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8 15:14:52

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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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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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언론인. 통일방송 대표이며, 조선인민군 장교 출신이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군사건설국 경비소대 소대장 근무중 1991년에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암살을 기도하려다 실패하여 1993년 탈북하였다. 탈북 후에는 탈북민 입국 지원과 북한이탈주민 처우 개선에 힘 쓰고 있다.

2. 생애

평양출신으로 14세때 건축 엔지니어인 아버지가 상벌에 불만을 제기하여 함경북도 연사군으로 추방되었다가 17세에 군입대 5년간의 병생활에 군관으로 발탁되어 강건종합군관학교를 졸업하여 임관했다.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초급정치학교도 나왔다고 한다. 총참모부 군사건설국 참모장 직속 경비소대로 근무중에 하사관에게 마르크스-레닌주의 서적을 입수해서 읽다가 체제에 모순을 느끼고 젊은 장교들과 함께 김일성 김정일 암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1년후에 수사망이 조여오자 압록강을 넘어 탈출하여 베이징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고 1993년 한국으로 입국했다. 이후 총참모부 출신에 주요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부대 출신이라 주요 대상으로 분리되어 1년간 안기부 선생님(?!)과 밀착해서 지내고 미군부대에서도 6개월 동안 살았다고 한다. 1997년까지도 주민등록조차 행정안전부가 아니라 안기부에서 관리하고, 안기부 요원과 함께 미국 방문을 할때 빼곤 여권도 발급이 안되었으나[1]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중국등지로 활발하게 탈북자 구제활동을 했으며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안기부 선생님들의 강제보호가 끝나자 연세대를 졸업하고 현대그룹에 입사하여 대북사업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에 참여했으나 북한 당국이 탈북자 방북을 불허해서 가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김일성-김정일 암살을 시도하다 망명한 인물이지만 대북정책과 탈북자 지원에 대해서 보수정권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그의 말로는 김영삼 정부 1997년까지 안기부에서는 중국의 탈북자들은 주요 정보를 가진 즉 가치가 있는 인물만 선별해서 받는 입장이었으나, 야당 시절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면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고 국민의 정부에서는 대북 유화책을 쓰는 동시에 북한 이탈주민에 대해서 인식을 전환하여 북한이탈주민 지원 법안이 통과되었고 탈북자 지원 예산이 책정되면서 모든 탈북자의 입국과 지원 정착을 시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1997년까지 안기부 선생님(?)들은 신원이 확실치 않은 탈북자들은 고문을 했는데[2] 국민의 정부에서 안기부가 해체되고 국가정보원으로 출범하자 고문이 사라졌다고한다. 그리고 참여정부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높이 평가하는데 2004년 베트남 캄보디아에서 고립된 수백명의 탈북자들을 정부 예산을 동원하여 현지 숙박시설에 수용했고, 공해상에서 한국 선박을 요청했으나 정동영 장관은 그보다 전세기를 띄워서 468명의 탈북자를 이틀 만에 한국에 입국시켰다.[3] 대북전단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편이고, 대북협력과 지원 사업에도 찬성하는 입장인데,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과 현실적인 대북관계는 분리해서 보는 입장이다.

탈북자 구출 할때 광림교회 목사, 장로들의 사재를 털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여러번 감사의 뜻을 비쳤다. 한기총 탈북 난민보호운동본부 사무총장을 지냈다.

최근 탈북자 유튜브에서 초청으로 자주 출연중인데 입담이 대단하다. 여군통신 소대장, 경비소대장 출신으로 일화가 많은데 대부분 19금... 북한은 폐쇄적인 동시에 성군기 위반 사례가 많은데 경비소대장 하는일이 부화방탕[4] 군관적발이나 강간범 병사체포다. 통신소대장 2년동안 40명의 여군중에 3명이 임신해서 제대시켰는데 매번 의심받았으나 27세 탈북할때 까지 숫총각이었다고. 북한에는 권력형 성폭력이 만연해서 하급군관들 혼인도 아니고 연애를 양다리 걸쳤다고 사상투쟁 연단에 올려 자아비판 시키던 정치위원이 정작 자기 방에선 간호사와 대놓고 간통하는것 봤다고 할 정도로 북한에서 처벌은 코에걸면 코걸이인데, 주성하 기자도 북한은 권력형 성비리가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현재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전문가 패널로 출연중이다. 이만갑 전문가 패널출신 강명도와 호형호제 하며 절친한 사이이다.

지만원의 5.18 북한군 개입설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

20대 대선을 맞이하여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하며 직접 지지선언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


[1] 이것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황장엽과 망명한 김덕홍은 여권발급 소송을 대법원까지 6년에 걸쳐 노무현 정부 말기에야 승소했다.[2] 임영선이나 강명도 처럼 크게 사고치고 온경우는 신원이 확실해서 괜찮으나 여권없이 탈북한 시골출신 탈북자들은 조사의 편의성을 위해(?) 고문을 했다고 한다. 고문중에 나 차라리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악을 지르면 지프차로 판문점에 떨궈주고 얼렁가라고 등떠밀기도 할 정도[3] 다만 이후로 북한의 항의로 베트남 정부에서 탈북자의 베트남 출국을 막아 베트남 루트는 막히게 되었다.[4] 간통 불륜 강간 축첩 두집살이 이중약혼 혼인빙자간음 등등 하도 심각해서 연대장이상 군관 전용 영창까지 운영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