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3 19:39:50

허재

허재의 수상 및 감독 경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external/s20.postimg.org/KBLOrange.png' 20주년 코트를 빛낸 레전드 12인 파일:external/s20.postimg.org/KBL20th_2.png
{{{#!folding [ 펼치기 · 접기 ]파일:양동근_KBL_레전드_12.jpg
양동근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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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G
파일:주희정_KBL_레전드_12.jpg
주희정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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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 G
파일:김주성_KBL_레전드_12.jpg
김주성 F
파일:문경은_KBL_레전드_12.jpg
문경은 F
파일:전희철_KBL_레전드_12.jpg
전희철 F
파일:조니_맥도웰_KBL_레전드_12.jpg
조니 맥도웰 F
파일:애런 헤인즈_KBL_레전드_12.jpg
애런 헤인즈 F
파일:추승균_KBL_레전드_12.jpg
추승균 F
파일:현주엽_KBL_레전드_12.jpg
현주엽 F
파일:서장훈_KBL_레전드_12.jpg
서장훈 C
}}}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1997
(선수)
2003
(선수)
2009
(감독)
2011
(감독)

파일:허재TG.jpg
원주 DB 프로미 영구결번
No. 9 허재

파일:external/s20.postimg.org/kbl_logo_ai.png
한국프로농구 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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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L_01.png 파일:KBL_02.png 파일:KBL_03.png 파일:KBL_04.png 파일:KBL_05.png
김병철
(10)
없음 김현준
(10)
문경은
(10)
전희철
(13)
없음
파일:KBL_06.png 파일:KBL_07.png 파일:KBL_08.png 파일:KBL_09.png 파일:KBL_10.png
우지원
(10)
김유택
(14)
허재
(9)
김주성
(32)
없음 추승균
(4)
이상민
(11)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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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시즌 1997-98 시즌 1998-99 시즌 1999-00 시즌 2000-01 시즌
강동희
기아 / 가드
허재
기아 / 가드
조성원
현대 / 포워드
서장훈
SK / 센터
주희정
삼성 / 가드
2001-02 시즌 2002-03 시즌 2003-04 시즌 2004-05 시즌 2005-06 시즌
마르커스 힉스
동양 / 포워드
데이비드 잭슨
TG / 가드
이상민
KCC / 가드
김주성
TG삼보 / 포워드
강혁
삼성 / 가드
2006-07 시즌 2007-08 시즌 2008-09 시즌 2009-10 시즌 2010-11 시즌
양동근
모비스 / 가드
김주성
동부 / 포워드
추승균
KCC / 포워드
함지훈
모비스 / 포워드
하승진
KCC / 센터
2011-12 시즌 2012-13 시즌 2013-14 시즌 2014-15 시즌 2015-16 시즌
오세근
KGC / 센터
양동근
모비스 / 가드
문태영
모비스 / 포워드
양동근
모비스 / 가드
이승현
오리온 / 포워드
2016-17 시즌 2017-18 시즌 2018-19 시즌 2019-20 시즌 2020-21 시즌
오세근
KGC / 센터
테리코 화이트
SK / 가드
이대성
현대모비스 / 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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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시즌 1997-98 시즌 1998-99 시즌 1999-00 시즌 2000-01 시즌
김병철
동양 / 가드
조성원
현대 / 포워드
김훈
대우 / 포워드
강동희
기아 / 가드
추승균
현대 / 포워드
2001-02 시즌 2002-03 시즌 2003-04 시즌 2004-05 시즌 2005-06 시즌
임재현
SK / 가드
허재
TG / 가드
황진원
SK / 가드
강혁
삼성 / 가드
현주엽, 크리스 윌리엄스
LG / 포워드, 모비스 / 포워드
2006-07 시즌 2007-08 시즌 2008-09 시즌 2009-10 시즌 2010-11 시즌
양동근, 자밀 왓킨스
모비스 / 가드, 동부 / 센터
강대협, 키나 영
동부 / 가드, 모비스 / 포워드
주희정, 브라이언 던스톤
KT&G / 가드, 모비스 / 센터
윤호영, 브라이언 던스톤
동부 / 포워드, 모비스 / 센터
강병현, 허버트 힐
KCC / 가드, 전자랜드 / 센터
2011-12 시즌 2012-13 시즌 2013-14 시즌 2014-15 시즌 2015-16 시즌
김선형
SK / 가드
임재현
KCC / 가드
조성민
kt / 가드
오용준
kt / 포워드
주희정
삼성 / 가드
2016-17 시즌 2017-18 시즌 2018-19 시즌 2019-20 시즌 2020-21 시즌
김영환
kt / 포워드
최부경
SK / 포워드
양동근
현대모비스 / 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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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00 시즌 KBL 베스트 5
가드 포워드 센터
강동희
(부산 기아)
조성원
(대전 현대)
허재
(원주 삼보)
조니 맥도웰
(대전 현대)
서장훈
(청주 SK)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orea_Basketball_Association.png농구대잔치 역대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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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84 시즌 1984-85 시즌 1985-86 시즌 1986-87 시즌 1987-88 시즌
이충희
현대전자 / 가드, 포워드
임정명
삼성전자 / 센터
이충희
현대전자 / 가드, 포워드
박수교
현대전자 / 가드
김현준
삼성전자 / 가드
1988-89 시즌 1989-90 시즌 1990-91 시즌 1991-92 시즌 1992-93 시즌
유재학
기아산업 / 가드
한기범
기아산업 / 센터
정덕화
기아자동차 / 포워드
허재
기아자동차 / 가드
강동희
기아자동차 / 가드
1993-94 시즌 1994-95 시즌 1995-96 시즌 1996-97 시즌 1997-98 시즌
서장훈
연세대학교 / 센터
허재
기아자동차 / 가드
김유택
기아자동차 / 센터
서장훈
연세대학교 / 센터
서장훈
연세대학교 / 센터
1998 시즌 1999-2000 시즌 2000 시즌 2001-02 시즌 2002-03 시즌
조우현
중앙대학교 / 포워드
김주성
중앙대학교 / 포워드, 센터
김주성
중앙대학교 / 포워드, 센터
현주엽
상무 / 포워드
김동우
연세대학교 / 포워드
2003 시즌 2004 시즌 2005 시즌 2006 시즌 2007 시즌
방성윤
연세대학교 / 포워드
전정규
연세대학교 / 가드, 포워드
박지현
상무 / 가드
허효진
중앙대학교 / 포워드
강병현
중앙대학교 / 가드
2008 시즌 2009 시즌 2010 시즌 2011 시즌 2012 시즌
양동근
상무 / 가드
유병재
상무 / 포워드
양희종
상무 / 포워드
함지훈
상무 / 포워드, 센터
박재현
고려대학교 / 가드
2013 시즌 2014 시즌 2015 시즌 2016 시즌 2017 시즌
윤호영
상무 / 포워드
이정현
상무 / 가드, 포워드
김시래
상무 / 가드
최부경
상무 / 포워드, 센터
이승현
상무 / 포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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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 현재
1대
신선우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대
허재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3대
추승균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4대
스테이시 오그먼
파일:미국 국기.png
5대
전창진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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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뭉쳐야 찬다 허재.jpg
이름 허재(許載)
생년월일 1965년 9월 28일([age(1965-09-28)]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강원도 춘천시
출신학교 상명초등학교 - 용산중학교 - 용산고등학교 - 중앙대학교 경영학과[1]
가족관계 배우자 이미수, 장남 허웅, 차남 허훈
포지션 슈팅가드
신체사이즈 188cm, 80kg
실업입단 1988년 기아자동차 농구단 입단
소속팀 기아자동차/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1988~1998)
원주 나래 블루버드/TG삼보 엑서스 (1998~2004)
국가대표팀[2] 올림픽 2회 출전 (1988, 1996)
FIBA 세계선수권 3회 출전 (1986,1990,1994)
아시안게임 3회 출전 (1986,1990,1994)
FIBA 아시아선수권 6회 출전 (1985[3]~1991, 1995, 1999[4])
지도자 전주 KCC 이지스 감독 (2005~2015)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6~2018)
수상내역 <선수>
1984-85 농구대잔치 신인상
농구대잔치 MVP 2회 (1992, 1995)
농구대잔치 베스트 5 9회 (1986~87,1989~1990,1992~1996)[5]
농구대잔치 우승 7회 (1989~1993, 1995~1996)
KBL 플레이오프 우승 2회 (1997, 2003)
KBL 플레이오프 MVP (1998)[6]
KBL Best 5 (2000)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은메달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 동메달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은메달
FIBA ABC 준우승 6회 (85,87,89,91,95,99)[7]
<감독>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2회(2009, 2011)

1. 개요2. 기록
2.1. 농구대잔치 시절 성적2.2. KBL 기록
3. 선수 이전4. 선수 시절5. 감독 생활
5.1. 감독 경력5.2. 감독으로서의 특징
6. 기타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농구 선수이자 전 농구 감독. 현역 시절 주 포지션은 포인트가드 - 슈팅가드지만, 국가대표에선 스몰포워드 - 파워포워드, 대학시절에는 센터도 소화했다. 한 마디로 올어라운드 플레이어.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플레이어를 논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선수이며 한국의 마이클 조던 위치에 있었던 선수. 농구대통령이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2. 기록

2.1. 농구대잔치 시절 성적[8]

연도 경기 수 총 득점 평균 득점 총 리바운드 평균 리바운드 총 어시스트 평균 어시스트 총 3점슛 평균 3점슛
1984 중앙대학교 18 432 24.00 144 8.00 112 6.22 룰 부재 룰 부재
1985 13 266 20.26 85 6.53 40 3.07 22 1.69
1986 23 555 24.13 171 7.43 85 3.69 91 3.95
1987 중앙대학교 대회 불참
1988 기아자동차 20 505 25.25 161 8.05 58 2.90 59 2.95
1989 19 508 26.73 127 6.68 68 3.57 77 4.05
1990 20 508 25.40 130 6.50 60 3.00 69 3.45
1991 21 469 22.22 112 5.33 71 3.38 56 2.66
1992 23 614 26.69 165 7.17 74 3.21 83 3.60
1993 17 510 30.00 111 6.52 49 2.88 76 4.47
1994 20 471 23.55 94 4.70 62 3.10 52 2.60
1995 21 514 24.47 128 6.09 79 3.76 65 3.09

2.2. KBL 기록

항목 참조

3. 선수 이전

파일:용산고 농구부 선수단.jpg
용산고 시절의 허재. 뒷편 오른쪽에서 4번째에 있다.

파일:external/img.donga.com/1192_0.70635800.jpg
용산고 시절부터 차세대 특급 가드라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사진 오른쪽은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 허준.)

파일:중앙대학교 시절의 허재.jpg
연세대학교고려대학교의 큰 스카우트 경쟁이 있었으나 중앙대에 입학했다. 이 과정에서 스카우트 비용 같은 거 없이 중앙대 농구부의 대부 정봉섭[9]과 허재의 아버지인 허준 사이에 상당한 교감이 있었고, 아버지의 의사로 허재가 중앙대에 입학했다고 한다.

연세대나 고려대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팀 분위기 속에서 온갖 테크닉을 익히고 만들어냈고 이렇게 쌓아올린 것들은 농구대잔치에서 터져 나오게 된다.[10] 당시 갓 출범한 농구대잔치에 처음 참가한 허재는 1학년으로서 팀의 포인트가드를 맡아 경기당 39분 30초를 뛰면서 평균 24득점 8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하는 여러모로 놀라운 활약을 했고, 신인상, 어시스트상, 인기상을 모조리 휩쓸었다.

파일:허재와 김유택 Hug.jpg
1985년 농구대잔치에선 성인 선수들로 이루어진 실업팀들을 제치고 김유택, 한기범과 함께 중앙대 농구팀을 농구대잔치 최종 결승전까지 이끌고 현대전자를 상대로 26득점 17리바운드 1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한국선수 최초로 트리플더블을 달성하기까지 했지만[11], 괴물 이충희의 가공할 득점포와 현대 선수들의 폭력수비와 편파 판정이 더해지며 중앙대는 결승에서 현대에게 격파당했다.[12]

1986년부터는 강동희가 입학하면서 슈팅가드 쪽으로 활약, 강동희와 함께 다시 한번 중앙대 농구부를 농구대잔치 최종 결승까지 이끌었지만, 또 한 번 이충희와 현대에게 물을 먹으며 우승에는 실패했다.

대학 4학년 때는 김유택도 없고 한기범도 없는 팀 상황에서 센터 역할까지 하며 활약, 대학농구 대회에서 단국대를 상대로 전반에만 팀 전체 득점인 54점, 최종적으로 75점을 넣는 기록을 올렸다. 하지만 4학년 시즌에는 중앙대가 선수들의 부상으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며 농구대잔치 출장을 거부했었고 이로 인해 그는 농구대잔치에서의 활약은 거의 없었지만 '허재가 없는 농구대잔치는 관중이 줄었다' 는 말이 나올 만큼 인기가 어마어마했던 점은 사실이었기에 실력 못지않게 인기가 많았던 부분은 반박할수 없는 사실이라 할 수 있겠다.

4. 선수 시절

허재/선수 경력 문서 참조.

5. 감독 생활

5.1. 감독 경력

파일:허재&이조추.jpg

은퇴 후 해외 유학을 한다 하더니 코치도 거치지 않고[13] 2005년부터 전주 KCC 이지스의 감독을 맡았다. 다들 허재가 원주 TG에서 코치를 밟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의외였던 사건. 이렇게 감독을 맡게 된 데는 은퇴 과정에서 TG 측에 안 좋은 감정이 생겼고 KCC 팀의 프론트가 허재의 용산고 선배란 점 때문이 아닌가 하는 말이 있다. KCC 구단주인 정몽익 사장이 용산고 출신이라서 아마 이런 말이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파일:허재, 국보센터, 임내쉬.jpg

파일:허재와 서장훈.jpg
감독을 맡은 첫 시즌인 05-06 시즌에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끄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상민을 비롯한 팀내 고참들의 힘이 더 컸다는 의견이 많고, 다음 시즌에 팀을 정규시즌 꼴지라는 나락으로 빠트리며 역시 초보감독이란 말만 들었다. 07-08 시즌 직전에는 이상민을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시키고 삼성 썬더스로 보내면서 모든 팬들을 실망시키게 만들어 버렸고, 서장훈임재현을 영입해 두 선수가 자동으로 보호선수가 되면서 팬들에게 무지막지하게 까였다.[14] 그 뒤, 팀은 정규시즌 2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0:3으로 탈락, 선수 덕만 보는 모자란 감독이란 말만 더욱 들었다.

파일:하승진을 뽑은 허재.jpg
파일:허재08-09시즌 우승했을 때.jpg
나락으로 빠졌던 시즌에 얻은 픽으로 하승진을 뽑는 희대의 운으로 수명 연장을 한 허재였으나, 하승진이 합류한 08-09시즌, 팀은 서장훈의 불만과 하승진의 능력 부족과 부상이 이어지며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들었다. KCC 이지스는 패배를 거듭했고 허재의 감독 생활이 끝났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자 허재는 서장훈을 트레이드해 강병현을 얻어오고 신명호를 적극 기용하면서 앞선 압박과 속공으로 시즌 중에 극적으로 팀 컬러를 변화시키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성공하더니, 하승진을 구슬리고 관리해 내면서 하승진까지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게 하는데 성공, 결국에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야 만다.

그리고 대망의 2009-10 시즌 직전...

파일:external/cfs15.tistory.com/4986ae470f828?.jpg
운빨 종결자.jpgee[15]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09-10 시즌에는 혼혈 선수 드래프트에서 1순위를 잡는데 성공하며 1순위로 전태풍을 뽑아 팀을 강화했다. 하지만 전태풍과 전체적인 팀이 겉돌면서 시즌 초 팀은 침체에 빠졌으나, 성격 더럽고 실력 좋은 외국인 선수 아이반 존슨을 어떻게든 활약하게 하고 레더까지 트레이드로 영입해 활용, 거기다 전체적인 팀워크까지 점점 좋아지면서 하승진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상황에서도 팀을 준우승까지 이끌어 냈다.

2010-11 시즌, 시즌 초 KCC는 하위권을 맴돌았으나, 시즌 중반이 되어 가면서 시즌 초의 성적이 거짓말인 것처럼 성적이 반등, 허재는 다시 한번 감독으로서 우승을 맛보는데 성공했다.

KBL 우승팀이 대표팀 감독을 맡는다는 암묵적인 룰에 따라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2011년 아시아선수권 국가대표 농구팀 감독을 맡았다. 중국전에 패배하는 등 여러 모로 아쉬운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일단 아시아선수권 3위를 하면서 올림픽 최종 예선을 통한 본선 진출이라는 별로 가망 없는 희망은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2011-12 시즌은 정규리그 4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게 6강 플레이오프에서 0:3으로 떡실신.

2012년 7월 27일 또다시 허재의 복코가 빛을 발했다. 1.5%의 확률을 뚫고 외국인선수 드래프트 1순위를 따낸것. 그리고 코트니 심스를 지명했다.

2012-13 시즌에는 하승진의 공익 입대와 전태풍고양 오리온스 이적, 추승균의 은퇴 등으로 팀 전력이 심하게 떨어졌고, 설상가상으로 코트니 심스, 김태홍, 장민국 등등이 부상으로 드러누웠다. 심스는 그래도 빨리 복귀했지만, 결국 부상으로 얇아진 팀 뎁스 강화를 위해 서울 SK 나이츠로 트레이드되었다. 사실상 리빌딩 시즌으로, 예상대로결국 꼴찌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래도 커트니 심스를 서울 SK 나이츠에게 내주고 대신 데려온 김효범이 득점원이 되어주고 박경상이 성장하는 등의 성과는 있었다. 강병현도 제대 후 5라운드에서 5승4패를 하면서(4패는 상위3팀과 동부)복귀하여 팀에 청량감을 안겨줬다.

파일:김민구비 브라이언트를 지명한 농구 대통령.jpg
2013년 9월 30일 이루어진 신인드래프트에서는 2순위로 경희대 빅3 중 한 명인 김민구를 지명했다. 복코 노쇠화 내심 원하던 김종규는 1순위 지명권을 쥔 창원 LG 세이커스가 가져갔다. 대신 삼성이 1.5%를 뚫고 KT를 밀어내고 4순위가 되었다.

2014-15 시즌 도중인 2015년 2월 9일 "팀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자진사퇴 한다"고 밝혔다. 사실 시즌 초반부터 급격하게 늘어난 흰머리와 주름, 힘겨워 보이는 듯한 모습이 많았다. 선수들의 실책이 쏟아지면 레이저를 쏘면서 불호령으로 선수들을 다잡고, 심판과도 맞장을 뜨면서 각을 세우던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선수들을 나긋나긋하게 달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여러모로 허재 감독이 지쳐보인다는 평가가 많았다.

KCC 감독직을 사퇴한 이후 머지않아 다른 팀 감독으로 갈 거란 소문도 있었으나, 8년만에 전임감독제로 바뀐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직 공모에 지원, 또다른 후보인 이상범 전 KGC 감독과 경합 끝에 감독으로 최종 선임되었다. 원래 계약기간은 2019년 2월달 까지라고 하였으나, 아들들 선발 논란과 라틀리프 몰빵 전략으로 인한 논란끝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농구에서 4강 탈락하였고,[16]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2018년 9월 5일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하차하였다.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행보는 허재호 문서참조.

5.2. 감독으로서의 특징

08-09 시즌 중반까지는 고등학교 인맥으로 감독 자리에 앉았다거나, 훌륭한 선수가 훌륭한 감독이 되지 못하는 좋은 예 중 하나라는 등의 말을 들으며 여러모로 욕을 먹었고, 작전타임에도 자신의 선수 시절만 생각하며 성질만 부리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러다 시즌 중반의 대변신 후 팀을 우승시키고는 그 뒤 한 번의 준우승과 또 한 번의 우승까지 거두고, 하승진을 관리하면서 감독으로서의 평가가 상당히 높아졌다.

앞선 가드들의 압박과 변칙적이기까지 한 수비 변화를 잘 쓰고 이렇게 잘 짜인 수비로 상당한 재미를 보는 편. 다른 건 몰라도 허재의 수비 작전 하나는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편으로는 수비 작전은 허재가 아니라 다 외국인 코치가 짜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공격작전 면에선 딱히 좋은 작전을 보이는 건 아니지만, 국내 선수라 해도 1대1 공격을 맡기는 등 선수들에게 자신감 있고 적극적인 공격을 주문하는 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극단적인 단신 라인업을 쓰는 한편 하승진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장신 라인업으로 선수를 기용하는 일도 많은 편. 슈팅 가드나 포워드 보는 선수에게 인사이드 수비를 맡기는가 하면 센터 포지션의 선수를 스몰포워드로 돌리기도 했다. 이런 성향은 계속해서 신장이 높아지고 있는 농구 국제 경쟁력 부분에서 지지를 얻고 있다.

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졌거나 무명이라 하더라도 자신있게 계속 뛰라며 밀어주고, 그렇게 해서 선수들의 활약을 이끌어낸 일이 많다. KCC가 시즌 초반에는 하위권을 맴돌다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는 패턴을 반복해서 보여준 데는 허재가 저런 식으로 선수들을 이끈 덕이 크다. 허재의 드래프트 실패작이라는 말까지 듣던 신명호는 이런 허재의 밀어주기로 성장한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고, 데뷔 초기 키 큰 일반인 소리까지 듣던 하승진이 제몫을 하게 된 데도 이런 선수 기 살리기가 한 몫 했다. 대학교 후배 밀어주기냐는 비아냥을 듣던 이중원을 쏠쏠히 써먹거나, 강병현 트레이드의 잉여물 취급을 당하던 정선규도 활용해내는 등 보기보다 선수의 활용폭이 넓은 편.

하지만 일단 눈 밖에 나면 완전히 외면하기도 하고, 공격에서 적극성을 보이는 정도를 넘어서 지나치게 팀을 해치는 플레이를 하면 벤치에 주저앉히는 걸 망설이지 않는다.

이런 저런 경기 중 돌발 상황에서 작전 타임동안 작전을 짜내 써먹는 데는 아주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감독으로서의 경력이 몇 년 쌓이면서 이런 면에서도 초기에 비하면 준수해졌다.

감독 자리에서 잘릴 뻔한 몇 번의 위기를 넘기고 성장한 건 결국 KCC 구단이 고등학교 학연으로 허재를 밀어준 덕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감독은 선수에게 이기는 게 아니라, 선수에게 맞추어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잘났다고 하면 안 된다고 우승 후 인터뷰에서 말을 했다. 참고로 이때 같이 인터뷰한 강동희는 "난 이전부터 다 맞추면서 살았잖아요. 형은 누구를 위해 기분을 맞추고 상대의 감정을 읽으려 한 적이 없었어요. 왜냐고? 농구 대통령이었으니까. 난 2인자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맞춰가는 데에 익숙한 편이에요." 라고 했는데 강동희의 이 말이야 말로 현역 시절의 허재를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한 마디다.

상당한 츤데레로 선수들을 혼낼 때는 쥐구멍에 숨고 싶을 정도로 혼내지만, 챙겨줄 때는 정말 모르게 챙겨주다가 알려지는 츤데레같은 일화도 많다. 김민구의 교통사고 때 김민구를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화를 냈다가도, 고관절에 좋은 보약을 지어다가 보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진심 김민구는 허재 앞에서 매년 시즌 시작하기 전에 석고대죄라도 해야한다.

하지만 그도 한국 농구의 틀은 벗어나지 못했었는데, 전태풍이 밝히길 플로터 쏘기, 속공 상황에서 3점슛 던지기 등을 상당히 반대했다고 전했다. 정작 허재도 선수 시절에는 저걸 한 적이 있다는 게 함정 그러나 저것은 뭐라 할 수가 없는 것이, 플로터나 속공 3점은 기본적으로 성공률이 떨어진다.

커리, 듀란트처럼 다섯 번 쏴서 세 번 이상 성공시키면 하지 말라는 감독도 없겠지만. 물론 2018년이 지나고서는 플로터는 기술이 아니라 가드가 익혀야 할 기본기라 하고 있으며 속공에서의 3점슛은 일단 오픈 찬스일 확률이 높고 공격 리바운드를 가져갈 확률이 높다는 점에서 당연히 나쁘지 않은 판단이라 여기고 있다.

또한 그는 판정 항의가 다른 감독들에 비해 전창진 감독과 더불어 매우 거친 것으로도 유명했다. 오죽했으면 지난 2013년 10월 15일 울산 모비스와의 홈 경기 도중 상대편 선수가 슛을 쏠 때 팔을 쳤는데도 심판이 파울을 불지 않고 블록으로 인정하여 경기를 계속 진행하자 "이게 블락이야? 이게 블락이냐고! 그게 지금 블락으로 보여!" 라고 강하게 항의했는데,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허 감독의 항의 과정 중 어눌한 발음을 빗대어 "불낙전골"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 패러디는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심심하면 나오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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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낙 덕후 이거 파닭 아냐? 이게 불낙이야!!?? 어!!?? 이게 불낙이냐고!!?? 아버지 이게 불낙입니다!! 불낙 스타 허웅

국가대표 감독으로서는 상당히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농구에서 아들 선발 논란과 더불어 라건아에게 몰빵하다시피한 무전술로 인해 4강에서 이란에게 패배하는 바람에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여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결국 2018년 9월 5일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사직하였다.

특히, 가족을 선발한 점에 대해서 말이 많은 상황인데 참고로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야구에 출전한 이정후이종범 코치의 아들이지만, 준수한 실력을 보여줬고 확실하게 좋은 활약을 보여줬었다. 게다가, 이정후는 인맥이 아니었더라도 준수한 스탯과 기록만 보더라도 여기저기서 "이정후는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국가대표로 뽑혔냐?" 소리가 나왔을 정도로 충분히 국가대표 주전으로 선발될 수 있는 역량과 자격이 충분했고 뽑히지 않았을 때 논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감독과 코치는 아무래도 영향력이 다를 수 밖에 없다.

6. 기타

  • 한 분야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는 사람에게 붙이는 '~~대통령' 수식어의 원조다.
  • 선수시절 종아리를 다쳐 일본에 재활을 하러 간적이 있는데 재활담당의가 허재의 피지컬을 보고 진짜 한국사람이 맞냐고 부모님이 외국인이 아니냐고 물었다고 한다.
  • KBL 출범 이후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우승을 맛본 최초의 인물이다.[17] 선수, 코치, 감독으로 우승한 최초의 인물은 김승기인데(...)[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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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8 서울 올림픽 때 남자 선수 대표로 페어플레이 선서를 했던 사람이 바로 사진 오른쪽에 있는 허재였는데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개회식 방송을 못 본 90년생들부터는 이 사실을 잘 모른다.
  • 프로선수 시절 상대 팀들이 허재를 막기 위해 폭력을 불사하는 거친 수비를 한 일이 많고 그 때문에 코트 위 폭력사건에 휘말린 일이 많다. 한데 때린 일은 거의 없고 맞기만 많이 맞은 편. 다혈질로 정평이 나있지만 정작 남을 때리지 못하는 성격인듯 하다.
  • 허재가 얽힌 폭력 사건으로 유명한 게 1990년 기아와 현대의 농구대잔치 결승전에서 벌어진 허재와 임달식(前 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감독) 사건. 허재를 마크하던 임달식이 스크린을 걸면서 허재에게 팔꿈치 공격을 가했고, 심판이 그냥 넘어가 버리자 이거에 맞은 허재가 임달식에게 머리를 들이대며 소리를 질렀으며, 그러자 임달식이 냅다 주먹을 허재에게 휘두른 것. 그런데 허재는 일단 맞기만 했는데 심판이 동시 퇴장을 선언했고, 이 때문에 허재가 소리를 지르며 항의하자 현대의 센터인 김성욱이 냅다 달려와 허재에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코트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던 게 당시 사건이다. 허재 입장에선 억울하게도 허재는 맞았는데 원인 제공자라며 6개월 선수 자격정지를 당했고, 임달식은 1년 자격 정지를 받아 직후 은퇴를 했다. 에이스 킬러
  • 1991년에는 당시 현대의 선수이던 김광[19]에게 경기 중 얼굴을 얻어맞아 전치 3주의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서는 아예 김광을 형사소송법 제223조에 따라 고소하기도 했으며, 김광은 구속처리되었다. 한데 이렇게 고소까지 했던 김광을 허재는 코치로 받아들여 2010 - 2011시즌까지 KCC 이지스에서 함께했다. 어?
  • 코트 위 폭력 사건으로는 맞은 일이 많지만 허재의 성격이 좋은 말로 화끈하고 나쁜 말로 욱하는 성격이란 말은 나름 유명한 편. 선배라 해서 가리지 않고 성질을 내며 들이댄 일도 많고,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한 일도 많다. 요즘 시대로치면 딱 축구 기성용이 저런 스타일. 그래도 결혼 후 아내까지 부끄러워지니 성질을 죽이기 시작했다고 방송에서 말한 일이 있고, 감독이 된 이후로는 성질을 정말 많이 죽였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 술 관련해서 사고를 친 일이 꽤나 많다. 선수 생활 부분에서 언급했듯 1990년대 초에는 술 관련 사고로 꽤나 언론을 탔고, 역대 한국 운동 선수 중 술 관련 사고로 언론에 오르내린 횟수가 제일 많은 선수가 허재일 거라는 말까지 있다. 음주운전 적발된 것만 5차례.(음주운전 최소 50번 했다는 소리...)무면허+뺑소니+운전자 바꿔치기 까지 했었다.쉽게 말해서 김민구+서장훈+강정호. 2010년 이후라면, 5차례 적발되기 전에 이미 제명되었을 살인미수 범죄자.[20]
  •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해서도 음주 사고로 선수생활 6개월 정지라는 징계를 당했다. 1996년 일의 경우 언론의 과장이 있었고 과한 음주도 없었다고도 하지만, 그래도 숙소를 빠져나가 술 마셨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가 없으니. 이러한 사고들 때문에 2000년대 이후처럼 인터넷이 많이 발달한 시대였으면 서장훈 이상의 안티팬을 만들었을 거라는 말이 있다.[21] 감독이 된 후인 2009년에도 음주 폭행 시비에 휘말린 일이 있다. 헌데 이때는 폭행이 없었다는 증언들이 나와 무혐의로 풀려나면서 징계나 다른 큰 일 없이 넘어갔다.
  • 실력뿐만 아니라 술 또한 농구계의 전설이지만, 야구에도 실력뿐 아니라 술로서도 전설인 선동열과 친분이 있었다. 당연히 둘이 대작을 했는데, 허재의 패배. 그 술이라면 절대 지지 않을 것 같았던 허재가 화장실 간다고 해놓고 도망친 것이다.[22] 허재는 이때 일을 회상하며 난생 처음 '술먹고 죽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또 한번은 두 사람이 술을 진탕 마시고 선동열 집에서 잠들었는데 숙취 때문에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나서 TV를 켰더니 선동열이 마운드에서 던지고 있었다고... 또 박한 전 고대 감독과도 일본에서 술내기를 했다가 진짜로 죽을 뻔했다고. 주신은 따로 있었다나. 오랫동안 허재와 선동열이 광주에 허재가 오면 둘이 밤새도록 술을 퍼마신 후 다음 날 허재가 30득점을 해서 스스로 흡족하게 여기는데 선동열이 완봉을 하자 허재가 혀를 내둘렀다는 이야기가 사실처럼 돌았는데 허재 본인이 직접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서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23]
  • 한편, 술 말고도 허재가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생사탕이다. 캔디(砂糖)가 아니다. 비얌~(蛇湯)이다. 허재의 아버지인 허준 옹은 허재를 최고의 농구선수로 키우기 위해 아들 뒷바라지를 열심히 했는데, 스태미너를 키우기 위한 보양식으로 1년에 한 번은 뱀을 고아서 먹였다고 한다.(...)
  • 아내 이미수 씨와의 인연도 재미있는데, 부산의 상류층 규수였던 이미수 씨는 다른 남자와 맞선을 보려고(...) 어머니와 호텔에 갔다가 우연히 허재와 처음 만났다고 한다. 허재는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반해서 먼저 대시해서 매일같이 연락을 하곤 했는데, 정작 그녀는 스포츠에 관심이 없어서 허재가 그렇게 유명인인줄도 몰랐다고 한다.(...) 게다가 둘이 결혼하기로 했을 때는 이미수 씨의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다. 그녀의 형부들은 허재의 다혈질에 대한 악명(?)을 잘 알고 있었던데다가 오빠는 하필이면 허재의 농구 경쟁팀이었던 고려대학교 출신이었던 것도 한몫했던 듯 하다. 하지만 이미수 씨의 어머니는 정작 허재를 직접 만나보고는 "남자다워서 마음에 든다!"라고 결혼을 허락했다. 누가 허재의 아내 아니랄까봐 내공이 보통이 아닌 듯한데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슛 타이밍 때, 못 올라가고 하면 화가 많이 난다. 남편은 워낙 잘했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었지만 애들 경기를 보면 화가 날 때가 많았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

파일:허재 부자.jpg
  • 두 아들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모두 농구 선수이다. 왼쪽이 허웅, 오른쪽이 허훈. 허웅은 슈팅가드로 아버지가 나온 용산고등학교를 거쳐 아버지의 모교로 가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연세대에 진학했고, 두 살 아래인 허훈 또한 형과 똑같이 용산고를 거쳐서 연세대에 진학하게 됐다. 둘 다 가드인데 아마시절 커리어는 형인 허웅보다 동생인 허훈이 더 커리어가 뛰어나며, 객관적인 평가에서 허훈이 앞선다는 평을 받았었다.[24][25] 그리고 허웅이 2014년 신인드래프트 대상자가 되면서 과연 KCC에 갈 수 있을지 주목을 모았는데, 이에 대해 허재는 "마침 우리 팀에 웅이 자리가 딱 비어있긴 하다. 한 4순위 정도로 뽑히지 않을까 보고 있다."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허재는 4픽을 뽑았다(...) 그러나 허웅이 아닌 고려대 김지후를 지명했다. 대신 허웅은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있는 팀에 지명 되며 내년 시즌 부자대결을 기대하게 했다. 부인은 이제 누구를 응원할지 고민했겠지만 허재가 백수가 되면서 마음 편히 아들 응원하는 듯
  • 허재 감독이 밝히길 김민구의 부상으로 허웅이 제일 필요했던 선수였지만 허웅을 위해서라도 뽑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8 아시안게임 병역면제 위해서 각자 자기 포지션에서 한국 1~2위 아니고, 실력 부족한 아들 2명 모두 국가대표팀으로 선발했다. 그러나, 허훈은 가장 중요한 경기에 1분도 나오지 않았고, 허웅도 부진했다. 유재학 기술위원장 등 많은 사람들이 선발 반대했는데도, 오히려 '내 아들들이라서 실력보다 저평가 받고 있다'며 둘 다 국대 선발. (그런데 그 실력자를 왜 1분도 안 쓰셨어요?) 결국 국가대표팀에서 아들들과 함께 짤렸다.

뭔 소리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그래 18 진짜 짜증나게!
  • 허재 감독은 평소에 다른 감독들과 달리 자존심이 상당히 강하여 불이익을 볼 때 거침없는 발언을 내뱉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2011년 농구국가선수권대회 도중 중국 기자가 여러 차례 허재 감독에게 치욕적이고 몰상식한 질문을 던지자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욕을 하며 기자회견장을 나갔다.[26]


[1] 2002년까지는 체육특기자도 학과 선택에 제한이 없었다. 그래서 2002년까지 중앙대학교 농구부원들은 무조건 서울캠퍼스 경영학과로 입학했다. 물론 수업은 아무도 안 들어갔다고.[2] 총 15년간 국가대표로 거의 매년 활약하다가 중간중간 빠진 연도가 있는데, 1993년 자카르타 아시아선수권 때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자격정지(;;), 1997~98년 대회들 역시 유명한 "애틀란타 올림픽 음주파동"으로 인한 자격정지로 빠졌다.[3] 허재의 국가대표팀 첫 선발은 중앙대 1학년이던 1984년 타이완 존스컵(지금까지도 매년 열리고 있는 그 대회) 대표팀이었다. 본 항목에는 메이저 대회 경력만 기술하므로 1985년 콸라룸푸르 아시아선수권가 첫 머리에 올랐다.[4] 34세이던 1999 후쿠오카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 중국에 패하며 2000 시드니 올림픽 출전권을 놓쳤고, 강동희와 함께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5] 중앙대 2학년 때부터 KBL 출범직전인 1996-97 농구대잔치까지 거의 빠짐없이 베스트 5에 선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중간중간 베스트 5에 누락된 사유도 다양한데, 허재가 4학년이던 1987-88 농구대잔치에는 중앙대가 아예 불참했고 1990-91 농구대잔치에서는 결승 2차전에서의 허재 vs.임달식/김성욱 간 폭력사태로 인해 베스트 5는 물론 MVP마저 날아갔었다. KBL 출범전 마지막 농구대잔치인 1996-97 농구대잔치 때는 바로 직전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음주파동으로 인한 징계로 출전을 못했다. 참 파란만장했다;;[6] 역대 유일 준우승팀 MVP.[7] 공교롭게도 허재가 출전한 모든 ABC대회에서 준우승했다. 징계로 각각 참가하지 못한 1993 자카르타 ABC에서는 대표팀이 3위, 1997 ABC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6번의 준우승 중 5번의 결승상대가 중국이었다. (1985 대회만 필리핀)[8]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9] 중앙대 농구부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 1980년대 초중반 중앙대가 전성기를 달린 데에는 그의 역할이 매우 컸다. 불 같은 성격 때문에 자주 징계를 받기도 했지만. 1992년 추계연맹전을 마친 뒤 강정수 코치에게 감독직을 넘겨주고 중앙대 운동부를 총괄하는 체육부장을 맡으면서 다소 이른 나이에 일선에서 물러났다.[10] 중앙대 농구부는 허재를 위해, 그가 입학할 무렵 저학년은 팀 연습 끝난 후 개인연습을 하고 고학년이 뒷정리를 하는 전통을 만들었고, 이는 계속해서 중앙대 농구부의 전통이 되었다.[11] 이 허재의 트리플더블 기록은 완전히 잊혀져 있다가 2012년 들어 대한농구협회가 지난 시절의 기록들을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12] 한편 이 결승은 이충희의 가공할 득점포가 최고 승리 원인이긴 해도 현대 선수들의 폭력을 동반한 수비와 신경전, 그런 폭력을 묵인한 편파 판정이 상당한 물의를 빚은 경기이기도 하다. 당시 중앙대 측이 너무한 판정에 항의하며 경기 막판에 우두커니 서서 경기를 포기하기까지 했으니.[13] 물론 1998-1999 시즌부터 플레잉코치로 뛰기는 했다.[14] 이상민이 KCC를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는 한 유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허재퇴출이라는 실시간 검색어가 나오게 되면서 감독 사임을 요구하라는 말만 나왔을 뿐이지 사임 같은건 없었다.[15] 2009-10 시즌 혼혈 선수 드래프트에서 일어난 장면. 뽑는 순서가 제일 마지막이었는데, 앞의 9개 구단이 모두 1순위가 걸리지 않는 희대의 상황이 연출되며, 뽑기 한 번 안 하고 1순위를 차지했다. 눈앞에서 좌절하는 사람은 김상식 당시 오리온스 감독.[16] 허재 부임 후 한국은 이란과 국제대회 공식경기서 네 번 만나서 모두 졌다.[17] 97 원년 기아, 02~03 TG, 08~09/10~11 KCC[18] 선술되어있듯 허재는 코치를 거치지 않았다(...) 물론, 선수시설 준코치 정도의 위상은 가지고 있었지만.[19] KCC에서 프런트에 있다가 코치를 하였었고, 현재는 서초 KCC 본사에 근무하고 있다.[20] 참고로 김민구(음주운전 교통사고), 서장훈(음주운전 적발 2회), 강정호(뺑소니+운전자 바꿔치기 +음주운전 적발 3회).[21] 서장훈은 안티팬이 많았지만, 은퇴이후 예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농구선수로서의 모습이 재평가받고 있고, 안티팬이 많이 줄었다. 야구선수 강정호가 말그대로 허재랑 비슷하게 음주사고를 쳤는데 이미지는 엄청 나락이다. 인터넷 시절의 유무라고 봐야할듯 하다. 옛날에야 연예인이 음주한다고 그거가지고 크게 까이지는 않았지만, 요즘은 인터넷 발달로 음주에 많이 엄격해졌다. 노홍철이 그 음주때문에 폭망한걸 보면 알수있다. 요즘 인터넷에서의 허재 이미지는 2011년 중국전 사이다 발언 때문에 국민호감이다.[22] 광주 바닥에서 선동열이 술로 제대로 한가닥 했는지라, 어느 정도냐면 허재랑 술을 4차째 마시고 문을 연 술집이 없자, 한 술집 셔터를 두들기며 "나 선동열이오."하니 주인이 환영을하며 셔터를 다시 올렸다고 한다.[23] 당연히 거짓말일 수 밖에 없는것이 농구대잔치는 겨울에 한다(...) 프로농구 출범 이후엔 야구시즌과 농구시즌이 겹칠 수도 있지만 선동열은 KBL 출범 이전인 1996년에 일본으로 진출했다. 선동열과 선동열의 고려대학교 동기인 정삼흠이 선발맞대결 전날 술을 퍼마시다가 정삼흠은 7이닝 5실점했는데 선동열은 완봉승을 거둔 일화가 와전되어 알려졌을 가능성이 높다.[24] 그러나 최근 들어서 특히 국가대표에서 허훈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허웅은 그래도 동생보다는 조금 더 많은걸 보여줘서 평가가 뒤집히고 있다.[25] 허훈은 이미 소년체전 때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을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었고. 물론 허웅도 허훈만큼은 아니더라도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어서 연세대에서 팀의 득점원으로 활약, 빠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었지만 허웅은 본격적인 농구를 조금 늦게 시작한 탓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허훈에 비해선 조금 늦은 나이였던 편이다.[26] 참고로 이 때 중국 기레기기자들이 허재 감독에게 던진 질문은 경기 전 중국 국가가 나올 때 한국 선수들은 왜 중국 국기를 향해 서지 않았나 같은 희대의 개소리들이었다. 개좆병신같은 중화사상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중국의 기자들이 K리그의 감독들에게 이런 식의 개드립같은 질문공세가 심해지자 이 발언이 다시 재조명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스포츠 외적으로도 개소리를 뱉어내는 사람들이 생기면 "허재 감독 데리고 와라!"며 유행어처럼 자리잡게 된다.[27] 극중 최종원이 운영하는 카페에 단골 손님인 프로농구단 단장이 찾아와서 준 프로농구 경기 표를 얻어서 농구장에 갔는데 극중 술버릇이 지독한 윤다훈이 농구장에서 술을 먹고 깽판을 부리는 장면. 이 때 윤다훈이 내뱉은 명대사가 바로 "허재 선수가 나보고 농구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