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01 17:24:25

틸슨 브리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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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1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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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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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2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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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시절.
이름 틸슨 마누엘 브리토 히미네스(Tilson Manuel Brito Jiménez)
생년월일 1972년 3월 28일
국적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지 산토도밍고
포지션 유격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소속팀 토론토 블루제이스(1996~1997)
오클랜드 애슬레틱스(1997)
SK 와이번스(2000~2001, 2004)
삼성 라이온즈(2002~2003)
한화 이글스(2005)
퉁이 라이온즈 (2006~2008)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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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박진만(현대 유니콘스) 틸슨 브리또(삼성 라이온즈) 홍세완(KIA 타이거즈)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후4. 기타
4.1. 약물 의혹
5.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야구선수. 한국프로야구에서 뛰었던 대형 유격수 용병.

2. 선수 경력

2.1. 미국 시절

드래프트되지 못하고 자유계약선수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입단했다가 97시즌 도중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옮긴 후 시즌 종료 후 방출.

그후로는 마이너 리그를 전전했는데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트리플A에서 뛰던 시절 이만수 코치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시즌 초 타격 슬럼프에 빠진 브리또는 타격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자 당시 타격코치 게리 워드에게 조언을 구하려 했으나 퇴짜를 맞고 당시 1루 코치인 이만수한테 타격 부진 해법을 찾으려고 찾아왔다. 이 때 이만수가 브리또의 문제점을 잘 찾아내 조언했고 브리또도 성실히 연습에 임했다. 그 결과 브리또는 타격감을 되찾아 1999년 타율 .318에 11홈런 58타점이라는 좋은 기록으로 시즌을 마쳤고 이후 이만수 코치의 소개를 통해 한국 프로 야구를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브리또는 이만수 코치를 아버지로 여길 만큼 잘 따랐다고 한다.

2.2. 한국 프로야구 시절

2.2.1. SK 와이번스 1기 시절

2000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마이너에서 뛰다가 쌍방울 레이더스가 싼 맛에 뽑았던 헨슬리 뮬렌(現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타격코치, 2013 WBC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과 혼즈의 대체 용병으로[1] SK 와이번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SK에 합류하자마자 주전 유격수 뛰며 암울하기 짝이 없던 창단 초기의 SK에 활력을 불어넣었다.[2] 사실상 브리또가 SK 공격력의 2/3을 책임졌을 정도. 최종 성적은 103게임에 출장해 타율 0.338 15홈런 70타점을 기록했다.

이 때 시즌 막판까지 현대 유니콘스박종호와 타격왕 경쟁을 벌였는데, 10월 12일 현대와의 더블헤더 경기에서 현대 김재박 감독은 타격 선두를 달리고 있었던 박종호를 출장시키지 않았고 현대 투수들은 노골적으로 브리또와의 승부를 피했다.명불허전 김재박 그리고 더블헤더 2차전, 브리또가 안타를 때려낸 다음 타석에서 현대 투수 박장희는 고의성 짙은 볼을 던져 브리또의 다리를 맞추기에 이른다. 이에 분노가 폭발한 브리또는 "더러워서 타격왕 안 해먹고 만다"라면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지 않은 채 그대로 도미니카로 출국해 버렸다.[3] 그리고 9년 후 비슷한 상황이 같은 감독 아래서 재연되는데... 보통 타격왕 경쟁 논란에서 자팀 선수를 출장시키지 않거나 경쟁자를 고의사구로 거르는 졸렬한 경우는 많아도, 경쟁자에게 대놓고 빈볼을 날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점에서 과연 브리또가 한국인 선수였다면 빈볼을 던질 수 있었겠느냐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SK 팬들은 브리또가 한국프로야구에 회의를 느껴 재계약을 거부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래도 재계약에는 성공해 2001년에도 SK에서 뛰었고 4번 타자로 활약하며 타율 0.320 22홈런 80타점의 좋은 성적으로 팀 타선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해 KBO 골든글러브는 현대의 박진만이 탔는데, 타격성적은 정확도에서 브리또의 우위였고 무엇보다 4번타자로서 저 성적을 냈다는점에서 브리또가 더 잘했다고 볼 수 있다.[4] 물론 박진만도 3할과 20홈런을 돌파하는 등 잘한 시즌이었고 팀 성적과 안정적인 수비,[5] 여기에 외국인 선수에 대한 국내 스포츠 기자들의 텃세 등이 더해졌던 것으로 해석된다. 어찌보면 저 해에는 3할 20홈런을 동시에 쳤어도 수비 실책이 많았는데 그나마 1개가 적은 박진만을 밀어붙인 듯하다. 나머지 구단 팀들은 배출할 만한 인재들이 그나마 김민재, 유지현인데 공격력이 너무 밀렸던 게 단점으로 지적된 듯.

2.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그리고 2002년 초 삼성 라이온즈와의 6:2 트레이드로 삼성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며[6] 삼성 이적 첫 해인 2002년 타율 0.283 25홈런 90타점으로 맹활약하며 삼성의 통산 2번째 우승과 한국시리즈 첫 우승[7]에 기여한다. 그리고 그 해 용병 최초로 유격수 골든 글러브도 받았다. 이후 2003년에도 주전 유격수 자리를 맡았으나, 타율 0.255, 20홈런, 58타점으로 전 시즌에 비해서는 조금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고 이에 삼성 구단은 여름부터 브리또의 재계약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고[8] 결정적으로 8월 말 롯데와의 경기에서 수비 도중 박기혁과 충돌해 무릎 부상을 당하며[9][10] 일찌감치 귀국하였고, 시즌 후 삼성과의 재계약에 실패했다.

2.2.3. SK 와이번스 2기 시절

삼성과 재계약이 결렬된 뒤 2004년 친정팀 SK와 다시 계약하였고, 전 시즌 당한 무릎 부상의 여파로 3루수로 수비 위치를 변경했다. 그러나 이 시즌에 사상 초유의 상대팀 덕아웃 습격사건의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사건의 발단은 2004년 8월 5일 문학 삼성전. 7회 삼성의 세번째 투수로 등판했던 케빈 호지스가 볼카운트 0-3에서 등 뒤로 날아가는 위협성 볼을 던지며 볼넷을 내줘 분위기가 험악한데다, 당시 선동열 삼성 수석코치와 호지스가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본 브리또는 8회초 삼성 공격 도중 빠따를 들고 삼성 덕아웃을 습격하며 몸싸움을 벌였다.[11][12] 이 사건으로 인해 브리또는 퇴장과 함께 20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고, 이 싸움에 가담까지 했던 이호준, 호세 카브레라, 배영수, 박정환은 각각 퇴장당했다.[13] 결국 브리또의 이탈로 인해 4위 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던 SK는 5위로 시즌을 종료하며 4강 진입 실패.(...) 결국 시즌 종료 후 SK 와이번스와 재계약을 하지 않게 된다.

2.2.4. 한화 이글스 시절

2005시즌 도중 내야가 부실했던 한화 이글스에 합류, 다시 유격수로 뛰게 되었다. 하지만 2003년 삼성 시절 당한 무릎 부상 후유증 탓인지 수비 범위가 심하게 좁아져 예전 같지 않은 돌글러브급 수비력을 보여 주며(78경기 21실책) 한화팬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14] 결국 SK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결정적인 악송구를 하며 팀 패배의 원흉이 되며 김인식 감독의 뒷목까지 잡고 말았다. 그나마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은 했으니 망정이지... 그래도 타격 성적은 .286 17홈런 43타점을 기록하며 나름(?)대로 제 몫을 해줬다. 2005시즌 종료 후 잦은 실책과 무릎 부상으로 인해 한화 이글스와 재계약을 하지 않으며 6시즌 만에 한국 무대를 떠났다.

2.3. 대만 프로야구 시절

2006 시즌 도중 퉁이 라이온즈에 합류해 3루수로 수비 위치를 변경하였다. 2007, 2008시즌엔 대만리그를 정ㅋ벅ㅋ하는 포스를 보이며 2년 연속 홈런왕에 등극하는 등 대만리그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다. 2007시즌엔 99경기에서 .313 33홈런 107타점, 2008시즌엔 96경기에서 .330 24홈런 102타점을 기록.

2008시즌 종료 후 열린 코나미컵에서 친정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4타수 2안타를 때려냈다. 경기는 퉁이 라이온즈가 홈런 4방을 몰아치며 개털었다 SK 와이번스에 10:4로 승리.

여담이지만 대만 마구마구에서 07년도 카드가 엘리트다! 한국 마구마구에는 00 브리또가 하점캐가 있다! 그래봤자 스핏 고자라 아무도 안 쓴다지만... 능력치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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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투, 우타(파워, 스로잉형)
파워 88 컨텍트 76
스피드 65(...) 스로잉 87
수비력 87

국가대항전에서 브리또의 이름은 뿌레어T.B.

2008시즌 종료 후 퉁이 라이온즈와 계약을 해지.

3. 은퇴 후

이후 은퇴해서 미국에서 유소년 야구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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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기후에 속한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이라서 그런지, 다른 때에 비해 늦게 열린 2002년 한국시리즈와[15] 2003년 시범경기 당시 추운 날씨 때문에 목도리를 두르고 경기에 나선 바 있다.

엄청난 다혈질적인 성격을 보유했던 선수로, 여러 차례 빈볼 시비에 연루되었던 선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펠릭스 호세보단 덜하다.
  • SK 시절이었던 2001년 5월 4일, 인천에서 열렸던 해태와의 경기에서 소소경의 투구가 브리또의 몸을 향하자, 방망이를 치켜세웠고, 포수 김상훈과 시비가 붙은 바 있다. 당시 기사
  • 삼성으로 옮긴 뒤인 2002년 8월 24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조규수의 몸쪽 공에 맞은 뒤 흥분하였고, 이에 조규수 역시 브리또에게 도발을 하여 사태가 악화되고 말았다.[16]
  • 조규수와의 벤치클리어링이 있던 이듬해인 2003년 4월 11일 한화전에서도 다시 조규수와 맞붙었는데 이때도 조규수가 브리또에게 몸쪽 위협구를 던지자 펄쩍 뛰며 폭언을 내뱉었고, 뜬공으로 아웃된 뒤 곧바로 한화 덕아웃을 향해 제스쳐를 취하자 양 팀 선수들이 대치했고, 다행히도 심판진의 중재로 인해 경고로 끝나게 되었다.
  • 2003년 5월 21일 대전 한화전에서도 한화 선발 정민철이승엽의 부러진 방망이에 발목을 맞은 일이 있었는데 그 후 타석에 들어선 브리또가 대놓고 번트 모션을 취하자 정민철도 경고성 제스쳐를 취하며 맞불을 놓았다. 다행히도 큰 충돌은 없었지만 역시 아슬아슬했던 순간. 여담으로 브리또는 이렇게 세 번이나 트러블을 일으킨 상대팀이었던 한화에서 2005년부터 뛰게 되며 잠깐 조규수, 정민철과 한솥밥을 먹게 된다. 어찌보면 참 아이러니한 셈.
  • 이후 SK로 되돌아온 뒤, 2004년 8월 5일 문학 삼성전에서 위에 있듯이 케빈 호지스와의 빈볼 시비도 유명하다. 7회 말 타석에서 삼성의 호지스가 브리또에게 빈볼을 던지자 화가 난 브리또는 공격이 끝나고 갑자기 배트를 들고 삼성 덕아웃으로 난입, 호지스와 몸싸움을 벌였고[17] 결국 이때 이상한 느낌을 파악한 SK 김기태가 삼성 덕아웃 쪽으로 뛰어들어갔고 사상 초유의 덕아웃 난입 사태를 불러온 장본인이 되기도 했다.

4.1. 약물 의혹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설이 있다. 한국 프로야구 시절 시합 전에 커피 한 잔과 어떤 약을 항상 복용했는데 그 약이 뭐냐고 물어본 선수에게 '그리니'[18]라고 답했다고 한다. 사실 저 약은 암페타민으로 국내에선 마약으로 분류된다. 각성제의 일종이기 때문에 금지약물이기도 하다. 다만 당시에는 도핑 테스트라는 개념이 KBO 리그에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도핑으로 적발된 적이 없어 썰로만 남아있다. 저 썰 자체도 가십 위주로 나온 이야기이므로 신빙성은 제로.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SK 103 405 .338
(3위)
137 26 4 15 70 65 3 42 .533 .399
2001 122 422 .320 135 27 0 22 80 59 7 81 .540 .425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2 삼성 128 481 .283 136 29
(3위)
0 25 90 89 1 56 .499 .355
2003 102 380 .255 97 17 1 20 58 59 2 41 .463 .32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4 SK 102 368 .261 96 18 0 13 50 41 0 49 .416 .34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5 한화 78 287 .286 82 14 0 17 43 34 0 19 .512 .328
KBO 통산
(6시즌)
635 2343 .292 683 131 5 112 391 347 13 288 .495 .366


[1] 쌍방울 시절 뽑았던 탓에 계약금도 제대로 주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SK 와이번스에서 몇 경기 뛰지 못하고 퇴출.[2] 입단당시 에피소드. 5월초 처음 브리또가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당시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급한 SK 와이번스 사정상 입국 몇 시간만에 으로 가서 현대와의 경기를 뛰어야 했는데 그 경기서 3점홈런을 뽑아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고 이것이 브리또의 활약의 시작이었다.[3] 물론 구단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출국한 것은 아니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강병철 감독을 직접 찾아가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4] 박진만은 2001년 시즌에 주로 9번타자로 출장했다.[5] 박진만, 브리또는 이 해 실책을 22개, 23개나 기록하는 등 수비가 조금 불안정한 편이었다.[6] 2001 시즌 종료 후 SK와 재계약한 뒤, 곧바로 삼성으로 트레이드되었다.[7] 첫 우승은 1985년이지만, 이때는 삼성이 전, 후기리그에서 모두 1위를 달성하며 한국시리즈 없이 자동 우승을 확정지었다.[8] 이 때 주전 유격수 김민호의 노쇠화로 대안을 찾던 두산 베어스가 단장까지 나서서 삼성이 브리또와 재계약하지 않을거면 우리에게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해 신고선수로 뒤늦게 입단한 손시헌이 시즌 중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하며 김민호의 대안을 찾게 되었다.[9] 이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홈구장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는 돌덩이처럼 딱딱한 카페트형 구식 인조잔디가 깔려 있었다. 이 잔디 때문에 무릎 부위의 부상을 입었거나 관절 상태가 나빠진 선수가 한 두 명이 아니었는데 브리또도 이 인조잔디의 피해자라면 피해자다. 대표적 피해자가 국가대표 유격수였던 박진만. 박진만은 수준급의 풋워크를 바탕으로 깔끔한 수비를 뽐냈지만 삼성 시절 구식 인조잔디 위에서 뛴 탓에 무릎이 망가졌다. 그의 선수 말년이 생각보다 짧아진 것도 대구의 인조잔디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10] 다만 이 때 부상을 입고 시즌 아웃된 경기는 대구가 아니라 사직이었다.[11] 한때 자신이 뛰었던 팀이었으니 브리또 입장에서는 배신감이 클 수 밖에 없었다.[12] 한편 이 사건 때 SK의 마무리 투수인 호세 카브레라가 김응용 감독에게 헤드락을 당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었는데, 이 당시 김응용의 나이는 65세.[13] 더 안습한 건 SK 구단도 선수 통솔 실패 명목으로 50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는 것.[14] 그도 그럴 것이, 한화가 전통적으로 약했던 쪽 중 하나가 키스톤 콤비였다. 당시 한화 내야진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도...[15] 이 해 9월 부산 아시안게임 덕분에 리그가 잠시 중단되었고, 결국 한국시리즈가 11월 중순에야 치뤄지는 등 일정들이 뒤로 미루어졌다. 여담으로 2002년 한국시리즈 당시에는 매우 추웠는데, 상대 팀 LG의 이상훈과 브리또와 같은 도미니카 출신인 라벨로 만자니오는 무려 반팔을(!) 입고 나왔다.[16] 당시 싸움을 말리던 마해영은 앞니가 하나 부러졌다고 한다.[17] 이날 호지스가 선동열 코치와 수군대는걸 보고 더 화가 치밀어올랐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전년도까지 뛰었던 팀이었는데 거기에 대한 배신감까지...[18] 국내에선 고농축 카페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론 암페타민의 일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