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호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박광호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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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호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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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농구인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박광호 朴光鎬 | |
생년월일 | 1954년 3월 21일 ([age(1954-03-21)]세)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농구선수(포워드 / 은퇴) 농구감독 | |
학력 | 용산고 - 성균관대 | |
실업 입단 | 1978년 현대중공업 실업농구단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현대중공업 실업농구단 (1978~1982) |
코치 | 상무 농구단 (1983~1990)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1989~1991) | |
감독 | 상무 농구단 (1990~1995) 대구 동양 오리온스 (1997~2000) 천안 KB국민은행 세이버스 (2000~2002) | |
행정 | 한국농구연맹 (2004~2008 / 경기위원장) 한국농구연맹 (2008~2011 / 심판위원장) 대한민국농구협회 (2013~2014 / 경기위원장, 심판위원장) 한국농구연맹 (2021~2022 / 경기본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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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농구인. 포지션은 가드였다.2. 선수 경력
용산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당시 신선우, 박수교와 현대중공업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활약했다.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1982년 상무 농구단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1990년에 김홍배[1] 감독이 농구부장으로 승진하면서 30대에 감독직을 맡았다. 감독 부임 후 코리안리그에서 수차례 우승을 하였고 1993/94 대통령배 농구대잔치 때는 당시 복무 중이던 오성식, 정재근, 이창수, 김상식 등을 이끌고 결승까지 올랐으나, 서장훈과 문경은이 이끄는 연세대학교 농구부에 패했다. 그리고 1995년도에는 학연에 얽매이지 않고 삼성전자(고려대)에서 은퇴한 김진을 코치로 선발했다.상무에서 코치와 감독 생활을 하며 1986년에는 실업농구연맹 지도자상(최현열 회장)을 수상하였고,1993년에는 대한민국농구협회에서 지도자상(김상하 회장)을 수상하였다.
1995년부터는 동양제과 농구단 창단 작업을 시작하여 1996년 동양제과 농구단의 창단과 함께 KBL 프로농구 출범에 맞추어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창단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 때 김진 코치도 창단 멤버로 데리고 갔다. 김진 코치는 존경을 표시했으며 박광호 감독과 함께 명장으로 성장했다. 동양은 포인트 가드가 약했지만 전희철과 김병철을 앞세워 돌풍을 일으키며 창단 후 2년 연속 정규리그 4위와 플레이오프 4강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1998-99 시즌을 앞두고 김병철과 허남영, 박재일의 상무 입대, 전희철의 공익근무요원 입대, 시즌 초반 그렉 콜버트의 무단 이탈 및 존 다지의 기량 미달, 파탄난 선수층 등으로 인해 32연패를 포함한 3승 42패라는 프로스포츠 사상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말았다.
차기 시즌 조우현을 선발하면서 명예회복을 준비했지만, 2000년 새해를 앞두고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이후 여자농구 천안 국민은행 세이버스 감독을 맡으며 다시 한 번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2002년 정규리그 우승과 함께 챔프전 준우승을하며 시상식에서 WKBL 지도자상(총재 김원길)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2년 여름리그 때 성적 부진으로 사퇴했다. 후임으로 정태균 감독이 부임하게 된다.
4. 행정가 경력
2002년부터 KBL 경기위원장을 거쳐 2008년 신임 심판위원장으로 선임된 이후 2011년까지 맡게 된다.이후, 2013년 대한농구협회 경기위원장, 심판위원장을 겸임하게 되었다.
2021년 7월부터는 신임 김희옥 총재, 신임 오병남 전무이사와 함께 KBL 경기본부장으로 선임되었다.
5. 관련 문서
[1] 1962년 육군 복무 때부터 이 곳에 입단한 후 1970년부터 해체 시까지 4년여 간 코치를 맡았고, 1981년 육군복지근무단 농구단 창단 시부터 감독이 되어 1984년 상무 출범 때도 그대로 선임됐다. 1995년 복귀 후 1999년 정년퇴임 시까지 이 곳에 몸담았고, 그 후 상무 농구단 기술감독,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한국실업농구연맹 회장 등을 역임했다.(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