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0 19:26:16

R.A. 디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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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영 상을 수상하며 주가를 높였던 뉴욕 메츠의 에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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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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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의 미를 거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시절
이름 R.A. 디키 (Robert Allen Dickey)
생년월일 1974년 10월 29일([age(1974-10-29)]세)
국적 미국
종교 개신교
출신지 테네시내슈빌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6년 드래프트 1라운드 18번
소속팀 텍사스 레인저스 (2001~2006)
시애틀 매리너스 (2008)
미네소타 트윈스 (2009)
뉴욕 메츠 (2010~2012)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3~2016)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17)
2012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클레이튼 커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R.A. 디키
(뉴욕 메츠)
클레이튼 커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 개요2. 선수 경력
2.1. 프로지명까지의 우여곡절
2.1.1. 너클볼러로 변신하다2.1.2. 너클볼러가 된 과정2.1.3. 너클볼러가 된 후
2.2. 뉴욕 메츠 시절2.3.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절2.4. 평가2.5. 역대 최악의 전담포수와 함께2.6.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시절
3. 수상 경력4. 피칭 스타일5. 기타6. 참고 링크

1. 개요


이제 R.A. 디키가 당분간 너클볼의 명맥을 이어갈 겁니다.
팀 웨이크필드, 본인의 은퇴 기자회견에서 한 말

미국의 야구 선수이자 前 텍사스 레인저스, 시애틀 매리너스, 미네소타 트윈스, 뉴욕 메츠, 토론토 블루제이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의 우완 너클볼 투수.

2. 선수 경력

2.1. 프로지명까지의 우여곡절

테네시 대학에 입학해 활약하던 시절에는 메이저리그가 주목하는 강속구 유망주로 손꼽혔고 1996 애틀랜타 올림픽미국 국가대표로도 선발되어 활약해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1] 이 때 함께 선발된 멤버가 크리스 벤슨, 브래든 루퍼, 빌리 코치 등 한 때 빅리그에서 이름을 날렸던 투수들이다.

이러한 명성에 힘입어 텍사스 레인저스가 1라운드에서 디키를 지명하고 당시로선 거금인 81만 달러의 계약금까지 안겨주며 젊은 투수의 앞길엔 밝은 미래가 비치는 듯 했다. 공식 계약을 앞두고 있었던 메디컬 테스트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구단측에서 Baseball America 잡지 표지에 나온 디키의 팔모습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실시한 마지막 단계 검사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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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사진, 왼쪽에서 2번째.

디키의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아예 없었던 것이다.

인대는 뼈와 뼈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말해 그때까지 위아래 팔뼈를 연결하는 인대가 없는 상태에서 강속구를 펑펑 뿌려댔다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팔꿈치 인대가 없이는 피칭은 고사하고 통증이 극심해 문 손잡이도 돌릴수 없다고 하니 흠좀무.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레인저스 프런트는 약속했던 81만 달러 대신 7만 5천달러로 계약금을 후려쳤다. 디키도 인대가 없다는 사실이 뉴스를 탄 이상 다른 팀에도 입단할 수 없을 거란 불안감에 어쩔 수 없이 계약을 받아들였다. 이때 디키는 대학교 2학년 때 들어둔 팔꿈치 보험이 있었고, 만약 야구를 완전히 접는다면 백만달러를 수령할 수 있었지만, 결국 계약을 선택했다. 디키는 그 때 "복권에 당첨됐다가 잃어버린 심정"이었다고 한다. 이후 어깨부상까지 당하면서 강점이었던 강속구도 80마일 중반대의 똥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5년 동안의 마이너 생활 끝에 결국 2001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2003년과 04년에는 부상으로 먹튀로 전락한 박찬호의 빈 자리(…)를 메우는 땜빵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가면서 활약했다.

2.1.1. 너클볼러로 변신하다

그가 너클볼러로 변신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썰이 있으나, 가장 공신력 있는 것은 그의 자서전에서 본인이 직접 밝힌 것일 것이므로 해당 내용을 소개한다.

2.1.2. 너클볼러가 된 과정

어린 시절, 디키의 외할아버지가 너클볼 투수였다는 사실을 듣고, 본인도 그 이야기를 듣고는 시합에서 한두번 던졌다고 한다. 물론 본격적인 것은 아니고 취미 수준. 그러니 사실 처음으로 메이저에 콜업된 2001년까지 너클볼을 어느정도 던질줄은 아는 정도였으나 본격적인 너클볼 피쳐는 아니고 흔히 보는 조금 던질줄 알지만 주 무기는 아닌 그런 상태였던 것.

이를 뒷받침 해주는 것이 다큐멘터리 영화 '너클볼'에서 디키가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어린 친구들이 너클볼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홉 살 때 테네시주 네슈빌 공터에서 배웠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가 처음 데뷔했을때는 너클볼러가 아니라 원래 140km 후반에서 150km 초반의 빠른 공과 싱커를 던지는 정통파 투수였으나 2005년 4월에 에인절스와 시합에서 구원투수로 나갔다가 오른쪽 어깨에 통증을 느끼면서 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되는데 이 부상을 계기로 갑자기 구속이 떨어져 140km에도 못미치게 되면서 계속 메이저리그에 남아 있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연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즉 이 부상을 계기로 정통파 투수로써는 자격 미달의 상태가 되고 만 것이다.

이를 본 벅 쇼월터 감독, 오렐 허샤이저 투수코치, 마크 코너 불펜 코치는 이틀 뒤 디키를 불러 마이너리그 오클라호마시티로 내려가 너클볼 전문 투수가 될 것을 제안 하였다고 한다. 당시 디키는 31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스프링캠프에서 직구 구속이 140km에도 못 미치게 되었고 그 때까지 메이저리그 4시즌 동안 72경기 239와 2/3 이닝 동안, 15승 17패, 평균 자책점 5.48, 피안타 293개의 초라한 성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쫓겨나기 딱 좋은 성적이었다.

결국 디키는 이 면담에서 7분만에 너클볼 전문 투수가 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면담 이전에도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오렐 허사이저 코치와 너클볼 관련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하며 불펜에서 너클볼만으로 공을 던지는 것을 보여준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2005년인 이 때에도 한 시합에 한두 개 던질까 말까한 너클볼이었고 정통파 투수였던 그의 구질로는 경쟁력이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이러한 과정으로 그는 너클볼 전문 투수가 될 각오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되기에는 메이저리그 타자들에 대한 자신감 상실, 준비되지 못한 은퇴와 아내와 어린 두 딸에 대한 걱정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고한다.

2.1.3. 너클볼러가 된 후

마이너리그에 내려간 후 본격적인 너클볼러로 전향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전향 후에는 너클볼을 지도할 코치가 없어서 독학과 실전 경험을 통해서 연마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시즌 막바지에 구단의 소개로 이후 디키가 너클볼 인생을 바꾸어 놓은 은인으로 표현하는 텍사스 레인저스 명예의 전당 투수[2] 찰리 허프를 만나 너클볼 연마에 큰 도움을 받는다.

이를 통해 텍사스 구단은 찰리 허프에게 디키가 너클볼 투수로서 성공 가능 여부를 타진했다고 한다. 오프시즌 기간 동안 캘리포니아의 찰리 허프 자택을 두 차례 찾아가 너클볼을 배웠다. 디키는 찰리 허프가 34세 이후로 162승을 거둔 사실에 많은 격려를 받았다.

그렇게 변신 후에는 트리플A에서 13승 6패, ERA 3.72의 수준급 성적을 올렸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었는데 투구의 65%를 너클볼로 구사하여 본격적인 너클볼러로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2006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전에서 치른 첫 선발등판 경기에서 한 경기 6피홈런이란 불명예기록을 남기며 처참하게 두들겨 맞았고, 이 경기는 텍사스에서의 마지막 등판이 되었다. 덧붙이자면 이 피홈런 기록은 현대야구가 출범한 20세기 이후 기록으로는 한 경기 최다 피홈런 최다기록이었다.

이후 룰5 드래프트에서 시애틀 매리너스가 지명하며 기회를 얻었지만, 여전히 영점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2008년 미네소타 트윈스 전에서는 1이닝 4폭투란 대기록을 남겼다. 이는 역대 타이기록인데,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단 4명만 있는 이 명단에는 월터 존슨필 니크로도 올라 있다.

그렇게 실패와 좌절을 맛 보던 중, 2008년 5월에 큰 기회가 찾아온다. 당시 너클볼 현역 최고의 투수인 팀 웨이크필드의 지도를 받게 되었던 것.

이 만남은 보스턴 레드삭스가 시애틀로 원정을 왔을 때 이루어 졌는데, 10분의 시간을 약속하고 시작했는데 45분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상대팀 투수를 자신의 팀 불펜으로 데려와 지도한 것은 야구 업계의 통념을 깨트린 일로 디키 본인도 너클볼 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2008년 시즌 중반 절친했던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포츠 캐스터 데이브 니하우스를 통해 너클볼 역대 최고의 투수였던 필 니크로에게 한 수 배우고 싶다는 뜻을 전하게 되어 시즌 종료 후인 2009년 1월 애틀랜타 필 니크로 자택 근처 실내 야구 시설에서 배우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 그는 필 니크로의 지도 까지 받으며 선배들의 너클볼을 따라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너클볼을 만들어 가게 된다.

이렇게 총 3명의 선배들에게 너클볼을 배우게 됐는데, 그가 자서전에서 말하길 찰리 허프 덕분에 올바른 그립과 문틀을 상상하며 던지는 법을 배웠고, 팀 웨이크필드에게 팔을 휘두르는 올바른 팔 동작과 적절한 릴리스 포인트에 대해 배웠으며, 필 니크로에게는 엉덩이를 앞으로 밀면서 홈플레이트 쪽으로 힘을 싣는 법을 배워 가공할 만한 피니시를 가진 공을 배웠다고 한다.

2.2. 뉴욕 메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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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를 거쳐 2010년 뉴욕 메츠와 계약을 맺은 직후에도 별다른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스프링캠프에서 첫 번째로 정리되어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명단에 포함되었을 정도.

하지만 4월 19일 더램 불스와의 마이너 리그 경기에서 1히트 완봉승을 만들어냈고, 올리버 페레즈가 완전히 망가지자 메츠는 마이너에서 디키를 승격시켰고, 디키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면서 11승 9패, 2.84의 성적을 거두며 완전한 너클볼러로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프로에 지명된 지 14년 만에, 리그간 상위리그 승격과 하위리그 하강을 35번 반복한, 만 36세의 노장투수가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2011년에는 홈 개막전의 선발로서 선정되었으며,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다년계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다만 승운이 없어서 3점대 초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도 8승 13패에 그쳤다.

2012년 6월 13일 탬파베이 레이스 원정경기(비자책 1실점 완투), 6월 18일 볼티모어 오리올스 홈경기(완투) 모두 1피안타 10+K 완투승을 거뒀다. 그것도 2012 시즌 AL 동부지구에서 잘나가는 팀을 상대로 말이다. 두 경기 연속 2자릿수 탈삼진 + 1피안타 완투승은 디키가 메이저리그 최초이다. 2012시즌 최종 성적은 20승 6패 233⅔이닝(NL 1위), 230탈삼진(NL 1위), ERA 2.73(커쇼는 2.53), 그리고 5완투 3완봉 모두 1위를 달리며 너클볼러 최초의 사이 영 상 수상에 성공했다.

한편으로 시즌 말 충격적인 사실이 전해졌는데, 2012시즌 초에 복부 근육이 찢어진 채로 한 해를 보냈다고 한다(...) 시즌을 마치고 수술을 받았다.

시즌 종료 후 연장계약이 논의되었지만, 많은 나이 때문에 구단과 선수 간의 의견차가 있었고, 연장계약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더니 메츠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로의 트레이드를 추진했다. 양 측은 디키와 유망주들 외에 디키의 너클볼을 캐치할 포수도 교환하는 등의 합의에 이르렀으며, 결국 포수 조시 톨리와 유망주 한 명과 함께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메츠가 받는 선수는 블루제이스의 팀내 최고 유망주인 포수 트래비스 다노와 대형 투수 유망주 노아 신더가드, 또 다른 하위 유망주 한명과 말린스에서 넘어온 존 벅인데 아무리 사이영 위너라고 해도 토론토 측에서 퍼줘도 너무 퍼줬다는 게 중론. [3]

2.3.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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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을 앞두고 블루제이스와 3년 3천만 달러 짜리 연장계약을 맺었다. 2016년에 1천 2백만 불 클럽 옵션과 1백만 불의 바이아웃이 있다.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미국 대표팀으로 참가했다. 당초 저스틴 벌랜더도 참가할 가능성이 있어서 벌랜더-디키의 꿈의 사이영 원투펀치가 미국 대표팀에서 실현될 지 관심이 모아졌으나 벌랜더가 몸상태를 이유로 출전을 포기했고 지오 곤잘레스가 뒤늦게 참가를 선언하면서 디키-지오의 원투펀치가 형성되었다.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사정없이 털리더니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미국의 첫 경기인 멕시코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1회부터 2실점하며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이다가 3회 애드곤조에게 중월 투런을 얻어맞으며 떡실신당하는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전준우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4이닝 6피안타 2K 4실점 기록. 돔구장빨[4] 때문에 너클볼의 무브먼트가 무뎌진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스프링 트레이닝 구장에서도 사정없이 털리던 모습이라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반응도 있고, 2012년 탬파베이 레이스전 원히트게임을 던진 곳은 세인트피터스버그 트로피카나 필드이며 돔구장이 너클볼의 무브먼트를 더욱 변화무쌍하게 만들어준다는 의견도 있다.

정말 멕시코전 하던 날 컨디션이 꽝일 뿐이었던 것인지 2라운드 승자전 도미니카 공화국전에서는 호투했다. 돔구장이 어떤 변수가 되리라던 예상도 말린스 파크의 지붕이 닫혀진 상태에서 호투하며 쏙 들어갔다. 그럼 뭐해 미국은 그날부터 2연패하며 짐 싸는 신세가 되었거늘

토론토 소속으로 첫 등판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에서는 포수 때문에 말 그대로 지옥을 맛보았다. WBC에서는 그래도 나름대로 괜찮게 호흡을 맞춘 J.P. 아렌시비아가 제대로 공을 받지 못하다 보니 실로 엄청난 경기를 치른 것. 토론토는 아렌시비아와 늙다리 포수 헨리 블랑코만 믿고 메츠에서 같이 트레이드로 온 조시 톨리를 마이너로 보내버렸는데 제대로 뒤통수 맞은 경기가 되고 말았다. 포수들이 못 받을까봐 너클볼을 일부러 구속과 무브먼트가 덜하게 살살 던졌다는 말도 있었고, 승패야 그렇다 치더라도 평균자책점과 WHIP까지 심각하게 올라가 버렸다. 그럭저럭 웩옹의 평소 성적하고 비스무리하다 평균자책 5점대 중반을 찍는 총체적인 난국이 벌어지자 기븐스 감독은 6월에 이르러서야 겨우 톨리를 콜업해 전담포수를 담당하도록 했고, 이후에는 흔들리던 디키의 사정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조금씩 승수를 벌충해서 시즌 끝무렵에는 겨우겨우 5할 승률은 넘겼고 3년 연속 200이닝을 소화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리그 최다인 34경기에 등판해 팀내 최다인 224⅔이닝을 소화하면서 14승 13패 평균자책점 4.21, 177탈삼진을 기록. 그나마 좋은 소식은 투수로서의 수비력을 인정받아 시즌 종료 후 커리어 최초로 골드글러브를 수상[5]했다.[6]

2012년 디키는 시즌 등판한 33경기 동안 볼넷이 54개만 허용했는데, 2013년에는 볼넷을 1.4배 정도 많은 71개를 내줬다. 제구력이 나빠진데다 디키의 가장 무서운 점이던 빠른 너클볼의 구위 역시 안 좋아진 상태로, 홈런 33개를 얻어맞아 AL 홈런공장장 2위에 올랐다. 평균 80마일을 자랑하던 디키의 구속은 2013년 전반기에는 70마일대를 기록했다. 게다가 홈구장인 로저스 센터와의 궁합이 너무나 안 맞는 것도 문제인데, 홈경기에서는 5점대에 가까운 평자책을 기록한 반면 원정경기에서는 오히려 평균자책 3점대 중반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거포들이 도처에 깔려있는 것은 물론, 양키 스타디움이나 펜웨이 파크 등 AL 동부지구 구장들이 꽤나 타자친화적인 성격인 것을 감안하면 디키의 극단적인 홈-원정경기 성적은 굉장히 기묘한 대조를 보인다.

2013년 전반기 디키의 투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적어 놓은 칼럼.

2014 시즌에는 템파베이 레이스의 트로피카나 필드 개막전에 선발로 나왔지만 5이닝 6실점을 기록하고 패전한 후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크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듯 했지만, 4월 말 이후부터는 꼬박꼬박 6이닝씩 소화하면서 호투를 보여줬다. 5월 말 기준 10경기에 선발등판해 4승 4패 ERA 4.20. 희한하게도 이번 시즌엔 전년과는 정반대로 홈경기 성적이 좋고 원정에서 죽을 쑤고(…) 있다.

2014 시즌 최종성적은 14승 13패 ERA 3.71. 승패뿐만 아니라 세부항목을 살펴봐도 지난시즌과 차이가 별로 없는데 평균자책점만 0.5점이 떨어졌다(...).

2015 시즌에는 팀이 23년만에 지구우승과 포스트시즌 진출을 거머쥐며 그도 포스트시즌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지만 2경기에 나와서 두 번 모두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교체했다. 디비전시리즈 4차전에서는 무난하게 잘 던졌지만 이날 다른 타자들과는 달리 디키의 공을 잘 치던 추신수 타석이 되자 존 기븐스 감독이 5회 종료까지 단 1아웃이 남았음에도 그를 내리고 데이비드 프라이스를 구원 등판시켰다. 디키는 썩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내려갔지만 프라이스가 추신수를 외야 뜬공으로 돌려세워 일단 노림수는 성공했고, 토론토는 4차전을 잡으면서 이후 5차전까지 잡아 역스윕으로 리그 챔피언십에 진출한다.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4차전에 등판했지만 1회부터 너클볼의 약점을 간파한 캔자스시티 로열스 타선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1.2이닝만에 5실점(4자책)으로 강판당했고, 팀은 14:2로 대패하면서 그 역시 패전투수가 된다. 팀은 6차전에서 패하면서 디키의 포스트시즌은 그렇게 쓸쓸히 끝난다.

2016 시즌에는 더더욱 성적이 하락하며 포스트 시즌에서는 아예 로스터에도 들지 못한다. 토론토는 사실상 디키를 정리하려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보였다.

2.4. 평가

기대했던 사이영 위너의 실력은 전혀 아니지만, 지난 3년간 매년 최소 33경기 출장에 210이닝(!)이란 내구성, 3점 후반대의 ERA로 지옥의 알동부에서 좋은 3-4선발[7] 평가를 받고 있다.

너클볼의 특성을 감안해도 투구내용이 매우 기괴하다. 실점없이 6회를 가다가 갑자기 5실점을 하고, 1-2회부터 만루를 쌓고 3-5실점을 해서 강판 될 듯 하더니 8회까지 버틸때도 있고, 2회까지 거의 60구를 던지더니 이후 귀신같이 투구수를 줄이는 등, 털리는 시점과 살아나는 시점이 그야말로 예측불허다. 물론 6-8점까지 털리는 상황은 드물지만 시청자들도 수비하는 야수들도 너무 지치게 한다.-상대편에겐 희망고문이란 피해를- 일단 한번 장작을 쌓기 시작하면 거의 무조건 실점하고, 정말 신기하게도 병살이라는 운은 죽어라 안따라줘서 삼진이 되거나 외야플라이가 되기전까진 이닝이 끝나지를 않는다. 외야플라이는 대게 홈런성에 가까운 타구여서 팬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한다.-그렇게 3루의 주자는 들어오고- 이런 형편에 언젠간 한번 야수들에게 만루 상황에서 병살을 지시하는 제스쳐를 해서 팬들의 뒷목을 잡게했다(...)[8]

이제 4년 계약 마지막을 앞두고 나오는 현지 평가는 (1) 보는 게 너무 답답하다는 것과 (2) 이 정도 성과를 볼려고 노아 신더가드를 내줬냐는 거다.

물론 지난 몇년간 선발투수때문에 고생하는 토론토를 벌리와 함께 잘 지탱해 준것은 사실이다. 대가가 너무 컸을 뿐...

그리고 기대이하의 트레이드 결과에 고춧결과를 뿌리는 요소가 있으니...

2.5. 역대 최악의 전담포수와 함께

전담 포수인 조시 톨리가 지난 몇년간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타격과 수비를 보여주며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하고 있다. 너클볼을 잡는 것 이외엔 그 어떤 능력도 없다. 과장이 아니고 정말로 없다. 디키의 등판과 땜빵 포수로서 매년 겨우 40-50경기를 (그것도 후반엔 교체) 뛰는 주제에 꼬박 음수의 WAR를 적립하는, 마이너에서 고생하는 포수 유망주들이 불쌍해 질 지경이다. 지난 몇 년간 OPS가 3번이나 5할(...)아래고 타율은 1할만 2번 (그것도 한 번은 .204로 간신히 턱걸이). 장타율은 세 시즌이나 .245 아래로, 장타율이 없는 아렌시비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게 토론토에겐 얼마나 무시무시한 재앙이냐면 디키가 등판할때에 토론토는 아예 지명타자를 박탈(...)당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디키는 단 한번의 잔부상도 없이 매시즌 33-34경기를 풀로 뛰고 있다. 이말은 곧 토론토가 매년 162경기중에 34경기나 지명타자 없이 자동아웃을 헌납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WAR계산법으는 도저히 수치화가 되질 않는 재앙이다.

그렇다고 투구수라도 뺐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공 3개 이하가 다반사고 공 5개면 꽤나 잘 버텨준 거다. 진짜다. 그나마 볼삼비는 좋은 편. 이런 유형의 선수가 볼삼비마저 쓰레기였다면 답이 없는 수준이니 뭐...

이런 함량 미달의 선수가 운좋게 너클볼 투수를 만난 덕에 거의 60억원 가까이를 벌었으니(총연봉 596만 달러) 진정한 승자는 이분이 아닐까

보다못한 감독이 너클볼을 받는 임무를 주전포수 러셀 마틴에게 몇번 맡겨봤지만 어지럽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9]

디키와 팀이 갈린 이후 조시 톨리는 당연히 마이너행. 심지어 2018년에는 AA에서 뛰고 있다. 아직 젊은 편이라 몇 년 더 뛰어보겠지만 빅리그를 밟기는 힘들 듯. 뭐 AAA에서도 그냥그런 수준이라 아시아에서도 용병 제안이 잘 안 들어올 커리어로 메이저에서 주전포수도 몇 시즌 해보고 아시아 리그에서 FA대박을 터트린 선수만큼 돈 벌었으니 상당히 성공한 야구인생이다.저정도 커리어면 연금도 꽤 나올텐데 진정한 승리자[10]

2.6.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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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종료 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1년 8M의 계약을 맺었다. 1년 7.5M짜리 클럽 옵션이 추가로 붙은 계약.

31경기 선발, 190이닝, 10승 10패, 4.26의 방어율, bWAR 2.7로 8M의 연봉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WAR 1을 보통 8M 정도로 평가)
근데 이 성적이 팀내 다승 공동 2위, 이닝소화 1위, 정규이닝 소화 선발투수 방어율 1위......라는 점이 팀 투수진 사정을 말해준다.

하지만 젊은 투수들에게 기회를 더 주겠단 이유로 옵션을 실행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도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는 것을 봐서는 사실상 은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듯.

3.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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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피칭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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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 너클볼러

공을 받는 포수마저 눈을 찔끔 감게 만드는 저 예측불가능한 움직임을 보라.저거 뭐야?하는 타자의 얼굴..

디키의 주무기는 80마일을 상회하는 고속 너클볼이며 60마일대의 저속 너클볼을 간간히 배합하며 던진다. 디키의 너클볼 평균구속은 75~76마일로 팀 웨이크필드와 비교하면 무려 10마일이나 더 빠르다. 또한 필 니크로나 웨이크필드의 너클볼보단 변화가 적지만 그 때문인지 와일드 피치나 패스드볼도 상대적으로 적고 제구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너클볼러치고 웨이크필드처럼 전담포수를 둔다거나 딱히 포수를 가리는 편이 아니다. 다만 이 부분은 2013년 아렌시비아가 보여준 희대의 게임도 있고 더 두고봐야 할 문제. 분명한 사실은 너클볼에 익숙하지 않은 포수와 배터리를 짠다면 디키의 위력이 온전히 발휘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평균 83~84마일에서 형성되는 포심 패스트볼로 카운트를 잡는 공을 던지기도 한다. 포심 패스트볼 역시 웨이크필드에 비해 10마일 이상이 빠르다! 김형준 기자의 분석글에 따르면 지토신과 비슷한 패스트볼 구속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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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클볼 투수의 문제점은 다른 구종을 던지기 매우 힘들다는 건데 디키에 경우 제 2 구종인 서클 체인지업을 적절히 써줬다. 디키를 처음 상대하는 타자들은 당연히 너클볼만 생각하고 임하다가 갑자기 들어오는 서클 체인지업에 당황하여 말려드는 경우도 나왔다.

5. 기타

  • 디키의 이름 R.A.는 로버트 앨런(Robert Allen)의 약자이다. 디키의 가족들이 할아버지 로버트 그린을 R.G.라고 부르면서 디키도 R.A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3세 때의 일로, 가족과 친구들 모두 R.A로 불렀는데 어머니만이 계속해서 로버트라고 불렀다고 한다.(우리말 자서전 p.70 참조)
  • 약물을 정말 싫어한다.[11] 약물에 대해 생각하면 약물로 인해 자신이 맞은 내야안타나 다른 선수들의 활동이 생각나며, 약물을 자신을 포함한 모든 약을 안한 선수들에 대한 속임수라고 분노한다. 약물 생각으로 잠 못 이루지는 않는다고 한사코 부인하긴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자서전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대놓고 슬쩍 싫어하는 모습을 보인다.[12] 당연히 디키의 관점이 옳은 관점이다. 특히나 디키는 투수로서 여러 활로를 찾다가 너클볼 투수로 전환하는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정당하게 재기한 인물이기에, '이거 아니면 방법이 없었어요 ㅜㅜ' 라면서 징징대는 꼴을 절대 참고 봐 줄 수 없는 인물이다. 잘놈잘이 복용하는 건 더더욱 할 말이 없고. [13]
  •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다.
  • 파워 트위터리안이다. 주소는 여기
  • 강폭이 200미터가 넘는 미주리 강을 헤엄쳐 건너려는 무모한 시도를 한 일이 있다. 2007년 6월 9일의 일로 마이너리그 숙소 근처에서 감행했다. 2002년부터 해보려고 마음 먹었다고 하는데, 400미터를 떠내려가며 익사 직전까지 갔다. 탈진상태에서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상황까지 처하기도 했는데 이 일이 있은 후 성적이 급반전하게 된다.(3승 4패, ERA 5.87 -> 10승 2패, ERA 2.42) 삶에 대한 마음가짐이 바뀌면서 마이너리그 선수 생활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으로 고백하고 있다.(우리말 자서전 pp.308-323, 330-348 참조)
  • 2012년 시즌을 앞두고 다른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킬리만자로 산을 등정해서 화제에 올랐다. 메츠 프런트에선 '가면 너랑 계약한 거 취소'라고 하며 엄포를 놓았지만, 디키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등정에 성공하고 내려오자 윌폰 구단주도 없는 살림에 디키가 후원하는 인도의 성매매 여성 지원단체에 후원금을 냈다고 한다. 인성도 훌륭한 선수로 손꼽힌다.
  • 어릴 적에 부모가 이혼한데다가 어머니는 알콜 중독자였고 8살 때는 여자 베이비시터와 10대 청소년한테 성적 학대를 당할 정도로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이 성적 학대의 기억은 죄책감과 혐오감으로 디키의 평생을 괴롭혔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치 못했던 아픔으로 결혼 생활의 위기를 맞는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2006년 전문 상담사 스티븐 제임스를 만나 큰 도움을 받게 되었고 2011년이 되어서야 어린 시절 학대받았던 불행한 경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 라커룸에 책을 쌓아놓고 읽을 정도로 열렬한 독서가라고 한다. 디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운동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영문과 교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 다큐멘터리 영화 '너클볼'에 보면, 리치 마틴의 올스타 야구 캠프에서 "상대하기 쉬운 타자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데릭 지터랑 상대할 때 결과가 좋았다고 먼저 말한 후, 카를로스 델가도를 상대하기 쉬운 타자로 답변했다. (영화의 37분 2초 부분)
  •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8번째로 텍사스 레인저스에 지명되었는데, 같은 해 1번째 지명 선수는 크리스 벤슨, 2번째는 트래비스 리, 3번째는 브랜든 루퍼였다. (영화 너클볼 40분 42초 부분)
  • 2012년 <Wherever I Wind Up>(정발명:어디서 공을 던지더라도)라는 자서전을 발간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엠엘비바다에서 활동하는 닉네임 OrangeBlood.가 번역 및 출판을 진행하여 2013년 4월 1일 초판이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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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키의 자서전에 따르면 2007년 10월에 한국프로야구팀의 오퍼를 받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삼성 라이온즈가 마법의 금액 30만 달러+α를 제시했고, 한화 이글스도 관심을 가졌었지만 디키가 거부하면서 무산되었다.[14] 만약 그 때 삼성과 계약했다면 톰 션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 자서전에서,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으로 투수에서 외야수로 변신한 릭 앤키엘에 대해 애정을 가득 담은 소회를 하고 있다. "내가 본 투수 가운데 가장 천재적이었다"며 투수로서 릭 앤키엘의 능력도 높이 평가했지만, 외야수 변신에 대해 "일반 투수에서 너클볼 투수로 전환한 나의 경우는 앤키엘에 비하면 하찮은 변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며 그의 노력을 극찬했다. 2001년 5월 트리플 A경기에서 릭 앤키엘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으로 역대 최다인 1이닝 5개 폭투 홍상삼?하는 것을 디키가 직접 봤는데, 이후 너클볼 전문 투수로 전환한 디키가 3과 1/3이닝 6홈런을 맞은 적이 있기 때문에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우리말 자서전 pp.192-19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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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거킹에서 투잡을 뛰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기도 하다. 불행했던 과거로 인해 결혼 생활에도 문제가 생기자 신앙심 깊은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6. 참고 링크


[1] 이때 한국 대표팀과도 맞상대한 적이 있다. 등판한 건 아니지만. 당시 미국 대표팀 선발은 세스 그레이싱어.[2] 흔히 말하는 HOFer가 아니라 '텍사스 구단' 명예의 전당 투수.[3] 결국 2015년 메츠의 9년만의 가을야구에 다노와 신더가드가 한 힘 보태면서 디키는 나가고 나서도 메츠팬들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물론 2015년엔 토론토도 막나가는 트레이드로 22년만의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했다.[4] 이날 경기가 열린 피닉스의 체이스 필드는 지붕을 닫고 있었다.[5] 참고로 같은 팀에 마크 벌리가 있었는데도 받은거다. 오오![6] 덧붙여 제이스의 포수 주전 경쟁자 세 명은 모두 2할 타율조차 못 넘기는 극도의 타격부진을 보여준 끝에 아렌시비아가 시즌 후 논텐더로 풀려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고, 대신 시카고 컵스에서 디오너 나바로를 2년 8백만 불로 계약했다.[7] 프라이스, 벌리, 에스트라다, , 산체스, 스트로먼 등의 활약으로 1-2선발이라고는 도저히 평가 될 수 없다. 프라이스와 벌리를 제외하고 심지어 가격도...;[8] 배짱이 대단하기로 유명하다. 2015년 ALCS 4차전에서 캔자스에게 털린 후, 벼랑끝의 팀을 위해 언제든지 구원투수로 나설 수 있다고(...) 자원했다-영감님 제발 가만히 좀- 2013년 초반에 자신을 필두로 팀이 신나게 털릴때도 너무나도 태연히 인터뷰를 하는 비범함(...)을 보여줬다. 물론, 2013년의 -본인과-팀의 폭망을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등, 그 훌륭한 인성은 누구나 인정한다.[9] 물론 고단한 포수의 특성상 이런것까지 짬 당하기 싫은 심정에 양보한다고 쳐도 현시점 -0.2의 WAR를 기록하는 그가 할 소리는 아니다. 이번해 연봉이 $2,000만(!!)이다. 자그마치.[10] 사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직행한 포수 유망주 보면 냉정하게 저 선수보다 못하는 선수가 수두룩했다. 신진호, 김재윤, 김성민 등... 애초에 마이너리거 중 트리플A를 밟아보는 선수가 10% 수준이다.[11] 근데 고의가 아니긴 했지만 본인도 헤로인이 검출되어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왜 고의가 아닌지는 양귀비꽃 항목 참고.[12] 디키가 자서전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약물과 관련해서 언급하지는 않는다. A.로드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2개가 나온다. 하나는 2002년 처음 메이저리그에 등판했을 때(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으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에서 11:2로 앞서고 있는 9회에 등판) 마지막 타자인 마리오 발데스를 아웃시킨 공을, 메이저리그 최초 등판 기념으로 갖고 싶었으나 A.로드가 관중석으로 던져버린 일이 있다. 하지만 디키는 A.로드가 경기에 몰입하고 있었으며, 디키의 메이저리그 첫 경기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우리말 자서전 pp.206-209 참조. 또 하나는 너클볼 전문 투수로 활약하기 전에 메이저리그 커리어 유일한 완봉승 경기였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경기 후(2003년 8월 20일) A.로드가 유격수 자리에서 모든 투구 사인을 포수에게 전달해 줬다면서 자신에게 고마워 해야 한다고 말한 일이 있다. 다음 번 경기에서는 디키가 6자책 패배를 했는데 A.로드에게 이번에도 사인 전달 해준 것을 고마워해야 하냐고 물었고, A.로드는 그 날 경기에서는 사인을 전달하지 않았다고 했다고 한다. 우리말 자서전 p.446 참조. 디키는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시합 전 욕실에서 약물 투입 주사기를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약물을 사용하는 선수는 속임수를 쓴 것이나 다름없다. 그건 상대 선수를 속이고 팬을 속이며 시합을 속이는 짓이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우리말 자서전 pp.211-213 참조[13] 다만 예외가 있다면, 릭 앤키엘 정도. 자세한 사정은 해당 항목 참고[14] 디키는 당시에 33세라는 자신의 나이, 마이너리그의 퍼시픽 코스트 리그 올해의 선수였지만 기대했던 9월 메이저리그 합류 불발로 느꼈던 구단의 홀대와 불확실한 미래, 지난 5년동안의 수입보다 많은 30만 달러+α라는 돈,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을 다음 해 계약연장으로 30만 달러를 한번 더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80% 정도 삼성으로 갈 생각을 갖고 있었고 부인의 동의를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괜찮은 성적으로 미네소타 트윈스, 시애틀 매리너스, 뉴욕 메츠의 오퍼를 받은, 절친한 에이전트 보 맥키니스의 적극적인 만류로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 우리말 자서전 pp.356-36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