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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렛 세이버하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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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렛 세이버하겐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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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브렛 세이버하겐
(캔자스시티 로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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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브렛 세이버하겐
(캔자스시티 로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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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89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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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트윈스)
브렛 세이버하겐
(캔자스시티 로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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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렛 세이버하겐
(캔자스시티 로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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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렛 세이버하겐
(캔자스시티 로열스)
밥 웰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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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화이트삭스)
브렛 세이버하겐
(캔자스시티 로열스)
로저 클레멘스
(보스턴 레드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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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000003973.jpg
브렛 세이버하겐
Bret Saberhagen
본명 브렛 윌리엄 세이버헤이건
Bret William Saberhagen
출생 1964년 4월 11일 ([age(1964-04-11)]세)
일리노이 주 시카고하이츠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 72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드래프트 19라운드 (전체 480번, KC)
소속 팀 캔자스시티 로열스 (1984~1991)
뉴욕 메츠 (1992~1995)
콜로라도 로키스 (1995)
보스턴 레드삭스 (1997~1999, 2001)

1. 개요2. 선수 경력
2.1. 캔자스시티 로열스2.2. 뉴욕 메츠 시절과 말년
3. 은퇴 후4. 피칭 스타일5. 기타6. 연도별 성적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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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saberhagen.jpeg.jpg

메이저리그의 전 야구선수. 1980년대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전성기 당시 팀의 에이스였으며 창단 첫 우승을 이끈 투수로 조지 브렛과 함께 로열스의 투타를 대표하는 선수이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피네스피처로 전성기 당시 리그 최강의 제구력을 바탕으로 사이 영 상을 2회 석권할 정도로 뛰어난 투수였으나,[1] 부상과 기량하락으로 인해 전성기가 짧았으며, 이로 인해 타 수상자들에 비해 누적 스탯도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통산 16시즌 399경기 2562.2이닝 167승 117패 3.34ERA/126ERA+ 1715K/471BB(3.64K/BB) 1.7BB/9 3.27FIP 1.141WHIP 76완투/16완봉 58.9bWAR.

2. 선수 경력

2.1. 캔자스시티 로열스

일리노이 주 시카고헤이츠에서 태어난 세이버하겐은 그로버 클리블랜드 하이스쿨 재학 당시 미식축구,농구와 야구를 병행하며 농구와 야구에서 두각을 나타냈었다. 특히 그가 3학년이던 1982년에는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로스앤젤레스 시 챔피언십에서 노히터를 기록하기도 했다.

1982년 드래프트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19라운드에서 지명된 그는 입단 후인 1983년 싱글 A와 AA를 거치며 27경기 16승 7패 2.55를 기록하며 마이너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이런 빠른 성장세를 주목하던 구단을 그를 1984년부터 메이저리그로 콜업시켜 기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는 구단의 기대를 저버리지않고 1984년 4월 4일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4.2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10승 11패 3.48이라는 20살 신인으로서 훌륭한 성적을 거두며 로열스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일조한다.

다른 해였다면 신인왕도 노려봄직한 성적이었지만 문제는 당시 아메리칸 리그에는 시애틀 매리너스에 불과 23살의 나이로 데뷔하여 27홈런에 116타점이라는 왠만한 상위팀 클린업에 버금가는 성적을 올린 앨빈 데이비스와 17승을 거둔 탈삼진 1위 타이틀의 마크 랭스턴이라는 신인 2인방이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후에 미네소타 트윈스의 간판 타자로 성장하는 커비 퍼켓과 역시 보스턴 레드삭스 에이스가 되는 로저 클레멘스등에 묻혀 신인왕 투표에서는 단 1표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비인기 팀이었던 소속팀 로열스의 투수라는 것으로 인해 완전히 묻혀버렸다.

다만 그도 다른 신인들에게 내세울만한 무기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그것은 바로 제구력. 비록 규정 이닝을 불과 4.1이닝만을 남기고 채우지는 못하였으나 9이닝 당 볼넷은 2.1개에 불과할 정도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리그의 쟁쟁한 투수들에 버금가는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러한 제구력을 바탕으로 이듬해인 1985년에는 기량이 만개, 20승 6패 2.87이라는 리그 정상급의 활약을 펼치며 일약 최고의 스타 중 한명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특히 이 해 신인 때 부터 장점을 평가하던 제구력이 정점을 찍었는데 235.1이닝을 소화하며 그가 내준 볼넷은 단 38개. 9이닝 당 1.5개로 9이닝 볼넷허용율이 리그 최소에 달할 정도로 뛰어난 제구력을 보였으며, 이로 인해 구위로 윽박지르는 파워피처형 투수가 아님이었으에도 불구하고 볼삼비 역시 리그 1위를 기록하는 등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으며 이를 인정받아 그 해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을 수상한다.

팀인 로열스 역시 사이 영 상을 수상한 그의 활약을 필두로한 찰리 레이브란트, 대니 잭슨, 마크 구비자 등으로 구성된 젊은 선발진의 활약과 타선의 조지 브렛, 스티브 발보니를 앞세운 타선으로 91승을 거두며 지구 우승을 확정지었으며 그해 ALCS에서 데이브 스티브, 조지 벨이 이끌던 99승을 거둔 동부지구의 강자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꺾고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였고, 세이버하겐은 월드 시리즈에서 1, 2차전 패배로 패색이 짗어지던 로열스를 3차전 완투승으로 기사회생시켰으며, 시리즈 최종전이었던 7차전에서는 카디널스의 에이스 존 튜더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며 팀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며 월드 시리즈 MVP에 선정되는 등 최고의 해를 보낸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6년, 세이버하겐은 작년의 무리한 혹사로 인해 성적이 급감, 규정이닝을 미달성하였으며 불과 7승을 거두는 데에 그쳤으며 평균자책점도 4점대로 대폭 하락하는 등 부침을 겪었으나, 다음 해인 1987년에는 다시 18승 10패에 3.36이란 성적을 거둠과 동시에 257이닝을 소화하며 그 해 재기상을 수상하지만 이러한 활약에 고무된 구단의 혹사로 인해 1988년 무려 260.2 이닝이라는 지독한 혹사를 당함과 동시에 아메리칸 리그 최다 피안타라는 불명예 기록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다시 절치부심한 1989년, 세이버하겐은 1985년을 넘어서는 자신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게 되는데 262.1 이닝 동안 23승 6패 2.16을 기록하며 다승왕, 평균자책점왕을 동시에 석권하였으며, 볼삼비 역시 리그 1위를 기록하며 생애 두번째 사이 영 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그동안의 혹사로 인한 피로 누적은 그도 피해갈 수 없었고, 결국 1990년에는 5승 7패 2.98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바탕으로 올스타전에도 출전하나 부상으로 인해 후반기에 승리없이 단 2패만을 추가하는데 그친다.


1991년에는 다시 반등, 13승 8패 3.07이라는 성적을 거둠과 동시에 8월 26일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노히터를 기록하는 등 활약하였으나 구단은 그의 심해지는 기량하락과 부상을 이유로 그를 2대 3 트레이드를 통해 뉴욕 메츠로 보내버린다.

2.2. 뉴욕 메츠 시절과 말년

파일:bret-saberhagen.jpg

메츠에서 맞은 첫 해인 1992년, 세이버하겐은 8월 중에 생긴 갑작스런 손가락염증으로 시즌아웃이 되며 3승 5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거둔 것을 시작으로 1993년에도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을 받으며 시즌 아웃이 되며 불과 7승을 거두는 데에 그쳤고, 팀의 성적이 바닥을 치던 와중에 기자들에게 물총과 표백제를 뿌리는 등의 기행을 보이는 등 최악의 해를 보내게 되고, 소속팀인 메츠는 59승 103패라는 성적으로 아메리칸 리그 7위를 기록한다.

결국 메츠는 재정의 악화와 더불어 더 이상 그에게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1994년을 앞두고 그를 트레이드하려고 애를 썼으나 로열스 시절 맺은 계약기간이 3년이나 남았던 탓에 한물 간 투수로 평가받던 노장인 그를 원하던 팀이 없어 우여곡절 끝에 팀에 잔류, 그 해 자신의 최후의 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한물 갔다는 세간의 평가를 뒤집고 그는 그해 14승 4패 평균자책점 2.74를 기록, 특히 볼넷을 단 13개를 기록하며 9이닝 당 볼넷 허용율이 0.7개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으며 볼삼비는 역시 리그1위를 차지한다.[2]

그러나 팀 내 그의 입지는 변함이 없어 메츠는 1995년 7월 31일, 2명의 선수를 받는 조건으로 그를 콜로라도 로키스로 트레이드 시킨다.

파일:gettyimages-77015756-1024x1024.jpg

그러나 문제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 쿠어스 필드는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구장이었고, 전성기가 지난 그에게 쿠어스 필드는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세이버하겐은 로키스에서는 2승 1패 평균자책점 6.28에 그쳤고 팀은 포스트시즌에 탈락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6년에는 그간 누적된 혹사로 시즌 아웃. 5월 22일, 1987년 이후 또다시 어깨부상으로 결국 수술대에 올라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재활을 하게 되었고 로키스에서도 방출되는 수모를 겪었고, 이후 1997년,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하며 재활 등판을 거쳐 다시 빅리그로 돌아오지만 6경기 출장, 1패 평균자책점은 6.58에 이르는 부진을 겪었고 다시 방출되었다.

파일:3R4FKWQYPVF3PEEKDEUKJSLW3A.jpg

하지만 1998년 다시 레드삭스와 계약하며 15승 8패로 두번째 재기상을 수상하고 1999년에는 10승 6패를 기록하며 부활하는 듯 했으나 그 해 11월 또 생애 3번째 어깨수술을 하게 되며 다시 재활을 하게된다. 

이후 세이버하겐은 2001년 7월 27일에 다시 마운드를 밟지만, 전성기의 그는 찾아 볼 수가 없었고 3경기 등판 평균자책점 6.00에 그치던 중 또 다시 찾아온 어깨부상으로 인해 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되었고 부상자 명단에 있던 8월 9일에 은퇴를 선언하며 커리어를 마친다.

3. 은퇴 후

4. 피칭 스타일

파일:세이버하겐.gif
파일:세이버하겐2.gif
세이버하겐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뛰어난 제구력. 비록 당시 내셔널리그의 대표 투수였던 드와이트 구든이나, 같은 리그의 로저 클레멘스와 같이 불같은 강속구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를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제구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그는 피네스 피처 중에서도 볼넷을 절대 내주지 않는 스타일로 유명했는데, 예시로 그가 로열스에서 뛰었던 1984년부터 1991년까지의 8년간의 시즌 중 그가 9이닝 당 볼넷이 2개 이상으로 내려간 시즌은 단 3번, 통산 기록은 9이닝 당 단 1.7개라는 것에서 알 수 있다.[3] 전성기에서 내려온 메츠 시절에도 이 제구력은 변하지 않아서 14승을 거둔 1994년에는 단 13개의 볼넷을 허용하며 볼넷보다 승수가 더 많은 진기록을 보여주기도 했다.

구위역시 당대 대표 투수들에 비해 떨어졌던 것으로 전성기 당시에는 괜찮은 무브먼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패스트볼이 90마일 초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브먼트로 이를 상쇄하였다.

5. 기타

  • 캔자스시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메츠와의 남은 계약을 세이버하겐 본인의 요청에 따라 2004년부터 2028년까지 매년 25만 달러를 지급받는 분할 상환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6. 연도별 성적

7. 관련 문서


[1] 1989년 bWAR이 9.7이나 된다.[2] 이 해 볼삼비는 11개로 2014년 필 휴즈가 11.63개로 경신하기 전까지 역대 1위의 기록이었다.[3] 1985년 AL 9이닝 당 최소 볼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