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1 02:02:54

이봉주

파일:external/www.samsungrunner.co.kr/20111028151440.jpg
이름 이봉주(李鳳柱, Lee Bongju)
국적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본관 전주 이씨 덕흥대원군[1]
출생 1970년 10월 10일([age(1970-10-10)]세)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2]
학력 성거초등학교
천성중학교
광천고등학교
서울시립대학교 무역학 학사
신체 168cm, 57kg
종목 육상
주종목 마라톤
소속 손기정기념재단 감사
별명 국민 마라토너, 봉달이
1. 소개2. 선수 경력3. 수상 기록4. 기타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마라토너이자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1998 방콕 아시안 게임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 2001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이다. 별명은 봉달이 리본즈, 티모, 국민 마라토너. 손기정, 황영조와 함께 전국민이 아는 마라톤계의 슈퍼스타. 이봉주가 은퇴한 이후 사실상 명맥이 끊긴 한국 마라톤과 육상의 마지막 레전드다.

2. 선수 경력

1970년 10월 10일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태어난 그는 광천고등학교 1학년 때 육상 장거리에 입문했다.1990년 제71회 전국 체전 준우승에 이어, 이듬해 1991년 제72회 전국체전 마라톤 종목에서 우승한 후, 1993년 제74회 전국체전에서도 2시간 10분 27초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1991년 대한민국 마라톤의 대부로 알려진 정봉수 감독의 끈질긴 권유로 `코오롱 사단'에 입단한 이봉주는 1992년 1월 도쿄 국제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대한민국 최고 기록을 수립하며 4위로 골인하며,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선발전에서 레이스 도중 넘어져 출전을 포기하고 말았지만.[3] 1993년 12월에 열린 하와이 호놀룰루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 대회로 나섰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라톤의 슈퍼스타로 우뚝 섰다. 안타깝게도 금메달(조시아 투과니)과는 3초 차이였는데, 이것은 역대 최단 격차였다. 같은 해 12월에 열린 후쿠오카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 대회에서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아프리카 남아공 출신의 조시아 투과니는 진눈깨비가 열리는 일본의 영하 날씨에 적응을 못하여 기권을 하게된다.[4] 이후 1998년 4월에 열린 로테르담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7분 44초의 한국 신기록으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같은 해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에 출천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 1999년 정봉수 감독과의 갈등과 '코오롱 사단' 의 부당한 처우에 반발하며 탈퇴해 은퇴설까지 나돌았으나. 무소속으로 출천해 2000년 2월 13일 도쿄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7분 20초대한민국 최고 기록을 세웠다.[5][6] 그러나 같은 해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레이스 도중 넘어지는 바람에 24위로 뒤졌다. 이 안타까운 성적은 본인으로서도 가장 아쉬운 때였다고 한다. 하지만 후쿠오카 국제 마라톤 대회에 다시 출천해 준우승를 차지했고. 2001년 제105회 보스턴 마라톤에서 한국인으로 51년만에 우승을 차지했고.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아시안 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계속돼는 부진과 발바닥 부상으로 선수생활에 위기를 맡지만 2007년 서울 국제 마라톤(동아일보 주관)에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다만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28위로 뒤졌다.

결국 대한민국 나이로 40세가 된 2009년 10월 21일, 제 90회 전국체전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15분 25초[7] 만에 완주해 1위로 결승점을 통과하며 우승함과 동시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만 39세의 나이로 그의 은퇴 경기이자 41번째 완주를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2009년 12월 8일 역도의 장미란 선수와 함께 체육인으로써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인 청룡장을 수상하였다

마라토너로서 서른살 이후 찾아온 슬럼프에서 다시 일어났으며, 44번을 도전해 41번을 완주한 엄청난 끈기[8], 평발+짝발을 극복했다는 점 등이 높게 평가되었다.

현재 2017년 3월부터 영남고등학교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그 학교 체육쌤이랑 친하다 카더라. 2018년 체육대회 때 이봉주를 이겨라라는 종목에서 한 명도 이봉주 선수를 이기지 못하였다.[9]

3. 수상 기록

올림픽
은메달 1996 애틀랜타 마라톤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8 방콕 마라톤
금메달 2002 부산 마라톤

4. 기타

  • 현재 천안시에는 그의 이름을 딴 '봉주로’가 있다.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와 동갑이다. 경력상 황영조가 앞섰기 때문에 가끔 조언 비스무리한걸 하다가 이봉주 팬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매스컴에서 이 둘을 라이벌 내지는 황영조의 후계자로 만들어 버렸지만, 하여튼 만악의 악, 매스컴. 실제로는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 한다. 또한 이봉주의 부인은 황영조의 중학교 동창이며, 이봉주가 황영조의 고향강원도 삼척시로 같이 휴가갔다가 황영조의 생일에 황영조의 집에서 동창들이 다같이 모여 황영조의 중매에 의해 지금 부인과 눈이 맞아서 결혼까지 골인했다고 한다. 사실 은퇴 후 행실 면에서 구설수에 자주 올랐던 황영조에 비해, 긍정적이고 겸손한 성격을 가진데다가 몸 관리를 잘하면서 현역 생활을 오랫동안 유지했기 때문에 세간의 이미지는 이봉주가 더 좋은 편이다. 언젠가 이봉주는 "황영조의 그 심장이 부러웠다. 미치도록 갖고 싶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재능이나 신체 스펙은 황영조가 훨씬 앞섰으나,[10] 노력에서는 이봉주가 앞선 결과라 하겠다.
  •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19년 1월 2일자 라디오스타에서 밝힌바에 따르면 은근히 드라마와 영화에 카메오 출연을 한 경력도 있다. 2011년 개봉한 마라톤 영화 페이스메이커에 찬조 출연했었는데, 김명민황영조랑 붙으면 누가 이기냐고 묻는 질문에 죽을래?라고 윽박지르는 강렬한 씬을 보여주었고, 2017년 방영한 MBC 아침드라마 역류에서 공다미(임도윤 분)의 느끼한 소개팅남 역할[12]을 맡아 짧고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예능에 이어 이제는 연기에 욕심을 내는 국민 마라토너
  • 2010년 일밤의 예능이었던 오늘을 즐겨라에서 마라톤, 달리기 특집 총 3편에 연달아 출연[13]하였다. 첫 번째는 연예인 연합 42인과 이봉주 1인의 하프 마라톤 릴레이 대결, 두 번째는 육상트랙 오늘을 즐겨라 멤버 7인과 이봉주 1인의 대결, 세 번째는 자신의 모교인 천안 성거초등학교 학생 185명과 이봉주 1인의 하프 마라톤 대결에 출연하였었다.오즐의 반고정 멤버 아무래도 해당 방송 출연은 침체되어 가는 마라톤을 살리기 위한 대중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이봉주의 첫 노력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심판으로 데뷔했다. 9월 28일 남녀 20km 경보와 10월 1일 남자 50km 경보, 10월 2일 여자마라톤과 10월 3일 남자마라톤에서 심판으로 나선 바 있다.
  • 자기야 - 백년손님에 출연했으며 처가집까지 강제호송차량을 보냈을 때 뛰어왔다. 처갓집이 강원도 삼척이다.
  • 2000 시드니 올림픽 이후 동명이인인 어린이가 이봉주 선수의 홈페이지에 자신의 별명이 24등이 되었다면서 저를 위해서라도 1등을 하면 좋겠다고 응원의 글을 올리자 선물과 함께 이봉주 어린이의 별명을 1등으로 바꿔주겠다며 약속하고 2001 보스턴 마라톤에서 1등을 해서 그 어린이의 별명을 1등으로 만든 훈훈한 일화가 있다.
  • 최병철에 따르면 '얼굴 보러' 퇴계원에서 잠실 경기장까지 뛰어서 응원 왔다고 한다.
  •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은퇴한 지 한참 지났음에도 매일 아침마다 10~15km를 뛴다고 밝혔다. 심지어 술 약속이 있어 차를 끌고 나가면 돌아올 땐 집까지 뛰어서 돌아올 정도라고 한다.
  • 2019년 6월 13일에 첫방송을 한 JTBC 뭉쳐야 찬다의 '어쩌다FC' 멤버로 출연중이다.
  • 북한의 함봉실 선수한테 구렁이를 선물 받은적 있다고 한다.다만 구렁이 고기가 상해서 먹지는 못했다고

[1] 전주 이씨 덕흥대원군 15세손 '柱'자 항렬이다. 前 국무총리 이해찬과 배우 이해랑의 조카뻘이고 고종황제의 증손자뻘이며 순종황제의 손자뻘이다.[2] 여담으로 설민석과 생년월일이 똑같다.[3] 사실 1992년 자체는 이봉주에게 좋은 해가 못 됐다. 전국체전에서 9위를 기록하는 등. 하지만 당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던 선수들이 많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외가 아니다.[4] 이때는 2위로 골인한 스페인 선수를 불과 2초 차로 따돌리고 우승함으로써 애틀랜타에서의 한을 아주 조금이나마 달랬다.[5] 기존에는 신기록이라고 적혀 있었으나, 마라톤은 신기록이 없다. 코스의 차이, 날씨 등의 변수에 따라 기록이 천차만별이라 획일화해서 적용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 비공인으로 적용되는 최고 기록 개념만 통용된다.[6] 이것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다. 하지만 두 대회 모두 우승은 못했다. 2위. 당시에는 세계 30위권 기록에 들어갈 정도였지만 지금은 세계 100위권조차 못 들어간다....[7] 2003년에 영국 선수인 레드클리프가 거둔 여자 마라톤 최고기록과 딱 맞다. 20대 한창 나이로 여자 선수가 거둔 여자 최고기록으로 15년이 넘도록 깨어지지 않고 있는 기록인데 세계 기록을 거둔 적도 없는 선수의 40대 은퇴경기 기록이 똑같은 셈이다. 신체적 조건에서 남녀 차이가 크니 어쩔 수 없다.[8] 매 경기마다 40km 넘게 뛰는데, 대략 연습거리까지 포함하면 200,000km쯤은 된다고 한다.[9] 나이가 들어서 더 지구력이 강하다.[10] 참고로 황영조 선수의 어머니는 해녀이다.[11]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올림픽 2연패가 유력했으나 1996년 3월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겸한 동아마라톤에서 레이스 도중 다리에 쥐가 나는 불운으로 중위권으로 밀려났다. 그를 구제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대한육상경기연맹은 황영조를 예비엔트리에 넣었지만 황영조는 며칠 후 은퇴선언을 하고 애틀랜타행을 포기했다.[12] 정확하게 극중 배역은 집주인 홍초희의 지인으로, 마라톤 동호회 회장 역할.[13] 도합 전적은 1승 2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