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03 00:01:58

이마오카 마코토

이마오카 마코토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한신 타이거스 우승 엠블럼 V2.svg
NPB 일본시리즈
우승코치
2023

파일:치바 롯데 마린즈 우승 엠블럼 V4.sv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2010


파일:1996 애틀랜타 올림픽 로고.svg
1996 애틀랜타 올림픽
{{{#8c8c8c 은메달}}}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03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수위 타자
후쿠도메 코스케
(주니치 드래곤즈)
이마오카 마코토
(한신 타이거스)
시마 시게노부
(히로시마 도요 카프)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05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최다 타점
카네모토 토모아키
(한신 타이거스)
이마오카 마코토
(한신 타이거스)
타이론 우즈
(주니치 드래곤즈)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02, 2003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2루수 부문 베스트 나인
에디 디아즈
(히로시마 도요 카프)
이마오카 마코토
(한신 타이거스)
아라키 마사히로
(주니치 드래곤즈)
그렉 라록카
(히로시마 도요 카프)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05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3루수 부문 베스트 나인
타츠나미 카즈요시
(주니치 드래곤즈)
이마오카 마코토
(한신 타이거스)
이와무라 아키노리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한신 타이거스 등번호 7번
마유미 아키노부
(1979~1995)
이마오카 마코토
(1997~2009)
후지카와 슌스케
(2010~2012)
{{{#fff [[치바 롯데 마린즈|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2번}}}
바비 발렌타인
(2004~2009)
이마오카 마코토
(2010~2012)
네모토 슌이치
(2013~2018)
한신 타이거스 등번호 77번
세키가와 코이치
(2015)
이마오카 마코토
(2016~2017)
오넬키 가르시아
(2019~2020)
{{{#fff [[치바 롯데 마린즈|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77번}}}
츠루오카 카즈나리
(2017)
이마오카 마코토
(2018~2021)
키무라 유지
(2022~)
}}} ||
파일:이마오카 한신복귀 기자회견.jpg
이마오카 마코토
今岡真訪[1] / Makoto Imaoka
출생 1974년 9월 11일 ([age(1974-09-11)]세)
효고현 타카라즈카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포지션 2루수, 3루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학력 PL학원고등학교 - 토요대학
프로입단 1996년 드래프트 1순위 (한신, 역지명)
소속팀 한신 타이거스 (1997~2009)
치바 롯데 마린즈 (2010~2012)
지도자 치바 롯데 마린즈 2군 타격, 수비 코치 (2012, 선수 겸임)
한신 타이거스 2군 야수종합코치 (2016~2017)
치바 롯데 마린즈 2군 감독 (2018~2020)
치바 롯데 마린즈 1군 수석코치 (2021)
한신 타이거스 1군 타격코치 (2023~)
1. 개요2. 선수 경력
2.1. 데뷔 전2.2. 한신 타이거스 시절2.3.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3. 지도자 및 해설가 시절4. 기타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이마오카 마코토 타격폼.jpg
현역 시절

한신 타이거스,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 야구 선수 및 지도자.

2. 선수 경력

2.1. 데뷔 전

오사카부의 야구 명문이었던 PL학원고등학교 출신으로 3학년 때 봄 코시엔 8강에 진출했고, 이후 토요대학으로 진학해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올림픽에 나간 직후인 1996년 드래프트에서 한신 타이거스를 역지명해 입단했다.

2.2. 한신 타이거스 시절

데뷔 첫 해인 1997년부터 요시다 요시오 감독에게 1군 준주전 멤버로 발탁되어 주로 2루수로 뛰었고, 2년차인 1998년엔 기존 유격수이던 쿠지 테루요시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2]하면서 비게 된 유격수 자리에 들어가 타율 .293, 7홈런 44타점으로 가능성을 보여줬다.[3]

다음 해인 1999년에도 주전 유격수 자리를 유지했으나 2년 연속 10실책을 기록할 만큼 수비가 불안했던 점도 있어서 시즌 막판엔 2루수로 주로 나왔고 타격 성적도 지난 해보다 떨어진 타율 .252, 6홈런, 39타점에 그쳤다.[4] 결국 2000년에는 타격 부진 등으로 주전 유격수 자리를 타나카 슈타에게 내주며 40경기 출전에 그쳤고, 2001년엔 다시 주전으로 돌아왔으나 대신 유격수가 아닌 2루수, 3루수를 오가야 했다. 이 시기까진 2할대 중반 정도의 평범한 타격을 보여주는 내야수로 머물러 있었는데, 훗날 요시다의 후임으로 취임한 노무라 카츠야 감독과 잘 안 맞았던 점도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호시노 센이치가 감독으로 부임한 2002년, 이마오카는 포텐을 터뜨리며 주전 2루수에 안착했다. 당시 1번 타자를 주로 맡던 아카호시 노리히로가 부상으로 이탈한 적 있었는데, 그 빈 자리를 메우면서 타율 .317에 15홈런을 기록하며 한신의 최하위 탈출에 공헌했다. 2003년에도 1번 타자로 나서면서 타율 .340으로 수위타자를 수상했고, 홈런은 12개로 약간 줄었지만 72타점을 기록하며 득점권에ㅅ니 강한 모습을 보였다. 팀도 이 해에 드디어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4466566664로 이어지던 암흑기를 종결짓고, 2003년 일본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아쉽게도 격전 끝에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게 패배했다. 2004년엔 클린업 트리오로 자리를 옮겨 타율 .306에 28홈런 83타점으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팀은 이 해 4위로 떨어지고 이마오카 자신도 무관에 그쳤다.[5]

2005년에는 5번 타자 겸 3루수[6]로 많이 나왔는데, 타율은 .279, OPS는 .384로 크게 높지 않았지만 29홈런에 147타점을 벌어들이는 가공할 수준의 득점권 타율을 기록했다. 이 시즌 이마오카의 스탯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는데, 147타점이나 기록한 것도 대단한 것이지만 특히 만루에서 이마오카의 타율은 25타수 15안타로 무려 6할인 것과 정반대로 주자가 없을 땐 타율이 2할 3푼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야말로 주자가 있을 때만 강해지는 희대의 변태 스탯을 보여줬다. 이 147타점은 2023시즌 종료 시점 기준으로도 아직 깨지지 않은 한신 타이거스 구단 역사상 한 시즌 최다 타점 기록이기도 하다.[7] 여기에 더해 이마오카 앞에는 리그 MVP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327 40홈런 125타점을 기록했고, 하위타선에는 야노 아키히로가 19홈런을 때려내고 71타점을 기록하며 핵우산 효과를 제대로 누렸다. 이렇게 가공할 위력의 맹타선에 더해 승리의 방정식까지 확립한 한신은 센트럴 리그를 압도적인 기세로 정복하고 일본시리즈에 진출했으나 33-4로 멸망했다.

2006시즌은 타격폼을 수정해 3할 타율을 노리며 시즌을 출발했다. 그러나 이 시즌부터 이마오카의 하향세가 시작되었는데 시즌 초반부터 저조한 타율을 기록해 부진했고 설상가상으로 교류전에서 손에 데드볼을 맞고 장기 이탈했다가 복귀한 후 송구에 지장이 생겨 대타로 밀려나며 씁쓸하게 시즌을 마무리 했다. 어느 정도 반등한 2007년에는 그럭저럭 준수한 타격을 보여주었으나 2008년부터는 타율이 좀체 2할을 넘지 못하며 부진했고 결국 2009시즌 종료 후 전력외 통보를 받게 된다. 현역을 연장하고 싶었던 이마오카는 12구단 합동 트라이아웃에 참가했고, 여기서 치바 롯데 마린즈가 그를 눈여겨보고 영입 제안을 하며 롯데로 이적했다.

2.3.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롯데에서도 노쇠화가 완연한 탓에 예전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지 못했지만 2010년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2010년 일본시리즈 때 적재적소에서 대타나 대수비로 나름대로 활약하며 롯데의 하극상 우승에 기여했다.

2012년에 2군 타격코치로 임명되어 선수 겸 코치가 되었고, 당해엔 2군에서만 뛰며 사실상 코치만 맡다가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통산 성적은 1309경기 1284안타 122홈런 594타점, 타율 .279 / 출루율 .325 / 장타율 .408 / OPS .733.

3. 지도자 및 해설가 시절

2012년 치바 롯데 마린즈의 2군 코치 겸업을 하다가 시즌 종료 후 퇴단, 그 뒤로는 3년간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해설자 생활을 했다. 2016년 한신 타이거스 2군 코치로 부임해 2시즌 간 활동하다 2018년 다시 롯데로 복귀해 2군 감독을 달았다. 2021년에는 1군 수석코치까지 승진하기도 했다.

2021년을 끝으로 롯데를 퇴단했고, 이후 2022년엔 닛칸스포츠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프리랜서 TV 야구해설자를 겸임하다 2023년에 한신 시절 감독이었던 오카다 아키노부의 감독 복귀에 맞춰 한신 1군 타격코치에 취임하며 6년 만에 데뷔팀으로 복귀해 당해 현역 시절 한신에서 이뤄내지 못한 일본시리즈 제패의 일원이 되었다. 2024년 시즌 종료 후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이 용퇴하면서 함께 코치직을 사임하고 닛칸스포츠 평론가로 복귀했다.

4. 기타

5. 둘러보기



[1] 본명은 표기가 다른 今岡誠로, 2017년부터 등록명을 바꿨다.[2] 외야수 세키카와 코이치와 같이 주니치로 이적했으며, 주니치에서는 타이호 야스아키야노 아키히로가 한신으로 트레이드되었다.[3] 그해 한신 코시엔 구장에서 선동열에게 블론세이브를 안기는 동점 홈런을 친 적도 있다.[4] 그해 11월 한일 슈퍼게임 3차전에 선발 2루수로 출장했다.[5] 사실 2004년은 골든글러브 수상에 논란이 될 만한 거리가 많았는데, 아라키 마사히로 항목에 가면 볼 수 있다.[6] 기존에 FA로 영입했던 3루수 카타오카 아츠시에이징 커브와 부상에 신음하고 있었고, 이 시기에 도쿄6대학 리그 최고의 타자이던 토리타니 타카시가 유격수 자리를 맡으며 기존 유격수 후지모토 아츠시가 2루수로 전향하고, 2루수를 맡던 이마오카가 카타오카를 밀어내고 다시 3루수로 옮겼다.[7] 이마오카 바로 다음 순위는 1950년 후지무라 후미오의 146타점. 참고로 단일시즌 최다 타점은 1950년 쇼치쿠 로빈스코즈루 마코토가 기록한 161타점이며 2위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버트 로즈가 1999년에 기록한 153타점이다. 이마오카는 역대 3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