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20 00:28:03

이구치 타다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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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ukuoka_Softbank_Hawks_Round_Emblem.png 파일:Seibu_Lions.png 파일:Rakuten_mascotlogo.png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쿠도 키미야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츠지 하츠히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히라이시 요스케
파일:Orixlogo.png 파일:Nipponham_Fighters_Logo.png 파일:Chiba_Lotte_Marines_Logo.png
오릭스 버팔로즈
니시무라 노리후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쿠리야마 히데키
치바 롯데 마린즈
이구치 타다히토
파일:c_main_logo.gif 센트럴 리그 감독

파일:iguchikantoku.jpg
치바 롯데 마린즈 No.6
이구치 타다히토 (井口資仁[1]/Tadahito Iguchi)
출생 1974년 12월 4일 ([age(1974-12-04)]세), 도쿄도 니시토쿄시
국적 일본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학력 코쿠가쿠인 대학 쿠가야마 고등학교 -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프로입단 1996년 드래프트 1순위(역지명)
소속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997~2004)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5~2007)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7)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8)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8)
치바 롯데 마린즈 (2009~2017)
지도자 치바 롯데 마린즈 감독 (2018~)
응원가 Air - kids are alright
파일:external/oi67.tinypic.com/judbhg.png 2001년 퍼시픽리그 최다 도루
2000년
코사카 마코토
(치바 롯데 마린즈)
33도루
이구치 타다히토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44도루
2002년
타니 요시토모
(오릭스 블루웨이브)
41도루
파일:external/oi67.tinypic.com/judbhg.png 2003년 퍼시픽리그 최다 도루
2002년
타니 요시토모
(오릭스 블루웨이브)
41도루
이구치 타다히토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42도루
2004년
카와사키 무네노리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42도루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역대 2루수 베스트나인
2000년
오오시마 코이치
(오릭스 블루웨이브)
2001년
이구치 타다히토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002년
타카기 히로유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03, 2004년
이구치 타다히토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005년
호리 코이치
(치바 롯데 마린즈)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역대 2루수 골든글러브
2000년
오오시마 코이치
(오릭스 블루웨이브)
2001년
이구치 타다히토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002년
타카기 히로유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03, 2004년
이구치 타다히토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005년
니시오카 츠요시
(치바 롯데 마린즈)
[[치바 롯데 마린즈|치바 롯데 마린즈]] 역대 감독
이토 쓰토무
(2013~2017)
이구치 타다히토
(2018~)
현임 감독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2005 2008
일본시리즈 우승 반지
1999 2003 2010

1. 개요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2.2. 다이에 시절2.3. 메이저리그 시절2.4. 치바 롯데 시절
3. 치바 롯데 감독 시절4. 기타

1. 개요

아시아 내야수 최초 월드시리즈 우승자.

일본의 프로야구 선수. 現 치바 롯데 마린즈의 감독.

다이에, 롯데, 화이트삭스 등에서 준수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내야수로 활약하며 앞에 열거한 3구단의 우승에 기여했다.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고등학교 입학 전까진 포수로 뛰었으나, 고등학교 입학 후 유격수로 전향했다. 고등학교 시절엔 2학년 때 하계 코시엔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그해 가을부터 3학년 때까지 야구부의 주장을 맡았다.

그 후 아오야마가쿠인 대학으로 진학하고 나서도 통산 101시합 출장, 366타수 103안타 타율 .281, 24홈런 61타점 32도루, MVP 2회, 베스트나인 4회를 기록하며 대학 최고의 유격수로 이름을 날렸으며,[2],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일본 야구 국가대표[3]에 발탁되어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4][5]

그리고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1순위 지명(역지명)을 받아 프로 무대에 입성한다.

2.2. 다이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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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첫 해인 1997년 시범경기에서 부상을 당한 이구치는 5월에 데뷔전을 가졌는데, 첫번째 타석에서 프로 첫 안타를 때려냈고, 3번째 타석에서는 만루홈런을 때리며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데뷔전에서 만루홈런을 기록한 신인 선수가 된다. 하지만 이후 프로의 한계에 부딪치며 .203라는 영 좋지 않은 타율로 시즌을 마감했다. 1998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팀의 주전 유격수로 뛰게 되는데, 타율과 출루율은 떨어지지만 일발장타를 앞세워 하위 타순의 뇌관 역할을 맡았고 1999년 다이에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에는 어깨 수술을 받으며 시즌을 거의 날려버렸는데, 그 사이에 뛰어난 수비력을 가진 토리고에 유스케가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그 때까지도 내세울 거라고는 어쩌다가 터지는 일발장타뿐, 타율과 출루율이 너무 낮아서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대형 유격수」라던 입단당시와의 평가와는 달리 하위타선의 공갈포의 길을 걸으면서 또 한명의 드래프트 1순위 먹튀로 전락하는 듯 했다.

결국 자기의 포지션이던 유격수를 도리고에에게 뺏기고 2001년 시즌부터 포지션을 2루수로 옮기게 된다. 그런데 포지션 변경이 본인에게 전환점이 되었는지 2루수로 자리로 옮긴 이구치는 대오각성하여 .261 30홈런 97타점 44도루(리그 1위)를 기록하며 30-30 클럽에 가입했고 붙박이 3번 타자로 자리잡았다. 이 해 베스트나인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면서 입단당시 받았던 대형 내야수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시작한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부상의 영향으로 .259 18홈런 53타점 21도루로 다소 주춤하면서 2001년의 활약이 1년 반짝으로 끝나는가 했지만 2003년 .340 27홈런 109타점 42도루(리그 1위)라는 흠좀무한 성적을 거두며 완벽하게 타격에 눈을 뜬 모습을 보였고, 당시 역대 최강이었던 다이에 타선을 상징하는 100타점 4인방[6]의 일각을 차지하며 다시 베스트나인과 골든글러브를 싹쓸이했다. 2004년에도 .333 24홈런 89타점 18도루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며 또다시 베스트나인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한다.

시즌이 끝난 뒤 이구치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고,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2년 470만 달러에 계약을 맺는다.

메이저리그 진출과정에서 잡음이 좀 있었다. 원래 해외진출 자격이 없었지만 구단과의 이면계약[7]으로 구단의 경영 주체가 바뀌거나 당시 구단주가 사임하는 경우 자유계약으로 풀어주는 건이 계약서에 들어 있었다. 구단의 모기업이 다이에에서 소프트뱅크로 바뀌면서 구단주가 사임하게 되자, 바로 옵션을 사용하여 'FA 자격'으로 메이저리그로 진출했다. 호크스 팬들은 삽질하고 성적 나쁠 때 참고 기다려줬는데 이제 좀 쓸만해지려고 하니까 돌연 해외 진출을 선언하면서 뒤통수를 쳤다면서 배신감을 느꼈다는 팬들도 있었다고 한다.

2.3. 메이저리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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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화이트삭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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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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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시절.

2005 시즌 이구치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뛰게 된다. 유격수 후안 유리베와 함께 키스톤 콤비를, 리드오프 스캇 포세드닉을 보좌하는 2번 타자 역할로 준수한 테이블 세터로 활약했다. 데뷔 첫 해부터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손에 넣는 감격을 누리며 아시아인 내야수로는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자라는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시즌 성적은 .278 15홈런 71타점 15도루 OPS .780으로,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투표 4위에 오르기도 했다.[8]

2006시즌에도 .281 18홈런 67타점으로 꾸준한 모습을 보였으나, 2007시즌에는 부상이 겹치며 지난 2년보다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고 있던 도중 체이스 어틀리의 부상으로 2루수 자리에 공백이 생긴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된다. 2007시즌 통합 성적은 .267 9홈런 43타점.

이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1년 계약을 맺었는데, 2008시즌 중반 주루 도중 어깨 부상을 당하며 메이저리그 입성 후 최초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된다. 부상에서 돌아온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며 결국 9월 초에 팀에서 방출되었고, 그 해 9월 5일 다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을 맺으며 4경기를 뛰었다. 입단 시기가 늦은 바람에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못했으나, 필리스가 그 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어쨌든 두번째 우승 반지를 손에 넣게 된다.

주전 3루수였던 페드로 펠리즈의 활약에 만족하지 못했던 필리스는 이구치와 재계약을 한 뒤 3루수로 쓰려 했으나, 2루 자리에 애착이 강했던 이구치는 치바 롯데 마린즈와 3년 계약을 맺으며 일본 무대로 돌아가게 된다. 강정호 이전까지 아시아 타자 중 포수 조지마 겐지(포수 18개)를 제외한 메이저 내야수 첫 해 진출 단일 최다 홈런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2015년 9월 10일 강정호가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만루홈런을 쳐내며 기어이 공동 2위로 올라왔다.

2.4. 치바 롯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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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복귀 첫 해 .281 19홈런 65타점 OPS .866으로 건재를 과시한 이구치는 2010년에는 .294 17홈런 103타점으로 맹활약하며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견인했다.

공인구의 영향으로 리그 전체가 투신타병이 되어버린 2011년과 2012년에는 각각 9홈런, 11홈런에 머물렀지만, 포지션을 1루수로 옮긴 2013년에는 .297 23홈런 83타점 OPS .902로 다시 부활했다. 특히 이 해 7월 26일 라쿠텐 골든이글스 전에서 다나카 마사히로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내며 미일 통산 2000안타 기록을 달성한다.

2014시즌에는 손가락 부상이 겹치며 .238 10홈런 49타점이라는 다소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 후 나이는 속일 수 없어서 점점 출장횟수가 줄어들었고 그에 비례해서 성적과 장타력도 하락했다. 게다가 발도 느려져서 이미 주 포지션인 2루는 불가능하고 1루와 지명타자로만 나서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롯데는 1루에 똑딱이 스타일인 후쿠우라 카즈야라는 프랜차이즈 플레이어가 있어서[9] 똑딱이화 된 이구치는 포지션이 중복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장타력이 부족한 팀에 거포 용병을 데려오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10]

결국 2017년 교류전이 끝난 6월 20일 2017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표명했다. 다만 커리어는 시즌 종료 때까지 이어간다.

2017년 9월 24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홈경기가 그의 은퇴 경기날이자 은퇴식 날이었다. 이날 그는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하여 3대1로 끌려가던 9회 말에 극적인 동점 투런 홈런을 치는 데 성공하며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간다! 이것이 그의 선수로서 마지막 안타가 되었다. 그 후 본인의 동점 홈런 덕분에 11회말에 한 타석이 더 돌아왔으나 우익수 플라이로 마지막 타석을 마감했다. 팀은 연장 12회 말 스즈키 다이치의 결승타로 기적적인 역전승을 했다.

여담으로 이 홈런은 이구치의 시즌 2호 홈런이었다. 즉 이 극적인 동점 홈런 전까지는 1시즌 내내 홈런이 달랑 1개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마지막 타석에 우주의 기운을 받아서 기적을 일으킨 셈.

3. 치바 롯데 감독 시절

은퇴 이후 치바 롯데의 감독으로 초고속 승진을 이뤄냈다. 등번호는 선수시절과 동일한 6번. 선수 은퇴 후 바로 1군 감독이 되는 것이니 파격적인 승진인 셈. 하지만 선수 은퇴후 지도자 경험 없이 바로 감독으로 승진한 케이스라 사람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선수 시절에 팀 리더로서 리더십을 발휘했다고는 하지만 선수로서 팀을 이끄는 리더십과 감독으로서 팀을 지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서.

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데 선수들을 쓸놈쓸을 시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기회를 못 받는 케이스가 오카다 요시후미, 맷 도밍게스, 에무라 나오야, 네모토 슌이치, 오미네 쇼타[11], 이시미네 쇼타 요시다 유타, 호소야 케이 등... 뭐 저 선수들 간간이 타석 올라오는거 보면 왜 안 쓰는지 알겠지만... 요시다는 2군에서 폭망해서 그렇다쳐도 이시미네랑 호소야는 2군에서 하는 거 보면 왜 안 올라오는 건지... 이것은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이어져서 외국인 선수 쿼터 4명을 다 채운 경기가 거의 없다(...). 누가 보면 소뱅급 뎁스인 줄 알겠다 외국인의 경우는 쓸놈쓸인 일본인 선수와 반대로 조급한 운영을 보이면서 한 1주일 못하면 바로 내리는 등의 운영을 보이는 중. 반대로 철밥통으로 공수 상관없이 무조건 100% 주전으로 나오는 케이스는 후지오카 유다이, 스즈키 다이치, 타무라 타츠히로. 특히 스즈키는 전 경기 선발출장이다. 그 외에 나카무라 쇼고도 개근 중. 나카무라는 잘하니까 뭐..

그 외엔 그래도 초보감독치고 괜찮은 운영을 보이는 중. 어느 날 1,2회에만 번트실패를 3번이나 하자(...) 다음날에는 무사2루에서도 강공을 하는 등 변칙적인 작전도 선보였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도루를 상당히 많이 시킨다. 나카무라 쇼고의 도루갯수가 급증한 것도 감독이 바뀐 것이 큰 듯. 문제는 나카무라 쇼고, 후지오카 유다이 등 발은 빠르지만 도루센스가 안 좋은 선수들도 마구마구 도루를 시키는 바람에 도루 성공률이 시망.[12]

2019년에도 똥행야구는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브랜든 레어드후지와라 쿄타의 등장 때문에 2018년에 양아들마냥 전 경기 선발출장하던 오기노 타카시스즈키 다이치가 벤치에 처박히고 있다. 이놈의 똥행야구 덕분에 개막전을 이긴 후 3경기를 내리 지자 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나오는 중. 특히 타격감이 나쁘지 않은데 대타로밖에 못 나오는 스즈키 다이치, 포텐셜이 뛰어난 1라운드 지명자인데 대수비로만 돌리고 있는 히라사와 타이가를 너무 안 쓰는 것은 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다.

이 빌어먹을 똥행야구는 4월 들어 더욱 심해져서 4월 21일 현재는 이기기만 하면 아무리 못 치는 타자도 믿고 보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지고 있는 득점권 상황에서 타무라 타츠히로, 후지오카 유다이, 미키 료 등의 타격감이 바닥인 타자들을 그대로 고집했다가 점수를 못 내는 일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김기태의 똥행야구도 대타, 대주자 등의 선수교체는 자주 하는데 이 인간은 그냥 베스트 나인 9명만 딱 고집하고 있으니 정말 답이 없는 상황.

이젠 투수한테까지 똥행야구 중이다. 4월 23일 경기에서는 카라카와 유키가 1아웃밖에 못 잡고 4실점을 할 때까지 안 내렸다. 8:5의 상황에서 8:6, 8:7, 심지어는 8:8이 될 때 까지 안 내리더니 8:9로 역전당해야 그제서야 패전처리 타나카 야스히로로 교체. 결국 다 이긴 경기를 무승부로 만들고 말았다. 김기태가 감독해도 이거보단 나을 것 같다.

결국 세이부한테 10경기 연속 무승을 내줬다. 공동 4위를 차지하며 A클래스 턱밑까지 갔다가 다시 단독 6위로 처박혔다.

그리고 이구치 유다이, 이구치 타츠히로는 주구장창 기용하고 쓰지도 않을 에무라 나오야호소야 케이는 이럴 거면 뭐하러 1군에 올려놓고 있는지 모르며 오키 타카마사, 미케 카즈마, 야스다 히사노리, 이시미네 쇼타, 타카하마 타쿠야, 카츠키 카즈야는 왜 1군에 절대로 안 올리는 지 궁금하다. 투수진에서도 이구치 유키, 이구치 토모히토, 이구치 유지 등은 죽어라 믿고 써대면서 마츠나가 타카히로, 나리타 카케루, 아베 카즈나리, 오오타니 토모히사, 천관위 등은 아예 1군에 안 올리거나 1군에서 잘 못 믿으면서 이상한 순간에만 내보내고 있다. 자기한테 아부하는 선수만 계속 쓰는 건지 의심간다.[13]

이제는 뜬금없이 번트에 꽂혔는지 1사 1루에서 번트를 시키질 않나... 쓰리 번트를 시키다가 아웃당하질 않나... 심지어 5월 2일 경기에서는 무사 1루에서 카토 쇼헤이가 쓰리번트 아웃을 당하자 다음 타자 요시다 유타에게 1사 1루에서 번트를 시켰다. 요시다의 번트성공으로 2사 2루가 된 후 이 날 안타가 없는 이구치 유다이를 대타 한 번 안쓰고 그대로 타석에 올렸다. 그리고 후지오카는 초구 2땅아웃. 정말 무슨 생각으로 작전을 펼치는 지 모르겠다.

2019년 시즌이 계속되면서 나타나는 특징인데 이구치 세이야, 이구치 카츠야, 이구치 쇼고, 이구치 다이치 타석에서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대타를 쓰지 않는다. 단 이노우에 세이야의 경우는 가끔 대타가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이 경우 100% 번트용 대타라서 상대팀이 번트 작전임을 다 간파하는 바람에 성공률이 낮다! 진짜 야구게임 하는 일반인도 다 작전을 간파하니 원...[14]

5월 6일에도 1사 1루에서 번트시키다가 실패했다. 왜 이렇게 1사 번트에서 꽂혔는지...

5월 16일에는 타무라의 부상으로 다시 1군에 올라온 이구치 나오야가 이날 득점권 병살을 포함 병살과 삼진만 기록한 상황이었는데도 끝까지 대타 없이 에무라를 썼다. 결국 이 날 에무라는 1병살에 2삼진으로 경기의 맥을 끊어먹으며 패배의 1등공신이 되었다.

5월 18일 카라카와 이구치 유키가 3점차에서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못 잡고 4실점하는 동안 투수코치조차도 올리지 않았다. 그 다음타자 젤러스 휠러가 안타를 치고 나서야 그제야 교체. 카라카와는 하루만에 평균자책점이 3점대 초반에서 5점대가 되었다. 심지어 연투도 아니고 이틀쉬고 나왔는데 저 모양이다.[15] 근데 이구치의 성향상 양아들이니까 2군으로 안 내릴 것이 명백하다. 지금 롯데가 A클래스 경쟁하는 것은 타 팀이 못해서이지 본인이 잘해서가 아닌데 이 놈은 다 지가 운영을 잘해서 순위가 잘 나오는 줄 아는 대책 없는 명장병자다. 순위가 잘 나오니 사퇴할 리도 없고 정말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결국 4위로 탈락. 그래놓고 내년 시즌에 더 잘하겠다는 둥 개소리만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자기랑 친하다는 이유로 토리타니 타카시를 데려오고 싶다고 해서 프런트와 갈등을 빚는 중. 근데 웃기는 건 프런트는 또다른 노장 유격수인 오오비키 케이지나 니시오카 츠요시를 데려오려고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신인드래프트 제비뽑기에서 사사키 로키를 뽑았다!운빨 1툴

4. 기타

  • NPB 시절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였다.(타율 .365 3홈런) 다만 메이저리그 무대에서는 2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 김태균치바 롯데 마린즈 입단 첫해 훈련하다 기절(...)했다는 뉴스가 뜬 적이 있는데, 그때 같이 훈련하던 선수가 이구치이다. 기사 당시 김태균은 20대 후반의 전성기를 달려야 할 나이이고 이구치는 이미 30대 중반을 넘긴 베테랑임에도 불구하고 기초체력부터 상대가 안되는 현실은 KBO 리그와 NPB의 수준차를 상징하는 에피소드처럼 인식되어 KBO 리그 까들에게는 좋은 안주거리가 되었다(...).
  • 2017년 부로 현역 일본프로야구의 야수 중에서 최고령이 되었다. 퍼시픽리그 내국인 선수 중에서도 최고령이며, 양대리그의 투수를 포함해도 3번째로 나이가 많다. 그의 위로는 이와세 히토키가 있다. 그러나 2017년 시즌이 끝나고 은퇴를 선언함으로써 최고령 타이틀을 오래 보유하지는 못하게 됐다.
  • 젊은 시절의 외모가 묘하게 임준섭과 닮았다.
  • 선수단 기강을 잡기 위해서 선수들을 때려잡는 스타일로 보인다. 닛폰햄 때 덕아웃에서 대놓고 또라이짓을 하던 오카 히로미가 얌전해진 것으로 보아...


[1] 본명은 발음은 동일하나 이름 부분의 한자가 일부 다른 이구치 타다히토(井口忠仁).[2] 당시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야구팀이 소속된 리그인 동도대학 리그에서 무려 사상 유일의 삼관왕을 획득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통산 24홈런과 대학 시절 최다 기록인 시즌 8홈런은 지금도 동도대학 리그 역대 최다 기록이다.[3] 대학생 신분이었던 이구치와 이마오카 마코토, 사회인야구 출신으로 대표팀에 발탁된 후쿠도메 코스케타니 요시토모, 이구치의 다이에 시절 동료이던 마츠나카 노부히코일본프로야구에서 대형 타자로 활약한 선수들이 많았다.[4] 당시 한국 대표팀과의 경기에서도 맹활약해 14:4 콜드승을 이끌어 냈다.[5] 이 때 금메달을 획득한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의 플레이에 충격을 받아,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6] 이구치-마쓰나카 노부히코-조지마 겐지-페드로 발데스. 여기에 과거의 도루왕 무라마츠 아리히토와 미래의 도루왕 카와사키 무네노리가 밥상을 깔고, 다음 해 40홈런을 칠 거포 훌리오 줄레타가 7번을 치며, 3할 타자인 오미치 노리요시시바하라 히로시가 자리가 없어서 8번을 치는 무시무시한 타선이었다. 거기다가 전 해까지의 4번타자인 고쿠보 히로키는 부상으로 아예 시즌을 날려 버렸는데도 팀타율 .297로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워 버렸다.[7] 이 당시 다이에 프런트는 막장 경영으로 유명했다. 고쿠보 히로키 문서 참조.[8] 이 해 AL 신인왕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마무리 투수 휴스턴 스트리트가 가져갔다.[9] 사실 똑딱이화도 2011년 이후 일이지, 원래 후쿠우라 카즈야도 한 시즌에 20홈런 이상 친 적이 있고 2루타도 많이 생산해내는 중장거리 타자였다.[10] 거기다가 2014~2016년까지는 알프레도 데스파이네가, 2017년에는 윌리 모 페냐가 지명타자 자리를 거의 고정적으로 차지했고, 1루수 자리도 2017년 새 용병 지미 파레디스가 주로 출장하고 있기 때문에 후쿠우라 카즈야조차 백업 신세이니... 근데 지미 파레디스보다 후쿠우라가 더 잘한다[11] 같은 팀 투수 오미네 유타의 동생. 시즌 중 금전문제로 은퇴.[12] 나카무라 쇼고는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도루 성공률이 65% 안팎에 그치며 부진하다가 후반에 좀 관리를 해서 70%를 간신히 넘기긴 했다. 그러나 후지오카 유다이는 14도루를 했지만 성공률이 50% 수준밖에 안 되며 정말 안 하느니만 못한 도루를 보여줬다... 그 외에도 타무라(?!)를 도루시키다가 도루자를 당하게 하고, 발이 빠르지만 도루 갯수는 적던 히라사와의 도루갯수도 많이 늘어났고, 중간 수준의 주력이던 호소야와 미키에게도 도루를 시켰다. 이노우에에게도 도루를 시킨 적도 있다.[13] 이뿐만 아니라 지금은 2군에 내렸지만 히라사와 타이가는 3~4일마다 대수비로 가끔 올리는 데 그쳤으며(이 선수는 2016년 드래프트에서 고졸 타자 최대어였는데도!) 이구치 케이스케는 중요한 상황에서 뜬금없이 올렸다가 계속 상대방에게 쐐기점을 내주는 짓만 해대는데도 미친듯이 중용하다가 결국 못 참았는지 2군행을 지시했다.[14] 사실 2019년 5월에 한 번 스즈키 다이치의 대타로 호소야 케이를 썼는데 호소야가 땅볼아웃됐다. 아마 다시 봉인할 듯.[15] 이틀 전에도 카라카와는 1실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