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2-27 15:20:04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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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페르난도 에르난데스(Fernando Hernández)
생년월일 1971년 6월 16일 ([age(1971-06-16)]세)
국적 도미니카 공화국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소속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1997)
SK 와이번스(2001~2002)
롯데 자이언츠(2002)
2001년 한국프로야구 탈삼진왕
임선동(현대 유니콘스) 페르난도 에르난데스(SK 와이번스) 김진우(KIA 타이거즈)

1. 소개2. 선수시절
2.1. 한국 진출 전2.2. SK 와이번스2.3. 이후
3. 피칭 스타일4. 여담

1. 소개

SK 와이번스의 초대 용병 에이스
외인투수 최초 탈삼진왕이자 외인투수 최초 한 시즌 200이닝 200탈삼진 달성자
그리고 강병철 혹사의 희생자중 하나.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前 야구선수. SK 와이번스와 롯데 자이언츠에서 용병으로 뛰었다. 한국 데뷔 첫 해 150km/h을 넘나드는 강속구와 엄청난 체력으로 강한 임팩트를 보여주었지만, 다음 해 혹사로 인한 후유증으로 무너진 비운의 투수.

2. 선수시절

2.1. 한국 진출 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에르난데스는 주로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했다.1997년에는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었으나 2경기 1⅓이닝 방어율 40.50에 그치며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2.2. SK 와이번스

에르난데스는 2001년, SK가 하비 풀리엄과 빅터 콜을 방출한 뒤 새로 영입한 용병이었다.

시범경기에서 3경기에 등판해 16이닝 동안 2승 방어율 3.94를 기록했다. 시범경기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전년도 신인왕이자 팀 에이스였던 이승호를 제치고 개막전 선발로 낙점되기에 이르었다.

개막전에서 에르난데스는 5⅓이닝 동안 6탈삼진 3실점으로 전 시즌 다승 2위었던 데니 해리거를 상대로 승리를 따냈다. 두 번째 등판에서도 7이닝 동안 9탈삼진을 잡아내며 SK의 새로운 스타가 되었다. 이후 에르난데스는 이승호와 함께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SK의 투수진을 이끌었다. 이러한 활약 속에서 그는 한국에서의 첫 시즌인 2001년 14승 13패 233⅔이닝 215탈삼진 평균자책점 3.89를 기록했다.[1] 시즌 다승 3위, 탈삼진 1위, 이닝 1위에 올랐지만 들쭉날쭉한 제구력으로 인해 134볼넷을 허용하며 볼넷 1위에 오르는 불명예를 얻었다. 이 134볼넷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않는 기록이고, 앞으로도 깨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시즌에는 매 경기마다 120~130개를 던지고[2] 선발도 이승호, 김원형 외에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 에르난데스-이승호-김원형-땜빵선발1(....)-가끔 땜빵선발2(......) 식으로 3일~4일 휴식만하고 나왔기 때문에 투구수도 4,144개를 넘었고,[3] 이는 역대 4위 기록이다. 에르난데스 말고도 KBO리그에서 한 시즌 4천구를 넘긴 투수는 4명이 더 있는데 모두다 1985년 이전 기록한 거고, 나머지는 전부 투고타저 시대에다 구원 등판을 적절히 활용해가며 던졌지만, 에르난데스는 순수 선발로만 등판해서 기록한 것이다.

2002년에는 7경기에 등판해 44⅔이닝 동안 2승 45탈삼진 11볼넷을 기록하며 전년도보다 안정적인 피칭을 했지만,[4] 5월 8일 삼성전에서 1번 타자 박한이를 상대하던 도중 에르난데스는 어깨에 이상을 느껴 박한이와의 승부 후 바로 교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뒤로 다시는 마운드에 올라오지 못했다.
2군에서 재활에 매달렸으나 복귀하지 못했고 7월 SK 와이번스롯데 자이언츠간의 3:2 트레이드에 포함되어 롯데로 트레이드되었으나, 롯데는 용병없이 경기를 하려고 하던 팀이었고, 그는 롯데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방출된다.

2.3. 이후

이후 에르난데스는 마이너리그로 돌아가 재활에 매달려 2005년 다시 마운드에 오르기도 했으나 이를 끝으로 현역 은퇴를 하였다. 2017년 현재는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투수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3. 피칭 스타일

시속 150km대 안팎의 강속구와 함께 강력한 구위로 타자를 윽박지르던 투수. 하지만 좋은 구위가 무색할만큼 제구력이 불안정해 많은 볼넷을 허용했고, 이로 인해 삼진 1위와 볼넷 1위에 동시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체력이 좋아서 이닝도 많이 소화하던 투수였다.

4. 여담

  • 실력뿐만이 아니라 인품 또한 훌륭했던 선수였다. 생활 태도도 모범적이었으며, 팀의 분위기 메이커역할을 톡톡히 했다.특히 에르난데스는 자신만의 개인기인 인디언 휘파람으로 동료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 당시 SK의 통역이었던 김현수[5]와 친했다. 김현수는 에르난데스가 출국 당시 SK구단에서 마련한 에르난데스의 두 아들을 위한 옷을 주었고, 에르난데스는 한국말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씩이나 했다고 한다. 에르난데스는 출국하면서 그에게 만년필을 사주었다. 이후 에르난데스는 출국하면서 출국장으로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고는 배웅하려 나온 그를 향해 고함을 쳤는데 그 고함이 짠하다.
현수! 반드시 재활에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내년에 그 만년필로 내 계약서 다시 써줄꺼지?

안타깝게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1] 에르난데스가 기록한 233⅔이닝 215탈삼진은 용병 최초 200이닝-200탈삼진이다.[2] 이때 믿을 만한 중간계투라고는 조웅천, 조규제가 전부라서 에르난데스는 최대한 많은 이닝을 던져서 구원투수의 부담을 덜어줘야했다.[3] 경기당 평균 122개. 고작 3~4일만 쉬고 매 경기마다 저렇게 던져대니 어깨가 탈이 안 날 수가 없었다.[4] 7경기만 하고 2승만 기록했는데 이때는 승운이 좀 없는 편이었다.[5] 야구선수 김현수와는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