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20 21:22:47

임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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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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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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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
정태균
삼성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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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달식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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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대 <rowcolor=#fff> 3대 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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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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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농구 감독
파일:/image/001/2011/03/20/PYH2011032005020006500_P2.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임달식
林達植
출생 1964년 11월 16일 ([age(1964-11-16)]세)
서울특별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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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84cm
직업 농구 선수 (가드 / 은퇴)
농구 감독
학력 휘문고 - 고려대
실업 입단 1986년 현대중공업 농구단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현대중공업-현대전자 농구단 (1986~1993)
감독 조선대학교 농구부 (2001~2007)
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2007~2014)

1. 개요2. 선수 경력3. 방황4. 감독 경력5.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 출신 감독.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가진 감독이다. 한때 삶의 밑바닥까지 갔으나 극적으로 재기해서 여자 농구계에서 무적 전설을 쓰면서 일약 명장의 반열에 오른 인물.

2. 선수 경력

파일:임달식 고려대 시절.jpg

휘문고 재학 시절 청소년 대표에도 선발되었던 나름대로 촉망받는 선수였다. 그 재능을 인정받아 고려대학교에 스카우트되면서 대학 무대에서도 제법 괜찮은 활약을 보였고 대학 무대에서도 재능을 인정받으며 현대전자에 스카우트가 되었고 실업 무대에 데뷔하였다. 실업 무대에서도 그럭저럭 자기 몫을 충실하게 소화하며 1986년에는 국가대표로도 선발될 정도로 괜찮은 재능을 보였다.

비록 특급의 스타는 아니었고 준수한 슈팅력에 수비력이 빼어나서 상대의 에이스를 막는데는 제격인 선수였다. 근성도 있고, 악착같은 면모가 있기 때문에 팀에서는 소금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선수. 추가로 외모 덕분에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래서 이대로 선수 생활이 계속 흘러갔다면, 임달식의 인생은 아무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평생의 꼬리표가 붙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1991년 3월 3일 부산에서 열린 1990-1991 농구대잔치 결승 2차전에서 기아자동차허재를 막다가 시비가 붙으면서 자기 팀의 김성욱과 함께[1] 주먹 다짐으로 연결되어 집단 패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경기는 난장판이 되었고, 각종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사실 허재가 실업 무대에 등장했을 때부터 임달식의 주된 임무는 허재의 전담 마크맨이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쌓인 감정이 이 때 이르러 폭발한 것이다. 먼저 주먹을 날렸다는 이유[2]로 임달식은 1년간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이 때부터 임달식에게는 "허재를 때린 그 선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나중에 징계는 6개월 정지로 감면되었지만 이 일로 인해 임달식은 농구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결국 1992년 팀을 이탈한 후 이듬해인 1993년 조용히 유니폼을 벗었다.[3]

3. 방황

운동 선수로서의 경력은 나름 화려했지만, 은퇴 후의 삶은 쉽지 않았다. 강남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했지만,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식당 단골이던 프로 골퍼들의 권유로 1997년 세미 프로 자격증을 취득하고 프로 2부 투어에 도전했다. 그러나 골프는 생각만큼 쉬운 종목이 아니었고, 상금 수입도 거의 없었다. 여기에 식당 운영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제적인 부담이 커졌다. IMF 경제 위기까지 겹치면서 결국 집을 잃고 월세방으로 이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캐나다 이민을 고려했고, 실제로 이민 수속까지 마쳤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족과 주변의 만류로 결국 한국에 남기로 결정했다. 이후 자신의 가장 익숙한 분야였던 농구로 돌아가기로 결심하며 지도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4. 감독 경력

2001년 고려대학교 시절 은사인 박한 감독의 추천으로 당시 2부 리그에 속해 있던 조선대학교 농구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조선대학교 농구부는 열악한 환경과 낮은 선수들의 의욕으로 인해, 2부 리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팀이었다. 그러나 임달식은 강도 높은 훈련과 동기부여를 통해 선수들의 의욕과 실력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결과적으로 조선대학교 농구부는 2부 리그에서 독보적인 강팀이 되었고, 2004년부터는 마침내 1부 리그 진입에 성공했다.

초기 1부 리그에서는 전력이 부족해 모든 팀들에게 패배하는 약팀으로 평가받았다. 선수 부족으로 인해 공개 테스트까지 진행할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꾸준한 노력 끝에 점차 승리를 거두기 시작했고, 전국체전 준우승이라는 뛰어난 성과도 이뤄냈다. 뿐만 아니라 프로농구 드래프트에서 선수를 배출하는 등 명실상부한 강팀으로 성장했다.

조선대학교에서 6년 동안 감독직을 수행한 후 여자농구팀 신한은행의 감독 자리에 도전했다. 당시 무려 17:1의 경쟁률을 기록한 신한은행 감독직에 당당히 선임되며 본격적인 프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신한은행 감독 초기에는 비판과 의심도 많았다. 이미 전임 이영주 감독이 팀을 우승권으로 만들어 놓았고, 하은주정선민 등 초강력 선수들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누구라도 우승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규시즌 5연패와 챔피언결정전 5연패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하며 점차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이후 2011-12 시즌 정선민의 이적과 전주원의 은퇴로 전력이 약화되었다는 평가 속에서도 오히려 더욱 강한 팀을 구축하며 압도적인 우승을 거둬 6연패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최윤아, 김단비, 강영숙, 이연화 같은 식스맨 출신의 선수들을 주전급 스타로 성장시키며 임달식의 지도력은 재평가되었다. 그에게는 ‘농구의 달인’이라는 의미로 '농달'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대한민국 여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도 활약했다.

그러나 2012-13 시즌 이후 원래 자신 밑에서 코치를 하고 있던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 전주원 코치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2013-14 챔피언결정전에서 우리은행에 패한 뒤 신한은행 감독직에서 경질되었다.[4] 갑작스러운 경질은 팬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통산 199승으로 단 1승 차이로 200승 달성을 눈앞에 두고 물러난 점도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WNBA 시애틀 스톰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뒤, 2016년 중국여자프로농구 산시 팀과 3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문화적 차이와 적응 문제로 인해 3개월 만에 사퇴했다.

임달식 감독이 국가대표를 맡던 시기 대한민국 여자농구는 아시아에서 중국과 대등한 경쟁을 펼치며 꾸준히 성적을 냈다.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8강 진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개최국 중국의 편파 판정 속에서도 은메달을 따는 등 뛰어난 지도력을 입증하며 이후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 선임시마다 최우선 후보로 언급되곤 했다.

5. 관련 문서



[1] 이 김성욱이 일명 싸움대장으로 불렸을 정도로 성격이 난폭했다.[2] 임달식이 허재의 얼굴을 팔꿈치로 가격하는 수준의 반칙을 저질렀다. 그리고 적반하장으로 허재를 주먹으로 치려는 제스쳐를 취했고, 허재가 머리를 들이받자 주먹을 날렸다.[3] 물론 나중에 인생역전의 스토리로써 임달식이 인생의 밑바닥에서 올라온 것은 높게 평가받아야 하지만 이 당시 인생을 밑바닥으로 보낸 단초를 제공한 허재와의 일은 임달식 본인이 잘못한 게 맞다. 팔꿈치로 가격하는 반칙에 오히려 주먹을 먼저 날렸으니 상대가 허재가 아니었어도 이슈가 컸을 문제로 대다수 농구 올드팬에게 기억됐고 실제로 90년대에 신문 1면을 장식했는데 90년대 신문 1면이면 나라안에서 가장 유명한 일이라고 봐도 된다.[4] 후임은 정인교 감독이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