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8 22:20:45

방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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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윤의 수상 및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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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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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p1_2051125j1175.jpg
서울 SK 입단식 당시.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09010400529_0.jpg
SK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던 당시의 모습.
이름 방성윤(方成允)
출생 1982년 6월 3일 (만 [age(1982-06-03)]세),서울특별시 강남구
국적 대한민국
출신학교 서울대현초등학교 - 휘문중학교 - 휘문고등학교 - 연세대학교
가족 1남 1녀 중 첫째
혈액형 A형
포지션 스몰 포워드
신체 사이즈 195cm, 100kg
프로입단 2005년 드래프트 전체 1번(부산 KTF 매직윙스)
소속팀 로어노크 대즐 (2004-2005) [1]
서울 SK 나이츠(2005~2006)
애너하임 아스널 (2007) [2]
서울 SK 나이츠 (2007~2008)
리노 빅혼스 (2008) [3]
서울 SK 나이츠 (2008~2011)
국가대표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 금메달
2003 하얼빈 ABC - 2위
2005 도하 ABC - 4위
2006 도하 아시안게임 - 5위
2009 톈진 ABC - 7위
종교 불교

1. 개요2. 기록3. 선수 생활
3.1. KBL 데뷔 이전3.2. KBL 데뷔 이후
3.2.1. 2005-06 시즌3.2.2. 2006-07 시즌3.2.3. 2007-08 시즌3.2.4. 2008-09 시즌3.2.5. 2009-10 시즌3.2.6. 2010-11 시즌
4. 몰락5. 기타 사항

1. 개요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199409_STD.bmp

서울 SK 나이츠 소속 포워드. 대학 시절 누구나 한국 농구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실제로도 거의 근접했지만 부상과 미국 행에 따른 혹사로 인해 무너진 비운의 농구선수.[4]

2. 기록

정규시즌[5]
165경기 17.50점 4.21리바운드 2.50어시스트 1.64스틸 FG 42.98% 3P 38.70% FT 79.37% TS 57.2% eFG 52.3% PER 17.04

플레이오프
2경기 20.50점 4.00리바운드 3.00어시스트 0.50스틸 FG 39.39% 3P 31.58% FT 64.29% TS 52.3% eFG 48.0% PER 22.29

3. 선수 생활

3.1. KBL 데뷔 이전

195cm, 92kg의 포워드로 고교시절부터 신장과 힘을 겸비하고 거기에 에이스기질까지 갖춘 선수로 2000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에 선정되며 일찌감치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휘문고 2학년때 무릎 연골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으나 연세대에 진학한 후 대학 농구 무대에서 활약을 보였다. 등장 초기에는 3점슛 되는 현주엽같은 선수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실제 활약상을 보면 덩치 되는 문경은에 가까웠다. 하지만 저 덩치야말로 방성윤의 최대 장점. 경기 전반에는 들어가지도 않는 3점슛 난사로 팀 분위기를 말아먹나 싶다가 경기 후반에는 덩치를 앞세운 저돌적인 인사이드 공격으로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게 대학 시절 방성윤의 플레이였다. 그 시절엔 난사만 안 하면 참 좋은데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결국 난사 소리는 프로 가서도 끊어지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에이스기질이고 나쁘게 말하면 볼허그, 즉 슛 욕심이 심한 타입이었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막내로 발탁되었고, 결승 중국전에서 막판 무리한 공격으로 팀을 말아먹을 뻔도 했으나 10득점 하는 등 괜찮은 활약을 하며 중국을 격파, 병역혜택을 받았다.

당연히 국내에선 특급 유망주로 전체 1번이 확실시되었지만, 국내의 계약금 규모나 자신의 마인드때문에 국내진출에 별 관심이 없었던 방성윤은 전격적으로 NBA 도전을 위해 NBA D리그 드래프트에 참가 신청하였으며 로어노크 대즐에 4라운드 20번에 지명되었다.[6] 04-05 NBDL 시즌에서 평균 득점 12.5점 (15위), 3점슛 38개 (1위)에 선정되었다.

2005년 드래프트에서 부산 KTF가 1순위로 지명하였으나 서울 SK 나이츠와 3:3 트레이드를 통해 지명권을 넘겼다. KTF가 보낸 선수는 방성윤(지명권), 정락영, 김기만 등이고, SK가 보낸 선수는 조상현, 황진원, 이한권 등이었다.

3.2. KBL 데뷔 이후

3.2.1. 2005-06 시즌

KBL 데뷔 첫 경기에서 현주엽과 맞상대하며 21득점 했으나 3쿼터에 5반칙 퇴장을 당했다. 이 때 3점슛은 2/7. 05-06시즌에 평균 득점 17.2점, 4.2 리바운드, 1.8 어시스트로 신인왕에 오른다. 시즌 막판 LG의 외국인 선수 드미트리우스 알렉산더와 충돌하며 시즌아웃되었다.

3.2.2. 2006-07 시즌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뽑혔다. 카타르전 42득점(3점슛:12개) 활약은 유명하다.[7] 국가대표 훈련 도중 발목 부상을 당해 06-07 시즌 초반에 제대로 뛰지 못하였으나 평균 득점 19.3점의 활약으로 국내 선수 득점 1위에 올랐다. (이후 3년 동안 3점슛 성공 1위, 2년 동안 국내 선수 평균 득점 1위) 시즌이 끝나고 손가락 수술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3.2.3. 2007-08 시즌

평균 득점 항목에 주목

07-08 시즌에도 부상은 여지없이 찾아왔다. 12월 21일 전주 KCC 이지스 전에서 코트에서 미끄러지며 끔찍한 부상을 당했다. 왼쪽무릎인대파열이었는데 팀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서 조기 복귀를 결정했고, 무릎에 테이핑을 둘둘 말고 시즌 막판 경기와 플레이오프를 치뤘다.
이 해의 방성윤이 대단한 것은, 귀화선수인 문태영을 제외한 마지막 국내선수 평균 득점 20점을 올린 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사를 해댔는데도 야투율 45.2%, 3점슛 성공률 40.6%를 기록하기도...

3.2.4. 2008-09 시즌

08-09 시즌 전에 다시 NBA 진출을 타진하기 위해 D리그에 진출했다. 리노 빅혼스가 전체 42순위로 그를 지명했고, 당시 리노의 감독은 전자랜드 감독을 지낸 바가 있는 제이 험프리스였다. 그러나 D리그에서 불과 4경기를 뛴 상황에서 하위권을 맴돌던 SK나이츠의 강력한 복귀 요청에 KBL 컴백을 결정하게 되는데 체중을 10kg 이상 감량해서 얼굴이 반쪽이 된 사람이 새벽에 비행기에서 내리더니 경기장에서 싸이클 좀 밟다가 23득점을 꽂아넣었다. 그러나 여지없이 한달도 안돼서 1월 4일 전주 KCC 이지스 전에서 추승균과 부딪혀 목 탈골 부상을 당하고 4주 진단을 받았으나 보름도 안되어 다시 복귀했다. 평균득점 17.3점으로 시즌 활약은 괜찮았다.

3.2.5. 2009-10 시즌

09-10시즌도 여지없이 부상 악령은 찾아왔고 발목 부상으로 시즌을 저조하게 마쳤다.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취득하였고 원 소속팀 SK에 무려 5억 7천만원을 요구해 협상이 결렬되었다. 현재 KBL의 규정상 SK가 제시한 5억 2천만원 이상을 불러야 영입이 가능했고 SK가 김효범을 인센티브 포함 총 5억 1300만원에 영입하며 FA 미아가 되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1억 3천만원에 극적으로 잔류했는데 저 계약을 그대로 믿는 농구팬은 그다지 없다.

3.2.6. 2010-11 시즌

10-11 시즌엔 부상으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지 못했고 2011년 2월에도 결국 발등 피로골절 확진을 받고 사실상 시즌 아웃됐다.

결국 30세의 다소 이른 나이은퇴를 선언했다.[8] 이로서 부상에 시달리던 Mr.빅뱅은 한국 농구계에 굵고 짧은 족적을 남기고 떠났다. SK 나이츠는 그의 공백을 김선형이라는 걸출한 신인으로 잘 메우게 되고 방성윤이 떠난지 7년 후 2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4. 몰락

지인이 운영하는 사업체의 종업원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2012년 2월부터 7월에 걸쳐 지인과 함께 하키채, 골프채 등을 사용한 폭력을 모두 포함해서 총 500회를 팬 혐의를 받고 있다. 추가로 2012년 7월에 최모씨로부터 5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그러다 복귀를 추진한다는 기사나왔다. 다만 기사 댓글에서도 보듯 폭행 혐의로 인해 반응은 냉담할 뿐이다.

결국 징역 4년을 구형받았고, 1심에서 1년 6개월 실형이 선고되면서 법정 구속되었다.

2심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전 KBL선수 방성윤 “농구팬들께 진심으로 사죄” 복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다시 농구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리고 같은 날 SK는 변기훈노마크 3점 팅팅팅(...)으로 대활약하면서 인삼공사에게 3점 폭격을 당하면서 패배해 방성윤 복귀에 대해 긍정적인 팬들도 조금은 늘어났다. 그런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상고심(3심)인 대법원에서는 폭행과 관련해서는 모두 무죄로 판명이 났다고 한다. 연루되어있던 민사재판에 대해서는 인감도장을 제3자에게 맡겼다가 발생한 사고에 가까운 사건이며 상대측의 처벌불원서까지 받고 모두 원만하게 마무리 되었다고 했으나 어느정도 그 책임이 인정되어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2018년에 초 방성윤은 다시 한번 코트로의 복귀를 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소속 구단 SK의 허락을 맡아야만 복귀가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상황을 살펴봤을 때 방성윤의 복귀 가능성은 아직 미정이다. 더군다나 폭행 연루 사건의 피해자가 팟캐스트 세컨리바운드에 출연하여 자신의 입장과, 사건의 개요를 밝혔다. 링크 방성윤 측에서도 곧바로 반박 영상을 업로드 했다. 링크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에 방성윤의 지인이라는 이용자가 올린 반박글도 존재한다. 링크 결국 2018년 11월 6일 열린 KBL 집행위원회에서는 방성윤이 집행유예 중이라는 점을 들어 복귀 불허 조치를 내렸다.

5. 기타 사항

  • NBA D리그에서 한 시즌 3점슛 갯수 1위도 찍어보고 나름대로 활약한지라 한국 농구 선수의 NBA 진출 떡밥에 자주 오르내리던 선수.[9]
  • 연세대 출신에 인기가 많은 편이라 올스타전에 자주 출전했지만, 정작 부상으로 벤치에 앉아있는 모습이 많았다.
  • 09-10 올스타전에서는 3점슛 컨테스트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 문경은은 자신의 은퇴 후 누가 통산 3점슛 기록을 갈아치울까 묻는 질문에 방성윤이 가장 유력하지만 NBA 간다고 왔다갔다 해서 잘 모르겠다고 한 적이 있다.
  • 사이즈와 힘이 모두 좋아 상대팀의 4번을 마크할수도 있는 등 수비 능력 자체는 괜찮은 편이지만 오지랖이 코트를 덮는 몹쓸 헬프 디펜스가 단점이다. 헐리우드 액션을 자주 시도하는 편인데, 방성윤은 워낙 덩치가 커서 금방 티가 난다.
  • 커리어에서 플레이오프는 딱 2번. 04-05 D리그 플레이오프와 07-08 KBL 플레이오프.
  • 난사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무리한 슛을 많이 시도하는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결과로 나타나는 3점슛 성공률은 높은 편이다. 최근에 소극적인 국내 슈터들을 볼때 앞으로 국내에서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슛욕심의 레전드급. 유명한 카타르전에서도 흑형 2-3명이 붙건 말건 슛을 쏘고 마는 근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 때문에 국내선수 평균득점 20점 이상을 마지막으로 기록한 선수이다. 최근 이에 가장 가까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선수는 이정현.
  • 지붕 뚫고 하이킥에도 출연했다.[13] 주요 내용은 소아암 환자 돕기를 위해 방성윤이 돈을 내기로 하자, 극 중 정보석이 경기당 3만 원씩 후원을 하기로 계획을 한다. 그러나 정보석의 오해로 한 경기당 3만 원이 아닌, 1점당 3만 원을 후원하기로 한 것이었고, 극 중에서 방성윤은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안됐음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득점을 뽑아내며, 심지어 72득점을 해버리며 정보석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주요 내용.
  • 집행유예 판결 이후에는 모교였던 휘문고등학교 농구부에서 주말마다 슛 자세 등을 가르쳐주는 인스트럭터로 활동을 하며 업템포라는 이름의 동호회 농구팀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는 근황이 전해졌다. 영상에 따르면 추후에 따로 시간을 내서 위의 사건에 대해 해명을 하겠다고 밝혔다. 여담으로, 농구를 그만둔 뒤에 살이 쪘다가 현재는 오히려 선수 시절에 비해 20kg이나 빠졌다고. 이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폭행 자체는 무혐의로 밝혀졌고, 집행유예를 살게 된 것은 폭행 혐의는 무죄가 확인되었지만 금전 관련 문제는 인감도장을 제3자에게 맡겼다가 발생한 사고에 가까운 사건이며 상대측의 처벌불원서까지 받고 모두 원만하게 마무리 되었다고 했으나 그 책임이 인정되어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1] NBA D리그팀 41경기, 플레이오프 1경기 출장[2] NBA D리그팀 출장기록 없음[3] NBA D리그팀 4경기 출장[4] 농구인생과 가진 인터뷰에서 폭행 혐의 자체는 무혐의라는 것이 드러났다. 집행유예 처분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밝혔는데, 폭행 자체는 무죄였지만 금전을 받은 부분에서 사기라는 판결이 났다고 한다.[5] 6시즌동안 165경기를 뛰었다. 가장 많이 뛴 시즌이 36경기에 불과할 정도로 부상에 시달렸다.[6] 겨우 4라운드? 라는 반응이 많았는데 NBA D리그는 선수들을 0명에서부터 고른 선수들로 팀을 꾸리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4라운드라는 것은 팀에서 4번째로 중요한 선수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한국 출신 선수에다가 대개 앞순위 선수들이 기존의 명성이 높은, NBA 언저리에서 내려온 선수들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4라운드 20위, 42위낮은 순위가 아니다.[7] http://pann.nate.com/video/73548632 동영상은 여기에...[8] 보통의 농구선수라면 전성기가 찾아올 나이다... 김주성의 기량이 최절정에 달했던 시기가 32살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9] 물론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착각이였다. 참조.[10] 소속구단인 SK 나이츠의 스포테인먼트 정책에 따라 지어준 공식별명. 하지만 농구팬들은 거의 쓰지 않는다. 사실 스포테인먼트 정책에 따라 선수들에게 붙인 별명 중 어설픈 게 꽤 있었다. 대표적으로 노경석에게 붙였던 '경서가'.[11] 잦은 부상으로 인해 붙은 별명.[12] 잦은 난사로 패배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13] 다만 직접 배우로 출연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