가, 1986년 한국화약으로 넘어간 후 1989년 정아레저타운에 합병됨. 이후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됨.
- 금강개발: 해체 후 1984년에 '정아건설'로 변경했다가, 1986년 한국화약으로 넘어간 후 1989년 정아레저타운에 합병됨.
- 현대미건
- 현대중건
- 남태평양레저타운: 해체 후 1984년에 '정아레저타운'으로 바뀌어 법정관리를 받다가 1986년에 한국화약그룹으로 넘어감. 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 명성종합무역
- 명성라바
- 남태평양산업
- 남태평양관광
- 명성관광: 해체 후 1984년 '정아관광'으로 변경했다가, 1986년 한국화약그룹으로 넘어간 후 1989년 정아레저타운에 합병됨.
- 명성컨트리클럽: 해체 후 1984년 '정아컨트리클럽'으로 변경했다가, 1986년 한국화약그룹으로 넘어간 후 1989년 정아레저타운에 합병됨.
- 명성콘도미니엄
- 산건축연구소
- 명성올림픽레저타운
- 명성엔지니어링
- 명성식품
- 명성종합축산농원
- 명성전자
- 서울교통공사[7]: 관광/전세버스 운송업체. 1984년 정아그룹 산하로 편입됐다가 1986년 한국화약그룹에 인수됐다. 1991년 위장계열사 삼희관광으로 대주주가 바뀌었다가 1994년 모기업과 함께 한화로 정식 편입된 후, 1996년 삼희관광에 합병됨.
- 설악온천개발
- 크리스챤신문사
- 월간문화재사
6. 유사 사례
- 동명그룹: 국제그룹과 동향 기업이며 5공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먼저 사라진 재벌이다.
- 삼호그룹: 삼호아파트로 유명한 재벌. 5공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1984년에 해체되어 주축인 (주)삼호는 대림그룹으로 넘어갔다.[8] 가수 조덕배의 작은아버지 조봉구(1919~2009) 씨가 이 그룹의 총수였다.
- 대한선주: 서주우유로 유명한 윤석민 회장이 1973년에 대한해운공사를 전 사주 김연준(한양대학교 설립자인 그 사람이다)으로부터 인수한 국내 굴지의 해운 기업이었으나 1980년대에 불어닥친 해운업의 불황으로 인해 경영난이 겹치자 이에 전두환 정부가 1987년에 제정한 '해운산업 합리화조치'에 따라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한진그룹에 인수되어 한진해운과 합병했다. 그러나 전두환 퇴임 이후 5공 비리 폭로에 편승한 윤석민 전 회장이 대한선주가 5공에 정치자금을 안 바쳐서 망했다고 '해운산업 합리화조치'가 위헌이라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으나 1995년에 헌법재판소는 '문제 없다'고 일단락했다. 참고.
7. 외부 링크
8. 관련 문서
[1] 강호제현(江湖諸賢)은 강서와 호남의 뛰어난 제자들을 일컫는 말인데 쉽게 해석하면 "여러분 모두에게 고함" 정도로 볼 수 있다.[2] 명성그룹의 세무조사를 주도하던 한 국세청 고위 간부는 "당시로서는 명성이 딱히 크게 탈세를 했다는 근거도 없었고 있다 한들 다른 기업들도 다 하는 수준이라 적당한 선에서 세무조사를 마치려고 했는데, 김철호 회장이 갑자기 그런 글을 신문에 올리는 바람에 전두환의 최측근 중 한 명인 안무혁 국세청장이 반성하고 자숙해도 모자랄 판에 이게 무슨 행태인가 라며 극대노 하는 바람에 오히려 세무조사 강도를 높이게 되었다" 라고 밝히기도 했다.[3] 5공 정권에 대한 우회적 뇌물 공여로 추정[4] 뇌물 요구에 대하여 영수증을 끊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5] 외관부는 완성된 듯하며 내부 공사만 하면 개장해도 될 수준의 건물이었다.[6] 김승연 회장의 장인이 5공의 실세 중 하나였던 서정화였다.[7] 현재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와는 관련이 없다.[8] 2000년대에 지어진 삼호아파트에 'e편한세상' 브랜드가 붙은 것도 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