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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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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항공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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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항공사진
이름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
개장일 1963년 9월 18일
폐장일 미정
소재지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홈구단 해태 타이거즈(1982년~1989년)
쌍방울 레이더스(1990년~1999년)
크기 좌우펜스 95m
중앙펜스 110m
펜스높이 2.1m
잔디 천연잔디
좌석규모 10000석

1. 역사
1.1. 해태 타이거즈 제2구장(1982~1989)1.2. 쌍방울 레이더스 홈구장(1990~1999)1.3. 쌍방울 레이더스 해체 후(2000~)
2. 재개발 계획

1. 역사

1963년 전주 일대에서 열린 전국체전을 위해 건립된 야구장이다. 그 뒤, 1989년 군산 야구장이 건립되기 전까지는 전북의 대표 야구장으로 전북 지역 아마 야구를 위한 장소로 이용되었다. 1987년 조명탑이 설치되면서 야간 경기도 가능하게 되었다.

1.1. 해태 타이거즈 제2구장(1982~1989)

전주야구장에 본격적으로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1982년 해태 타이거즈의 창단이었다. 광주를 제1연고지로 사용하고, 전주를 제2연고지로 사용한 것이다. 특히 해태는 전주에서의 승률이 높은 편이라서 1년에 7~8경기 정도를 전주에서 소화했다.[2]

크게 두 가지 에피소드로 해태 시절을 규정할 수 있는데, 하나는 1986년 5월 18일에 경기가 잡히자 광주에서 전주로 급히 홈 구장을 옮긴 사례다. 그 전날인 5월 17일은 광주에서 경기가 열렸기 때문에 어떤 의도로 옮겨졌는지는 현대사를 조금만 공부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3][4] 다른 하나는 1987년 플레이오프가 치러진 장소가 전주라는 점이다. 당시 광주에서 전국체전이 열린 관계로 경기를 가질 여건이 안 되자[5] 제2홈구장인 전주에서 경기를 치렀다. 이때 해태는 접전 끝에 OB 베어스를 누르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1.2. 쌍방울 레이더스 홈구장(1990~1999)

그 뒤 전북지역을 연고로 하는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되면서 전주 야구장은 쌍방울의 주 홈구장이 되었다. 특히 가장 인기를 얻은 것은 1996년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쌍방울이 돌풍을 일으켰을 때다. 이 때 쌍방울은 홈 경기 17연승을 질주하면서 홈 팬들을 열광시켰다.[6] 무엇보다 1996년과 1997년 잇따라 PO에 오르면서 쌍방울만의 고유한 팬과 색깔이 드디어 드러나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해태와 그다지 차별화되기 어려웠지만, 쌍방울의 선전으로 확실히 달라지게 된 것이다.

구장이 작아 쌍방울은 1군 무대에 뛰어든 1991년부터 1995년까지 피홈런 1위를 기록했다. 이 문제는 김성근 감독의 부임으로 해결되었는데, 김성근 감독은 2.1m 펜스 위에 3.7m 철망을 얹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7] 그가 구사한 벌떼 야구는 그렇게 먼저 구장 개조를 통해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해체되기전 1999년 쌍방울의 피홈런수는 187개였다.(당연히 신기록이었다) 거기다 그해 187개중에 7개는 이승엽이 치고 간 것이었다. 그해 해태의 홈구장인 광주구장의 피홈런수는 182개(홈런수 생략하자 1999년 해태는 광주에서만 무려 127개의 홈런을 쳤다), 당연히 전주가 최다 피홈런구장이었다. 게다가 김성근이 펜스를 높인 3년간 전주는 타자에게 아주 만만한 구장은 아니었다. 9년 중 6년 동안 피홈런수 최고를 기록한 전주구장이었다.

하지만, 1999년 쌍방울이 재정난으로 해체되면서 전주구장의 야구열기는 사그라졌다. 쌍방울 출신 선수들과 개별 계약하고 쌍방울의 권리를 인계한 SK 와이번스는 연고를 인천으로 확정지으면서 전주와 프로야구의 관계는 끊어졌다. 그 뒤 전북의 연고권은 KIA 타이거즈로 반환되었지만, 시설이 낙후된 관계로 KIA는 주로 군산 월명야구장에서 제 2 홈경기를 2013년 까지 경기를 치뤘다.

여담으로 안 좋은 의미로 유명한 어느 외국인 선수KBO 리그 데뷔전은 이곳에서 치뤘다.

1.3. 쌍방울 레이더스 해체 후(2000~)

쌍방울의 해체 후로는 대학야구 대회가 가끔 열렸던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방치된 상태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시설 보수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와서 딱 한 번, 천하무적 야구단 촬영을 위해 보수했던 적이 있었지만 촬영이 끝난 후로는 다시 방치상태이다.

이후 전주시 야구소프트볼 협회에서 전주시 시설관리공단에 임차신청을 했고, 사회인 야구장으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야구장 자체가 지어진지 60년을 바라보는데다가 방치된지도 10여년이 지나 위험하기 때문에, 그라운드와 1층 기록실 정도만 열어서 쓰고 있다. 야구장 자체의 안전등급이 워낙 낮은 수준인지라, 야구장 근처에 주차했다가 차가 파손되었을 시에는 시설공단(전주시)이 책임지지 않는다는 안내문도 붙어있다.

2. 재개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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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계획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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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조감도

재개발 계획이 잡혀있다. 옆의 종합운동장과 함께 철거되며 이 자리에는 호텔과 컨벤션센터, 아파트를 건립할 계획이 2010년 전후로 수립되었고, 롯데그룹과 2012년 협약을 맺었다. 지난 2005년 전라북도가 종합경기장 및 실내체육관을 전주시에 무상양여하면서 제시한 ‘대체시설 이행각서’가 전주 야구장 건설에 추진력을 불어 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체시설 이양각서’는 전북도가 이들 체육시설의 소유권을 전주시에 넘겨주면서 내건 조건으로, 월드컵경기장 주변에 1종 육상경기장과 5000석 규모의 야구장 등의 대체 체육시설을 건립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전라북도는 이들 시설의 사용과 관련해서는 10년간 체육시설로 사용할 것과 10년 이내에 체육시설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거나 용도를 폐지할 때는 사전 협의해야 하고, 이 경우 ‘대체시설 이행각서’를 준수토록 했다. #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새로운 야구장은 기부채납을 통해 전주월드컵경기장 인근에 마련될 것으로 알려졌다.[8]

그러나 실제 사업 실시에 필요한 시의회의 동의가 지역상권 붕괴를 우려한 시민들의 목소리로 인해 2019년 현재 7년 가까이 표류중이다. 그 덕(?)에 당초 2013년 6월에 착공해 2015년 2월에 완공할 계획이었던 새 구장 건설 계획도 아무런 진전이 없으며, 전주 야구장은 그냥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나 경제민주화의 기폭제가 되었던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를 처음으로 도입한 곳이 전주시였기 때문에, 더더욱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기 힘든 상황. 2014년 지방선거 국면에 접어들어서는 전라북도지사와 전주시장에 출마하고자 하는 주자 대부분이 롯데에 의한 쇼핑센터로의 재개발을 백지화하겠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터라, 종합경기장 부지 개발 문제가 장기간 표류하거나 아예 백지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고 이는 사실이 되어 2015년 7월 민자를 유치해 대형 쇼핑몰로 개발하려던 전임 시장의 계획을 바꿔 전체 12만6000m² 규모의 경기장에 시 자체 예산으로 2018년까지 1500억 원을 들여 컨벤션센터와 호텔을 짓고 나머지 터에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처럼 도심 속 시민공원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9] 그 좋은 터에 공원이나 조성하자니 재정신인가? 전주가 인구에 비해 휴식 공간이 많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또한 종합경기장 대체 체육 시설로 전주월드컵경기장 옆 보조 경기장에 자체 예산 700억 원을 투입하여 1만5000석의 육상경기장(240억 원)과 8000석의 야구장(370억 원), 보조경기장(90억 원) 건립도 시작한다. 내년 1월 기본계획수립 및 타당성 조사 용역을 거쳐 그 해 12월 지방재정 투자심사를 거쳐 2017년 3월 공사를 시작해 2018년 12월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2017년 말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2020년 상반기에 완공하는 것으로 늦춰졌다. 그러나 2019년이 이미 절반이 지난 가운데 공사는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다. 결국 전주시와 전북도간의 힘겨루기가 끝나지 않는 이상 언제 신축될 지 미지수이다. 다만 전북도의회나 전주시의회에서 회의가 열 때마다 종합경기장 개발을 놓고 지지부진한 시,도정을 질타하는 시,도의원이 있어 그나마 관심은 이어지는 편이며 전주형 문화경제’ 실현의 한 방안으로 법원·검찰청부지, 전주종합경기장, 덕진공원,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전주생태동물원, 팔복예술공장을 아우르는 ‘덕진권역 뮤지엄밸리 조성’구상을 발표한 바 있는데 어떤 방식이든 개발소식이 나오는 이상 그래도 종합운동장 개발에 어느정도 가능성은 있는 편이다.

재개발 계획을 통해 내심 전주시는 새로운 경기장을 토대로 프로야구 구단 유치를 꿈꾸고 있지만, 유치 인구 기준이 100만명이 되면서 쉽지는 않게 되었다. 다만, 인근 완주, 익산, 군산까지 포괄하는 형태로 추진한다면 또 모르겠지만.[10] 그리고 KBO 기준은 항상 바뀌니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그리하여 10구단 유치를 놓고 수원과 전북 연합이 열띤 경쟁을 펼쳤으나 결국은 수원-KT의 유치로 돌아갔고 다시 전북(군산, 전주)은 주인 없는 땅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전주 야구장이 완공될 무렵을 놓고 1년에 9경기 남짓 개최되는 KIA 타이거즈의 제 2 경기장 경기개최를 놓고 군산과 전주가 다투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가운데 군산상고, 전주고가 NC 다이노스의 1차지명 대상이 된 데다가 KIA의 홈 구장을 무등에서 새로 지어진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로 옮기면서 KIA가 2014년 군산구장의 홈 경기 배정을 중단했다.[11]

결론적으로, 아직 미래의 일이긴 하지만 저 모든 개발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전주 야구장 또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새 야구장이 완공된다면, 언젠가 전주에 들어서게 될 팀이 쌍방울 레이더스의 뒤를 이어 전주의 야구 역사를 새롭게 써 나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1] 왼쪽의 주경기장은 전주월드컵경기장이 건립되기 전까지 전북 현대 모터스가 2001년까지 홈 경기장으로 썼다. 야구장 우측 외야 뒷편의 파란색 지붕은 쌍방울 레이더스의 실내 연습장으로 쓰이던 건물. 과거 전주구장 경기가 중계될 당시 벽에 '쌍방울 승리관'이라고 새겨진 글씨가 자주 등장했다. 운동장 아랫편의 공간은 보조경기장이 아니라 학교다. 바로 전주에서 유일하게 야구부를 운영하고 있는 전라중학교. 이 학교 출신 선수로는 조진호, 강지광(중3 때 상인천중학교로 전학), 박계현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야구장 서쪽에 있는 테니스장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전주시 여성일자리센터가 들어섰다.[2] 1982년부터 8년간 전주에서 거둔 통산 성적은 65전 40승 1무 24패로 승률이 무려 0.623에 이른다.[3] 해태 타이거즈, 5.18 민주화운동 문서에도 소개돼 있지만 전라북도5.18 당시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은 곳이다.[4] 해태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창단 직후부터 5월 18일에는 광주에서 절대 경기를 하지 않았는데 2000년이 되어서야 5월 18일에 광주에서 홈 경기를 하게 되었다.[5] 전국체전에도 엄연히 야구 종목이 있는데다 가뜩이나 낙후됐던 무등경기장에서 전국구급 스포츠 축제인 전국체전과 포스트시즌이 함께 열리면 헬게이트가 열리기 때문이다.[6] 쌍방울 레이더스의 역대 홈 관중 동원 현황 중 가장 홈 관중이 많았던 해는 1996년으로 26만5918명이 전주 야구장과 군산 월명야구장을 찾았다. 다른 지역이라면 별 볼 일 없는 관중 동원 기록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 당시 전주시의 인구가 약 57만명에 불과했고 전주 야구장의 좌석 수가 고작 1만석 수준인데다 전주의 시장성이 당시 8개 구단 중 가장 열악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대단한 수치다. 오류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수치 상으로는 전주시 인구 중 절반 정도는 야구장에 한 번씩 왔다고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 전주의 야구 열기는 대단했다.[7] 이는 태평양 돌핀스 감독 시절 도원구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성근 감독 부임 전 도원구장의 펜스 높이는 5m였으나 투수력 향상을 위해 7.1m로 높혔다. 그래서 인천 특유의 짠물야구가 나올 수 있었던 것.[8] 그런데 2011년 6월 김완주 전북지사가 김황식 총리와 면담한 자리에서 LH 본사 진주 이전에 대한 보상책의 일환으로 전북혁신도시 내에 야구 전용 구장 건립을 요구하였다. 따라서 새 야구장의 입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9] 국내에서 이와 비슷한 차례를 찾자면 뚝섬 돔 경기장 건설 예정 부지에 서울숲을 조성한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전주 야구장은 기존의 낡은 경기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공원을 조성하는 것인 반면, 뚝섬 경기장은 아예 삽도 못 떠보고 공원을 대신 올렸다는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10] 전주시 자체로는 인구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인근의 완주, 익산, 군산과 연합하면 약 120만명대의 괜찮은 도시권이 형성된다. 전혀 괜찮지 않다. 이미 수원 인구가 120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인데 4개 지자체를 합해야 120만이라면 시장성은 사실상 없는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마창진처럼 연담된 지역이면 모를까 군산-익산, 익산-전주의 거리는 각각 15km가 넘고 군산-전주는 30km가 넘는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지역 아마야구 기반이 제대로 확충이 안 되고 있다는 점으로, 전북 전체를 통틀어도 정읍시에 위치한 이평중과 인상고, 고창군에 위치한 영선고에 새로 팀이 창단되었을 뿐 정작 전주, 군산, 익산에는 신규 팀 창단이 전혀 없다.(익산은 아예 초중고팀이 하나도 없다.)[11] 그러나 1차 지명권 행사와 제2구장 홈 경기는 엄연히 별개의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