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6 03:16:29

김병현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한화 이글스의 좌완투수에 대한 내용은 김병현(1998)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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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병현1.jpg
김병현
(金炳賢 / Kim Byung-hyun)
생년월일 1979년 2월 15일[1] ([age(1979-02-15)]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광주광역시 북구
신체 178cm[2][3], 85kg, A형
학력 광주수창초 - 무등중 - 광주일고
- 성균관대학교 (중퇴)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7년 고졸우선 지명 (해태)[4]
1999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ARI)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현대)[5]
소속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1999~2003)
보스턴 레드삭스 (2003~2004)
콜로라도 로키스 (2005~2007)
플로리다 말린스 (2007)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7)
플로리다 말린스 (2007)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 (2011)
넥센 히어로즈 (2012~2014)
KIA 타이거즈 (2014~2016)
히간테스 델 시바오 (2017)
멜버른 에이시스 (2018~2019)
해설위원 MBC 메이저리그 야구 해설위원 (2019~)
병역 병역특례[6]
종교 불교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2001 2004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1998)2.2.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 (1999~2003.05)2.3.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2003.05~2004)2.4.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 (2005~2007.05)2.5. 플로리다 말린스 시절 (2007.05~2007)2.6. 마이너리그, 방출 (2008~2010)
2.6.1. 피츠버그 파이리츠 시절 (2008)2.6.2. 시즌 오프 (2009)2.6.3. 마이너리그 (2010)
2.7.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2011)2.8. 넥센 히어로즈 시절 (2012~2014.04)
2.8.1. 2012 시즌2.8.2. 2013 시즌
2.9. KIA 타이거즈 시절 (2014.04~2016)
2.9.1. 2014 시즌2.9.2. 2015 시즌2.9.3. 2016 시즌
2.10. 시즌오프2 (2017~2018)
2.10.1. 도미니카 윈터리그 (2017)2.10.2. 멜버른 에이시스 2018-2019시즌
2.11. 은퇴 (2019)
3. 플레이 스타일
3.1. 김병현의 보직 논란
4. 성격 및 일화
4.1. 굿데이 스포츠신문 사건4.2. 경기장과 훈련 과정에서4.3. 그 외
5. 연도별 주요 성적6. 둘러보기



1. 개요

전직 야구선수 (불펜 투수)이자 요식업 사업가 겸 MBC 야구해설자. 그의 별명들중에서 인터넷 상에서 가장 유명한 별명은 바로 김좆키. 자세한 건 김좆키 문서 참조. 또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쎄우는 욕의 단어를 순화시켜 표현한 김중지 혹은 김법규 등이 있다. 김좆키보다는 덜하지만 간혹 쓰이는 표현. 2000년대 말까지는 좆키 합성짤과 함께 김좆키로 불렸지만 2010년대 이후 한국 복귀후부터는 법규, 법규형님, 법규성님등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원래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했지만 점차 부정적인 의미는 퇴색되고 사실상 애칭으로 고정되었다는 면에서는 라뱅의 이병규, 빵형/빵회장의 박재홍과 비슷하다.

멘탈왕 김병현에 대한 메이저리거들의 증언.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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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고의 김병현

광주일고[7]를 거쳐 1997년 성균관대 법학과로 진학[8][9]. 98 방콕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해 금메달과 더불어 병역 혜택을 받았다. 또한 이 때 중국과의 4강전에서 중간 계투로 나와 6이닝 동안 18타자를 상대해 12삼진을 잡아내는 괴력을 보였다. 그리고 이 중 8타자 연속 삼진이 있다. 아마추어 시절 한미 대학 국가대표 대항전에서 6⅔이닝동안 15K를 기록하는 대호투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D-Backs)의 러브콜을 받아 미국으로 향한다. 이 때 받은 계약금이 무려 225만달러로 2016년 현재까지도 한국 아마추어 야구선수가 메이저리그 구단에 입단하며 받은 계약금중 최고 액수다.[10] 그 당시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김병현을 굉장히 폭발적인 능력을 가진 특급 유망주로 평가했다고 볼수있다.

원래는 유격수로 야구를 시작했다가, 어깨가 좋아 고교시절 투수로 전향했다고 한다.

2.2.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 (1999~2003.05)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391332_STD.jpg

이 당시의 김병현은 천재라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1999년 사기급의 구위를 보여주면서 마이너 리그를 단 석 달만에 개박살내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바로 콜업된다. 마이너 리그에서 배운 건 딱 하나, 포수 사인 읽는 법이라고 한다. 메이저 리그 데뷔전에서 뉴욕 메츠의 중심타선 에두아르도 알폰소-존 올러루드-마이크 피아자를 삼자 범퇴로 처리하여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특히 역대 최고의 공격형 포수인 마이크 피아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강렬한 모습을 보인다. 애리조나에서 처음에는 팀의 마무리 투수를 맡아 2001 월드 시리즈 우승에 공헌한다.

사실 김병현 본인이 밝힌 바로는, 데뷔전 당시 주변의 반응은 마무리로서 폭발적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이때 임팩트가 너무 커서 계속 불펜으로 돌게 된 것이 아닐까 하며 살짝 아쉽다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본인이 처음부터 선호했던 보직은 선발이었기 때문인것 같다. 출장 자체는 마이너 시절에도 불펜 출장이 더 많았다

2001년 NLDS 시리즈 스코어가 1승1패인 가운데 팀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5대3으로 앞선 3차전 8회 2사 1, 2루의 위기 상황에서 구원 등판, 첫 타자 알버트 푸홀스에게 볼넷을 내주어 2사 만루에 몰렸지만 다음타자인 짐 에드몬즈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내었고 9회 케리 로빈슨에게 3루쪽 번트 안타와 폭투, 후속 타자인 에드가 렌테리아에게 볼넷을 허용한 무사 1, 2루의 상황에서 마이크 매서니를 삼진, 마크 맥과이어에게 병살타를 이끌어내 첫 PS 세이브를 기록하게 되었다.

NLCS 2차전 9회에 등판, 마커스 자일스를 삼진, 훌리오 프랑코치퍼 존스를 각각 내야땅볼로 처리하면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팀은 8대1로 패배하였다.

NLCS 4차전 팀이 7대3으로 앞선 가운데 8회 말 미구엘 바티스타가 3연속 안타로 무사 만루의 위기를 만들자 구원 등판, 자비 로페즈와 마커스 자일스를 상대로 병살타와 내야 땅볼을 이끌어내 위기를 벗어났고, 9회 초 팀이 4점을 더 올린 가운데 타석에서 내야땅볼을 기록한 뒤 9회 말 훌리오 프랑코를 1루 파울 플라이, 치퍼 존스를 1루 땅볼, 브라이언 조단을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하여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이후 팀이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앞선 5차전 팀이 1점차로 앞선 8회 말 랜디 존슨에 이어 등판, 앤드류 존스스티브 핀리, 토니 워맥 상대로 뜬공을, 9회 말 레이 산체스를 삼진으로 잡은 뒤 키스 록하트에게 볼넷을 내주었지만 후속 타자인 마커스 자일스와 훌리오 프랑코를 삼진과 뜬공으로 잡아내어 팀을 월드시리즈로 이끌었다.

NLDS와 NLCS에서 종 4경기 6.1이닝을 던지며 3세이브 무실점 피칭으로 완벽하게 막아냈다. 애틀란타와의 NLCS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리그 우승을 확정짓는 모습[11]

그리고 운명의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 시리즈. 1, 2차전은 1/2 선발이었던 랜디 존슨커트 실링이 무난하게 이겨주면서 등판하지 않았고, 3차전은 양키스가 승리한다. 2승 1패로 애리조나가 앞서가는 상황이었다.

애리조나가 3:1로 앞서고 있던 4차전. 커트 쉴링의 뒤를 이어 8회에 김병현은 아시아인 최초로 월드 시리즈에 등판한다. 김병현은 셰인 스펜서[12], 스캇 브로셔스, 알폰소 소리아노를 삼진으로 모두 돌려세우면서 무난히 세이브를 챙기는 듯 보였다. 이후 9회 말에도 등판한 김병현. 데릭 지터를 땅볼 아웃처리한 뒤 폴 오닐에게 안타를 허용하지만 버니 윌리엄스를 삼진 아웃으로 처리하면서 다 끝났나 싶었는데…티노 마르티네스에게 동점 투런을 허용하면서 블론세이브를 거두고 말았다. 이후 호르헤 포사다데이비드 저스티스에게 각각 볼넷과 안타를 허용했지만 셰인 스펜서를 삼진으로 잡아내 간신히 이닝을 마무리하고 연장전에 돌입하게 된다.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가 애리조나의 타선을 꽁꽁 묶어 둔 상황. 연장전에도 다시 등판한 김병현은 스캇 브로셔스알폰소 소리아노를 뜬공 처리로 잡으면서 다음 이닝으로 넘어가나 싶었는데… 데릭 지터에게 10구째에서 끝내기 홈런을 맞으면서 결국 패전 투수가 되었다.

바로 다음 날 5차전에도 김병현은 올라왔다. 2:0로 앞서고 있던 9회 말에 등판하였다. 첫 타자였던 호르헤 포사다에게 좌측 2루타를 맞으면서 불안한 출발을 보였으나 셰인 스펜서와 척 노블락을 잡아내며 세이브를 거둘 수 있을 거라 예상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캇 브로셔스에게 동점 투런 허용. 또 다시 무너져버렸다. 결국 연장 접전 끝에 애리조나는 양키스에게 무너졌으며, 전적도 2승 3패로 밀리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경기 직후 김병현은 자신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인터뷰를 하면서 이대로 무너지는 것인가 하는 아쉬움을 자아냈다. 참고로 7차전에서 커트 쉴링이 강판당한 뒤 올라온 구원투수는 김병현이 아닌 랜디 존슨이었다. 밥 브렌리 감독도 더 이상의 등판이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불펜에서 김병현이 몸을 풀고 있긴 했었다.

참고로 김병현 입장에서 월드시리즈에서의 피칭에 대해 변명을 해보자면, 김병현은 당시에 만 22세였다. 첫 월드 시리즈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내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을지 않았을까. 게다가 밥 브렌리 감독은 김병현을 1이닝 클로져가 아닌 2이닝 클로져로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발언을 했는데, 전날 2.2이닝을 던진 투수를 다음날에도 바로 올린 것은 무리였다. 거기다가 불펜의 특성상 공을 던지지 않더라도 위기 시 몸 푼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리가 가는데다, 김병현은 디비전 시리즈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흡사 임창용마냥 심심하면 툭 튀어나와 틀어막고 내려가는 마당쇠로 기용된 상태였다. 아니 애초에 어린 불펜 투수를 정규시즌+포스트시즌 합쳐서 100이닝 넘게 굴린것부터가 혹사이다. 그 전해에 이미 70이닝을 굴렀는데도 그리 나온건 무리를 해도 너무 한것이다. 이미 무리가 쌓인 상태에서 월드 시리즈에서까지 그런 무리한 기용을 하는 것은 감독의 용병술에 문제가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이후 6, 7차전을 홈 구장인 뱅크 원 볼파크에서 치루게 된 애리조나는 6차전에서 랜디 존슨의 호투를 앞세워 양키스를 대파했고, 7차전에서는 1:2로 밀리고 있던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올라온 빅유닛의 역투, 그리고 마리아노 리베라를 9회 말에 침몰시키면서 스코어 3:2로 역전승을 거둬 최종 4승 3패로 창단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이라는 역사를 쓴다. 참고로 7차전에서 리베라가 무너졌던 패턴은 안타-야수선택에서 투수 실책으로 올 세잎-번트를 댔으나 3루 송구 아웃-적시타-데드볼-적시타. 리베라가 결정적인 순간에서 포스트시즌에서 무너졌던 적이 2010년까지 생각해볼 때 딱 세 번 있었는데 그 중 한 번이 이 때였다. 나머지 두번은 2004 ALCS 보스턴전 4, 5경기다.

김병현은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우승 못했으면 은퇴할 생각도 했었다고 밝혔다. 설마 진짜로 그랬겠냐마는, 만약 우승을 못했으면 자신의 피칭으로 인해 우승을 못했을 것이라는 자책감에 빠져 더 좋은 성적을 못 냈을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우승 직후 커트 쉴링은 김병현에게 "앞으로 애리조나를 책임질 젊은 투수가 될 것이다."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확실한지는 모르겠으나 실링이 인터뷰에서 "우리는 BK가 아니었으면 월드 시리즈 진출도 못 했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더 자세한 설명은 MBC ESPN에서 방송한 애리조나의 기적을 참조하자.

사실 냉정히 말해 2001 WS는 애리조나의 압승으로 끝날 경기였다. 그러나 김병현이 2번이나 불을 지르면서 경기가 혼전 양상을 띠게 되었고, 결국 2000년대 최고의 WS로 남게 되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발생했다.
파일:BK_2.jpg
우승후 가진 백악관 만찬에서 조지 W. 부시와 함께.
[13]

2001년 월드 시리즈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다음 해인 2002년에는 풀타임 마무리로 뛰면서 2.04의 방어율과 36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고 올스타 게임에도 선정되었다.2002년 김병현의 위엄. 그러나 2001년 월드시리즈 이후 본인이 마무리 보직을 싫어한 탓에 2003년 시즌을 앞두고 선발투수로 전업했다.[14] 역시 괜찮은 성적을 내었으나 미국 현지 4월 14일 콜로라도 로키스의 타자 프레스턴 윌슨을 상대하던 도중 윌슨의 스윙에 의해 부러진 방망이를 발목에 맞고 부상을 당한 후 하락세. 이 부상으로 투구 밸런스가 무너졌으며 결국 커리어를 갉아먹고 야구 인생을 제대로 꼬이게 만들었다. 결국 선발 보직 관련 등으로 인해 애리조나 구단과 갈등을 빚다가 2003년 5월 30일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 된다.

파일:BK_3.png

다만 위의 사진에서 말하고 있는 워싱턴전은 워싱턴 내셔널스의 전신인 몬트리올 엑스포스다. 엑스포스가 워싱턴 D.C.로 연고지를 옮긴 것은 2005년 시즌부터.

2.3.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2003.05~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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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보스턴 레드삭스로 가서도 선발과 불펜을 왔다 갔다 하며 숨은 활약을 펼쳤지만, 2003년 디비전시리즈에서 펜웨이 파크의 홈 팬들에게 법규를 날리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 이유는 5:43초 부터. 이 사건 때문에 그래디 리틀 감독은 김병현을 엔트리에서 제외했고 그해 리그 챔피언십에서 뉴욕 양키스에게 패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래도 2004년 팀이 밤비노의 저주를 깨면서 우승 반지 하나를 더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사실 우승 반지는 본인의 활약과는 거리가 멀었고, 실제로 우승배당금도 가장 낮은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동양인 최초의 양대리그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향간에는 반지에 새겨진 알파벳을 이유로 애리조나 시절 반지는 A급이고, 보스턴 시절의 반지가 B급이라는 루머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반지에 새겨진 알파벳은 단지 애리조나(Arizona)의 A보스턴(Boston) B일 뿐이다. 애초에 비용 문제 등을 이유로 우승 반지의 등급을 차등식으로 제공하는 구단은 없다.

2.4.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 (2005~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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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로키스 시절

그 후 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했다. 콜로라도에서도 선발과 불펜을 오갔으나 부상과 그 이후의 무리한 투구 때문에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 와중에 2006년 배리 본즈에게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넘는 통산 715호 홈런을 헌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경기에서는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제 1회 대회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참가했다. 비록 준결승 일본전에서 후쿠도메 고스케에게 맞은 3점홈런이 있는 3실점을 포함한 부진한 투구내용을 보였지만 이전 라운드 경기들에서 든든한 투구를 펼치며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불펜에 있는 박찬호와 같이 영상에 찍혔을 때 미국, 일본, 멕시코 각 현지 야구팬들을 충격과 공포 급으로 선사하였다. 당연히 놀리는게 아니라 두 현역 메이저리거가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다는 것을 보면 어느 누가 두렵지 않겠는가?

2.5. 플로리다 말린스 시절 (2007.05~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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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말린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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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기 시절

2007 시즌에 로키스에서 플로리다 말린스로 가 그토록 원하던 선발 자리를 꿰찼으나, 말린스가 웨이버를 걸자 디백스가 클레임[15]을 걸어서 2003년 이후 4년 만에 친정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돌아왔으나 두 경기만에 거하게 털리고 방출된 후에 다시 말린스로 이적하였다. 이러한 불안한 행보 속에 10승을 하긴 했어도 그의 성적은 자연 나쁠 수밖에 없었다.

2.6. 마이너리그, 방출 (2008~2010)

2.6.1. 피츠버그 파이리츠 시절 (2008)

2008 시즌은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시작했으나, 방출당했다. 언더스로 투수가 선발로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는 속설을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2.6.2. 시즌 오프 (2009)

2회 WBC를 앞두고 대표선발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였고, 선발된 이후에 1년간의 휴식을 뚫고 다시 몸을 만들기 시작하겠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의 훈련 모습이나 뿌리는 공의 상태를 대표팀 관계자 누구도 보지 못하였기에 상당한 물음표가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대표팀이 소집되는 날,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불참하였고 이에 대해 아직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우회적으로 나타난것이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자연적으로 엔트리에서 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바로 이런 뉴스가 나온 오후에 그는 인터뷰를 자청하면서, 여권을 다시 찾았음을 밝히면서 합류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그저 기행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이 상황에 대해 WBC 대표팀 김인식 감독은 '13명의 투수 엔트리는 어제 확정되었다.'는 말로 김병현을 엔트리에서 완전 제외하였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로는 발목 부상도 있었다고 한다. 김인식 감독도 발목 부상 소식을 듣고 최종적으로 제외했다고 밝혔다.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77&aid=0000021221

이 상황은 2010 시즌을 앞두고 민훈기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정말 사실로 밝혀졌다. 밥먹는 식당에 가방을 놓고 왔는데, 공항에서 지인을 통해 퀵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퀵은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탈 수 없었고, 하필 밸런타이데이라서 차도 역시 지나치게 막혔다. 2008년의 방출도 몸상태와 지인의 사망등으로 꼬여서 일어났으며, 에이전트가 타구단을 알아보겠다고 했으나 자기가 그냥 쉬겠다고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2009년은 WBC를 시작으로 의욕적으로 덤볐지만, 일이 잔뜩 꼬여서 그냥 쉬게된 셈이 됐다. 2010 시즌에 복귀를 하게 된건, 야구 말고는 자신이 할 수 있을만한 일이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듯 하다. 이후 인터뷰에서 재차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하여 2010년 스프링캠프에 도전을 준비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 한인 사회인야구에 종종 출몰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병현은 미국에 개업한 초밥집 '우미스시'가 성황이라서 먹고 살 걱정은 없다. 2013년에도 성황리에 영업중. 보통 언론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여동생분이 "오빠를 대신해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자기는 아르바이트다"라고 한 걸 보니 진짜 BK스시가 맞는 듯하다. 물론 그 동안 받은 연봉만으로도 생활 자체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 메이저리거 중에 500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은 것은 저 당시까지만 해도 김병현과 박찬호 외에는 없었다. 한국인 메이저 리거 전체를 통틀어도 기껏해야 추신수와 류현진이 더해질 뿐이며, 그나마 다년계약인 류현진은 2016년까지는 만져보지 못하는 돈이다.

2017년 이후로 샌디에고 지점 우미스시는 더 이상 김병현의 여동생이 관리하지 않는다. 대신 김병현의 사업파트너가 관리를 하고 있으며, 벽에 걸려있었던 야구 관련 기념물품들은 다 치워버렸다. 주인은 여전히 김병현이고 가끔씩 미국에 올 때마다 들른다고 한다.

2.6.3. 마이너리그 (2010)

2010년 2월 2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파일:/image/151/2010/03/05/ba_04.jpg

인터뷰에서 마이너에는 그저 운동하러 왔을 뿐이며, '여기 애들은 야구 잘 못해요'라는 말을 남겼다. BK는 여전하다.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다는 소문도 돌았으나, 인터뷰에 따르면 훈련 스케줄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어서 그냥 나간 거라고 한다. 더욱이 몸도 제대로 안 만들었는데 등판을 하라는 등 구단 측의 무리한 요구가 많았던 탓도 있다. 애당초 김병현 성격에 그걸 순순히 따를 리도 없고 말이다.

이후 국내 지명권을 가지고 있는 넥센 히어로즈가 김병현의 영입을 시도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카더라로 밝혀졌고, 결국 미국 독립리그에 속한 오렌지 카운티 플라이어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점차 구위가 올라오고 제구력도 좋아지는 중이라고 하였다. 7월까지 성적은 3승 1패 평균자책점 2.56.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무척 좋은 결과를 거뒀다.

다만, 이후 김병현의 성적이 다시 떨어지고 나아지지 않자 결국 야구를 그만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지만, 실은 비자 문제로 인해 한국에 잠시 귀국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 즈음에서 이미 결혼을 했으며, 딸도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7.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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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배번은 99번. 신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마무리로 내세운다는 방침이었다. 김병현 본인은 일단 '나 자신이 만족하는 공을 던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팬들은 센트럴리그(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소속리그)의 임창용과 퍼시픽리그(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소속리그)의 김병현의 잠수함 매치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지만, 교류전이 끝나도록 1군에 콜업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라쿠텐의 마무리 투수인 라이언 스파이어가 준수한 성적을 거뒀고, 그에 비해 김병현은 아직 몸 상태가 완벽하지 못했던 것. 결국 일본에서 특별한 출전기회를 얻지 못한 채 2군 생활만 하다가 귀국, 결국 11월 16일 라쿠텐 측으로부터 공식적인 방출 통보를 받았다.

한편 전 지바 롯데 마린스 감독이자 보스턴의 신임 감독인 바비 발렌타인이 김병현에게 큰 관심을 보인다는 기사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2.8. 넥센 히어로즈 시절 (2012~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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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저 메이저리거예요.

2012년 1월 18일 김병현이 넥센과 1년 16억(계약금 10억, 연봉 5억, 옵션 1억)에 계약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일전에 국내에서 뛴다면 꼭 해태에서 뛰고 싶다는 립서비스성 인터뷰를 했던 터라 국내에서 뛴다면 KIA에서 뛰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이후 인터뷰 내용을 보면 본인은 해태와 KIA를 아예 다른 팀으로 보는 모양이다. 더욱이 이장석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병현은 트레이드를 절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며, 이대로 넥센에서 뛰다 은퇴할 생각이 큰 것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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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2012 시즌

그리고 3월 29일 한국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의 시범경기에서 첫 등판, 1⅔이닝 1피안타, 1볼넷, 1사구(死球) 무실점, 최대 직구 구속 145Km/h으로 성공적인 한국 무대 데뷔했다. 또한, 4월 4일 LG트윈스와의 2군 연습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하여 4이닝 5탈삼진 1볼넷 무실점하였다.

5월 8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1군 첫 등판했다. 이대형에게 첫 안타를 내준 뒤 양영동한테 안타를 맞으며 야갤러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그 뒤 이진영에게 또 안타를 맞으며 1실점. 그 뒤로 3명은 범타 처리했으나 아쉬운 경기를 보여주었다.

5월 1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장했다. 4회까지 2실점으로 잘 막았지만 사전에 김시진 감독과 서로 약속했던 투구수인 95구를 초과해서 승리 요건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딱 96구째에 적시타를 맞아주는 개그를 선보이기도 했다. 전체적으로는 준수한 경기 내용이었으나 이날 삼성이 좌타자에 약한 김병현을 공략하기 위해 1~5번 타자를 모조리 좌타로 채우는 작전을 펼쳐서 여기에 조금 휘둘리는 모습을 보였다. 한 술 더 떠서 삼성 타자들이 작심하고 커트를 난무하는 바람에 이닝을 적게 먹기도 했다. 최종 결과는 4와 2/3이닝동안 6피안타 2볼넷 6탈삼진 3실점. 기대를 모았던 이승엽과의 첫 맞대결에서는 3타수 동안 각각 3루타, 몸에 맞는 공, 삼진으로 무승부에 가까운 결과가 나왔다.

그 뒤로 몇 차례 등판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6월 2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6이닝 95투구수 4피안타 3볼넷 2탈삼진 1실점 무자책으로 두산 타선을 잘 막고, 팀이 3:2 승리를 따냄에 따라 마침내 시즌 첫 승이자 한국에서의 첫 승을 따냈다.

6월 26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 등판, 6이닝 3실점(3자책)의 준수한 피칭으로 2승을 따냈다. 두산의 선발 땀승회가 초반부터 2.1이닝 6실점으로 탈탈 털리는 바람에, 김병현은 이날 야수진의 대량 득점을 등에 업고 6이닝 동안 70개의 투구수만 기록하였다.

7월 5일 목동야구장에서 한화 이글스의 선발투수 박찬호와 선발전이 예고되었지만 비가 와서 무산. 두 선수가 맞붙는 장면을 고대했던 팬들이 많았던 만큼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다음날 선발 예고되었으나 다시 우천 순연되어서 로케이션을 걸렀다.

7월 12일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5이닝 4피안타 5실점하면서 패전투수가 되었고, 7월 26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1과 1/3이닝 동안 무려 6피안타 5실점하면서 조기 강판되었다. 7월 31일 현재 WHIP 1.66을 기록했다.

결국 2군에 내려갔다가 10일 후 1군 콜업, 그리고 8월 22일 두산전에서 첫 홀드를 따냈다.

김시진 감독 경질 이후 김성갑 대행 체제로 이루어지는 남은 경기, 김성갑 대행은 김병현을 다시 선발로 보직을 변경하겠다고 예고하고, 9월 20일 롯데 자이언츠전에 선발투수로 등판시켰다. 이전의 선발로서 좋지 못한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로서는 많이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6이닝 1실점 5삼진 무사사구라는 훌륭한 투구내용을 보여주었다. 타선도 거기에 응하여 장기영의 8호 홈런을 포함해 3:1로 갈 길 바쁜 롯데를 꺾고 팀은 5위로 올라섬과 동시에 자신도 시즌 3승을 달성하였다.

10월 2일 시즌 마지막 홈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했으나, 윤석민에게 홈런을 맞는 등 3이닝 3실점을 하고 조기강판되었다. 하지만 실책 때문에 조기강판된 것은 아니고, 3루 수비 커버를 하러 달려들다 두산 베어스의 주루코치인 김민호와 충돌하여 선수보호 차원에서 조기강판 시킨 것. 이날 경기는 3:1로 패배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2012년 최종 성적은 3승 8패. 신인 한현희와 승수가 같고, 이닝수, 비율스탯 모두 밀린다.

2012년의 넥센 DTD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팬들도 있지만, 몇 년 동안 운동을 아예 접고 있던 30대 아저씨가 갑자기 공 던지는데 선발승 팡팡 찍으면 약물을 의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2012 시즌은 KBO 연착륙으로 보고 2013 시즌을 기대하자는 팬들도 있었다.

2012년 내내 제구가 잡히지 않아 고생을 했고, 후반기에 잠시 셋업으로 나왔을 때는 두산의 클린업 트리오를 말 그대로 지리게 잡는 위엄을 보여주었지만 변화구의 각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탓에 좌타자만 만나면 쥐약이었다. 좌타 상대용 결정구와 제구를 잡는게 숙제로 꼽혔다.

2013년 연봉은 1억 인상된 6억 원으로 결정되었다. 실망스러운 2012년 성적에 비추어 볼 때 의외의 일인데[16], 입단 당시 다년 이면계약이 있었던 것으로 확실시된다. 사실 이름값을 보고 계약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김병현 영입 후 넥센은 장사꾼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났고 기념품 구입도 꽤 늘어났다고 한다. 김병현 보러 야구장 온다는 팬들도 있고 한다.

2.8.2. 2013 시즌

이강철 코치도 그를 살리진 못했다. 시즌 초반엔 갑자기 각성하여 이닝을 잘 소화해줬지만 6월 11일 사직 롯데전에서 퇴장당한 날을 기점으로 급격히 무너졌다. 그에 대한 히어로즈 팬덤의 여론도 더욱 악화되었다. 사실 영입한 것 자체는 마케팅이나 홍보 측면에선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쓸데없이 비싼 계약금이 문제다. 그것도 2년 연속으로 돈을 퍼주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으로.

2014년 연봉은 4억 삭감된 2억 원으로 결정되었다. 삭감 금액이 4억 원인데, 이는 이용규의 5억, 박명환의 4억 5천만 원에 이은 3위 기록이다.

김병현의 부활 가능성에 대해 분석한 글이 화제를 모았다.

2.9. KIA 타이거즈 시절 (2014.0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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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2014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병현/2014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즌 중 트레이드를 통해 고향 연고팀인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2.9.2. 2015 시즌

시즌 시작 전 김진우가 번호를 49번에서 94번으로 변경하면서, 김병현 본인에게 상징과 같은 49번을 2015 시즌에는 달 것으로 기대했으나, 뜬금없이 박성호가 49번을 차지했다. 49번에 대한 관심이 없는 듯.[17] 그런데 괌 재활조에서 훈련을 하던 도중 2월 5일 현지에서 복통을 일으켜 병원을 찾은 결과 맹장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고 한다. 휴식 이후 다시 몸을 만들어야 하니 최소 3~4주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팬들은 시즌 시작도 안했는데 이러냐며 절망하고 있다.

회복 후 2군 경기에 출전 중 인데, 5월 4일 현재 방어율이 8점대 중반이다... 특히 kt 위즈 전에서는 5이닝 13실점 8자책을 기록하기도 하면서 팬들에게 맹렬히 까이고 있다.[18]

5월 13일 삼성 2군과의 경기에서 5이닝 무실점 8K로 좋은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7일 최근 부진하고 있던 험버가 2군으로 내려가고 김병현이 1군으로 콜업되었다. 17일 두산 베어스 경기에서 선발 양현종에 이어 불펜으로 나와 민병헌의 무릎을 맞추는 데드볼을 기록했지만 그 이후 2루수 김민우의 호수비로 1이닝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내려갔다. 5월 16일에 1군 등록 전 선수단에 합류하면서 메이저리그 3인방(서재응, 김병현, 최희섭)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다만 서재응은 16일에 컨디션 조절 차 말소되어서 1군엔트리에 세 명이 모인 건 아니었다.

5월 21일 사직 롯데전 선발 등판에서 5이닝 4피안타 2K 2실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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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명움짤을 하나 남겼다.

6월 16일 경기에선 박용택에게 쓰리런을 맞았다.

18일 경기에선 동점상황에서 올라와 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맹장염 복귀 이후 선발, 불펜을 오가는 스윙맨으로서 볼만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KBO 복귀 후 불펜 김병현이 선발 김병현보다 훨씬 좋았기에 아예 불펜으로 가길 바라는 팬들도 있다.

7월 2일 한화전 홈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⅔이닝동안 무려 74구를 던지며 6피안타 5사사구를 기록했고, 6실점하며 조기 강판당했다. 결국, 팀은 그대로 지며 패전의 멍에를 썼다. 탈삼진은 2개를 잡았다.

7월 3일 2군행을 통보받았다.' 'ERA 8.28' 김병현 2군행, 제구력 회복 절실

8월 5일 목동 넥센전에 선발 등판하여 5 2/3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고 승리 요건을 채우고 내려갔다. 하지만 최영필이 8회 스나이더, 박병호에게 연이어 홈런을 맞으면서 노디시전이 기록되었다. 시즌 첫 승은 다음 기회에 미뤘다.

8월 21일 사직 롯데전에 선발 등판하여 8실점하며 박살났다.

최희섭이 은퇴를 선언한 지금, 8점대 방어율을 찍었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내년에도 뛸 예정이다. 이유로는 손영민2016년 4월에 제대를 하나,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김병현을 제외하면 믿을만한 옆구리 투수도 팀에 없는 상황. 다만 나이도 많고 실력도 전성기에 비해서 폭락한 선수인지라 내년에 큰 기대가 보이지 않는다.

서재응도 은퇴를 선언하여 광주일고 트리오 중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또한 임창용불미스러운 사건으로,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드림팀의 유일한 투수 생존자가 되는 듯하였으나 2016년 3월 28일 KIA 타이거즈가 임창용을 영입하면서 팀 동료가 되었다. 야수로는 아직 홍성흔, 조인성, 이병규, 박한이가 있다. 2016 시즌 김병현의 나이는 38세다.

2.9.3. 2016 시즌

4월 17일 기준으로 우승반지를 찾았다는 기사가 떴다.

KIA의 불펜들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징계 먹은 임창용의 복귀까지 늦어지는 와중에도 합류가 감감무소식이다. 김기태 감독의 말에 의하면, 아예 공도 만지지 않았다고 한다. 불펜 운용이 어지러운 때에 한번 올라옴직하지만,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올해가 기아에서의 마지막인 듯.

스프링캠프 기간에 맹장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2군 경기에 간간히 올라오긴 했지만, 15경기에 등판하여 1승 1패 2홀드, 평균자책점 7.36으로 나올 때마다 탈탈 털렸다. 2016년 8월 24일 kt wiz전에 마지막으로 나섰는데, 4⅓이닝 7안타 3실점(3자책)을 기록했다. KIA 관계자는 "2군 경기를 보니 이전보다 스피드가 10km/h 정도 떨어져 있었다"고 언급했다.

한 팬이 김병현에게 언제 1군에 올라오냐고 물어봤는데, "너 같으면 올리겠냐" 라고 대답했다는 썰이 있다.

결국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본인은 선수생활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모 구단감독님이 김병현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프런트 측에서 체크 결과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사실상 불발됐다.[19]

추후 밝힌 바로는 웨이트보다 러닝에 집중했는데 몸이 덜 회복된 채 훈련을 하다가 골반에 이상이 오며 투구 밸런스가 무너졌다고 한다. 식이요법으로 5개월 간 10kg를 감량했고 투수가 아니면 타석이라도 서겠다고 선언했지만 받아줄만한 팀을 국내에서는 찾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2.10. 시즌오프2 (2017~2018)

2017년 저니맨 외인구단에 합류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지만, 실제로 입단하지는 않았다.

이후 직접 보도보다는 타인의 기사에 간접적으로 언급되면서 은퇴 했는지, 아직 은퇴하지 않았는지 추측만 난무하고 있다.

서울 용산해방촌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채널A의 관찰 카메라 24라는 프로그램에서 촬영차 해방촌에 갔다가 카메라 동선에 김병현이 잡혔다. 그러나 원체 꾸미지 않는 성격 때문에 카메라맨 두 명이 있었음에도 김병현이 지나가는 줄 모르고 그냥 가는 길 그대로 보내드렸다.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해방촌에 이사온 지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2.10.1. 도미니카 윈터리그 (2017)

2017년 10월 11일, 재기를 위해 도미니카 윈터리그에 진출, 히간테스 델 시바오팀의 유니폼을 입은 사진이 실린 기사가 보도되었다.

2017 도미니카 윈터리그 개막 직전에 히간테스 델 시바오에서 나와 현재는 산티아고에서 강정호와 함께 생활 중이라고 한다. 다만 강정호도 방출되었고, 경기 나오거나 팀을 새로 찾았다는 말이 없는 것을 보면 이번 오프시즌에 무언가 보여주기는 어려울 듯하다.

2018년에 들어와서는 모교였던 광주일고 야구부 스프링 캠프에 같이 참여하여 훈련하고 있다는 사실이 김여울 기자를 통해 전해졌다. 아직 은퇴를 한 것은 아니고, 고교 선배이자 현재 일고 감독인 성영재 감독의 배려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 "개인 훈련은 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보인 것을 봐서는 이제 선수 생활을 정리하려는 듯.

그러다가 2018년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메이저 리그 개막 경기에 초청되었다.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고 시구도 진행했다.[20] 여기서 알려진 근황으로는 캘리포니아 주에 여전히 스시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역 복귀 생각은 없는 듯하여 사실상 은퇴를 선언한 듯 싶었지만..

2.10.2. 멜버른 에이시스 2018-2019시즌

2018년 10월 29일, 호주 프로야구 리그에 속한 멜버른 에이시스 입단이 확정되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개막전부터 리저브(예비)로 되어 있어서 등판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3주차인 질롱 코리아와의 시리즈를 앞두고 액티브로 변경되었다.

2018년 11월 29일 드디어 중간 투수로 6회초 팀이 3:1로 뒤진 가운데 두번째 등판되면서 첫 타자 삼루 땅볼에 이어 두 타자 연속 삼진을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11개 투구수 (스트라이크 9, 볼2)

5주차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로스터에서 제외되었다.(선수 정보에는 여전히 액티브로 표시) 6주차에 로스터로 복귀했으나 리저브로 빠졌으며 7주차인 질롱 코리아전에 맞춰 액티브로 돌아왔다.

시즌 최종 성적은 9경기, 1세이브, 9 2/3이닝 1실점, ERA 0.93, 6피안타(1피홈런) 5피사사구 9탈삼진, 피안타율 .171, WHIP 1.14. 9번의 등판 중 4번이 질롱 코리아와의 경기였다.

2.11. 은퇴 (2019)

2019년 1월 선수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

본인을 저니맨이라고 말하면서 은퇴식은 사치라고 하였고 또한 고향팀에서 은퇴식을 제안했어도 거절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후 2019년 5월 2일 객원해설을 통해 MBC TV LA 다저스 류현진 선수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경기를 김나진 아나운서와 허구연 해설위원과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2019년 6월 5일에도 지난 5월 2일에 이어 MBC TV 류현진 선발경기 9승 도전 경기를 중계했다. 이날은 허일후 아나운서와 김형준 기자와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번엔 류현진이 상대할 팀으로 자신이 전성기를 보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중계를 맡았다. 그리고 중계전 이 날 아침에는 김선우 해설과 함께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류현진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19년 6월 23일 경기에서도 김선우 해설위원과 함께 류현진 경기를 중계했다.

사실상 올해 MBC 해설위원으로 데뷔하였다. 이후 7월 10일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다. 이 자리에서 김수철의 '못다핀 꽃 한 송이'를 열창했는데 숨겨온 노래실력을 과시했다.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 예술의 거리 쪽에 '광주제일햄버고'라는 수제 햄버거집을 오픈했다. 광주가 한식은 맛있는데, 다른 장르의 음식에서 멋스러운 집은 많지만 맛있는 집이 많이 없어서 열었다고 한다. 오픈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중으로, 2019년 6월 8일에는 재료소진으로 조기종료되었다.[21] 그리고 첫 단체주문 손님은 손혁 코치가 80개를 주문한 SK 와이번스(...).[22]

7월 15일(한국시간),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 허구연 해설위원과 함께 해설을 맡았다.

3.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 시절엔 언더스로면서도 평균 140km 중반, 최고 158km/h를 던지는 엄청난 강속구를 자랑했으며,[23] 뱀처럼 휘어지는 프리즈비 슬라이더와 업슛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거기다 업슛, 싱커, 프리즈비 슬라이더, 백도어 슬라이더가 홈플레이트에서 각각 상하좌우로 휘어지는 구종이기 때문에 타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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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슛 슬라이더

특히 그 중에서도 프리즈비 슬라이더의 엄청난 각도로 날카롭게 휘어졌던 터라 위의 이미지처럼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임에도 타자는 그것이 몸쪽으로 들어오는 공인 줄 착각하여 휘두르는 일이 있었을 정도다. 여기에 특유의 구위와 메이저리그에서는 도통 찾아볼 수 없는 언더핸드 투수라는 유니크함[24]이 더해지면서 김병현은 전성기 시절 동안 말 그대로 리그를 완전히 씹어 먹었다. 이 과정에서 무지막지한 탈삼진율까지 기록하며 Born to K, 일명 BK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1이닝 9구 3탈삼진[25][26]라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약 40여명의 투수 밖에 이루지 못한 일대 업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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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유닛과 함께.

당시 랜디 존슨과 그의 등번호의 합이 정확히 100(51+49)이었던 까닭에 둘이 이어서 던지면 완벽하다는 농담이 있었으며, 장신(長身)인 랜디 존슨이 던진 직후 김병현이 나와 언더핸드로 던질 경우 이전까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공에 익숙해져 있던 기존 타자들은 공이 갑자기 지하 밑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왔다.[27] 덕분에 랜디 존슨의 별명인 '빅 유닛'에 빗대어 김병현에게 '리틀 유닛'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정작 김병현 본인은 이 별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랜디 존슨은 "삼진을 잡는 능력만은 나보다도 뛰어나다."란 이야기를 하기도 했으며, 블라디미르 게레로로부터 "저런 지저분한 공을 던지는 투수는 MLB에서 당장 퇴출시켜야 한다."는 립서비스성 발언을 듣기도 했다.

자신의 공에 상당히 자신이 있는지 적극적인 승부를 즐긴다. 일본의 대타자 스즈키 이치로는 김병현을 경기장에서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28] 보통 투수들은 자신의 정교한 컨택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비해 김병현은 그 구위가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떠나 지금 타석에 서 있는 타자가 누구인지 전혀 관심 없는 듯 공을 던졌다고 말했다. 즉 언더핸드치고는 유니크한 구속과 구위에 더불어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괴물들이 즐배한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타자든지 상관하지 않고 삼진을 잡겠다는 엄청난 배짱으로 무장한 거의 완성형에 가까운 투수였다는 것.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부러진 배트로 인해 발목부상만 안당했어도 라는 떡밥이 생기는 투수다.

3.1. 김병현의 보직 논란

김병현이 선발 욕심을 부린 탓에 커리어가 망가진 것이며, 그가 그대로 마무리를 했었더라면 마리아노 리베라, 트레버 호프먼에 버금가는 투수가 되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팬들도 무척 많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보직의 특성상 한두 시즌 반짝한 뒤 사라지는 마무리 투수가 많아서 사실상 야만없급의 의미없는 가정이다. 쉽게 말해, 계속 마무리로 남았다 한들 꼭 대성하리란 보장은 없었다는 뜻이다.

또한 김병현은 부상을 입기 전까지만 해도 선발로 출전하여 매우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커리어를 망쳤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 건 부상으로 인해 본래 구위를 잃은 뒤의 일이다. 요컨대 부상이 문제가 된 것이지, 보직과는 별다른 관계없었다는 이야기라는 관점도 있다.

김병현의 부진이 시작된 것은 2004년으로,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며 선발로도 불펜으로도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2005년 콜로라도 입단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조정방어율 100을 넘기지 못하고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하게 된다.

발목을 맞은 2003년 시즌에는 훌륭한 성적을 냈으나 이후 부진이 시작된 것으로 볼 때, 부상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시점에서 김병현은 보직에 대한 불만과 그로 인한 코칭스태프와의 충돌 등으로 인해서 감독이나 코치 등과 불화를 겪는 경우가 많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애리조나를 떠나 타격이 강한 AL동부의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었으며, 2005년에는 투수들의 지옥 쿠어스필드를 홈으로 쓰는 콜로라도로 트레이드 되었다.

김병현은 혹사와 부상 이후 관리에 중점을 둬야 할 시기에, 각 구단들의 이해타산으로 인해 트레이드로 팔리는 선수로 전락하면서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기에는 어려운 팀들을 떠돌게 되었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화려했던 애리조나 시절에 너무 구른 나머지 커리어에 타격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풀타임 마무리로 뛰기 시작한 00년부터 최전성기라 볼 수 있는 02년까지 김병현이 던진 이닝은 포스트시즌 포함해서 각각 70.2-107.2-85이닝인데 이건 불펜 투수로써는 엄청나게 많이 이닝을 소화한 거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이때의 혹사가 선수생활 전체를 갉아 먹었을 가능성도 크다.

김병현의 바램처럼 선발로 완전 전향했다면 전성기가 좀 더 연장되었을지도 모른다. 선발은 5인 로테이션제 때문에 그나마 계투보다는 관리를 받는 편이기 때문이다. 상술된 2003년 시즌만 봐도 7월부로 마무리 전향해서 정규시즌 끝나는 9월 29일(거의 10월)까지 거의 3달 동안 42경기를 찍었는데 이건 관리 부실을 넘어 엄청난 혹사다. 03시즌 보스턴에서의 막판 마무리 전향(+혹사)가 전성기를 일찍 마감하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김병현이 마무리 전향 없이 2003년을 풀타임 선발로 소화했다면 좀 더 관리받을 수 있었을 테고, 그만큼 전성기도 좀 더 연장되었을 것이다.

4. 성격 및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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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자체는 좋은 편이지만, 그다지 대인친화적이지 못한 탓에 언론 매체들과 이런저런 트러블이 많았다. 데뷔 초기에 첫 세이브 후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일 한국신문에 이거 대문짝만하게 나오나요?' 발언 등으로 PC통신 유저들 사이에서는 끼 많고 재미있는 청년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고, 언론도 그에 대해 공격성 기사를 쓰는 일은 없었다. 막상 시즌이 끝난 뒤 내한 후에는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려 그 때부터 언론과의 사이가 틀어졌다. 당시 PC통신에 김병현의 후배 고등학생의 글에 따르면 김병현이 내한 후에 일정을 기자들에게 공개하지 않아서 고등학교에 기자들이 미리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하는데 기자들 사이에서 김병현에 대한 쌍욕이 난무 했었다고 한다. 이는 홈런을 친 뒤 모자를 벗어 답례를 하자 기자들이 이를 곡해하여 거만하게 굴었다는 식으로 기사를 게재한 이후 현역 시절 동안 결코 답례로 모자를 벗지 않았던 테드 윌리엄스와도 비슷한 케이스다.

또한 김병현 특유의 돌출 행동도 언론이나 일부 팬과의 관계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 보통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대한 일을 좋게좋게 해결하려고 드는데 그런 면이 많이 부족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이런 면은 많이 개선되었다.

이렇고 저런 이야기들이 많은데 2000년대 후반 들어서 주목받는 것은 특유의 정신세계로 인한 기행을 들 수 있겠다. 불암콩콩코믹스에서도 그라운드의 악동들 편에서 소개를 했는데, 악동이라기보단 기인인듯 이라는 평을 남겼다. 이 덕분에 전성기 때나 막장이 된 10년도 후반이나 야갤에서 매우 좋아한다. 거의 들 급으로 소스를 끊임없이 공급해주기 때문에...

4.1. 굿데이 스포츠신문 사건


여러 어록이나 일화 중에서도 김병현 폭행 논란이라 불리는 굿데이 스포츠과의 트러블[29]은 매우 유명하다. 물론 후술할 이 사건은 상황을 잘 파악해서 읽자.

김병현은 기존부터 휴식 기간에는 조용히 지인들과 시간 보내길 즐겼던 스타일로 당시에도 김병현은 조용히 국내로 돌아와 지인들을 만나고, 헬스클럽에서 개인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헌데, 그런 김병현이 모 헬스클럽을 자주 찾는다는 정보를 입수한 스포츠 신문, 굿데이의 한 기자는 해당 헬스클럽에 계속 잠복해 있다가 김병현을 나타나자마자 허가도 받지 않고 사진을 찍어대며 매우 고압적인 태도로 인터뷰를 강제로 진행[30]하려고 했다. 이에 김병현은 촬영과 인터뷰를 거부했고, 결국 인터뷰를 강행하려는 기자와 이를 거부하려는 김병현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져 기자의 카메라가 손상되는 일이 벌어졌다.

문제는 이 일에 앙심을 품은 해당 기자가 다른 스포츠 신문사 기자들과 결탁하여 이 기회에 이전부터 취재에 매우 비협조적이었던 김병현을 모함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헬스클럽에서 만난 김병현에게 정중히 취재를 요청했으나, 김병현은 이를 무시하고 안하무인 격으로 거만하게 굴더니 급기야 기자에 폭행까지 가해 카메라를 부수고, 해당 기자는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특종을 내보냈다. 또한, 이후 결탁한 다른 스포츠 신문사 기자들 역시 해당 특종이 터지기가 무섭게 앞다투어 이 신문 기사를 인용하여 폭행 사건을 대서특필, 김병현을 천하의 개쌍놈으로 몰아붙였다.

이날 목격자도 폭행을 한것으로 당시 보도되어 사태는 점차 악화 되었다. 2003년 기사

물론 김병현 측도 이에 대한 해명을 나서긴 했으나, 기존부터 언론을 통해 줄곧 안 좋은 모습으로 묘사됐던 김병현이었던 터라 이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김병현은 억울하게도 휴식 기간 동안 내내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아야 했으며, 제대로 쉬지 못한 탓에 컨디션까지 엉망이 되어 시즌 자체를 전부 망치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기자회견 자리에서 해당 기자가 "그 XX, 거들먹 거리긴."이라고 말한 동영상이 퍼지고, 당시 사건의 정확한 내막과 전후 사정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 반대로 무고한 김병현을 음해한 기레기들 쪽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 와중에 김병현을 옹호하던 차두리싸이월드에 욕설이 섞인 악플을 단 이가 있었는데, 이 IP를 추적한 결과, 악플을 단 게 다름 아닌 굿데이 측이었다는 사실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보도 되었고, 결과적으로 기자들을 향한 비난 수위는 더욱더 높아졌다. 사실 이러한 기사가 데스크에서 통과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굿데이 측의 계속된 경영부진이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역풍을 맞으면서 판매 부수가 급감하고, 광고까지 상당수 떨어져 나갔고, 결국 굿데이는 6개월 뒤 폐간되고 말았다.

위에서 설명했던 굿데이 기자와의 논란 때문인지, 디씨에 김병현기자폭행논란 갤러리가 개설되기도 했다. 거의 10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다가, 몇몇 유저들에 의해 발굴된 이후로는 어째 그냥 김병현 개인 갤러리 느낌이다...만 현실은 거의 정전상태다.

이후 공항에서 법규 날린것도 비슷한 맥락.. #



4.2. 경기장과 훈련 과정에서

  • 야구 관련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월드시리즈 중의 두 경기 연속 끝내기 홈런. 이 홈런으로 인해 김병현의 소속팀 애리조나는 쉽게 가져갈 수 있었던 경기를 놓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시리즈는 일대 혼전에 빠졌다. 더욱이 당시 김병현이 시즌 중 언터처블이라 할 만한 대단한 활약을 펼쳤던 터라 이 일은 더욱 드라마틱하게 다가왔다. 덕분에 이 장면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역대 명장면 중 하나로 꼽혀, 전미에 수도 없이 방송됐다. 아무래도 본인으로서는 조금 민망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 하겠다.
  • 콜로라도 시절 선발승을 따내고 Xports와 화상 인터뷰하던 중 이미 인터뷰가 끝난 걸로 착각하고 헤드셋을 벗더니 그대로 사라진 일도 꽤 유명하다. 당황하는 중계진과 카메라가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쓸쓸히 찍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미묘한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 2006년 1회 WBC 당시에는 경기 전 영상을 찍고 있던 허구연과 한광섭 뒤에서 '카메라에 나오고 싶어하는 초딩' 같은 모습을 연출하여 인터넷 상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 파일:BK_5.gif
복귀를 위해 훈련하던 중에는 자택에서 훈련장까지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서 간 적이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특별할 건 없는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미국은 우리나라 국토의 40배가 넓는 광활한 영토를 자랑한다. 자택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훈련장은 저 멀리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에 있었다는 것이다. 비행기로 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도중에 주차장에서 3시간 잔 게 전부인데도 자그만치 60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이후엔 훈련을 시작한지 3일만에 부상 징후가 나타나서 결국 자동차 두고 곧장 비행기로 귀가해야 했다.
  • 애리조나에서 데뷔했고 성적도 애리조나 시절이 가장 좋았지만, 애리조나를 떠나는 과정이 썩 매끄럽지 못했던 탓에 애리조나 팬들은 그를 무척 싫어했다. 이 때문에 플로리다에서 뛰다가 잠시 애리조나로 트레이드 돼서 첫 등판을 했을 당시에는 홈 관중들에게 야유 세례를 받기도. 물론 지금은 시간이 시간인지라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고 역대 팀 올스타에 마무리투수로 뽑히기까지 하는 것을 봤을때 이미지가 좋아졌다. 게다가 2018년 4월 3일에는 시구까지 했다.[31]

4.3.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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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특한 일화가 무척 많은데 마무리 시절엔 경기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라커룸에 누워 낮잠을 자질 않나[32], 구단에서 준 집을 원룸으로 개조하는가 하면, 선발 전환 이후에는 출전 당일에도 컨디션 조절을 하기는커녕 비디오게임기로 야구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차에 내비게이션이 달려 있는데도 그게 뭔지 몰라서 한 번도 사용을 안 하질 않나, 사인해달라는 팬들의 요청에 경보로 도망가다 잡히니 그제서야 사인한다던가, 갑자기 관중에게 중지를 세우거나 스즈키 이치로가 1회 WBC에서 언급한 30년 발언을 듣고 "만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거 아닌가…."라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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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벤틀리AWD 세단플라잉스퍼의 오너이기도 한데, 2007년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클린트 허들 당시 콜로라도 감독과 투수코치와의 불화로 인해 "화가 난 김에 나도 이런 차를 타고 다닌다고 과시하려고 해서 플라잉 스퍼를 구입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차는 그가 넥센 히어로즈에 입단한 후 한국으로 갖고 왔는데, 문제는 플라잉 스퍼의 앞 범퍼에 번호판이 없었다는 것. 미국애리조나, 조지아, 캔자스같은 일부 주에서는 앞면에 번호판을 안 달아도 되지만, 한국에서는 무조건 전면에 번호판을 달아야 한다. 안 그러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덤으로 이 벤틀리를 부담없이 편안하게 운전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데 범퍼 아래쪽에 긁힌 자국부터 먼지까지 쌓여있는데 이를 본 프로야구의 한 관계자가 차 자체도 보기 드물지만 이렇게 관리가 안된 벤틀리는 단 한대밖에 없을거라고 얘기를 했다. 얼마나 관리를 안하는지 2012년 6월 20일 프로야구 롯데전에서 첫번째로 승리한 기념으로 오랜만에 세차를 했다. #
  •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이런 면모는 여전히 변함없었다. 2001년 월드시리즈 우승 후 한국 팬들을 위해 월드 시리즈 반지의 국내 기증 의사를 밝혔는데, 당분간 이 반지를 끼지 않고 집에 보관한 뒤 귀국 후 한국야구위원회(KBO)나 제주도의 야구박물관에 기증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증할 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국내은행에 보관을 하였다. 대한민국에 복귀하고 얼마 후, KBO 측에선 메이저리그 우승 반지를 KBO 박물관에 기증하지 않겠냐는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고, 김병현 역시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문제는 김병현이 언젠가 은행에서 찾아왔는데 정작 이 우승 반지를 어디에 둔지 몰라서 기증을 당장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병현 특유의 성격을 짐작케 하는 일화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상술한 사건들이 있는 터라 마냥 좋은 추억만 담긴 물건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사실 그 반지 하나 얻어 보고자 온갖 비난과 푸대접을 감수하고 팀을 옮기는 선수도 굉장히 많다. 시간이 흘러 그냥 분실로 끝나나 싶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2016년에 차 트렁크 청소하다가 찾았다고 먼저 알려왔다. 일련된 과정을 보면 이해가 가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KBO가 명분 없이 우승반지를 얻어내려고 한다고 욕을 하였고, 김병현은 주기 싫어서 잃어버린 척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을 하였다. 정말 주기 싫었으면 처음부터 기증 이야기도 안했고, 분실한 반지를 찾고도 못 찾은 척 입 다물 수 있었는데 먼저 나선 것을 보면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다시 언급될때 뭐 잃어버릴 수도 있지란 반응을 보인 듯.
  • 2015년 5월 17일 KIA 타이거즈 1군으로 복귀한 김병현에게 광주일고 3인방이 모이니 어떠냐?라는 질문을 하니 광주일고요? (라커룸)안에 광주일고 애들 많은데. 아 빅리거. 에이 별 의미 없어요. 라며 시크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 2015년 6월 2일 두산 베어스전에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고 있던 서재응에게 다른 투수들도 투구감각 땜에 던져야 하니까 이만 그만 던져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날 경기에 호투하던 서재응은 그 말을 따랐고 한다. 역시 광주일고 1년 선배인 서재응에게 팀 내에서 이렇게 직설적인 말을 할 수 있는 선수는 김병현을 포함해 몇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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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에서도 거론된 것처럼 미국에서 일식당을 운영하고 있지만, 김병현 본인이 직접 경영하는 게 아니라 전문 경영인에게 위탁해서 운영하고 있다. 김병현은 현명한 방법을 택한 것인데, 대부분 운동선수들이 고액 연봉만 믿고 무턱대고 직접 사업에 나서다가 실패한 숱한 사례[34]에 비하면 전적으로 전문 경영인에게 위임하여 꾸준히 수익을 내는 김병현의 판단이 옳았다. 해방촌에서도 '팟카파우'라는 태국 음식점도 운영하는 중이며 광주 예술의 거리에 광주제일햄버고라는 수제 햄버거집을 운영하고 있다.
  • 2016년 1월 화성 히어로즈의 감독격인 필드 코디네이터로 대한민국에 온 쉐인 스펜서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병현이 아직도 뛰나?"란 질문을 던져 화제를 모았다. 전술한 대로 쉐인 스펜서가 현역 시절 김병현에게 깨진 전력이 있었기 때문. 쉐인 스펜서의 김병현 상대 전적은 5타수 무안타 3삼진이다.
  • 한창 잘 나가던 2002년에는 자신에 팔에 대한 10억원짜리 보험에 가입한 적이 있었다.
  • 애리조나 디백스 팬투표에서 무려 74%의[35] 득표율로 애리조나 역대 마무리 1위달성했다.



  •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연상은 아나운서와 함께 출연해서 좋은 케미를 보여주고 그야말로 온갖 썰을 풀었다. 월드시리즈에서 홈런 맞은 얘기도 했다. 한번, 두번까지는 별 데미지가 없다가 세번째 피홈런엔 주저앉게 됐는데 낙심해서가 아닌 팀 고참이면서 자신과 친한 마이크 모건[36]이 생각나서 주저앉았다고 한다. 또한 김선우와 전화연결 시간을 가졌는데 김선우 본인이 김병현에게 야구를 많이 배웠다고 한다.


  • 2019년 4월 24일 트위치를 통해 진행된 SBS 모바일 24의 '배거슨 라이브'에 출연하여[37] 야구 관련 에피소드, 명대사 해명의 시간과 근황롯데리아 디스을 풀고 갔는데, 배성재 아나운서의 타노스 건틀렛으로 짤방을 남기고 갔다. 여기서 해방촌에 지분투자 형태로 태국 음식점도 열었다고 언급했다.
  • 방송에서 푸는 에피소드를 보면, 다른 전직 야구선수 방송인들에 비해[38] 훨씬 순한맛 소탈한 에피소드를 풀어주는 편이다.
  • 인스타도 하는데, 인스타를 보면 가족을 많이 사랑하는 모습이 보인다. 배우자 한경민씨는 뮤지컬 배우 출신이고,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39])
연도 소속팀 경기수 선발 완투 완봉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1999 ARI 25 0 0 0 27⅓ 1 2 3 1 4.61 20 25 31 1.46
2000 61 1 0 0 70⅔ 6 6 5 14 4.46 52 55 111 1.39
2001 78 0 0 0 98 5 6 11 19 2.94 58 52 113 1.04
2002 72 0 0 0 84 8 3 0 36 2.04 64 32 92 1.07
2003 ARI/BOS 56 12 0 0 122⅓ 9 10 1 16 3.31 104 40 102 1.12
2004 BOS 7 3 0 0 17⅓ 2 1 0 0 6.23 17 8 6 1.38
2005 COL 40 22 0 0 148 5 12 1 0 4.86 156 79 115 1.53
2006 27 27 0 0 155 8 12 0 0 5.57 179 69 129 1.55
2007 COL/ARI/FLA 28 22 0 0 118⅓ 10 8 0 0 6.08 131 84 107 1.68
2008 PIT 메이저리그 기록 없음
2009 소속팀 없음
2010 오렌지 카운티[40] 10 9 0 0 45⅔ 3 1 0 0 2.56 39 27 48 1.38
2011 라쿠텐 1군 기록 없음
2012 넥센 19 12 0 0 62 3 8 3 0 5.66 65 48 43 1.27
2013 15 14 0 0 75⅓ 5 4 0 0 5.26 71 49 43 1.12
2014 KIA 21 15 1 0 71 3 6 0 0 7.10 88 40 66 1.42
2015 23 8 0 0 49 0 5 2 0 6.98 67 29 38 1.59
2016 1군 기록 없음
2017 히간테스 델 시바오 등판 기록 없음
2018-19 멜버른 9 0 0 0 9⅔ 0 0 0 1 0.93 6 5 9 1.14
MLB 통산(9시즌) 394 87 0 0 841 54 60 21 86 4.42 781 444 806 1.38
KBO 통산(4시즌) 78 49 1 0 257⅓ 11 23 5 0 6.19 291 166 190 1.33
ABL 통산(1시즌) 9 0 0 0 9⅔ 0 0 0 1 0.93 6 5 9 1.14
역대 기록(MiLB)
연도 소속팀 경기수 선발 완투 완봉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1999 AZL 다이아몬드백스 (루키리그) 1 1 0 0 2 0 0 0 0 0.00 1 1 2 1.00
1999 엘 파소(더블 A) 10 0 0 0 21⅓ 2 0 0 0 2.11 6 5 32 0.70
1999 투산(트리플 A) 11 3 0 0 30 4 0 0 0 2.40 21 16 40 1.20
2000 투산(트리플 A) 2 2 0 0 8⅓ 0 0 0 0 0.00 1 4 13 0.60
2003 투산(트리플 A) 3 3 0 0 17⅔ 1 1 0 0 2.55 17 3 8 1.02
2004 사라소타 (싱글 A) 1 1 0 0 2 0 0 0 0 0.00 0 0 2 0.00
2004 포터킷 (트리플 A) 22 19 0 0 60⅔ 2 6 0 0 5.34 71 18 39 1.37
2006 콜로라도 스프링스
(트리플 A)
3 3 0 0 13 0 1 0 0 6.23 18 4 11 1.69
2007 콜로라도 스프링스
(트리플 A)
5 5 0 0 24⅓ 1 1 0 0 2.96 21 11 31 1.32
MiLB 통산(6시즌) 58 37 0 0 179⅓ 10 9 0 0 3.56 156 62 178 1.19
역대 기록(NPB 2군)
연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2011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 18 0 0 0 0 2.66 19 7 18 20⅓

6. 둘러보기

1995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MVP
김선우
(휘문고등학교)
김병현
(광주제일고등학교)
정형주
(휘문고등학교)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49번
조평호(2011) 김병현(2012~2014) 김영광(2014)
KIA 타이거즈 등번호 45번
김영광(2014) 김병현(2014~2016) 팻 딘(2017~2018)


[1] 음력 1월 19일.[2] 실제 키는 이것보다 더 작다는 게 속설이다. 당장 2006년 WBC 때 찍힌 사진을 보면 177cm인 오승환과 180cm인 홍성흔보다 키가 더 작아 보인다.[3] 팬그래프에는 5피트 9인치(175cm)로 표기 되어있다. #[4] 거절하고 성균관대 진학.[5] 현대 해체 후 선수단과 프런트를 기반으로 재창단한 히어로즈로 지명권이 인계되었고, 한국 복귀 후 계약은 2012년에 이루어졌다.[6]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7] 참고로 당시에 최희섭, 김병현, 서재응이라는 메이저리거 출신 세 명이 동문이었다.(최희섭 1학년, 김병현 2학년, 서재응 3학년) 지금은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나와 한국으로 돌아왔고 은퇴했지만.[8] 당시에만 해도 체육특기생은 학적만큼은 원하는 학과로 넣어주던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법학과경영학과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물론 법학과는 관련 없지만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법학과 나오신 법규형님으로 불린다. 비슷한 케이스로 우지원, 김훈(이상 연세대 법학과), 조용준(연세대 국어국문학과), 홍명보, 최희섭(이상 고려대 법학과), 현주엽, 김선우(이상 고려대 경영학과), 박찬호(한양대 경영학과), 이종범(건국대 경영학과), 김성배(건국대 축산학과) 등 숱한 사례가 있다.[9] 어디까지나 성균관대 출신이기 때문에 인문사회과학캠퍼스 600주년기념관에서 개최된 2012년 미디어데이에서 학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법학과 97학번 김병현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건 덤이었다.[10] 타자로서 메이저리그에서 어느정도 활약하는 추신수조차 200만 달러를 못넘겼다. 참고로 2000년대 초반 플로리다 말린스와 계약을 맺은 미겔 카브레라의 계약금은 180만 달러로[41]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S급 유망주가 아닌 이상 200만 달러도 넘기기 힘든게 현실이다. 게다가 당시의 계약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다면 1000만 달러 이상이 나온다고 하는데 이는 2010년 드래프트 당시 역대 타자 최고액을 갱신한 브라이스 하퍼보다 많다.[11] 참고로 2001 NLCS에서의 마지막 타자가 훌리오 프랑코이다. 프랑코가 직전 해애 KBO에서 뛰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이 또한 묘한 맞대결.[12] 믿기 힘들겠지만 히어로즈에서 2016년 2군 감독을 맡게 될 그 사람이다. 동명이인이 아니라 동일인물이다.[13] 2001년, 월드시리즈 우승팀 자격으로 백악관을 방문한 이 자리에서, 부시 대통령은 사진촬영 자리에서 김병현 선수 바로 뒤에 자리잡으며 마치 감싸안거나 뒤에서 받쳐주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위급 정치인의 행동은 하나하나 의미가 담긴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젊은 김병현을 격려함과 동시에, 911 사건으로 뒤숭숭해진 시점에 월드시리즈 대흥행으로 국내 분위기 수습에 일조한 주연 선수에 대한 정치적인 연출의 뜻일 것으로 추정된다.[14] 여기에는 김병현 이전 애리조나의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고 있었던 맷 맨타이가 2002년 말부터 토미 존 서저리에서 복귀함에 따라 큰 문제 없이 전환이 이루어졌다. 김병현이 2001년부터 마무리 투수를 맡게 된 것 역시 맷 맨타이의 토미 존 서저리로 인한 장기공백에 따른 것이었다.[15] 포스트시즌 대비용으로 한번 로또 긁는 심정으로 영입했다는 설이 있다.[16] 두 외국인 선수를 제외한 넥센의 다른 1군 투수들에게 책정된 2013년 연봉을 다 합쳐도 6억이 안 된다.[17] 보스턴 시절엔 51번을 달고 우승해서 그럴지도 모른다.[18] kt 위즈 2군은 1군과 다르게 퓨처스 리그 최강이다.[19] 취임 초기~15시즌 종료 직후라면 이적이 가능했을지도 모르나 김성근이 2년 연속 지원은 받을만큼 받았음에도 가을야구에도 실패하고 혹사 논란까지 커지자 구단이 박종훈 단장을 필두로 쥐고 있던 권한을 대부분 회수해가버려서 아쉽게 되었다.[20] 유니폼 우측 소매에 붙인 패치를 통해 2002년 밀러 파크에서 열린 올스타 선발 당시의 유니폼임을 알 수 있다.[21] 직접 가본 사람들에 의하면 주문, 설거지 및 청소를 돕고 있었다고 한다.[22] 이 날 SK는 선발이 무너지면서 졌다.[23] 언더스로는 투구폼의 특성상 구속이 느릴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정대현의 구속은 130km/h 초중반 정도이다. 다만 정통 언더파라기보다는 구속을 높일경우 거의 사이드암 각도까지 올라오는 사이드암 형태의 언더핸더이다. 임창용보다 조금 더 낮은 포인트에서 공을 던진다.손영민과 비슷한 곳에서 나온다.전성기 때 이 투구폼에서 티안트(Luis Tiant) 디셉션 동작이 추가되기도 했다.[24] 사실 메이저리그에 언더핸드 투수가 잘 안 보이는 건 구속이 상대적으로 느린데다가 횡 변화구 위주인 언더핸드 투수들이 팔이 긴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 잘 안통해서이지 언더핸드 투수 자체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실제로 아마 레벨이나 마이너 레벨에서는 심심찮게 보이며, 그래서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언더핸드 스로우 투수가 생소해서 당했다라는 표현은 무리가 있는 표현이다.[25] 2002년 5월 11일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8회 말에 거둔 기록. 참고로 그다음 이닝에 토마스 페레즈에게 동점 홈런을 맞아 이날 선발투수였던 랜디 존슨의 승리를 날리고 말았다. 그러나 곧이어 10회에 애리조나가 주니어 스파이비의 적시타에 힘입어 역전에 성공했으며, 10회 말에 또 올라온 김병현이 경기를 잘 마무리 지으면서 이날 경기의 승리투수가 됐다.[26] 이론에 따르면 1이닝 5구 3탈삼진도 가능하다고 한다. 대신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확률은 극악이기 때문에 별로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http://m.blog.naver.com/umpire0117/60126862935 여기서 참조하자면 1.A를 전 투수가 2스트라이크를 잡고 자신이 교체되어서 삼진을 잡는다. 2.다음 타자 B를 삼구삼진으로 잡는다. 3.여기서 야구의 특이한 룰이 돋보이는데 일단 다음 타자인 C를 상대하기 직전 야수 X에게 투수를 맡긴다. 이후 X는 사구로 출루시키는 등 이닝을 종료시키지 못한다. 4.다음 타자인 D를 X가 2스트라이크를 잡은 이후 다시 투수 자신으로 교체되고 스트라이크를 잡아 삼진 아웃. 이 때 투수 자신의 투구수는 5구이다. 대신, 이 때 기록된 삼진은 D의 것이 아닌 C의 것이다.[27] 언더스로 투수의 강점 중 하나다. 대부분의 피처가 공을 위에서 아래로 던져 구속을 늘리는 추세인데, 이에 익숙한 타자들이 언더스로를 만나게 되면 익숙하지 않은 궤적과 구위에 헤매는 모습이 나오는 것이다. 거기다가 오버핸드 투수들이 떨어지는 변화구(체인지업, 포크볼)를 구사했다가 언더핸드의 업슛성 공을 보면 그냥 눈물만... 실제로 보면 언더핸드와 오버핸드가 같은 변화구를 던지더라도 던지는 지점이 달라서 각이 전혀 다르게 나온다. 즉슨 타이밍이나 치는 곳이 전혀 다르다는 말. 물론 눈에 익고 이닝이 쌓일수록 얄짤 없긴 하지만, 그래도 갑작스럽게 변한 타이밍을 맞추는 타자들은 리그에서 손에 꼽는다. 그렉 매덕스가 '구종을 읽어내는 선수는 가끔 있다. 그러나 그런 선수들도 구속에 완급을 주기 시작하면 꼼짝없이 당한다. 인간의 눈으로는 그걸 구분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토니 그윈 빼고.'라고 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28] 김병현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29] 굿데이 스포츠의 대주주가 경향신문이어서 이 논란은 경향신문과 엮이기도 했으며, 당시 경향신문 차세현 기자가 현물투자 지분관계만 있다고 언급하며 편집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의 이미지에도 치명타를 입힌 사건.[30] 여담으로, "너 취재 방해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라고 반말까지 하고 계속 김병현이 뚜껑 열릴 때까지 무시했다고 한다.[31] 이 경기는 체이스필드에서 치뤄진 다저스와 애리조나의 경기였는데 마침 다저스 선발투수가 류현진이었다.[32] 원래 마무리 보직을 가지고있는 투수는 경기와상관없이 5회까지 개인적으로 휴식을 취한다[33] 식당위치는 전남대학교 후문 부근 산쪼메라는 식당이다.[34] 가장 안 좋은 사례가 광주일고 선배였던 이호성. 무리한 사업확장과 과욕으로 나름 잘나가던 예식장 사업을 말아먹고 큰 빚을 지고 몰락했고 끝내 살인을 저질렀다. 반대로 가장 성공한 사례는 KIA 타이거즈 선배인 최해식푸르밀 CEO까지 오른 남우식이다.[35] 415명 중 308표[36] 1978년 프로에 데뷔해 디-백스가 마지막 팀이던 저니맨 투수인데, 이전 팀에서 획득한 우승반지가 없었다고 한다.[37] 이 앞에 이승우, 구자철 인터뷰가 있었다.[38] 정수근, 박명환의 경우 아프리카TV에서 토크의 수위가 기승전떡 19금을 넘을 때가 많아서 편집자가 애를 먹고 있다.[39] MLB, 미국독립리그, NPB, KBO, LIDOM, ABL에서의 기록, MiLB 기록은 하단에 분리하였다.[40]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으나 스스로 퇴단하였으며, 이후 미국 독립리그의 오렌지 카운티 플라이어스에 입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