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3 08:08:35

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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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暴雨
Heavy rain, storm.

줄기차게 내리는 큰 . 본디 한국에서는 대우(大雨)라는 말을 썼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친 후부터는 거의 폭우(暴雨) 또는 호우(豪雨)라고 쓴다.[1]

대한민국, 중국 등 대륙 동안에서는 주로 북태평양 기단과 열대성 저기압이 북상하는 6~9월에 폭우 위험이 높다.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비를 집중호우라고 말하는데 12시간 동안 강우량이 80mm에 달하면 호우주의보를 내리고 150mm 이상 비가 내리면 호우경보를 발령한다. 폭염과 함께 동아시아여름을 묘사하는 전형적 특징 중 하나. 여름철 숨막히는 고온 속에 내리는 비는 푹푹 찌는 습도를 동반하기 때문에 야외활동을 제한시키고 불쾌지수를 높이는 주범이고 심할 경우 홍수, 침수 등을 야기해 재산피해와 인명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반면 동아시아 기후 특성상 여름철에 내리는 비는 1년 강수량의 60~70%을 책임지며 대기를 깨끗하게 정화시켜주고[2] 고기값, 계란값을 안정시켜주기[3] 때문에 고마운 존재이기도하다. 그야말로 애증의 존재. 만일 여름철 강수량이 다른 계절과 비슷하거나 적다면 극심한 물부족으로 인간의 활동에 심각한 제약을 야기 했을 것이다.

반대로 서유럽에서는 11월~3월에 폭우 위험이 높다. 겨울철 온대저기압의 극단적 변형인 날씨폭탄이 찾아와 폭우가 오며, 계절적 특성상 폭설로 바뀌기도 한다. 겨울철 한국이 가뭄일 때 유럽 쪽 해외토픽을 보면 문화충격을 느낄 만한 수준이다.

많은 비에 관련된 각종 세계기록은 강우 문서를 참고.

2. 집중호우

다른 말로 장대비라 부르기도 한다. 제한된 지역에서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현상인 집중호우는 강한 상승기류의 적란운이 원인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적란운은 수증기가 많은 곳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수증기를 내포한 공기는 산악지형에서 상승하는 일이 잦기때문에 산악지형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시에 집중호우가 빈발하고 있다. 물론 위의 조건 말고 다른 조건으로도 집중호우가 발생한다. 커다란 공기가 만나는 전선이나 수렴대가 그것이다.

3. 대한민국의 폭우와 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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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012년 7월 3일 대륙발 서울 일점사 (십자포화)

3.1. 1925년 대홍수

1925년 7월 11일~9월 6일까지 2달간 4차례에 걸쳐 태풍이 들이닥친 초유의 사례. 발생한 해의 이름을 따서 흔히 을축년 대홍수라고 불린다.

1차 홍수는 7월 6일 대만 부근에서 발생한 태풍이 11일과 12일에 중부 지방을 거쳐 북쪽으로 빠져나가면서 발생하였다. 그로 인하여 황해도 이남 지방에 300∼500㎜의 집중호우가 쏟아졌고, 한강·금강·만경강·낙동강 등이 범람하였다.[4] 그리고 불과 4일 만에 다시 태풍이 중부 지방을 통과함으로서 서울은 완전히 물바다가 되어버린다. 최고 600mm의 비를 뿌린 이 태풍으로 인해 한강이 또 범람하면서[5] 인접해 있던 용산·이촌·뚝섬 등은 큰 피해를 입었고, 본래 강북에 붙어있던 잠실·신천 등은 아예 육지와 분리된 섬이 되었다. 심지어 숭례문까지 침수될 정도였으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지?

하지만 이 폭우로 인해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땅 속에 묻혀있던 암사동 유적지와 풍납토성 등이 이 때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3차 홍수는 8월 초 중국 장강에서 발생한 저기압이 관서 지방을 관통하면서 압록, 대동, 청천강 등이 범람했다.

4차 홍수는 8월 말 마리아나 제도에서 발생한 태풍이 9월 6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남부 지방을 관통하면서 발생했다. 이로 인해 낙동, 영산, 섬진강 등이 범람하게 되었다.

종합적인 피해 상황으로는 647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약 6만여 채의 집들이 침수·붕괴·유실되었으며, 약 1만 헥타르 가량의 논밭이 유실되었고, 피해 금액은 약 1억 300만 엔[6] 가량으로 집계되었다.

한편 이때의 일을 교훈 삼아 조선총독부는 한강과 그 주변 지류에 대대적인 제방 공사를 단행하게 된다.

3.2. 1984년 9월 서울 대홍수

1945년 해방 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가장 강력하고 혹독했던 홍수로 기록돼있다. 그러나 수도권 치수(治水) 시스템의 소홀과 일기예보의 오보 등으로 피해를 키웠기에 대표적인 인재(人災)로도 꼽힌다.

1984년 8월 거대한 비구름을 몰고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준'이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서울경기도, 강원도 등 중부지역에 시간당 50㎜의 집중호우를 뿌렸다. 9월 1일 하룻만에 서울에 298.4㎜의 비가 내려 이 당시 기상 관측 이래 서울 1일 최고 강수량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속초에도 이 때 3일간 650㎜의 비가 내리는 등 중부지역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결국 수압을 못 이긴 한강안양천 등 인근 지류 하천의 수문과 옹벽이 죄다 터지면서 강물이 범람했다. 을축년 대홍수 이후 59년 만에 한강 수위가 10m를 넘었고 그 결과 서울은 또 다시 흙탕물로 가득찬 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특히 풍납동, 성내동, 망원동 등은 웬만한 집이 대부분 침수됐고 서울의 모든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까지 휴교령이 내려졌다.

이 홍수로 2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그 중 서울에서만 1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사망 189명, 실종 150명. 또한 침수된 주택의 수는 2만 채를 훌쩍 넘어섰다. 전국적으로 추산된 재산피해는 당시 돈으로도 막대한 금액인 2502억원.

이 당시 가장 큰 문제점은 서울의 치수 시스템이 주먹구구식으로 움직였다는 점과 일기예보가 엉터리였다는 점이었다. 특히 9월 1일 새벽 5시부터 1시간동안 50㎜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졌는데 그때까지 서울에는 어떠한 기상특보도 발효되지 않았고 물폭탄이 왕창 쏟아지고 난 뒤에야 호우경보가 발령돼 논란이 됐다.

이 당시 홍수는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남한이 홍수 피해를 입자 북한 측에서 적십자사 간 소통을 통해 쌀 5만석, 천(옷감) 50만미터, 시멘트 10만톤과 기타 의약품 등 수해 구호물자를 보내줬고[7] 이후 남북관계가 한층 훈훈해진 사례가 있다.[8] 그 결과 1년 뒤인 1985년 9월에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 상호교환 행사가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이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였다.

반면 당시 정부와 서울시 당국은 '천재'라고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한 탓에 주민들 혈압만 오르게 만들었고, 특히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망원동 주민들이 시당국 등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 1987년 1심을 비롯해 1990년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승리를 거머쥐었다.(망원동 수재사건) 이들이 승리하는 데에는 인권변호사 조영래의 도움이 있었다.

3.3. 1990년 9월 한강 대홍수


1990년 9월 중국에 상륙한 제17호 태풍 '도트'가 서울 상공을 통과하는 저기압과 연결되면서, 9월 9~12일에 걸쳐 한강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렸다. 이 기간동안 경기도 이천군에는 581mm, 서울특별시에는 486mm의 강우량이 기록되었다. 말 그대로 도트딜 실제로 한강이 범람하여 영등포역 일대까지 물이 가득 차올랐었다고. 당시 잠수교는 13.70m란 수위를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피해는 고양군 일대에서 발생하였는데, 한강의 수위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높아지면서[9] 고양군 지도읍 신평리(現 고양시 덕양구 신평동)의 한강 제방이 붕괴, 평야지대에 위치한 능곡과 일산(신도시 개발 이전의 옛 일산) 전체가 물에 잠겨 5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한강뿐만 아니라 지천에서도 홍수가 발생하여[10], 안양천 쪽의 광명시왕숙천 쪽의 구리시 등 수도권 곳곳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왕숙천에서 많은 양의 부유물이 떠내려와 당시 건설 중이던 강동대교를 덮쳐, 교량 일부가 유실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 때 고양군 지역의 한강 제방을 견고하게 복구하면서 고양과 파주 등 경기도 서북지역 개발에 대비하고자 제방 위에 간선도로를 지었는데 이것이 현재의 자유로다.

모 선생님의 수업 도중, 이 때 경험담을 말씀해 주셨는데 용산역에 내려보니 대합실까지 물이 차올랐고, 집이 한남동이었는데 집 근처에 가보니 일대가 다 잠겨서 동네 아저씨가 배를 타고 다니더라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했다. 서울치아

3.4. 1996년 7월 홍수

1996년 7월 26~28일에 걸쳐 경기도 북부(파주시, 연천군 등)와 강원도 북부(철원군, 화천군, 춘천시, 인제군 등)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11] 철원군의 경우 7월 26~27일 단 이틀 만에 492.8mm의 폭우가 쏟아졌다.

아무래도 이 일대가 전방지대라 군부대 쪽에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는데, 특히 군부대가 있는 곳은 대체로 산골짜기 쪽이 많은지라 다수의 군부대 막사가 산사태로 매몰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망·실종된 군인 수만 60여 명에 달했다.

이뿐만 아니라 집중호우가 한탄강임진강으로 흘러들었고, 한탄강 하류에 있던 작은 규모의 연천붕괴되면서 임진강 하류의 문산 일대를 직격했다. 저지대에 시가지가 있던 문산은 3m 깊이로 물에 잠겨버렸고, 시가지 전체가 거의 초토화되는 피해를 입었다. 문산 시가지는 이후 1998년과 1999년에도 홍수로 물바다가 되었고, 결국 견디다 못하여 파주시문산역과 시가지 일부를 5m 높이로 올려버렸다.

붕괴된 연천댐은 철거하고, 현재는 그보다 약간 상류에 훨씬 더 큰 규모의 한탄강댐을 건설하였다.(2016년 완공). 다만 댐이 완공될 때가 되니 이번엔 몇 년째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어서 본래 홍수 조절만을 위해 건설되는 댐의 용도를 가뭄 대비도 가능한 다목적댐으로 바꾸어 달라는 요구가 있다. 그러나 본 용도대로 홍수대비용으로만 지어졌다

3.5. 1998년 8월 집중호우

1998년 7월 31일~8월 1일 사이의 밤중에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최대 300mm에 달하는 기습적인 폭우가 내려 계곡에 산사태와 홍수가 발생, 지리산 야영객과 주민 등 10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리산 폭우 참사 참조. 하지만 이 참사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8월 18일까지 집중호우는 전국을 돌며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전국적으로 엄청난 비 피해가 발생했다.[12] 서울의 경우 8월 4일 211.4mm, 6일 122.9mm, 8일 332.8mm의 강우량을 기록하는 등[13] 거의 20일간 매일같이 비가 쏟아졌다. 이 해 8월 서울의 누적 강수량은 1237.8mm(...)[14] 이 해 서울의 연 강수량은 2349.1mm..[15]
8월 전체의 위성영상
한국 전체에 대략 20일까지 구름이 엄청 발달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전국적으로 사망 및 실종 324명, 재산피해 1조 2487억원을 기록. 이때의 집중호우는 특히 좁은 지역에 시간당 100mm에 가까운 엄청난 폭우가 단시간 쏟아지는 특징을 보여 게릴라성 집중호우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참고 사망자 중에는 한국일보 편집부 기자 김석진도 있었다.

동일한 시기에 중국 양쯔강 일대도 기록적인 폭우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쪽에 폭우를 쏟아낸 비구름대가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까지 이동하며 한국에도 폭우를 뿌린 것...

3.6. 2006년 7월 폭우

3.7. 2010년 9월 광화문광장 침수

3.8. 2011년 수도권 폭우 사태

3.9. 2013년 중부 폭우

3.10. 2014년 동남권 폭우 사태

3.11. 2017년 중부권 폭우 사태

3.12. 2017년 동남권 폭우 사태

3.13. 2018년 강원 영동권 폭우 사태

3.14. 2018년 한반도 국지성 폭우 사태


바로 이전의 강원 영동권 폭우 사태랑 바로 연이어 일어나고, 태풍 솔릭이 지나간지 얼마 되지 않고 발생한 폭우라 피해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껴졌다.

4. 해외

5. 세계의 다우지

다우지. 多雨地, heavy rain fall region
일정 기간 동안에 다른 지방보다 기준량 이상으로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
후술할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다우지가 적도 수렴대 또는 몬순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중국 남서부 산간 지역[16] : 계절풍과 지형적 영향까지 겹쳐 상당히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 겨울철에는 폭설이 쏟아지기도 한다. 이 지역에 있는 아미산(峨眉山)은 중국에서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데, 연 강수량이 8200mm에 달한다.
  • 콜롬비아 태평양 해안 지역 : 지역 대부분이 열대 우림으로 뒤덮여 있다. 1년 내내 우기가 지속되는 지역으로 적도 수렴대가 1년 내내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이 지방의 소도시 퀴브도(Quibdó)는 연 강수량이 8100mm이며, 1달 강수량이 500mm는 기본으로 넘어간다. 일부 지역은 강수량이 10000mm를 넘기도 한다. 세계 최다우지 타이틀을 놓고 메갈라야와 경쟁하고 있는 유일한 지역.
  • 카메룬, 상투메 프린시페, 적도 기니 등 : 이 지역 역시 적도 수렴대가 1년 내내 영향을 미치고 바다에서 지속적으로 습한 바람이 불어온다. 또 지형적 영향까지 겹쳐 카메룬 산(Cameroon Mount) 등 산간지역, 비요코 섬 등은 연 강수량이 8000mm를 넘어서기도 한다.
  • 인도 메갈라야 : 거의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다. 연 강수량이 10000mm를 넘어가며 최고 12000mm까지도 기록된다. 체라푼지(Cherrapunji), 모신람(Mawsynram)이 가장 강수량이 많다. 4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 우기 기간에 연 강수량의 대부분이 쏟아진다. 7월 한 달 강수량3000mm를 넘어설 정도로 무지막지한 양이 내린다. 매년 우기 때마다 벵골 만에서 습한 계절풍, 몬순이 불어오는데, 이 몬순은 방글라데시 등 저지대에 홍수를 일으키고 메갈라야 고지대를 넘으며 지형적 영향을 받아 국지적으로 매우 강하게 발달하여 비를 뿌리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적 최다우지가 건기가 되면 가뭄에 시달린다는 아이러니한 사실..
  • 하와이 화산 고지대 : 해발 3000~4000m가 넘는 화산들이 많이 존재하는데, 동쪽에서 일년 내내 습한 무역풍이 불어와 해발 고도가 높은 화산을 넘는 과정에서 정체하며 무지막지한 양의 비를 뿌린다. 마우이 섬의 빅 보그(Big Bog), 카우아이 섬의 와이알레아(Mt Waialeale) 등은 연 강수량이 10000mm에 육박한다. 이 화산이 유도한 푄현상으로 하와이는 동부와 서부 강수량 차이가 매우 크다. 호놀룰루(Honolulu)를 비롯한 서부 는 대체로 맑고 건조한 반면, 힐로(Hilo)를 비롯한 동쪽 지역은 흐리고 비가 자주 내리며 기온도 조금 낮다.
  • 터키 동부, 조지아 서해안 : 전술한 다우지보다는 강수량이 적은 편이지만 드물게 유럽에 있는 대표적 다우지이므로 서술한다. 흑해에서 1년 내내 불어오는 습한 북서풍의 영향으로 맑은 날이 많이 없다. 조지아의 바투미(Batumi)는 연 강수량이 2500mm에 육박하며 산간 지역은 3000mm를 넘어서기도 한다.
  • 아마존 분지 : '녹색 지옥'이라 불릴 정도로 열대 우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표적 지역. 전체적으로 연 강수량이 2500mm는 기본적으로 넘는다. 이키토스(Iquitos)는 2800mm, 마나우스(Manaus)는 2500mm를 넘으며, 지속적으로 내리기보다는 국지적으로 강하게 쏟아지는 경향이 있다. 주로 우기인 10~3월 사이에 많은 비가 쏟아진다.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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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작 일본에서는 현재 대우(大雨)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2] 강수가 없는 겨울~봄에 매년 황사미세먼지가 날아온다는 걸 생각해 보자.[3] 구제역조류 인플루엔자 문서 참조[4] 한강 수위가 10m를 돌파하기도 했다.[5] 이 때 당시 한강 수위가 사상 최고치인 13.59m를 찍었다.[6] 당시 1년 예산이 1억 800만 엔 정도였다.[7] 북한의 경제 상황은 1970년대 전성기를 찍었고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동구권의 몰락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북한의 경제도 추락하기 시작한다.[8] 물론 처음부터 전두환 정부가 북한의 대남 수해 구호물자를 곧이곧대로 받지는 않았다. 물자 지원을 미끼로 나름의 계략을 또 꺼낼 것이라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적 차원의 지원인 만큼 대승적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수해 구호물자를 받았다.[9] 을축년 대홍수 이후 최고 기록.[10] 한강 본류가 불어나면서 지류의 흐름이 본류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범람하였다.[11] 동일시기 발생한 북한의 홍수와도 연관이 있다.[12] 여간해서는 폭우가 내리지 않는 경북 북부지역도 예외가 아니었고, 영동지방 정도만 큰 피해가 없었다.[13] 이 당시 서울과 2시간 거리인 강화군 일대에 8월 6일 하루에만 무려 619mm의 비가 내렸다. 서울은 그나마 내륙이어서..[14] 평년값으로 서울의 1년 강수량과 맞먹는다![15] 이정도면 세계지리에서 배우는 열대우림 기후에서의 연 평균 강수량이다![16] 쓰촨 성, 윈난 성, 티베트 자치구에 있는 산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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