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08 19:55:29

손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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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백재호 · 78 김일경 · 79 최창호 · 80 박경완 · 81 장재중 · 82 김필중 · 83 손혁
· 84 조동화 · 85 염경엽 [[감독#s-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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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환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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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등번호 58번
조현(1995~1996) 손지환(1997~2003) 박기남(2004~2006)
KIA 타이거즈 등번호 33번
심제훈(2003) 손지환(2004~2006) 김주형(2007~2008)
KIA 타이거즈 등번호 5번
김주형(2004~2006) 손지환(2007) 유용목(2008~200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번
김종훈(1997~2007) 손지환(2008) 손주인(2009)
SK 와이번스 등번호 67번
김장준 손지환(2009) 박진원(2010~2012)
한화 이글스 등번호 93번
백재호(2009) 손지환(2010) 문동환(2011~2012)
SK 와이번스 등번호 75번
김용희(2012~2013) 손지환(2014~)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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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sksports.net/20130110150316_1.jpg
SK 와이번스 No.75
손지환(孫智煥 / Ji-Hwan Son)
생년월일 1978년 11월 13일 ([age(1978-11-13)]세)
신체 180cm, 87kg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관악구
출신학교 인헌초 - 휘문중 - 휘문고
포지션 2루수, 3루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7년 고졸우선지명 (LG)
소속팀 LG 트윈스 (1997~2003)
KIA 타이거즈 (2004~2007)
삼성 라이온즈 (2008)
SK 와이번스 (2009)
코리아 해치[1] (2010)
한화 이글스 (2010)
지도자 경력 SK 와이번스 루키 수비코치 (2013~2016)
SK 와이번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16)
SK 와이번스 루키군 야수코치 (2017)
SK 와이번스 2군 수비코치 (2018)
SK 와이번스 1군 수비코치 (2018.7.14~)
응원가 파일:Twins_logo.png새우깡 CM송[2]
하하하쏭[3]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프로 시절
3. 지도자 경력4. 여담5.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LG 트윈스,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 소속의 내야수. 現 SK 와이번스의 1군 수비코치.

현역 시절 KBO 리그 최초이자 유일한 무보살 삼중살을 성공한 적 있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휘문고 3학년 때 대통령기와 청룡기를 우승시키며 2관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연세대학교 진학이 확정된 상태에서 막판에 LG 트윈스와 입단계약을 체결하여 이중등록이 되었고, 이에 반발한 대학야구 관계자들이 '앞으로 휘문고 선수들을 절대 받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하면서 프로와 대학이 전면대립하는 엄청난 스카우트 파동으로 비화되었다.[4] 휘문고 측에서는 손지환에게 학교 명예를 실추시킨 책임을 물어 자퇴를 종용했다.[5]

2.2. 프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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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시작부터 좋지 않았던 LG 트윈스 현역 선수시절

우여곡절 끝에 1997년 고졸우선지명으로 김민기, 박만채와 함께 LG에서 데뷔했다.

선수 활동기간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경험은 없다. 준우승 3번의 콩라인. 고등학교 시절의 명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헤매다가 2004년에 진필중의 FA 보상 선수로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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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이적 이후 전화위복된 KIA 타이거즈 현역 선수시절

이적 후 이현곤의 공백을 메움과 동시에 2004, 2005년 2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치며 어째 FA로 이적한 진필중보다 더 쏠쏠하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혹자는 누가 FA고 누가 보상선수냐?라고 하기도…. 그리고 2007년 6월 12일 삼성 라이온즈와 경기에서 무보살 삼중살을 펼치는 메이저리그식 장면을 연출 했다.[6] 그 때문에 삼성은 앙심이 있었는지, 2008년 유용목과 트레이드하여 영입했다. 삼성이 2007시즌 삼중살 때문에 낚여서 손지환을 데려가서 써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KIA 타이거즈에서 삼중살로 유명해 진 뒤 2008시즌에서는 삼성에서 주로 백업멤버로 뛰었고 여기서도 하락세를 겪었다.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80311172651731.jpg
(출처 : 포토로)
운이 따라주지 못해 안습했던 삼성 라이온즈 현역 선수시절

신명철, 허승민과 함께 타율이 안습대에 머물다가 박석민의 홈런 이후 대인배 회장 송진우에게 역전 솔로 홈런을 쳤으며 삼성을 기적의 4강으로 올려야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7] 08시즌에는 패넌트레이스 전용이며 포스트시즌 전용은 유혹의 명철신에게 돌아갔다.

2008시즌 종료 뒤 삼성에서 방출, LG에서 한솥밥을 먹던 김성근 감독의 SK 와이번스로 이적. 2009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팀이 준우승을 하는 바람에 콩라인 탈퇴에는 실패했다.

09시즌 이후 방출. 괜찮은 내야수긴 하지만 경쟁자가 최정, 정근우, 나주환, 박정권, 김연훈[8]이어서 괜찮다는 것만 가지고 SK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울듯 싶었고 현실이 되었다.

그 뒤 일본 실업리그(정확히는 독립리그)에서 뛰다가, 주전 3루수송광민이 시즌 중 군입대라는 초유의 해프닝으로 이탈하여 3루수가 필요해진 한화 이글스가 신고선수로 영입했다.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100814182801444.jpg
(출처 : 포토로)
제 기량을 발휘하다 뜻하지 않게 병약해져 끝이 나버린 한화 이글스의 현역 선수시절

오선진의 부상으로 2010년 7월 27일 1군에 콜업되어, 몇 경기 안되지만 제법 괜찮은 타격을 선보여주고 있다. 수비야 그다지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한화 내야가 원래 막장이니….

2010년 8월 14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장원삼으로부터 투런 홈런을 치며, 근 2년만의 홈런맛을 봤다. 2:8로 진 한화 이글스의 유일한 득점…. 당연히 빛이 바랬다.

2010년 8월 28일 두산임태훈의 공에 번트를 대려다 오른손 엄지골절상으로 6주간 출전 불가. 시즌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시즌 아웃됐다. 이래저래 기구한 야구인생. 그리고 시즌 종료후 젊은 선수들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방출되며 저니맨 커리어를 따라 가게 되었다.

3. 지도자 경력

한화 방출 이후 소리없이 은퇴하고 SK의 프런트로 재직했다. 비록 선수로는 한 시즌밖에 뛰지 않았지만, SK 와이번스프런트로 입사하여 2011년부터 SK 구단에서 실시하는 사회인 및 여성 야구 교실에서 코치 신분으로 지도해 주었다.

이후 2013년 시즌을 앞두고 SK의 3군 선수단에 해당하는 루키팀 수비코치에 선임되어 정식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2016년 4월 14일 이후로 루키군 수비코치에서 1군 타격보조코치로 보직이 바뀌었다.

2017년 루키군 야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2018년부터는 2군 수비코치를 맡았으나 전반기 종료 후 평가가 좋지 않았던 박계원을 대신해 1군 수비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지난해까지 불안한 수비를 선보였던 김성현이 2019년 37경기에서 단 2실책을 기록하고 신예 안상현 역시 안정된 수비를 보여주는 데에는 손지환 코치의 공이 큰 듯.'확 달라진 SK 센터라인' 손지환 코치는 약속을 지켰다

4. 여담

  • 친정팀인 LG에 강한 선수다. 2008시즌에서는 시범경기때에 LG 투수로부터 홈런을 쳤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7 LG 트윈스 23 22 .318 7 2 0 0 3 2 0 1 .409 .348
1998 48 60 .233 14 1 1 0 4 13 0 7 .283 .313
1999 20 35 .114 4 0 0 0 1 2 0 0 .114 .114
2000 54 63 .238 15 4 0 0 5 12 2 5 .302 .294
2001 96 188 .250 47 8 1 5 22 25 2 13 .383 .297
2002 111 290 .214 62 9 0 5 24 25 5 24 .297 .272
2003 61 74 .189 14 1 0 0 4 11 0 8 .203 .265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4 KIA 타이거즈 114 303 .271 82 15 1 13 42 40 3 18 .455 .311
2005 107 316 .278 88 13 0 11 44 37 1 33 .424 .344
2006 96 273 .264 72 12 0 4 21 24 1 16 .352 .303
2007 102 267 .217 58 9 1 6 33 26 1 27 .326 .283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8 삼성 라이온즈 45 78 .179 14 4 0 2 11 7 0 5 .308 .226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9 SK 와이번스 6 16 .188 3 1 0 0 0 1 1 1 .250 .236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0 한화 이글스 25 59 .220 13 3 0 1 3 6 0 5 .322 .281
KBO 통산
(14시즌)
908 2044 .241 493 82 4 47 217 230 16 164 .354 .295


[1] 일본 독립리그 구단. 2011년말 해체.[2] 날려버려 손지환! 날려버려 손지환! 1루타 2루타 3루타 홈-런! 날려버려! 손지환! 날려버려 손지환! 날려버려 손지환~~~~ 안타손지환![3] (빰빰빰빰 빠밤빰) 안~타! 손!지!환![4] 1990년대 까지는 프로의 신인드래프트와 대학의 신인선발이 매년 가을에 동시에 진행되었다. 당시만 해도 대학야구의 위상이 대단히 높았기 때문에, 우수한 고졸예정자들을 두고 대학과 프로구단 사이에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졌다. 대학감독이 입단예정인 고3 선수들을 지방호텔에 감금(?)해놓고, 이들를 프로스카우터들이 빼돌려서 무인도로 잠적하고...온갖 해프닝이 많았다.[5] 이 사건 때문에 휘문고를 이끌던 이명섭 감독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여기에 휘문고 저학년 선수들 일부가 감독을 따라 춘천고로 전학을 가게 되면서 휘문고는 1997년에 처참하게 몰락했다. 이명섭 감독은 춘천고를 1999년 청룡기 준우승으로 이끌었으나 2000년 초 아마야구 지도자들의 비리 문제에 연루되어 이미지에 흠집을 남겼고 이후 오랜 기간 야인으로 있다가 2011년 휘문고 감독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또 비리 문제가 발생해 2015년을 끝으로 물러났다.[6] 그 덕분에 올스타전에 뽑힌 적도 있다.[7] 무엇보다 이상목의 100승과 박한이의 분전, 양준혁전병호의 부활과 타선의 세대교체가 결정적이긴 했다.[8] 김연훈은 최소한 젊기라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