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2 13:41:54

로저 클레멘스

로저 클레멘스의 수상 경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1999 2000

보유 기록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 20개
통산 최다 사이영상 수상 7회

파일:Logo_of_AL_Alt.png 1986년, 1987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
브렛 세이버하겐
(캔자스시티 로열스)
로저 클레멘스
(보스턴 레드삭스)
프랭크 바이올라
(미네소타 트윈스)
파일:Logo_of_AL_Alt.png 199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
밥 웰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로저 클레멘스
(보스턴 레드삭스)
데니스 에커슬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파일:Logo_of_AL_Alt.png 1997년, 199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
팻 헨트겐
(토론토 블루제이스)
로저 클레멘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즈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Logo_of_AL_Alt.png 200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
페드로 마르티네즈
(보스턴 레드삭스)
로저 클레멘스
(뉴욕 양키스)
배리 지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200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에릭 가니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로저 클레멘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크리스 카펜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Logo_of_AL_Alt.png 1986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돈 매팅리
(뉴욕 양키스)
로저 클레멘스
(보스턴 레드삭스)
조지 벨
(토론토 블루제이스)

파일:MLB Logo.png 1986년 메이저 리그 올스타 게임 MVP
라마 호이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로저 클레멘스
(보스턴 레드삭스)
팀 레인스
(몬트리올 엑스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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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Roger_Clemens_BOS.jpg
이름 윌리엄 로저 클레멘스
(William Roger Clemens)
생년월일 1962년 8월 4일 ([age(1962-08-04)]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png 미국
출신지 오하이오 주 데이튼
신체 193cm / 107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3년 드래프트 1라운드 19순위 (BOS)
소속 구단 보스턴 레드삭스 (1984~1996)
토론토 블루제이스 (1997~1998)
뉴욕 양키스 (1999~2003)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4~2006)
뉴욕 양키스 (2007)
수상 11회 올스타 선정 (1986, 1988, 1990~1992, 1997, 1998, 2001, 2003~2005)
2회 월드시리즈 우승 (1999, 2000)
7회 사이영 상 (1986, 1987, 1991, 1997, 1998, 2001, 2004)
AL MVP (1986)

4회 다승 1위 (1986, 1987, 1997, 1998)
7회 방어율 1위 (1986, 1990–1992, 1997, 1998, 2005)
5× AL 탈삼진 1위 (1988, 1991, 1996–1998)
기록 2회 투수 부문 3관왕 (1997, 1998)

1. 소개2. 선수 시절
2.1.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찬란했던 MVP 에이스2.2.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절: 마와의 결탁2.3. 뉴욕 양키스 시절: 복수에는 성공하나...2.4. 휴스턴 애스트로스, 그리고 알바(...) 시절
3. 전설이 무너지다4. 기타5. 연도별 성적6. 관련 문서

1. 소개

외견상으로는 메이저리그 140년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역대 최고의 투수라고 평가받기 충분한 기록의 소유자,[1][2] 그러나 약물 복용 의혹이 불거진 이후로 그 명성이 무효화된 한때의 신화. 배리 본즈,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라파엘 팔메이로 등과 함께 메이저리그 스테로이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

통산 354승(역대 9위), 4672탈삼진(역대 3위), 7번의 사이 영 상(역대 최다)에 1번의 MVP라는 통산 기록들.

2. 선수 시절

로켓맨, The Rocket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190cm가 넘는 거대한 몸에서 던져대는 불같은 강속구가 유명했다. 평균 시속 95~97마일, 최고 시속 101마일의 포심 패스트볼 하나만 가지고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메이저리그를 평정했다. "클레멘스의 주무기는 빠른 공, 더 빠른 공, 그보다 더 빠른 공 이 세가지다." [3]라는 말이 유명할 정도로 패스트볼의 구위 하나만큼은 메이저리그 전체 역사를 통틀어 정상급에 해당한다.[4] 부상 이후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한 스플리터는 최고 시속 90마일을 상회하는 마구나 다름없는 공이었다. 보스턴에서의 커리어 후반기부터는 포심/스플리터 투 피치 투수였고, 수준급의 슬라이더까지 구사하면서 타자들을 능숙하게 요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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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데미안 밀러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91마일(146km) 스플리터.

2.1.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찬란했던 MVP 에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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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라운드에서 지명을 받고 입단한 클레멘스는 1986년부터 에이스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254이닝을 던지며 24승 4패 238K 2.48 ERA를 기록, 만장일치 사이 영 상에 MVP까지 석권[5]해버렸다. 그리고 이듬해에도 20승과 18완투 7완봉, 그리고 독보적인 이닝 소화 능력(281⅔이닝)을 선보이며 사이영 2연패.

1986년 올스타전에서 내셔널리그 최고의 투수였던 드와이트 구든을 타석에서 상대해보고는 포수게리 카터에게 '지금 저 친구가 던지는 패스트볼이 내가 던지는 것보다 빨라?' 라고 물어봤댄다. 이에 게리 카터는 '누가 낫고 못한 수준은 아니고 비슷비슷하다.' 라고 대답했다. 클레멘스는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이런 공을 칠 수 없다.'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속구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1986년 4월 29일에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세운다. 펜웨이 파크에서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정규 이닝 20K를 잡아버린 것. 이후 10년이 흐른 1996년에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타이거 스타디움에서 클레멘스가 다시 한번 이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6]

그리고 1990~92년 3시즌 연속 ERA 타이틀을 차지하는데, 그 중의 백미는 1990년의 21승 1.93 ERA 시즌이다.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되는 결정이겠지만 방어율은 2.95지만 다승에서 27승으로 앞선 오클랜드의 에이스 밥 웰치가 사이영 상을 차지했다(...)[7][8] 그래도 다음 해인 1991년에 탈삼진 타이틀까지 석권하며 무난하게 통산 세번째 사이영을 수상하지만 1992년에는 데니스 에커슬리마무리 투수의 패러다임을 바꿔놓는 활약을 펼치며 표를 쓸어가는 바람에 또 고배를 마셨다.[9]

그러나 그도 세월의 무게와 젊은 날에 지나치게 폭주한 부작용은 이기지 못하는 것일까. 1993년 뜻하지 않은 4점대 ERA를 찍어보기도 했고, 1994년에는 다시 리그 평정할 페이스를 이어갔으나 선수노조 파업 때문에 10승에 실패하고 적은 승수 때문에 사이영 투표에서 명함도 못 내밀었다. 그렇게 명투수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사라져가는가 했지만, 1996년 레드삭스에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시즌 257K(탈삼진 1위)와 정규이닝 20K 기록을 다시 한번 달성했다.

보스턴은 클레멘스가 팀을 떠난 이후 그가 레드삭스 시절 달았던 등번호 21번을 어느 누구에게도 지급하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구단의 비공식 영구결번인 셈이다.

2.2.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절: 마와의 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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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레전드를 레드삭스 프런트는 보사구팽했다. 물론 언플로는 "레드삭스 역사상 투수 최고액을 오퍼했다", "클레멘스의 황혼기[10]를 함께하고 싶었다"는 등의 드립을 쏟아냈으나 실제로 그걸 믿은 팬은 삭스 팬들 중에도 드물었다. 아무튼 그는 192승 111패라는 사이 영(192승 112패)과 자웅을 겨루는 레드삭스 통산 성적을 남기고 4년 4000만불의 계약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했다.

그리고 제2의 전성기가 열렸다.

1997년, 1998년에 샌디 코팩스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과 개인통산 4,5번째 사이 영 상을 먹었다.

1997년 264이닝 21승 7패 2.05ERA 292 탈삼진으로 사이영상을 수상했고, 1998년에는 234이닝 20승 6패 271탈삼진을 기록하며 사이영상을 또 수상하며 3년 연속 탈삼진 1위를 기록했다.

이 시기의 부활은 스플리터의 장착으로 이해됐으나 미첼리포트에 따르면 바로 이 시기부터 브라이언 맥나미를 만나서 약물에 손을 댔다고 한다. 미첼 리포트에 의하면 클레멘스는 맥나미에게 경주마에게도 주입하기도 하는 Winstrol을 주입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1998년 35세였던 클레멘스는 약물의 힘을 빌린 이후 시즌 마지막까지 14승 무패, 방어율 2.29를 기록했다.시즌 마지막 11경기에서 클레멘스가 기록한 경기당 삼진 개수는 14, 8, 15, 6, 18, 7, 11, 7, 11, 15, 11이었다. 클레멘스가 데뷔 후 한 시즌 14개 이상의 삼진을 4차례 기록한 것은 단 한차례였고, 그것은 무려 10년 전인 1988년이었다.

클레멘스가 2연속 트리플 크라운에 5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하고 본즈가 전무후무한 400-400을 달성하는 등 1980년대에 데뷔한 최고의 선수들이 십수년을 거쳐 여러 위업들을 이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맥과이어와 소사의 홈런 레이스에 묻혀 부각되지않았다. 클레멘스는 조용히 시즌을 보냈지만 양키스는 이 모든 걸 지켜봤다.

여담으로 이때 클레멘스는 홈구장에 있는 르네상스 토론토 다운타운 호텔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2.3. 뉴욕 양키스 시절: 복수에는 성공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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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스는 우승권 팀이 아니었던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맘에 들지 않았고, 곧 클레멘스의 부활을 지켜본 뉴욕 양키스가 그를 트레이드로 영입했다.[11] 클레멘스의 상징과도 같았던 21번은 폴 오닐이 달았기에 12번으로 바꿔 달았지만 이내 22번으로 고쳐 달았다. 폴 오닐에게 갖가지 조공을 했는데도 21번을 받지 못해서 많이 아쉬워했다 카더라.[12]

클레멘스는 맥나미를 뉴욕으로 데려가고 싶었지만 토론토와 계약 중이던 맥나미는 따라 갈 수가 없었고 클레멘스는 약물도 못 쓰고 트레이너로도 도움을 주던 맥나미가 없었기에 1999시즌 187.2이닝 14승 10패 커리어에서 가장 나쁜 4.60ERA를 기록했다.[13] 자신의 뒤를 이어 보스턴의 최강투수가 된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ALCS에서 대결했지만 학살당했고, 월드 시리즈에서는 1승을 거두는 활약을 했다. 상황이 신통치 않자 클레멘스는 맥나미에게 뉴욕으로 꼭 좀 와달라고 하며 구단에 얘기해서 그를 고용해달라 했고 양키스는 급여를 클레멘스의 연봉에서 공제하는 조건으로 이를 수용했다. [그런데][명단]

미첼 리포트에 따르면 클레멘스는 2000년 시즌 중반, 자신이 얻어온 성장호르몬과 스테로이드를 맥나미에게 가져가 투약해달라고 하여 맥나미가 그것들을 주입했다고 한다. 이후 전반기 4.33이던 방어율이 3.15까지 내려왔고, 후반기 7승 2패를 거두며 사이영상 6위를 했다. [그러나] 오클랜드를 상대한 ALDS에서는 2경기 11이닝 10실점 8.18ERA를 기록하며 2패를 했지만, 시애틀과의 ALCS 4차전에서는 9이닝 완투에 15삼진을 잡는 좋은 활약을 했고, 메츠와의 월드 시리즈에서는 2차전에서 피아자에게 부서진 방망이를 던지며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켰지만 8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하고 우승했다.

2001년 20승 3패에 3.51ERA를 거두고 6번째 사이 영 상[17]을 수상하는 등 양키스에서도 꽤 준수한 선발투수로 제 역할을 다했다. 여담으로 6월 2일 클리블랜드와의 경기에서 짐 토미에게 2홈런을 맞는 등 총 3홈런을 맞고도 승리했다. 2001 월드 시리즈에서는 자신을 우상처럼 여겨온 커트 실링과 7차전에서 벼랑 끝 명승부를 벌여 결과적으로는 패배하기도 했다. 이 시즌이 종료되고 양키스는 성폭력 혐의로 구속된 맥나미와의 관계를 정리했지만 클레멘스와 앤디 페티트는 계속 맥나미와 함께 훈련했다.[18]

2002년에도 클레멘스는 소포[19]로 성장호르몬을 받는 등 계속 약물을 사용했고, 13승 6패, 4.35ERA, 192탈삼진으로 활약했다.

2003년, 대망의 300승과 4000K[20]를 돌파하고 스티브 칼튼놀란 라이언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양키 스타디움에서 300승을 달성했을 때 팬들은 모두 엘튼 존로켓맨을 부르며 클레멘스의 마일스톤 달성을 축하했고, 은퇴 시즌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에 정규시즌 마지막 펜웨이 파크 원정에서는 양키스 선수로서 왔음에도 전 관중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명장면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3 ALCS에서도 그는 여느 양키스 선수들과 달리 환대를 받았지만 매니 라미레즈에게 빈볼성의 높은 볼을 던지며 매니가 분노했고 경기장 분위기는 이내 레디 파이트.[21] ALCS 성적은 2경기 9이닝 6실점.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로 미겔 카브레라에게 초구부터 빈볼을 던지다 홈런을 맞긴 했지만 7이닝 3실점의 호투를 펼치고 말린스 선수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줄 알았다.

2.4. 휴스턴 애스트로스, 그리고 알바(...) 시절

파일:external/bronxbaseballdaily.com/roger-clemens3-540x335.jpg
사진이 묘하게 와인드업부터 이어지는 것 같다

클레멘스는 은퇴를 번복하고 텍사스 대학을 나온 인연이 있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1년간 500만불에 계약했다. 은퇴를 하려다 양키스에서 같이 뛴 앤디 페티트를 따라 입단한 클레멘스는 로켓의 본고장에서 로켓맨의 이름에 걸맞는 폭발력을 뿜어냈다.[22] 214⅓이닝 동안 18승 4패 2.98 ERA를 기록, 역대 최고령, 개인 통산 7번째 사이영상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만약 이 때 2위 랜디 존슨에게 상을 내줬더라면 한 시대를 풍미한 두 에이스가 사이영 수상 횟수에서 서로 동률이 될 상황이었기에, 그리고 갖가지 지표에서 랜디가 클레멘스보다 훨씬 앞섰기에(당시 사이 영 투표 결과와 주요 지표 비교) 지금까지도 자주 회자되는 사이영 투표다. 그래도 랜디 존슨은 불공평하게 패한 2인자로 언급이라도 되지 막장타선 때문에 로켓보다 나은 성적을 찍고도 12승 14패밖에 못 한 벤 시츠는 언급조차 없다. 뭐 클레멘스 개인 입장에서는 젊을 적에 뺏긴 것만큼 되돌려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려나.

그러나 2005년부터 그는 슬슬 사람들의 짜증을 유발하기 시작한다. 전년도에 500만불에 계약한 것에서 적게 받은 양까지 싸그리 몰아서 받는 무시무시한 연봉협상으로 인해 2005년 이후 제프 배그웰의 이른 은퇴에 영향을 끼쳤다. 뭐 그래도 2005년에는 사이영상 또 먹을만한 무시무시한 성적[23]을 찍어줬으니 까방권을 좀 주더라도, 2006년에는 자신의 체력이 딸린다는 점을 인지하고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만 뛴 채 시즌 개막 직전까지 계약을 하지 않다가[24] 시즌 중반에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있는 팀들이 몸값을 올려놓을 때 계약에 나서는 얍씰한 짓거리를 했다.[25] 그렇게 해서 삽질한다면 속 시원하게 까기라도 하는데, 그렇게 알바 뛰면서 2점대 ERA를 찍으니 뭐라고 대놓고 욕하지도 못하고 사람들은 짜증만 난다(...). 그러나 2007년에 알바 뛸 때는 투수 역사상 최고 연봉 기록[26]을 갈아치웠는데도 구위가 따라주지 않으며 얻어맞아나가는 바람에 썩 좋은 활약을 펼치진 못했다. 로켓맨의 알바짓을 비꼬는 최훈의 카툰 그런데 만화의 투수들 중 2013년을 넘긴 투수가 아무도 없다(...). 까놓고 말해 2007년의 클레멘스는 먹튀라 해도 할 말이 없는 성적이었다.

여담으로 2005년에는 시카고 컵스그렉 매덕스와 대결하며 113년만에 내셔널리그에서 나온 300승 투수들의 대결[27]이라는 흠좀무한 명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그런데 졌다

뭐, 말년에 영 좋지 않다 쳐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첫 턴에 당연히 헌액될 투수였다. 이 시기 클레멘스는 다른 모든 대투수를 다 제치고 월터경과 비견되고 있었으니까... 동시대를 풍미했던 마스터혼슨갑도 한 수 아래로 여겨졌다. (당시 기준으로) 라이브볼 시대에 오로지 워렌 스판만이 클레멘스의 354승보다 많은 승수를 기록했고 4672K는 놀란 라이언 다음이었으니까.

그런데...

3. 전설이 무너지다

2007년 말에 발표된 미첼 리포트에서 스테로이드를 복용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클레멘스는 펄쩍 뛰며 절대 약을 하지 않았다고 반발했고 청문회에서도 선서 하에 자신은 경기력 강화 약물(Performance-Enhancing Drugs)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으나, 개인 트레이너였던 브라이언 맥나미의 연이은 폭로, 같은 팀에서 뛴 동료였던 앤디 페티트의 진술, 그리고 심리 전문가의 분석[28] 등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었다. 이에 커트 실링은 특유의 핵이빨을 유감없이 털며(...) 토론토 시절부터의 4회 사이영상을 반납하라 주장했다.[29] 자신의 롤모델로 여겨온 투수가 이런 인물이었다니 굉장히 배신감을 느꼈던 모양.

심지어는 민디 맥크리디라는 컨트리 가수[30]와의 섹스스캔들도 폭로되었다. 민디가 15살일 적부터 불륜을 저질렀다[31]는 의혹이 제기되며 그간 (자신이 등판하지 않는) 원정경기에 불참하고 가족들과 함께할 정도로 가정적인 사나이라는 명예도 실추되었다.[32]

동시대에 활약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투수들인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보다도 한수 위라는 평가를 받던 선수였으나, 사생활 문제와 약물 관련 스캔들이 폭로되면서 로켓의 커리어는 단지 숫자로만 남게 되었고, 그 명성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더구나 배리 본즈처럼 위증 논란까지 불거지며[33] 미국에서는 최악의 취급을 받는 거짓말쟁이라는 비난까지 받게 되었다.[34][35][36]

클레멘스를 대차게 까는 김형준 기자의 인사이드MLB 칼럼을 보면, 브라이언 맥나미가 주장하는 클레멘스의 약물복용 시기가 나와있다. 1997년 토론토에서의 첫 시즌까지만 진퉁이고 5번째 사이영상부터는 약빨이라는 분석이라 보면 되겠다. 만약 약빨 상을 올바른 주인에게 돌려줄 경우 역대 수상 순위는 이렇게 변경된다. ft.배리 본즈

2012년 6월 18일 위증 재판에 대한 판결이 나왔는데, 무죄가 선고되었다. 증거가 불충분하고 증인들의 증언이 왔다갔다 한 점에서 배심원단이 유죄로 평결할 이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위증죄 문제, 즉 클레멘스가 법정에서 고의로 거짓말을 한 것이냐만 다루는 재판이었기 때문에, 입증기준이 훨씬 엄격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37] 대중의 시선은 아직도 싸늘하지만, 적어도 법적으로는 거짓말쟁이라는 딱지를 벗을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이는 미첼 리포트를 발표한 조지 미첼 상원의원에게 클레멘스에게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고(...).

2004년에는 조지 워커 부시와 함께 유세를 다니며 부시 재선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결국 둘 다 지금 미국의 흑역사

4. 기타

그가 던지는 공만큼이나 거친 성격으로도 유명하다.[38]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헤드 헌터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의 헤드 헌터는 빈볼을 망설임없이 꽂아넣을 수 있는 투수. 승부욕이 강하다 못해 지나친 그 성격 덕에 뉴욕 메츠의 전설적인 공격형 포수였던 마이크 피아자와 사이가 매우 나쁘다. 피아자는 클레멘스의 공을 잘 공략했던 타자 중 한 명으로, 둘의 악연에 대해선 유명한 사례가 몇 있다. 2000년 7월, 서브웨이 시리즈로 불리는 양키스와 메츠의 인터리그 경기에 선발 등판한 클레멘스가 2회초 선두타자로 들어온 피아자의 머리를 향해 대놓고 패스트볼로 빈볼을 날려 그 자리에서 기절시키면서 메츠 팬들에게 쌍욕을 먹었고, 약쟁이가 약쟁이를 맞추다 2000년 월드 시리즈에서 메츠와 양키스가 맞붙게 되었을 때 2차전 선발투수로 등판한 클레멘스는 1회초 피아자가 파울타구를 치면서 부러진 배트 조각이 마운드 쪽으로 날아오자 그대로 그 조각을 주워다가 1루로 달리던 피아자 쪽 그라운드에 던져버렸다. 안 그래도 원한이 쌓여 있던 피아자는 1루 선상에서 바로 마운드를 향해서 달렸고 이후는 레디 파이트. 이후 원래 축제 분위기였던 서브웨이 시리즈는 공포 분위기로 돌변해서 언제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물론 클레멘스는 그저 배트 조각을 치웠을 뿐이라고 변명하긴 했지만, 어떻게 봐도 부러진 배트를 피아자에게 집어 던진 걸로 밖엔 안 보인다. 나중에 클레멘스가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이적하고 NL 올스타에 뽑혀 선발투수로 나가게 되고, 피아자 역시 올스타에 뽑혀 주전포수로 나가게 되며 결국 두 앙숙이 배터리를 이루게 된 적이 있었다. 많은 팬들은 이 상황을 굉장히 즐겁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당사자들은 과거의 일은 기억이 안난다는 식으로 훈훈한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경기 시작하자마자 1회부터 볼배합 문제를 가지고 서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파ㅋ탄ㅋ.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역시 한 번 원수관계 맺으면 오래간다.

짐 토미에게는 최다 홈런ㆍ타점인 8홈런 19타점을 허용하고 트리플크라운 시즌에도 2홈런을 주고 양키스에서의 사이영상 수상 시즌에도 1경기 2홈런을 주는 등 꽤 약했다. 타출장이 .355/.438/.855에 OPS가 1.293이나 된다.

더불어 얼리 윈[39]의 "설령 내 할머니라 해도 타석에 바짝 붙어 있으면 빈볼을 날릴 것이다" 발언을 제대로 실천했던 인물.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인 20K를 두 번이나 달성하는 등 탈삼진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투수였으며, 선수 본인의 탈삼진에 대한 애착도 상당했다. 오죽하면 애들 이름이 죄다 탈삼진을 의미하는 K로 시작한다(...).

2013년 현재까지 야구 쪽에서 가장 주목받은 클레멘스의 아들은 휴스턴 애스트로스 산하 마이너에서 활동한 코비 클레멘스(Koby Clemens). 입단 당시에는 아버지 빽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후 상당한 성장을 보인 공격형 포수였다. 하지만 포지션 변경을 거치며 자신의 메리트를 잃어버렸고, 결국 2013년 현재는 독립리그를 전전하고 있다. 독립리그 경기에서는 현역으로 복귀한 아버지의 포수로 호흡을 맞추기도. 휴스턴 시절엔 연습경기에서 아버지의 공을 홈런으로 후려갈겼다가 다음 타석에서 강력한 몸쪽 패스트볼 공략을 당하기도 했는데, 아버지를 보며 호탕하게 웃어넘겼다고(...). 한편 2013년 드래프트에 나오는 셋째 아들 케이시 클레멘스(Kacy Clemens)는 우완투수/좌타 1루수로 나름대로의 가능성을 보이면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게 투수로 35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텍사스 주립대 입학 예정이라 지명순위가 밀린 것이며 밀려도 너무 밀렸다보니 프로 직행 가능성은 높지 않은 편. 이후 토론토 블루제이스 산하 마이너에서 활동 중이다. 클레멘스를 존경한 조바 체임벌린도 아들 이름을 Karter라 짓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탈삼진 투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한 시즌 300K는 한 번도 달성해 본 바가 없다. 시즌별 최고 탈삼진 기록은 97년 292개, 88년 291개로 조금만 운이 더 따라줬다면 할 수도 있었겠지만...

2012년에도 선수생활에 대한 미련이 남은 듯하다. 위증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뒤 2012년 8월에는 독립리그 팀과 계약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흠좀무한 사실이 한국나이로 51살이나 되는데 패스트볼 구속이 87마일을 기록했다(...).

2013년부터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피칭 인스트럭터로 활동한다.

2013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37.6%의 득표율[40]을 얻었다. 이는 배리 본즈의 36.2%와 크게 차이가 없는 수준. 2014년도에는 35.4%의 득표율을 얻었고, 2015년도 역시 37.5%의 득표율을 얻었다. 그다지 큰 변화는 없는 편. 2016년에는 45.2%로 클레멘스의 상황을 감안하면 꽤 올랐지만 투표인단 숫자가 줄어든 특혜[41]를 받았다고 보는중. 2017년에는 54.1%, 2018년에는 57.3%, 2019년에는 59.5%의 득표율을 얻었다. 아직까지는 입성이 어려워 보이긴 하지만[42], 계속해서 득표율이 오르는 것을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꽤 되는 듯 하다. 마이크 피아자도 결국 명전에 들어갔으니... 물론 피아자는 금지약물 복용자가 아니다. 그가 복용한 안드로스테네디온은 04년에 금지약물에 지정됐고, 피아자는 04년 이후 선수생활 말년이었으며 성적도 매우 안 좋았기 때문이다. 일단 2020년에도 약간만 오른 61%를 기록했다.

2014년 영화 보이후드에서 주인공이 누나와 아빠와 함께 로저 클레멘스 선발경기를 찾아가 응원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건 무려 2004년에 찍은 장면이다. 즉, 당시만 해도 로켓은 야구 최고의 스타 중 하나였고, 그 장면은 그냥 아빠와 애들이 야구장가서 좋아하는 장면을 찍은 것. 하지만 이후 약물파동과 함께 영화의 주제인 "모든 것은 시간과 함께 변화한다"를 어찌 보면 가장 섬뜩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되어버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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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는데, 같이 헌액되는 노마 가르시아파라,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상반되는 말년에 적잖은 보빠들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2015년에 명전에 입성한 페드로 역시 로켓과 함께 명전에 갈 줄 알았다...라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는 보빠들의 시선과도 부합하는데, 보사구팽의 수모를 견디지 못하고 약에 손댄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팬들이 레드삭스 네이션에는 의외로 꽤 있다. 물론 쿠퍼스타운 입성 여론과는 별개라면서 선을 긋는 이들이 많지만, 빼도박도 못하게 된 매니 라미레즈데이비드 오티즈와 달리 적어도 우리 팀에서 뛰었을 때는 절대 안 했을 거라는 믿음[43]으로 해석할 수 있으리라. 클레멘스 본인도 명전에 입성한다면 레드삭스 모자를 쓸 것이라 하는 등 보스턴 시절의 커리어를 좋은 기억으로 갖고 있는 모양이지만 난 명전 반드시 간다고 근자감을 뽐내는 배리 본즈와 달리 명전 입성 여부를 크게 개의치는 않는 모양.

조지 워커 부시와의 친분과 그의 선거 유세 캠프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사실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공화당 지지자이며 공화당 소속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외에는 특별히 정치적인 활동은 안 하는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대회에 뛸때 한 인터뷰에서 한일전당시 세탁소 주인들이 다 한일전을 보러 가서 그날 드라이 클리닝을 하지 못했다는 다소 인종 스테레오타입스런 드립을 쳐서 하여 약간의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해당 인터뷰 자체는 한국과 일본 팬들의 응원과 열정에 큰 감명을 받았다는 호의적인 내용이였던 관계로 그리 큰 문제로 번지진 않았다.


53세 때의 피칭. 녹슬지 않은 실력이다.

5. 연도별 성적[44]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4 BOS 21 133.1 9 4 0.692 4.32 146 13 34 126 67 64 1.313
1985 15 98.1 7 5 0.583 3.29 83 5 40 74 38 36 1.220
1986 33 254.0 24 4 0.857 2.48 179 21 71 238 77 70 0.969
1987 36 281.2 20 9 0.690 2.97 248 19 96 256 100 93 1.175
1988 35 264.0 18 12 0.600 2.93 217 17 72 291 93 86 1.057
1989 35 253.1 17 11 0.607 3.13 215 20 106 203 101 88 1.216
1990 31 228.1 21 6 0.778 1.93 193 7 64 209 59 49 1.082
1991 35 271.1 18 10 0.643 2.62 219 15 82 241 93 79 1.047
1992 32 246.2 18 11 0.621 2.41 203 11 76 208 80 66 1.074
1993 29 191.2 11 14 0.440 4.46 175 17 85 160 99 95 1.263
1994 24 170.2 9 7 0.563 2.85 124 15 76 168 62 54 1.143
1995 23 140.0 10 5 0.667 4.18 141 15 74 132 70 65 1.436
1996 34 242.2 10 13 0.435 3.63 216 19 112 257 106 98 1.327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7 TOR 34 264.0 21 7 0.750 2.05 204 9 81 292 65 60 1.030
1998 33 234.2 20 6 0.769 2.65 169 11 95 271 78 69 1.09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9 NYY 30 187.2 14 10 0.583 4.60 185 20 99 163 101 96 1.465
2000 32 204.1 13 8 0.619 3.70 184 26 94 188 96 84 1.312
2001 33 220.1 20 3 0.870 3.51 205 19 78 213 94 86 1.257
2002 29 180.0 13 6 0.684 4.35 172 18 76 192 94 87 1.306
2003 33 211.2 17 9 0.654 3.91 199 24 64 190 99 92 1.21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4 HOU 33 214.1 18 4 0.818 2.98 169 15 90 218 76 71 1.157
2005 32 211.1 13 8 0.619 1.87 151 11 70 185 51 44 1.008
2006 19 113.1 7 6 0.538 2.30 89 7 34 102 34 29 1.04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7 NYY 18 99.0 6 6 0.500 4.18 99 9 36 68 52 46 1.313
MLB 통산
(24시즌)
709 4916.2 354 184 0.658 3.12 4185 363 1802 4672 1885 1707 1.173

6. 관련 문서



[1] 통산 fWAR이 139.5로 역대 1위. 그 뒤를 511승 투수, 110완봉승 투수, 사이영상 4연패한 5000이닝 투수, 사이영상 5회 수상한 역대 최고 좌완투수, 5000K 투수가 뒤를 잇고 있다고 생각하면...[2] bWAR은 사이 영, 월터 존슨의 뒤를 이어 역대 3위. 140.3[3] 이 말은 60년대 MLB 올스타에 뽑혔던 밀트 파파스가 당시 마무리 투수로 올라왔던 스투 밀러의 공을 보고 했던, '그는 세 가지의 공을 던진다. 느린 공, 더 느린 공, 아주 느린 공.' 의 재해석에 가깝다. 말의 선후 관계를 고려하면 30년 가까이 먼저 나왔기 때문이다.[4] 클레멘스가 구위도 뛰어났지만 빠른 공의 완급조절에도 뛰어났다는 말일 수 있다. 같은 구질이라도 구속을 바꿔주면 굳이 느린 변화구를 던지지 않더라도 타자의 타격타이밍을 흔들 수 있다.[5] 행크 애런이 투수 주제에 MVP를 타는 것은 좀 그렇지 않냐는 말을 하자 "행크 애런이 현역이었으면 대가리를 쪼개놓아 내가 얼마나 가치있는지 보여줬을 것(I wish he were still playing. I'd probably crack his head open to show him how valuable I was.)"이란 당돌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참고로 행크 애런은 그의 30년 선배이다. 그야말로 아버지뻘 대선배..거기다가 애런은 베이브 루스의 통산 홈런 기록을 경신한 메이저리그 최고의 홈런왕이다. 장유유서 따위는 없는 메이저리그[6] 이후에 케리 우드, 랜디 존슨, 맥스 슈어저가 정규 이닝 20K 기록을 세웠지만 클레멘스처럼 2번이나 달성하지는 못했다.[7] 평균자책점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당시는 투고타저 시대였다. 밥 웰치는 bWAR 3.0, fWAR 1.8을 찍은 4선발급 투수였다. 로켓은 bWAR 10.6이다. 약쟁이 정의구현이라는 말도 안 통하는게 웰치보다 나은 성적을 낸 선수가 한 트럭이었다. 추가로 여러 정황상 클레멘스의 경우 1997년 혹은 1998년부터 약을 했다는게 정설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배리 본즈마냥 약물을 안했으면 약물 안한 때의 성적만으로도 명전 입성이 확정적이었다는 소리이다.[8] 당시에는 세이버메트릭스가 비주류였고 DIPS라는 개념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 시대에 와서 되돌아보면 그 해 클레멘스는 사이영은 만장일치요 MVP까지 노려볼 지경이었다. 베이스볼 레퍼런스 측정 WAR에서 그 해 MVP 리키 헨더슨도 제쳤을 정도니 말 다한 셈. 물론 당시에는 세이버 스탯이 비주류였던만큼 투승타타가 주류여서 27승을 기록한 웰치가 사이영 상을 수상하는 것에 대해 반발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크진 않았다.[9] 오늘날 클레멘스는 2001년 마이크 무시나를 제치고 사이영을 먹은 것이나 2004년 랜디 존슨을 제치고 사이영을 먹은 것 때문에 상복이 많았던 투수로 기억되곤 하는데, 최소한 레드삭스 시절에는 클레멘스는 상복이 많았다기보단 오히려 적은 편이었다. 그가 수상했던 타이틀이나 전성기 시절의 압도적인 성적을 감안하면, 오늘날의 투표 기준을 도입할 경우 사이영상을 다섯 번은 받을 수 있었고 MVP도 한번 더 노려봄직했다.[10] 이 황혼기 드립이 클레멘스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설이 유력하다.[11] 이 트레이드에서 데이비드 웰스가 블루제이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12] 사실 약켓급 선수가 원하는 번호라면 엔간하면 구단에서 나서서라도 조율하지만, 오닐이 타격왕까지 한 타자인데다 양키즈 황금기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라 건드릴 수가 없었다. 실제 양키즈에서 21번은 아직도 사실상 영결상태다.[13] 이전에도 4점대 ERA를 기록한 적은 3번 있지만 그때는 이때보다는 나았다.[그런데] 문제는 이미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는 코치가 있었고 선수단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소동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어쨌든 맥나미는 양키스 선수단과 함께 일하게 됐고 이는 구단에 약물이 더 퍼지는 현상을 야기했다.[명단] 미첼 리포트에 따르면 2000년~2001년에 약물 제공자 래돔스키는 양키스 선수 그림슬리, 척 노블락, 데니 니글, 글레날렌 힐, 데이빗 저스티스, 마이크 스탠튼에게 약물을 제공했다고 나와있다. 이후 호세 칸세코, 짐 리리츠, 앤디 페티트는 양키스에서의 약물 사용을 시인했다.[그러나] 이 시즌은 약으로도 어찌 해볼 수 없는 투수들의 지옥이었으며 클레멘스는 3.70으로 AL ERA 2위를 했지만 MLB 전체에서는 13위였고, ERA+로는 131이었는데 이는 MLB 1위였던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었다.[17] 이 시즌 2연속 수상자이던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후반기에 겨우 13이닝을 던지는 등 풀시즌을 소화하지 못한 영향이 있었다. 실제로 전반기 성적은 압도적이었다.[18] 앤디 페티트가 미첼 리포트에 걸린 부상에서 빨리 회복되기 위한 성장 호르몬 사용은 2002년 5월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맥나미의 만류에도 페티트의 부탁으로 이뤄졌다.[19] 이 소포의 영수증은 훗날 연방수사기관에 증거로 제출됐다.[20] 역사상 300승과 4000번째 탈삼진을 같은 게임에서 달성한 선수는 클레멘스가 유일하다. 확률상으로 따져도 이는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가능성이 높다.[21] 이 과정에서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돈 짐머 옹을 패대기쳤다[22] 클레멘스가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열어제낀 1986년은 NASASTS-51-L 챌린저 폭발사고로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을 전면 중단했던 연도이며, 2004년은 NASA가 STS-107 컬럼비아 폭발사고의 진상조사를 마치고 비행 복귀 연구를 진행하던 시기였다. 그냥 그럴듯하게 갖다 붙이는 별명이긴 하지만 묘한 아이러니를 풍기는 대목.[23] 당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타선 사정이 워낙 안습했던지라 승수로 보자면 13승으로 당해 수상자 크리스 카펜터나 2위 돈트렐 윌리스에 비해 보잘 것 없었으나, 1점대 ERA는 승수나 탈삼진, 이닝수가 부족하다고 깎아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년도 랜디 존슨을 꺾었더니 이번엔 자신이 부메랑을 맞은 셈. 뭐 승수를 제외하더라도 탈삼진이 경쟁자들보다 적기야 했다만...[24] 중간에 보스턴 레드삭스 클럽하우스를 방문하여 커트 실링 등의 삭스 선수들에게 환대를 받기도 했다. 또한 2월 쯤에 테오 엡스타인 레드삭스 단장은 로켓의 금의환향을 기원하는 보빠들의 염원을 담은 DVD를 선물하며 레드삭스로의 리턴을 진지하게 제안했다고.[25] 명목상 연봉은 22,000,022달러였다. 하지만 실수령액은 $12.2M 가량이었다고 한다.[26] 무려 28,000,022달러다! 물론 실수령액은 $17.4M 가량이지만.[27] 아메리칸리그에서는 1986년과 1987년에 4차례 있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돈 서튼이 연루된 경기.[28] 클레멘스의 약물 관련 인터뷰 영상을 분석하여 클레멘스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밝혔다.[29] 실링은 이전에 클레멘스가 보스턴으로 돌아오면 발레복을 입고 춤추겠다고 하기도 한 골수 로켓빠다.[30] 이렇게 써놓으니 별거 아닌 무명가수같은데, 맥크리디는 데뷔앨범부터 200만장을 팔았고 빌보드 컨트리 차트 1위도 해본 인기가수였다.[31] 이는 미국 각 주의 법에 따라 미성년자 강간 의혹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물론 민디 맥크리디는 성년이 된 이후부터 성관계를 가졌다고 말했지만.[32] 2013년 2월 민디 맥크리디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가 자살했다. 클레멘스 측에서도 슬픈 일이라며 성명을 표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대중들이 클레멘스와 민디의 검열삭제 비디오를 찾으려고 하자 포르노 업계에서도 자제를 당부하는 일까지 있었다.[33] 그런데 언론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배리 본즈는 전미가 하나되어 깠지만, 클레멘스의 경우 ESPN 등의 유력 매체들은 거의 실드를 쳐주는게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 그나마 배리 본즈를 옹호했던건 피터 개몬스 같은 소수 저널리스트 뿐이었다.[34] 미국에서 위증죄는 엄청난 중범죄이다. 닉슨, 클린턴이 탄핵 위기에 몰린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위증 때문이다.[35] 앤디 페티트 역시 HGH 복용 혐의가 드러났지만 곧장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는 점에서 클레멘스와 대조적이다.[36] 마약 복용 혐의를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강력히 부인하다가 뒤늦게 시인한 박유천이 만약 미국에서 그런 짓을 했으면 더 심한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37] 배리 본즈도 위증죄는 무죄가 되었는데, 당시 법정에서는 배리 본즈의 것으로 알려진 소변 샘플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38]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이라기 보단, 거친 성격 자체는 투수로서의 승부근성에 기인한 바가 더 크다.[39] 돈 드라이스데일의 대사로 알려져 있지만 이건 출처불명이고 이 발언을 실제 했던 건 이 사람이다.[40] 75%의 득표율이 나와야 헌액된다. 딱 절반 수준의 표를 얻은 셈이다.[41] 투표인단의 조건을 강화하면서 꽤 많은 선거인단이 투표권을 잃었는데, 이들의 상당수가 나이 많고 보수적인 이들이었기 때문에 본즈와 클레멘스, 실링 등은 투표자 수도 줄었지만 득표율은 수직 상승했다.[42] 남은 기간이 4년인데, 약물 관련 선수들은 17년과 18년 득표율 차이가 5%도 안 된다. 이는 2016년의 투표자 변화, 2017년의 버드 셀릭 특수 같은 특이한 이벤트가 다시 없다면 75%를 돌파할 정도 수준의 투표율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43] 다른 여러 약쟁이들과 달리 브라이언 맥나미 재판과 맞물린 클레멘스의 약물 복용 스토리는 꽤 상세하게 보도되었다.[44] 빨간색 글자는 시즌 1위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