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 린의 수상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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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폭스 | 레프티 그로브 | 해리 후퍼 | 허브 페녹 | 레드 러핑 | |
베이브 루스 | 트리스 스피커 | 테드 윌리엄스 | 칼 야스트렘스키 | 톰 요키 | |
사이 영 | 토니 코니글리아로 | 돔 디마지오 | 프랭크 말존 | 자니 페스키 | |
짐 라이스 | 스모키 조 우드 | 진 R. 요키 | 칼튼 피스크 | 딕 오코넬 | |
멜 파넬 | 리코 페트로첼리 | 딕 래디츠 | 루이스 티안트 | 켄 콜먼 | |
드와이트 에반스 | 래리 가드너 | 커트 가우디 | 재키 젠슨 | 네드 마틴 | |
빌 몬부켓 | 레지 스미스 | 밥 스탠리 | 릭 벌레슨 | 데이브 페리스 | |
루 고먼 | 존 해링턴 | 텍스 휴슨 | 더피 루이스 | 짐 론보그 | |
프레드 린 | 웨이드 보그스 | 빌 캐리건 | 데니스 에커슬리 | 빌리 굿맨 | |
브루스 허스트 | 벤 몬도어 | 피트 러널스 | 헤이우드 설리반 | 딕 브레시아니 | |
엘리스 카인더 | 조 모건 | 제리 레미 | 조지 스캇 | 번 스티븐스 | |
딕 윌리엄스 | 조지 딕비 | 웨스 페럴 | 마이크 그린웰 | 에드워드 F. 케네디 시니어 | |
빌 리 | 에버렛 스캇 | 프랭크 설리반 | 모 본 | 토미 하퍼 | |
에디 카스코 | 짐 피어설 | 존 발렌틴 | 돈 짐머 | 마티 배럿 | |
엘리스 버크스 | 조 돕슨 | 더치 레너드 | 조 무니 | 커트 실링 | |
존 I. 테일러 | 조 카스티길론 | 로저 클레멘스 | 노마 가르시아파라 | 페드로 마르티네스 | |
아이라 플래그스테드 | 래리 루치노 | 제이슨 배리텍 | 팀 에이크필드 | 벅 프리먼 | |
알 그린 | 데릭 로우 | 마이크 로웰 | 케빈 유킬리스 | 빌 디닌 | |
댄 듀켓 | 리치 겟맨 | 데이비드 오티즈 | 매니 라미레즈 | 더스틴 페드로이아 |
197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 ||||
제프 버로우스 (텍사스 레인저스) | → | 프레드 린 (보스턴 레드삭스) | → | 서먼 먼슨 (뉴욕 양키스) |
197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 ||||
마이크 하그로브 (텍사스 레인저스) | → | 프레드 린 (보스턴 레드삭스) | → | 마크 피드리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1979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 ||||
로드 커류 (미네소타 트윈스) | → | 프레드 린 (보스턴 레드삭스) | → | 조지 브렛 (캔자스시티 로열스) |
프레드릭 마이클 린 Fredric Michael Lynn | |
출생 | 1952년 1월 3일 ([age(1952-01-03)]세) |
일리노이 주 시카고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엘 몬테 고등학교 -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
신체 | 185cm / 83kg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73년 드래프트 2라운드 (BOS) |
소속팀 | 보스턴 레드삭스 (1974~1980)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81~1984) 볼티모어 오리올스 (1985~1988)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1988~1989)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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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MLB 최초의 신인왕과 MVP를 같은 시즌에 수상한 인물이다.2. 선수시절
루키 시즌은 15게임밖에 출전하지 않았기에, 신인 자격을 상실하지 않았다.풀타임 첫해인 1975년에 23살의 나이로 타 .331, 출 .401, 장 .566, OPS .967, wRC+ 161, fWAR 7.1, bWAR 7.4을 찍고, 만장일치에서 1표 모자른 신인왕 및 MVP를 수상하였다.
커리어 하이 시즌은 1979년으로서, 27살의 나이로 타 .333, 출 .423, 장 .637, OPS 1.059, wRC+ 174, fWAR 8.6, bWAR 8.8을 찍었다.
1979년의 MVP는 양쪽에서 모두 논란거리였다. 그 해 수상자는 AL에선 돈 베일러, NL에선 키스 에르난데스와 윌리 스타젤이 공동 수상했는데 굉장히 어이없는 성적이었다. 그 해 fWAR 순위에서 양 리그 1위는 NL에서 J.R. 리차드(8.8), AL에서는 린(8.6)이었다. 하지만 리차드는 NL 19위에 그쳤고, 린은 AL 4위에 그쳤다. 더 놀라운 건 NL MVP에 오른 윌리 스타젤은 적어도 그 해엔 NL fWAR 타자 부분에서만 따져도 35위에 머문 선수였다는 것. 무엇보다도 MVP급과는 거리가 먼 2.7 fWAR를 찍었다. 심지어 규정타석도 기록하지 못했던 선수였다(480타석). 실제로 빌 제임스는 가장 멍청한 1970년대 MVP 선정을 윌리 스타젤의 1979년이라고 언급했을 정도였다. 돈 베일러 또한 AL fWAR 타자 부분 25위에 그친 타자이다. 그런데도 두 선수가 MVP를 수상한 이유는 딱 하나. 바로 팀 성적이었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었기 때문에[1] 이 상을 수상했다. 1947년의 AL MVP 데자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2] 그나마 논란에서 자유로운 선수는 키스 에르난데스였다. NL 전체 2위의 fWAR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2016년의 MLB 기자들이라면 아마 린, 브렛, 리차드, 에르난데즈 중 2명을 골랐을 것이다.#
그 외에는 평범한 성적을 기록, 명전에도 들어가지 못하였다. 1996년에 첫 후보로 올라 5.5%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다음 해에 4.7%를 기록하는데 그치며 바로 탈락했다. 사실 초년병 이후 성적이 다소 평범했던 건 무릎 수술만 3차례 받은 걸 포함해 발가락, 허리, 햄스트링 부상 등 엄청난 유리몸이었기 때문.
[1] 특히 스타젤은 젊은 선수들이 많던 피츠버그 팀 분위기를 주도하는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고 인품에 대한 평판도 훌륭한 베테랑이었기에 성적 이상으로 주목을 받았다.[2] 적어도 그 해는 조 디마지오가 받아서는 절대 안 되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