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15 02:10:33

김병현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한화 이글스의 좌완투수에 대한 내용은 김병현(1998)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김병현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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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2001 2004

파일:oeiwjnFKre1sqk8veo7_r1_540_2.jpg 1995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MVP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49번
조평호(2011) 김병현(2012~2014) 김영광(2014)
KIA 타이거즈 등번호 45번
김영광(2014) 김병현(2014~2016) 팻 딘(2017~2018)

{{{#ffffff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등번호 49번}}}
브라이언 코리
(1998)
김병현
(1999~2002)
에드가 곤잘레스
(2003)
에드가 곤잘레스
(2003)
김병현
(2003)
에드가 곤잘레스
(2004)

{{{#ffffff [[보스턴 레드삭스|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32번}}}
피트 쇼렉
(1998)
김병현
(2003)
케빈 톨라
(2003)
케빈 톨라
(2003)
김병현
(2004)
클라 메레디스
(2005)

{{{#ffffff [[콜로라도 로키스|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49번}}}
제이슨 영
(2003~2004)
김병현
(2005)
호세 메사
(2007)

{{{#ffffff [[콜로라도 로키스|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48번}}}
팀 올슨
(2005)
김병현
(2006)
제이슨 허쉬
(2007~2008)

{{{#ffffff [[콜로라도 로키스|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49번}}}
팀 하리칼라
(2007)
김병현
(2007)
제이슨 그릴리
(2008)

{{{#00a3e0 [[마이애미 말린스|플로리다 말린스]] 등번호 49번}}}
아르만도 베니테스
(2007)
김병현
(2007)
아르키메데스 카미네로
(2013)

{{{#00a3e0 [[마이애미 말린스|플로리다 말린스]] 등번호 38번}}}
다니엘 바론
(2007)
김병현
(2007)
랜디 초트
(2011)

{{{#00a3e0 [[마이애미 말린스|플로리다 말린스]] 등번호 23번}}}
랜디 메신저
(2005~2006)
김병현
(2007)
랜디 메신저
(2007)

{{{#ffffff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등번호 51번}}}
J. D. 더빈
(2007)
김병현
(2007)
밥 위크먼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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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FC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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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이름 역할 등번호
축구 안정환 감독 -
연예 김성주 중계/선수 28
연예 정형돈 해설/선수 99
씨름 이만기 주장/선수 49
농구 허재 부주장/선수 90
연예 김용만 선수 19
야구 양준혁 선수 10
야구 김병현 선수 18
육상 이봉주 선수 41
체조 여홍철 선수 7
테니스 이형택 선수 3
사격 진종오 선수 5
격투기 김동현 선수(GK) 8
배구 김요한 선수 25
빙상 모태범 선수 89
수영 박태환 선수 11
전 소속 선수
종목 이름 역할 등번호
레슬링 심권호 선수 55
용병
종목 이름 출연 회차 입단
야구 김병현 16화 O
빙상 모태범 17화~18화 O
유도 이원희 19화 X
농구 이충희 21화 X
수영 박태환 23화~24화 O
야구 이종범 27화 ?
}}} ||
파일:김병현1.jpg
김병현
(金炳賢 / Kim Byung-hyun)
생년월일 1979년 2월 15일[1] ([age(1979-02-15)]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광주광역시 북구
신체 176cm, 85kg, A형
학력 광주수창초 - 무등중 - 광주일고
- 성균관대학교[2] (중퇴)
포지션 투수
투타 우언우타
프로 입단 1997년 고졸우선 지명 (해태)
1999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ARI)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현대)[3]
소속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1999~2003)
보스턴 레드삭스 (2003~2004)
콜로라도 로키스 (2005~2007)
플로리다 말린스 (2007)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7)
플로리다 말린스 (2007)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1)
넥센 히어로즈 (2012~2014)
KIA 타이거즈 (2014~2016)
히간테스 델 시바오 (2017)
멜버른 에이시스 (2018~2019)
지도자 경력 광주제일고등학교 투수 인스트럭터 (2018)
해설위원 MBC 메이저리그 야구 해설위원 (2019~)
병역 병역특례[4]
종교 불교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
3.1. 김병현의 보직 논란
4. 성격 및 일화
4.1. 별명들4.2. 굿데이 스포츠신문 사건4.3. 경기장과 훈련 과정에서4.4. 그 외
5.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파일:본투케이.jpg
삼진을 잡는 능력만큼은 나보다도 뛰어나다.
- 랜디 존슨

한국의 전직 야구선수이자 요식업 사업가 겸 MBC 야구해설위원.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중 한명으로서 한국인 최초이자 동양인 최초로 양대리그에서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월드 시리즈 우승을 맛본 선수이다.[5][6]

2. 선수 경력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병현/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 시절엔 언더스로면서도 평균 140km 중반, 최고 156km/h를 던지는 엄청난 강속구를 자랑했으며,[7] 뱀처럼 휘어지는 프리즈비 슬라이더와 업슛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거기다 업슛, 싱커, 프리즈비 슬라이더, 백도어 슬라이더가 홈플레이트에서 각각 상하좌우로 휘어지는 구종이기 때문에 타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공포였다.
파일:external/lh4.googleusercontent.com/%25EC%2597%2585%25EC%258A%259B.gif 파일:BK_Slider.gif
업슛 슬라이더

특히 그 중에서도 프리즈비 슬라이더의 엄청난 각도로 날카롭게 휘어졌던 터라 위의 이미지처럼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임에도 타자는 그것이 몸쪽으로 들어오는 공인 줄 착각하여 휘두르는 일이 있었을 정도다. 여기에 특유의 구위와 메이저리그에서는 도통 찾아볼 수 없는 언더핸드 투수라는 유니크함[8]이 더해지면서 김병현은 전성기 시절 동안 말 그대로 리그를 완전히 씹어 먹었다. 이 과정에서 무지막지한 탈삼진율까지 기록하며 Born to K, 일명 BK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1이닝 9구 3탈삼진[9][10]라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약 40여명의 투수 밖에 이루지 못한 일대 업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50107093914254.jpg

빅 유닛과 함께.

당시 랜디 존슨과 그의 등번호의 합이 정확히 100(51+49)이었던 까닭에 둘이 이어서 던지면 완벽하다는 농담이 있었으며, 장신(長身)인 랜디 존슨이 던진 직후 김병현이 나와 언더핸드로 던질 경우 이전까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공에 익숙해져 있던 기존 타자들은 공이 갑자기 지하 밑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왔다.[11] 덕분에 랜디 존슨의 별명인 '빅 유닛'에 빗대어 김병현에게 '리틀 유닛'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정작 김병현 본인은 이 별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랜디 존슨은 "삼진을 잡는 능력만은 나보다도 뛰어나다."란 이야기를 하기도 했으며, 블라디미르 게레로[12]로부터 "저런 지저분한 공을 던지는 투수는 MLB에서 당장 퇴출시켜야 한다."는 립서비스성 발언을 듣기도 했다.

자신의 공에 상당히 자신이 있는지 적극적인 승부를 즐긴다. 일본의 대타자 스즈키 이치로는 김병현을 경기장에서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13] 보통 투수들은 자신의 정교한 컨택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비해 김병현은 그 구위가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떠나 지금 타석에 서 있는 타자가 누구인지 전혀 관심 없는 듯 공을 던졌다고 말했다. 즉 언더핸드치고는 유니크한 구속과 구위에 더불어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괴물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타자든지 상관하지 않고 삼진을 잡겠다는 엄청난 배짱으로 무장한 거의 완성형에 가까운 투수였다는 것.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부러진 배트로 인해 발목부상만 안당했어도 라는 떡밥이 생기는 투수다.

3.1. 김병현의 보직 논란

김병현이 선발 욕심을 부린 탓에 커리어가 망가진 것이며, 그가 그대로 마무리를 했었더라면 마리아노 리베라, 트레버 호프먼에 버금가는 투수가 되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팬들도 간혹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보직의 특성상 한두 시즌 반짝한 뒤 사라지는 마무리 투수가 많아서 사실상 야만없급의 의미없는 가정이다. 쉽게 말해, 계속 마무리로 남았다 한들 꼭 대성하리란 보장은 없었다는 뜻이다.

또한 김병현은 부상을 입기 전까지만 해도 선발로 출전하여 매우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커리어를 망쳤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 건 부상으로 인해 본래 구위를 잃은 뒤의 일이다. 요컨대 부상이 문제가 된 것이지, 보직과는 별다른 관계없었다는 이야기라는 관점도 있다.

김병현의 부진이 시작된 것은 2004년으로,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며 선발로도 불펜으로도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2005년 콜로라도 입단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조정방어율 100을 넘기지 못하고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하게 된다.

발목을 맞은 2003년 시즌에는 훌륭한 성적을 냈으나 이후 부진이 시작된 것으로 볼 때, 부상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시점에서 김병현은 보직에 대한 불만과 그로 인한 코칭스태프와의 충돌 등으로 인해서 감독이나 코치 등과 불화를 겪는 경우가 많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애리조나를 떠나 타격이 강한 AL동부의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었으며, 2005년에는 투수들의 지옥 쿠어스필드를 홈으로 쓰는 콜로라도로 트레이드 되었다.

김병현은 혹사와 부상 이후 관리에 중점을 둬야 할 시기에, 각 구단들의 이해타산으로 인해 트레이드로 팔리는 선수로 전락하면서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기에는 어려운 팀들을 떠돌게 되었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화려했던 애리조나 시절에 너무 구른 나머지 커리어에 타격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풀타임 마무리로 뛰기 시작한 00년부터 최전성기라 볼 수 있는 02년까지 김병현이 던진 이닝은 포스트시즌 포함해서 각각 70.2-107.2-85이닝인데 이건 불펜 투수로써는 엄청나게 많이 이닝을 소화한 거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이때의 혹사가 선수생활 전체를 갉아 먹었을 가능성도 크다. 김병현이 몸이 늦게 풀리는 타입이라 불펜에서 거의 선발투수급으로 공을 던지고 나서야 경기에 등판했다는 증언을 생각해보면 실제 경기에서 던진 것보다도 대미지가 컸을 것이다.

김병현의 바람처럼 선발로 완전 전향했다면 전성기가 좀 더 연장되었을지도 모른다. 선발은 5인 로테이션제 때문에 그나마 계투보다는 관리를 받는 편이기 때문이다. 상술된 2003년 시즌만 봐도 7월부로 마무리 전향해서 정규시즌 끝나는 9월 29일(거의 10월)까지 거의 3달 동안 42경기를 찍었는데 이건 관리 부실을 넘어 엄청난 혹사다. 03시즌 보스턴에서의 막판 마무리 전향(+혹사)가 전성기를 일찍 마감하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김병현이 마무리 전향 없이 2003년을 풀타임 선발로 소화했다면 좀 더 관리받을 수 있었을 테고, 그만큼 전성기도 좀 더 연장되었을 것이다.

4. 성격 및 일화

파일:external/s23.postimg.org/qt_MGj_N1g_GOFbh_Aneps95_Ufw_O4_Vf_D4_Yi_T.jpg

화려한 경력에 비해, 인터뷰때 발언이나 이런저런 일화들을 살펴보면 굉장히 소탈하고 솔직한 성격이다. 다만 그다지 대인친화적이지 못한 탓에 언론 매체들과 트러블이 많았다. 데뷔 초기에 첫 세이브 후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일 한국신문에 이거 대문짝만하게 나오나요?' 발언 등으로 PC통신 유저들 사이에서는 끼 많고 재미있는 청년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고, 언론도 그에 대해 공격성 기사를 쓰는 일은 없었다. 막상 시즌이 끝난 뒤 내한 후에는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려 그 때부터 언론과의 사이가 틀어졌다. 당시 PC통신에 김병현의 후배 고등학생의 글에 따르면 김병현이 내한 후에 일정을 기자들에게 공개하지 않아서 고등학교에 기자들이 미리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하는데 기자들 사이에서 김병현에 대한 쌍욕이 난무 했었다고 한다. 이는 홈런을 친 뒤 모자를 벗어 답례를 하자 기자들이 이를 곡해하여 거만하게 굴었다는 식으로 기사를 게재한 이후 현역 시절 동안 결코 답례로 모자를 벗지 않았던 테드 윌리엄스와도 비슷한 케이스다.

또한 김병현 특유의 돌출 행동도 언론이나 일부 팬과의 관계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 보통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대한 일을 좋게좋게 해결하려고 드는데 그런 면이 많이 부족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이런 면은 많이 개선되었다.

이렇고 저런 이야기들이 많은데 2000년대 후반 들어서 주목받는 것은 특유의 정신세계로 인한 기행을 들 수 있겠다. 불암콩콩코믹스에서도 그라운드의 악동들 편에서 소개를 했는데, 악동이라기보단 기인인듯 이라는 평을 남겼다. 이 덕분에 전성기 때나 막장이 된 10년도 후반이나 야갤에서 매우 좋아한다. 거의 들 급으로 소스를 끊임없이 공급해주기 때문에...

4.1. 별명들

그의 별명들중에서 인터넷 상에서 가장 유명한 별명은 바로 김좆키. 자세한 건 김좆키 문서 참조. 또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쎄우는 욕의 단어를 순화시켜 표현한 김중지 혹은 김법규 등이 있다. 김좆키보다는 덜하지만 간혹 쓰이는 표현. 2000년대 말까지는 좆키 합성짤과 함께 김좆키로 불렸지만 2010년대 이후 한국 복귀후부터는 법규, 법규형님, 법규성님등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출신이라는 것에 착안해 법대 나온 법규형님이라는 별명도 있다. 원래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했지만 점차 부정적인 의미는 퇴색되고 사실상 애칭으로 고정되었다는 면에서는 라뱅의 이병규, 빵형/빵회장의 박재홍과 비슷하다.

멘탈왕 김병현에 대한 메이저리거들의 증언.

4.2. 굿데이 스포츠신문 사건

여러 어록이나 일화 중에서도 김병현 폭행 논란이라 불리는 굿데이 스포츠과의 트러블[14]은 매우 유명하다. 물론 후술할 이 사건은 상황을 잘 파악해서 읽자.

김병현은 기존부터 휴식 기간에는 조용히 지인들과 시간 보내길 즐겼던 스타일로 당시에도 김병현은 조용히 국내로 돌아와 지인들을 만나고, 헬스클럽에서 개인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헌데, 그런 김병현이 모 헬스클럽을 자주 찾는다는 정보를 입수한 스포츠 신문, 굿데이의 한 기자는 해당 헬스클럽에 계속 잠복해 있다가 김병현을 나타나자마자 허가도 받지 않고 사진을 찍어대며 매우 고압적인 태도로 인터뷰를 강제로 진행[15]하려고 했다. 이에 김병현은 촬영과 인터뷰를 거부했고, 결국 인터뷰를 강행하려는 기자와 이를 거부하려는 김병현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져 기자의 카메라가 손상되는 일이 벌어졌다.

문제는 이 일에 앙심을 품은 해당 기자가 다른 스포츠 신문사 기자들과 결탁하여 이 기회에 이전부터 취재에 매우 비협조적이었던 김병현을 모함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헬스클럽에서 만난 김병현에게 정중히 취재를 요청했으나, 김병현은 이를 무시하고 안하무인 격으로 거만하게 굴더니 급기야 기자에 폭행까지 가해 카메라를 부수고, 해당 기자는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특종을 내보냈다. 또한, 이후 결탁한 다른 스포츠 신문사 기자들 역시 해당 특종이 터지기가 무섭게 앞다투어 이 신문 기사를 인용하여 폭행 사건을 대서특필, 김병현을 천하의 개쌍놈으로 몰아붙였다.

이날 목격자도 폭행을 한것으로 당시 보도되어 사태는 점차 악화 되었다. 2003년 기사

물론 김병현 측도 이에 대한 해명을 나서긴 했으나, 기존부터 언론을 통해 줄곧 안 좋은 모습으로 묘사됐던 김병현이었던 터라 이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김병현은 억울하게도 휴식 기간 동안 내내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아야 했으며, 제대로 쉬지 못한 탓에 컨디션까지 엉망이 되어 시즌 자체를 전부 망치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기자회견 자리에서 해당 기자가 "그 XX, 거들먹 거리긴."이라고 말한 동영상이 퍼지고, 당시 사건의 정확한 내막과 전후 사정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 반대로 무고한 김병현을 음해한 기레기들 쪽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 와중에 김병현을 옹호하던 차두리싸이월드에 욕설이 섞인 악플을 단 이가 있었는데, 이 IP를 추적한 결과, 악플을 단 게 다름 아닌 굿데이 측이었다는 사실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보도 되었고, 결과적으로 기자들을 향한 비난 수위는 더욱더 높아졌다. 사실 이러한 기사가 데스크에서 통과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굿데이 측의 계속된 경영부진이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역풍을 맞으면서 판매 부수가 급감하고, 광고까지 상당수 떨어져 나갔고, 결국 굿데이는 6개월 뒤 폐간되고 말았다.

위에서 설명했던 굿데이 기자와의 논란 때문인지, 디씨에 김병현기자폭행논란 갤러리가 개설되기도 했다. 거의 10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다가, 몇몇 유저들에 의해 발굴된 이후로는 어째 그냥 김병현 개인 갤러리 느낌이다...만 현실은 거의 정전상태다.

이후 공항에서 법규 날린것도 비슷한 맥락.. #

4.3. 경기장과 훈련 과정에서

  • 야구 관련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월드시리즈 중의 두 경기 연속 끝내기 홈런. 이 홈런으로 인해 김병현의 소속팀 애리조나는 쉽게 가져갈 수 있었던 경기를 놓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시리즈는 일대 혼전에 빠졌다. 더욱이 당시 김병현이 시즌 중 언터처블이라 할 만한 대단한 활약을 펼쳤던 터라 이 일은 더욱 드라마틱하게 다가왔다. 덕분에 이 장면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역대 명장면 중 하나로 꼽혀, 전미에 수도 없이 방송됐다. 아무래도 본인으로서는 조금 민망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 하겠다.
  • 콜로라도 시절 선발승을 따내고 Xports와 화상 인터뷰하던 중 이미 인터뷰가 끝난 걸로 착각하고 헤드셋을 벗더니 그대로 사라진 일도 꽤 유명하다. 당황하는 중계진과 카메라가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쓸쓸히 찍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미묘한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 2006년 1회 WBC 당시에는 경기 전 영상을 찍고 있던 허구연과 한광섭 뒤에서 '카메라에 나오고 싶어하는 초딩' 같은 모습을 연출하여 인터넷 상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파일:BK_5.gif
  • 복귀를 위해 훈련하던 중에는 자택에서 훈련장까지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서 간 적이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특별할 건 없는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미국은 한국 국토의 40배가 넓는 광활한 영토를 자랑한다. 자택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훈련장은 저 멀리 플로리다마이애미에 있었다는 것이다. 비행기로 5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도중에 주차장에서 3시간 잔 게 전부인데도 자그만치 60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이후엔 훈련을 시작한지 3일만에 부상 징후가 나타나서 결국 자동차 두고 곧장 비행기로 귀가해야 했다.
  • 애리조나에서 데뷔했고 성적도 애리조나 시절이 가장 좋았지만, 애리조나를 떠나는 과정이 썩 매끄럽지 못했던 탓에 애리조나 팬들은 그를 무척 싫어했다. 이 때문에 플로리다에서 뛰다가 잠시 애리조나로 트레이드 돼서 첫 등판을 했을 당시에는 홈 관중들에게 야유 세례를 받기도. 물론 지금은 시간이 시간인지라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고 역대 팀 올스타에 마무리투수로 뽑히기까지 하는 것을 봤을때 이미지가 좋아졌다. 게다가 2018년 4월 3일에는 시구까지 했다.[16]

4.4. 그 외

파일:BK_4.jpg
  • 독특한 일화가 무척 많은데 마무리 시절엔 경기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라커룸에 누워 낮잠을 자질 않나[17], 구단에서 준 집을 원룸으로 개조하는가 하면, 선발 전환 이후에는 출전 당일에도 컨디션 조절을 하기는커녕 비디오게임기로 야구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차에 내비게이션이 달려 있는데도 그게 뭔지 몰라서 한 번도 사용을 안 하질 않나, 사인해달라는 팬들의 요청에 경보로 도망가다 잡히니 그제서야 사인한다던가, 갑자기 관중에게 중지를 세우거나 스즈키 이치로가 1회 WBC에서 언급한 30년 발언을 듣고 "만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거 아닌가…."라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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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벤틀리AWD 세단플라잉스퍼의 오너이기도 한데, 2007년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클린트 허들 당시 콜로라도 감독과 투수코치와의 불화로 인해 "화가 난 김에 나도 이런 차를 타고 다닌다고 과시하려고 해서 플라잉 스퍼를 구입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차는 그가 넥센 히어로즈에 입단한 후 한국으로 갖고 왔는데, 문제는 플라잉 스퍼의 앞 범퍼에 번호판이 없었다는 것. 미국애리조나, 조지아, 캔자스같은 일부 주에서는 앞면에 번호판을 안 달아도 되지만, 한국에서는 무조건 전면에 번호판을 달아야 한다. 안 그러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덤으로 이 벤틀리를 부담없이 편안하게 운전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데 범퍼 아래쪽에 긁힌 자국부터 먼지까지 쌓여있는데 이를 본 프로야구의 한 관계자가 차 자체도 보기 드물지만 이렇게 관리가 안된 벤틀리는 단 한대밖에 없을거라고 얘기를 했다. 얼마나 관리를 안하는지 2012년 6월 20일 프로야구 롯데전에서 첫번째로 승리한 기념으로 오랜만에 세차를 했다. #
  •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이런 면모는 여전히 변함없었다. 2001년 월드시리즈 우승 후 한국 팬들을 위해 월드 시리즈 반지의 국내 기증 의사를 밝혔는데, 당분간 이 반지를 끼지 않고 집에 보관한 뒤 귀국 후 한국야구위원회(KBO)나 제주도의 야구박물관에 기증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증할 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국내은행에 보관을 하였다. 대한민국에 복귀하고 얼마 후, KBO 측에선 메이저리그 우승 반지를 KBO 박물관에 기증하지 않겠냐는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고, 김병현 역시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문제는 김병현이 언젠가 은행에서 찾아왔는데 정작 이 우승 반지를 어디에 둔지 몰라서 기증을 당장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병현 특유의 성격을 짐작케 하는 일화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상술한 사건들이 있는 터라 마냥 좋은 추억만 담긴 물건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사실 그 반지 하나 얻어 보고자 온갖 비난과 푸대접을 감수하고 팀을 옮기는 선수도 굉장히 많다. 시간이 흘러 그냥 분실로 끝나나 싶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2016년에 차 트렁크 청소하다가 찾았다고 먼저 알려왔다. 일련된 과정을 보면 이해가 가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KBO가 명분 없이 우승반지를 얻어내려고 한다고 욕을 하였고, 김병현은 주기 싫어서 잃어버린 척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을 하였다. 정말 주기 싫었으면 처음부터 기증 이야기도 안했고, 분실한 반지를 찾고도 못 찾은 척 입 다물 수 있었는데 먼저 나선 것을 보면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다시 언급될때 뭐 잃어버릴 수도 있지란 반응을 보인 듯. 그런데 2019년 라디오스타에서 밝히길 이사를 하면서 또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한다...#[19]
  • 2015년 5월 17일 KIA 타이거즈 1군으로 복귀한 김병현에게 광주일고 3인방이 모이니 어떠냐?라는 질문을 하니 광주일고요? (라커룸)안에 광주일고 애들 많은데. 아 빅리거. 에이 별 의미 없어요. 라며 시크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 2015년 6월 2일 두산 베어스전에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고 있던 서재응에게 다른 투수들도 투구감각 땜에 던져야 하니까 이만 그만 던져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날 경기에 호투하던 서재응은 그 말을 따랐고 한다. 역시 광주일고 1년 선배인 서재응에게 팀 내에서 이렇게 직설적인 말을 할 수 있는 선수는 김병현을 포함해 몇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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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에서도 거론된 것처럼 미국에서 일식당을 운영하고 있지만, 김병현 본인이 직접 경영하는 게 아니라 전문 경영인에게 위탁해서 운영하고 있다. 김병현은 현명한 방법을 택한 것인데, 대부분 운동선수들이 고액 연봉만 믿고 무턱대고 직접 사업에 나서다가 실패한 숱한 사례[21]에 비하면 전적으로 전문 경영인에게 위임하여 꾸준히 수익을 내는 김병현의 판단이 옳았다. 해방촌에서도 '팟카파우'라는 태국 음식점도 운영하는 중이며 광주 예술의 거리에 광주제일햄버고라는 수제 햄버거집을 운영하고 있다.
  • 2016년 1월 화성 히어로즈의 감독격인 필드 코디네이터로 대한민국에 온 쉐인 스펜서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병현이 아직도 뛰나?"란 질문을 던져 화제를 모았다. 전술한 대로 쉐인 스펜서가 현역 시절 김병현에게 깨진 전력이 있었기 때문. 쉐인 스펜서의 김병현 상대 전적은 5타수 무안타 3삼진이다.
  • 한창 잘 나가던 2002년에는 자신에 팔에 대한 10억원짜리 보험에 가입한 적이 있었다.
  • 애리조나 디백스 팬투표에서 무려 74%의[22] 득표율로 애리조나 역대 마무리 1위달성했다.



  •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연상은 아나운서와 함께 출연해서 좋은 케미를 보여주고 그야말로 온갖 썰을 풀었다. 월드시리즈에서 홈런 맞은 얘기도 했다. 한번, 두번까지는 별 데미지가 없다가 세번째 피홈런엔 주저앉게 됐는데 낙심해서가 아닌 팀 고참이면서 자신과 친한 마이크 모건[23]이 생각나서 주저앉았다고 한다. 또한 김선우와 전화연결 시간을 가졌는데 김선우 본인이 김병현에게 야구를 많이 배웠다고 한다.


  • 2019년 4월 24일 트위치를 통해 진행된 SBS 모바일 24의 '배거슨 라이브'에 출연하여[24] 야구 관련 에피소드, 명대사 해명의 시간과 근황롯데리아 디스을 풀고 갔는데, 배성재 아나운서의 타노스 건틀렛으로 짤방을 남기고 갔다. 여기서 해방촌에 지분투자 형태로 태국 음식점도 열었다고 언급했다.
  • 방송에서 푸는 에피소드를 보면, 다른 전직 야구선수 방송인들에 비해[25] 훨씬 순한맛 소탈한 에피소드를 풀어주는 편이다.
  • 인스타도 하는데, 인스타를 보면 가족을 많이 사랑하는 모습이 보인다. 배우자 한경민 씨는 뮤지컬 배우 출신이고,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다.
  • 제9대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한 맷 윌리엄스와는 2001년 월드 시리즈 우승 주역으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같이 있었던 팀 동료 지간이다. 홈런맞을 때 위로받아서 그런지 김병현은 윌리엄스 감독을 멋진 사나이로, 윌리엄스 감독은 김병현을 지저분한 공을 가진 좋은 투수로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김병현이 사업을 하느라 2020 시즌은 함께 하지 못한다고. 대신 2020시즌 스프링캠프때 인스터럭터로 합류하려 했으나 불발되었다.
  • 병역특례 혜택을 받은 후에도 꾸준히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뛰어왔다.사실 축구와 달리 야구는 국가대표의 메리트가 명예나 병역특례 말고는 없다시피 한데,꽤 이례적 케이스라고도 할 수 있다.
  • 야구선수로써는 흔하지 않은 비흡연자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2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선발 완투 완봉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1999 ARI 25 0 0 0 27⅓ 1 2 3 1 4.61 20 25 31 1.46
2000 61 1 0 0 70⅔ 6 6 5 14 4.46 52 55 111 1.39
2001 78 0 0 0 98 5 6 11 19 2.94 58 52 113 1.04
2002 72 0 0 0 84 8 3 0 36 2.04 64 32 92 1.07
2003 ARI / BOS 56 12 0 0 122⅓ 9 10 1 16 3.31 104 40 102 1.12
2004 BOS 7 3 0 0 17⅓ 2 1 0 0 6.23 17 8 6 1.38
2005 COL 40 22 0 0 148 5 12 1 0 4.86 156 79 115 1.53
2006 27 27 0 0 155 8 12 0 0 5.57 179 69 129 1.55
2007 COL / ARI / FLA 28 22 0 0 118⅓ 10 8 0 0 6.08 131 84 107 1.68
2008 PIT 메이저리그 기록 없음
2009 소속팀 없음
2010 오렌지 카운티[27] 10 9 0 0 45⅔ 3 1 0 0 2.56 39 27 48 1.38
2011 라쿠텐 1군 기록 없음
2012 넥센 19 12 0 0 62 3 8 3 0 5.66 65 48 43 1.27
2013 15 14 0 0 75⅓ 5 4 0 0 5.26 71 49 43 1.12
2014 KIA 21 15 1 0 71 3 6 0 0 7.10 88 40 66 1.42
2015 23 8 0 0 49 0 5 2 0 6.98 67 29 38 1.59
2016 1군 기록 없음
2017 히간테스 델 시바오 등판 기록 없음
2018-19 멜버른 9 0 0 0 9⅔ 0 0 0 1 0.93 6 5 9 1.14
MLB 통산
(9시즌)
394 87 0 0 841 54 60 21 86 4.42 781 444 806 1.38
KBO 통산
(4시즌)
78 49 1 0 257⅓ 11 23 5 0 6.19 291 166 190 1.33
ABL 통산
(1시즌)
9 0 0 0 9⅔ 0 0 0 1 0.93 6 5 9 1.14
역대 기록(MiLB)
연도 소속팀 경기수 선발 완투 완봉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1999 AZL 다이아몬드백스(루키리그) 1 1 0 0 2 0 0 0 0 0.00 1 1 2 1.00
1999 엘 파소(더블 A) 10 0 0 0 21⅓ 2 0 0 0 2.11 6 5 32 0.70
1999 투산(트리플 A) 11 3 0 0 30 4 0 0 0 2.40 21 16 40 1.20
2000 투산(트리플 A) 2 2 0 0 8⅓ 0 0 0 0 0.00 1 4 13 0.60
2003 투산(트리플 A) 3 3 0 0 17⅔ 1 1 0 0 2.55 17 3 8 1.02
2004 사라소타 (싱글 A) 1 1 0 0 2 0 0 0 0 0.00 0 0 2 0.00
2004 포터킷 (트리플 A) 22 19 0 0 60⅔ 2 6 0 0 5.34 71 18 39 1.37
2006 콜로라도 스프링스
(트리플 A)
3 3 0 0 13 0 1 0 0 6.23 18 4 11 1.69
2007 콜로라도 스프링스
(트리플 A)
5 5 0 0 24⅓ 1 1 0 0 2.96 21 11 31 1.32
MiLB 통산
(6시즌)
58 37 0 0 179⅓ 10 9 0 0 3.56 156 62 178 1.19
역대 기록(NPB 2군)
연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2011 라쿠텐 18 0 0 0 0 2.66 19 7 18 20⅓


[1] 음력 1월 19일.[2] 법학과 97학번.[3] 현대 해체 후 선수단과 프런트를 기반으로 재창단한 히어로즈로 지명권이 인계되었고, 한국 복귀 후 계약은 2012년에 이루어졌다.[4]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5] 200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6] 날고기는 선수들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단 한번도 못하고 은퇴하는 케이스가 수두룩한 메이저리그에서는 엄청나게 복받은 케이스다. 30년 연속으로 우승을 못한 건 긴 축에도 못 들어가는 게 이 바닥 현실이라(...) 딱히 이상한 것도 아니다. 일례로 코리안특급이라 불리던 박찬호도 NLCS 우승 반지는 얻었지만 WS 우승 반지는 결국 못 얻고 은퇴했으며(대신 노모 히데오를 제치고 동양인 최다승 기록은 세웠다) 2001년부터 꾸준히 메이저리그를 폭격중인 스즈키 이치로는 월드 시리즈 우승 횟수가 0회다.(...)거기에 이치로는 우승이 문제가 아니라 월드시리즈 무대 자체를 밟아보지 못했다.[7] 언더스로는 투구폼의 특성상 구속이 느릴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정대현의 구속은 130km/h 초중반 정도이다. 다만 정통 언더파라기보다는 구속을 높일경우 거의 사이드암 각도까지 올라오는 사이드암 형태의 언더핸더이다. 임창용보다 조금 더 낮은 포인트에서 공을 던진다.손영민과 비슷한 곳에서 나온다.전성기 때 이 투구폼에서 티안트(Luis Tiant) 디셉션 동작이 추가되기도 했다.[8] 사실 메이저리그에 언더핸드 투수가 잘 안 보이는 건 구속이 상대적으로 느린데다가 횡 변화구 위주인 언더핸드 투수들이 팔이 긴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 잘 안통해서이지 언더핸드 투수 자체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실제로 아마 레벨이나 마이너 레벨에서는 심심찮게 보이며, 그래서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언더핸드 스로우 투수가 생소해서 당했다라는 표현은 무리가 있는 표현이다.[9] 2002년 5월 11일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8회 말에 거둔 기록. 참고로 그다음 이닝에 토마스 페레즈에게 동점 홈런을 맞아 이날 선발투수였던 랜디 존슨의 승리를 날리고 말았다. 그러나 곧이어 10회에 애리조나가 주니어 스파이비의 적시타에 힘입어 역전에 성공했으며, 10회 말에 또 올라온 김병현이 경기를 잘 마무리 지으면서 이날 경기의 승리투수가 됐다.[10] 이론에 따르면 1이닝 5구 3탈삼진도 가능하다고 한다. 대신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확률은 극악이기 때문에 별로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http://m.blog.naver.com/umpire0117/60126862935 여기서 참조하자면 1.A를 전 투수가 2스트라이크를 잡고 자신이 교체되어서 삼진을 잡는다. 2.다음 타자 B를 삼구삼진으로 잡는다. 3.여기서 야구의 특이한 룰이 돋보이는데 일단 다음 타자인 C를 상대하기 직전 야수 X에게 투수를 맡긴다. 이후 X는 사구로 출루시키는 등 이닝을 종료시키지 못한다. 4.다음 타자인 D를 X가 2스트라이크를 잡은 이후 다시 투수 자신으로 교체되고 스트라이크를 잡아 삼진 아웃. 이 때 투수 자신의 투구수는 5구이다. 대신, 이 때 기록된 삼진은 D의 것이 아닌 C의 것이다.[11] 언더스로 투수의 강점 중 하나다. 대부분의 피처가 공을 위에서 아래로 던져 구속을 늘리는 추세인데, 이에 익숙한 타자들이 언더스로를 만나게 되면 익숙하지 않은 궤적과 구위에 헤매는 모습이 나오는 것이다. 거기다가 오버핸드 투수들이 떨어지는 변화구(체인지업, 포크볼)를 구사했다가 언더핸드의 업슛성 공을 보면 그냥 눈물만... 실제로 보면 언더핸드와 오버핸드가 같은 변화구를 던지더라도 던지는 지점이 달라서 각이 전혀 다르게 나온다. 즉슨 타이밍이나 치는 곳이 전혀 다르다는 말. 물론 눈에 익고 이닝이 쌓일수록 얄짤 없긴 하지만, 그래도 갑작스럽게 변한 타이밍을 맞추는 타자들은 리그에서 손에 꼽는다. 그렉 매덕스가 '구종을 읽어내는 선수는 가끔 있다. 그러나 그런 선수들도 구속에 완급을 주기 시작하면 꼼짝없이 당한다. 인간의 눈으로는 그걸 구분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X같은 토니 그윈 빼고.'라고 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12] MLB 역사상 최고의 배드볼 히터로 웬만한 공은 다 치는 선수다.[13] 김병현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14] 굿데이 스포츠의 대주주가 경향신문이어서 이 논란은 경향신문과 엮이기도 했으며, 당시 경향신문 차세현 기자가 현물투자 지분관계만 있다고 언급하며 편집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의 이미지에도 치명타를 입힌 사건.[15] 여담으로, "너 취재 방해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라고 반말까지 하고 계속 김병현이 뚜껑 열릴 때까지 무시했다고 한다.[16] 이 경기는 체이스필드에서 치뤄진 다저스와 애리조나의 경기였는데 마침 다저스 선발투수가 류현진이었다.[17] 원래 마무리 보직을 가지고있는 투수는 경기와 상관없이 5회까지 개인적으로 휴식을 취한다.[18] 다만 30년간 일본을 이기지 못하게 해주겠다는 발언은 부풀려진 것이다. 본래 의미는 30년간 일본 야구대표팀을 그 어느 나라도 못 이길 강팀으로 만들겠다는 것.[19] 해당 영상의 5분 12초부터[20] 식당위치는 전남대학교 후문 부근 산쪼메라는 식당이다.[21] 가장 안 좋은 사례가 광주일고 선배였던 이호성. 무리한 사업확장과 과욕으로 나름 잘나가던 예식장 사업을 말아먹고 큰 빚을 지고 몰락했고 끝내 살인을 저질렀다. 반대로 가장 성공한 사례는 KIA 타이거즈 선배인 최해식푸르밀 CEO까지 오른 남우식이다.[22] 415명 중 308표[23] 1978년 프로에 데뷔해 디-백스가 마지막 팀이던 저니맨 투수인데, 이전 팀에서 획득한 우승반지가 없었다고 한다.[24] 이 앞에 이승우, 구자철 인터뷰가 있었다.[25] 정수근, 박명환의 경우 아프리카TV에서 토크의 수위가 기승전떡 19금을 넘을 때가 많아서 편집자가 애를 먹고 있다.[26] MLB, 미국독립리그, NPB, KBO, LIDOM, ABL에서의 기록, MiLB 기록은 하단에 분리하였다.[27]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으나 스스로 퇴단하였으며, 이후 미국 독립리그의 오렌지 카운티 플라이어스에 입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