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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산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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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사이 영 상을 탔던 미네소타 트윈스 시절.
이름 요한 알레산데르 산타나
(Johan Alexander Santana)
생년월일 1979년 3월 13일 ([age(1979-03-13)]세)
국적 베네수엘라
출신지 메리다주, 토바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5년 휴스턴 애스트로스 자유계약
소속팀 미네소타 트윈스 (2000~2007)
뉴욕 메츠 (2008~2013)
2004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사이 영 상
로이 할러데이
(토론토 블루제이스)
요한 산타나
(미네소타 트윈스)
바톨로 콜론
(LA 에인절스)
2006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사이 영 상
바톨로 콜론
(LA 에인절스)
요한 산타나
(미네소타 트윈스)
CC 사바시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 개요2. 어린 시절 ~ 메이저리그 데뷔3. 미네소타 트윈스에서의 성공4. 뉴욕 메츠 시절5. 그 이후6. 이모저모7. 연도별 성적

1. 개요

베네수엘라 출신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선발 투수. 2000년대 중반 미네소타 트윈스의 에이스로써 2004, 2006년 사이영 상을 2차례 수상하였다.[1] 당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이 할러데이와 함께 리그를 양분한 특급 투수였다. 그러나 메츠 이적 이후 부상으로 몰락했다.

전성기에는 그리 크지 않은 체격인 183cm의 좌완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평균구속 92마일 이상을 기록하는 강속구 투수였으며, 리그 최정상급의 서클 체인지업[2]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완전히 뺏었다. 그의 서클 체인지업은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가장 상대하기 싫어하던 구질 중 하나이자, 많은 전문가들이 보이지 않는 손이 공을 당긴다란 표현을 쓸 정도로 헛스윙을 많이 유도하는 공이었다.

2. 어린 시절 ~ 메이저리그 데뷔

원래 포지션은 중견수였으나 투수로 전환하였다. 베네수엘라에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적극적으로 인재를 발굴하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의해 발굴되어 휴스턴의 베네수엘라 아카데미에 들어가 야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결국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고. 지금이야 시대를 풍미한 최정상의 투수였지만, 어릴 적에는 메이저리그의 M자도 몰랐다고 한다. 또, 본래 오른손잡이였지만 동네 야구팀에서 뛰던 아버지를 동경해서 왼손으로 던지는 연습을 해서 좌완투수가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그렇게 해서 마이너리그 시절에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소속이었으나 휴스턴에서는 좌완 강속구 투수지만, 제구가 잘 잡히지 않았던 그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었고, 결국 그를 보호 명단에서 제외했다. 그리하여 1999년 룰5 드래프트에 나오게 되었고, 이 때 플로리다 말린스가 그를 지명했다. 하지만 지명 당일 플로리다와 미네소타 트윈스는 서로 지명한 선수를 맞바꾸기로 결정했고, 그 결과 제러드 캠프와 맞트레이드되어 미네소타로 옮겼다. 그리고 2000년 룰5 드래프트 규정상 메이저리그 엔트리에 들어 마침내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메이저리그 첫 등판을 가졌다. 그러나 데뷔 시즌 성적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86이닝 2승 3패 6.4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3. 미네소타 트윈스에서의 성공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좌완 강속구 투수였던 것에 비해 제구력이 썩 좋지 못하여 불펜으로 돈다거나 하는 등 과소평가를 당했다. 이는 미네소타에서의 초기 시절에도 잘 고쳐지지 않아서 초반 커리어는 불펜으로 출발했다. 그렇다고 불펜으로 안정감이 있냐면 그것도 아니라서 2001년에는 마이너리그에서 주로 던졌는데, 이 때 슬슬 제구가 잡히면서 2002년 108.1이닝을 던져 8승 6패 2.99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03년 슬라이더와 서클체인지업[3]을 익히고 나서 마이너리그에서 두 달 정도 시험을 한 후, 다시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드디어 메이저리그를 평정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 후반기부터 선발로 중용되기 시작하더니 2003년 디비전 시리즈 1선발의 중책을 맡아 뉴욕 양키스상대로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때 터진 포텐셜은 마침내 그에게 2004년과 2006년 두 번의 사이 영 상을 안겨주었다. 2006년에는 트리플 크라운도 달성. 완벽하게 선발로 정착하고, 각성했다고 평가되는 2004년에 전반기 7승 6패를 기록하지만 후반기 13승 무패를 기록하는 엄청난 페이스를 보였다. 사실 2005년 사이영상도 2010년대 기준이었다면 산타나가 거의 확실하게 수상했을 텐데, 투승타타가 남아 있던 시절이라 억울하게 뺏긴 것에 가깝다. 수상자 약쟁이 바톨로 콜론은 21승 8패 ERA 3.48을 기록했지만 산타나는 2점대의 ERA, 155의 ERA+, 콜론보다 80개 이상 많은 238삼진에 이닝도 콜론보다 많이 먹으면서 모든 세부스탯에서 콜론을 앞섰다. 하지만 결과는 콜론에 이어 7승 4패 43세이브 ERA 1.38을 기록한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에게까지 밀려 3위에 그쳤다.

단, 슈퍼에이스치고는 완투가 매우 적은 편에 속했다. 미네소타에서 선발투수로 뛴 기간동안 매년 220이닝 가까이 먹었음에도 완투 횟수는 6회에 불과하다. 이는 론 가든하이어 감독의 엄격한 투구수관리와 연관이 깊은데, 가든하이어는 선발투수의 투구수가 100개를 넘어섰을때 다음 이닝에 계속 마운드에 올리는 일이 극도로 적었으며, 이에 따른 산타나의 2006년 경기당 평균 투구수는 101.5개에 불과했다.(34경기 3451개)[4]

이 때문에 당시 미네소타 중계방송 해설자였던 버트 블라일레븐이 2007년 뉴욕 메츠와의 인터리그 경기 이전에 "산타나는 삼진만 잡으려는 투수라 완봉승같은건 못해."라고 해설중에 깠었다. 정작 본인도 선수 시절 그런 소리 자주 들었다는게 함정... 그런데 블라일레븐은 그렇게 삼진만 잡는 이기적인 피칭으로 커리어 242완투 60완봉을 기록한 끝내주는 완투형 투수였으니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없지는 않다. 그 말을 듣고 산타나가 욱해서 내가 완봉승 거두면 블라일레븐이 삭발해야 한다고 내기를 걸었다. 그 경기에서는 이전의 그답지 않게 투구수를 줄이며 대놓고 맞혀잡는 피칭을 했고 결국 9이닝 1삼진의 완봉승을 거뒀는데, 친절하게 머리를 미는 장면을 중계까지 했다(...)[5].

미네소타에서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몸값이 엄청난 거물로 성장했지만, 미네소타 트윈스는 그를 남길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새 구장 타겟 필드를 건설 중이었던 미네소타 입장에서는 많은 돈을 쓰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트레이드 떡밥이 무수하게 나돌았는데, 뉴욕 양키스보스턴 레드삭스가 서로 달려 들었지만, 미네소타의 강짜[6]에 결국 둘 다 발을 빼고 만다.[7] 당황한 미네소타가 뉴욕 메츠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결국 산타나는 2007시즌을 끝으로 미네소타를 떠나게 되었다. 이 때 받은 메츠의 유망주는 트윈스에선 모두 망했다. 그나마 카를로스 고메즈밀워키 브루어스로 건너가 포텐을 터뜨렸고, 필립 험버가 돌고 돌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하위급 선발투수로 자리를 잡아 2012년에 퍼펙트 게임으로 뜬금포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리고 기아에 와서 망했지[8]

4. 뉴욕 메츠 시절

메츠로 이적한 후, 6년간 1억 3천 5백만 달러라는 고액의 장기 계약을 맺었다. 그리그 계약 첫 해, 그 비싼 몸값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234이닝을 던지면서 16승 7패 2.53의 성적을 내며 사이영상 투표 3위를 차지한 것.[9] 메츠의 새로운 에이스로 위력을 발휘했지만, 문제는 메츠는 어메이징한 팀. 2007년의 대역전패 이후 휘청거리던 메츠는 이 때부터 완전히 몰락의 길로 접어들면서 순식간에 산타나는 고독한 에이스의 지위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이듬 해인 2009년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바로 부상이 찾아온 것.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200이닝 이상 던졌는데, 비록 혹사라고 보기에는 애매했지만 어쨌든 이 때 찾아온 어깨 부상은 산타나의 위력을 뺏어갔다. 물론 그럼에도 역시 산타나는 산타나라고 2009년에도 166이닝을 던지면서 13승 9패 3.13의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빠진 경기가 많다는 것은 에이스의 덕목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미네소타 시절 이후 거의 매년 230이닝 가까이 던져온 전력과, 메츠로의 트레이드 이후에도 무지막지하게 던진 여파인지 꾸준히 구속이 저하되었으며 삼진율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혹사에 의한 데드암 증상이 의심되었다. 또한, 2008년의 메츠 불펜진의 사정상 7이닝 2실점 노디시젼, 8이닝 1실점 노디시전 등 불운도 겪으며 꾸준히 팀의 1선발자리를 지켰지만 결국 탈이 나며 2009시즌 중반에 시즌 아웃. 다만 트윈스 시절 이닝을 많이 먹긴 했지만 그거만으로 혹사라고 보긴 힘든것이, 산타나의 경우 등판일정은 철저하게 지켜졌고, 미네소타의 감독인 가든하이어의 투구수관리가 워낙 철저해서 120개는 물론이고 110개를 넘는것도 1년에 몇번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구속이 떨어지는 것은 나이 문제 못지 않게 트레버 호프만이 그랬던 것 처럼 잦은 체인지업 구사가 패스트볼 구속저하를 불러오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이 존재한다.

부상을 털고 복귀한 2010시즌의 성적은 초반에 한두번 털려서 안좋았지만, 중반에 접어들면서 본연의 위력을 발휘, 평균 7이닝에 가깝게 먹어주면서 이름값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심한 메츠 타선 때문에 승수쌓기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다시 어깨 부상 때문에 9월에 시즌 아웃. 2010시즌 성적은 199이닝 11승 9패 2.98이다. 타선이 좀 더 도와줬다면 더 좋은 승수는 가능했을 성적.

그러나 이 어깨 부상과 수술로 인해 2011시즌에는 시즌 아웃되었다. 마이너에서 2경기 5이닝 정도를 던졌지만 통증 재발로 인해 더 이상의 등판은 없었다.

2012시즌 뉴욕 메츠의 개막전 선발로 지명되었다. 부진했다고 평가받던 09, 10시즌보다도 이닝 소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팬들의 우려를 샀다. 결국 연봉이 문제다 현지시간 6월 1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홈경기에서 볼넷 5개를 기록했지만 삼진 8개를 잡아내며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이는 메츠 50년 역사상 첫 노히터라고(...)

2012년 등부위 염증이 겹쳐 시즌을 조기에 마감하면서 최종 성적은 6승 9패 ERA 4.85을 기록했다. 전반기를 6승 5패로 마감했던 것을 생각하면 후반기의 부진이 매우 처참했고 WHIP은 1.33까지 치솟아 전성기때 0점대를 마크했던 때를 생각하면 더욱 아쉬운 성적이다.

2013년에는 개막을 앞두고 어깨 관절순이 찢어지는 부상으로 시즌아웃 판정을 받았으며, 결국 2013년 11월에 메츠가 2014년 산타나와의 2500만달러의 계약 옵션을 거부함으로서 550만달러를 받고 메츠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빅리그 복귀는 로또를 바라는 단장이 나타나고 재활도 성공하지 않는 한 불가능해보인다. 메츠는 결과적으로 산타나가 온 뒤 팀 성적이 좋아진 것도 아니고, 노히터 한번을 위해 1억불을 넘게 쓴 꼴이 되었다. 어메이징

5. 그 이후

윤석민우발도 히메네스와 계약하며 FA투수를 수집하던 볼티모어는 산타나와 마이너계약을 맺었다. 볼티모어 지역 언론인 MASN에 따르면 산타나가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들어오면 300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최대 505만 달러의 인센티브를 받는다. 최대 805만 달러(약 86억원)에 이르는 계약이다. 복귀시점은 6월이었고 준비도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는데 콜업을 앞두고 아킬레스건 파열로 인해 시즌아웃되었다.

이후 존 헤이먼의 트위터를 통해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마이너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MLB.com에서는 다니엘 노리스, 마르코 에스트라다와 함께 5선발 경쟁에 참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후 방출되었고 자신은 2018년 현재까지도 은퇴를 선언하지는 않았다며 현역 연장의 의지를 가리고 있지만 결국 팀을 찾지 못하는 상황.

빅리그 복귀가 지지부진하던 사이 5년이란 시간이 지나 명예의 전당 후보로 오르는 기묘한 상황을 맞이했고 2018년도에 첫 후보로 등록된 상황서 2.4%의 득표율을 보이며 광탈했다.

6. 이모저모

  •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있다.
  • 최훈이 상당히 좋아했던 투수였다. 심심하면 MLB카툰에서 '전설' '외계인 투수'라며 찬양했을 정도. 최훈은 이 때 미네소타 트윈스이쯤되면 트윈스 덕후의 팬이라고 밝혔는데, 그 미네소타의 주축 선수였던 요한 산타나 또한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7.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MLB)
연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WHIP WAR
2000 MIN 30 2 3 0 0 6.49 102 56 64 86 1.81 0.1
2001 15 1 0 0 0 4.74 50 19 28 43⅔ 1.51 0.3
2002 27 8 6 3 1 2.99 84 50 137 108⅓ 1.23 2.7
2003 45 12 3 5 0 3.07 127 51 169 158⅓ 1.10 4.2
2004 34 20 6 0 0 2.61 156 63 265 228 0.92 8.7
2005 33 16 7 0 0 2.87 180 47 238 231⅔ 0.97 7.2
2006 34 19 6 0 0 2.77 186 51 245 233⅔ 1.00 7.6
2007 33 15 13 0 0 3.33 183 56 235 219 1.07 5.0
연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WHIP WAR
2008 NYM 34 16 7 0 0 2.53 206 72 206 234⅓ 1.15 7.1
2009 25 13 9 0 0 3.13 156 52 146 166⅔ 1.21 3.3
2010 29 11 9 0 0 2.98 179 59 144 199 1.18 4.7
2012 21 6 9 0 0 4.85 117 40 111 117 1.33 0.1
MLB 통산(12시즌) 360 139 78 8 1 3.20 1726 616 1988 2025⅔ 1.13 51.0


[1] 사실 3연속 수상도 충분히 가능한 성적이었으나 당시는 투승타타에 대한 인식이 지워지지 않았고 때문에 2005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은 다른 스탯은 전부 밀렸어도 승수에서 20승을 넘긴 약쟁이바톨로 콜론이 수상하였다.[2] 이는 웹툰 클로저 이상용에서 주인공 이상용이 사용하는 체인지업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3] 당시 서클체인지업을 전수해준 마이너리그 코치는 산타나 이전 체인지업 장인인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스승이기도 하다.[4] 이전 수정자의 경우 삼진을 노리는 피칭때문에 투구수가 많아서라고 썼지만, 실제로 산타나의 이닝당 평균투구수는 이 기간동안 15.0-14.4-14.8개로 오히려 투구수 절약으로 따지면 리그 최상위권의 투수였다.(2006년의 14.8개는 아메리칸 리그 전체 3위에 해당할 정도로 투구수절약이 쩔어줬던 해이다) 삼진을 많이 잡으면서도 저렇게 투구수가 적었던 이유는 볼넷이 상당히 적었기 때문. 볼삼비가 무려 5를 넘었고, 이는 극단적으로 볼넷이 적고 삼진이 많은걸로 유명한 커트 실링 다음가는 수치였다. 당시 미네소타 투수코치의 영향인지 미네소타 선발투수 대부분은 볼삼비율,이닝당 투구수가 쩔어주는 투수들이었다. 카를로스 실바, 브래드 래드키, 프란시스코 리리아노등. 또한 삼진을 많이 잡는 것과 투구수의 상관관계는 지금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항목이다.[5] 유투브에 올라있는 영상에서는 훗날 블라일레븐이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자 HOFer의 머리를 민 것을 영광으로 알라는 드립이 나왔다.[6] 양키스에는 당시만 해도 최고의 유망주였던 조바 체임벌린이나 필 휴즈를 요구했고, 보스턴에도 마찬가지로 보스턴 최고의 유망주였던 존 레스터나 클레이 벅홀츠를 요구했다.[7] 그런데 양 팀 다 실제로 영입할 생각은 없고 서로 상대 팀에 못가게 하거나 필요 이상의 출혈을 강요하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는 말이 돌았었다. 그리고 6년이 더 지난 2014년 현재 이 트레이드를 하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양팀 모두에게 신의 한수가 되었다. 양키스의 경우 조바 체임벌린이나 필 휴즈는 둘다 기대치에 상당히 못미치는 결과만 보여주며 FA로 팀을 떠났지만 적어도 2009년에는 조바는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키며, 휴즈는 불펜에서 준수한 활약으로 우승에 기여했고, 산타나 대신 영입하게 된 대형 투수가 사바시아였으니 결과적으로 더 나은 선택이 된 셈이다. 보스턴의 경우도 레스터와 벅홀츠가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켜주며 2013년 우승의 주역이 되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8] 하술할 산타나의 2012년 노히터까지 겹치며 2012년에는 한 트레이드로 서로 팀을 옮긴 두 투수가 노히터를 달성하는 진기록이 완성되었다.[9] 1위는 팀 린스컴, 2위는 브랜든 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