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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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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한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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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84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1번
이윤섭(1982~1984) 이문한(1985) 임경택(1986)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8번
천창호(1982~1985) 이문한(1986) 임경택(1987~199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8번
장태수(1987~1988) 이문한(1989~1991) 김태한(1992~20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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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영원히 볼 수 없을 롯데 운영팀장 시절.
이름 이문한(李門翰 / Moon-Han Lee)
생년월일 1961년 7월 3일 (만 [age(1961-07-03)]세)
출신지 부산광역시
학력 경남상고 - 동국대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4년 1차지명 (롯데 자이언츠)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84~1988)
삼성 라이온즈 (1989~1991)
프런트 삼성 라이온즈 스카우터
지바 롯데 마린즈 국제편성부 부장 (2010~2011)
롯데 자이언츠 운영부장 (2012~2014)

1. 소개2. 선수 시절3. 스카우트4. 은퇴 이후5. 연도별 성적

1. 소개

전 야구선수.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한 좌완투수. 전 롯데 자이언츠 운영부장.

2. 선수 시절

1984년 롯데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며,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우승반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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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선수시절에 꽤 훈남이었다. 설마 권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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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삼성 라이온즈 현역 선수시절

1989년 초 장효조, 장태수를 상대로 김용철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트레이드되었다. 이후 중간계투로 등판하다가 1991년에 은퇴했다.

3. 스카우트

현역 시절에는 그저 그런 좌완투수였지만, 은퇴 후 삼성의 스카우트 팀에 합류해 1990년대 초중반 삼성의 신인 지명에 큰 기여를 했다. 이승엽[1], 김한수, 박충식, 동봉철, 김재걸 등이 그가 관여해 지명한 선수들. 이밖에 규정의 허점을 파고들어서 이문한 때문에 규정이 바뀐 것도 여러 번이고, 이로 인해 타 팀 스카우트들에게도 공공의 적으로 찍힐 정도였다. 하여간 삼성에게는 큰 공헌을 한 만큼, 보통 7년 정도 일해야 다는 과장직을 이문한은 불과 4년 반만에 다는 등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묻혀지긴 했지만 야구 스카우트계에서는 엄청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2004년부터 국제 스카우트 부장을 맡아 미국에 상주하며 외국인 전담 스카우트로 나서며 욕을 먹었다. 그가 추천한 외국인 선수들은 대개 성적이 좋으면 성격이 안 좋았고, 성격이 좋으면 성적이 안 좋았기 때문. 하지만 당시 외국인 선수 영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건 감독이었던 선동열이었는데, 외국인선수 리스트에서 이문한이 강력 추천한다고 표시까지 해 둔 선수를 제쳐놓고 다른 선수를 선택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두 차례 WBC 대표팀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었고, 2011년 치바 롯데 마린즈의 국제 운영 에디터 겸 섭외 담당을 거쳐 2011년 말 친정인 롯데 자이언츠의 운영부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장병수 같은 무능한 사장밑에서 있던 배재후 단장이 나름 프런트를 개혁하기 위해서 그를 불러들였으며, 당시 능력이 워낙 우수한지라 지바롯데에서는 이문한을 잡아두려고 애를 썼다. 당시 가족들도 지바롯데에 잔류하자고 주장했으나, 이문한 본인은 고향팀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부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이는 오히려 그의 야구인생을 완전히 끝내버리는 패착이 되고 만다.

롯데에서의 업적은 다음과 같다.

FA 이대호 100억 제시[2]
FA 이승호(1981년생)24억 4년계약[3]
FA 정대현 36억 4년계약[4]
2012.1.4일자로 재계약율 85.71%를 기록하는데 모자라 롯데팬이 이해할 만한 연봉으로 인상해주고 있다.

사실 업적만 보면 상당히 유능한 인물이기는 하다. 당시 직책도 운영부장이었기에 최하진, 배재후가 불명예 퇴진하지 않았다면 단장 자리를 이어받았을 가능성이 다분하다.[5]

그러나 2014년 시즌 종료 후 공필성, 권두조, 배재후 등과 함께 암적 존재로 비난받고 10월 30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11월 6일, 배재후 단장, 최하진 사장이 줄줄이 사퇴했는데, 선수들의 CCTV 시찰을 지시한 사람이 최하진 사장인지라 그나마 까임이 덜한 상황.

11월 12일에 결국 사퇴했다. 일단 자기가 뒤집어 쓴 오해는 전부 해소하고 사퇴하려 했던 모양. 다만 사장에게 반발한 장성호를 압박하여 은퇴시키려고 한 것 등, 최하진 사장의 수족 역할을 한 것은 쉴드칠 수 없다.
그러나 2015년 3월 12일, 실제로는 이문한이 선수단 사찰을 오히려 막았다며 선수단이 그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이후 모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롯데에서 물러나고 너무나 힘들어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해봤다고 하며, 최하진 과의 카톡내용을 공개했는데, 이문한 자신은 가운데 끼어서 어떻게든 최대한 조율을 하려고 했던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인터뷰 1부 인터뷰 2부

4. 은퇴 이후

2016년 6월 기사에 따르면, 스크린야구 업체인 레전드야구존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4 롯데 16 50 1 4 0 0.200 5.58 52 8 19 17 32 31 1.38
1985 군복무
1986
1987 13 36 1 0 0 1.000 2.75 25 2 24 16 11 11 1.36
1988 16 57 3 1 1 0.750 2.68 40 5 19 26 19 17 1.00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9 삼성 26 57 2 0 1 1.000 4.42 56 6 40 31 31 28 1.67
1990 26 52 2 4 1 0.333 3.98 42 6 37 11 26 23 1.48
1991 8 19 0 0 0 - 6.63 22 6 6 4 14 14 1.47
KBO 통산
(6시즌)
105 271 9 9 3 0.500 4.12 237 33 145 105 133 124 1.38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87년 1완투 0완봉
1988년 1완투 0완봉
KBO 통산 2완투 0완봉


[1] 이승엽이 한양대입학설이 나돌때 이미 집까지 매일마다 찾아와서 삼성입단을 계속 설득했다고 한다.[2] 그러나 이문한 부임이전에 연봉협상 건을 비롯해 여러가지로 구단과의 관계가 많이 틀어진지라, 결국 일본으로 갔다.[3] 결과적으로 보면 1년밖에 써먹지 못했다. 이승호는 2012시즌이 끝나고 NC의 특별지명을 받으면서 NC로 가버렸고, 거기서 먹튀 짓을하고 방출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롯데는 1년에 계약금 6억+첫해 연봉 3억5천을 쓰면서 3점대 후반의 불펜투수를 얻은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나 보상금 10억과 이승호의 부진을 감안하면 재정적으로는 5000만원 이익이다.[4] 결과적으로 보면 정대현은 롯데 이적 후 잔부상에 시달리며 제대로 나오지도 못하였고 연 평균 40.25경기에 등판하여 35이닝을 소화했다. 그러나 막상 방어율을 보면 먹튀라고 단정짓기는 애매하다. 오버페이라는게 중론이다.[5] 전전임 이상구, 전임 배재후 전부 운영부장에서 단장으로 승진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