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3 06:23:04

문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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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SK 나이츠 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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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농구 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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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01
(선수)
2018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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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시즌 1997-98 시즌 1998-99 시즌 1999-00 시즌 2000-01 시즌
제럴드 워커
SBS / 가드
강동희
모비스 / 가드
워렌 로즈그린
나산 / 포워드
워렌 로즈그린
신세기 / 포워드
아티머스 맥클래리
삼성 / 포워드
2001-02 시즌 2002-03 시즌 2003-04 시즌 2004-05 시즌 2005-06 시즌
안드레 페리
삼보 / 포워드, 센터
마르커스 힉스
동양 / 포워드
문경은
전자랜드 / 포워드
찰스 민렌드
KCC / 포워드
서장훈
삼성 / 센터
2006-07 시즌 2007-08 시즌 2008-09 시즌 2009-10 시즌 2010-11 시즌
조상현
LG / 포워드
김주성
동부 / 포워드
이동준
오리온스 / 포워드
이승준
삼성 / 포워드, 센터
김효범
SK / 가드
2011-12 시즌 2012-13 시즌 2013-14 시즌 2014-15 시즌 2015-16 시즌
문태영
LG / 포워드
후안 파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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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
SK / 가드
김선형
SK / 가드
김선형
SK / 가드
2016-17 시즌 2017-18 시즌 2018-19 시즌 2019-20 시즌 2020-21 시즌
오세근
KGC / 센터
디온테 버튼
DB / 포워드
마커스 랜드리
kt / 포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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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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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시즌 1997-98 시즌 1998-99 시즌 1999-00 시즌 2000-01 시즌
최인선
기아
신선우
현대
신선우
현대
최종규
삼보
김동광
삼성
2001-02 시즌 2002-03 시즌 2003-04 시즌 2004-05 시즌 2005-06 시즌
김진
동양
김진
동양
전창진
TG삼보
전창진
TG삼보
유재학
모비스
2006-07 시즌 2007-08 시즌 2008-09 시즌 2009-10 시즌 2010-11 시즌
유재학
모비스
전창진
동부
유재학
모비스
전창진
kt
전창진
kt
2011-12 시즌 2012-13 시즌 2013-14 시즌 2014-15 시즌 2015-16 시즌
강동희
동부
문경은
SK
김진
LG
유재학
모비스
추승균
KCC
2016-17 시즌 2017-18 시즌 2018-19 시즌 2019-20 시즌 2020-21 시즌
김승기
KGC
이상범
DB
유재학
현대모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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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98 시즌 KBL 베스트 5
가드 포워드 센터
이상민
(대전 현대)
강동희
(부산 기아)
문경은
(수원 삼성)
조니 맥도웰
(대전 현대)
키넌 조던
(대구 동양)

2001-02 시즌 KBL 베스트 5
가드 포워드 센터
김승현
(대구 동양)
이상민
(전주 KCC)
문경은
(인천 SK)
마르커스 힉스
(대구 동양)
서장훈
(서울 SK)

1997~1998, 1998~1999 한국프로농구 3점슛상
정인교
(원주 나래)
문경은
(수원 삼성)
조성원
(대전 현대)
2002~2003 한국프로농구 3점슛상
양경민
(원주 삼보)
문경은
(인천 SK)
우지원
(울산 모비스)
2002~2003 한국프로농구 자유투상
추승균
(전주 KCC)
문경은
(인천 SK)
추승균
(전주 KCC)
2004~2005, 2005~2006 한국프로농구 3점슛상
우지원
(울산 모비스)
문경은
(인천 전자랜드)
방성윤
(서울 SK)
2008~2009 한국프로농구 자유투상
추승균
(전주 KCC)
문경은
(서울 SK)
마퀸 챈들러
(원주 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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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 현재
-1 {{{#050403 1대}}}
안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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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50403 2대}}}
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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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50403 3대}}}
이상윤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 {{{#050403 4대}}}
김태환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 {{{#050403 감독대행}}}
강양택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 {{{#050403 5대}}}
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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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50403 감독대행}}}
김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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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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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50403 7대}}}
문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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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5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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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SK 나이츠 감독
이름 문경은(文景垠)
생년월일 1971년 8월 27일 (만 [age(1971-08-27)]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학교 전동초등학교- 광신중학교- 광신정보산업고등학교 - 연세대학교
가족관계 배우자 김혜림, 딸 문진원[1]
종교 불교
포지션 스몰 포워드
신체 사이즈 190Cm, 92Kg
실업 입단 1994년 삼성전자 농구단 입단
소속팀 삼성전자/수원 삼성 썬더스 (1994~2001)
인천 SK 빅스/전자랜드 블랙슬래머 (2001~2006)
서울 SK 나이츠 (2006~2010)
등번호 14[2], 10[3]
국가대표팀 올림픽 1회(1996)
FIBA 세계선수권 2회(1994,1998)
아시안게임 3회(1994,1998,2002)
FIBA 아시아선수권 6회(1991[4]~1997,2003,2005)
수상내역 90-91 농구대잔치 신인상
농구대잔치 베스트 5 3회 (92~94)
KBL 베스트 5 2회 (98, 02)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은메달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FIBA 아시아선수권 우승 1회(1997) / 준우승 3회(1991, 1995, 2003) / 3위 1회(1993)
지도자 서울 SK 나이츠 감독 (2011~)[5]

1. 개요2. 선수 생활
2.1. 프로 이전2.2. 프로 시절2.3. 선수로서의 특징2.4. 국제 대회에서의 문경은
3. 지도자 경력
3.1. 2011 - 2015년까지3.2. 15 - 16 시즌3.3. 16 - 17 시즌3.4. 17 - 18 시즌3.5. 18 - 19 시즌3.6. 19 - 20 시즌
4. 지도자 스타일
4.1. 지도자로서의 장점4.2. 지도자로서의 단점
5. 흑역사6. 기타

1. 개요

서울 삼성 썬더스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 서울 SK 나이츠에서 뛰었던 농구선수이자 감독. 등번호는 14번(삼성) - 10번(SK 빅스 - 전자랜드 - SK 나이츠)

13시즌 동안 프로무대에서 '람보슈터'라는 별명과 함께 수려한 용모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스타였으며, 프로 통산 610경기에 나서 9347점을 기록하여 1위 서장훈, 2위 김주성, 3위 추승균에 이어서 통산 득점 4위에 올랐다. 하지만 서장훈이 13,000점대라는 넘사벽 기록과 추승균도 10,000점을 넘어간 것과는 달리 문경은은 끝내 10,000점을 넘어가지 못했다. 전공인 3점슛은 1669개로 프로통산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통산 3점슛 성공률은 39.5%.

2011-12 시즌부터 SK 나이츠의 감독대행이 되었으며, 시즌 후 SK 나이츠의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 계약기간은 총 3년. 2015년에 재계약에 성공했다.

2. 선수 생활

2.1. 프로 이전

원래는 센터로서 플레이하던 선수였다. 하지만 고교 시절 190cm에서 더 이상 키가 크지 않자 스몰 포워드로 전향한다.[6]

스몰 포워드 전향 후 연세대에 입학, 연세대 재학 시절 1993-94 농구대잔치에서 이상민, 서장훈, 우지원, 김훈 등과 함께 연세대를 농구대잔치 사상 첫 대학교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문경은이 센터 출신이고 장신인 점을 활용해서 공격했다는 오해가 있는데, 문경은의 동시대 선수이자, 고교시절 센터하다가 신장의 문제로 대학 진학후 포워드로 변신한 선수는 양경민,김영만,우지원등[7] 적지 않았다. 또한 이때부터 성인농구계 평균 신장이 빠르게 상향세를 타서, 불과 몇년 전까지 183cm 이충희가 포워드로 뛰던 시절에서 진화해 대학농구 스몰 포워드 중 일급선수는 왠만하면 190을 넘겼기에 신장이 특별히 강점이 된 선수도 아니다.[8] 이렇게 당대의 라이벌들에 비해 신장으로 압도한 게 아니라, 후배 우지원과 비슷하게 정확한 슛팅력과 3점슛, 강심장을 바탕으로 한 클러치 득점력으로 스타가 되었다. 한편 당시 인기 탤런트이던 손창민과 닮았다며 오빠부대를 이끌고 다니는 스타로 군림한다. 다만, 중대 양경민,김영만처럼 올라운드 포워드로 완전히 갈아타진 못해서, 저 둘과의 매치업에선 수비열세를 드러냈다.
실업농구팀인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의 치열한 스카우트 전쟁 속에서 유형 무형의 엄청난 대우 끝에 알려진 계약금만 5억원을 받고 삼성전자로 진로를 택했다. 삼성전자에 입단한 이유는 문경은 이전 최고의 슛터 김현준이 있기도 해서였다. 삼성전자 입단 후 김현준과 쌍포를 이루며 팀을 농구대잔치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때 문경은은 총득점 1위에 올랐고 이 시즌을 끝으르 전무후무한 6천 득점의 대기록을 작성하고 은퇴한 김현준은 자신의 기록을 깰 선수로 문경은을 지목하기도 했다. 한편 이 농구대잔치 8강전에서 삼성전자는 연세대와 경기를 했는데 서장훈에 대한 테러 수준의 몸싸움에도 한 몫을 거들어서 욕도 들어먹었다.

그후 상무에 입대, 대학 1년 후배인 이상민과 재회하고 조성원과 쌍포를 이루면서 상무를 1996-97 농구대잔치 우승 문턱까지 이끄는데 성공하나, 이름값에 못 미치는 활약으로 까이는 일도 자주 있었다.

2.2. 프로 시절

파일:img_history_season97-1.png
이충희 ㅡ 김현준 ㅡ 문경은 으로 이어지는 슛터계보

상무 제대 후 1997-98 시즌에 프로화된 삼성에 복귀, 평균 25점에 이르는 득점력을 과시하며 역시 문경은이란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팀은 플레이오프도 나가지 못한다.

다음 시즌에도 평균 21점에 이르는 득점력을 선보였으나, 1999-2000 시즌에는 평균적인 외국인 선수들의 능력 향상에다 자기 관리 문제인지 뭔지 날렵하던 몸에 군살이 꽤나 붙은 모습까지 되면서 평균 득점은 17점 정도를 기록한다. 하지만 주희정의 활약이 팀에 더해지면서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는다.

파일:문경은_삼성시절 우승했을 때.jpg
2000-01 시즌, 빛을 발하는 주희정과 그 시즌 최고의 외국인 선수인 아티머스 맥클래리, 거기에 이규섭의 공수가 더해전 썬더스에서 평균 18점에 이르는 공격을 더하면서 문경은은 팀의 첫 우승의 주축이 되었다.

하지만 팀 내 비중 문제로 당시 삼성 썬더스의 감독이던 김동광과 갈등이 있었고, 때문에 2001-02 시즌을 앞두고 신세기 빅스(이후 SK 빅스, 현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우지원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어 빅스의 선수가 된다. 그리고 빅스에선 조니 맥도웰과 콤비를 이루며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데 성공한다. 다음 시즌에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빅스가 전자랜드에 인수된 2003-04 시즌에는 앨버트 화이트를 외곽슛으로 도와 주면서 다시 한번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다.

파일:문경은_SK선수시절.jpg

2005-06 시즌에 김일두, 임효성을 상대로 서울 SK 나이츠에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체력적인 문제로 스팟 슈터 롤을 맡았....어야 했는데 방성윤이 워낙 골골대는 터라 노익장을 발휘해야 했던 경기들이 많았다. 출전시간이 길어지면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수비 문제가 있긴 했지만 이름값은 톡톡히 했다.

영구결번 선정 당시는 논란이 많았지만 SK 농구단에서 가장 오래 감독생활을 하는 인물이 되었고 17-18시즌부터 성적도 호전되고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헤인즈 없이도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며 우승하면서 영구결번으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냈다.

2.3. 선수로서의 특징

이충희김현준의 뒤를 잇는 한국농구 슈터 계보를 잇는 존재로 불리며, 같은 편의 스크린을 이용해 수비수를 제친 후 노마크에서 확률 높은 슛을 쏘는 슈터의 기본기에 매우 충실했다. 특히 한번 "터졌다"고 한다면 엄청난 슛 정확도를 보여주는 일도 있었다.

파일:mA2iHD0.gif
한때는 경기 중에 백덩크를 구사할 정도의 운동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운동능력을 이용한 돌파도 주요 무기 중 하나였던 때가 있었다. 센터 출신이라 포스트업 기술도 있었고, 상당히 괜찮은 패싱 센스도 있었다.

고교시절 센터였으나 연세대학교 진학후 190cm라는 작은 신장의 약점이 드러나고, 최희암 감독의 분업화 경향으로 인해 골밑 공간은 당시 연대의 센터라인인 구본근, 김재훈, 서장훈에게 주고 페이스업보다는 스트레치 4 플레이나 스팟업 등으로 공격 역할이 제한되어 버리면서 연세대 이후부터는 사실상 스트레치 4 전문 롤플레이어로 전환하였다. 여기에 팀내에는 이상민이라는 당대 최고의 포인트가드가 입학하면서 점차 문경은이 직접 볼터치를 주도하는 상황도 줄어들면서 좀 더 슈터성향이 강해졌다.

기존의 나무위키 문서에는 문경은이 이규섭과 같이 서장훈 때문에 하나 위의 포지션으로 옮기고 포제션을 뺏기면서 어정쩡한 기능성 플레이어가 되어버린 서장훈 시대의 피해자라고 묘사되어 있는데, 이건 잘못된 주장이다. 문경은은 서장훈보다 3년 선배고 둘이 같이 뛴 건 문경은의 4학년 시즌 단 1년이다. 문경은은 대학이후로 내내 스몰포워드로 슈터로 활약했으니 서장훈과는 무관하게 슈터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오히려 그나마도 일찍부터 신장에 맞는 3번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연세대학교에서도 부동의 주전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던 것.[9]

게다가 문경은이 키가 190cm인데, 한 세대 선배인 허재는 키 186에 1번 2번을 주로 맡았고, 동시대인 김영만 양경민은 193cm의 키에 고교까지는 센터를 보다가 대학 이후 스몰포워드로 전향했고 문경은과 같은 포지션이다. 또 동 포지션의 추승균은 190cm, 우지원도 191cm로 대학부터 스몰포워드로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다. 즉 문경은의 키는 당대의 대학농구에서 딱 스몰포워드 신장이고, 그래서 자연스레 스몰포워드로 슈터로 활약한 것이다.

최희암 감독의 분업농구 하에서 슛만 던지는 슈터로 역할을 한 셈이지만, 그래도 실업과 프로 초창기에는 팀을 이끄는 에이스로 다양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실업농구 삼성시절에도 김현준과 쌍포로 내외곽 공격을 주도했고, 프로 신인시절 팀에서 득점을 이끄는 용병이 있음에도 여전히 발군의 득점력을 발휘하면서 평균득점 25점 정도로 국내선수 중에서 단연 탑에 이르는 득점력으로 용병급의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1999-2000 시즌 무렵 김동광 감독 부임 이후로 2명의 용병이 중심이 되는 전술로 완전히 바꾸면서 나머지 국내선수는 보조 역할만 하는 한국프로농구의 분업 시스템을 더욱 문경은에게 강요하게 되면서, 문경은은 팀 득점 에이스에서 블루워커스타일로 변신을 강요당했고, 용병 득점을 보조하는 외곽슈터로 제한한 이후로 플레이가 단조로워졌다.

게다가 자기 관리 문제인지 뭔지 급격히 몸이 가로로(...) 넓어지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운동능력도 많이 상실했다. 김동광 감독의 역할 제한이후로 출전시간까지 줄면서 급격히 고전을 하게 되었다. 결국 팀 우승 이후 신세계로 자진 트레이드 되게 된다. 이후 신세계에서 주득점원인 용병에 뒤를 이은 주축 슈터로 나름 중심역할을 하면서 선수생활 전성기 후반을 이어가게 된다.

자신보다 좀 더 큰 사이즈를 가지고 있으면서 비슷한 스피드를 가진 수비수와 매치업되면 고전하는 일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대학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김영만양경민. 그리고 추승균등 수비 좋은 선수와 매치업에서 밀리는 경우가 있었다.

제 2의 허재가 될 만한 재목이 그냥 슈터로 끝났다, 라고 말하는 농구팬들도 일부 있다. 사이즈와 운동능력, 거기다 농구 센스를 겸비한 덕에 슛만이 아니라 다재다능한 득점 능력과 패스 능력을 가진 선수가 될 수 있었는데, 연세대 시절 간혹 그런 모습을 보여주나 싶다가 최희암 감독의 분업농구론에 의해 골밑이 아닌 3점 라인 밖으로 나와서 패스를 받아 슛 던지는 역할로만 계속 뛰었기 때문이다.

문경은이 제2의 허재, 이충희가 되지 못한 것에는, 농구대잔치 시절과는 다른 한국 프로농구의 변화가 큰 이유가 되었다는 분석도 많다. 프로농구 이후 용병 2명이 에이스 역할을 하게 되고, 그 결과로 한국센터의 몰락, 한국 슈터의 역할 제한, 그리고 유일하게 국내선수가 살아남은 포지션이 포인트 가드였던 것이 프로초창기의 한국프로농구의 모습이다. 그 결과 한국선수 MVP는 강 모 선수이상민 등 토종 포인트가드가 독식하게 된다. 서장훈 이외에 팀의 득점에이스가 몰락한 현실로.. 결국 한국 슈터의 역할 변화는 한국 대표 슈터였던 문경은의 역할까지도 제한시키게 되었다. 즉, 프로농구 이후 2명의 용병이 주득점원이 되면서, 그 전까지 에이스역할을 하던 슈터들이 더 이상 에이스가 아닌 블루워커 스타일로 변신이 강요되었고, 조공격수인 한국 선수는 수비 + 캐치 앤 슈팅으로 플레이가 제한되었고, 우지원 등 슈터들이 그런 스타일로 굳어졌다. 즉, 궂은일 잘하는 선수가 좋은 선수로 인식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애초에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던 허재, 문경은 스타일의 선수보다 보조공격수로 적당하면서 블루워커로써 궂은일도 꽤 잘하는 김영만, 추승균 스타일이 용병과 조화가 좋았다. 용병이 주득점원에 해결사 역할을 할 때 수비 + 캐치 앤 슈팅(보조공격수)로 용병보조를 잘 해내는 선수가 쓰임새가 많았고, 그런 이유로 천하의 허재마저 팀에서 신인 김영만에게 밀려났고, 트레이드를 자청하게 됐고 문경은도 트레이드를 요청하게 된다. 문경은, 허재마저 이럴 정도이니 우지원, 김훈 등 정통 슈터들도 수비 열심히 하고 간간히 3점 던져주는 마당쇠로 변신해서 겨우 살아남았다.... 하다 못해 전희철, 이규섭, 김동우 등 2m 정도 센터 출신들도 수비 + 캐치 앤 슈팅 스타일로 다들 변신할 정도이니 말할 나위가 없다.

즉, 더 이상 이충희, 허재같은 한국인 팀 에이스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문경은이 이충희, 허재가 되지 못한 이유도 많다는 것이다. 사실상 프로 이후로 팀 주득점원으로 한두 시즌이라도 계속 활약한 선수는 문경은, 조성원, 방성윤 정도이며, 꾸준히 팀의 에이스였던 선수는 서장훈밖에 없다. 그 서장훈마저도 블루워커 노릇을 안 한다고 해서 선수 생활 내내 욕을 먹던 것이 프로이후 한국의 득점 에이스들의 현실이다. 문경은과 김영만의 차이는 사실 서장훈과 김주성의 차이와 비슷하기도 하다.

프로 초창기 이후로 한국 선수가 다양한 득점 루트로 팀 득점을 주도하는 건 비효율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욕먹던 시절이다.[10]

물론 프로이전부터 문경은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슈터로 불리면서도 반쪽짜리 슈터 소리를 듣는 일도 많았다. 앞선 세대인 이충희나 김현준이 자신보다 큰 수비수를 앞에 두고도 일대일 상태에서 드리블 등으로 수비수를 제치고 풀업 점퍼를 정확하게 쏘는데 능했는데 비해 문경은은 슈터로서 풀업 점퍼가 안 되는 받아먹기 전문이었기 때문에 상대의 밀착수비에 약점을 보였다.

그러나 역할 제한을 받지 않고 에이스로 활약하던, 실업이나 프로 초창기에는 내외곽에서 자기 하고 싶은 플레이를 맘껏 하던 시절에는 내외곽에서 다양한 득점력을 구사하고 풀업점퍼 등의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했다. 연세대시절이나 프로이후 차차 역할 제한이 들어가면서 캐치 앤 슈팅이라는 단조로운 스타일 외에는 버릴 수밖에 없었다. 즉, 시대가 제 2의 이충희 허재가 나올수 없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문경은은 국내선수로는 최고 수준의 3점 공격력을 가졌고, 다른 수비 약점을 포함해도 역대급 공격력을 가졌던 선수이다. 역대 득점 4위, 3점 1위

이후 문경은만큼 노마크 슛이라도 확률 높게 넣어주면서 슈터의 기본에 충실한 선수는 거의 없다. 국내리그에서 비슷한 급이었던 김영만 등에 비해 문경은은 확실한 3점 슛이라는 무기 덕분에 좋은 커리어를 이어갔고 국제용으로 중용받을 수 있었던 것. 이런 공격력의 장점 때문에 수비상의 약점 포함해도, 김영만, 추승균, 양경민을 제치고 국가대표 선수로 선호받았다.

그리고 2015년 스테판 커리의 MVP 이후 세계 농구 트렌드가 꽤 크게 바뀐 시점에서 되돌아본다면, 서장훈, 문경은 등은 한국 농구의 또 하나의 편견에 시달린 선수이다. 바로 외곽 공격은 영양가가 없다는 식의 시각이다.

용병 이전 전통적 한국 농구는 양궁농구라는 양날의 검을 가진 농구 스타일이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외국에 비해서 장신 센터가 골밑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오랜 컴플렉스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중국과의 국제경기에서 한국이 외곽이 밀려서 지는 경우는 적었고, 높이의 차이 골밑파워 차이로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장신인 서장훈이 골밑을 버리고 중거리슛을 던진다는 이유로 겉멋 들었다며 욕을 엄청 먹었고, 3점 중심의 슈터들은 한편으론 인기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영양가 없다는 비아냥에 시달렸다. 그런 이유로 장신센터인 김주성, 하승진의 경우 중거리 슛 센스가 생각보다 좋았음에도 감독들이 의도적으로 중거리슛, 외곽슛을 멀리하게 교육했고, 그 결과로 김주성은 충분히 성공한 선수가 되긴했지만 수비와 팀플레이 중심의 선수로의 한계를 가지게 된다. 김주성이 초창기 골밑 플레이가 막히면 공격에서 막힐 수밖에 없지만, 어차피 공격은 2명이나 되는 용병에게 맡기면 되니까 그게 한계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김주성이 슛팅 능력이 없는 선수가 아닌 것이, 선수생활 후반에 3점슛을 개발한 이후로 선수생활 연장이 가능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김주성이 더 일찍 전성기 시절 미들슛과 3점을 장착한 선수였다면 더욱 무서운 선수가 되었을 수도 있다. 사실 김주성이 한국 역대 최고의 선수 중의 하나이지만 역대 No. 1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선수는 아니고, 또 중국 등 국제경기에서 훌륭하게 활약했지만 그렇다고 압도한 것은 아니기에... 스스로 골밑이라는 영역 제한을 두고 자신의 선수능력치를 제한하지 않았으면 더 뛰어난 선수가 되었을 수 있다는 아쉬움인 것이다.[11] 이런 의미로 서장훈이 정확한 슛이 없었으면 서장훈의 가치는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슛이 좋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받는 게 억울한 셈이다.

센터의 중거리 슛과, 슈터의 3점 공격이 영양가 없다며 평가절하당하던 시절이라 서장훈과 문경은의 가치가 더욱 낮아진 것도 있다는 시각이 있는 것이다.

문경은의 은퇴 이후 꽤 세월이 흘렀지만 문경은급의 슈터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최근 재평가를 받고 있다. 문경은의 말년기때의 평균득점을 따라가는 슈터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2.4. 국제 대회에서의 문경은

아시아선수권 등에서 일본 정도까지의 상대들과 대결할 때는 매서운 활약을 보여주는데, 중국전에서 자신보다 크면서 스피드도 비슷한 상대와 매치업되면 버로우란 표현의 예시라고 해도 될 만한 모습들만 보여줬다.

그런 이유로 기존 나무위키 내용에는 양민학살용이란 평가가 있었는데, 이 말이 참 무색한 것이 국내선수 중 중국전에 제대로 활약한 선수가 아예 없다. 물론 간간히는 활약한 선수는 있다. [12]

하지만, 서장훈, 허재, 이충희 등 한국 역대 베스트5 급 선수들 모두 포함해도 중국전에 간간히 활약을 하긴 했지만, 결국 중국에 밀려서 패배하는 게 보통이었다.[13] 허재, 이충희가 국제 경기에 그나마 가끔 대활약했을 뿐, 상당수의 경우 국제전에 벅찬 상대를 만나면 허재, 이충희도 잠잠한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허재, 이충희, 방성윤, 문태종등 역대 최고의 슈터조차도 국제대회에 중국전에 훌륭한 활약을 한 것도 아니다.

94년 세계대회에 출전했을 당시 평균 19점에 70퍼센트의 2점 야투율을 기록하고 37퍼센트의 3점슛 성공률로 전체 출전 선수 중 3점 성공률 1위를 찍는 등 좋은 활약을 했다. 이집트를 상대로 한 두 번의 경기에선 30점과 33점을 기록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국제 경기에서 미친 듯한 3점 슛으로 경기의 흐름을 한순간에 돌릴 실력을 가진 역대 몇 안 되는 슈터였다.[14]

3. 지도자 경력

3.1. 2011 - 2015년까지

은퇴 후 서울 SK 나이츠의 전력분석관을 거쳐 2011년 감독대행 자리에 올라 1시즌을 지휘했다. 시즌 초반에는 중위권 싸움을 했지만 알렉산더 존슨의 부상 이후로 추락하면서 최종 성적은 9위에 그쳤으나, 김선형 등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여 발굴한 점을 인정받아 2012-13 시즌부터 같은 그룹 야구단이만수처럼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계약 기간은 3년.

일단 2012-13 시즌 초반 김선형포인트 가드로 돌리고, 풍부한 포워드 자원을 적극 활용하며 수비력을 강화시키면서 초반 돌풍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의 법칙에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시즌 내내 선수들을 독려하고, 모래알이라는 비아냥을 듣던 SK의 조직력을 강화시키는데 성공하면서 마침내 2012-13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프로농구가 고의 저주기 논란에 승부조작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별 주목을 못 받는 것이 안습. 그러나 통합 우승은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사실 이것이 대단한 이유는 최인선 감독, 에이스 서장훈 시절 우승-준우승을 맛본이후 무려 10년이상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을 방성윤 김민수 등 보유하고, 또 당대 최고의 감독들을 줄줄이 영입하고도 하위권을 전전하던 팀을 단숨에 정규시즌 우승으로 이끌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2013-14 시즌에도 3-2 드랍 존을 이용한 전술로 재미를 보고 있지만 창원 LG 세이커스의 2-3 지역방어 전술에 의해 파훼되는 바람에 상대전적에서 밀렸으며, 애런 헤인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결국 2013-14 시즌에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성과를 보여주고, 고질적이 하위팀이라는 패배주의를 완전히 벗어버리는데 성공했으나, 또다시 플레이오프에서 울산 모비스에 패배하는 실패도 맛보았다.

4-15 시즌에는 2월 2일부터 24일까지의 1승 7패를 제외하면 여전히 잘 나가면서 상위권에 머물렀고, 3위로 정규시즌을 끝냈다. 하지만 전자랜드에게 막혀 4강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다.

2014-15 시즌 후 SK와 3년 재계약에 합의하였다.

결과적으로 초보감독으로서 패배주의에 찌들었던 SK란 팀을 단숨에 최상위권으로 이끄는 능력을 보여주었으나, 결과적으로 우승은 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 상황이었다.

3.2. 15 - 16 시즌

비시즌기간에 전창진 감독의 승부조작 의혹 경기에서 상대팀 감독으로 불똥이 튀기도 했고, 헤인즈가 한계가 분명한 용병이니 겸사겸사 바꾸는 거야 이해되지만 이정석, 돌승준 형제를 영입한다든지 물음표가 잔뜩 붙은 시즌 출발을 보이고 있다. 김선형 역시 입단 전 상습 불법토토 혐의가 있어서 출장 정지 상태이기에 1라운드 5승 4패를 목표로 잡았다. 그러나 1라 마지막 경기에서 졸전끝에 4승 5패(...). 간만에 작전 타임 도중 화를 내기도.

2015-16 시즌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어째선지 살이 더 쪘다. 무너지는 팀을 수습하지 못하면서 팬들에게 시즌 내내 까이고 있는 중이다. 원래부터 애런 헤인즈의 의존도가 높다하여 문애런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이 붙었는데, 현재 이 별명에 대해 SK팬들조차 쉴드를 못칠 정도로 못하고 있는 중. SK 나이츠의 긴 암흑기를 끊어낸 감독이지만 성적을 내지 못하고 부진하자 슬슬 경질을 논하는 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SK팬들에게 돌경은이라며 자주 까이고 있는 건 덤.

징계가 끝난 김선형이 7경기에서 평균 35분19초를 뛰며 19.86득점 4.0리바운드 6.1어시스트로 맹활약했으나 팀이 1승 6패로 부진하자, 이상민-김승현과 비교하며 김선형이 팀원을 더 살려야한다는 인터뷰를 했다. 김선형은 이후 10.75득점 3.9리바운드 5.3어시스트로 눈에 띄게 슛을 줄이고 리딩에 주력하지만, 팀성적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렇게 김선형의 슛을 제한하고 늘린 옵션은 슛이 좋은 스펜서와 박승리의 포스트업(...). 애초에 패싱력보다는 공격력이 좋은 선수를 한국농구 역사상 손꼽는 포인트 가드들과 비교하며 장점을 죽인다는 지적이 있다.

4라운드까지도 정신없이 지면서 돌경은을 넘어 문돼지라고 까이고 있는 실정. 35경기 하는 동안 12승 23패로 8위. 승률은 3할대 중반에 머무르고 있고, 연승은 딱 2연승 2번만 했다. 최부경의 상무 입대, 박상오의 트레이드, 새로운 이적 선수들의 부진, 김선형의 징계 등등 모든 악재가 겹치며 예년에는 주전, 식스맨 급이었던 선수들이 모두 빠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대처하는 문경은 감독의 능력 부족도 큰 화두로 떠올랐다.

결국 20승 34패에 최종순위 9위라는 성적을 받게 되었고, 이 성적은 문경은 감독의 SK 감독 데뷔시즌과 함께 최악의 성적이기도 하다.[15]

SK 나이츠의 오랜 암흑기를 끊어내준 감독이기도 하기에 아직 SK팬들의 신뢰는 남아있었으나, 2015-16 시즌은 그 신뢰에 커다란 금이 가게 만들었다. 에어컨리그, 시즌 중에 보여준 단점들도 많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인 것이, 김선형, 사이먼, 스펜서, 김민수 등으로 대표되는 주전선수들과 백업선수들의 기량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는 모습을 보이고, 그 백업선수들의 경기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 출전시간을 제대로 배분해주지 못해 식스맨들은 성장을 하지 못하고, 주전들은 과부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16] 2016-17 시즌이 문경은 감독의 실질적인 리빌딩 능력을 판가름 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되는 셈.

그러나.....

3.3. 16 - 17 시즌

2016-17 시즌 역시 초반부터 좋지가 않다. 과거 3시즌 동안 SK의 전성기를 함께 한 코트니 심스를 다시 데려왔지만, 테리코 화이트와의 연계를 잘 풀어나가지 못하고 있으며, 김선형을 공격과 어시스트 중 어느 분야로 풀어줄 것인가도 왔다갔다하고 있는 모습. 그나마 행운의 드래프트 2픽으로 뽑은 최준용이 데뷔 동기들 중 가장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것이 다행. 그러나 하위권에 쳐져있는 KT나 LG를 상대로 20점대 가량 앞서고 있는 점수차를 역전패하였고, 전반까지 이기고 있다가 후반에 들어서 역전을 당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면서 팀 순위를 떨구고 말았다.

최근엔 문응#이라는 별명이 또 하나 생겨났는데 특히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같이 무능하다고 미친 듯이 까였던 조동현조차도 선수들 멘탈이 문제다 하는 등 선수단 구성과 정신력 문제 때문에 변명거리라도 있긴 하지만 문경은은 쉴드거리가 아무것도 없다는 게 큰 차이점. 이제는 조동현이 점점 상중위권 팀들을 다 때려잡고 트레이드도 성공으로 이어지면서 조동현과도 비교하지 말라는 의견도 보인다.

12월 23일 모비스 전에는 다 잡았던 경기를 연장전까지 합해 찰스 로드박구영에게 버저비터만 2방을 맞으면서 졌고, 이틀 뒤 삼성과의 경기도 전반에 16점을 앞서고도 3쿼터에 상대에게 2점 공격으로만 연이어 털리며 점수차를 다 까먹고 또 역전패했다.

20점차 이상인 상태에서의 역전패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데다가 연패의 숫자가 6으로 늘어난 상황에서도 선수들의 탓을 하거나 태평한 어조의 인터뷰(경기력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로 SK팬들의 혈압을 마구 올리고 있다. 현재의 대체적인 평은 사람은 좋은데 경기 운용 자체가 서술한 대로라(...). 사람만 좋아선 명장이 될 수 없다는 케이스로 남을 듯하다.

10점 주면 20점 먹히는 김민수의 꾸준한 기용, 4쿼터에 외곽수비 안해서 상대팀 슈터에게 3점슛 폭격 맞기, 오로지 외국인선수와 김선형 GO밖에 없는 단순한 작전, 포인트가드가 어울리지 않는 김선형에게 꾸준히 1번을 강요, 선수 보는 눈 없음, 트레이드의 실패까지... 10위 kt의 조동현이 선수들의 줄부상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16-17시즌 KBL 최악의 감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마지막 경기를 잡으며 반전을 꾀하나 싶었지만 같은 하위권 멤버인 KCC와 kt에게 털리고 삼성에게 잡히면서 또 연패를 이어가고 있다. 결국은 전반기를 9위로 마감했다. 그나마 후반기가 시작하면서 실낱같은 희망고문을 시작했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무너지면서 비난 여론이 정점에 달하고 있는 상황.

사실상 SK가 프로농구 감독 커리어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기 운용 및 선수 기용, 작전 및 전술 모두 엉망진창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감독을 바보가 아닌 이상 주워갈 팀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

이런 처참한 평에도 불구하고 SK프런트가 남은 계약기간 1년을 채워주기로 한 듯, 17-18시즌 부족한 포지션을 보강해서 잘 준비하겠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SK팬들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4월 중반 경 LG가 김진과 계약만료가 되자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고 결별을 선언하기에 이르는데 이에 SK 팬들은 문경은은 안 보내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3.4. 17 - 18 시즌

국가대표에서 김선형이 제대로 스크린을 걸어주었을 경우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면서 연일 대활약하며 문경은 감독은 시즌 전부터 농구팬들에게 비웃음을 사고 있다.

KBL에 크게 관심이 없던 농구팬들이 김선형의 대활약을 보면서 '김선형 선수 소속팀에서도 잘하나요?'라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는데 SK팬들은 할 말이 없다.

그리고 2라운드 7순위로 뽑은 대리언 타운스를 다른 용병으로 대체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결국 문경은은 계약 마지막 해에 애런 헤인즈를 다시 품에 안았다. 이러고도 성적을 못 내면......

2015년에 헤인즈를 내보낼 때, 문경은이 "애런 헤인즈로는 우승 어렵다" ???[17]??? : 바보냐? 라고 말한 이후 2년 동안 내내 하위권을 전전하다 다시 애런과 계약을 한 건 어찌보면 정말 굉장한 코미디다(...).

일단 개막 3연승을 달렸으나 17일 현대모비스와의 울산 원정 경기에서 김선형이 시즌아웃급 부상을 당해버리는 악재가 생겼다. 하지만 현재 이정현에밋, 전태풍 등을 모두 보유하고도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KCC의 추승균보다는 낫다는 평가를 듣는 중.[18] 그러다가 10월 28일 DB 프로미전에서 승리하면서 개막 6연승을 달리고 있다. 역시 아무리 문애런거려도 이 분만큼 헤인즈 잘 쓰는 감독이 없다(...). 역시 문경은과 헤인즈의 조합은 최강이다.

그러나...드롭존과 애런 헤인즈가 아니면 아무런 전술도 없는 문경은의 단점은 6년 동안 하나도 좋아지지 않았고, 만나는 팀들마다 3점 폭격을 맞고 있다.[19] 12월 12일 DB전에서는 전반 26점차에서 드롭존만 쓰다가 3점 소나기를 맞으며 역전패를 당하면서 SK팬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 경기 이겼으면 5연승이었는데

하지만 이렇게 상위권에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홈콜 논란과 SKBL이라는 비아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경기 중 선수단의 인성 문제도 나오고 있으며 성적도 성적이지만 인성 문제도 문경은 감독이 책임을 질 필요도 있다.

31일 오리온과의 송년 매치에서 감독 통산 200승을 달성하였으며, 애런 헤인즈 역시 9,000점을 돌파했다.

2월 16일 팀은 전자랜드에 패했지만 앞선 경기에서 7위 삼성이 KGC에 덜미를 잡히면서 SK는 3시즌만에 6강PO에 진출했다. 그리고 3월 13일 KCC와의 최종전에서 승리하면서 5년만에 4강에 직행했다.

하지만 헤인즈가 십자인대 파열로 8주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이번 플레이오프가 다시 한 번 더 문경은 감독의 시험대가 될 수 있는 상황.

부상 대체 선수로 3월 18일 에 제임스 메이스를 가승인 신청하였다.

그리고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전주 KCC 이지스를 3승1패로 꺾고 5시즌만에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 상대는 원주 DB 프로미.

2017-18 KBL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3점슛을 적중시키는 작전으로 우승까지 1승을 남겼다.

4월 18일 홈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원주 DB 프로미와의 경기에서 80 vs 77 승리를 거두어 감독으로서의 첫 우승이자 팀의 1999-2000시즌 이후 2번째 우승을 달성하였다.

우승 직후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20]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다. 문경은 감독은 시즌 전 부터 착실하게 준비하였다. 자기보다 후배인 위성우 감독한테 직접 찾아가서 위성우 감독의 우승 노하우나 시즌 운영에 관한 노하우를 배웠고, 사이드 스텝을 밟는 수비에 핸드볼 스텝이 좋다는 말들이 있어서 SK 호크스 핸드볼팀 코칭스태프로부터 스텝을 밟는 걸 약 1주일간 배우게 하면서 팀에 도움이 될 만한 거는 배우면서 다녔다. 결국 이러한 시즌전의 노력들이 빛을 발해서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뤄낸 것이다. 그리고 올해가 계약의 마지막해이면서 지난 2년간 안 좋은 성적으로 심적 고생이 많을 듯 싶다.

그리고 우승 인터뷰를 했다. #여전히 눈물을 글썽인다

2001년 삼성에서 선수로 우승한 뒤 두 번째 우승이며 선수-감독으로 우승을 경험한 역대 세 번째 인물이 되었다.[21]

챔피언결정전에만 올라가도 재계약은 확정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우승을 한 만큼, SK나이츠 감독으로써 10년 이상 할 가능성이 높다.

3.5. 18 - 19 시즌

개막전 10월 13일 DB전에서 승리한 뒤 어이없는 경기력으로 2경기 연속 대패를 당하며 또다시 문애런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헤인즈도 헤인즈지만 더 큰 문제는 핵심 국내 선수들이 부상병동이라는 것.

그래도 두 외국인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국내선수들을 이용한 다양한 플레이와 경기 중 적절한 용병술[22]로 크게 무너지지는 않는 중. 헤인즈가 없음에도 문경은 감독의 치밀한 준비로 평균 득점 100점 이상에 개막 5연승을 달리던 현대모비스에 첫 패를 안긴 장본인이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 문제는 1라운드 종료 이전 빨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 윌리엄스야 발이 느려도 경기가 지날수록 계속 골밑에서 꾸역꾸역 리바운드도 따고 중거리 슛도 간간이 넣는 반면, 바셋은 하는 일이 니갱망이 전부다(...). 퇴출이 시급한 상황. 거기에 문경은 감독의 드롭존 사랑은 어디 가지 않는지 지는 경기는 똑같은 패턴으로 매번 3점 폭격을 당하고 진다. 용병술은 괜찮긴 한데 드롭존 이외의 전략이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거기다 헤인즈가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말을 하지만 계속 복귀를 지연시키며 이 또한 팬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는 중이다.# 물론 헤인즈가 적지 않은 나이인데다가 부상 부위가 전방 십자인대인 것을 생각하면 문경은의 입장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1라운드 성적이 성적인 만큼 팬들이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1라운드는 5승 4패로 5할 승률로 마감하는 데에는 성공하긴 했다.

외국인 선수들의 득점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자 아예 팀컬러를 저득점 늪농구로 전환. 꾸준히 승리를 챙기고 있다.[23]

애런 헤인즈가 돌아오자 다시 속공, 포워드 농구로 팀컬러를 전환하면서도 늪농구 스타일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모비스와 LG에게 연패를 당하면서 헤인즈가 돌아오니 더 못하고 있다(...). 이는 SK의 포워드진에서 생긴 문제인데, SK의 주력 포워드들인 김민수, 최준용, 안영준이 각각 허리 부상, 발가락 수술, 무릎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골밑은 최부경 혼자 남게 되었고, 득점력도 시원찮은 마당에 헤인즈와 바셋 모두 상대 외국인 스쿼드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 빅맨들[24]과의 리바운드 싸움에서 완전히 압도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결국 윌리엄스와의 계약이 해지되고 헤인즈와의 동행은 결국 2라운드 최악의 수가 되고 말았고, 남은 경기도 사실상 어렵게 예상되기에 문경은 감독의 시즌 최대 위기라 할 수 있다. 여러 가지로 초장부터 운도 지지리 따르지 않는 시즌.

다급한대로 일단 송창무를 데려오긴 했지만, 헤인즈와 바셋의 밑천이 벌써 다 드러났는지 여전히 패배만 적립하며 2라운드를 5할 이하로 마무리하게 생겼다. 감독에게 의미가 큰 선수인 헤인즈는 몰라도 바셋은 지금 버리지 않으면 플레이오프 승선도 위험할 수가 있다.

2라운드를 3승 6패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마치면서 팀 성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3승 1패 상황에서 헤인즈가 복귀한 이후 상위권 3팀(현대모비스, LG, kt)을 만나 내리 3연패, 하위권 팀(DB, 오리온)에게마저 연패를 당하며 5연패로 마무리하며 5할 승률마저 붕괴했다. 순위는 공동 6위라고는 하지만,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갈 요소보다는 하위권으로 떨어질 요소가 더 많은 상황. 안영준과 최준용이 돌아올 때로 예상되는 최소 4라운드까지 버텨야 하고, 헤인즈의 플레이 스타일인 자유투 뜯기는 올 시즌부터 개정된 규정상 제약이 걸리기에 최소한 중거리 슛 감각이라도 제대로 끌어올려야 하며, 바셋의 니갱망 농구는 3라운드 시작 전 퇴출시키지 않는 이상 계속 SK의 팀컬러를 깎아먹을 것이다. 결국 오데리언 바셋은 마커스 쏜튼과 교체되고 말았다.

하지만 3라운드 첫 경기에도 달라진 건 없었고 새로 영입한 마커스 쏜튼은 팬들이 바라던 화이트의 70%는 무슨 오히려 바셋만도 못하다며 대차게 까였고 헤인즈도 여전히 슛을 던질때 하체가 불균형해 영점이 잡히지 않으며 중거리 슛은 안들어가기 바쁘며 국내선수들도 무슨 단체로 바셋이 됐는지 길거리 할렘 농구를 전전하며 전자랜드에게 완패했다. KCC 전에서는 헤인즈가 어느 정도 활약하고 김선형, 최부경의 활약으로 승리하며 6연패 탈출.

그러나 6연패를 탈출하자마자 DB와 오리온, 현대모비스에게 일격을 맞고 또 연패가 시작되었다. 공동 8위까지 떨어지면서 이대로 가다간 10위인 서울 삼성 썬더스와 함께 서울팀끼리 나란히 9,10위에 집 짓고 살 판이다.

결국 애런 헤인즈가 비시즌 수술받은 무릎에 다시 문제가 생기며 4주간 공백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대체선수로 아시아 챔피언스컵에서 함께한 듀안 섬머스를 영입했다. 그나마 이 상황에 대해 문경은 감독은 본인 잘못이라고 직접 인정하면서 자신의 실책을 인정할 줄 아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

그래봤자 분위기가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고 7연패로 3라운드를 1승 8패로 마무리했다. 3라운드 마지막 경기 이후 '4라운드에는 안정된 팀을 만들 것'라고 언급했는데, 분위기상 팬들은 '안정된 10위를 하겠다는 소리'로 밖에 안 들릴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4라운드에 조금이라도 반등하지 못하면 새로운 암흑기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역시나 4라운드에서도 반등하지 못하며 결국 연패숫자가 10연패로 늘어났다. kt전 김선형이 멱살을 잡고 팀을 먹여살리며 힘겹게 연패를 끊었지만 또다시 내리 3연패를 기록하며 10위 삼성에 1경기차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기력 자체는 살아나고 있다는 점.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팬들도 어떻게든 납득을 하고 다음 시즌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근혜는 부상이 낫자마자 아스카를 버리고 헤순실을 다시 골랐고 그 결과는 후반기 시작하자마자 끝내기 버저비터 패배로 돌아왔다. 특히 이 경기 역적이었던 게으른 최준용이 트위너로 완전히 전락하며 구단의 미래도 어두운 상황. 한동안 트위너 소리를 듣다 FA 계약 이후 내외곽을 넘나드는 전천후 플레이어로 거듭나 커리어 하이를 갱신하고 있는 최진수에게 결승 3점포를 맞은 게 포인트다 준용아 뭐 느끼는 거 없냐[25]

그나마 5라운드에서는 5할 승률을 채웠고, 삼성이 예비역 효과를 못보고 크게 부진하며 4경기차까지 벌어지며 10위 걱정은 그나마 덜게 되었다. KGC전에서는 '쉬라고 (작전타임) 부른거야' 라며 작전타임 내용에서도 예전같이 애런만 찾기보다는 차분하게 작전을 설명하여 특히 송창무의 2:2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주문하여 작전을 재구성하는 등 1라운드의 문명장으로 돌아가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고, 팬들을 생각하는 인터뷰도 하는 등 멸망 시즌을 반면교사로 삼을지 주목된다.

LG전에서는 한때 23점차까지 뒤졌지만 그걸 뒤집어버리며 승리했고, 이후 '선수단에게 질책은 하지 않았다. 김종규-메이스의 골밑은 강력하고, 우리의 높이도 밀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공격이 잘못돼 리바운드를 허용했다 생각하고 영상만 틀어주었다. 3쿼터 10점차 이내로만 따라잡으면 승산이 있을 거라 봤는데, 존 디펜스를 대비한 공격을 준비해놓았는데 LG가 마침 존 디펜스를 쓰면서 잘 먹혔다.'라는 인터뷰를 남기며 농구팬들에게 다시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3.6. 19 - 20 시즌

계약 마지막 해인 만큼, 전 시즌보다는 성적이 좋아져야 한다는 책무를 가지고 있다.

KCC에게 버림받은 전태풍의 전화를 받고 고민 끝에 영입을 결정했다. [26] KGC에서 본인이 7년전 작전타임에 '한국의 키 큰 애'라고 부른 김승원도 영입했다.

4. 지도자 스타일

서울 SK 나이츠 역사상 최장 기간 재임하는 감독이지만 득도 실도 어마어마하게 컸던 감독. 18년만의 우승을 가져와주기도 했지만 3번의 대멸망 시즌을 만들어내는 등 아직도 지도자로서의 역량에는 의문부호가 달려있다.

농구 스타일은 포워드를 축으로 하는 공격적인 포워드 농구와 더불어 김선형과 애런 헤인즈를 축으로 하는 속공 농구를 많이 구사했으며, 그 덕인지 한때 SK의 득점력은 리그 상위권의 팀이었다. 또, 그 외에도 확실한 정통 빅맨을 축으로 실점을 최소화하는 늪농구에도 꽤 능한 편이어서 본인이 슈터 출신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공격 전술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는 편이다.

수비 전술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이 많은 감독. 애런 헤인즈로 3-2 드롭존을 즐겨 사용하다 못해 과도하게 사용하는 편으로, 드롭존이 파훼되었을 때 다른 전술을 따로 준비해놓지 못하다 보니 멸망 시즌엔 공격이 잘 풀려도 외곽수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상대의 외곽포에 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감독 초창기 전략의 부재와 더불어 작전 능력이 떨어지고 작전타임 때 하도 애런 헤인즈만 찾아서 '문애런'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의 좋은 예시가 되기도 했지만, 2017-18 시즌 우승 이후에는 그러한 비판은 많이 사그라들었으며, 디펜딩 챔피언 시즌인 2018-19 시즌엔 시즌 자체는 망했지만 예전과는 달리 작전 능력, 선수 운영에 대해 상당히 변화된 모습을 보이며 감독으로서의 평가는 감독 초창기에 비하면 상당히 높아졌다.

무엇보다 2011년까지 SK는 감독의 무덤으로 불린 모래알팀이었고 이런 경향이 있는 팀은 아무리 사람을 바꾸고 바꿔도 개선되기 어려운 팀이기 때문에 (평행이론 LG트윈스가 30년 가까이 증명 중이다.) 팀 체질 개선을 딱 해놓은 문경은 감독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김민수, 김선형, 최부경, 최원혁, 이현석, 최준용, 안영준 변기훈 등등 지금 주전 멤버들 거의 전원이 문경은 체제 하에서 함께 성장해온터라 더욱 그렇다.

4.1. 지도자로서의 장점

  • 확실한 자기 전술이 있다
국내에 드롭존 수비전술의 제대로 사용한 감독이며, 드롭존을 제대로 이해하는 애런 헤인즈 같은 선수와 만나면 폭발력이 있다. 신인 감독으로 역대 최다승까지 했으나, 유재학 감독의 모비스에게 드롭존을 탈탈 털렸다가 2017-18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애런 헤인즈 없이 드롭존 수비로 상당 공격을 무력화시키며 우승했다.
  • 신인에게 확실하게 기회를 준다
많은 사람들이 문경은 감독의 장점으로 꼽는 부분. 기존 멤버들과 새로 들어온 신인들을 조율하는 능력이 괜찮은 감독이다. 김선형, 최부경, 변기훈, 최준용, 안영준 등등 로터리픽 신인들은 문경은 감독이 충분한 기회를 주었고 주전급으로 성장했다. 다만 이거는 드래프트빨이 있는 편.
  • 선수들 장악력이 좋다
문경은 직전까지 SK는 유명 감독의 무덤이었는데, 스타플레이어 모아놓고 모래알 같은 조직력의 팀이었다. 문경은 이후 최소한 모래알은 아니게된다. 문경은 특유의 형님 리더쉽을 보면, 사이먼을 제외하면 선수와 큰 마찰이 생기는 일이 없다. 국내선수는 물론이고 외국인 선수와도 큰 트러블이 생기지 않는다. 지도에 반발하면서 다른 팀으로 가겠다는 선수도 나오지 않았다.
  • 열린 사고와 가르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포용력
17-18시즌을 앞두고 여자농구 위성우 감독을 찾아가 시즌운영 등에 대해 문의했으며# SK 호크스 핸드볼팀을 초청해 선수들의 사이드스텝 훈련 도움을 요청하는 등 팀을 위해서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감독. 꼰대형 감독은 절대 아니다.
  • 벤치 멤버들까지 전부 쓰는 로스터 활용
드래프트 2라운드 멤버들이나 D리그 멤버들까지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여 팀의 뎁스를 두껍게하는 감독이기도하다. 디온테 버튼을 봉쇄하며 팀의 우승에 큰 역할을 한 수비의 스폐셜리스트 최원혁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 이현석, 김우겸, 김건우 등등 다른 팀 감독들이라면 1군에 거의 쓰지 않았을 멤버들까지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여 기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변기훈 같은 예외도 있다.

4.2. 지도자로서의 단점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문경은/지도자로서의 단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7-18시즌 우승 이후 개선된 줄 알았으나... 2018-19시즌 다시 문제점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 애런 헤인즈에 대한 집착
제임스 메이스/리온 윌리엄스(골 프로텍팅이 가능한 센터) + 테리코 화이트/오데리언 바셋(득점력이 있는 가드) 조합으로 본인의 경쟁력을 인증해놓고도 40살 넘은 헤인즈에게 집착하다가 디펜딩 챔피언 시즌을 말아먹었다. 헤인즈 부재시에 정규시즌을 버틴 적이 한 번도 없다고는 하지만 감독 8년차가 되어가는데 이렇게 한 선수에게 의지하다가는 감독 생명이 줄어들 위험이 있다만, 헤인즈가 후반기 부활하며 순식간에 묻힌 의견이 되었다(...)
  • 버려야 하는 선수에 대한 미련
윗 문단과 비슷한 맥락으로, 대표적인 것이 변기훈이다. 군제대 시점에서 이미 KBL에서도 안 통하는 선수가 되어버린 변기훈이지만 굳이 연봉까지 2억으로 올려주면서 끌고 가고 있다. SK의 외곽슛 분야가 완전히 전멸해버렸는데도 계속 변기훈을 주전으로 밀어넣으면서 SK는 앞서가다가도 외곽슛 폭격으로 역전패. 한 번 점수가 멀어지면 따라잡기 힘든 팀이 되고 말았다. 2018 플레이오프에서 선수들이 3점을 잘 넣었던 것을 감안하면 변기훈을 버리고 다른 선수를 육성하면 승부를 볼 만하건만 심성이 착한 건지 집착이 심한 건지 D리그라도 보냈으면 그나마 말을 안할 텐데 아직도 변기훈은 로스터에 있다.

5. 흑역사

2004년 3월 7일. 전자랜드TG삼보의 시즌 마지막 경기. 이 당시 문경은은 우지원과 시즌 3점슛 타이틀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었고, 마지막 경기 때까지도 3점슛 타이틀을 누가 차지할지는 안개 속에 있었다. (근데 사실 문경은이 타이틀 경쟁에서 앞서있는데 우지원 밀어주기가 먼저 시작되었다.)

그리고 펼쳐진 경기에서, 문경은이 공을 잡자 삼보의 선수들은 슛을 쏘거나 말거나 멀뚱멀뚱 쳐다보는 모습만 보여주고, 그에 보답하듯 전자랜드의 다른 선수들은 삼보의 김주성이 블록슛 적립하게 좋게 슛을 가져다 바쳐주는 훈훈한 상부상조가 이어졌다. 코트 위의 훈훈한 온기가 팬들에게 스팀을 돌게 만들든 어쨌든 이런 훈훈한 배려 속에 문경은은 3점슛 타이틀 확보하기 좋게 3점만 22개를 넣었고, 덤으로 66점으로 KBL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갱신한다. 그러나 같은 날 다른 경기에서 비슷한 협조 속에 우지원이 3점슛 21개를 포함, 70점을 몰아넣어, 결국 3점슛 타이틀은 우지원의 몫이 된다(…). 그리고 이 둘은 10년 넘도록 뒤지게 욕을 먹고 있다. 문경은은 이 경기 이후 인터뷰에서 "내 한경기 최다 3점슛 기록은 1998년에 기록한 12개로 기억하겠다."라는 말로 이 날을 흑역사로 인정했다.

이런 또라이짓을 본 팬들의 분노 때문에 문경은이 그 쇼를 하게 만든 그 시즌 3점슛 타이틀은 해당자 없음이 되었지만, KBL 홈페이지의 기록에는 아무 설명 없이 저 날의 문경은의 총 득점과 3점슛 기록이 공식 기록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뭐병. 궁금한 팬들을 위해 적어놓는데, 이 날 경기는 전자랜드가 승리를 거뒀으며 스코어가 무려 130[27] - 118... 이는 2009년 5차 연장 접전 끝에 동부삼성에게 135 - 132로 승리한 경기에 이어 단일팀 최다득점(130점)과 양팀 합산점수(248점) 2위이며 당연히 순수 40분 경기로만 따지면 1위다... 1위라고 칭하기도 더러운 경기라고 한다지만...[28][29]

6. 기타

  • 선수 시절 비 오는 날에 유독 슛이 잘 들어가는 징크스가 있었다. 손끝이 촉촉하다나..
  • 헐리웃에 능했다. 주로 써먹던 레퍼토리는 스크린을 타는 몸싸움 과정에서 팔을 상대 선수와 엮은 다음 목을 꺾고 비명소리와 동시에 만세를 부르며 넘어지는 것이었다.
  • 2010년 성탄절을 맞아 SK 나이츠 홈경기 하프타임 때 왕년의 라이벌 우지원과 3점슛 기부빵 대결 이벤트를 가졌다.
  • 용인시 수지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다. 저녁에는 직접 주문도 받고 서빙도 하는 듯.
파일:/image/009/2011/12/04/0090002588389_0.jpg
  • 이런 짤로 빅재미를 선사해 줬다. 출처 : 존슨 잃은 문경은 감독 사실은 2011-12 시즌 부상으로 2월에 복귀할 때까지 장기간 아웃된 알렉산더 존슨과 관련된 내용인데 사진과 기사 제목이 뭔가 절묘하다. 한때 몇년간 자동완성에 등록된 적도 있었다. 존슨을 잃은 문경은의 SK 나이츠는 9연패를 당하고 결국 9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고자가 되고 말았다.
  • 2012-13 시즌 도중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경기 전에는 김종범이종범이라 부르더니 심지어 작전타임 때 김승원한국에 키 큰 애라고 말하는 개그를 선보였다. 심지어 김승원은 연세대학교 후배였다.
  • TV 광고에도 몇 번 출연한 바 있다. 삼성 시절 세탁기 광고를 찍기도 하고, 듀스와 오디오 모델도 했다. 2002 월드컵 공인구였던 피버노바를 가지고 농구하는 장면으로 아디다스 광고에 나왔고, 전자랜드 시절 전자랜드 기업 홍보광고에서 김디에나와 같이 농구하다가 김디에나가 문경은의 바지를 벗기며 굴욕을 선사하는 장면에 나오기도 했다.
  • 2015년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과 관련, SBS 8시 뉴스의 단독보도 중 사용된 자료화면이 잠실학생체육관 경기라는 이유로 승부조작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하지만 당사자인 A감독이 언론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잠적했다는 보도와는 다르게, 문경은 본인과는 무관하다는 인터뷰 기사가 신속하게 보도되면서 의혹에서 벗어났다. 해당 사건과 관련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대상은 SBS 뉴스 자료화면 경기의 상대 팀 감독인 것으로 알려졌고, 추측에 의해 마음고생을 한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전창진은 무혐의로 풀려나게 되었고, 문경은이 16~17 시즌 들어서 저조한 성적과 대승을 거둔 상태에서 역전패가 자주 나오자 팬들은 또 다시 조작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30]
  • 의외로 온라인 게임을 즐겨 한다. 현역 말년 때에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즐겨했었고 캐릭터 2개가 만렙을 찍기도 했다.
  • 응답하라 1994 1화에 우지원, 김훈과 함께 본인 역으로 까메오 출연한 적이 있다. 성나정과 얽혀서 연세대 재학 시절의 모습으로 잠깐 등장했다. 성나정에게 왜 이리 살쪘냐며 디스당한다.[31]
  • 우승청부사 : 헤인즈빨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라고 말하며 내보냈던 헤인즈가 오리온에서 문태종[32]과 함께 15-16시즌 우승한 후, 사이먼으로는 우승을 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내보냈던 사이먼이 인삼공사에서 16-17시즌 우승을 하면서, '문경은이 버리는 외국인 선수를 잡으면 그 다음 시즌 우승한다'라는 뜻에서 붙은 매우 굴욕적인 별명이었다. 사이먼은 해당 시즌 우승 후 인터뷰에서 '사이먼으로는 우승할 수 없다'라는 발언을 담은 기사를 본 이후 자극을 받아 더욱 연습에 매진했다고 말하면서 "'그 사람'에게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라고 발언했다.(점프볼 기사) 챔피언 된 사이먼 "당신이 틀렸다" 그런데 2017-18시즌에 우승을 하면서 진짜로 우승청부사가 되어서 이젠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별명이 되었다.

파일:김선형,문경은.jpg
  • 2018년 6월 3일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kt wiz vs SK 와이번스 경기에 프로농구 우승팀 감독으로 같은 회사 야구단이 초청해 김선형 선수가 시투를 그리고 문경은 감독은 시타를 했다. 영상 하지만 SK가 kt에게 지고 말았다(...). 한국 스포츠 구단들은 같은 지역 연고팀보다는 같은 기업 산하 구단에 시구/시타를 가는 일이 많은데, 이상하게도 이런 경기에서는 상당히 높은 확률로 진다. KIA 타이거즈는 같은 현대차그룹의 수원 현대건설황연주의 시구 이후로 멸망해 '타어강'을 찍었고 창원 LG현주엽이 시구를 온 날 LG 트윈스도 졌다. 뭐 그래도 이 때 기운을 받기는 받은건지 이 시즌 코시 우승을 하기는 했으니...
  • 이것 말고도 SK팬들에게 이번 시구가 미묘한 평가를 받는 것은 전자랜드팬들이 비시즌마다 김선형이 고향(인천)팀인 전자랜드로 올 것이라고 계속해서 루머를 퍼뜨리고 있기 때문인 것도 있다(...). 전자랜드 팬들은 대부분이 인천 연고이다 보니 와이번스 팬이기도 하다.
  • SK 팬들에게는 여러 별명으로 불리는데, 가장 잘할때는 문명장, 문띵(장)으로 불리고 가장 못할 때는 삼전드(삼성전자 레전드) 옆집그 삼전드가 아니다, 삼성으로 돌아가라는 소리를 듣는다(...).
  • S-더비 이벤트 때 삼성의 이상민과의 3점슛 대결에서 현역 시절 못지않은 날카로운 슛감을 선보였는데 2019 NBA 올스타전에서 델 커리, 레이 알렌 등 왕년의 3점 레전드들이 슛감이 다 없어진 모습을 보이면서 (레이 알렌은 성공 0개) 은퇴 이후에도 3점 슛감을 유지하고 있는 문경은이 갑자기 칭송받는 일도 있었다. 은퇴한지 10년이 다되어가는 데도 저런 감각을 유지하는 걸 보면 현역 시절 슛에 대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이 보인다.


[1] 1999년생으로 세종대 패션디자인학과에 입학했으며 문경은 감독이 2017-2018시즌 우승후 인터뷰에서 SK나이츠가 우승한것과 딸이 세종대에 합격된것이 기쁘다고 밝혔다.[2] 삼성 썬더스 시절[3] SK 빅스/전자랜드, SK 나이츠 시절[4] 연세대 2학년때 첫 선발.[5] 감독 대행 시절 포함[6] 만화지만 슬램덩크의 신준섭과 비슷하다. 센터에서 3점 슈터로 전환한 점, 슛 외에 볼운반이나 수비 등 다른 역할 수행이 모자란 점 등. 몇 년 뒤에 이규섭이 문경은-신준섭과 비슷한 행로를 걷게 되고, 장점과 단점까지 쏙 빼닮게 된다.[7] 고등학교에서 짱먹던 선수만 뽑아 모은 대학들이 농구대잔치에 참가했으니, 자기 고등학교에선 센터라도 대학교 팀에 모아놓고 보면 더 큰 사람도 있으니까.[8] 키가 190에서 190cm 초반 정도 밖에 안 되는 센터도 흔했고 슈터라면 보통 180cm대 키를 가지고 있던 시절에 190cm의 키를 가진 문경은은 그야말로 센터급 키를 가진 슈터나 마찬가지라는 오해가 있는데, 그건 바로 전 시대 이야기이고 1번, 2번에 자리하던 허재의 키가 188이었고, 마지막 승부 세대에선 서장훈을 제외하고도 2미터 센터, 190대 포워드는 흔했다. 당시 대학 스몰 포워드로 유명했던 김영만 양경민 추승균이 193이고, 우지원김훈은 문경은과 같은 190이니, 더 이상 스몰 포워드 포지션에서 문경은이 장신의 장점을 말하긴 힘들었다. 포지션은 파워 포워드지만 실질적으로 스몰 포워드 플레이를 하던 전희철이 197이었다. 그러니 장신을 이용한 폭발적인 득점 능력을 선보였다라는 식의 기존 기술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9] 키가 2m나 되는 이규섭의 경우는 고려대학 시절까지 센터였다가 삼성 썬더스 입단 이후 서장훈과 겹치면서 슈터로 변신한건 사실이지만, 어차피 당시에는 이규섭 말고도 2미터 내외의 대학시절 빅맨이었던 선수들 다수가 외국인선수들과의 매치업 문제로 3번으로 전향하는 하는게 흔했다. 그런 선수들 중에서 이규섭은 이 중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는 자유계약으로 고액의 용병 2명이 동시 기용되었고 대부분 빅맨이었기에 한국인 빅맨들이 프로 와서 살아남기기 거의 불가능이었다. 이후 프로농구에서 용병을 한경기에 2명을 동시 기용하는 것에 여러 가지 제한을 두게 하거나 단신용병을 두거나 하는 식으로 토종 빅맨을 보호 정책을 편 이후로는 토종빅맨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10] 주 득점원이 용병 2명으로 바뀐 상황에서 에이스롤에 어울리는 허재보다는 김영만이 용병과의 조화면에서 더 적합한 상황이라, 사실상 허재의 팀 역할이 없어졌다. 만약 이충희가 프로에 왔다면 용병 2명이 설치는 프로 초창기에 팀 득점을 주도해나갈 수 있었을까?? 이충희 역시 프로에 왔으면 수비 +캐치 앤 슈팅으로 역할을 제한받는 처지가 됐을 수도 있다.[11] 사실 2015년 이후 트렌드로 보면 미국식 키로 210에 이르는 김주성이 달릴 수 있고 수비와 전술 이해력도 좋은 데다가, 3점이 가능했다면.. NBA에서도 백업이라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도 있다.[12] 97년 아시아선수권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의 전희철은 운동능력을 활용한 컷인과 3점 그리고 포스트업과 페이스업을 가리지 않고 한국의 주득점원 역할을 해주었다. 이규섭 또한 93년 청소년대표 시절 왕즈즈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이며 아시아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는 벤치를 달궜지만 2003년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 문경은이 슛감 자체는 괜찮았지만 신장차이에 가로막혀 스크린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던 사이 높은 타점과 슛감을 이용 3점 5개 포함 28점을 기록한바 있으며 김승현도 임팩트 있던 2002년 아시안게임 막판뿐만 아니라 2003년 아시아선수권에서도 판빈에게 막히기 전까지 중국가드들을 밀어부친 바 있다. 중국전에 활약한 선수가 없다는 것은 농알못 인증이라고 주장하는 시각도 있다.[13]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간간히 활약한 경우는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전희철의 경우 국제무대에 기준으로 사이즈가 떨어지는 김영만, 추승균, 문경은에 비해 현재 기준으로도 좋은 하드웨어와 운동능력을 지니고 있고 기술도 좋은 편이라 리난 후웨이동 등의 중국 장신포워드에 맞서 꿀리지 않고 오히려 다른 국가와의 경기보다 좋은 활약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14] 후배로서 방성윤이 가끔 그런 활약을 해줬고, 귀화선수 문태종은 아시안게임 우승을 이끄는 등 대활약을 해줬다.[15] 이번 시즌의 전체적인 실패는 시즌이 한 달 앞당겨진 부분에 대해 준비를 느긋하게 한 팀이었다는 내용이 바스켓카운트에 나오기도 했었고, 에어컨리그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을 영입한 탓이 컸다. 이에 따라 앞으로 선수단 정리를 확실히 했을 때 어떤 성적이 나오느냐에 따라 다시 평가가 이루어질 여지도 있다.[16] 김민수의 부상으로 김우겸, 이대헌과 같은 포워드 자원은 시간 배분이 적절하여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김선형이 없을 때 좋은 활약을 보여준 최원혁이 출전시간이 줄어들자 버로우를 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17] 2009-10 시즌에 헤인즈와 함께하며 우승했다.[18] 그러나 이런 KCC도 현재는 상위권에 진입한 상태. 반대로 라틀리프를 보유하고도 라틀리프가 부상으로 못 나오자 팀의 약점이 그대로 나온 삼성의 이상민이 비난을 받는 중이다..[19] 3점 폭격을 여러번 맞아도 애런빨로 이겨서 안 드러났을 뿐 그 경기마저 애런이 없었으면 팀은 몇 경기는 대패하고 남았을 것이다.[20] 1분 38초부터[21] 첫 번째는 허재, 두 번째는 김승기.[22] 특히 김건우, 안영준, 최원혁으로 꽤나 쏠쏠한 재미를 보는 중. 김건우는 10월 25일 LG전에서 2점차로 뒤진 상황에서 김종규를 상대로 회심의 리바운드를 따내어 팀의 극적인 역전승에 기여하였고, 안영준과 최원혁은 10월 27일 현대모비스전 경기 중반투입되어 3점슛으로 팀의 분위기를 업시키는 역할을 맡게 했고, 팀의 역전에 기여했다.[23] 올시즌 SK의 득점은 10구단 중 10위(73.9, 1위는 현대모비스의 94.4로 무려 21점 차이가 난다.)이지만, 최소실점 2위(79.9)를 하며 늪농구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다.[24] 대표적으로 현대모비스의 라건아와 LG의 제임스 메이스, DB의 리온 윌리엄스. 이 세 선수에게 리바운드를 전부 내준게 패인이 되었고 심지어 DB전에서는 리온 윌리엄스의 폭풍 리바운드에 밀리며 19점차를 역전패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25] 심지어 부상을 깨끗하게 회복하고 예전의 좋은 모습을 보이는 헤인즈를 보고 좋아라 하며 '내년에도 재계약할 수 있다'는 역대급 언플을 남기며 진짜로 재계약을 하게 되면 내년 시즌도 이미 망했다.[26] 전태풍은 주변 선수들의 추천으로 SK의 문경은 감독과 삼성의 이상민 감독에게 연락했다고 한다.[27] KBL 웬만한 경기의 6쿼터에 해당되는 점수이다(...).[28] 요즘 젊은 선수들의 환장할 슛 성공률을 본다면... 몰아줘도 그렇게 넣기 힘들거라는 은근한 재조명이 가끔 나오기도 한다.[29] 놀랍게도 양 팀 합산점수는 타이기록 경기가 있다! 2000년 11월 26일에 펼쳐진 LGSBS의 경기에서 128-120으로 LG가 승리한 경기로 합이 248점이다. 이 해 LG는 전무후무한 시즌 평균 100득점 이상을 기록한 닥공농구로, 이 날 외에도 129득점을 기록한 경기도 있다.[30] 그 과정에서 파생된 별명이 '문토토'. 못할 때 댓글창에서 아주 많이 보이는 단어다.[31] 0화에서 밝혀지길 저 대사는 고아라의 애드립이었으며, 문경은은 살 안쪘다며, 토라진다.[32] 상기했다시피 문태종 또한 문경은 감독이 거른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리고 문태종은 13~14 시즌 LG의 정규리그 우승을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