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0 10:34:23

로이 할러데이

로이 할러데이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영구결번
12 32 42 4306
로베르토 알로마 로이 할러데이 재키 로빈슨 톰 치크

파일:MLB_logo.pn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halladayhof1.png
로이 할러데이
헌액 연도 2019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85.41% (1회)

파일:Logo_of_AL_Alt.png 2003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
배리 지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로이 할러데이
(토론토 블루제이스)
요한 산타나
(미네소타 트윈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201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팀 린스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로이 할러데이
(필라델피아 필리스)
클레이튼 커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파일:Roy32.jpg
토론토 블루제이스 No.32
해리 리로이 "로이" 할러데이
(Harry Leroy "Roy" Halladay)
생몰년도 1977년 5월 14일 ~ 2017년 11월 7일 (향년 40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png 미국
출신지 콜로라도 주 덴버
포지션 선발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7번 (TOR)
소속 구단 토론토 블루제이스 (1998~2009)
필라델피아 필리스 (2010~2013)
수상 8× All-Star (2002, 2003, 2005, 2006, 2008~2011)
AL Cy Young Award (2003)
NL Cy Young Award (2010)

2× MLB wins leader (2003, 2010)
기록 Pitched a perfect game (2010.5.29)
Pitched a postseason no-hitter (2010.10.6)

1. 개요2. 토론토 블루제이스3. 필라델피아 필리스
3.1. 2010시즌3.2. 2011시즌3.3. 2012시즌3.4. 2013시즌
4. 사망5. 명예의 전당 입성6. 피칭 스타일7. 여담8.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그의 커리어 일대기를 정리한 글. 새로운 글이 나오지 않는다면 레전드스토리로 남을 듯 하다.

메이저리그야구 선수. 별명은 닥(Doc). 서부 개척시대의 유명한 총잡이 닥 할러데이(1852-1887)에서 따왔다고. 국내 한정으로 매덕스에게 사용하던 교수님이라는 별명이 있다. 할교수의 은밀한 매력 실은 의사를 의미하는[1][2] Doc이란 별명이 닥터, 교수를 연상하기도 하기 때문.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선발투수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그의 커리어 성적 대부분은 AL 동부 지구에서 올린 성적이다.[3] 그렇기에 더 대단하다. 2010년에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하여 내셔널리그에서 4시즌 동안 뛰었다. 2011시즌까지의 메이저리그에서의 평가는 모든 GM들의 로망이자 현존 최고의 투수로 통했다. 엄청난 이닝 이터에 다양한 구종 거기에 뛰어난 제구력과 대담하고 영리한 플레이, 거기다 꾸준함까지 현대 야구에서 모든걸 다 갖춘 뛰어난 투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2,13시즌 부상 때문에 성적이 크게 떨어졌고 2013시즌이 끝나자 전격 은퇴하였다.

통산 성적은 16시즌 동안 203승, 105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38, 2749 1/3이닝, 2117탈삼진, K/9 6.93, BB/9 1.94, K/BB 3.57, HR/9 0.77, 67완투, 20완봉을 기록했다.

2. 토론토 블루제이스

어릴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으며 전 포지션을 소화할 정도로 야구에 소질을 보였다. 이것을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눈여겨 보게되고 95년 드래프트 1라운드 17순위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입단한다. 이후 98년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전에 데뷔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선발투수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데뷔전 이후 2번째 선발 등판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전에선 노히트 노런으로 기록하는듯 했으나 9회 솔로홈런을 맞고 결국 아쉽게 완투승으로 첫 승을 따내며 데뷔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이후 점차 평범한 투수로 돌아가는가 싶더니 2000년에는 4승 7패에 자책점이 무려 10.64라는 충격적인 성적을 내며 본인은 물론 팬들과 팀 프런트까지 충격을 받으며 할러데이는 다시 마이너리그로[4][5] 강등되었다.

이 시기의 할러데이는 현재 알고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투수였는데 90마일 중반대의 포심 패스트볼과 너클커브를 오버핸드 딜리버리로 구사했다. 이 시기 할러데이의 롤모델이 바로 마이크 무시나.[6] 그러나 토론토 조직 특성상 패스트볼 구위만 좋으면 삼진율이고 뭐고 일단 승격시키고 보는 투수 관리 때문에 제구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밑천이 드러났다.

이후 너클커브를 버리고 쓰리쿼터 딜리버리를 익혀 마이너를 초토화한 할러데이는 이듬해 시즌 중반부터 다시 콜업되어 비록 5승을 기록했지만 자책점은 3점대 초반까지 끌어내리는 등 예년과 다른 모습을 보였으며 이듬해인 2002년 드디어 포텐셜이 폭발, 19승을 달성하며 종전의 이미지를 불식시킨다. 2003시즌에는 22승 7패의 준수한 성적으로 다승 타이틀과 사이 영 상을 거머쥐는데 성공. 2004~05년 부상으로 8승,12승에 머무르며 부진하지만 부상에서 복귀해 풀시즌을 소화한 2006년부터는 줄곧 15승 이상을 기록하는 완전한 에이스로 거듭났다. 이후 토론토에서의 4년 동안 무려 930.1이닝을 던졌다. 매 시즌 평균 233이닝을 던진 셈.

긴 루징 타임을 가지고 있는 블루제이스의 현실에 좌절한 탓인지, 양키스라면 트레이드 거부권을 풀 수 있다는 등의 강력한 발언들을 통해 강력한 떡밥을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7] 토론토 팬들은 J.P. 리치아디 단장을 내쫓고 할러데이를 지키라면서 트레이드를 극구 반대했으나 결국 2009 시즌 종료 후 오프시즌 중 트레이드를 통해서 내셔널리그 챔피언 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이적하였다. 그리고 리 선생은...

트레이드 세부 사항은 다음과 같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 Get 카일 드레이벡, 브렛 월러스, 트래비스 다노
필라델피아 필리스 : Get 로이 할러데이, 필리페 오몽, 타이슨 길리스, J.C. 라미레즈
시애틀 매리너스 : Get 클리프 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Get 마이클 테일러

3. 필라델피아 필리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7K_4969_Roy_Halladay.jpg

3.1. 2010시즌

내셔널리그로 이적하는 할러데이 마지막에 김형준이 저주를 걸었다

이적한 할러데이는 콜 해멀스와 함께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강력한 원투펀치로 활약하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며, 6경기까지 환상적인 성적으로 출발하며 기대에 부응했다.

5월 29일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원정경기에서는 11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MLB 역사상 20번째 퍼펙트 게임달성했다. 그것도 짜릿한 1-0 스코어로

또한 시즌 전부터 강력한 사이영상 라이벌로 평가받던 팀 린스컴이 예전만 못한 모습을 보이고, 시즌 중반까지 강력한 후보였던 우발도 히메네즈 또한 후반으로 갈수록 공략당하는 가운데 홀로 페이스를 유지하며 사이영상 레이스를 독주해나갔다.

원투펀치의 활약과 함께 시즌 중 필리스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고독한 에이스, 로이 오스왈트까지 트레이드로 품으며 H2O라는 할러데이-오스왈트-해멀스라는 무시무시한 1-2-3 펀치를 갖추며 리그를 독주하였고 할러데이는 시즌 최종전에서 우승기념 완봉승을 거두며 팀의 지구우승을 결정지었다. 그리고 신시내티 레즈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 역사상 두 번째 포스트시즌 노히터달성했다. 그것도 포스트시즌 데뷔전이었는데!!!, 그러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패하며 시즌 마감.

시즌 최종성적은 21승 10패 250.2이닝을 소화하면서 평균자책점 2.44, 219k. 전매특허인 완투는 리그 최다인 무려 9번, 완봉은 4번을 달성하며 그야말로 리그를 초토화시켜버렸고 당연하다는듯이 만장일치 NL 사이영상을 수상했다.김형준의 저주가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 사람은 또 콩라인에... 본인에게는 2003시즌에 이어 생애 2번째 수상이며 역대 5번째 양대리그 수상기록.[8]

오프시즌에 들어선 필라델피아 필리스클리프 리 와 5년간 총액 1억 2천만달러에 계약을 맺고, 일명 판타스틱4라고 불리는 로이 할러데이-클리프 리-로이 오스왈트-콜 해멀스-조 블랜튼으로 이어지는 게임에나 나올 법한 선발진을 구성했는데, 할교수 본인은 리가 자신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며 대인배의 풍모를 보여주었다. 오오 할 교수님...

3.2. 2011시즌

2011년에도 할러데이만 등판하면 불펜노는 날이었다(...)[9]

라인업 카드를 제출하러 나온 할러데이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는 팬들
등판 시의 오베이션

이날 경기에서 할러데이는 친정 방문 기념 완투승을 거뒀다 (...)

판타스틱4의 수장답게 변함없는 활약을 이어갔고 팀 역시 5년 연속 동부지구 우승을 달성했다. 디비전 시리즈 상대는 가을좀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할러데이는 1차전에서 절친이자 역시 상대팀의 에이스인 크리스 카펜터를 상대로 승리했으나 최종5차전에서 재격돌하게 된다. 그리고 본인은 8이닝 1실점으로 분전했음에도 카펜터가 필리스 타선을 완봉으로 그리고 하풍기의 아킬레스건 마저 박살내버리며 1-0 패전(...) 2008년 월드시리즈 우승, 2009년 월드시리즈 준우승, 2010년 NLCS진출, 2011년 지구우승에서 끝. 어째 매년 성적이 한단계씩 내려간다. 그리고 12시즌에는 (...)

최종성적 19승 6패 233.2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2.35, 리그 최다 8완투,[10] 리그 최고 조정ERA 164, 리그 최저인 9이닝당 1.3볼넷과 K/BB 6.29, WAR 리그 1위[11] 등 여러가지로 작년보다 더한 사이영급 퍼포먼스를 펼쳤으나 서부에서 트리플크라운을 먹은 어느 턱 긴 꼬마가 사이영상을 가져가버렸다. 그래도 세이버메트리션들의 많은 지지를 받으면서 커쇼의 만장일치 수상[12]을 저지하긴 했다.

3.3. 2012시즌

스프링 트레이닝에서부터 구속이 저하되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염통을 쫄깃하게 했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최고의 에이스로 돌아오며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유일한 오점이라면 그놈의 타선지원이 부실했다는 것 뿐. 하지만 5월 들어 애틀랜타 원정에서 브라이언 맥캔에게 그란도시즌을 얻어맞고 워싱턴과의 홈경기에서 홈런공장장이 되는 등 부진을 보였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5월 22일까지 경기에서 70⅓이닝을 투구하고 284타자를 상대하며 내셔널리그에서 최다이닝, 최다 타자 상대 투수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5월 말 어깨 부상을 당하여 6~8주 결장이 불가피해졌다. 가뜩이나 팀 사정이 영 좋지 않은 마당에 할러데이는 통산 200승 마일스톤의 연내 달성이 조금 힘들어지게 되었다.

결국 2012년 시즌은 유독 찬스에서 몰려맞는 기현상이 벌어지며[13] 3점대 FIP에 비해 높은 4점대 ERA를 기록, 2005년 이후 사실상의 커리어 로우를 기록했다. 규정이닝도 채우지 못했지만 11승을 거둔 것은 다행이라 하겠다. 200이닝 200K로 6승 거둔 투수는 웁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1승. 1승만 더 했다면 통산 200승을 달성할 수 있었는데 부상자 명단에 갔다 온 것이 영 아쉬울 따름이다. 연간 8~9완투씩 해주던 것도 2012년에는 0개. 또한 할러데이가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된 뒤 체결한 계약에는 2014년에 실행될 수 있는 매우 빡센 베스팅 옵션 조건[14]이 달려있었는데 옵션 실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3.4. 2013시즌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무시무시하게 털렸다. 구속이 저하된 문제가 2013년에도 해결되지 않은 것이 큰 문제인데, 찰리 매뉴얼 감독이나 언론들은 슬슬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급기야 3월 17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는 별로 털리지도 않았는데 1이닝만에 강판되며 다시 팬들이 충공깽에 떨기도 했다. 다행히 단순 복통이라고 하니 큰 걱정은 안해도 되지만 급격히 잔부상이 많아진 할러데이의 몸이라 팬들이 많이 걱정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2013년 4월부터 무섭게 털렸다. 삼진은 그럴듯하게 잡아냈지만 전성기에 비해 구속이 떨어지다보니 구위가 영 좋지 않아 멘탈까지 점점 무너져가며 총체적 난국이 벌어진 것. 또한 강철 체력도 많이 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할교수에서 할시간강사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4월 14일 마이애미 말린스 원정에서 플라시도 폴랑코가 3번을 치는 개막장 라인업(...)[15]을 상대로 보약을 제대로 먹고 기어이 개인통산 200승을 달성했다. 8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뒤 1-1 동점 상황에서 대타 랜스 닉스로 교체되었는데 랜스 닉스가 크고 아름다운 말린스 파크의 세컨 덱에 꽂히는 거대한 솔로홈런을 작렬, 할러데이를 이길 줄 아는 투수로 만들어줬고, 조나단 파펠본 역시 보는 사람 심장 쫄깃하게 만들었지만 어쨌든 세이브를 따내며 닥의 통산 200승을 이끌었다. 이는 필리스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에이스 스티브 칼튼 이래 최초의 필리스 소속 선수의 커리어 200승 달성이다.

하지만 4월 30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원정 경기에서는 클리블랜드의 핵타선에 완전히 털렸다. 1회 초에 카를로스 산타나마크 레이놀즈에게 모두 투런 홈런을 맞고 4점을 내주더니 4회말에 로니 치즌홀에게 또 투런 홈런을 내주며 3.2이닝 동안 피안타 9개에 피홈런 3개를 내주고 강판되었다. 이날 인디언스는 4개의 홈런을 더 뽑아내며 14:2로 완전히 필리스를 압살해버렸다. 그리고 다시 등판한 5월 5일, 또 마이애미 말린스에게 14:2로 거하게 털리고 말았다. 1회초부터 볼질을 하더니 저스틴 루지아노에게 힛 바이 피치를 허용하며 주자를 채우더니 오주나에게 싹쓸이 2루타를 맞았다. 그리고 또 주자를 쌓더니 아데이니 에차바리아에게 싹쓸이 3루타를 허용 1회에만 5점을 실점했다. 2회에는 그래도 꾸역꾸역 막았으나 3회에 루지아노에게 또 힛 바이 피치, 마르셀 오주나는 볼넷으로 내보내고 그렉 돕스에게 안타를 맞으며 만루가 되었다. 그리고 에체베리아에게 만루 홈런을 맞으며 2.1이닝 동안 9실점을 기록하고 강판당했다. 경기가 끝나고나서 오른쪽 어깨에 통증을 호소[16]하여 루이스 요컴 박사에게 정밀 검진을 받았다. # 결국 60일자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36세 이상의 나이에 어깨 부상을 당하고 빅리그로 성공적으로 돌아온 사례가 거의 없는 만큼 이 부상은 앞으로도 커리어를 좀먹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8월 25일 부상에서 복귀해 애리조나전에서 6이닝 4피안타 2볼넷 2탈삼진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시즌 3승. 투심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이 87마일이라 아직 구위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나 관록투로 잘 막아내었다. 본인은 등판할 때마다 좋아지고 있으며 구속은 그 이후의 문제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결국 시즌이 끝날 때 까지 구위와 피칭을 회복하지 못했다. 한 두 경기 가끔 선방하는 경기는 있었지만, 그 외 대부분의 경기를 무지막지하게 털리며 2000 년 부진 이후 할러데이 커리어 최악의 기록을 남겼다. ERA, FIP 모두 6점대로 피칭의 근간이 완전히 무너졌다. 무엇보다 9이닝당 볼넷 비율이 5개 이상으로 올라가며 계속 도망다니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구속이 줄고 패스트볼 구위를 상실함에 따라 적극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할 수 없었던 게 크다.

시즌 후에는 1400만불 퀄리파잉 오퍼마저도 받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17] 결국 등 부상으로 커리어에 큰 시련이 찾아온 할러데이는 계약을 맺을 팀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한국시간으로 12월 10일 은퇴를 선언했다. 친정인 토론토 소속인 상태로 은퇴식을 치르기 위해 블루제이스와 하루 짜리 계약을 맺었다.

4. 사망

2017년 11월 7일 (현지 시간), 플로리다 파스코 카운티 멕시코만 연안에서 할러데이의 개인 비행기가 추락한채 발견되었고, 현지 보안관의 발표 결과 사망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향년 40세.

사망 뉴스

은퇴한지 얼마 안된 시점에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으로 소식을 접한 야구팬들은 너나 할것 없이 대투수의 사망을 슬퍼하고 있다. SNS는 이미 추모물결을 이루고 있고, 로저스 센터시티즌스 뱅크 파크에도 팬들이 하나 둘씩 추모의 꽃다발과 할러데이의 유니폼이 놓고 가며 고인을 기리고 있다.

토론토 구단은 즉각적으로 구단 성명을 발표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토론토 구단은 “프랜차이즈 최고의 스타, 가장 존경 받는 선수, 그리고 한 명의 훌륭한 인물을 잃게 돼 깊은 슬픔에 빠졌다. 할러데이가 우리 구단과 토론토시 그리고 팬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할러데이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필라델피아 구단도 “할러데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끔찍한 소식을 듣고 굉장히 망연자실하다. 필라델피아 가족 모두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을 잃게 됐다. 이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다. 우리의 모든 마음을 담아 할러데이의 아내와 두 아들에게 애도를 전한다”라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롭 맨프레드는 공식 성명을 통해 “할러데이의 사망에 야구계의 모든 이들이 충격을 받았고 깊은 슬픔에 잠겨있다”며 “메이저리그를 대신해, 할러데이의 아내와 두 아들, 그의 친구, 수많은 팬 그리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 구단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토니 클락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 사무총장도 “정말 마음이 아프다. 할러데이는 위대한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고, 우리 세대에 인격적으로도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며 “내가 상대한 투수 가운데 가장 까다로웠다. 마운드에서 절대 굴복하지 않았으며 뛰어난 팀 동료였고, 다른 선수들을 돕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선수”라고 회상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전설 치퍼 존스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그와 함께 경기장에서 뛸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영광이자 기쁨이었다”라고 말했다.
필라델피아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체이스 어틀리는 “그와 처음으로 만난 스프링캠프 첫날, 오전 5시 45분 무렵, 할러데이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는 상태였다. 비가 오는지 묻자 할러데이는 ‘방금 운동을 끝마쳤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그가 정말 훌륭한 선수라는 것을 느꼈다. 최고가 무엇인지를 볼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맙다.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 할 것”이라고 적었다.
콜 해멀스는 “할러데이는 가장 훌륭한 투수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내겐 영감을 준 인물이자 위대한 멘토 그리고 팀 동료였다. 무엇보다도 우린 친구였다. 경기를 준비하는 그의 자세와 태도는 영원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며 고인을 기렸다.#

LA 에인절스 간판 타자 마이크 트라웃은 “어린 시절 존경했던[18] 투수 할러데이를 떠나 보냈다. 그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슬퍼했다.#

할러데이의 사망 소식을 접한 유가족도 이틀 뒤, 공식 성명을 통해 "할러데이는 프로 선수로 생활하면서 업적을 쌓아왔고, 우리는 이를 평생 소중히 기억할 것이다. 그는 경기장에서만 자신의 역할을 다 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과 지역 사회를 돌보는데도 최선을 다했다. 가족의 기둥을 잃어 슬프다. 하지만 그를 영원히 추모하고 기억하는 한편, 그가 보여줬던 무조건적인 사랑과 겸손함, 희생했던 부분 역시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겠다. 슬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존중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애도와 감사의 뜻을 전했다.#

추락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이 유투브에 올라왔는데, 할러데이가 탄 비행기는 수륙양용이다. 그런데 사고 당시 비행기가 100피트 상공에서 수면 5피트까지 강하했다가 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하자 이를 심상치 않게 여겨 촬영했고, 머지 않아 비행기가 바다로 추락하자 목격자들은 황급히 구조하러 갔으나 이미 할러데이는 사망한 상태였다고 한다.엠팍글 해당 유투브 링크

사고로부터 약 한달 전 아내와 찍은 영상은 더더욱 그의 사망을 안타깝게 만들었는데, 본래 아내는 할러데이가 경비행기를 구입하는 것을 매우 반대했으나 결국 남편의 열망을 이기지 못하고 허락하는 내용이다. 할러데이는 아버지가 상업용 항공기 조종사라 어릴 때부터 비행기와 친해 비행기 조종사를 노렸지만 야구를 배우면서 꿈과 멀어졌다. 은퇴 후에는 바로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따내는 것을 목표로 하여 소망을 이루었는데 그게 비극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으니 씁쓸한 노릇이다.

토론토 구단은 2018시즌 개막전 할러데이의 추모행사를 거행하기로 했으며# 32번을 영구결번 하기로 하였다.#

이후 밝혀진 바로는 부검 결과 모로핀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처방용으로 모로핀을 많이 복용하는데 이 약 자체가 수면 성분이 들어있어 아무래도 그 약을 먹고 비행기를 몰던 도중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19]

5. 명예의 전당 입성

클래식 스탯으로 봤을 때는 겨우 203승에 불과하고, 2749.1이닝에 그쳤지만, 그가 은퇴할 시점에서 fWAR 순위에서는 올타임 34위를 마크했다. 이는 무지막지한 완투 기록 때문에 가능했던 것. [20] 참고로 2016년 현재 할러데이보다 더 높은 통산 WAR를 기록한 투수들 중 명예의 전당을 못 간 선수들은 겨우 6명[21]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성적으로 HoF에 못 들어간 사례는 사실상 짐 맥코믹과 릭 러셀 두명 뿐이며 이 둘 마저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에는 부족하다고 할 이유가 존재한다.[22] 나머지 4명의 선수는 아직 투표가 진행중이며, 그 중에서 마이크 무시나는 사실상 1~2년 내에 헌액될 것으로 보이고 커트 실링은 은퇴 후의 행보 때문에 평가 다 깎아먹은 케이스이다. 그리고 로저 클레멘스케빈 브라운은 약물 이슈에 걸려 있다. 블랙 잉크, HOF 모니터는 이미 평균을 넘었고, 그레이 잉크도 평균치에 수렴한다. 게다가 숫자를 떠나서 할러데이는 10년 동안 최고의 자리에서 리그를 그야말로 압도하였던 투수였다. 외로웠던 토론토 시절을 차치하더라도, 필라델피아의 판타스틱4 중에서도 에이스는 누가 뭐래도 할러데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현대 야구에서 희소 가치를 지니게 된 완투라는 무기도 있다. 거기에 몇 안되는 퍼펙트 게임 달성 투수이기도 하다.

2012년 들어서 폼이 많이 떨어지면서 누적을 생각보다 더 쌓지 못하고 은퇴를 선언했지만, 할러데이는 사이 영 상을 두번, 그것도 양대리그에서 한 번씩 수상했다는 이점이 있고, 전성기를 AL 동부에서 보내면서 토론토 시절통산 ERA+가 133[23]을 기록하고 어마어마한 완투 적립으로 크나큰 임팩트를 남겼다. 그리고 통산 67.6 fWAR에 달하는 세이버 스탯으로 인해 첫 턴은 아니어도 명전은 어떻게라도 입성할 수 있다는게 중론이다. 할러데이가 은퇴 선언을 하고 대다수의 야구 기자들도 그가 명전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은퇴 시점에서 할러데이의 통산 성적은 팀 허드슨, CC 사바시아, 드와이트 구든과 유사도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보인다. 다만 허드슨보다는 블랙 잉크가 압도적으로 높고, 구든에 비해 할러데이는 200승을 채웠다는 점에서 할러데이가 더 낫고, 사바시아는 HoF 헌액 가능성이 매우 높은 투수로 분류된다[24].

만약 자기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경우 모자는 블루제이스를 고르겠다고 일찌감치 공언해 놓았다. 관련 기사 실제로 입성할 시 로베르토 알로마에 이은 두 번째 블루제이스 명예의 전당 멤버가 되며, 이와 더불어 그의 등번호 32번도 영구결번이 될 전망이다. 2017년에 할러데이가 유예기간을 채우기 이전에 사망하였으나 예상과는 달리 유예기간이 면제되는 일은 따로 없이 2019년 투표부터 후보 자격을 얻으며, 입성 시 소속 구단은 베테랑 위원회의 지정으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25]

2019년, 첫 득표 기회를 잡았고 85.4%의 득표율로 마리아노 리베라, 에드가 마르티네즈, 마이크 무시나와 함께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동판에 새겨질 모자를 고르는 데 있어 로이가 이미 고인이기에 대신 유족이 선택권을 받았는데 눈치 없는 아내가 두 도시를 모두 사랑한다며 무소속으로 선택하면서 빈모자를 쓰게 생겼다. 당연히 이미 로이가 발언한 게 있기에 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편.[26] 다만 동판에 새겨질 로고를 결정하는 최종 권한을 가진 주체는 엄연히 베테랑 위원회이기 때문에, 결국 베테랑 위원회가 블루제이스 로고로 지정할 가능성이 높다.[27][28] 할러데이는 커리어도 블루제이스에서 보낸 커리어가 가장 길었고, 블루제이스 구단 및 토론토 팬들과의 관계도 아주 우호적이었으며, 결정적으로 로이 할러데이 본인이 자신의 명전 동판에 새겨질 모자는 당연히 블루제이스라고 공언했던 기록까지 뻔히 남아있어서 베테랑 위원회가 유가족의 의사를 무시하고 블루제이스 로고를 새겨도 명분에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러데이의 명예의 전당 동판에는 소속팀 모자가 없었다. 위원회 측에서 유가족의 의사를 존중한 듯 싶다. 본인의 의사가 생전에 확고했던 것 때문에 실망감이 큰 분위기이지만, 강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도 없다.

6. 피칭 스타일

투수가 던진 구종이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할러데이의 구종 구사율을 살펴보면 복잡하기 짝이 없다. 시대의 흐름, 그리고 자신의 몸 상태에 맞춰 끊임없이 새 구종을 배우는가 하면 과감히 포기하기도 하면서 조금씩, 하지만 끊임없이 피칭 스타일을 바꿔왔기 때문.

데뷔 초 90마일 중반대의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과 커브를 주 무기로 등장했던 할러데이는 2000년대 초반까지 다양한 구종을 추가로 익히게 되는데, 저 두 구종에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익히며 네 가지의 구종을 활용했다. 하지만 슬라이더는 그다지 그에게 맞지 않았던 구종인지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스플릿 핑거 체인지업은 제법 강력했지만 많이 의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때 스플릿 핑거 체인지업이 잘못 들어간 것인지, 의도한 변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스플리터로 분류되는 구종도 간간히 나왔다. 물론 스플리터와 스플릿 핑거 체인지업이 구분이 힘든 구종이고 아예 스플리터를 체인지업으로 보는 사이트도 많을 만큼 구분 자체가 애매하긴 하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구종을 던지긴 했지만, 역시 결정구는 포심과 커브였다.

그리고 2003년부터 그에게 맞지 않는 구종인 슬라이더를 버리고 커터를 익히게 되는데, 이게 굉장한 위력을 발휘한다. 제대로 익히기까지 시간도 좀 오래 걸린 편이고 약간 부진한 기간도 있었고 본인에게 맞지 않는 그립을 사용해 던지는 바람에 팔꿈치에 무리도 왔다. 하지만 2007년 이후 그에게 맞는 그립을 익히며 위력은 더더욱 배가.[29] 결국 커터를 슬라이더의 완벽한 대체재로 완성한 이후에는 슬라이더를 버린다. 할러데이의 커터는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위력을 가진 커터였는데, 이후 커터 대 유행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결국 제대로 커터를 던지게 된 이후 할러데이의 구사 구종은 네 가지였는데, 포심 패스트볼과 커터, 커브, 체인지업이었다. 이 중 체인지업의 비율은 총 투구수의 5% 미만으로 크게 의지하지 않는 구종이었고, 할러데이는 포심, 커터, 커브의 강력한 구위를 앞세워 리그 최고의 에이스가 된다.

200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할러데이는 슬슬 그의 포심에 한계를 느끼는데, 구속이 느려졌다기보다는 신성 파이어볼러들이 너무나 많이 등장했고 타자들이 그에 익숙해지며 할러데이의 포심도 상대적으로 공략하기 쉬운 구종이 되어갔다. 이 과정에서 할러데이는 새로운 무기로 투심 패스트볼을 익혔고 이는 적중해 다시 한 번 그는 에이스로서 살아남는데에 성공한다. 투심을 익히는 과정에서 싱커도 사용해 봤지만 싱커는 한 해 정도만 던지고 부상 위험 때문인지 많이 던지지 않았다.

할러데이의 마지막 불꽃이라 불리우는 2010년과 2011년, 패스트볼 레퍼토리가 전체적으로 구속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할러데이는 다시 한 번 변화를 꾀하는데 체인지업 비중을 확 끌어올린 것. 그 전까지 커리어 내내 5% 정도에 불과했던 체인지업 비율은 2010년 11% 로 상승했고 2011년에는 15%까지 상승했다. 2011년의 체인지업은 낙차가 커져서인지 체인지업이 아닌 스플리터로 기록되기도 한다. 아니면 힘 빠져서 낙차 커진 거거나

다만 2012년부터는 부진에 빠졌다. 아무래도 구속이 떨어진 게 부진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커리어 내내 92. 5마일 정도의 속구 구속을 유지했던 할러데이는 필요하면 언제라도 타자를 윽박지를 수 있는 투수였다. 개별 구속마저 기록이 시작된 2007년 이후 노쇠화를 본격적으로 겪는 2012년 이전까지 할러데이의 최고 구속은 2007년 101마일, 2008년 97마일, 2009년 96마일, 2010년 95마일, 2011년 95 마일이었다. 한 마디로 할러데이는 강속구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투수였다. 정교한 제구력과 파워를 동시에 겸비했기에 리그를 지배할 수 있는 에이스가 될 수 있었던 투수가 할러데이다.

하지만 2010년 92.6마일의 속구 평균 구속은 2011년 92마일, 2012년 90.6마일, 2013년 88.8마일까지 떨어졌다. 최고 구속의 하락도 커서 2012년과 2013년은 최고 구속이 기껏해야 92마일에 머무는 상황. 지금껏 할러데이는 다양한 구종을 배워가며 매번 끊임없이 변화하고 살아남았지만 그 모든 것은 속구의 스터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였다. 실제로 할러데이가 구사하는 구종 중 포심을 제외하면 변화구는 커브 뿐이고 나머지는 투심, 커터같은 변형 패스트볼, 속도 변화에 중점을 둔 오프 스피드 피치인 체인지업이다. 결국 할러데이의 피칭의 근간인 다양한 패스트볼 레퍼토리가 구속 저하로 인해 뿌리부터 흔들리며 부진이 찾아온 것.

하지만 이게 이상한 부진은 아니다. 애초에 할러데이는 부진이 시작된 2012년이 35세 시즌은 노장 선수였다. 몇몇 예외적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32~3세를 기점으로 하락세가 찾아온다. 할러데이에게 찾아온 하락세도 이상할 것이 없으며, 특히 완투형 에이스였던 할러데이의 특성상 누적된 피로가 한번에 터져나왔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너무나 급작스럽게 무너지는 모습에 다들 당황했을 뿐이다.

7. 여담

  • 통산 67완투를 기록했고, 은퇴할 시점까지 현역 선수중엔 독보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이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기록이냐면... 처음으로 풀시즌을 소화한 2002년부터 마지막으로 사이영 경쟁을 했던 2011년까지 10년동안 63완투을 기록했다. 같은 10년동안 63경기 이상 선발 완투를 성공한 은 할러데이를 잘 써먹은 토론토와 필라델피아를 제외하면 단 9개 팀이며, 이 두 팀 역시 할러데이의 기여분을 제외하면 할러데이의 10년치보다 적다. 다시 말해, 메이저리그 21개팀이 각각 10년 동안 기록한 선발 완투가 할러데이 혼자 완투한 것보다 적었다. 대충 계산해보면 할러데이의 이 시기 매년 6~7경기는 불펜이 노는 날이었던 셈인데, 사와무라상 조건 중 시즌 10완투를 걸어놓을 정도로 완투를 강조하는 일본프로야구의 6선발 시스템에서도 이만한 기록은 흔치 않다.(당연하지만 일본야구와 달리 메이저리그는 5선발 체제가 일반적이다) 2000년도부터 할러데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17년까지의 기준으로도 한 투수가 그만큼 완투를 한 예는 없다. 심지어 할러데이에 이은 완투경기 수 2위 기록자인 리반 에르난데스조차 39완투에 그쳤으며, 현역 중엔 클레이튼 커쇼, 펠릭스 에르난데스, 저스틴 벌랜더 등의 기라성 같은 에이스들마저 30완투도 못 찍었을 정도. 괜히 모든 GM의 로망이 아니었다.
  • 모르몬교의 신자로 과묵하면서도 따뜻한 인품의 소유자이다. 토론토 시절 홈경기(로저스 센터)에서의 선발 경기가 있을 때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과 그 가족들을 특별히 초청하여 관람하게 한 적이 있으며, 매년 10만 달러 이상 팀내 복지재단에 기부를 하는 등 봉사에 힘을 쓴다.
  • 필라델피아 홈구장에서 할러데이가 달성한 퍼펙트 게임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었다. 그 전날 할러데이는 사비로 수억 이상을 사용해 유럽 비싼 시계 (개당 백만원 이상의 중저가고가시계)를 대량으로 주문해 코치들, 트레이너들, 그리고 동료 팀들에게 하나씩 선물을 했다.[30] 시계 상자에 각각에 이름과 함께 이런 글을 남겼는데 "We did it together"(우리 모두가 함께 해낸 것입니다.)[31] 그의 인성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미담이다.
  • 2K 스포츠의 야구게임인 MLB 2K11의 커버보이가 되었다. MLB 11: The Show는 2년 연속으로 조 마우어.
  •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로도 활동한적 있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만약 당신이 현재 메이져리그에서 최고 투수1명, 타자1명 뽑는다면 누굴 뽑겠는가' 라는 질문에 투수는 할러데이, 타자는 체이스 어틀리를 뽑은 바 있다.[32]
  • 2011년 말에는 절친 B.J. 라이언, 크리스 카펜터와 함께 브라질 아마존으로 낚시 여행을 갔다가 아나콘다로부터 꼬마를 구출했다고 한다. 오오 Doc... 팬들은 '퍼펙트게임이나 양대리그 사이영보다 훨씬 값진 일'이라 칭송해 마지 않았다. 강력한 싱킹 패스트볼로 괴수의 눈깔을 명중시켰다는 카더라도 있다
  • 2015년 1월 11일 트위터에 이런 재밌는 사진을 올렸다. 네이버기사
  • 2015년 3월 23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롸동자를 디스했다.# 교수님이 문법을 틀렸다
  • 그의 사후 드러나지 않았던 미담들이 공개되 팬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 저 기사에 있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는 #여기로 가면 된다.
  • 유가족으로 아내와 두 아들이 있는데, 첫째 브레이든 할러데이는 2019 드래프트로 나왔고 그의 친정팀인 토론토 블루제이스32라운드에 지명했다. 브레이든은 드래프트 당시 이미 펜 주립대학교에 진학할 예정이라 입단하지 않을 예정이지만 그를 로이의 등번호인 32라운드에 지명하며 다시 한번 로이를 회상했다.

8.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MLB)
연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WHIP WAR 연봉
1998TOR 2 1 0 0 1.93 9 2 13 14.0 0.78 0.4
1999 22 8 7 2 3.92 156 83 82 149.1 1.57 2.6 20만 달러
2000 19 4 7 0 10.64 107 46 44 67.2 2.20 -2.8 38만 달러
2001 17 5 3 0 3.16 97 26 96 105.1 1.15 3.0
2002 34 19 7 0 2.93 223 69 168 239.1 1.19 7.4 258만 달러
2003 36 22 7 0 3.25 253 41 204 266.0 1.07 8.1 382만 5천 달러
2004 21 8 8 0 4.20 140 40 95 133.0 1.34 2.4 600만 달러
2005 19 12 4 0 2.41 118 25 108 141.2 0.96 5.5 1050만 달러
2006 32 16 5 0 3.19 208 39 132 220.0 1.10 5.2 1275만 달러
2007 31 16 7 0 3.71 232 51 139 225.1 1.24 3.5 1275만 달러
2008 34 20 11 0 2.78 220 51 206 246.0 1.05 6.2 1000만 달러
2009 32 17 10 0 2.79 234 40 208 239.0 1.12 6.9 1425만 달러
연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WHIP WAR 연봉
2010PHI 33 21 10 0 2.44 231 36 219 250.2 1.04 8.3 1575만 달러
2011 32 19 6 0 2.35 208 39 220 233.2 1.04 8.9 2000만 달러
2012 25 11 8 0 4.49 155 41 132 156.1 1.22 0.9 2000만 달러
2013 13 4 5 0 6.82 55 46 51 62.0 1.46 -0.9 2000만 달러
통산 16시즌 416 203 105 2 3.38 2646 673 2117 2749.1 1.17 65.6 1억 4898만 5천달러


[1] 닥 할러데이의 닥 자체가 그가 치과의사여서 붙은 별명이기 때문. 미국 언론은 할러데이가 호투할 때마다 수술 드립은 자주 치지만 강의 드립은 안 친다.[2] 미군이 의무병을 부르는 별칭도 Doc이다.[3]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는 강팀들의 격전지로 유명하다.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가 같은 지구에 있고 볼티모어, 탬파베이도 만만한 팀이 아니다.[4] 한방에 하이 싱글A로 추락했다. 이는 당시 코치진 중 하나인 마크 코너의 강경책으로, 로케이션의 재설정을 위한 조치. 당시 상태가 끔찍히도 심각했음을 의미한다.[5] 메이저리그 역사상 40이닝 이상을 던진 선발투수 중 가장 최악의 방어율이었으나 2011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좌완 브라이언 매터스가 10.69를 기록하는 바람에 타이틀(...)을 넘겨주었다.[6] 실제로 할러데이와 시믈러리티 점수가 가장 높은 투수는 무시나다. 그 뒤로 팀 허드슨앤디 페티트.[7] 이는 팀메이트였던 A.J. 버넷이 양키스 이적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차지하는 것을 보며 더욱 극대화된 심경으로 보인다.[8] 해당되는 5명은 게일로드 페리(인디언스-파드리스), 랜디 존슨(매리너스-디백스), 페드로 마르티네스(엑스포스-레드삭스), 로저 클레멘스(레드삭스-블루제이스-애스트로스), 그리고 할러데이(블루제이스-필리스)[9] 오클랜드 어슬래틱스 전에서는 8회말 2사 3루에 할러데이 타석이었는데도 대타가 없이 할러데이가 나서 내야땅볼로 물러났지만 9회를 가볍게 정리하며 완투승을 거뒀다. 충분히 클로저가 등판할 수 있었지만 라이언 매드슨은 몸을 풀기는커녕 하품이나 쩍쩍 해댔다(...)[10] 아메리칸리그에서는 제임스 실즈가 11완투를 했다.[11] 베이스볼 레퍼런스 계산 결과 7.4승(커쇼 7.0승), 팬그래프 계산 결과 8.2승(커쇼 6.8승)[12] AL의 저스틴 벌랜더는 만장일치로 수상했다.[13] 69.1%라는 매우 낮은 잔루율을 기록했고, 또한 2012년에는 18개의 피홈런 중에서도 요시 그랜드슬램이 2개, 쓰리런이 2개, 투런이 3개나 되었다. 2009-2011년 3년간 그랜드슬램은커녕 쓰리런도 맞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찬스에 유독 약해진, 혹은 불운한 시즌을 보냈다 할 수 있다.[14] 2012년 225이닝 투구, 2012-2013 2년간 415이닝 투구, 2013년 종료시 부상자명단에 오르지 않기.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15]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어깨 부상으로 결장.[16] 일부 기사에서는 말린스전에서 통증을 숨기고 등판했다는 말도 있다.[17] 재정이 좋은 구단이 무차별적으로 양질의 FA 선수를 쓸어가는 것을 막고 전력을 평준화 하기 위한 제도로, A 팀에서 FA 가 되는 선수에게 연봉 상위 125명 선수의 평균 연봉으로 1년 계약을 제시한다. 만약 선수가 이를 수락하면 그냥 A 팀에서 그 연봉을 받고 1년을 더 뛰는 것이며, 거절하고 B 라는 구단과 FA 계약을 체결할 경우 B 구단은 A 구단에게 상위 라운드 드래프트 픽을 넘겨주게 된다. 퀄리파잉 오퍼를 거절한 선수를 영입하려 할 때에는 뛰어난 유망주 한 명을 고를 기회를 버릴 만한 가치가 있는 지 고민해야 하며, 퀄리파잉 오퍼를 제시하는 구단 역시 그 선수가 1년 1200 ~ 1400만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선수인지 판단해야 한다. 할러데이가 이 퀄리파잉 오퍼를 못 받았다는 이야기는 할러데이의 가치가 1 년 1400만불 계약도 아까울 정도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다.[18] 어릴 때부터 열렬한 필라델피아 필리스 팬이다. 자기가 에인절스와 계약한 후에 할러데이의 필리스 입단 소식을 듣고 '우리 팀'에 할러데이가 왔다며 매우 기뻐했을 정도.[19] 은퇴 이후에도 선수 시절에 입은 부상 치료 때문에 꾸준히 처방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20] 투수의 WAR은 소화 이닝이 많을수록 쌓는데 유리하다.[21] 은퇴시점 기준으로는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 존 스몰츠 이렇게 5명이 더 있었으며, 위 선수들 모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안 갈 수가 없는 선수들이다[22] 맥코믹은 19세기에 뛴 선수였고 러셀은 투고타저 시절의 투수라 명전에 가기에는 무리였던 선수.[23] 감이 오지 않는다면, 2013년 LA 다저스에서 ERA 3.00을 찍으며 훌륭한 데뷔시즌을 보낸 류현진의 ERA+가 119이다.[24] 다만 누적 수치가 사바시아가 압도적으로 쌓았다. 사바시아의 명전 입서을 대부분 확정적으로 보는 이유가 현대에는 나오기 어려운 누적 수치 때문. 만일 할러데이가 사바시아 만큼 누적을 기록했다면, 이 단락에서는 입성 여부가 아니라, 첫턴여부 혹은 입성 득표율을 논하고 있을 것이다.[25] 당사자인 할러데이와 상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형식상으로는 베테랑 위원회가 지정하는 형식이 되겠으나, 사실 그의 동판에는 블루제이스 로고가 새겨지는 것이 확정되었다 봐도 무방하다. 이미 생전에 블루제이스 로고를 선택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으며 커리어 전체로 봐도 친정팀이자 가장 오래 뛰었던 팀이 블루제이스이기 때문.[26] 마이크 무시나 또한 자신의 모자를 무소속으로 선택했는데, 무시나는 할러데이와 달리 오리올스와 양키스에서의 커리어에 큰 차이가 없어서 충분히 납득할만한 결정이다.[27] 이미 베테랑 위원회가 불과 2년밖에 안 뛴 팀의 모자를 쓰려던 선수를 저지하고 바꾼 사례가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베테랑 위원회가 로고를 지정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구단에서의 누적 성적"이고 그 다음이 선수 본인의 의사이다.[28] 예를 들어 랜디 존슨의 경우, 단순히 선수 본인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모자를 쓰고 싶다고 해서 애리조나 모자를 쓰고 간 것이 아니라, 애리조나 시절 커리어도 매우 훌륭했기 때문에 베테랑 위원회가 선수 본인의 의사를 존중한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가장 오래 뛰었고 누적 성적이 가장 높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모자로 새겨지는 것이 맞다. 실제로 랜디 존슨의 명예의 전당 동판에 새겨진 모자 로고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지만, 선수 소개에서 Primary Team은 시애틀 매리너스로 기록되어 있다.[29] 커터는 부상 이후 봉인할 수 밖에 없었는데, 2007년도에 백업 포수 살 파사노에게 새로운 그립을 전수 받은 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리아노 리베라에게 전수받지 않았냐는 말도 있지만, 만나서는 그냥 얘기만 나눴다고.[30]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면 투수가 동료들에게 유럽산 명품 시계를 선물하는 것이 전통이다.[31] 실제로 MLB 공식기록에서 퍼펙트 게임과 노히터는 투수 개인기록뿐 아니라 팀 기록으로도 남는다.[32] 한국시각 2008년 5월15일, 야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