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 델라한티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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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에드 델라한티 | |||||||||||||||||||||||||||||||||||||||||||||||||||||||||||||||||||||||||||||||||||||||||||
헌액 연도 | 1945년 | ||||||||||||||||||||||||||||||||||||||||||||||||||||||||||||||||||||||||||||||||||||||||||
헌액 방식 | 베테랑 위원회 |
보유 기록 | |
최다 4할 타율 시즌 | 3회[1] |
에드워드 제임스 델라한티 Edward James Delahanty | |
출생 | 1867년 10월 30일 |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 |
사망 | 1903년 7월 2일 (향년 35세) |
국적 | 미국 |
포지션 | 좌익수, 1루수, 2루수 |
투타 | 우투우타 |
데뷔 | 1888년, 필라델피아 퀘이커스 |
소속팀 | 필라델피아 퀘이커스 (1888~1889) 클리블랜드 인팬츠 (1890) 필라델피아 필리스 (1891~1901) 워싱턴 세네터스 (1902~1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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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세기말 내셔널 리그의 야구 선수. 캡 앤슨, 휴 더피[2], 빌리 해밀턴, 제시 버켓[3], 윌리 킬러 등과 더불어 19세기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 중 한명이다. 동시에 로베르토 클레멘테와 함께 사망으로 커리어를 끝낸 선수로도 알려져있다.2. 경력
홈런이 안나오던 시기에 무려 100홈런을 기록한 위대한 선수이며[4], 2500안타를 넘긴 몇 안되는 타자 중 한 명이다[5]. 아울러 명예의 전당에 오른 19세기~20세기 초에 걸쳐 선수 생활을 한 타자들 중 WAR이 가장 높으며[6], 현대에 완성형 타자로 테드 윌리엄스를 꼽는다면, 19세기에는 델라한티를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했던 타자이다. OPS 1을 넘은 적이 6번, 타격왕 2번, 타점왕 3번, 도루왕 1번, 최다안타 1회로 못하는 게 없었던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였으며, 무엇보다 야구 역사상 3명 밖에 없는, 3시즌 4할 타자라는 위대한 기록을 만든 선수이다.[7] 통산 타율은 무려 3할 4푼 6리로, 역대 5위이다. 사실상 사이 영 다음가는 동세대 최고의 선수였으며, 타이 콥보다 한 세대 위의 최고의 타자로 불린다. 1902년 신생 리그인 아메리칸 리그의 워싱턴 세네터스로 이적해, 3할 7푼을 기록한다. 35세 시즌인 1903년에도 40여 경기에 출장하여 3할 3푼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술할 사망사건으로 인하여 그것이 선수 본인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3. 사망
1903년 시즌 중 만취한 채로 기차에서 면도칼을 들고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쫓겨났는데, 그는 근처에 있던 철교로 가서 나이아가라 폭포 아래로 떨어져 실종되었으며 2주 뒤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 선수는 허망하게 커리어를 끝냈다.4. 명예의 전당 헌액
워낙에 전설적인 기록을 남긴 선수이기에 1945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베테랑 위원회를 통하여 헌액되었다.5. 여담
워낙 옛날 선수고, 다음 세대의 타이 콥, 베이브 루스 등 전설적인 타자들 때문에 묻힌 감이 있지만 기묘하게도 온라인 게임 마구마구에서 등장한다. 100여년 전 전설답게 최고 등급인 블랙 등급. 필라델피아 필리스 소속으로 좌익수와 1루수를 볼 수 있는 타자로 나온다. 선수의 본래 커리어 대로라면 2루수도 볼 수 있어야겠지만 그렇게 되면 하이점프캐치와 퀵스로잉을 동시에 달고 나와야 하는데 이건 밸런스 상으로도 문제가 있다. 통산 186개에 빛나는 3루타 수를 반영한듯 잠재력 중에 2루를 돈 이후에도 주루 속도가 크게 감소하지 않는 '미스터 3루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에드 델라한티의 형제인 톰 델라한티, 조 델라한티, 짐 델라한티, 프랭크 델라한티가 모두 빅 리그 경험이 있으며, 이는 빅 리그에 오른 가장 많은 동복 형제 기록이기도 하다. 에드를 제외하면 가장 성공적인 빅 리그 커리어를 쌓은 것은 짐 델라한티로 빅 리그에서 1159안타, OPS+ 122를 기록했다. 다만, 이들이 모두 동시에 빅 리그에서 뛴 적은 없다. 톰은 1800년대에 커리어를 마쳤으며, 막내인 프랭크는 에드가 사망한 1905년부터, 조는 1907년부터 빅 리그 커리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형제가 같은 팀에서 뛴 것조차 에드와 톰이 함께 뛴 1894년의 필라델피아 필리스 뿐으로, 톰은 그 해 고작 한 경기에 나왔다.
[1] 타이 콥, 로저스 혼스비와 동률.[2]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 4할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한 대타자. 이 기록은 후대의 로저스 혼스비와 함께 세계 프로야구에서 단 두명만 가지고 있는 대기록이다.[3]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 중 한명인 사이 영이 의지하던 팀 동료 겸 친구이자, 2년 연속 4할 타자라는 대기록을 가진, 클리블랜드 스파이더스의 위대한 야수였다. 사이 영과 함께 리그 우승을 일궈냈었던 레전드 선수.[4] 당시 100홈런이면 현재로써는 400홈런을 기록한 것과 비슷하다. 10홈런을 못 쳐도 홈런왕이 가능했던 시절이다.[5] 당시로써는 경기 수가 상당히 적었기에 당시의 2500안타를 기록했다면 현재로써는 3300안타를 기록한 것과 같은 수치이며, 델라한티의 안타 비율을 고려했을 때, 행크 애런의 3771안타도 넘었을 수도 있다.[6]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 69.9[7] 놀랍게도 4할 타율을 기록한 3번 중(1894, 1895, 1899) 타격왕은 1899년 고작 1번이었다. 1894년은 상술된 휴 더피가 4할 타자 겸 트리플 크라운(4할 타자와 트리플 크라운을 한 시즌에 기록한 건 야구 역사상 휴 더피와 로저스 혼스비 뿐이다. 따로따로 한 사람조차 타이 콥과 테드 윌리엄스 2명 뿐.)을 기록했고, 1895년은 역시 상술된 제시 버켓이 타격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