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12:07:15

이순실

통일 메아리 악단
이순실 유현주 윤설미 신은하 정유나 강은정 한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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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순실
출생 1967년 2월 5일 ([age(1967-02-05)]세) 평양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1]
방송 경력 이제 만나러 갑니다, 잘 살아보세

1. 개요2. 생애3. 출연 경력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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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평양시 출신의 탈북민 방송인이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게스트로 출연자 중에서 최연장자이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시청자들은 이만갑의 평양 출신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다. 북한에서 조선인민군 간호장교 중위 출신으로 11년간 복무했다고 한다. 현재에도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간간이 게스트로 출연중이다.

태어난 곳은 평양이지만, 본인 스스로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곳은 황해북도 평산군 와현리라고 새터민 유튜브 채널 평양만사 김길선's 에 출연하여 직접 밝혔다. 평산군에서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추억도 많은 곳이라고 한다.

이만갑에서 불리는 별명은 순실 형님, 순실이 형. 그리고 한 방송분에서는 동요 곰 세마리를 바꾸어 이런 노래를 불렀다.
세마리한 집에 있어.
할배곰, 애비곰, 새끼곰
할배곰은 뚱뚱해. 새끼곰도 뚱뚱해.
여러 번의 탈북 시도를 하다가 중간에 어린 딸을 인신매매단에게 빼앗겨서 지금도 찾지 못하고 있다. 딸 이야기를 할때면 아이가 원하던 인형을 사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과 여러 감정들이 섞여 눈물을 흘린다. 이 장면은 이만갑 시청자들을 울렸다. 현재 남한에서 정착하여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였다. 서로를 여봉봉이라고 부르며 깨가 쏟아지는 중.

현재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 간간히 출연중이며 유튜브 방송 '이순실 TV' 프로그램에 가끔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특유의 북한식 말투와 유쾌한 말솜씨가 중독성이 있다. 또한 이순실TV를 운영하며 ceo로 개성떡과 평양김치를 판매하고 있다.채널

2. 생애

생년월일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만 16세인 1982년에 고등중학교를 졸업 후 입대하였고, 2007년 42세에 한국으로 입국했다고 밝혔기 때문에 1966년생으로 추정된다.

이순실의 아버지는 군관이라 인민학교 4학년때 2군단 사령부가 있는 황해도 평산으로 이사했고, 어머니는 북한군 군단장 요리사라 상대적으로 풍족하게 살아서 입대당시 여자중에 가장 키가 컸다고 한다. 형제는 이부형제 포함 11형제였다고 한다. 평산 2군단 사령부에 있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만 16세에 입대하여 11년간 개성시 장풍군에서 조선인민군 2군단 15사단 간호장교로 복무하였으며, 조선로동당에도 입당했다.

북한 경제가 고난의 행군 시대 이전에도 파탄이 나서 1993년에 전역할때 제대비 40원을 받으니 쌀 1kg가 120원에, 집에 와보니 부모님은 이미 3년 전에 사망한 상태였고, 여동생이 굶다 못해 돈이 되는건 다 팔아먹어서 집이 텅텅 비었다고 한다. 그후 꽃제비가 되었고 탈북도 시도 했으나 여러번 잡혀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여덟번째 북송후에 오빠집으로 귀가 되었는데 오빠는 탱크공장 근로자라 보급이 나왔으나 가족들 배급은 끊겨서 시누이는 영양실조로 결핵에 걸려 피를 토하고, 남자 조카는 입대했다가 영양실조로 시력을 잃은데다가 엉덩이에 살이 다 빠져 항문이 보일정도로 폐인이 된걸 오빠가 공장에서 받은 배급을 사이다병에 죽으로 담아와 세 가족이 먹고 사는걸 보고 이 집에서 살면 입이 늘어나니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지인의 소개로 군관에게 시집을 갔다고 한다.

군사복무 시절에 알게된 중대 소대장과 결혼을 했지만 시부모들의 학대와 전남편의 계속되는 가정폭력으로 인해 집을 나와 임신한 몸으로 꽃제비 생활을 시작하였고, 혜산역 길바닥에서 딸을 출산하였다.

량강도 혜산시에서 꽃제비 생활을 하면서 총 9번의 탈북과 8번의 북송을 반복하였는데, 딸을 바라보며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중국으로 재탈북할 수 있었으나 9번째 탈북 당시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하여 딸과 헤어지게 되었고 현재까지 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인신매매 업자에게 산동성으로 팔려갔으나 곧 탈출하여 교회를 들어갔는데 조선족 목사가 한국어가 서툴러서 북경의 한국인 목사에게 소개 시켰고, 몽골을 통해 2007년 한국으로 입국에 성공했다.

입국 당시 40대였는데 고생 때문에 주름이 너무 많아서 같은 탈북자들은 물론 국정원에서 믿지 못해서 조사가 길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2군단 복무 시절 정보로 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입국당시 몸무게가 51kg이었다고. 북경에서 숨어살았을 때는 목사님이 밥을 안 줄까봐 믿는 척 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확실한 개신교 신자로 여러교회에 간증을 다니고 있고, 안보강사로도 활동중이다.

꽃제비 시절 굶주린 딸을 안고 다닐 때 딸이 인형을 그렇게 좋아했고 갖고 싶어했는데, 결국 사주지 못하고 잃어버린 것이 한이 되어 늘 집안과 자동차 등에 인형으로 장식하고 딸을 그리워한다고 한다.링크

3. 출연 경력

4. 여담

  • 조선인민군 간호장교 시절 있었던 일을 인터넷에 글로 많이 올렸다. 구글에 '북한여군수기'라고 검색하면 글이 나온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 중 하나는 평양개성고속도로 공사 중에 예성강교 붕괴 사고와 관련하여 있었던 일을 올린 글이다.
  • 이제 만나러 갑니다잘 살아보세에서 발군의 요리 솜씨를 보여줬으며 남한에서 식당을 개업했다고 한다. 이만갑에서 밝힌 바로는 함바집에서 식당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 북한 체제에 비판은 별개로 가족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데 11남매 중에 여럿이 죽었지만 몇 명은 아직 북한에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남편은 탈북민 컴퓨터 교육 자원봉사 선생으로 교육 마지막날 이순실이 먼저 같이 살자고 해서 초고속으로 결혼하게 되었다고한다. 남편이 5세 연하.
  • 2014년 종북 논란이 있는 재미동포 신은미가 북한을 갔다와서 토크 콘서트를 벌이자, 끝장토론을 제안했으나, 신은미는 결국 오지 않았다.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 2016년 12월 4일 이제 만나러 갑니다 5주년을 맞아 오랜만에 출연해서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 2018년 8월 12일 인터넷방송을 주제로 하는 회차에서 대도서관과 함께 요리, 먹방 방송을 컨셉으로 방송출연 이후 매주 꾸준히 출연 중에 있다.
  • 2019년 임영선 탈북자동지회 대표, 강철환 조선일보 기자,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등과 함께 지만원을 고소하기로 하였다.

[1] 한국의 법에서는 헌법 제3조의 영토 조항을 바탕으로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사실상 한국 국적을 보유한다고 간주한다. #[2]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북한, 일본 후쿠시마, 프랑스를 직접 방문하여 취재한 프로그램. 프랑스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위험한 곳이다. 북한의 경우, 금수산기념궁전까지 잠입하여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탈북자들을 직접 인터뷰하였다. 지역별 각 3부작, 후쿠시마현과 프랑스는 4부작으로 기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