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0 15:45:58

이원태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ef0010><tablebgcolor=#ef0010> 파일:금호아시아나 윙 아이콘 화이트.svg금호아시아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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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박인천
(1946~1984)
제2대
박성용
(1984~1996)
제3대
박정구
(1996~2002)
제4대
박삼구
(2002~2009)
제5대
박찬법
(2009~2010)
제6대
박삼구
(2010~2019)
권한 대행
이원태
(201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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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권한대행 겸 부회장
금호문화재단 대표이사
이원태
李元泰 | Lee Won-tae
파일:이원태부회장.jpg
<colbgcolor=#454a51> 출생 1945년 3월 21일 ([age(1945-03-21)]세)
전라남도 영광군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직업 기업인
병역 대한민국 육군 중위 만기 전역 (학군 6기)
현직 금호문화재단 대표이사[1]
학력 중앙중학교 (졸업)
중앙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경제학 / 학사)
경기대학교 (국제문화대학원 동양철학과 / 석사)
1. 개요2. 상세3. 상훈4. 어록5.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 권한대행 및 부회장. 현 금호문화재단 대표이사.

2. 상세

1945년 3월 21일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족과 함께 서울로 상경해 중앙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농경제학과를 거쳐 경기대학교 국제문화대학원 동양철학과 석사를 이수하였다. 1972년 금호석유화학에 입사하여 이후 금호건설 기획실장, 금호타이어 수출부장, 아시아나항공 관리 이사, 그룹 본부장, 금호고속 사장 등을 거쳐 그뒤 대한통운 사장을 지내고 그룹 상근고문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박삼구 회장의 부름에 다시 복귀하여 2015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등 박찬법 전 회장 등과 더불어 40여년 이상 그룹에 몸을 담은 원로로 꼽힌다.

2019년 3월,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회계 쇼크로 인하여 아시아나를 포함한 항공 부문 계열사를 통매각 하기로 결정함과 동시에 박삼구 회장의 퇴진으로 그룹이 비상경영체제로 전환된 가운데 그룹 비상경영위원회를 이끌게 되어 현재 그룹 회장 권한대행 및 부회장을 맡았다가 2020년 12월 8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실 해체로 실질적으로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회장 권한대행직을 내려놓고 현재 금호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고있다.

3. 상훈

  • 국무총리 표창 (1994년)
  • 은탑산업훈장 (2006년)
  • 2007년 존경받는 기업인 최우수상 (2007년)

4. 어록

- "사양기업은 있어도 사양업종은 없다."
-'차량은 곧 회사의 얼굴이며, 모든 서비스의 출발은 청결이다."
- "새로운 관성은 3P (Process, Partner, People)에 대한 혁신을 통해 창출된다. 또한 글로벌화를 실현하려면 세계적인 표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표준화와 혁신을 통해 New 대한통운을 만들어 나가겠다."
2010년 2월 5일, 기자간담회 중.
-"이번 수상은 무엇보다 금호고속 임직원들이 합심하여 추진했던 일련의 작업들이 성공적으로 수행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30년간 고도경제성장을 거치며 국내 기업들은 규모 면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였습니다. 하지만 규모 성장에만 치중한 나머지 내면적 성장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한 반성의 결과로 '존경받는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존경받는 기업'이 기업을 평가하는 척도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존경받는 기업'이 주목받는 시대에 뜻 깊은 상을 수상하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금호고속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모태기업으로서 1946년에 택시 두 대로 사업을 시작해 투명경영, 윤리경영에 힘써 왔습니다. 국내 최대의 여객 운송기업인 금호고속은 일찍이 95년부터 중국에 진출해 현재 110여개 노선을 운행중입니다. 중국의 우한, 선전, 청두, 톈진, 상하이 등 11개 합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4월중 쓰촨성 이빈에 진출하는 등 중국 전역으로 노선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베트남, 인도 등으로의 진출을 활발히 검토하고 있습니다. 최근 자가용, 항공기, KTX 등의 등장으로 고속버스사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위기를 기회로 판단하고 고속운송업의 장점을 부각해 더욱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전략을 수립하고 고객만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금호고속은 창사이래 61년간 무분규기업으로 경영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노사간 대화 문화를 정착해왔습니다. 저는 매일 새벽 현장으로 출근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그 자리에서 현장 임원회의를 진행함으로써 생생한 목소리를 곧바로 경영에 반영하는 등 경영진이 솔선수범해 현장경영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금호고속은 사회 곳곳에서 실시하고 있는 각종 사회봉사 활동 및 복지사업 등의 공익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금호고속은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적인 운송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동시에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앞으로도 고객만족을 위해 매진할 것이며 '친구처럼 다정하게 가족처럼 소중하게' 고객 곁에 있을 것을 약속 드립니다."
2007년 4월 12일, 존경받는 기업인 최우수상 수상소감中.
- "바쁘지 않은 CEO는 없습니다. 하지만 CEO가 현장의 분위기를 늘 느낄 수 있어야 기업이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운송사업은 고객과의 접점에서 서비스 품질을 점검하고 제고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에 가능한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고 경영전략에 반영하려고 노력합니다."
2007년 4월 2일, 소비자경제 인터뷰 中.

5. 여담

  • 이 부회장은 그룹 내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로 재계의 대표적 중국통으로 꼽히는 박삼구 회장의 최측근이다. 1993년부터 금호그룹의 중국사업 전진기지인 베이징대표처에서 근무하며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 금호고속의 중국 진출을 이끈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 박찬법, 박삼구 회장과 동갑내기이며, 박찬법 전 회장과는 서로 동향이다. 다만 박찬법 회장이 이원태 부회장 보다 3년 일찍 (주)금호에 입사하였다.
  • 박찬법 전 회장과 더불어 40여년 이상을 그룹에 몸을 담았던 베테랑 금호맨으로 알려져있으며, 박인천 초대 회장부터 역대 금호그룹 회장들과 함께 회사를 이끌어온 산 증인이다. 하지만 2019년 3월, 그룹의 운명이 정해진 상황에서 2020년 12월 8일 최후의 순간까지 그룹의 리더를 맡아 초기시절부터 그룹의 성장기, 전성기 모두 겪어봤던 본인으로선 한편으론 상당히 착잡한 심정일듯.
  • 김광두 전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과 굉장히 각별한 사이이다. 김 전 부의장이 1997년 IMF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영입된 이후 2011년까지 그룹 내 주요 직책을 도맡아서 그룹의 안정과 성장을 이원태 부회장과 함께 진두지휘 하였으며 서로 같은 전라도 출신이라 호형호제 하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 잠시동안이였지만 라이벌인 한진조원태와 같은 이름 때문에 언론에선 '쌍원태 체제'로 불리기도 했다.


[1] 박삼구 전 회장의 사퇴 이후로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