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29 04:26:19

조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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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No.72
조경택(曺敬澤 / Kyeong-Taek Cho)
생년월일 1970년 7월 15일[1]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강원도 원주시
학력 중앙초 - 원주중 - 원주고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9년 태평양 돌핀스 연습생 입단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 (1989)
OB 베어스 (1992~1995)
한화 이글스 (1995~2003)
지도자 한화 이글스 1군 배터리코치 (2005~2009)
한화 이글스 2군 배터리코치 (2009~2011)
한화 이글스 1군 배터리코치 (2011~2013)
한화 이글스 2군 배터리코치 (2013~2014)
한화 이글스 1군 배터리코치 (2014)
두산 베어스 2군 재활코치 (2015~2017)
두산 베어스 2군 배터리코치 (2018~ )

1. 소개2. 선수 시절3. 코치 경력
3.1. 한화 이글스
3.1.1. 2013년3.1.2. 2014년
3.2. 두산 베어스
4. 여담5. 그 위엄 넘치는 명포수의 현역시절 기록6. 같이 보기

1. 소개

KBO 리그의 전 야구선수로 포지션은 포수. 현재는 두산 베어스의 코치이다.

2. 선수 시절

1989년 태평양 돌핀스연습생으로 입단했으나 별 두각을 보이지 못한 채 방위병 소집 영장을 받았고, 기초군사훈련 기간 동안에 소리소문없이 방출되었다. 이 후 OB 베어스불펜 포수로 입단했다가 정식 선수로 전환했으나 김태형, 박현영, 이도형, 김광현 등에 밀리며 1군은 언감생심인 형편이었다. 물론 1군에 간혹 올라와 출장하기는 했으나 거의 땜빵수비나 가끔 볼 정도로 암담한 상황이었다.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11010174151688G.jpg

그러나 1995년에 전형도와 맞트레이드 되어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야구인생이 피게 되었는데 빙그레 시절부터 터줏대감이었던 주전포수 김상국[2]이 노쇠화로 인해 골골대는 틈을 타서 그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시절에 풀타임 주전이었다기 보다는 2년 후배인 강인권과 2:1의 비율로 출장을 했고 준주전포수로서 활약을 했다.

일단 투수 리드 부분에서는 무난(?)하다는 평가를 들었고 타격은 포수로서 딱 필요한 평균수준의 타격을 보였다. 강인권과 같은 수비형 포수였지만 타격쪽에서 조경택 쪽이 컨택이 좀더 좋았고 덕분에 당시에 강인권보다 더 많이 출장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시절 조경택이나 강인권이나 파란불 신호등 어깨의 소유자라 도루허용률이 꽤 높았다. 둘다 똑같이 수비형에 똑딱이형 & 약한 어깨까지 닮아서 형제 1 & 2호기 소리도 들었다.

조경택의 통산성적

이 탓인지 96년(VS 현대), 2001년(VS 두산) 준플레이오프에서 2패로 탈락해야 했는데 당시 두 상대팀(현대-장광호 두산-홍성흔)은 확고한 주전포수가 있었다.

그러나 2002년에 이도형이 강인권과 맞트레이드되어 한화로 오면서 그의 위치는 불안해진다. 게다가 조경택은 가뜩이나 좋지 못한 타격과 도루저지능력이 모두 하락하여 2003년에는 이도형에게 완전히 주전자리를 뺏긴다. 그리고 2001년도에 적은 타수이지만 3할 2푼의 타율로 가능성을 보여줬던 유망주 신경현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제대하면서 입지가 좁아진 조경택은 은퇴를 선택한다.

그 뒤는 신경현이 이도형의 부상을 틈타 주전포수를 승계하면서 2004년부터 터줏대감이 된다.

2000년에 선수협이 출범할 당시 한화 이글스 주장으로 선수들을 대변하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구단의 비호하에 선수협을 방해하는데 앞장섰다. 이때문에 당시 선수협을 주도하던 송진우와도 여러차례 충돌했다. 그러나 소위 선수협 오적인 이호성, 김기태, 유지현, 김경기, 김태형에 비해서 워낙 인지도가 낮아서인지 양준혁을 폭행한 이호성, 그리고 전지훈련지에서 김경기전준호를 폭행하는가 하며, 자기네들끼리 멱살잡고 싸우던, 김기태, 유지현, 그리고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라는 태도로 일관하던 김태형에 비해서 상당히 묻히는 편이다.[3][4] 어쩌면 코치로서 무능한데도 과거에 이런 짓을 해서 한화 프런트에 잘보인 덕택에 살아남는다고 보여진다.

3. 코치 경력

3.1. 한화 이글스

파일:/image/410/2012/09/28/20120928_1348826002.jpg_59_20120928185502.jpg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화 코치 시절.

선수 시절의 성실함을 인정받아 은퇴 후 배터리 코치를 맡아서 2014년까지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렇긴 한데...

몆 년 간이나 이어져온 한화 이글스의 포수 상위 지명 러쉬로[5] 포수로만 9명 주전을 채울 수 있다고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상황 속에서도 배터리 코치로서의 성과가 영 부족해서 한화 이글스 팬들에게 매년 까이고 있다. 일단 현장에서는 사람좋고 순하고 인품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들었고 열심히 지도하는 점은 좋은데... 성과가 별로 없어서 문제다.

김응용 감독 체제가 들어서면서 배터리 코치진도 1군과 2군 모두 바꿔야 한다고 한화팬들이 목청을 높였으나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유지했다. 이 쯤되면 박영태를 능가하는 칰무원 탄생...

3.1.1. 2013년

100승 투수와 호흡을 맞춰본 포수가 몇 명이나 되겠나? 나는 4명의 100승 투수와 호흡을 맞춰봤다. 내가 현역 시절 명포수로 이름을 떨쳤던 것도 투수의 역할이 크다.

그리고 2013년 들어서 말실수인지 실언인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뷰 한번 잘못해서 아구 관련 커뮤니티에서 제대로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나 현역시절 명포수야! 실수가 아니고 조경택 자신이 명포수라 생각할 수도.

일단 인터뷰 자체는 한화의 젊은 포수들의 성장에 대한 주제로 인터뷰를 한 것이고 말 자체는 그럭저럭 맞는 말에 무난하긴 한데 "100승 투수와 호흡을 맞춰본 포수가 몇 명이나 되겠나? 나는 4명의 100승 투수(송진우 정민철 한용덕 이상군)와 호흡을 맞춰봤다. 내가 현역 시절 명포수로 이름을 떨쳤던 것도 투수의 역할이 크다." 면서 자기 자신을 명포수라고 말한 이 부분 때문에 자칭 명포수라고 제대로 까였다.근데 또 다른 한화 출신 100승 투수 이상목은?[6] 한화팬들은 아, 그 시절에 조경택이라는 명포수가 있었구나 라고 그동안 명포수를 못 알아본 것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반응이었다. 물론 조롱하는 의미로.

선수 시절 성적을 보면 주전 포수로서는 그럭저럭 준수한 편이긴 했는데 당시에도 도루저지가 떨어져 논란이 있었고 통산 12시즌 동안 100경기 이상 출전한 시즌은 겨우 3시즌 정도였으니 명포수를 자칭할 정도로 뛰어난 건 아니었다. 100승 투수 4명과 호흡을 맞춰본걸 본다면 흔한 일은 아니므로 자부심을 가질만 하긴 하지만 이건 너무 나간 발언이긴 했다. 결정적으로 이만수, 박경완, 김동수, 지명타자로 전향한 홍성흔, 심지어 약한(?) 진갑용은 고사하고 조경택과 마찬가지로 두산에서 건너온 포수이자 지명타자, 1루수 등으로도 뛰었던 이도형이나 팀내 체고의 포수에게도 통산 성적이 밀리므로 명포수라고 보기는 더더욱 힘들다. 참고로 신경현의 통산 타율은 0.252, 경기당 실책수 또한 0.43개로 0.48개의 조경택보다 모두 앞선다. 말실수이거나 표현 선택의 실수로 볼 수도 있긴 하지만...

정의하자면 2013년까지의 기준으로는 얼굴값을 못하는 배터리코치.

그리고 2013년 개막전에서 신인포수인 한승택이 개막전 부담감이 커지는걸 걱정해서 칰끼리에게 정범모의 선발출전을 건의했고 이건 신의 한수로 작용해서 역시 명포수출신임을 입증했다. 칰끼리 감독님의 인증 인터뷰

명포수의 혜안은 적중해서 정범모의 속터지는 리드를 한화팬들은 실시간으로 감상해야 했다.

2군의 전종화 배터리코치와 교체된 사이 1군에서 엄태용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이준수 / 정범모의 수비가 나아지고, 2군에 내려가있던 한승택의 수비가 퇴화되는 것을 보면 역시 조경택 매직은 실존하는 듯 하다.

3.1.2. 2014년

2014 시즌에는 2군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4월 24일 두산전을 앞두고 김응용 감독이 팀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1군으로 다시 올렸다. 이를 두고 한화 팬들은 "칰무원 어디 안 간다"등등 혹평 일색. 이쯤 되면 일부러 팀을 망하게 하려고 작정한 것 아닌가 의심될 지경. 이상군의 이름값이 너무 커서 그렇지, 이상군이 1군 올라오는 것에 준하는 사태였다.

베테랑 포수 조인성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자, 그의 1:1 멘토링에 정범모가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오죽하면 조경택이 9년동안 가르친 것보다 조인성이 한 달 가르친 게 많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팬들은 이 기회에 조경택 짜르고 조인성을 플레잉 코치 시키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은 10월 27일, 한화가 재계약하지 않을 것을 밝힘으로써 팬들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다만 김성근 감독은 정범모의 사이드 송구를 오버핸드로 교정시키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조경택을 까는 한화팬들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정범모가 그래도 도루 저지면에서는 발전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

그리고 새롭게 포수들을 책임지고 있는 후루쿠보 겐지 배터리코치는 '조인성을 제외하고 포수들이 기본기가 없다.' 고 뼈저린 한마디를 하며 현재 한화 안방마님의 실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인성은 작년 후반기 트레이드로 온 외부 출신이라는 걸 감안하면 한화 내부의 포수 육성이 얼마나 부실하고 처참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3.2. 두산 베어스

11월 3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4 곰들의 모임'의 신임 코치 환영식을 통해 두산 베어스/2군의 코치로 계약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여담으로, 트레이드 상대였던 전형도도 두산에 있다. 공식 직함은 배터리코치가 아니라 재활코치. 사실 2군에 김진수, 1군은 강인권이 있는지라...

한화 시절 말이 많았던 강석천 시프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강석천과 달리 별 말이 나오지 않는 걸로 봐서는 재활 쪽에서는 딱히 문제는 일으키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한용덕과 강석천과 달리 계속 2군에 있던 지라 2015년~16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2017년 10월, 한화의 차기 감독 선임이 늦어지고 있는데, 차기 감독으로 한화에서 뛰었던 투수, 포수 출신 코치를 내정했는데 한창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두산 소속이라 발표를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수의 팬들은 한용덕이나 강인권을 유력하다고 보고 있지만 조경택도 두 조건에 부합하는 코치인지라 조경택을 차기 감독으로 내정한 게 아니냐는 소수의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한용덕, 강인권, 전형도와는 달리 조경택은 한화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4. 여담

  • OB 시절이었던 1994년 가을 갑작스런 가스 누출 사고로 부모님을 모두 잃는 아픔을 겪었다.

5. 그 위엄 넘치는 명포수의 현역시절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실책
1992 OB 베어스 7 10 .300 3 0 0 0 0 1 0 0 1 1
1993 1 1 .000 0 0 0 0 0 0 0 0 0 0
1994 26 33 .091 3 1 0 0 1 2 0 5 13 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실책
1995 한화 이글스 26 32 .219 7 1 0 0 2 2 0 3 7 3
1996 123 325 .258 84 14 3 2 39 24 1 25 56 10
1997 77 101 .188 19 3 0 2 6 9 1 18 20 3
1998 61 82 .268 22 4 0 1 4 5 0 7 18 2
1999 118 194 .232 45 11 0 2 20 32 2 23 45 6
2000 87 163 .215 35 9 0 1 13 13 0 19 46 4
2001 89 138 .275 38 9 0 3 9 16 2 14 30 3
2002 107 157 .204 32 6 0 4 16 15 1 13 41 2
2003 48 59 .186 11 4 0 0 2 4 0 8 9 2
통산(12시즌) 770 1295 .231 299 59 3 15 112 123 7 135 286 36

6. 같이 보기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9
한화 이글스 등번호 62번
조경택(1995) 심재윤
한화 이글스 등번호 2번
김상국(1986~1995) 조경택(1996~2003) 백재호(2004~2007)


[1] 네이버 인물정보는 1970년 11월 25일생이라고 기재되었으나 과거신문 아카이브를 보니 실제 생일은 1970년 7월 15일이다.[2] 결국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됐고, 현대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현 삼성 라이온즈 김동엽의 아버지이다.[3] 근데 김태형도 네임밸류가 딸려서 그런지 잘 기억 못하는 사람이 많다. 조경택을 기억하는데 김태형을 생각 못하는 사람도 있다...[4] 그리고 사실 김태형도 구단 측에서 선수협 가입 막는 대신 지켜주기로 한 조건(선수단 보호)를 어기고 심정수를 보내버리자 선수단을 이끌고 선수협에 가입해버린다. 무엇보다 김태형과 조경택은 서로의 문서에서 각각 선수협 오적으로 지목되고, 그 중에서도 상당히 묻히는 편으로 지목된다. 즉 김경기, 유지현, 김기태, 이호성의 사천왕보다는 김태형과 조경택이 그나마 낫다는 것이다.[5] 보통 포수는 정말 대어급이 나오지 않는 이상 상위 지명되는 케이스가 드물다. 애초에 상위 지명은 보통 투수이고 그 다음이 내야수... 과거 국가대표급 포수가 아니라면 2차 2라운더 정도가 일반적으로 포수를 뽑는 마지노선. 다른 포지션보다 유독 경험이 중요하기도 해서 아마 때 평가가 프로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한화는 2004년에 박노민을 2차 3라운드에 뽑은 것을 시작으로 2006년 정범모 3라운드, 2007, 2008년엔 최연오, 이희근을 잇달아 2차 2라운드에서 뽑았으며 이후 잠시 쉬어가는 듯 하다 2011년 나성용(3라운드), 2013년 한승택(3라운드), 2014년 김민수(2라운드)를 뽑으며 포수 수집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정상호 같은 대어급이 나올 경우 상위지명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상위 지명을 거의 매년 포수에 할애하면서도 포수가 가장 취약 포지션이라는 것. 물론 포수를 키운다는게 그만큼 어려운건 사실이지만 양적으로 그렇게 모아놓고 하나를 못 터트린다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6] 이상목은 삼성, 롯데에서도 선수생활을 해서 그렇지, 조경택과 함께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였고 1999년과 2003년 두 차례 10승 투수가 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