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ba0021> |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역대 1라운드 지명선수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191919,#ffffff | 1965년 ~ | ||||
1965 짐 스펜서 1루수 / 전체 11번 | 1966 짐 데네프 유격수 / 전체 8번 | 1967 마이크 넌 포수 / 전체 9번 | 1968 로이드 앨런 투수 / 전체 12번 | 1969 유격수 / 전체 5번 | |
1970 폴 데이드 3루수 / 전체 10번 | 1971 프랭크 타나나 투수 / 전체 13번 | 1972 데이브 찰크 3루수 / 전체 10번 | 1973 빌리 테일러 외야수 / 전체 7번 | 1974 마이크 마일리 유격수 / 전체 10번 | |
1975 대니 굿윈 포수 / 전체 1번 | 1976 켄 랜드럭스 외야수 / 전체 6번 | 1977 리차드 돗슨 투수 / 전체 7번 | 1978 톰 브루난스키 외야수 / 전체 14번 | FA 짐 바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 |
1980[1] 데니스 라스무센 투수 / 전체 17번 | FA 브루스 키슨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 1981 딕 스코필드 유격수 / 전체 3번 | 1982 밥 키퍼 투수 / 전체 8번 | 1983 마크 도란 외야수 / 전체 23번 | |
1984 에릭 파파스 포수 / 전체 6번 | 1985 윌리 프레이저 투수 / 전체 15번 | 1985[2] 마이크 쿡 투수 / 전체 19번 | 1986[3] 로베르토 에르난데스 투수 / 전체 16번 | 1986 리 스티븐스 외야수 / 전체 22번 | |
1986[4] 테리 카 외야수 / 전체 25번 | 1986[3] 마이크 페터스 투수 / 전체 27번 | 1986[4] 대릴 그린 투수 / 전체 28번 | 1987 존 오튼 포수 / 전체 25번 | 1987[7] 데이비드 홀드리지 투수 / 전체 31번 | |
1988 짐 애보트 투수 / 전체 8번 | 1989 카일 애보트 투수 / 전체 9번 | FA 마크 랭스턴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 1991 에두아르도 페레즈 1루수 / 전체 17번 | 1991[8] 호르헤 파브레가스 3루수 / 전체 34번 | |
1992 피트 자니키 투수 / 전체 8번 | 1992[9] 제프 슈미트 투수 / 전체 29번 | 1993 브라이언 앤더슨 투수 / 전체 3번 | 1994 맥케이 크리스텐슨 외야수 / 전체 6번 | 1995 대린 어스태드 외야수 / 전체 1번 | |
FA 랜디 벨바르데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 1997 트로이 글로스 3루수 / 전체 3번 | 1998 세스 에서튼 투수 / 전체 18번 | FA 모 본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 2000 조 토레스 투수 / 전체 10번 | |
2000[10] 크리스 부첵 투수 / 전체 20번 | 2001 케이시 코치맨 1루수 / 전체 13번 | 2001[11] 제프 매티스 포수 / 전체 33번 | 2002 조 손더스 투수 / 전체 12번 | 2003 브랜든 우드 유격수 / 전체 23번 | |
2004 제러드 위버 투수 / 전체 12번 | 2005[12] 트레버 벨 투수 / 전체 37번 | FA 올랜도 카브레라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 2006[13] 행크 콩거 포수 / 전체 25번 | FA 제프 위버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 |
2007[14] 존 바차노브 투수 / 전체 58번 | FA 게리 매튜스 주니어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 FA 토리 헌터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 2009[15] 랜달 그리칙 좌익수 / 전체 24번 | 2009[16] 마이크 트라웃 중견수 / 전체 25번 | |
2009[16] 타일러 스캑스 투수 / 전체 40번 | 2009[15] 개럿 리차즈 투수 / 전체 42번 | 2009[19] 타일러 케러 투수 / 전체 48번 | FA 브라이언 푸엔테스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 2010[20] 케일럽 코와트 투수 / 전체 18번 | |
2010[21] 캠 베드로시안 투수 / 전체 29번 | 2010 체비 클라크 중견수 / 전체 30번 | 2010[21] 테일러 린드시 유격수 / 전체 37번 | 2010[20] 라이언 볼덴 중견수 / 전체 40번 | 2011 C.J. 크론 1루수 / 전체 17번 | |
FA 알버트 푸홀스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 FA 조시 해밀턴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 2014 션 뉴컴 투수 / 전체 15번 | 2015 테일러 워드 포수 / 전체 26번 | 2016 맷 타이스 포수 / 전체 16번 | |
2017 조 아델 외야수 / 전체 10번 | 2018 조딘 애덤스 외야수 / 전체 17번 | 2019 윌 윌슨 유격수 / 전체 15번 | 2020 리드 데트머스 투수 / 전체 10번 | 2021 샘 바크만 투수 / 전체 9번 | |
2022 잭 네토 유격수 / 전체 13번 | 2023 놀란 샤누엘 1루수 / 전체 11번 | 2024 크리스티안 무어 2루수 / 전체 8번 | |||
* [1] FA 놀란 라이언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2] FA 프레드 린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3] FA 후안 베니케즈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4] FA 알 홀랜드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3] [4] [7] FA 레지 잭슨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8] FA 칠리 데이비스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9] FA 월리 조이너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10] FA 마이크 마그나테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11] FA 마크 피트코브섹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12] FA 트로이 퍼시벌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13] FA 폴 버드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14] FA 애덤 케네디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15] FA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16] FA 마크 테세이라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16] [15] [19] FA 존 갈랜드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20] FA 숀 피긴스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21] FA 존 래키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21] [20] | }}}}}}}}}}}} |
1988 서울 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 |
1988 |
제임스 앤서니 애보트 (James Anthony Abbott) | |
<colbgcolor=#132448> 생년월일 | 1967년 9월 17일 ([age(1967-09-17)]세)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미시간 주 플린트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88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8번, CAL) |
소속 구단 |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89~1992) 뉴욕 양키스 (1993~1994)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95) 시카고 화이트삭스 (1995)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96) 시카고 화이트삭스 (1998) 밀워키 브루어스 (1999) |
기록 | 1988 서울 올림픽 야구 금메달 1993년 노히트 노런 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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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든 희망이 없어질 때까지,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장애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관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One must think that nothing is impossible until there is no hope. Obstacles are not more than a stage we must pass in order to succeed."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했던 투수로, 오른팔이 팔목 부분까지만 자란, 일명 "조막손" 장애를 앓고 있음에도 한 팀에서 주전으로 수백 이닝을 던지며 에이스로 활약했고, 노히트 노런까지 달성하며 메이저리그 역사에 당당히 이름을 남긴 선수다."One must think that nothing is impossible until there is no hope. Obstacles are not more than a stage we must pass in order to succeed."
통산 성적
2. 프로 이전
고등학교 시절에는 야구 팀에서 0.73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으며,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미식축구에서는 쿼터백을 보는 등 다재다능한 스포츠맨으로 활약했다. 조심스럽게 1라운드도 예측됐으나, 1985년 드래프트에 나와 토론토 블루제이스로부터 36라운드에서 지명을 받는 데 그치자 계약을 거부하고 대학으로 진학하였다. 훗날 인터뷰에서 애보트는 지명을 거부한 것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스카우터들이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한 흥미만을 보이고 있어서 불쾌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1988년에 열린 서울 올림픽에서 로빈 벤추라와 티노 마르티네스 등의 선수들과 함께 미국 대표팀 에이스로 참가, 결승전에서 완투승을 거두어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다만 이 때는 야구가 시범종목이라 정식 메달 집계에 들어가지 않았다. 결승전에서 애보트를 상대한 일본 대표팀 투수는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해서 1992년 일본시리즈 MVP도 차지했던 이시이 다케히로였고, 당시 일본팀 멤버로는 포수 후루타 아츠야와 유격수 노무라 켄지로 그리고 노모 히데오 등이 있었다.
서울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일본의 마지막 타자를 아웃시킨 직후, 환호하는 애보트. 장소는 잠실야구장이다.
3. 에인절스 시절
당장 메이저리그 10승 이상의 투수라고 평가 받으며 1988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8순위라는 순위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지명받아 입단했다. 애보트는 입단 직후 바로 메이저로 직행했는데, 이로써 애보트는 역사상 16번째로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은 메이저리거가 되었다.데뷔 첫 해에 애보트는 12승 12패, 3.92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는데, 신인 투수가 메이저 데뷔 첫 해에 12승 이상을 올린 것은 1976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마크 피드리치가 19승을 기록한 이후 13년만이었다.
1990년부터 200이닝을 던지기 시작한 애보트는 1991년 243이닝을 던지면서 18승을 올리고 ERA 2.89와 ERA+ 142를 기록하며 사이 영 상 3위를 기록한다. 그렇게 던지고도 20승을 거두지 못한 건 에인절스의 답답한 타선때문이었다.
1992년에도 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서 211이닝 ERA 2.77, ERA+는 143임에도 7승에 무려 15패나 쌓는 기염을 토한다. 물론 애보트의 잘못은 아니지만...
에인절스는 이런 이닝이터를 잡고 싶었지만, 문제는 애보트의 에이전트가 그 악명높은 스캇 보라스였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보라스는 많은 돈을 뜯어내려고 했고, 에인절스는 결국 애보트를 양키스로 보내버린다. 이 때 양키스에게서 받은 선수 중 하나가 J.T. 스노우였다.
4. 양키스 시절과 이후
당시 양키스는 돈 매팅리가 힘겹게 타선을 이끌면서, 버니 윌리엄스, 앤디 페티트 등 새로운 시대의 새싹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무시무시한 악의 제국과는 거리가 먼, 양키스 사상 최악의 흑역사 끝에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 양키스에서 애보트는 부상으로 고생하면서 이렇다 할 성적을 못 내고 있었다. 하지만 1993년 9월 4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타선을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 양키 스타디움의 관중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양키스 역사 상 정규 시즌에서 7번째로 기록된 노히트 노런이었다. 당시 마지막으로 처리했던 타자가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활동한 바 있는 카를로스 바에르가였다.1990년대 중반의 클리블랜드는 매니 라미레즈, 알버트 벨, 짐 토미, 샌디 알로마 주니어, 로베르토 알로마, 오마 비즈켈, 데이비드 저스티스 등의 강타자들을 앞세워 단일 시즌에만 1000개의 득점을 기록할 정도로 강력한 공격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1993년의 클리블랜드는 약체 팀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70개의 도루를 기록한 당대 최고의 리드오프 케니 로프턴이나 올스타에 선정된 카를로스 바에르가, 알버트 벨 등의 선수들이 있었다.
그 후 시카고 화이트삭스, 친정팀 에인절스를 몇 번 트레이드로 오가다, 1999년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뛴 것을 끝으로 은퇴했다. 2005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5%의 지지율도 얻지 못해 탈락했다. 현재는 미국 전국을 돌면서, 장애인들을 위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애보트의 사례는 장애를 뛰어넘어 훌륭한 성적을 기록한 야구 선수의 사례로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류중일이 이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기사)
5.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기교파 투수로 팜볼에 가까운 체인지업과 슬라이더가 주무기였는데, 뛰어난 디셉션 덕분에 그 위력이 더해졌다.애보트의 플레이 스타일에서 특히나 눈에 띄는 점은 수비다. 투수도 속칭 '제5의 내야수'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공을 던진 후에는 또 한 명의 수비수로 기능하는 포지션이다. 애보트는 투구는 그렇다 치고 불편한 오른손 때문에 수비에는 당연히 애로사항이 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애보트는 후술할 자신만의 수비 습관으로 놀랍게도 준수한 수비 실력을 보여줬다.
애보트 특유의 수비 방식이 드러나는 동영상으로 1분 30초부터 보면 된다. 좌투수이므로 일단 투구를 위해 글러브를 오른손에 걸친 채 공을 던진 뒤, 공을 던지자마자 글러브를 잽싸게 왼손으로 바꿔 꼈다. 만약 자신에게 공이 날아오면 왼손에 낀 글러브로 타구를 잡은 뒤, 글러브를 빠르게 오른손에 다시 걸치고 왼손으로 공을 집어 송구했다. 상당히 복잡하면서도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애보트는 피나는 노력으로 이룬 습관화해 투수로서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이에 더해 타격도 무리 없이 했다. 오른손에 배트를 댄 채로 왼손으로 오른손과 한번에 배트를 감싸는 식의 그립으로 스윙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위 사진처럼 번트를 대기도 했고. 내셔널리그 소속인 밀워키에서 뛰던 1999년에 안타 두 개를 때렸고, 타점 세 개를 기록했다. 그 중 하나는 친정이라면 친정이라 할 수 있는 양키스의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에게서 때려난 것. 게다가 비공식 기록이지만 양키스 시절 스프링 트레이닝 게임에서는 홈런을 친 적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