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은 직구라도 해도 직선으로 가지 않는다. 일단 중력으로 인해 아래로 떨어지게 되며, 여기에 공기의 흐름이 작용하게 되면 공의 경로가 휘거나 흔들린다. 공기의 저항 때문의 공의 속력은 공이 타자에게 가까워질수록 떨어지는데, 속력이 느려지면 공기 저항으로 인해 변하는 폭이 심하기 때문에 직선으로 향하던 공의 경로가 갑자기 급격하기 바뀌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이를 '공 끝이 더럽다.'고 표현한다. 투수가 공에 회전을 가해 더럽게 만드는 것은 투수의 기본 덕목이며 그렇게 공을 던져야 타자가 치기 어려우므로, '투수에게는 칭찬의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다. 김병현은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시절 블라디미르 게레로[1]에게 "저런 지저분한 공을 던지는 투수는 MLB에서 당장 퇴출시켜야 한다. kk"라는 립서비스성 농담조 칭찬을 듣기도 했다.당연히 반대말인 깨끗한 공이라는 말도 있으며, 작대기 직구라는 말도 쓴다. 이 말은 볼 끝이 곧고 일정한 궤적을 그린다는 뜻이다. 이런 공은 일본 프로야구의 스트레이트처럼 패스트볼중 가장 쉬운편이고 구속을 최대한 늘릴수 있지만, 움직임이 적은만큼 스윗 스팟에 맞으면 힘이 잘 들어가서 장타가 될 위험이 매우 크다. 이런 깨끗한 공을 던지는 투수, 다시 말하면 더러운 투수의 반대말 격으로 자리잡은 속칭은 바로 배팅볼 투수, 더 나아가면 배팅머신이다. 다만, 패스트볼의 수직 무브먼트가 뛰어나 공이 떠오르는 느낌을 주는 묵직한 구위의 일직선 궤도를 가진 패스트볼은 깨끗한 공이라고 하지 않는다.
더러운 공 부문의 끝판왕은 바로 너클볼. 축구의 무회전 슛과 동일한 원리로 불규칙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기 때문에 타자는 물론 투수 본인조차 공의 경로를 예측할 수 없는 극한의 더러운 공이다. 반면 투수가 공을 잘못 채서 조금이라도 회전이 걸려 버린다면 그 즉시 깨끗하기 그지없는 배팅볼로 전락하게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2. '더러운' 투수
한국에서 이런 더러운 공으로 타자들을 돌려세우는 투수 중 유명한 투수는 정대현. 타자는 물론 포수도 잡기 힘든 엄청나게 더러운 공을 던졌다.[2] 패스트볼조차 밑으로 뚝 떨어지고, 반대로 커브는 위로 치솟으며, 옆으로 휘는 구종까지 던질 수 있어서 공이 그야말로 사방으로 휜다. 평소 구속은 131km/h을 넘을까 말까한데 힘을 받아서 구속이 135~138km/h 이상으로 올라가면 타자로서는 그야말로 미칠 노릇. 그리고 류현진도 볼 끝이 더러운 투수 중 한 명이다. 스카우트 리포트에는 '속구가 약간 커터성 움직임을 보인다' 라고 서술했으며, MLB 진출 후 상대한 타자들은 '속구가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변화가 심해 치기가 어려웠다' 라고 했다. 또한 일명 '뱀직구'를 던진다고 하는 임창용 역시 국내에서 더러운 공을 던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술한 대로 메이저에서 활동했던 김병현도 블라디미르 게레로가 칭찬을 할 정도로 더러운 공으로는 한가락 하는 선수였다.자연커터를 던졌던 금민철, 훌륭한 테일링의 자연투심을 던졌던 김선우(1977) 역시 이런 공이 주무기였던 투수로 분류되며, 이승호(1981)의 직구도 볼끝이 심히 더러웠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투수 시절의 이형종 역시 150km를 상회하는 포심 패스트볼에 신비로울 정도의 무지막지한 테일링이 걸리는 피쳐였기 때문에 팬들의 큰 기대를 모았었다.
현재 KBO 리그에서 가장 이런 말에 잘 부합하는 투수는 바로 조상우이다.[3] 2014년 5월에 브렛 필을 상대로 던진 포심 패스트볼. 154km/h에 엄청난 테일링이 걸렸다. 체크스윙도 못해보고 맥없이 헛스윙 삼진으로 해설위원 시절이던 차명석 "자기가 여태껏 본 직구중에 가장 언히터블하고 위력적인 직구"라고 극찬을 하기도.
메이저리그에서 이 말에 가장 잘 부합하는 투수는 바로 마스터 그렉 매덕스 되시겠다. 움짤에서 보듯이 투심패스트볼의 미칠듯한 움직임과 역대급 제구력 덕분에 시속 80마일 중후반대의 구속에도 불구하고 매덕스는 통산 300승&5000이닝&3000탈삼진을 넘길 수 있었다.
3. 기타
- 더럽다는 말이 원래 좋은 뜻이 아니므로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얼핏 나쁜 뜻으로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공 더럽기로 메이저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김병현의 뉴스엔 지금도 가끔씩 이 떡밥으로 사람들을 낚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도 스즈키 이치로가 봉중근의 빠른볼을 칭찬한 표현인 sneaky를 직역해서 비열한 공으로 번역해서 관심을 구걸하는 짓을 저지른 기자도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sneaky는 더러운 공이라기보단 봉중근이나 구대성처럼 투구시 공을 교묘하게 잘 숨겨서 나오는 공을 말한다. 이를 미국에선 디셉션(deception)이라고 표현한다.
- 방송 중계 등에서는 '공 끝이 좋다', '공 끝이 살아있다'는 식으로 말하곤 하며, 비슷한 차원에서 공끝이 지저분하다라고도 한다. 하지만 MLB 중계에서는 더럽다고 잘만 말한다. MLB경기를 보면 같은뜻으로 filthy, nasty등의 표현을 들을수 있다.
- 예전의 한국야구에서는 구속이 주는 숫자 효과와, 직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무빙 패스트볼류, 더러운 공에 대해 인식이 부족했지만, 해외야구 교류가 늘어나고 땅볼유도형 투수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변종 패스트볼 구사자들도 늘어나면서 중요성이 늘어나고 있다.
- 현재는 부정투구가 된 스핏볼(침과 송진을 섞어서 공에 발라 공기저항의 방향을 흐트러뜨린 볼), 에머리볼(공에 상처를 내서 같은 효과를 준 공) 등은 진짜로 더러운(...) 공이며, 당연하지만 정당하게 던지는 더러운 공보다 공 끝이 더 더럽다. 심할 경우 던지는 본인도 어디로 날아갈지 모를 정도. 너무 쉽게 변칙성 투구를 던질 수 있고 투수가 공을 제어 할 수 없어 사고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4] 이런 행위들은 현대 야구에선 금지되어 있다.
- 물론, 공식적인 금지로 자취를 감춰야 됐을 부정투구는 표면 밑에서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선 이미 암묵적으로 투수 코치가 어린 투수들에게 부정투구를 안 걸리고 던지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알려져 있으며 매 시즌 잊을 만하면 부정투구법을 결정적인 순간에 적발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틀면 2006년 케니 로저스의 흙 묻은 손 사건이나, 2007년 콜로라도 로키스 투수들의 물 묻은 모자챙 사건 등등.
[1]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명예의 전당에서 단 2회만에 무려 92% 후반대의 득표율을 받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MLB 역사상 최고 배드볼히터이다.[2] 정대현의 전성기였던 SK 시절 신인 포수들은 정대현의 공을 받다가 공의 미친 무브먼트로 인해 손목 부상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정대현의 공을 못 받게 했다고 한다.[3] 조상우의 포심 패스트볼은 리그에서 가장 평가가 좋다. 현재는 심각한 혹사로 인하여 구속이 많이 줄긴 했지만 무브먼트와 구위는 여전히 리그 최상위권이다.[4] 1920년에 레이 채프먼이라는 야구 선수가 빈볼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 때 던진 볼이 스핏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