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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vs 타이론 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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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승엽 & 타이론 우즈.jpg

1. 개요2. 상세
2.1. KBO2.2. NPB
3. 논쟁 및 결론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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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가 (1998) 시즌 후에 목표를 잡았는데 팀 1위가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홈런왕도 아니었습니다. 타점왕도 아니었습니다. 무조건 타이론 우즈를 이겨야 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승엽출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KBO 리그에서 대표적 홈런 타자였던 이승엽타이론 우즈라이벌 관계, 성적 비교를 다룬 문서.

2. 상세

파일:1998년 이승엽과 타이론 우즈의 홈런 페이스 비교.jpg

이 vs 놀이가 나오게 된 근본적인 목적은 한창 KBO를 부수고 있던 이승엽에게 비교할만한 타자가 우즈밖에 없었던 데서 시작되었다. 특히 승까들은 어떻게든 이승엽을 깎아내려고 별별 수단을 다 시도하던 때였는데, 마침 잠실이라는 넓은 구장을 쓰면서도 타자로 MVP를 땄던 우즈라면 이승엽과 비교하기 매우 적합했다. 다른 선수들은 이승엽과 비교하기엔 성적 차이가 너무 많이 났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세부 스텟 비교 사이트나 파크팩터 등이 갖추어져있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클래식 스탯과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동원해서 비교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하다시피 비교는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다. 위키에서도 특정 문서는 이승엽을 옹호하고 특정 문서는 우즈를 옹호하는 등 세기말이 따로 없었다. 그나마 스탯티즈가 열리면서 약간의 스텟 비교가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세부 스텟은 제공하지 않는 시대라서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2.1. KBO

일단 KBO에서는 이승엽이 우즈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음은 명백하다. 스탯티즈를 기준으로 우즈가 KBO에서 뛰었던 98년부터 02년까지 이승엽과 우즈의 sWAR과 wRC+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이승엽 우즈
sWAR wRC+ sWAR wRC+
1998 6.73 175.9 6.38 181.2
1999 8.91 191.8 4.55 146.1
2000 5.18 157.3 6.12 166.6
2001 5.52 155.1 4.90 150.2
2002 8.96 198.5 2.64 122.6

우즈가 이승엽을 이긴 해에는 WAR이나 wRC+나 매우 근소한 차이로 이겼고, 이승엽이 우즈를 이긴 해에는 매우 큰 차이가 났다. 잠실구장이 홈런이 적게 나오기 때문에 우즈가 손해를 본 측면은 있지만, 그만큼 잠실은 2루타나 3루타가 많이 나오는 구장임에도 우즈는 2루타 갯수에서도 특출남을 보이지 못했다. 파크 팩터가 제공되는 보정 스텟을 기준으로 하는데 대구구장과 잠실구장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은 이미 구시대적인 시각이 된 상태다.

2.2. NPB

2003년에 NPB로 이적한 우즈는 3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KBO 시절에 버금가거나 심지어 그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올린다. 특히 37살의 나이로 맞이한 06시즌에는 한국에서도 올리지 못한 WAR 7.1을 거두며 늦은 나이에 더 대단한 전성기를 누린다.

반면 이승엽은 우즈보다 1년 늦은 2004년에 NPB에 데뷔한 후 2006년도를 제외하면 우즈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었다. 공교롭게도 이승엽과 우즈의 커리어하이가 2006년으로 일치해버린 탓에, 결과적으로 이승엽은 우즈를 일본에서는 한 시즌도 이기지 못하게 된다.
이승엽 우즈
WAR wRC+ WAR wRC+
2004 0.6 97 3.9 145
2005 2.4 130 4.8 157
2006 6.6 171 7.1 185
2007 2.9 117 4.6 155
2008 0.7 103 4.3 151

3. 논쟁 및 결론

이렇듯 KBO와 NPB의 결과가 다르다는 점에 겹쳐 국내 타자인 이승엽 vs 외국인 타자인 우즈, 상위 리그인 NPB vs 하위 리그인 KBO 등의 온갖 논쟁거리가 섞여 절대적인 비교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 보정 스텟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승엽은 대구 탁구장빨이라는 악성 팬덤까지 겹쳐 더욱 더 혼란스러웠다. 또 이승엽의 팬들은 팬들대로 비교할 국내 타자가 없는 굴지의 최강 타자로 KBO의 자존심같은 위치로 여겼기 때문에 우즈를 깎아내려고 노력했다.

일단 결론만 놓고 보자면 일반적으로는 우즈가 한 단계 더 상위의 타자라는 결론이 우세하다. 일단 우즈는 미국에서도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두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KBO에 오게 된 타자이며, 40살이 될 때까지 꾸준한 컨디션 관리, 몸 관리 등을 통해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꾸준한 활약을 보인 반면 이승엽은 주전 자리조차 보전하기 힘든 부진으로 스텟을 많이 깎아먹었으며 말년의 KBO에서도 우즈의 NPB만큼의 성적은 거두진 못했다. 우즈의 전성기는 KBO가 아니라 NPB에서 맞이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며, 둘의 전성기인 이승엽의 KBO 1기 vs 우즈의 NPB를 비교할 경우에도 수치는 이승엽이 훨씬 높지만 리그의 수준차를 감안하면 이승엽이 압도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에 이승엽 팬들은 '이승엽이 NPB에 적응하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우즈 역시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별로 적절하지 못한 비교가 된다. 심지어 리그 적응력을 문제삼는다면 우즈의 KBO 성적을 더 높게 쳐줘야 하는 것이니 오히려 이승엽 입장에서 손해가 된다. 게다가 우즈는 2002년 구단과의 갈등으로 태업 플레이를 펼쳤다는 의혹도 있다.

반면 우즈를 옹호하는 측 역시 KBO의 비교를 아예 묻어버리려고 하는 움직임 때문에 반발을 사곤 한다. 년도상으로 비교해보면 wRC+를 기준으로 KBO에서는 3:2로 이승엽의 근소 우위라는 결론이 나지만, 이승엽의 1999년과 2002년 성적은 그야말로 리그를 박살냈던 최고의 전성기였기에 단순 3:2로 결론 내리기엔 애매한 상황이다. 심지어 일부 이승엽 안티들은 '우즈는 2002년에 태업했으니 비교에서 빼야함!'이라고 주장하며 이승엽의 커리어하이인 2002년을 빼고 비교하려고 애를 썼다. 현재는 보정 스텟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우즈는 2002년을 빼고 이승엽은 2002년을 포함하는 식으로 비교가 가능해졌다.

시간이 지나 우즈에 대한 팬들의 기억이 희미해진 후에는 NPB에 진출한 KBO의 타자인 이대호와 이승엽의 비교가 본격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대호의 경우에는 NPB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지만 우즈같은 몬스터 시즌은 없다는 점, 그리고 KBO의 표본이 우즈보다 훨씬 많으며 외국인 텃세같은 것도 없었다는 점 때문에 우즈보다 더 팽팽한 비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MLB에 진출한 타자들까지 다수 생기면서 추강대엽이라는 라인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2023년 이승엽은 타이론 우즈가 한국무대에서 뛰었던 두산 베어스 감독이 되었다.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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