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포세드닉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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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
2005 |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9번 | ||||
조 올리버 (1998~2000) | → | 스캇 포세드닉 (2001) | → | 진 킹세일 (2001) |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20번 | ||||
카를로스 에르난데스 (2000) | → | 스캇 포세드닉 (2001~2002) | → | J.J. 퍼츠 (2003~2008) |
밀워키 브루어스 등번호 20번 | ||||
제로미 버니츠 (1996~2001) | → | 스캇 포세드닉 (2003~2004) | → | 랜스 닉스 (2006~2008) |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22번 | ||||
호세 발렌틴 (2000~2004) | → | 스캇 포세드닉 (2005~2008) | → | 조시 필즈 (2008~2009) |
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29번 | ||||
댄 세라피니 (2007) | → | 스캇 포세드닉 (2008) | → | 호르헤 데 라 로사 (2008~2016) |
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22번 | ||||
더스탠 모어 (2005) | → | 스캇 포세드닉 (2008) | → | 호세 로페스 (2011) |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1번 | ||||
대니 리차 (2007) | → | 스캇 포세드닉 (2009) | → | 후안 피에르 (2010~2011) |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22번 | ||||
조시 필즈 (2008~2009) | → | 스캇 포세드닉 (2009) | → | 브렌트 모렐 (2010~2013) |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번호 22번 | ||||
트레이 힐만 (2008~2009) | → | 스캇 포세드닉 (2010) | → | 루카스 메이 (2010)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21번 | ||||
닉 그린 (2010) | → | 스캇 포세드닉 (2010) | → | 존 갈랜드 (2011) |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26번 | ||||
라미로 멘도사 (2003~2004) | → | 스캇 포세드닉 (2012) | → | 브록 홀트 (2013~2015) |
스캇 에릭 포세드닉[1] Scott Eric Podsednik | |
출생 | 1976년 3월 18일 ([age(1976-03-18)]세) |
텍사스 주 웨스트 | |
국적 | 미국 |
학력 | 웨스트 고등학교 |
신체 | 183cm / 83kg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94년 드래프트 3라운드 전체 85번 (TEX) |
소속팀 | 시애틀 매리너스 (2001~2002) 밀워키 브루어스 (2003~2004)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5~2007) 콜로라도 로키스 (2008)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9) 캔자스시티 로열스 (2010)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10) 보스턴 레드삭스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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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야구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외야수였다.2. 선수 경력
2.1. 데뷔 ~ 밀워키 브루어스
텍사스 주 웨스트 태생으로 웨스트 고등학교를 거쳐 1994년 드래프트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입단 1년만에 바비 위트 트레이드의 추후 지명 선수로 지정되며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 되었다가 1998 시즌을 앞두고 룰5 드래프트 마이너 리그 페이즈에서 지명되며 텍사스로 돌아왔다. 마이너에서부터 빠른 발을 보여줬으나 타격이 늘지 않아 성장이 정체되었고, 2000 시즌 더블A에서 뛴 것을 끝으로 마이너 리그 FA 자격을 획득했다.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은 포세드닉은 기존의 볼넷을 많이 고르는 타석 접근법을 과감하게 버리고 적극적으로 배트를 내기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트리플A 타율이 3할에 가깝게 올라갔다. 결국 2001년 빅리그 데뷔에도 성공했지만, 2년간 19경기 출전에 그치며 기회는 별로 못 받았다. 트리플A에서도 타격 성적이 애매했는데 심지어 타고투저인 PCL이기까지 했으니 타격에서는 확실히 경쟁력이 없던 셈.
하지만 2003 시즌, 현금 트레이드로 밀워키 브루어스에 정착한 포세드닉은 27세의 늦깎이 유망주 나이로 포텐셜을 터뜨린다. 3할을 넘는 타율과 적절한 볼넷 생산, 43개의 도루가 더해지며 리드오프 중견수로 맹활약했고, NL 신인왕 투표에서도 돈트렐 윌리스에 이은 2위에 오르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2004년에는 타격이 퇴보하면서 평가가 쭉 떨어졌다. 도루는 무려 70개를 기록하고 그동안 도루 실패가 13개에 불과할 정도로 뛰기는 잘 뛰었으나 .244의 타율과 .313의 출루율은 리드오프로 쓰기에는 낙제점 수준.
2.2. 시카고 화이트삭스 1기
2004 시즌 후 카를로스 리 트레이드에 끼어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했다.2005년 포세드닉은 타격 스타일을 다시 바꿨다. 밀워키 시절 포세드닉은 적극적으로 배트를 내면서도 은근히 갭파워를 보여줘서 두 자릿수 홈런도 기대할 수 있는 장타력은 가지고 있었는데, 화이트삭스로 이적한 이후 아예 똑딱이의 길을 택하며 남은 장타력도 전부 내던졌다. 그 댓가로 타율은 확실히 상승해서 다시금 리드오프 자리를 꿰찼으며, 도루 59개를 기록하고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에도 선정되는 등 좋은 시즌을 보냈다.
특히나 2005년 월드 시리즈 2차전에서 브래드 릿지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때려냈는데, 이 해 포세드닉은 정규시즌에 5-6-8번 타석에 들어서는 동안 단 하나의 홈런도 때려내지 못했었다. 그런 선수가 포스트시즌에서 철벽 마무리로 불리던 릿지에게 홈런을 때려낸 것. 결국 화이트삭스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4연승 스윕으로 제압하고 월드 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이 활약 덕분에 연봉조정 타이밍이 되어 연봉도 좀 올랐으나, 2006년이 되어 타격이 다시 퇴보하면서 발만 빠른 잉여(...)가 되었다. 2007년에는 부상까지 겹치며 62경기 출전에 그쳤고, 결국 시즌 후 논텐더로 방출되었다.
2.3. 콜로라도 로키스 ~ 보스턴 레드삭스
2008년 포세드닉은 콜로라도 로키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청되었다. 개막 로스터에 합류한 포세드닉은 주로 대주자 겸 백업 외야수로 93경기에 나섰으나, 타격은 여전히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포세드닉은 로키스와 재계약했지만 2009 시즌 빅리그 로스터 진입이 불발되자 상호 합의 하에 방출되었고, 4월 14일 친정팀 화이트삭스로 복귀했다. 트리플A에서 뛰던 포세드닉은 외야진의 줄부상을 틈타 4월 30일 콜업되었고, 의외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3할 타율을 기록하고 주전 외야수 자리를 꿰찼다. OPS .764는 2003년 이후 가장 좋은 성적.
덕분에 2010년에는 오랜만에 빅리그 보장 계약을 맺고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이적했다. 로열스에서도 3할 타율에 0.7 중반대를 찍는 OPS로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으며, 34세의 나이로 95경기에서 30도루 12실패를 기록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이에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남아있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7월 말 마이너리거 두 명을 댓가로 써서 포세드닉을 트레이드로 데려왔으나, 귀신같이 트레이드 이후 부진하다가 발 부상으로 일찌감치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종료 후 다시 FA로 풀렸으며,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콜업 없이 5월 11일 방출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부상으로 14경기 출전에 그친 채 시즌을 마감했다.
2012 시즌을 앞두고 필리스와 재계약한 포세드닉은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나름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개막 로스터에 진입하는데는 실패했다. 결국 포세드닉은 5월에 현금트레이드로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고, 5월 22일 오랜만에 빅리그 무대에 콜업되었다. 콜업 후 백업으로 뛰면서 꽤 괜찮은 모습을 보였으나 주전 외야진의 복귀와 함께 다시 마이너로 내려갔고, 7월 31일 크레이그 브레슬로우 딜에 껴서 맷 앨버스와 함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하지만 트레이드 직후 마이너 행을 거부하면서 방출되었고, 보스턴의 외야진이 또 다시 줄부상을 당하며 9일만에 보스턴과 계약하며 돌아왔다. 남은 기간은 준 주전급으로 뛰었으나 성적은 신통치않았고, 시즌 종료 후 다시 FA로 풀린 뒤 은퇴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