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1 12:53:10

가와사키 무네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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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가와사키 무네노리 (川﨑 宗則, Munenori Kawasaki)
생년월일 1981년 6월 3일
국적 일본
출신지 가고시마아이라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좌타
학력 가고시마 공업 고등학교
프로입단 1999년 드래프트 4위
소속팀 후쿠오카 다이에/소프트뱅크 호크스 (2000~2011)
시애틀 매리너스 (2012)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3~2015)
시카고 컵스 (2016)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7)
파일:external/oi67.tinypic.com/judbhg.png 2004년 퍼시픽리그 최다 도루
2003년
이구치 타다히토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42도루
카와사키 무네노리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42도루
2005년
니시오카 츠요시
(치바 롯데 마린즈)
41도루
파일:external/oi67.tinypic.com/judbhg.png 2004년 퍼시픽리그 최다 안타
2003년
타니 요시토모
(오릭스 블루웨이브)
189안타
카와사키 무네노리
마츠나카 노부히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71안타
2005년
와다 카즈히로
(세이부 라이온즈)
153안타

1. 개요2. 일본 프로야구 시절3. 메이저리그 시절4. 일본프로야구 복귀와 은퇴5. 기타

1. 개요

호크스 시절 응원가
일본 프로야구를 거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뛰었던 일본의 프로야구선수. 별명은 무네린. 메이저 리그 진출 이후에는 팀 동료들에게 '무니'라고 불렸다.

2. 일본 프로야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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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사키 공업고교 졸업 후 1999년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 지명되며 프로생활을 시작하였다. 가와사키는 당시까지만 해도 상당히 마른 편이었고 고시엔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1] 대학을 거쳐 프로에 도전할 생각이었지만 그의 타격센스와 빠른 발을 눈여겨본 다이에에서 깜짝지명을 한 것이다. 2000년 한해는 2군에서 보내고 2001년 10월에서야 처음으로 1군 경기에 출장했다. 원래의 포지션은 유격수이지만 2003년에 주전 3루수였던 고쿠보 히로키의 시즌 아웃 부상으로 유격수가 아닌 3루수로 출전하면서 규정타석을 채우고 0.294에 30도루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2004년에는 수신타병이던 토리고에 유스케[2]를 밀어내고 주전 유격수로 정착해 3할 타율에 171안타, 42도루로 최다안타, 도루왕을 차지했다. 이 해에는 골든글러브와 베스트나인도 획득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빠른 발을 살린 전형적인 단타 위주의 타자로 일본리그에서는 꾸준히 3할 타율과 2~30개 정도의 도루를 기록하며 2000년대 호크스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코어로 활약했다. 2000년대 초중반 이구치 타다히토, 마츠나카 노부히코, 고쿠보 히로키, 조지마 겐지, 페드로 발데스[3], 훌리오 줄레타 등 거포들이 포진한 '다이하드 타선'[4]의 테이블 세터로 리드오프인 시바하라 히로시/무라마츠 아리히토[5]/오무라 나오유키[6] 등의 뒤에서 중심타선으로 연결하는, 스몰볼에서의 2번타자 역할을 묵묵히 해주며 많은 인기를 얻었고, 저 외야수들이 죄다 노쇠화한 뒤에는 본인이 리드오프 역할을 맡아 준수하게 활약하기도 했다.

당시 니시오카 츠요시, 나카지마 히로유키와 함께 퍼시픽 리그 3대 유격수로 평가받았다. 이 둘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펀치력이 떨어졌지만, 그걸 견고한 수비와 준수한 작전능력으로 만회했다. 또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으로도 자주 뽑혀서 국내 야구팬들에게도 친숙한 선수. 2006년, 2009년 WBC와 2008년 올림픽에서도 일본 대표로 참가했다.

2011년 시즌 종료 후 FA 권리를 행사해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다. 여담으로 이 시기 호크스에서 2루수 혼다 유이치와 키스톤 콤비를 이루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오토바이 드립이 자주 나왔다.

3. 메이저리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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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와사키가 메이저리그에서 뛸 실력은 아니라고 본 사람들이 많은지라 별 주목은 받지 못했기 때문에 헐값에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본인이 프로가 되기 전부터 스즈키 이치로의 광팬이어서, 이치로가 있는 팀이 아니면 메이저리그에 가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다른 구단으로 눈을 돌렸으면 조금 나은 대우를 받을 가능성도 있었는데 굳이 마이너리그 계약까지 감수하면서 시애틀에 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치로가 팀을 떠났다

2012시즌 메이저리그에서 고작 61경기 출전에 타율 1할대, OPS는 0.459를 찍었고, 유격수 수비에서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NPB 시절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특유의 개그 캐릭터를 살려 컬트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시즌 중 이치로가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는 사고도 겪었다. (이 때 기사에 대한 일본쪽 반응은, 이치로 얘기는 없고 가와사키를 걱정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2012년 시즌이 끝난 후 시애틀에서는 결국 방출되었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양키스로는 못갔지만 그래도 AL 동부지구까지는 따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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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시즌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도 마이너에서 출발했지만, 4월 중순에 호세 레예스의 부상으로 메이저로 콜업되어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타격 성적은 여전히 별로지만 타율이 2할 초반대로 조금 올라서, 영양가있는 홈런도 때려내기도 하며 일단 토론토 팬들의 반응은 레예스가 뚫어놓은 구멍을 그럭저럭 잘 메워줬다는 평. 팀 내에서는 '무니'라고 불리면서 선수들과 친하게 지내는 듯하다. 하지만 6월 25일자로 호세 레예스가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마이너리그로 옵션되었다. 아무리 비즈니스라지만 친화력과 기행으로 현지팬한테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인만큼 가와사키의 마이너행이 아쉬운 사람도 많은 모양.

하지만 멜키 카브레라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15-day DL에 오르자 마이너리그로 강등된지 일주일도 안 돼서 다시 콜업. 다시 메이저리그로 복귀했다. 그러나 내야수 브렛 로리가 복귀하며 다시 마이너행(…).

8월 중순 세 번째로 메이저로 올라왔다. 9월엔 메이저 첫 4안타 게임을 기록하기도 하며 그대로 메이저에서 시즌을 마감. 성적은 96게임 출전에 1홈런 24타점, 타율은 0.229. 다만 어떻게든 출루하기 위해 끈질게 물고 늘어진 모습을 보인 결과, 출루율이 .326으로 상승했다는 것은 고무적이었다.

2013시즌 종료 이후, 블루제이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주전 2루수 마이서 이스투리스가 무릎부상으로 DL에 가며, 현지시간 2014년 4월 13일에 메이저로 콜업되었다. 이스투리스의 부상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여 가와사키에게 많은 출전 기회가 돌아갈 듯 싶었으나 호세 레이예스가 복귀하며 5일만에 다시 마이너리그로 갔다. 그리고 6월에 이 해 두번째로 메이저로 올라왔는데, 브렛 로리가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선발출장 기회도 늘어났다. 시즌 최종 성적은 82게임 출전 .258, 62안타 17타점.

2014시즌 종료 후 다시 FA가 되었다. 일본프로야구 복귀도 염두에 두었던 모양이지만, 결국 토론토와 다시한번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었다.

2015년에는 토론토가 컨텐더를 노리며 트로이 툴로위츠키 등 선수들을 질렀고, 팀도 선두싸움을 하게 되면서 거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23경기 출장에 그쳤다. 일본복귀 가능성이 높으며, 친정팀인 소프트뱅크로의 복귀가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미국 잔류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토론토 동료등과도 잘 지내는 모양이긴 한데[7] 성적도 별로면서 친목질로 살아남는다고 한국 네티즌들에게 까이기도 했다. 물론 가와사키의 유쾌한 성격과 괜찮은 멘탈, 실력보다는 도전정신이 돋보이는 것 때문에 옹호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시즌 후 토론토와 재계약에 실패해 논텐더로 풀렸고 2016년 1월, 시카고 컵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시범 경기에서 3할 후반대의 고타율을 기록했음에도 개막전 로스터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하지만 개막전이 열린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카일 슈와버가 수비 도중 덱스터 파울러와 충돌로 입은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당해 부상자 명단에 올라가버리는 바람에 곧바로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었다. 메이저리그에서 2경기에 나서 2타수 1안타 1도루를 기록하고 콜업된지 일주일만에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토론토 시절처럼 팀메이트들과의 친화력을 사서였는지 2016년에도 로스터에는 들어있지 않으면서 월드시리즈 7차전까지 팀과 함께 있었다. 그동안 전혀 카메라에 잡히지 않다가 시카고 컵스가 마지막 아웃을 잡아내는 순간 덕아웃을 뛰쳐나온 선수들 사이에 끼어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설마 컵스에서도 마스코트 대우?

4. 일본프로야구 복귀와 은퇴

2017년 3월 29일 스프링 캠프 도중 시카고 컵스가 계약을 해제하면서, 원 소속팀인 NPB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의 복귀가 결정되었다. 계약 내용은 1년 9,000만엔, 등번호는 원래 번호였던 52번을 사용한다. 여담으로 4월 1일에 발표가 나는 바람에 뉴스 기사만 보고 만우절 장난인줄 알았던 사람들도 몇 있는 듯

가와사키의 신묘한 기운 때문인지 소프트뱅크는 지바 롯데 마린즈와의 개막 시리즈를 스윕하며 기분 좋은 시즌 출발을 알렸다. 이후에 팀이 부진하며 순위가 하락했었는데 가와사키가 1군으로 합류하자마자 폭풍 연승을 달리며 2위로 올라섰다. 시즌 초 2군 조정을 거쳐 4월 28일 오릭스전에서 1번 2루수로 선발출장하며 복귀후 첫 공식전에 출장했다. 미국에 있던 동안 이마미야 겐타가 완전히 유격수로 정착했기 때문에 2루수로 전향했다. 42시합에 출장하며 타율 0.241, 출루율 0.310으로 일본에서의 마지막 시즌보다 소폭 하락된 기록을 남기다가 아킬레스건 통증으로 7월 24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몸상태가 안좋아 계약이 보류되면서 2018시즌은 반 무소속 상태로 시작하게 되었다. 다만 호크스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복귀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몸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개막 직전인 2018년 3월 26일에 은퇴를 선언했다. 부상 이외에도 자율신경계에 문제가 생겨 자기 의지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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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 본인에게 이치로 매니아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이치로의 광팬. 일본에서 뛸 무렵의 등번호는 '이치로 다음 가는 선수'라는 의미로 이치로의 등번호인 51보다 하나 많은 52를 달고 뛰었으며, 메이저 진출시에도 이치로를 따라 매리너스로 가버렸고, 등번호 51은 다른 선수가 쓰고 있었기 때문에 거꾸로 읽으면 이치로가 된다는 의미로 등번호 61을 달았다.[8] 또한 시즌 이후엔 자율훈련도 함께할 정도이고, 타격폼도 이치로의 폼을 따라했는지 상당히 흡사하다.

이러한 한결같은 이치로에 대한 위험한 동경(...)과 약간 유들유들하게 잘 생긴 외모때문에 2ch에서는 TDN에 이은 게이 네타의 희생양이다. 특히 이치로 따라 마이너 계약으로 시애틀 갔을 때랑, 기껏 쫓아갔는데 이치로가 후장을 걱정하여(...) 양키스로 트레이드 됐을 때가 절정. 그리고 토론토가 게이의 도시라는 이상한 편견까지 섞여서 일본 야구계 게이의 2인자로 네타거리가 되었다. 근데 실은 가와사키는 결혼도 했고 2013년에는 득남까지 한 것이 함정(...).[9]


2013년 8월 21일 뉴욕 양키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 이치로가 미일 통산 4000안타를 달성할때 필드에서 같이 열렬히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치로 본인도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관중들 에게 인사한 후 마지막으로 무네노리에게까지 고맙다는 사인을 보내주었다. 무네노리의 활짝 핀 표정이 정말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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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절 꽃미남으로 많은 여성팬들을 몰고 다녔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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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 괴짜 일본인 기믹이 되었다(...)자세히보면 왼쪽 끝에 에스밀 로저스가 앉아있다.

일본에서는 잘생긴 얼굴로 수많은 얼빠들을 몰고 다녔지만, 사실은 유쾌한 성격의 무드메이커로 알려져 있다. 약간 4차원적인 기질도 있어서, 일본 시절때는 경기 시작 전 응원가에 맞춰 춤을 추는 '무네린 댄스' 가 유명했다. 특유의 낯가림 없는 성격 덕분인지 이범호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입단했을 때도 절친이 되었다고 하며, 그 덕에 소녀시대 티파니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그 기질이 죽지 않아서, 덕아웃에서 음악에 맞춰 정체불명의 댄스를 구사하기도 하고 1루에서 도루하는 척 발만 터는 슈퍼 플레이를 선보여 중계하는 사람들을 포복절도에 빠트리기도 했다. 토론토에서도 이런 모습은 여전해서, 성적과는 관계없이 팀내에서 인기는 굉장한 듯 하다.

일단 팀 동료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지금까지 잘 해오고는 있는데, 쟤 영어는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듣겠어."인 듯(…). 그리고 그걸 확인해 볼 수 있는 2013년 5월 26일 볼티모어전에서 역전 끝내기 2루타를 치고 난 다음에 인터뷰 모습.



역시 개그 캐릭터. 못 알아들을 사람을 위해서 가와사키가 수첩을 펼쳐놓고 뭐라고 했는지 옮겨적으면 "My teammates gave me an opportunity. So I wanted to do something about it. (팀 동료들이 상을 차려줬다. 그래서 뭐라도 하고 싶었다.)"이다. 영화 메이저 리그 2에 나오는 타나카 이스로의 실사판.

그의 영어실력을 볼 수 있으니 알아서 판단하시길...
https://www.youtube.com/watch?v=86PkGlBlVbA
https://youtu.be/MwUPFU9rDMg
https://youtu.be/Jm9bEizIGBE개인 영어강사로 로저스가 나온다
https://youtu.be/VQRvt3aZllo
https://youtu.be/3Di2_EM3zCg
최근 모습. 전보다 많이 늘어난것 같다.
https://youtu.be/YrYdiOHT0GQ



2013년 6월 21일 경기에서는 메이저리그 진출 후 첫 홈런을 신고했다. 토론토 홈팬들로부터 조 카터월드 시리즈 끝내기포를 방불케 하는 대단한 환호를 받고, 동료들과 합장 세레머니를 한 뒤 커튼 콜까지 받으며 관중들에게 합장 세레머니를 했다. 오오! 위에 끝내기 안타 건도 그렇고 왠지 볼나쌩인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런 개그 캐릭터가 그리 좋게만은 보이지 않았던 건지, 거침없는 독설로 유명한 장훈 옹은 가와사키의 인기에 대해 "홈런은 완전 운빨. 팬들로부터는 마스코트 취급 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타율이 2할 1푼인 선수는 야구선수가 아니다." 라고 혹평을 했다.

이에 대해 트위터에서 누군가가 가와사키와 친한 다르빗슈 유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물었고, 다르빗슈는 "가와사키는 꽤나 팀에 도움이 되고 있어. 근데 그 (장훈이 나온) 프로그램[10]은 뭐 때문에 있는 거야? 선수를 까기 위해서? 모르겠구만."이라고 반박했다.[11]

그러다 2014년 10월 26일, 가와사키가 직접 TBS 선데이모닝 '주간 고견코너'에 직접 출연했다!!!! 원래는 NPB 은퇴선수들과 장훈이 출연하는데, 이번에 장훈과 같이 패널로 참석하게 된 것! "떽!"을 날려버리면서 혹평한 장훈 옆에서도 기죽지않고 그 시절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해버려서 4차원 강철 멘탈을 스스로 증명해버렸다. 우연이겠지만 TBS 제작진에서 "떽!"을 날리던 장면을 방송하려 했지만 음성이 나오지 않는 방송사고가 나버려서 움찔하던 분위기가 급훈훈해지기도.
파일:external/pbs.twimg.com/B-j5zCZUIAE97b_.jpg
2015년 2월 스프링캠프 때 카미카제 두건을 두르고 나온 것이 [12]트위터에 올라오면서 국내에서는 굉장한 빈축을 사고 있다. 카미카제는 구 일본군과 일제의 전범을 상징하는 단어인데 설령 몰랐다 하더라도 매우 경솔한 모습이다.

프리미어 12 4강 한일전을 앞두고 오타니 쇼헤이에게 아침밥 잘 먹고 마운드에 오르라는 다소 이색적인 조언을 했다. 오타니는 이에 대해 아침밥 잘 먹고 마지막까지 체력관리 잘 하겠다며 화답하였고 실제로도 한국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호투를 펼쳤지만 결과는...그래도 이건 오타니 잘못은 아니잖아 준결승 한국전을 tv로 일본의 공격인 8회말 까지만 보고 2살짜리 아들을 목욕시키고 나왔는데 부인이 큰일났다며 한국의 역전 소식을 알려줬다며 자신(카와사키)이 만약 9회까지 제대로 보면서 파워를 보냈다면 100% 이겼을거라며 자신의 자만심이었다며 고쿠보 감독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13]


[1] 가와사키 현 대표로 고시엔에 단골 출전한 학교는 스기우치 도시야를 배출한 가고시마 실고와 쇼난고교 였다.[2] 현재는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1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 90년대에는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주전 유격수로 뛰며 장신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비를 펼쳤다. 그러나 97년 말에 밝혀진 대규모 야구선수 탈세사건에 연루되어 출장정지 처분을 받은 뒤 이종범, 구지 테루요시, 후쿠도메 고스케 등 유격수 포지션 경쟁자들에 밀려나 1999년에 다이에 호크스로 트레이드된다. 하지만 호크스는 그가 트레이드된 해인 1999년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끝내 센트럴리그 우승팀 주니치 드래곤즈를 꺾고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심지어 호크스는 2000년에도 리그 우승을 이룬다! 고마워요 호시노 참고로 수신타병이라고 한 이유는 리그 탑급의 수비력과 거기에 대조되는 타선에서의 거대한 블랙홀 역할이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타자였기 때문. 매년 공격에서의 목표가 자기 키(187cm)를 넘는 타율을 기록하는 것이었다(...)[3] 2007년 LG 트윈스에서 뛴 그 발데스 맞다. 발Death[4] 호시노 센이치한신 타이거즈를 꺾고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2003년은 그 백미. 팀타율 .297, 100타점 타자가 4명이라는 괴물같은 득점력을 자랑했다.[5] 2003년 시즌오프에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FA 이적했고, 팀명이 오릭스 버팔로즈로 바뀐 뒤에도 2008년까지 뛰다가, 오무라 나오유키의 트레이드로 다시 호크스로 돌아와 선수생활의 마지막 2년을 보냈다.[6] 본래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주전 중견수-리드오프였지만, 킨테츠 구단이 해체되자 FA 권리를 행사해 소프트뱅크로 이적했다. 앞서 말했던 무라마츠와의 트레이드로 버팔로즈로 돌아와 선수생활을 마쳤다.[7] 실제로 2015년 플레이오프 기간 중에도 로스터에에서 제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마지막 경기인 ALCS 6차전까지 가와사키를 덕아웃까지 대동했다.[8] 정확하게는 1이 이치(いち), 6이 로쿠(ろく)다. 이치로(一朗, いちろう)에서 '로'의 장음을 무시하고 6의 '로쿠'에서 '쿠'를 뺀 것.[9] 이에 대해서는 게이임을 숨기는 위장 결혼과 득남이라는 개드립도 있었다 카더라.[10] TBS 테레비 선데이 모닝의 코너「주간 고견코너」.[11] 장훈 옹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장훈 옹은 기본적으로 야구계에서 보수적인 인사일 뿐만 아니라, 일본프로야구의 스타들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국 리그를 등한시하는 행동이라며 강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봤을 때, 미국에 진출한 뒤 야구보다는 마스코트적인 행동으로 주목받는 가와사키가 장훈 옹으로서는 곱게 보였을 리는 만무했을 것이다. 다만 응원이나 조언은 없고 맨날 누군가를 까내리기만 한다며 안티도 굉장히 많은 편. 그래도 우에하라 고지를 극찬하는 등 칭찬할 땐 칭찬하지만 이번엔 그 발언 수위가 높아서 문제...[12] 위의 마지막 링크의 영상에서 선수단이 머리에 쓰고 있는것을 잠깐 볼수 있다.[13] 출처: http://hanshintigers1.blog.jp/archives/5791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