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1 14:42:47

커트 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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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커티스 몬태규 실링
(Curtis Montague Schilling)
생년월일 1966년 11월 14일
국적 미국
출신지 알래스카앵커리지
체격 198cm, 107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6년 보스턴 레드삭스
(2라운드 전체 39순위)
소속팀 볼티모어 오리올스(1988~1990)
휴스턴 애스트로스(1991)
필라델피아 필리스(1992~2000)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2000~2003)
보스턴 레드삭스(2004~2007)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2001 2004 2007
1. 개요2. 선수 시절: 인간계의 에이스
2.1. 필리스에서의 역투2.2. 디백스에서의 황금기2.3. 레드삭스에서의 황혼기
3. 피칭 스타일4. 불운한 상복5. 이야기거리
5.1. 포스트시즌의 사나이5.2.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5.2.1. 언플과 명전 문제
6. 기타
6.1. 트인낭과 인성문제6.2. 38 스튜디오, 실패한 제2의 인생6.3. 38스튜디오 파산 후6.4. 잡다한 이야기
7. 연도별 주요 성적8. 둘러보기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선발투수로 2000년대 초반 랜디 존슨과 함께 최강의 원투펀치를 이뤘으며, 그 뒤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해 86년만의 메이저리그 우승에 한 몫을 단단히 한 에이스. 하지만 커리어가 하필이면 MLB 역대급에 꼽힐만한 괴물투수들과 겹치고[1] 공포의 주둥아리 때문에 과소평가 당하고 있는 투수이기도 하다. 또한 알래스카를 대표하는 메이저리그 선수.[2]

통산 성적은 20시즌 동안 216승 146패, 3.46 ERA, 3261이닝, 3116삼진, 711볼넷, K/9 8.59, BB/9 1.96, K/BB 4.38[3], HR/9 0.95, 83완투, 20완봉을 기록했다.

2. 선수 시절: 인간계의 에이스

1986년 1월 드래프트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에 지명되어 1988년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트레이드되었고, 1991년에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갔지만[4]를 주로 불펜에 머물렀고, 이후 1992년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하고 나서부터 선발로 자리잡아 기량이 꽃피기 시작한다.

2.1. 필리스에서의 역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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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했던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주축 선발투수로 활약하며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두 경기 선발로 나서 16이닝 3자책 4실점으로 챔피언십 MVP를 수상했고, 월드시리즈에서도 두 경기 선발로 나서 15.1이닝 동안 6자책 7실점으로 호투했으나 당시 당대 최강팀이었던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막을 순 없었다. 그 뒤에도 어깨부상에 시달렸던 94~95시즌을 제외하고 매 시즌 200이닝-3점대 평균자책[5]-300개를 전후한 삼진을 기록하는 등 호투하나 소속팀이었던 필라델피아 필리스[6]가 지구 꼴찌를 밥먹듯이 하던 약팀이라 다시 포스트시즌에서 투구할 기회를 얻을 수는 없었다. 밑에서도 얘기할테지만, 하여간 팀 잘못 만나서 지지리도 복도 없었던 선수.

1995년에 준사형선고 취급을 받는 어깨 관절와순 부상 치료를 받았지만 그 뒤에도 2,456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 3.43, 통산 WARP 51.5를 기록했다.어깨 관절와순 부상의 드문 성공사례 중 한 명이며, 그 외에 성공사례로는 피칭스타일이 비슷한 로저 클레멘스, 알 라이터, 크리스 카펜터 등이 있다.

여담으로 핵이빨은 이 시절부터 갈고 닦았는지(...) 1997년 드래프트에서 터져나온 그 유명한 'J.D. 드류 사태'에서 스캇 보라스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진지한 공개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 정확히 10년만에 드류와 한솥밥을 먹게 될 줄은 몰랐겠지

2.2. 디백스에서의 황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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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약팀의 에이스로 이름을 날리던 중, 2000년 시즌 도중에 우승을 위해 모든 것을 올인하고 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오마 달, 넬슨 피게로아, 트래비스 리[7]와 비센테 파디야 등 4명의 선수를 내주며 커트 실링을 영입한다. 이적 후 랜디 존슨에 이은 2선발로 대활약, 메이저리그 역사에 손꼽힐 최고의 원투펀치를 이뤄 본격적인 전성기를 달린다.

2001년 시즌 랜디 존슨과 함께 당시 월드시리즈 3연패를 이루고 4연패에 도전하던 뉴욕 양키스를 물리치고 애리조나 디백스에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선사한다.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로저 클레멘스와의 벼랑끝 승부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투수전의 백미. 당시 7차전 시리즈에서 세 번 선발로 나서 21.2이닝 동안 자책점 4점만을 허용하는 짠물피칭을 보인다. 결국 7차전을 마무리한 랜디 존슨과 함께 월드시리즈 공동 MVP를 수상. 월드시리즈의 자세한 이야기는 2001 월드 시리즈 항목 참조.

그 뒤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이다가 슬슬 리빌딩에 들어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의해 다시 4:1 트레이드로 보스턴 레드삭스로 건너갔다. 1993년 포스트시즌, 2001년 월드시리즈로 이미 포스트시즌의 사나이로 인정받은 그였지만, 그 역량을 활짝 꽃피운 것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일 것이다.

2.3. 레드삭스에서의 황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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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지명했지만 곧 트레이드했던, 자신이 그토록 닮고 싶었던 로저 클레멘스의 친정으로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황혼기에 도착한 2004년. 그는 입단식에서부터 "밤비노의 저주를 깨겠다"고 맹세한다. 다행히 NL에서 AL로의 이적에 훌륭히 적응하며 37세의 나이에 21승 6패 평균자책 3.26을 기록한다. 그리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2차전에 등판, 발목부상에도 불구하고 (아래 부분 참고) 6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투혼을 보이면서 86년만에 보스턴에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선사한다. 피 묻은 양말과 수술 자국

그런데, 이것이 피가 아니라 치료용 빨간약요오드라는 얘기가 있어서 나중에 구설수에 올랐다. 부상이 있었던건 이후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고 풋볼 경기장에 나올 때에도 목발을 짚고 나왔던 것을 보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이것이 약간의 허세가 섞여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가 아니라는 구체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 여러 다큐멘터리를 봐도 진짜라고 주장하고 있고, 아직 피가 아니라니 페인트니 요오드니 하는 소리는 몇번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루머로서 나왔을 뿐, 공식적으로는 진짜 피가 맞다. 애초에 이게 제일 먼저 퍼진 계기가 방송 캐스터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근거를 확인하시는 분이나 실링의 당시 부상에 대해 잘 아시는 의느님 위키니트의 가열찬 수정바람. 또한 이 양말에 K ALS를 적어놓은 것으로 본인이 후원하는 루게릭병 재단을 홍보하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8] 여담으로, 당시 최훈은 관련 카툰에서 그가 신은 신발이 리복임을 빗대어 "나이키는 땅을 쳤을 그 장면"이라고 평했다.

2005년에 살짝 부진했으나 2006년 부활, 그리고 2007년 다시 월드시리즈[9]에서 콜로라도 로키스를 상대로 5.1이닝 1실점이라는 호투를 보인 후 은퇴한다. 팬들은 이번이 마지막 월드시리즈가 될지도 모르는 영웅이 마운드를 내려갈 때 존경과 감사를 담은 기립박수를 보냈고, 결과적으로 그 경기는 현역으로서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사실 2008년에도 디스카운트를 해서 계약은 했다. 다만 갑작스레 어깨 부상을 당해서 출전도 못하고 기약없는 재활을 하다 2009년 초에 은퇴를 선언하고 말았다. 어쨌든 2008년에 뛰진 않았으니 명예의 전당 투표가 늦춰지진 않았고, 비록 마지막 해에는 의도하지 않은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먹튀화했지만, 레드삭스는 그의 은퇴 이후 38번을 비공식 영구결번화하여 예우하고 있다. 아마 실링이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정된다면 원래 레드삭스에서 드래프트도 되었던 인연을 들어 프랜차이즈 스타에 준하는 대접으로 공식적인 영구결번이 선포될 것으로 보인다. 마침 실링도 가장 오래 뛰었던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의 그때가 딱히 좋기만 한 세월은 아니었고 포스트시즌의 해결사 이미지가 강하니까 삭스 모자를 쓰고 갈테고...

3. 피칭 스타일

피칭 스타일은 완벽한 파워피처의 전형이다. 95~98마일을 넘나드는 강속구와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주무기로 한다.[10] 특히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모서리에 내다꽂는 포심과 하이패스트볼이 일품.

로저 클레멘스도 못한 300K 달성 시즌도 3번(97, 98, 02)인데, 놀라운 것은 통산 3000탈삼진 이상을 기록하면서 허용한 통산 볼넷은 711개[11]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록들은 실링이 현역시절 제구력이 가장 뛰어난 강속구 투수 중 한명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0년 시즌 이후로는 볼넷이 경기당 1개를 간신히 넘길 정도였으며 2002년엔 35게임에 등판하며 고의사구 포함 볼넷을 34개만 허용하는 짠물피칭을 보인다. 이런 짠물 피칭의 비결은 메이저리그 정상급의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12] 초구부터 스트라이크 존을 공격적으로 공략하다보니 안타도 자주 맞긴 했지만, 굳이 DIPS 이론까지 끌어오지 않더라도 볼넷을 매우 짜게 내줬으니 상관 없었다. 정면 승부를 즐기면서도 타자들을 요리할 줄 알았던 괴수.

4. 불운한 상복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동 시대에 그렉 매덕스, 페드로 마르티네즈, 로저 클레멘스, 랜디 존슨, 요한 산타나 같은 괴물투수들이 많아서 사이 영 상은 4위 한번(97), 2위만 3번(01,02,04)으로 수상하지 못했다. 특히 필리스 시절에는 팀이 워낙 약하다보니 쌓은 승수도 경쟁자들에 비해 너무 적어서 사이영 표도 얼마 받질 못했는데 그 경쟁자들이 브레이브스 왕조 3인방(...) 4위를 했던 97년의 17승 시즌에는 드디어 사이영 상을 받아보나 했더니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웬놈의 외계인이 리그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특히 저 2위 3번의 경우 01,02는 랜디 존슨, 04는 요한 산타나가 가져갔다.

5. 이야기거리

5.1. 포스트시즌의 사나이

포스트시즌 성적이 19게임 11승 2패, 133.1이닝 동안 120탈삼진, 25볼넷 평균자책 2.23일 정도로 포스트시즌에서 날라다녔던, MLB 역사에 길이 남을 빅게임 피쳐다.[13] 레드삭스의 원쑤 뉴욕 양키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앤디 페티트가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19승을 기록하였지만 ERA가 3.83로 높은 편인지라 실링과는 그 격을 달리한다. 갓 창단한 신생팀 디백스에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안겨줬고, 86년 묵은 밤비노의 저주를 쳐부수면서 2차례의 우승을 선사했을 정도니...[14] 가장 오래 뛰었던 필라델피아 필리스X만패약체라서 포스트시즌에 많이 진출하지 못했던 게 아쉬울 뿐인 선수. 특히 2001년 디백스의 우승 시즌에는 포스트시즌에서만 48.1이닝을 투구하였는데, 이는 정규시즌의 256.2이닝과 합치면 와일드카드 시대 유일무이한 단일시즌 300이닝 투구 기록이다.

2010년 espn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포스트시즌 투수 순위에서 밥 깁슨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스몰츠는 4위, 리베라는 번외로 소개됐다.) 참고로 클리프 리는 8위이고 기사의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기사 자체가 당시 클리프 리가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해서 마련된 것인데 그 후 월드시리즈에서 쪽박을 찼다(...) #

5.2.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통산 성적을 보면 ERA에 비해 패가 엄청 많은 편인데, 이게 다 젊었을 때 만패팀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오래 뛰어서 승리를 많이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를 감안할 때 216승만 들이밀어서는 입성하기가 어려운게 사실이다. 샌디 쿠팩스처럼 단기간동안 리그를 초토화시킨 선수도 아니었고.

하지만 역대 최강의 빅게임 피쳐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만한 위대한 포스트시즌의 업적, 그리고 밤비노의 저주를 깬 투수라는 점, 커리어 통산 탈삼진이 3116개로 3000K를 넘어섰다는 점[15], 약물 시대를 겪었다는 그리고 만패팀에서 고생만 했다는 등의 보상 판정 등을 감안하면 직행은 아니더라도 명예의 전당 행은 가능할 듯 하다. 또한 같은 2007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로저 클레멘스배리 본즈에 대한 반발심리가 크게 작용한다면 2013년 첫해 입성이 마냥 꿈만은 아닌듯이 보였다. 무엇보다도 실링의 통산성적은 동시대 굇수들의 활약에 가려져서 그렇지 절대 만만한 성적이 아니다. 2019년 현역으로 뛰고 있는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들, 그 중에서도 리그에서 손에 꼽히는 에이스들 중에서 200승3000K를 동시에 달성할만한 투수가 몇명이나 될까? 거기에 정규시즌 300K통산 3000이닝 기록까지 추가한다면 실링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들을 남겼는지 알 수 있다. 저 네 가지 중 한 가지만 달성하는 것도 어려운데 실링은 저 기록들을 다 가지고 있다. 괜히 그를 인간계의 에이스라 부르는게 아니다.

일단 2012년 투표에서 밀린 후보에는 제프 배그웰, 잭 모리스(13회째), 리 스미스(10회째), 에드가 마르티네즈, 버니 윌리엄스 등 거물들이 많으며, 함께 출발하는 2013 동기 중에는 스테로이드 혐의자인 본즈, 클레멘스, 새미 소사를 제외하더라도 크레이그 비지오 같은 흠좀무한 레전드근데 정작 비지오도 그해 못들어갔다는 점은 함정들도 버티고 있어 첫해 통과는 무리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이후에도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 존 스몰츠 등이 쏟아지니 첫해 통과하지 못하면 오랫동안 장수하게 될게 뻔하며, 이렇게 이리저리 밀리다가는 버트 블라일레븐처럼 14수 15수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대체적인 평에 의하면 어찌어찌 명전은 갈 것 같다는게 지배적이다.

해외야구 떡밥 중 하나가 무시나 vs. 실링의 명전행인데, 일단 선수의 급을 따져도 거의 비슷한 급인데다가 한 때 각각 보스턴과 양키스 소속이었으며, 심지어 스탯으로 따져봐도 둘의 통산 WAR이 거의 비슷하면서 승수나 이닝과 같은 누적 스탯은 무시나가, ERA와 같은 비율 스탯은 실링이 유리해서 누가 더 낫다고 말하기가 정말 애매하기 때문에[16] 일단 한번 터지면 제대로 불붙는 논쟁이다. 하지만 무시나도 상복이 실링 뺨칠 정도로 나빠서 골드글러브 7회 수상[17] 말고는 이렇다할 수상 경력이 없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눈물겨운(?!) 대결이다. 일단 블랙 잉크(리그 내에서 홈런, 탈삼진 등에서 얼마나 1등을 얼마나 했는가를 매기는 점수 - 쉽게 말해 리그를 얼마나 지배했는가)와 HOF 모니터(시즌 별, 통산 성적이 얼마나 되는가로 매기는 복합 점수)는 실링이 더 앞서며 그레이 잉크(리그 내에서 홈런, 탈삼진 등에서 10등 이내에 얼마나 들었는가를 매기는 점수 - 리그에서 얼마나 꾸준히 던졌는가), HOF 스탠다드(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매기는 누적 점수)는 무시나가 앞선다. 대체로 둘다 겨우겨우 들어갈 수는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 다만 전설의 피묻은 양말 사건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 기자들이 제법 있다는게 항상 변수라면 변수

명전에 갈 경우 어떤 모자를 쓰느냐도 작은 떡밥인데, 사실 필리스 시절이 승패만 빼면 가장 오래 있었고 성적도 좋았던 때다. 그러나 정작 우승했던 시절이 디백스와 레드삭스이다 보니 대체로 디백스 또는 레드삭스 모자를 쓸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는 레드삭스가 팀 명전에 올려주면서 물밑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디백스도 가만히 손가락만 빨 리 없기 때문에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할듯.

2013년 명예의 전당 첫 투표에서는 38.8%라는 득표율로 세간의 전망에 비해 비교적 선전하며 향후 전망을 밝혔다. 참고로 이 득표율, 36.2%인 본즈와 37.6%인 클레멘스보다 조금 높다.

2014년도에는 29.2%로 10% 가까이 떨어졌다. 다른 레전드 후보들 탓이 큰것으로 보이는데 향후 몇년간은 레전드급 선수들이 줄줄이 후보로 등록되는지라 몇년은 물을 먹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2014년 7월, "투표의 타당성을 높이기 위해" 라는 명분으로 명예의 전당 후보자격 유지 기간이 10년으로 줄어들었다. 실링에겐 더 큰 악재로 찾아온 듯.

2015년도에는 다행히 첫해보다 약간 오른 39.2%의 득표율을 얻어냈다. 유지 기간이 10년으로 줄었어도 이 정도 득표율이면 아직까지 승산은 있어 보인다.

이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명예의 전당에 많은 득표를 못한이유로 공화당을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자신과 달리 존 스몰츠가 첫 턴에 명전에 들어간 데는 브레이브스 왕조빨 + 민주당 지지자라는 점이 작용했다고 해서[18] 어그로를 끌었다. 나중에 농담으로 한 말이라고 해명은 했다지만... 하여간 그놈의 핵이빨 그래도 요즘 살만하신듯#

다만, 스몰츠와 비교했을 때 실링 입장에서 다소 섭섭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긴 한다. 스몰츠는 커리어 79.5 fWAR, 69.1 bWAR를 기록한 반면, 실링은 79.8 fWAR, 79.6 bWAR를 기록했다. 마일스톤의 경우 실링과 스몰츠 모두 3000이닝, 3000K, 200승을 넘겼기 때문에 나머지는 비교적 자잘한 차이이며 ERA의 경우 실링은 3.46, 스몰츠는 3.33이지만 ERA+로 보면 실링은 127, 스몰츠는 125를 기록했다. 명예의 전당 지표로 보면 실링이 스몰츠에 비해 JAWS, 블랙 잉크, 그레이 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모두 우위를 점하고 있다. 포스트시즌에서야 뭐 둘 다 잘했으니. 그런데 스몰츠는 첫 턴 입성이고 실링은 입성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라 실링으로선 아쉬울 수 있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정치 떡밥으로 몰아간 것은 빼도박도 못하는 삽질이며, 스몰츠는 승수 외에도 155세이브를 기록했고 사이 영 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실링과 차별화가 된다. 게다가 155세이브를 기록한 2001~2004년의 스몰츠는 선발이 불가능해진 투수가 클로저로 전업한 사례가 아니라, 아직 선발투수로 경쟁력이 차고 넘치던 선수가 팀 사정에 의해 마무리 알바를 뛴 것이므로 커리어에 상당히 손해를 봤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스몰츠는 선발로 복귀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매년 200이닝 이상을 던지면서 44승과 15이상의 WAR을 쌓았는데, 부상 복귀 연도인 2001년을 제외하고 생각해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스몰츠가 클로저가 아닌 선발로 뛰었다면 2005~2007년과 비슷한 정도의 퍼포먼스는 보여줬을 것이다. 따라서 풀 선발로 뛴 스몰츠의 가상 커리어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예측해도, 실제 커리어보다 약 380이닝 정도 더 던지면서 40승의 통산 승수와 7정도의 WAR을 더 쌓았을 것이라고[19] 추측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스몰츠는 커리어 통산 3853이닝을 던져서 3300+탈삼진에 86.5 fWAR, 76.1 bWAR를 기록한 253승 투수가 될 것이고 명전 지표 또한 당연히 지금보다 올라가게 된다. 이 정도면 순수 누적만으로도 실링이나 무시나와 비교했을때 전혀 꿀릴 게 없는데 스몰츠는 1996년 NL CYA가 있다. 스몰츠는 2000년에 팔꿈치 부상을 당하고 통째로 쉰다. 그리고 바로 선발로 복귀하는 데 무리가 있어서 마무리 투수로 뛰게 된 거다. 따라서 '만약 스몰츠가 그 기간에 선발로 뛰었다면'을 가정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다. 이런 식으로 가정한다면 팬심에 따라서 선수의 커리어를 멋대로 높게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당장 커트 실링도 필리스에서 뛰지 않았다면 더 나은 커리어를 쌓았을텐데? 스포츠에 만약은 없음을 기억하자.

2016년에는 52.3%로 크게 상승했다. 하지만 이건 로저 클레멘스배리 본즈와 마찬가지로, 투표자 총수가 줄어드는 바람에 표를 준 사람도 줄었는데 비율이 상승한 사례에 속한다. 때문에 다음해 투표율 변화를 보기전에는 실제로 입성가능성이 올라갔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투표자 수와 투표율이 동반 상승한 마이크 무시나와 같은 사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5년차인 2017년은 45%로 오히려 하락했다. 비교 대상이었던 마이크 무시나가 43%에서 51.8%로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2018년에는 다시 51.2%로 상승했지만 이제 4년밖에 남지 않았고, 같은 6년차인 본즈나 약켓맨보다도 적은 표를 받았다는 점에서 전망은 밝지 않다. 무시나는 실링과 50표 이상 차이나는 63.5%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이 추세라면 무시나의 헌액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결국 은퇴 후 행보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2019년에는 마이크 무시나가 76.7%의 득표율로 입성에 성공한 것에 반해, 60.9%를 얻었다. 전년대비 거의 10%p가 상승한 것이지만, 이걸로 7년차이다. 일반적인 케이스라면 입성에 긍정적 가능성을 볼 수도 있는데, 실링이라서 알 수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이 야구 실력 부분을 떠난 것도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다고 새로운 기자들이 얼마나 표를 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년차가 지나면서 득표율이 올라가는 것은 기자들이 '줄 수 있는 표가 10표 밖에 없으니까' 라는 이유로 그동안의 투표에서 우선순위가 밀렸던 선수들 중 '그래도 이 선수가 가기는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선수를 찍기 시작하면서 득표범위로 들어가는 것인데, '1억표를 줄 수 있어도 이 선수는 안 준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25%를 넘으면 그 비율 줄어들기 전에는 100년이 지나도 들어갈 수 있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약물 복용 문제에 엮인 이들의 상승세가 지지부진한 것과 실링의 입성은 이런 부분이 닿아있다. 결국 실링이 입성할 가능성은 이제부터라도 언플을 적게하고, 기자들이 과거 발언에 대한 인식을 잊어주길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

5.2.1. 언플과 명전 문제

본격적으로 입을 털기 전에도 득표율이 낮았기 때문에 '원래 명전급에 아슬아슬한 실력인데 언플과 인성 드립이 지나치게 강조된 것 아니냐'고 느낄 수 있지만, 2019년 시점에서는 정말로 언플과 인성 때문에 못 가고 있는게 맞다. 본격적으로 입털기 전에는 실력이 저평가받아서, 실력이 재평가되고 나서는 그간 입턴것이 부메랑이 되어서 표를 못 받고 있기 때문. 실제로 실력면에서 거의 동급인[20] 마이크 무시나는 6번째 투표에서 입성했는데, 실링과 무시나의 차이는 실링은 부적절한 발언과 인성 문제로 구설수에 자주 올랐지만 무시나는 저런 이슈에서 그야말로 클린 그 자체였다는 점 뿐이다.

1년차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이 둘에게는 행운과 불행이 같이 왔는데, 명전 입성 투표 기간이 15년이 10년으로 줄어든 것은 불행이고, 투표인단 자격 변화에 따른 투표인단의 변화는 엄청난 행운이다.

무시나와 실링이 은퇴하던 시점에서는 기존 투표인단의 성향과 경향성을 고려할 때, 가도 아슬아슬하게 갈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명전입성 가능성 문단의 초기 예상은 이를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실링의 1년차 투표율은 40%도 안되고, 이 때는 심지어 아래 언플논란의 진화론 드립도 나오기 전이었다. 1년차에 30%대 득표를 한 선수가 명전을 갈 것인가 못 갈 것인가 물어보면 일반적인 경우의 답은 모른다이다[21]. 실제로 실링의 성적이 닥치고 명전 감이었다면, 적어도 무슬림 트윗 나오기 전인 2015년이나 지정성별 드립치고 ESPN에서 퇴출된 2016년 전에는 입성했을 것이다. 이는 비슷한 언플을 명전 투표전에 했지만, 1년차에 95% 이상을 득표하면서 입성한 치퍼 존스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투표인단 자격이 변하면서 보수적인 이들이 대거 제외되고, 대신 인터넷에서 세이버매트릭스 연구하던 사람들이 투표자에 포함되고, 약물 이슈 때문에 외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성적만 보자는 식의 인식 변화가 생기면서, 실링의 투표율도 같이 올랐다. 이는 수년간 본즈나 클레멘스와 실링의 득표율이 비슷한 형태로 상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같이 이득을 보았던 마이크 무시나가 결국 입성하면서, 실링이 입성할 가능성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즉, 실링과 무시나는 은퇴시점 기준으로는 명전이 아슬아슬했던 것이 맞다. 그러나 천운과 시세가 따라주면서 무시나는 예상보다 쉽게 명전 입성을 했지만 실링의 경우는 자신의 입이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을 뿐이다.

6. 기타

6.1. 트인낭과 인성문제

이렇게만 보면 정말 대단한 투수지만 그놈의 입버릇 때문에 평가절하된 대표적인 선수다. 미국 대통령을 꿈꾸는 어떤 알래스카 출신 아줌마처럼 정치적으로 골수 공화당원에다 정치적인 발언을 매우 많이 하고[22] 이런저런 구설수를 많이 뿌리는 사람이다. 특히 대놓고 민주당 텃밭인 보스턴에서 그런 발언을 막 하다보니 미국 내에서도 안티가 상당수 있다. 국내에선 디백스 시절만 하더라도 그다지 나쁜 이미지는 없었으나, 보스턴 레드삭스 이후로 이런저런 설화를 많이 만들어내며 이미지가 많이 나빠진 선수. 2004년 월드시리즈 당시 전세계적이로 이슈가 됐던 '피로 물든 양말'(위의 그 사진 맞다.)이 조작이라는 주장이 제기[23]되면서 그 당시의 감동이 퇴색된 탓도 컷고, 결정적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김병현과 사이가 안 좋다는 이야기가 퍼진 탓이 컸다[24]. 분명 3년 전에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는데?

또한, 나쁘게 말하면 더럽게 나불대는 성격이고 좋게 말하면 소신이 있는 싸나이다운 성격(...)은 실링의 영웅이자 롤모델이라 할 수 있는 로켓에 대한 태도에서 잘 나타난다. 2004년 보스턴으로의 트레이드 후 2006년 로켓이 알바멘스로 거듭나 새해까지 푹 쉬고 있을 무렵, 테오 엡스타인 GM이 로켓맨의 복귀를 염원하는 여러 보빠들의 영상을 담은 DVD를 클레멘스에게 전달하고 진지한 오퍼를 넣으며 클레멘스의 귀향을 추진했는데, 당시만 해도 커트 실링은 로켓이 돌아오면 발레복을 입고 춤추겠다(...)며 대환영 의사를 밝혔고, 06년에 잠시 펜웨이 파크에 방문하며 "10년만의 위대한 귀향"이라는 설레발의 주인공이 되었던 클레멘스를 만나자 굉장히 기뻐했다. 그러나, 07년 미첼 리포트에서 로켓의 이름이 거론된 후, 실링은 그에게 굉장한 배신감을 느꼈는지 토론토 시절부터의 4차례 사이영상을 반납하라(!)며 대차게 깠다. 그 이후로도 약을 빤 선수는 HOF에 가면 안된다는 등의 강경한 입장[25]을 보이며 늘 소신 있지만 말만 시끄럽게 나불대는 입실링(...)의 이미지를 굳혔다. 2012년에는 2008년 어깨 부상으로 재활 중일 당시 레드삭스 프런트[26] 측으로부터 PED 복용을 권유받았다는 주장을 하며 MLB 사무국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또한 2008년에 본인이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었음에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트레이드를 요구하며 대놓고 태업을 한 매니 라미레즈의 행동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언행을 본 레드삭스 팬들은 만약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실링과 적으로 만나서 설전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흠좀무한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김병현의 입지 축소 등과 좋지 않다는 사이 등 여러가지가 맞물려 악의적인 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오마이뉴스의 기사 - 아니, '칼럼'이 하나 있다. # 차라리 이쯤 되면 그냥 싫다고 하는게 나았을지도...

골수 기독교 보수주의자에 핵이빨이 더해져서 벌어진 사건이 뭐냐면, 트위터 진화론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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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실링이 2012년 "유인원은 왜 진화하지 않았는가. 진화론은 근거도 없고 증명된 것도 없다"라는 근본주의 돋는 트윗을 남긴 것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이 떡밥을 ESPN 기자 키스 로가 물면서, 진화론 논쟁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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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링은 여기서 파리, 모기, 코끼리, 인간 사이에 화석이 있느냐 같은 창조과학 돋는 트윗을 날리기도 했고, 키스 로는 위키백과의 링크를 가져와서 반박. 실링은 위키백과는 증거가 못된다고 하자, 키스 로는 '정리가 잘 되어 있으니까 내용에 불만 있으면 리트윗 날려라'라고 다시 반박. 대충 이정도 즈음해서 키스 로가 정직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일단 ESPN 측은 트윗대전과는 상관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정직에서 돌아온 키스로의 트윗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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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리고 2015년 이전까지의 자신의 트인낭 최고기록을 경신하는 사건이 벌어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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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링이 무슬림들을 나치 취급한 것. 그것도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5-10%의 극단주의자가 있을 뿐이라고 하지만, 어차피 나치도 다시 독일인들의 7% 밖에 안되었잖아. 그런데 무슨 짓을 저질렀냐라는 이미지를 가져오면서 통계는 사람들이 진짜 수치를 접했을 때 놀라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쓴 것이다[27].당연히 엄청난 비판을 불러왔고, 트윗은 바로 삭제되었다. 그리고 ESPN은 실링을 리틀 야구 월드시리즈 해설자 명단에서 삭제[28]하면서, 실링의 트윗은 자신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라고 선을 그었고 실링 역시 이를 사과하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물론 약물 시대에서 이만큼 롱런한 투수가 드물다는 사실을 아는 이상 실링의 피칭을 폄하할 수 없는게 사실이지만 원체 은퇴 이전은 물론이고 은퇴 이후에 벌이고 있는 것이 너무 임팩트가 크게 터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무슬림=나치 트윗이 나온 뒤로는 명전 입성 가능성마저 낮아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

2016년 커트 실링은 또또또 사고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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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트랜스 젠더를 조롱하면서 이런 글을 남긴 것. 간단히 요약하자면 지정성별을 옹호하는 내용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서 성소수자 문제가 전향적으로 변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메이저리그에서도 성소수자 관련으로 포용하는 내용을 다룬 사건들이 다수 있었던 상황에서 나온 이 트윗은 다시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ESPN은 충고할만큼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받아줄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갔다(conduct was unacceptable)라는 회사 차원의 공식성명을 발표하고 커트 실링을 해고한다. 이에 대해서 사라 페일린 등의 공화당 내 골수 티 파티 측에서는 ESPN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트윗을 했으나(“ESPN continues to screw up.”), 폭스 스포츠를 포함한 기타 스포츠 매체를 포함한 언론들이 일관된 어조로 비판하는 상황이라서 더 이상 실링이 해설쪽으로 발 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게다가 다른 스포츠를 보더라도 LA 클리퍼스 구단주였던 도널드 스털링이 인종차별 폭언으로 제명되었고, '종교의 자유'를 우선한 LGBT 차별 법안을 주의회에서 통과시킨 노스 캐롤라이나미시시피 등의 남부 주가 보이콧 및 기업 투자 철회 등의 후폭풍을 맞고 있다는 점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건.

성향이 이러다보니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강도높은 비난도 서슴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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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이 또 흠좀무했는데,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언론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트럼프 지지층이 한 기자들을 린치해야 한다는 티셔츠가 멋지다는 트윗한 것. 명예의 전당 투표는 기자들이 하는데, 용감하다 못해서 무모한 행동이다. 오죽하면 SI가 'Curt Schilling loses Hall of Fame vote after applauding shirt threatening journalists'라는 기사를 냈을 정도이다. 실제로 커트 실링의 득표율은 전년대비 오히려 하락했는데, 약물 의혹에 걸린 배리 본즈나 로저 클레멘스 보다도 더 낮은 수치이다. 이를 두고서 몇몇팬들은 이중잣대라고 하지만 문제는 언론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 정서에서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이 명전가능성을 자신이 파먹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게 안타까울 뿐.


그리고, 2018년 상원 선거에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실링이 소속된 브레이트바트의 입지가 바닥을 치면서, 실링은 공화당 후보 경선도 참여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트위터에서 그냥그냥 인터넷방송으로 근근히 수익을 받아가면서 사는 관계로 사는 중이다. 문제는 브레이트바트도 스티브 배넌이 나간 이후에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며 최근에는 브레이트바트에도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신세가 되버렸다.

6.2. 38 스튜디오, 실패한 제2의 인생

메이저리그 선수 중에선 특이하게 선수 시절부터 게임 관련한 부업으로 유명했으며, MMORPG '에버퀘스트'의 광팬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선수시절때부터 보드게임 회사를 경영하면서 경력을 쌓았던 커트 실링은 자신의 등번호를 딴 게임 개발사 '38 스튜디오'를 설립하며 게임 업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야구하던 사람이 게임을 만든다고 해서 처음에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실링은 2006년부터 매사추세츠 지역에 개발사 부지를 준비하는 등 판을 엄청나게 크게 벌였다. 특히 게임을 펼칠 세계관의 설정을 베스트셀러 포가튼 렐름의 작가 R. A. 살바토레에게, 게임의 아트 디자인을 야덕 토드 맥팔레인에게 맡기는 등, 상당히 규모가 큰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 상태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이러다가 결정적인 돌파구가 찾아온 것은 2009년이다. 당시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로 잘 알려져 있는 빅 휴즈 게임즈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RPG를 만들고 있다가 모회사 THQ에 의해 해산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몇년 째 소식도 없이 돈을 계속 쏟아붓고 있던 38 스튜디오의 상황도 문제였지만, 빅 휴즈 게임즈는 이미 창립자는 나간 상황에서 외부에서 데려온 엘더스크롤 시리즈의 리드 디자이너가 남아 그 전까지 빅 휴즈가 만들어본 적도 없는 RPG만 잡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커트 실링은 THQ의 해산 데드라인 직전에 빅 휴즈 게임즈를 38 스튜디오의 자회사로 인수했다. 그리고나서 빅 휴즈 게임즈의 싱글플레이어 RPG에 38 스튜디오가 보유한 '아말러' 세계관을 덧씌우는 방향을 선택했다. 이 결과물이 굉장히 좋았던 데다가 38 스튜디오와 빅 휴즈 양측의 거물들의 이름이 달라붙게 되면서 대형 게임 배급사 EA가 접근해 배급 계약까지 순식간에 체결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2010년 "킹덤 오브 아말러: 레코닝"이 발표되면서 메이저리그의 유명 인사였던 실링은 일약 게임 업계의 인사로 급부상한다. 로드 아일랜드 주에서 7500만 달러 지원을 받은 것도 사실 2010년이다. 디스이즈 게임 기사.[29] 조건은 로드 아일랜드 주에서 550명의 직원을 모집하라는 것. 2012년에 발매된 이 게임은 평단과 사용자층 양 쪽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신작 RPG로서는 흔치 않게 100만 장 이상을 팔면서 성공을 거두었고, 이때까지만해도 커트 실링의 제2의 커리어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2012년 5월 29일(현지시각), 현지 언론에서 38 스튜디오가 사실상 부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미 임금 체불 상태까지 갔다고 하니 매우 심각한 상황인 듯. 이어 현지시각 6월 7일에 결국 회사는 파산했다. 이 사업에 7,500만달러의 거금을 지원한 로드 아일랜드 주 측에서도 실링에게 책임을 묻는 분위기라 이래저래 진퇴양난이다.

38 스튜디오의 패착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나돌고 있다. 5월에 들어와 로드 아일랜드 주에 갚기로 한 약 112만 달러의 빚을 갚고 나서 더 이상 직원들에게 임금을 주지 못했다는 점은 확실한데, 이에 대해 38 스튜디오 및 산하 빅 휴즈 게임즈의 고위 직원들이 "이번 달 빚을 갚으면 지원을 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로드 아일랜드 주에서 입 닦고 가만히 있다"고 비난을 하고 있다.

실링을 옹호하는 측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로드 아일랜드 주의 신임 주지사였던 링컨 체이피였다. 자기가 관할하는 주에 있는 회사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 120만장을 팔고 업계에서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킹덤 오브 아말러: 레코닝을 대놓고 "망했다"고 비난하며 상황 타개를 불가능하게 만든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보라는 것. 커트 실링과 38 스튜디오에게 융자를 해주었던 이전 주지사를 비난하기 위한 정치 싸움의 일부라는 추측이 있는 것인데, 이것도 복잡하다.

전임 로드아일랜드 주 주지사는 공화당 소속 도날드 카르시에리(Donald Carcieri) 였는데, 2009년 5억 달러 이상의 자금부족을 겪었으면서 이 회사에 7500만 달러나 지원했다.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550명을 로드 아일랜드 주에서 채용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7500만 달러, 약 900억원을 빌려주고 550명 취업 시킨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링컨 체이피는 원래 공화당 출신인데 탈당한 이후 무소속으로 2011년 로드아일랜드주 주지사가 되었다. 사실 진짜로 엿먹이려고 했다면 이 때 회사를 엎었을 것이다. 실제로는 만들고 있던 게임이 완성될 1년여간의 시간이 다시 주어졌다. 로드 아일랜드 주정부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300만장을 팔아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다는 말이 나왔는데, 아마도 판매고로만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한 기준이 300만장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킹덤 오브 아말러가 38 스튜디오가 낸 유일한 게임이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새 IP가 가지는 상업적인 한계, 당초 예측치,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았을 때 대성공으로 평가했지만, 7500만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한 주정부로서는 6년만에 처음 낸 성과라는 것이 막대한 적자 였으니 반응이 전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38스튜디오는 원래 메사추세츠에 있었는데, 상단에 언급한 도날드 카르시에리 당시 공화당 주지사가 막대한 지원을 약속했다는 이유로 로드 아일랜드로 이동했다. 또한 38 스튜디오에서 일하기 위해 다른 도시에 있다가 옮겨온 직원들의 이전 주택 융자를 처리해주기로 해놓고서 알고 보니 처리를 안 해서 해고당한 직원들이 예전 주택 융자까지 떠앉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더욱이 퍼블리셔도 잡지 않고 엄청나게 비싼 MMORPG를 5년동안 만들고 있던 38 스튜디오의 경영 전략은 그야말로 답이 없다. 개발팀을 새로 사들여 킹덤 오브 아말러같은 최소한 유명세는 있는 제품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3달 남짓만에 주정부가 자금 회수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회사 전체가 이렇게 순식간에 망해버리는 건, 기본적으로는 회사의 능력부족[30]이지만 경영 실수도 무시할 수 없다. 요약하면, 로드 아일랜드주는 115만 달러의 빚을 회수했고, 이것만으로 38스튜디오는 직원들을 유지할 수 없었는데, 이전 주지사와 맺은 계약에 따르면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직원들을 2012년까지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이전에 만들던 게임도 적자가 난 상황에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서 수익을 낼 여지도, 다른 곳에서 자금을 끌어올 여력도 없던 38 스튜디오는 삽시간에 망했다. 킹덤 오브 아말러 레코닝이 발매된지 3개월여, 로드 아일랜드주에서 게임이 적자 났다고 선언하고 자금 회수 시작한지 1개월도 안되어서 였다.

38스튜디오가 2006년 설립되어서 파산할 때까지 쓴 돈은 1억3300만 달러, EA에게 받은 선불은 3천만 달러가 안되었다. 해당 사실을 다룬 기사에는 정치 이야기도 없다. 투자 수익이 너무 낮아서 투자자들이 떠나고 있으며, 제작중이던 온라인 게임에는 6천만 달러가 추가로 필요했다는 것을 언급할 뿐이다. 매일 경제에서 38스튜디오 파산을 다룬 기사에서도 비슷한데, 이쪽은 MMO의 가치가 바닥을 쳐서 38스튜디오에 미래가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38스튜디오와 아말러의 가치가 2000만 달러 정도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당시 제작중이던 온라인 게임, 약칭 코페르니쿠스 완성에 6천만 달러가 필요했다는 것을 포함하면 이 회사의 당시 가치를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38 스튜디오가 파산할 당시 38스튜디오의 직원은 모두 378명이었다. 계약에 있던 550명에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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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파산을 앞두고 로드 아일랜드 주정부와 담판을 짓고 나오면서 언론의 취재 공세를 받는 실링.

무엇이 진실이든 간에,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회사에 무려 5000만달러의 재산을 쏟아부은 실링은 그야말로 망했어요.

6.3. 38스튜디오 파산 후

38스튜디오 파산 후에는 ESPN에서 해설가로 일하고 있다. 엄청난 투자에도 불구하고 삽질을 거듭하고 있는 다저스를 상대로 "돈으로는 승리를 살 수 없다"#라고 핵이빨 답게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2014년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게 되어 그동안 하고 있던 ESPN 해설 활동을 잠시 중단하게 되었다. 그러나 위에 서술하듯이 무슬림=나치 발언으로 결국 영구히 해설활동조차 잘려버린다.

6.4. 잡다한 이야기

피부암에 걸린 아내를 위해 돔구장 뱅크원 볼파크를 쓰는 애리조나 디백스를 선택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가정적인 선수라 한다. 그런데 디백스엔 트레이드로 합류한 것이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구장인 펜웨이 파크는 노천구장임을 감안해 보면 아마도 헛소문일 듯. 아니면 피부암이 나았나? [31]

그러나 가정적인 것과 상관 없이 그는 선수생활 내내 좋든 싫든 가족들과는 떨어져 지내야 했는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네 아이를 데리고 사실상 싱글맘 노릇을 했던 부인과도 불화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32] 그러던 중 4명의 자녀 중 막내아들인 그랜트는 2007년에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진단받았고, 2008년에 선수 본인이 계약 상태에 있었음에도 어깨 부상[33]까지 길어지자 은퇴를 결심하는 계기로서 작용하였다고 한다. 이 병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을 읽어보길 권한다. 관련해서 부부가 을 냈다니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찾아보길. 실링 부부는 이런 인연으로 매사추세츠 주 자폐증 관련 재단을 후원하기도 한다.

2003년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퀘스텍 시스템에 사용되는 카메라를 방망이로 부숴버린 적이 있다.[34][35]

잭 그레인키가 굉장한 WoW 게이머임을 나불댔다 말했다. #

그의 직설적인 인터뷰를 보면, 은근히 호걸스러운 면모를 볼 수 있다.
과연 명예의 전당 입성 시 인터뷰에서는 무슨 말을 할까 (...)

로저 클레멘스와는 피칭 스타일이 유사한 것 외에도 관절와순 부상을 겪고도 성공적으로 재기한 드문 사례 중 하나라는 공통점도 있다. 부상의 특성 상 아직도 투수들에겐 준사형선고 취급을 받는 무서운 부상인데, 실링은 1995년 수술을 받고 그 뒤 통산 2,456.0이닝, 평균자책 3.43, WARP 5.15를 기록했으며 로저 클레멘스는 1985년 수술을 받고난 뒤, 4,685.0이닝 평균자책 3.09, WARP 98.1을 기록했다.

2012년 8월, 보스턴 레드삭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했던 커트 실링이 무사히 수술을 마쳤는지 딸 개비 실링이 현지시간 2014년 2월 1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소식을 알렸다.

이후에는 ESPN 중계진에서 다시 해설을 맡고 있다. 2015년 7월 12일 메이저리그 전반기 마지막 매치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피츠버그 파이리츠 경기도 중계했는데, 이때 꼬깔콘을 들고있는 모습이 방송을 탔다. 그리고 꼬깔콘을 자연스럽게 득템. 물론 2016년 4월 해고된 이후로는 당연히 ESPN에서 해설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17년 현재 아예 입심과 정치적 성향을 살려 대안 우파 매체인 브레이트바트에서 시사 평론 라디오쇼 진행을 하고 있다. [36]

7.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MLB)
년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WHIP
1988볼티모어 오리올스 4 0 3 0 9.82 10 11 4 14.2 2.18
1989 9 0 1 0 6.23 10 3 6 8.2 1.50
1990 35 1 2 5 2.94 38 19 32 46.0 1.23
1991휴스턴 애스트로스 56 3 5 5 3.81 79 39 71 75.2 1.55
1992필라델피아 필리스 42 14 11 0 2.35 165 60 147 226.1 0.99
1993 34 16 7 0 4.02 234 61 186 235.1 1.23
1994 13 2 8 0 4.48 87 31 58 82.1 1.39
1995 17 7 5 0 3.57 96 29 114 116.0 1.05
1996 26 9 10 0 3.19 149 53 182 183.1 1.08
1997 35 17 11 0 2.97 208 63 319 254.1 1.04
1998 35 15 14 0 3.25 236 67 300 268.2 1.10
1999 24 15 6 0 3.54 159 49 152 180.1 1.12
2000 16 6 6 0 3.91 110 33 96 112.2 1.26
2000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13 5 6 0 3.69 94 13 72 97.2 1.09
2000'00시즌 합산 29 11 12 0 3.81 204 46 168 210.1 1.18
2001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35 22 6 0 2.98 237 40 293 256.2 1.07
2002 36 23 7 0 3.23 218 36 316 259.1 0.96
2003 24 8 9 0 2.95 144 35 194 168.0 1.04
2004보스턴 레드삭스 32 21 6 0 3.26 206 35 203 226.2 1.06
2005 32 8 8 0 5.69 121 25 87 93.1 1.53
2006 31 15 7 0 3.97 220 31 183 204.0 1.21
2007 24 9 8 0 3.87 165 25 101 151.0 1.24
통산'20시즌 569 216 146 10 3.46 2998 736 3116 3261.0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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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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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 커트 실링 & 랜디 존슨 랜스 암스트롱
2001년 월드 시리즈 MVP
데릭 지터
(뉴욕 양키스)
커트 실링 & 랜디 존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트로이 글로스
(애너하임 에인절스)

[1] 단 클레멘스는 스테로이드 복용자이다. 다만 그의 전성기때는 다른 금지약물 복용자처럼 복용 여부가 들통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사이영 상 7번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가진 클레멘스는 당대 최고의 투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았었다.[2] 다만 학창시절의 대부분은 애리조나에서 보냈다.[3] 실링의 통산 K/BB는 메이저리그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런데 1위 투수가 메이저리그는커녕 야구란 스포츠 자체가 제대로 정착하기도 전인 1800년대 투수라서 라이브볼 시대 기록만 따지면 커트 실링이 1위다. 참고로 실링의 다음 순위에는 4.15의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자리잡고 있다. 그 뒤에는 댄 해런, 마리아노 리베라가 있으며 이 두 사람의 통산 K/BB도 4가 넘어간다.[4] 이 과정은 역대급 삽질 트레이드였다. 볼티모어는 당시 20홈런 정도를 꾸준히 기록하던 타자 글렌 데이비스를 영입하기 위해서, 피트 하니쉬, 커트 쉴링, 스티브 핀리를 이적시켰다! 글렌 데이비스는 이후 폭력사태 등을 일으키면서 10홈런 미만으로 몰락하여 3년만에 은퇴한다.[5] 스테로이드 시대였다. 2000년대 후반부터의 투고타저에서의 좀 흔한 편에 속하는 3점대 투수와는 그 격을 달리한다.[6] 1992년 시즌부터 2000년 시즌까지 9시즌 중 4시즌이나 지구 꼴찌를 기록[7] 디백스가 쇼미더머니를 너무 과도하게 해댄 탓에스캇 보라스에 사기당해서 10m 계약 맺어준, 'Loop-Hole FA 사태'의 그 선수 맞다.[8] 실링은 비록 레드삭스의 레전드지만 루 게릭을 매우 존경했고, 큰아들의 이름을 Gehrig으로 지었다. 트위터 계정도 게릭38.[9] 2004년의 영웅들은 대부분 얼마 안가 보사구팽당했고, 팀은 더스틴 페드로이아, 케빈 유킬리스, 조시 베켓, 마이크 로웰, 마쓰자카 다이스케, J.D. 드류, 오카지마 히데키, 자코비 엘스버리, 조나단 파펠본 등의 새 얼굴이 나타나며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실링은 제이슨 배리텍, 데이빗 오티즈, 매니 라미레즈 등과 함께 팀의 베테랑으로서 새 얼굴들을 규합하는 임무를 맡았다. 2007 월드시리즈 무비 프로모션.(목소리는 맷 데이먼)[10] 본인이 드래프트된 해에 레드삭스에서 24승 2.48을 찍은 로저 클레멘스를 영웅으로 추앙했던 커트 실링은 위협구도 마다않는 강력한 패스트볼과 스플릿을 연마하여 그야말로 로켓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으로 거듭났다. 근데 오리지날이 워낙 ㅎㄷㄷ해서 그렇지 다운그레이드가 안좋은게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오리지널보다 낫다.[11] 이는 2015년 1월 8일 현재 16명 뿐인 3000K 투수 중 가장 적은 기록인데, 3000K를 넘긴 투수 중 실링 다음으로 볼넷이 적은 투수들의 순위가 페드로 마르티네즈(760), 퍼거슨 젠킨스(997), 그렉 매덕스(999). 맨 위에서도 언급한 K/BB 수치에서도 함께 언급된 것을 보면, 커트 실링은 정말로 어쩌다가 만패팀 에이스가 되어가지고 지지리도 서러운 커리어를 보냈다고 볼 수 있다(...)[12] 관련 집계가 이루어진 2002년부터 마지막 시즌 2007년까지의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을 보면 무려 68.8%로 메이저리그 전체 선발투수 중에서 브래드 래드키에 이어 2위다.[13] 그와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포스트시즌 성적을 거둔 투수로는 브레이브스 왕조의 스틸 허트 존 스몰츠가 있다. 그러나 장로님은 15승 4세이브 2완투 2.67의 기록을 25차례의 시리즈에서 달성한 것이고 실링은 11승 4완투 2.23의 기록을 12차례의 시리즈에서 달성한 것으로, 필리스를 떠나 얻은 우승반지만 3개나 된다. 그러므로 실링은 당대 최고의 빅게임 피쳐로 꼽히는데 손색이 없다. 물론 클로저 중에 마리아노 리베라라는 괴수가 존재하긴 한다만...[14] 농담이 아니라 04, 07년 레드삭스의 우승을 본 시카고 컵스의 팬들이 커트 실링의 영입을 강력히 주장했을 정도(...). 그런데 진짜로 갔으면 실링이 컵스를 우승시켰을지도 모른다는 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레알 충격과 공포.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정말 그렇게 됐다면 명실공히 '저주 브레이커'가 됐을 것이다.[15] 역대 3000탈삼진 달성자 중 2017년 현재 HoF에 입성하지 못한 선수는 약물 논란이 있는 로저 클레멘스와 본 항목의 커트 실링 뿐이다.[16] 심지어 종합스탯인 WAR조차도 실링은 3261이닝을 던져서 79.8 fWAR/80.7 bWAR, 무시나는 3562⅔이닝을 던져서 82.2 fWAR/82.7 bWAR을 기록했기 때문에 이닝 대비로 계산하면 실링이, 커리어 통산으로 따지면 무시나가 유리하다.[17] 하지만 투수에게 골글이란... 별 의미없다. 안습. 게다가 실링은 자신의 레드삭스 첫 시즌에 우승을 이끌었고 마지막 시즌에 다시 우승을 이끌어서 겨우 4년만 뛰고도 비공식 영구결번 대접을 받고 있지만, 무시나는 01년에 절대반지를 얻기 위해 양키스로 올 때부터 양키스가 우승을 못하더니 자기가 은퇴하자마자 양키스가 우승했다. 빌어먹을(...)[18] 근데 정작 스몰츠는 독실한 기독교인에 정치성향도 공화당 쪽(...)이다. 그쪽 선거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을 정도. 팀킬?[19] 스몰츠가 2002~2004년에 쌓은 승수는 3승, WAR은 7.5 fWAR/ 6.6 bWAR이다. 게다가 탈삼진 또한 좀 낮게 잡아서 연평균 160~170개 정도 잡는다고 가정해도 240개 정도는 증가할 것이다.[20] 통산/연평균 WAR이나 ERA+ 등의 스탯으로 비교해도 비슷하고 세간의 평가 또한 거의 동급의 투수로 분류된다. 실링 vs. 무시나 떡밥이 괜히 흥했던게 아니다(...).[21] 단적으로 2019년 명전투표 기준으로 1년차 37%, 2년차에 42% 남짓의 득표를 한 오마 비즈켈이 명전 입성이 가능할 것인가라고 하면, 겨우겨우 가거나 못 갈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올 것이다.[22] 2004년 조지 W. 부시 vs 존 F. 케리 대결에서 팀 동료들이 민주당을 지지할 때 혼자 공화당의 부시 지지를 선언했다(...) 아무튼 당시 선거운동도 같이 했던 로저 클레멘스의 성향과 이런 점도 일치한다.[23] 2007년 4월, 방송 캐스터로 유명한 게리 쏜(Gary Thorne)이 덕 미라벨리가 비꼬는 농담으로 한 말을 귓등으로 들어서 그걸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방송에서 말했다. 실링은 이후 미라벨리와 대화를 나눠서 그 사건에 대해 파악하게 되었고, 블로그에 게리 쏜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말을 올렸다.# 그래도 레드삭스 팬들은 그것이 진짜든 아니든 실링에 대한 감사와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사실 80년 넘게 묵은 저주를 풀려면 그런 레어템이 필요하긴 했...[24] 2001년 월드시리즈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우승을 차지한 지 얼마 후 실링이 모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월드시리즈 당시의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김병현을 신나게 씹어 잡수셨다는 후문. 그 사건 이후로 김병현은 지금도 실링을 인간 취급 안 한다고 함.[25] 다만 다른 약쟁이들과는 달리 배리 본즈의 HOF 입성에 관해서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긴 했다.[26] 선수라는 주장도 있다[27]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전체 무슬림중에서 ISIL같은 극단주의자들은 소수로 잡히지만, 전체 독일인의 일부였던 나치도 2차대전 일으킨 것처럼 무시할 수 없으니까 5%라는 이야기에 안심하지 말고 경계하라. 라는 의미로 쓴 것이다.[28] 그외의 중계는 일단 유임되었다[29] 2010년 기사에 해당 지원에 대한 불안감, 지원 이유, 해당 게임의 스크린샷과 이름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30] 자금적으로도 로드아일랜드 주정부의 지원이 엄청나게 컸고, 이걸 회수하자 속절없이 무너졌다. 자금회수 결정에서 파산까지 1달도 안 걸렸다. 이건 실적으로 회사가 주정부 돈으로 유지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성공했다는 킹덤 오브 아말러의 IP와 회사자원들도 THQ 노르딕이 인수할 때까지 사가겠다는 곳이 없었다. 더구나 이 해 THQ 노르딕은 ip수집에 몰두해서 해당 ip를 제외하고도 5건의 ip 획득 계약을 맺었다.[31] 팩트를 보자면, 커트의 아내 숀다는 실링이 디백스로 옮겨온 후인 2001년에 피부암을 선고받았으니 이 이야기는 근거가 없다. 사실, 피닉스야말로 굉장히 햇볕이 뜨거운 동네다보니 피부암 환자에게는 헬게이트일 것(...) 그녀의 피부암 투병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01 월드시리즈를 관람하던 숀다의 가슴에서 피부암 수술 흉터가 사진에 찍힌 것이다. 다행히 5차례의 수술은 성공적이었다고. 이후 숀다는 피부암 관련 재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32] 이는 많은 운동선수들의 가족들이 겪는 중대한 사안이다. 몇몇 선수들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나이에도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고 조기 은퇴를 고려하는 것이 괜히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33] 어깨 회전근(Rotator Cuff)이 찢어진 부상으로, 대표적인 예가 브랜든 웹이다. 이 부상은 팔꿈치 인대가 끊어진 것과 달리 회복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투수들에겐 최악의 부상이다. 물론 2011년 현재 바톨로 콜론 등의 선수들이 새로운 치료법인 줄기세포 치료를 받아 재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까진 걸음마 단계일 뿐.[34] 심판이 실링에게 퀘스텍 눈치 보느라 스트라이크를 못 줬다고 얘기하자 열받아서 난입한 것이다.[35] 참고로 이 퀘스텍이라는 시스템은 투수들이 정말 치를 떨 정도로 싫어했다. 톰 글래빈 역시 퀘스텍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적이 있다.[36] 브레이트바트가 어디냐면, 도널드 트럼프 선거운동을 했으며 이후 백악관까지 들어갔었던 스티브 배넌이 소속되었던 곳이다. 말 그대로 후진국으로부터의 불법 이민 반대, 반 이슬람, 반 페미니즘, 반 PC를 외치는 대안우파의 극선봉으로, 스티브 배넌 정도 되면 2018년 1월 시점에서는 트럼프와도 각을 세우고 대립하면서 2020년 대선 출마 드립을 치다가 결국 브레이트바트에서도 쫓겨나고 있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